재상 이윤(伊尹)이 재상 자리를 내놓고 은퇴를 결심하면서, 왕 태갑(太甲)에게 올리는 글을 쓴다. 태갑이 처음 왕위에 올랐을 때에도 경계의 말을 담아 글을 올렸고, 물려나면서도 그렇게 한 것이다. 앞의 글은 <이훈(伊訓)>, 뒤의 글은 <함유일덕(咸有一德)>이라는 제목으로 전한다. 하늘의 뜻을 잊지 말고 탕(湯) 임금을 본받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윤은 태갑이 못 미더웠던 것이다.
이윤이 누군가. 맛있는 음식으로 탕 임금의 마음을 얻고는, ‘쿠데타’로 폭군 걸(傑)을 내쫓은 역성혁명의 일등공신이다. 태갑의 아버지 태정(太丁)이 요절하자 동생인 외병(外丙)을 옹립했고, 외병이 3년 만에 죽자 다시 동생 중임(中壬)을 왕으로 추대한 장본인이다. 또 중임이 재위 4년 만에 세상을 뜨니 이번엔 탕의 손자요 태정의 아들인 태갑을 왕으로 만든 권력자이기도 하다.
<함유일덕(咸有一德)>의 “이제 선왕을 이은 사왕(嗣王)이 새로이 천명을 받으시려면”(今嗣王, 新服厥命)라는 구절을 적는 순간, 이윤에게는 즉위 초기 태왕의 실정이 떠올랐을 것이다. 태갑은 탕 임금 시절의 제도와 관행을 준수하지 않았다. 태갑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시대를 열고 싶은 마음에서였겠지만, 이윤의 눈에 그 귀결처는 분명해 보였다. 쫓겨난 임금 걸(傑)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이윤의 경고는 계속 되었다. ‘사리에 어두움, 포학함, 탕의 제도를 따르지 않음, 덕을 어지럽힘’이 문제라고 거듭 호소하였다.
이윤은 결국 왕 태갑을 탕 임금의 무덤이 있는 동궁(桐宮)으로 내보냈다. 신하가 임금을 유배 보낸 초유의 일이다. 왕이 없으니 제후들의 조회는 이윤이 대신했다. 참람하다면 참람함의 극치였다. 3년이 지나고 태갑은 백기를 들었다. 할아버지의 유훈(遺訓)을 준수하는 왕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이윤은 태갑에게 권력을 되돌려주었고, 물러나면서 <함유일덕>을 지어 바쳤다.
이윤의 글들에는 ‘사왕(嗣王)’에 대비되어 ‘선왕께서는’이라는 말이 거듭 되풀이 된다. 뒷일을 맡긴다며 먼저 간 선왕 탕 임금의 간절한 부탁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태갑이 가장 듣기 싫어한 말 역시 ‘선왕께서는’이었을 것이다. 떨어지는 않는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는 이윤의 모습에서, 먼 훗날 유비(劉備)의 아들 유선(劉禪)에게 <출사표>를 바치던 제갈공명이 미리 보이는 것은 나만의 환각일까. <출사표>에서 제갈공명이 ‘선제(先帝)’라는 말을 무수히 되뇌이던 목소리는 바로 이윤의 목소리가 아닐까.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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