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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30일 토요일

맹자의 4단설에 대한 주자의 주석 - 김기현

맹자의 4단설에 대한 주자의 주석 - 김기현 致知
2008/09/2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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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조선조를 뒤흔든 논쟁>> 상, 길, 2000
p.106
주자의 맹자학 이해를 비판하는 유가들은, 우선 맹자는 측은지심·수오지심 ··· 등처럼 측은·수오·사양·시비를 심이라 말했지 정이라 말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주자는 맹자의 성선설을 자신의 유학사상의 근간으로 삼은 충실한 맹자학자이지만, 그의 맹자학 이해는 전적으로 자신의 철학사상에 의거하여 있다. 주자 자신의 심성론에서는 측은·수오·사양·시비는 정이지, 결코 심이 될 수 없다. 주자에서 심은 정과는 별개의 것이다. ...




'端'의 해석 문제
p.107
사단과 인의예지의 관계를 맹자가 '단'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크게 양자의 관계를 '불과 연기의 관계'로 보느냐 아니면 '수면 아래의 빙산과 수면 위에 떠오른 빙산의 일각과의 관계'로 보느냐로 갈라진다.
주자학파의 학자들이 4단을 인의예지라는 '불'의 연기로 간주하면서, 연기를 통해 불이 존재함을 긍정하고 연기가 제대로 잘 피어오르게 함으로써 불의 가치를 더욱 빛내자는 해석을 취하는 반면에, 다른 주석가들은 4단이 곧 인의예지라는 '빙산'의 일각이므로 평소에 빙산을 자꾸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해석을 취한다. 결국 심·성·정을 동체로 보느냐 3분하여 보느냐에 따른 차이이다. ...
'端'에 대한 주자의 해명
p.108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명한다... <공손추 상>편의 4단론은 공부(도덕 수양)에 중점을 두고 있으므로 '단'이라고 말하였으나, <고자 상>편에서는 도덕의 본체에 초점을 두고 있으므로 '단'을 생략하였다는 해명이다.
한대의 <<맹자>> 주석가인 조기와 송명 심학파, 현대 신유가, 한국의 정다산 등은 정반대로 해명한다. 본래는 사단지심과 인의예지가 동체이므로 굳이 '단'을 말할 필요는 없으나, 구체적으로 공부의 요령을 말하고 있는 <공손추 상>편에서만큼은 우리가 사단지심을 한 끝으로 붙들고서 계속 그 몸통을 드러내야만 함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하게 '단'을 말하였던 것 뿐이라고 해명한다. ...
p.109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4단과 인의예지의 관계를 호주머니 밖으로 한끝이 나와 있는 손수건의 일부와 호주머니 안의 손수건 전체와의 관계처럼 연속의 관계로 보느냐 아니면 연기와 불의 관계처럼 불연속의 관계로 보느냐 하는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주자학 바깥의 주석가들은 어느 쪽을 택하든 맹자의 4단설에 대한 그들의 해석에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주자의 경우에는 양자의 관계를 반드시 불연속의 관계로 말해야만 하는 제약이 있다.
맹자식 논법과 정자식 논법
p.110
주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두 가지 논법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는 기를 염두에 두지 않고 순수하게 인의예지의 성 그 자체만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와의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성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성 또는 선만을 가리켜 말하는 전자의 논법을 여기서는 "오로지 ~만을 가리켜 말한다"고 말하고 맹자의 인성론을 그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으며, 성과 기, 또는 선과 악을 겸하여 말하는 후자의 논법을 "~까지를 겸하여 말한다"고 말하고 정자의 인성론을 그 대표적 예로 들고 있다. ...
저자(즉 발언자)의 발언 맥락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 두 가지 논법의 문제는... 사단칠정 논변에서 줄곧 문제가 되므로 꼭 기억해두어야 한다. 퇴계는 자신의 사칠 해석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본래 이 두 가
p.111
지 논법이 있음을 들고 집요하게 제기하지만, 고봉이나 율곡은 이 두 논법이 퇴계의 사칠 해석을 지탱해주는 근거로 취해질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리기선후>, 진래, 이종란 외 옮김, 주희의 철학, 예문서원, 2002.

리기선후 / 주희의 철학 - 진래 致知
2008/07/1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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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래, 이종란 외 옮김, <리기선후>, <<주희의 철학>>, 예문서원, 2002.
리기선후
p. 28
19세에 진사가 되어 71세로 죽을 때까지, 주희는 리기선후를 포함하여 자신의 사상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발전시켜 왔다... 주희가 리기 관계를 논할 때 종종 다른 문제, 다른 각도에서 출발하였다... 주희 학설의 이러한 객관적 정황을 고려해 볼 때, 주희의 사상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시(역사적 변화)·공(다양한 단계와 다양한 각도)의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고찰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1. <<태극해의>>에 나타난 리기 관계
p.30
진정한 의미의 본체론에서 리기 관계를 처음 밝힌 것은 <<태극해의>>이다... <<태극해의>>의 초고는 건도 경인년(1170) 주희 나이 41세 때에 씌여졌고... 계사년(1173)에 기본적인 원고가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태극해의>>는 주희가 주돈이의 <태극도>와 <태극도설>을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 
p.31
주희는 <<태극도설해>>에서 태극을 '형이상의 도'요, '동정음양의 리'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가 리로써 태극의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
p.32
주희는 태극을 리로, 음양을 기로 삼았기 때문에 리기 관계의 문제를 야기하였다... <<태극해의>>에 나타난 주요 사상은 체용이라는 각도에 따라 리기 관계를 이해한 본체론이다.
주희는 <태극도해>에서... 리는 본체이며 음양동정과 존재의 근거이고, 기의 동정은 리의 외재화 과정이요 표현임... 리는 기 속에 있으면서 기와 떨어질 수 없으나, 서로 섞일 수도 없는 본체인 것이다... '태극은 본체이고, 동정은 작용'... <<태극해의>>를 완성할 때에 이 구절을 수정하였으나, 태극이 본체라는 생각은 바꾸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주희가 당시 체용의 관점에서 태극과 음양동정의 관계를 해석하는 데 주된 관심을 보였음을 말해준다. 이는 실제로 위진 이래 중국 철학 및 불교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p.33
차지하던 유심주의 본체론의 관점이기도 하다.
철학의 기본 문제는 무엇이 제1성질인지를 해결하는 것이지,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이라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근본이고 무엇이 어떤 것의 형식을 결정하느냐로 제1성질과 제2성질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본체론'의 특징이다. ...
본체가 태극이고 음양동정은 리가 그것을 빌려서 표현하는 외재 과정이라는 말이다. 리와 기 모두 시간적으로 시작과 끝이 없고, 시종 섞이지도 분리되지도 않는다. 주희의 이 사상은 정이의 '체용일원'과 '음양무시'의 개념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상술한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주희는 리와 기 사이에는 선후가 없다고 보았다. ...
p.34
근거와 현상 세계는 체와 용, 본연지묘와 소승지기
p.35
의 관계이지, 결코 둘 사이에 선후 관계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
당시에 주희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인성론과 본체론의 결합에 관한 문제였다. ...
주희가 <<태극해의>>에서 해결하고자 한 문제는 인성의 본체론적 기원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태극해의>>에서 음양동정의 유행 과정 속에서 태극과 음양은 '서로 떨어질 수도 섞일 수도 없음'을 밝혔다. 즉 음양의 기가 구체 사물을 구성한 후에도 태극은 여전히 음양 속에서 변화를 겪으며 사람과 사물의 성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무극의 眞(理)과 음양오행의 精(氣)이 결합하여 이루어지지 않은 사물이 없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인성이라는 말에는 위로부터 품부받은 천지의 理(太極)라는 뜻뿐만 아니라, 태극의 혼연한 전체가 보편적으로 모든 사물에 존재한다는 뜻이 동시에 담겨 있다. 이는 주희가 '성즉리'를 본체론적으로 새롭게 논증한 것이다.
p.36
이상에서 본 것처럼 이 시기 주희의 사상은 이른바 '리본체론'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으며, 이 설에 입각하여 리기선후 문제를 고찰할 때에만 리와 기에는 선후가 없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주희의 학설을 이원론으로 볼 수는 없으며, 유물론이라고 하는 것은 더더구나 적합하지 않다.
P案.. 주희 40대 초반의 이기에 관한 학설은 '리본체론'으로서, 리본체론이라 함은 리를 제1성,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리는 본체이며 기의 동정은 리의 외재화 과정이며, 이것은 리를 체로 기를 리의 용으로 파악한 것이다.
리와 기가 떨어져 있을 수 없다는 정리로부터 사람에게도 리가 부여되어 있다는 '성즉리'설이 합리화된다.
2. 태극에 대한 논변
p.40
순희 15년 무신년(1188), 당시 59세였던 주희는 나라의 명을 받고 5월말쯤 대궐에 들어갔다가 6월 중순에 수도 임안을 떠나 강서 옥산으로 돌아왔는데, 이 때 육구연의 편지를 받았다. ...
p.42
음양이 형이상에 속하느냐 아니면 형이하에 속하는냐 하는 문제를 놓고 음양을 다르게 이해한 데서 육구연과 주희의 주장이 갈린다. 육구연은 모든 대립 성질의 범주와 추상을 개괄하여 형이상의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주희는 정이의 설에 입각하여 '일음일양'
p.43
을 음양의 기가 한번 가고 한번 오는 것으로 이해하고, '일음일양지위도'와 '형이상자위지도, 형이하자위지기'를 대응시킴으로써 음양을 기로 보는 리기 철학을 형성하였다.  ...
육구연과 더불어 태극을 논하는 때에 이르러서는 태극이 음양 중에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음양의 밖에도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주희가 말한 무극이 곧 태극이요 태극에는 리가 있다. 리는 사물이 없던 때에도 존재하였고 사물이 생긴 후에도 있지 않은 적이
p.44
없으며, 음양의 밖에 있으면서 음양 중에서 행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 이것은 주희 자신이 리기선후설로써 주돈이를 해석한 것이다"(<<송원학안>> 권20)라고 한 황종희의 말 그대로이다. 주희의 이러한 사상이 바로 "리가 기에 앞서 있다"(理在氣先)는 것이다. ...
리가 기에 앞선다는 사상을 형성하게 된 시기를 논하려면... <<역하계몽>>을 반드시 살피고 넘어가야 한다. 순희 13년 병오년(1186), 주희 나이 57세 때에 완성된 <<역학계몽>>은 초학자들을 대상으로 주역상수를 설명한 책이다. ...
p.45
주희는 소옹의 加一倍法적 筮法說을 보충하여 흡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석상에 있어서도 <태극도설>을 통일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즉 "상수가 형성되기 전에 리는 이미 갖추어져 있다", "양의가 나뉘기 전에 태극은 혼연히 존재해 있었고, 양의·사상·육십사괘의 이치가 이미 그 속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태극에서 양의가 나뉘어졌다" 등과 같이 상수 형식으로 표현된 말과, "사물이 생기기 전이나 생긴 후에도 있지 않음이 없었다", "음양의 밖에도 있고, 음양의 속에도 없었던 적이 없다", "도는 처음이 없는 것으로서 실제로는 만물의 근거가 된다"는 말은 사상적
p.46
으로 완전히 일치한다. 이렇게 주희의 상수 이론은 천지·음양·태극의 운행과 변화의 과정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 ...
p.47
상수 역학 사상은 철학 중에서도 우주발생론에 속한다. 소옹이 "괘를 그리기 전에 원래 역이 있었다"고 한 말은 천지 만물이 있기 이전에 이미 우주 원리가 존재해 있었고 태극으로부터 일체 사물이 생겨났다는 것을 뜻한다. "리가 기에 앞서 있다"는 주희 사상은 초년의 '본체론' 사상을 바탕으로 상수학의 우주론을 수용하여 한층 발전시킨 것으로 역학의 상수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만년에 이르러 주희는 다시 논리적으로 리가 기에 앞선다는 선재설을 언급함으로써 우주론의 여러 가지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피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주희가 죽고 난 후에 그의 문인들은 리기선후 사상에 모호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P案.. 주희 50대후반 60대초반의 이기론은, 육구연과의 태극논변과 상수역학의 영향으로 형성되었다. 육구연과의 논변을 통하여 리가 기에 앞선다는 리선기후설을 제창하였으며, 상수역학을 통해 리가 기를 낳는다는 생성론, 발생론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이 시기의 리선기후란 리로부터 일체 사물이 생겨났다는 것을 뜻한다.
3. 리선기후
p.49
주희의 사상에 입각하여 본질상에서 말하면 태극이 천지에 앞서 있으며, 현존하는 세계의 측면에서 말하면 태극은 천지 만물 가운데 있다. ...
p.52
리기에 선후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본원론인가 구성론인가에 따라 각기 다른 해답을 갖게 된다. ...
p.53
본원상에서 주희는 '리가 기에 앞서 있음'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구성상으로는 리가 기에 앞서 있다고 하지 않고 '리기에는 선후가 없다'고 강조하였다. 만약 본원에 대한 논의를 구성에 대한 논의로 보고, 또 반대로 구성에 대한 논의를 본원에 대한 논의로 보면서 주희 철학을 시종일관 '리기무선후의 이원론'이라고 단정지어 말한다면 주희 사상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틀림없이 혼란에 빠지게 되고 만다. ...
p.54
구성상으로는 리기가 한 곳에 있으므로 나뉠 수 없지만, 리가 제1성이라는 각도에서는 '리가 기에 앞서 있다', '리가 사물에 앞서 있다'고 설명된다. ...
p.55
이상의 서술은 주희의 '리선기후' 사상이 한 시기에 크게 발전하였음을 보인 것이다. 초년의 본체론에서 나중에 우주론을 흡수하는 데 이른 것은 이론 사유 면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또 모든 철학적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론상으로 '리가 기에 선재한다'는 견해를 내는 데는 인식적 기초가 요구되는데, 그것은 일정한 철학 문제 처리에 대한 결과이며 이 문제는 리기 관계 속에 포함된 일반과 개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한 종류의 사물의 '리'는 그 사물의 보편적 본질 또는 법칙이 되는데, 그 리는 한 종류 사물 가운데 어떤 하나의 개별 사물이 사사로이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며 개별 사물의 발생과 소멸로 인해 전이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미 있었던 한 종류의 사물의 리를 그런 종류 가운데 나중에 만들어진 사물에 대해 '리선물후'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법칙이 일반성을 가
p.56
지고 있다는 것을 표명한 것이다.
P案.. 발생론적 입장의 리선기후설에서도, 본원상에서 논하는 것인가 구성상에서 논하는 것인가를 구별해야 한다. 본원상에서는 발생론적 입장을 견지하므로 당연 리선기후이며, 구성상에서 논할 때는 리기가 나뉠 수 없으므로 리기무선후라고 말해야 한다.
4. 만년정론
p.57
'리의 선재를 미루어 말하는 방식'은... 주희 만년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p.58
주희의 이런 설명을 살펴보면 첫째, 리와 기는 실제상에서는 선후를 말할 수 없다. 둘째,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올라가거나 그 소종래를 추론하면 리가 기에 선재한다고 할 수 있다... 풍우란은 그의 저서 <<중국철학사>>에서 이런 사상을 개괄하여 '논리적 선재'라고 하였는데 적합한 표현이다. 여기서 말하는 논리란 흔히 말하는 형식 논리가 아니라 이론상의 관계를 넓은 의미로 가리킨 것이다. 이미 실제적으로 리와 기에 선후가 없는데 어떤 것이 논리적으로 그것들의 선후를 관계짓는가? ...
리가 기에 선재한다는 것은 오늘이나 내일 같은 시간적 선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철학상에서 어떤 것이 제1성이 됨을 가리킨다. 주희는 그의 논리를 풀어서 말하기를 "만일 산하 대지가 모두 무
p.59
너져도 결국 리는 그 속에 있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설령 일체의 물질이 모두 소멸된다 해도 리는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즉 기는 생멸할 수 있으나 리는 형이상의 것으로서 생멸이 없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리는 물질이 소멸하는 데 따라 함께 소멸하는 것이 아니며, 마땅히 물질이 아직 생산되지 않았을 때도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질이 소멸하고 산하 대지가 모두 무너진다는 데서 '만일'이란 논리적 가설일 뿐이라는 것이다. 주희는 물질이 소멸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인정하였지만 실제로 물질이 철저하게 소멸된다고 인식한 것은 아니었다. ...
초년기에는 주희가 리선기후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동정무단', '음양무시'와 모순되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리가 기에 선재한다"고 주장하면서부터 '동정무단', '음양무시'와 논리적으로 충돌하게 되었다. ...
p.60
리가 기에 앞서 있다는 설과 음양무시의 개념이 모순이라는 것을 의식하였던 것... 이는 주희가 만년에 이르러 논리적 선재설로 향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주희는 리와 기에 시간적인 선후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양자간에 오늘이나 내일과 같은 시간적 개념과는 구별되는 선후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역시 선후가 있다", "요약하면 역시 먼저 리가 있다" 등과 같은 말은 시간적인 선후 관계를 나타낸 것이 아니다. 즉 이 둘 사이에 시간적인 선후는 없지만 그 지위가 나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른바 선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양자간에 선차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의 차별을 두기 위하여 한 말이다. 이로써 볼 때 논리적 선재설은 리로써 제1성을 삼은 정치한 유심주의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p.62
"그 생기는 것을 논하면 함께 생기는 것이고 태극은 음양 속에서 그대로 존재한다. 단지 그 순서를 말하면 오직 실제의 리가 있어야 비로소 음양이 있다"고 한 데서의 '단지 그 순서를 말하자면'이라는 말은 이론상·논리상으로 말한 것이지 결코 사실상의 순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 ...
P案.. 주희의 만년정론 역시 본원상에서 논할 때와 구성상에서 논할 때를 구분하여야 한다. 본원상에서 논할 때는 '리선기후'이다. 그런데 이 리선기후는 발생론적 리선기후, 즉 리에서 만물이 파생한다는 의미는 리선기후가 아니다. 이것은 리가 선차적인 것이며, 본질적인 것이며, 제1성이라는 의미의 리선기후이다. 따라서 이 때의 선후는 시간적 선후가 아니라 지위가 동등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주희 40대의 리본체론적 입장을 다시 견지하는 데 이르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구성상에서는 뭐.. 리기무선후이다.

횡적으로 볼 때 주희의 리기에 대해서는 선후로 토론할 것이 아니라 본원과 구성의 두 문제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
p.63
종적으로 볼 때 주희의 리기선후 사상은 일대의 발전 과정을 거쳤다. 초년기에 주희는 리가 근본이라는 논의에서 출발하여 리기무선후를 주장하였다. 리가 기에 선재한다는 사상은 남강에 머문 후 진량과의 논변을 거쳐 육구연과의 태극 논변에 이르게 되면서 차츰 형성되어 갔다. 리가 기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그 때의 '리선기후' 사상의 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주희 만년의 정론은 논리적 선재설이며 논리적 선재설은 다시 높은 수준의 본체론으로 돌아오는 사상이었으므로, 이것은 곧 부정의 부정이다... 그것은 본질상 리의 기에 대한 제일성의 지위를 다른 형식으로 확인한 것이었다.

정상봉, <한국에서의 주자학 연구성과에 대한 회고와 전망>, 중국학보>>, 한국중국학회, 1998.

정상봉, <한국에서의 주자학 연구성과에 대한 회고와 전망>, <<중국학보>>, 한국중국학회, 1998.


一. 주자학 연구성과에 대한 회고

1. 주자학 연구방법

p.269
       한국 동양철학계는 그동안 동양 및 한국철학 연구방법에 대하여 나름대로 논의를 진행해왔다. 주자학 연구에 있어서도 다양한 연구방법이 제시되었다. 그 가운데 유인희와 손영식은 비교적 분명하게 연구방법을 논하고 있다.
       유인희는 하학법과 상달법(관통법)을 제시한다. 하학법으로는 이성으로 도달할 수 있는 사변적 이해의 방법이요, 상달법은 불교의 直悟法과 유사한 것으로 이치를 知的直覺에 의해 일관되게 주체적으로 체득하는 방법이라고 규정한다. 하학법은 해석학적 방법(객관적 차원의 사변적 논의를 넘어서 한 철학자의 直覺의 세계를 이미 달라진 상황에서도 주체의 생명력 안에 체증하여 새로운 창조를 도모하는 방법)·분석적 방법·역사적 방법(전후의 철학적 문제와의 연관성에 대한 검토)·문자고증적 방법(주자학 내에서의 일정한 철학용어의 의미 및 의의에 대한 규명)·비판적 방법(주자학을 비판하는 후대학자들의 이론에 의한 점검) 등을 포함하고 이것은 상달을 위한 예비적 자료로 쓰인다. 상달법은 그 철학의 지속적인 생명력을 개인 주체 안에서 역각체증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범학사, 1980, 23-27쪽)
        이상의 연구방법 중 '역사적 방법'은 철학사적 맥락에 있어서의 의미고찰 방법이다. 이 점에 있어서 '비판적 방법'도 '역사적 방법'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해석학적 방법'의 경우 위에서는 좁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만약 그 함의의 폭을 넓혀 사용한다면 '해석학적 방법'은 연구자가 텍스트를 놓고 어원학적 내지는 문헌학적 고찰과 전체적인 의미연관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추체험(追體驗: re-living)"의 단계에 이르는 것을 지칭하므로 '문자고증적 방법' '분석적 방법'까지도 그 안에 포괄할 수가 있다. 따라서 소위 하학법은 역사적 방법과 넓은 의미의 해석학적 방법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한편 손영식은 대만·중국·일본학자들-牟宗三 馮友蘭 侯外廬 宇野哲人 楠本正繼 守本順一郞-의 연구방법을 소개하면서 하나하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는 풍우란 식의 관
p.270
념사적 연구 방법이 사회경제적 배경을 무시하는 한계가 있으나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구조를 밝히는 데는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 守本順一郞의 경우는 '역사 발전 5단계설, 아시아적 생산 양식론, 동양적 전제 군주론'을 도입하고, 당의 이념인 불교와 송의 이념인 신유학에 대해서도 시대의 발전에 따른 변증법적 극복의 관계로 보았다고 한다. 이 연구 방법은 마르크스주의를 동양 사회에 적용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며 동시에 중국의 학자들의 교조적 도식주의를 치료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牟宗三에 대해서는 그의 일원적 생명체론은 역사적 사실이나 학문의 맥락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侯外廬의 경우는 유물론-유심론의 대립을 '理-氣'의 대립으로 대치하고, 전통적인 성리학의 개념틀의 논리 안에서 리기의 관계만 추구하는 데 힘썼으며 기개념 또한 단순히 물질로서 파악하여 신유학 사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宇野哲人이나 友枝龍
太郞에 대해서는 실증적인 접근을 하였지만 각기 형이상학의 이론체계를 재구성하는 데 미흡하다거나 논리적 구조의 해명을 소홀히 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끝으로 楠本正繼이 택한 체용의 도식은 주자학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 파악에 난점이 있다고 보았다.(<<송대 신유학에서 철학적 쟁점의 연구>>,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1993, 8-27쪽) 손영식의 관념사적 입장에서 주자학을 재구성하는 방법도 앞서 언급한 넓은 의미의 '해석학적 방법'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또 역사 속의 정치·경제·사회적 현실을 염두에 둔 고찰 방법도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역사적 방법'이라고 하겠다.

P案:주자학의 연구방법을 크게 '역사적 방법'과 '해석학적 방법'의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 두가지 방법은 하나의 논문 속에 공히 사용될 수밖에 없다. 주자학이 형성되고 전개된 역사적 배경을 살피는 것과 주자학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재구성하여 천명하는 것은 학위논문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다.


 2. 주자학을 보는 관점

       주자학에 대하여 배종호는 송대에 이르러 중국적 자각을 통하여 道佛을 섭취한 유학으로서 신유학이 성취되었고 이것은 주자에 이르러 집대성되었다고 보았다.(<동양 본체론 서설>, <<동양철학의 본체론과 인성론>>, 연세대학교 출판부, 1982, 8쪽) 같은 관점에서 유인희는 송대에 도불가의 영향 속에서 전통유학의 문제와 방법에 항구적 가치가 있음을 자각하고 도불가의 이론도 능히 포섭할 수 있는 철학으로서의 유학을 재창조하려 한 것이 송학이었으며, 이 작업은 주자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말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18-19쪽) 송대 유학자
p.27
들이 도가나 불교의 영향 하에서 나름의 자각의식을 갖고 유학을 새롭게 정립하였고 그것을 주자가 집대성하였다는 점은 연구자들이 대체로 수긍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주자학을 일원론적 관점에서 볼 것이냐 이원론적 관점에서 볼 것이냐에 대하여 연구자들 간에 차이가 있다.
P案:도불의 관점을 일부 수용하여, 기존의 유학을 재창조하였다는 것이 주자학의 역사적 형성배경에 대한 학자들의 일반적 평가이다.

       이원론적 관점에서 보는 연구자는 배종호 김일환 김충렬 이동희 등을 들 수 있다. 배종호는 주자의 우주론과 본체론이 이기이원론임을 지적하였다.(<<한국유학사>>, 20쪽, 29쪽) 김일환도 정이가 이기를 형상·형하로 구분하면서 리에다 초월성·내재성을 부여하였으며 주자에 이르러 이원적 이기론으로 집대성되었다고 보았다.(<동양 본체론에 있어서 주자철학의 위치>, <<首善論集>>12집, 14쪽) 김충렬은 정주학파가 주장한 이기이원론의 이분법이 성정이원의 문제로 이어져 "멸인욕, 존천리"의 수양공부를 강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송명이학과 청초실학의 이론적 차이>, <<중국철학산고>>, 온누리, 1990, 281쪽)
       일원론으로 보는 연구자는 유인희 홍원식 백도근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이원론으로 보는 연구자들처럼 단정적 자세를 취하지는 않는다. 유인희는 생생기와 생생리의 본체론에 입각한 "생리철학"으로 파악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244-245쪽) 이에 비해 홍원식은 "정주성리학은 '리일원론'의 철학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객관적 관념론 철학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주자의 철학 체계에는 약간의 '리기이원론적' 잔재가 남아 있으며, 또 '心'과 '理'를 완전히 분리시키지 않은 까닭에 특히 인식론 상에서 '불충분한 객관적 관념론'의 모습을 자주 나타내기도 한다"고 하여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정주학의 거경궁리설 연구>>, 89쪽) 백도근의 경우는 이기론에 대해 일원론 혹은 이원론으로 나눌 필요는 없지만 심신의 관계에 있어서는 심신일원론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선진유학과 주자철학>>, 이문출판사, 1994, 62쪽, 167쪽)
       이상의 두 관점과는 달리 이남영은 일원적이냐 이원적인 것이냐는 불상리·불상잡의 관계 가운데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추어 보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밝히고 있다.(<리기사칠논변과 인물성동이론>, <<한국의 사상>>, 열음사, 1985, 52쪽)
P案: 이기론이 일원론인가, 이원론인가의 문제. 데카르트적 실체 개념에 의하면, 존재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 실체이며, 데카르트는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된 실체(유한 실체)로서 정신과 육체를 구분하므로, 그의 이론을 심신이원론이라고 부른다. 주자의 이기론이 일원론인지 이원론인지를 묻는 것이 위와 같은 물음인가? 이와 기가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된 실체인지를 묻는 것인가? 그렇지 않음은 분명하잖아..그렇다면 어쨌든 데카르트식의 이원론은 아닌 거다. 그럼 왜 이런 걸 묻는 거지 도대체? 이와 기를 구분하면 이원론이 되는가? 형이상하를 구분하면 이원론인가?

       한편 국내 주자학 연구자들 간에는 현대신유학자로 꼽히는 臺灣 牟宗三의 학설에 대하여 유달리 찬반양론의 입장이 분명하다. 모종삼은 <<심체여성체>>(제3책)에서 주자의 심성론을 가리켜 (1)性體의 도덕성을 감쇄시켰고, (2)性體의 道德創生의 創生의 뜻을 상실했고, (3)逆覺體證의 방법을 취하지 않았고, (4)존재론적 해석을 하고 말았다고 서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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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양승무는 이러한 모종삼의 관점을 십분 수용하고 있다.(<주자의 '인설'에 대한 재조명>)
그러나 유인희는 逆覺體證 智的直覺 등의 용어를 원용하면서도 비판적 입장에 서있다. 즉 모종삼의 관점이 핵심에서 벗어났다고 보고 주자가 主宰的 實然心을 통하여 격물치지를 말한 것은 단순한 인지주의가 아니라, "認識實踐論"이기 때문에 오히려 모종삼이 생각하는 體得法 일변주의가 광의의 인지주의에 속한다고 비판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217쪽, 156쪽) 최영찬은 이기론에 있어서 주자는 실제 현상계를 理氣合看으로 설명함으로 원시유학에서 일관해온 於穆不已의 道體를 설명하는데 모종삼이 離看의 관점에서 존재론적 분석을 한 것은 일면적인 이해이며, 이기론에 의거한 심성론도 주자는 성정을 통섭하고 있는 實際心을 말하여 원시유학에서 도덕창생성을 갖는 주체성으로서의 心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주자철학에 있어서 공맹천인관의 승수와 전개>>, 충남대 박사학위논문, 1990, 10-111쪽) 박로홍도 주자의 격물설을 범인지주의로 규정한 모종삼의 주장에 대하여 격물궁리의 목표가 양적 지식의 추구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은 일면만을 본 것이라고 평하고 있다.(<<주회암의 수양론에 관한 연구>>, 동국대 박사학위논문, 1993, 47쪽, 139쪽, 141쪽)...
P案:모종삼의 수용 여부. 주자학의 용어나 개념들이 공맹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 않다고 해서, 공맹의 이념을 사상시켰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난...사실 그 도덕창생성이 뭔질 모르겠어..ㅋ 유학의 의의는 관계와 사회를 중심으로 세계와 인간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찾아지지.

3. 주제별로 본 연구성과

       1) 도가 및 불교의 영향

        도가 및 불교의 영향 전반에 관하여 한형조는 신유학이 도가에게서 세계관의 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면 불교의 영향은 주로 그 형이상학적 사유와 수양론적 측면에 있다고 말한다.(<<주희에서 정약용에로의 철학적 사유의 전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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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가의 영향 문제에 대하여 유인희는 주자가 노자의 谷神不死와 장자의 道體形容을 높이 평가한 것은 一氣聚散의 氣論을 받아들인 것이며, 도가가 無欲을 말한 것도 인생론의 관점에서 수정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46쪽, 192쪽) 김낙필에 의하면, 주자가 도교에 대해서 이단시하기는 했지만 <<주자어류>>에서 보이는 그 역사적 전개과정(노장사상과 양주사상, 신선사상, 교단도교적 요소 및 민간신앙적 요소)에 대한 인식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으며, <<陰符經考異>>(1175)나 <<參同契考異>>(1197)를 지은 것도 장점을 취하려는 태도가 은연중에 나타난 것이라고 하였다. 특히 주자가 <<參同契>>를 易의 이치를 밝히는 소재로 삼을 수 있다고 본 것이나 道에 깊이 진입한 사람이 아니면 저술하지 못했을 것으로 평가한 <<陰符經>>에 대하여 음양원리를 잘 밝혔다고 생각되는 부분에서 주자가 특별한 공감을 표한 것은 어디까지나 이기론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주희의 도교인식>, <<태동고전연구>> 10집, 851-864쪽)
       불교의 영향 문제에 대하여 유인희는 一理와 分殊理(條理)에 관한 주자의 설명 방식은 분수리(조리)가 일리의 분수리(조리)이므로 불교의 涅槃佛性論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191-192쪽) 이광률은 주자철학과 선불교를 구체적으로 비교 검토하면서 첫째 이일분수로 설명하는 본체와 만물과의 관계는 石頭의 參同契·曺洞宗의 正卽偏의 이론과 일치하고, 이기 개념은 달마의 理入 行入說이나 화엄의 理事 개념과 연관이 깊고 이기의 不卽不離論은 理事無礙와 그 의미가 동일하며, 둘째 性은 純善하고 기질의 품수에 의해서 선악이 생긴다는 것과 眞如의 至善함과 一念思量에 의해 선악의 차별이 생긴다는 설명이 같고, 셋째 存心 방법으로써 敬을 들고 그것을 '主一無適'으로 풀은 것은 心을 하나의 대상에 안주시켜 산란되지 않게 하는 것으로 이는 진정한 이치를 자각하는 純一無雜의 내성적 관조공부인 禪과 유사함을 지적한다. 또한 주자가 20세 전후 불교에 심취했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大慧의 看話禪과 宏智의 默照禪이 주류를 이루었던 송대 불교를 개괄하면서 그 중 大慧禪이 송대 지식인 계급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쳤고 주자도 李侗을 만나기 전까지 大慧禪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주자의 선불교 영향에 관한 논문>, <<경산대학교 논문집>>10, 경산대, 1992, 85-90쪽)
       이동희와 이광호의 경우는 주자가 초년에는 劉子翬를 쫓아 묵조선에 마음을 두었다고 보았다.(이동희, <<주자학의 철학적 특성과 그 전개양상에 관한 연구>>, 27-18쪽. 이광호, <중화논변을 통하여 본 주자후기사상의 단초>, <<철학논구>>12, 서울대철학과, 27-28쪽) 그러나 지금 학계에서는 주자가 간화선의 大慧宗杲와 開山寺 道謙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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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심취했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한편 윤용남은 주자의 도체의용, 인체의용, 의체인용, 충체서용, 성체정용, 심체심용, 도체도용의 체용론적 사유구조가 불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중용>>과 <<계사전>>의 천명설과 태극설 중심의 선진 유가로부터 유래하였다고 밝히고 있다.(<<주자의 체용리론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 박사학위논문, 7쪽, 169쪽)

       2) 理氣論

        이남영은... 理와 氣가 과연 무엇이냐를 정의하기에 적절한 오늘날의 표현이 없다고 보고 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 개념도 형상이 정신이나 신의 요소를 지니고 질료가 물질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고려할 때 걸맞은 개념은 아닌 것이다. 리와 기를 이성과 감정으로 이해하는 것도 역시 理氣가 인식론적 의미 이외에도 우주론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적절치 못하다고 한다...(<이기사칠논변과 인물성동이론>, <<한국의 사상>>, 51쪽)
       理의 함의와 성격에 관하여 유명종은 일원적 초월적 실체, 세계의 존재근거, 자연적 운동법칙, 사회의 행위규범, 존재의 본질 등을 든다. 또한 理와 봉건질서와의 관계에 주목하여 理는 자연과 사회를 일관하는 영원한 절대적 존재이므로 현실적 사회질서는 불변한다는 보수적 경향이 도출되고, 객관적인 봉건질서 속에서 리를 인식한 후 절대적 인식은 내부 모순을 시정하고 나아가 리를 顯現化하려는 정치적 개량주의로 이어진다고 논하였다...

       ① 理氣의 관계
       이남영은 사물의 세계에서는 이기불상리의 원칙에 입각하여 볼 때 무선후이고 우주의 근원에 관한 측면에서는 불상잡의 원칙에 입각하여 볼 때 이선기후라고 하였다.(<쟁점으로 본 한국성리학의 심층>, <<한국사상의 심층연구>>, 우석, 209쪽) 최영찬은... 본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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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는 <不相雜>, <理先氣後>, <理同氣異>, <理生氣>를 설정하여 분석하고 현상론에 있어서는 <不相離>, <理氣無先後>, <氣相近理不同>, <氣强理弱>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주자철학에 있어서 공맹천인관의 승수와 전개>>, 124쪽) 이광률도 같은 입장이다.(<주희의 이기론에 관한 연구>, <<대구한의과대학 논문집>>7집, 308쪽)
       박로홍의 경우는... 44세 <태극도설해의>의 완성시는 이기의 무선후를 말했으나, 상산과의 논변을 거친 뒤에는 이선기후로 전회하였다고 주장한다.(<<주회암의 수양론에 관한 연구>>, 15-16쪽)
       그런데 생성론적 관점에서 과연 이선기후를 말할 수 있느냐 즉 '理生氣'의 여부에 대해서는 불가하다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대표적으로 김충렬은 기가 사실상 리의 소산이 아니라고 단정한다.(<송대 태극론의 제문제>, <<동양철학의 본체론과 인성론>>, 연세대출판부, 1982, 93쪽) 최영찬도 理生氣가 결코 리로부터 직접 기가 나온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만 기가 리에 合到하여 生化가 있다는 의미라고 하였다.(<<주자철학에 있어서 공맹천인관의 승수와 전개>>, 134쪽) 유인희는 리가 원인이요, 기가 결과라고 보아서는 안된다고 본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189쪽) 생성론적 관점에서 기가 리에서 파생되어 나왔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P案:이기선후와 무선후의 문제. 이생기의 해석. 위에서 김충렬은 '정주학파가 주장한 이기이원론의 이분법이 성정이원의 문제로 이어져 "멸인욕, 존천리"의 수양공부를 강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며 그를 이기이원론자로 분류하였다. 이기이원이므로, 기는 리의 소산일 수 없다.
유인희의 경우, '생생기와 생생리의 본체론에 입각한 "생리철학"으로 파악한다'면서 일원론자로 분류하였다. 리와 기가 독립된 실체도 아니고, 기가 리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도 아니라면, 리와 기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기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했는지에 대한 분석이 빠져있다.(엮인글: 이선기후의 본체론) 

       ② 理一分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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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원식은 이일분수의 철학적 연원은 정이가 장재의 '기일분수론적' 이론을 비판하면서 이일분수설을 내놓은 것으로, 理一의 理와 分殊의 理의 관계는 보편과 특수, 일반과 개별의 관계가 있다고 하였다... 이는 곧 주자가 합목적적·유기체적 우주관을 상정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정주학의 거경궁리설 연구>>, 91-96쪽) 이광률은 理一과 分殊를 전체와 부분의 관계라고 보고 理一分殊에서 리는 절대적인 본체계를, 一은 절대유일을, 分은 상대세계의 개별물의 物理를, 殊는 多와 異를 의미한다고 한다. 한형조도 모든 사물과 현상 속에는 각각 하나의 중심이 있으며, 이 중심은 거대한 중심의 통합적 질서 속의 일부분이라고 본다.(<<주희에서 정약용에로의 철학적 사유의 전환>>, 54쪽)
       손영식은 理一分殊를 윤리학적 차원에 국한시켜 풀이한다. 즉 사람의 마음에 있는 하나의 근원적인 사랑은 동시에 하나의 근원적인 理이며, 하나의 사랑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듯 하나의 근원적인 理는 상황에 따라 상대와 자신에 맞는 리(分殊理)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주자의 理一分殊論은 공자의 정명론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한 것이라고 규정한다.(<<송대신유학에서 철학적 쟁점의 연구>>, 172-175쪽)

      3) 心性論

       ① 中和舊說과 新說, 그리고 <仁說>
       가. 중화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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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중화신설
       유인희는 40세에 채원정과의 토론 과정 중 미발 이발을 성과 심으로 분속시킬 수 없음을 자각하고 本體體證(미발이발일원인 성심의 본체에 대한 체증)을 내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중화신설이라고 말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138-139쪽)
       이광률은 미발의 중을 성으로만 보느냐 아니면 심의 미발로 보느냐에 중화구설과 신설의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중화신설은 정이의 설을 중심으로 이통의 설과 장식의 설을 지양 통일한 것으로 공부방법에 있어서도 정적인 미발에 대한 공부에서 동적인 이발시의 공부로의 전환을 거친 후 마침내 정적인 공부와 동적인 공부를 종합하여 미발과 이발 양쪽에 대하여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고 한다.(<<주자의 심성론에 관한 연구>>, 108쪽, 111쪽) 이광호는 주자가 중화신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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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여 마음을 미발과 이발, 성과 정, 체와 용으로 나누어 미발일 때 성·체의 이상적 상태를 중이라 하고, 이발일 때의 정과 용의 이상적 상태를 화라고 함을 밝히고, 중화를 이루기 위한 공부의 방법도 미발시의 함양에 보다 비중을 두지만 이발에도 일관되어야 하는 경공부가 있어야 하고 이발시에는 치지가 필요함을 논하였다고 말한다.(<중화논변을 통하여 본 주자후기사상의 단초>, 41-42쪽)
        손영식은 중화신설에서 마음의 기능으로 강조한 것은 다름아닌 결정권(宰) 혹은 주체성(主)이라고 논한다. 즉 마음은 의식과 육체를 포함한 운동의 주인이며 미발과 이발·움직이거나 쉼·말하거나 침묵함의 양쪽을 통괄하고 있으므로 마음이 주재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발의 리에 근거하여 이발의 의식과 행위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바로 마음이기 때문이다. 본성의 리가 '나'의 확고한 바탕이 되어 일상의 일에 접하면 그 일을 그 일의 리에 맞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비로소 주인(사유하고 행위하는 주체로서의 '나')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미발의 본성(理)을 '나'의 바탕과 근거로 삼아서 미발의 마음이 체험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나'(도덕적 자아)로서 보존하고 길러야 하는 것(존양)이 중화신설이 제시한 수양공부의 요체다. 비록 미발의 마음을 보존하고 함양함으로써 도덕적 의지와 주체('나')가 확고히 정립되다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이발의 성찰(인륜관계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존양이 미발의 본성을 함양하여 도덕적 주체를 확립하는 것이라면 성찰은 이발의 마음에서 이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여 미발의 본성에 부여된 이치의 총체를 깨닫는 것이다.(<<송대 신유학에서 철학적 쟁점의 연구>>, 151-159쪽)
       다. <仁說>
       호남학파와 주자 간의 仁에 대한 이견에 관하여 박로홍은 이것이 정이·정호의 인에 대한 이해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첫째, 心性情의 혼일관(호남학파는 심성을 불분하고 상일층차에 집착하여 心爲理一만을 강조함)과 분해관(주자는 이기 심성을 형이상하로 나누고 체용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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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로 봄)의 차이; 둘째, 인의 포괄성(호남학파는 천명유행인 繼之者善에 치중 公에 의한 포괄성을 강조하여 同體에 강한 신념을 가짐)과 정체성(주자는 구체적 成物인 成之者性에 치중하여 生과 愛에 의한 全偏을 들어 同體의 이유를 밝힘); 셋째, 體仁의 방도에 있어서 호남학파는 二心說에 의거 주체로부터 직접 反身 逆覺體證에 의한 自得 自治를 구하고 주자는 一心說에 의거 漸窮法에 의한 至仁踐仁을 말하였다고 주장한다.(<<주회암의 수양론에 관한 연구>>, 127쪽)
       손영식에 따르면, 주자는 사량좌의 지각설이 인이 사랑이라는 것을 잊었다고 한다면 양시는 인이 사랑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모든 것이 나와 한 몸이라고 하는 조장함의 잘못을 범하였음을 비판했다고 한다. 동시에 주자는 인을 사랑의 이치이며 마음의 능력(心之德)이라고 한 정의에 입각하여 소위 '사랑의 이치'는 전체 덕목 중의 하나의 덕목으로서 인을 말한 것으로 '부분으로서 말한 인(편언지인)'이며, '마음이 덕'이란 모든 덕목을 포괄한 덕목으로서 인을 규정한 것으로 '포괄하여 말한 인(전언지인)'임을 밝혔다고 적고 있다. 사람이 모여사는 사회 속에서 개체간의 연결고리가 바로 사랑이라고 해석하면서 모든 개인이 인을 발휘하여 사랑하고 그 마음의 덕을 발휘하면 조화로운 하나(사회)가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송대 신유학에서 철학적 쟁점의 연구>>, 168-171쪽) 이 점은 인의 윤리학적 함의에 특히 주목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우주본체론적 차원의 의미를 살린 유인희는 <인설>을 근거로하여 주자학을 "生理哲學"으로 이름하고 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존재자 가운데 생생기와 생생리를 체인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며 인간은 그것을 마음에서 체득해낼 수 있다. 그 본체가 가장 잘 나타난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주자는 生理와 生心이 곧 仁임을 체인해 냄으로써 명도설의 미진한 것을 일소하여 주었다."(<정주의 인성론>, <<동양철학의 본체론과 인성론>>, 연세대학교출판부, 1982, 261-262쪽)
       한형조의 경우는 주자가 <인설>을 통하여 만물의 자연적 "조직의 패턴으로서의 리"를 보편적 사랑으로 형이상학화함으로써, 사회성과 윤리성을 인간 뿐만 아니라 동식물과 무기물을 포괄하는 전우주의 보편적 특성이자 본질로 파악함으로써 명백히 경험적 자연학으로부터 일탈해버리고 말았다고 평한다. 주자는 리를 자연의 조직(패턴)이면서 자연의 이념으로 승격시킴으로써, 즉 윤리적 이념으로서의 리와 과학적 조직(패턴)으로서의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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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함으로써 사상사의 분분한 갈등과 파탄의 고리를 마련했다고 결론짓는다.(<<주희에서 정약용에로의 철학적 사유의 전환>>, 53-58쪽)
       양승무는 모종삼의 관점을 수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주자는 정이의 분석적설법을 계승하여 인체를 단지 성이요 리라고 여겨 초월적인 의미에서 소이연의 근거일 뿐 인간의 진정한 행위주체로서 도덕행위의 실천주체가 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즉 인은 구체적인고 활발한 생생지인이 아니고 다만 정태적인 實有이어서 인간의 도덕행위에 대한 주체로서 인간의 생명활동에 대해서도 마침내 무력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결국 주자의 인에 대한 이해는 공자나 맹자의 인과 부합하지도 않고 정호를 이은 사량좌나 양시의 설에 대해서도 계합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주자의 인설에 대한 재조명>, 172-173쪽)

       ② 心의 分屬과 주체성
       양승무는 주자에게 있어서 기지령인 심은 형기에 따라 시종이 있는 실연적 심이고 경험적 심이므로 심리학적인 의미의 심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도덕적 초월적인 심은 아니라고 본다.(<주자의 인설에 대한 재조명>, 172-173쪽) 이는 주자학에 있어서는 심이 도덕적 주체성을 갖지 못함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유인희는 주자에게 있어서 심은 기요 성은 리이지만 이미 심이라고 할 때는 리와 기가 언제나 분리될 수 없듯이 이미 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심은 허명통철한 직각능력에 의해서 동정성정에 자존하여 성을 갖추고 보존할 수도 있으며 외물에 응접하여 움직이되 중절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고 하였다.(<정주의 인성론>, 258쪽, 219쪽 <<주자철학과 중국철학>> 219쪽) 최영찬도 인간은 리와 기로 구성된 실제존재이므로 심도 순수리인 본연지성이 기세계에 속하는 심 내에 타재되어 있으므로 논리적으로는 리와 기의 합성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성정을 통섭하고 있는 실제심은 원시유학에서 말하고 있는 도덕창생성을 갖는 주체성으로서의 심과 하등 차이가 없다고 본다.(<<주자철학에 있어서 공맹천인관의 승수와 전개>>, 167쪽, 111쪽)
       김교빈은 이상의 관점들과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즉 이기론에서도 주체의 능동성은 기로 설명될 수밖에 없듯이 심 또한 기의 가장 맑은 상태로서 영각능력을 갖추었으므로 기의 입장에서 본다면 능동자이고 주체적으로 대상에 대해 움직여갈 수 있는 능력자라는 것이다.(<본체론과 심성론을 통해 본 주자의 격물치지 이해>, <<동양철학연구>>6집, 1985, 193-195쪽; 참고 홍원식 <<정주학의 거경궁리설 연구>>, 79-81쪽, 知의 주체로서의 心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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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수양론

       유인희는 거경궁리를 합하여 "자각적 실천법"이라 이름하면서, "자각적이란 소이연지고를 궁구하는 격물법을 나타낸 것이며, 실천법이란 생생불이하는 본체를 함양하는 거경법을 나타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두가지는 상호 보완적이고 병진관계에 놓여있다고 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186쪽, 182-183쪽)
       홍원식은... 치지에 앞서는 거경은 知의 주체에 대한 거경이고 치지에 뒤서는 거경은 行의 주체에 대한 거경의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정주학의 거경궁리설 연구>>, 141-142쪽)
       김수청의 경우는 넓은 의미로 경을 해석하여 "경이란 본성의 이치를 체인 함양하여 감정의 발동이 절도에 딱맞도록 찰식 성찰하는 일"로서 거경함양(존심양성)과 격물궁리(격물치지)는 상호보완적이고 이 둘은 경공부의 양 축이라고 하였다.(<<주희의 경사상연구>>, 동아대박사학위논문, 1994, 서론1쪽, 169쪽)

       ① 居敬
       유명종은... 주자의 경공부가 주돈이 혹은 양시 이통 일파의 主靜一邊과 호굉 장식 등의 主動派를 종합통일한 것이라고 한다. 이 경은 동정과 미발이발을 관통하는 수양원리이며, 함양 혹은 성찰에서 마음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원리라고 하였다.(<<송명철학>>, 187쪽) 손영식은 미발의 본성을 길러서 확고하게 정립하며, 이 확고한 바탕 위에서 일상의 일에 대처하는 것이 거경함양이라고 보고 결국 도덕적인 의지, 즉 선의지를 함양하는 것으로 본다. 즉 자신의 선의지를 강화시켜 도덕적 주체를 확립하는 것이다.(<<송대 신유가에서 철학적 쟁점의 연구>>, 156쪽, 210쪽) 한형조는 방만한 기질 활동 속에서 균형(이념)을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어지럼
p.282
증을 가라앉히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정신을 흩트리지 않고 깨어있음(常惺惺)'의 거경이므로 경은 심리학적 注視와 관련된다고 논한다.(<<주희에서 정약용에로의 철학적 사유의 전환>>, 74쪽)
       홍원식은 주자 거경설의 한계점을 지적하였는데, 주자가 정이의 '일이 없을 때(무사시)'의 거경공부와 '일이 있을 때(유사시)'의 集義 공부를 심화 발전시킨 것 같지만 사실은 집의 공부가 부차적으로 처리됨으로써 거경공부는 오히려 주정적 편향을 띠게 되었다고 평한다. 경이 미발 무사시와 이발 유사시에 두루 미치는 것이므로 노장이나 불교 및 선유의 主靜的 공부설의 특성을 극복하였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動을 중시한 동의 철학으로는 볼 수 없다고 보고 있다.(<<정주학의 거경궁리설 연구>>, 132쪽-135쪽)

       ② 窮理
       김교빈은 격물이 단적으로 존재를 규명하는 문제가 아니라 시비를 가리는 가치판단의 문제이며, 여기서의 시비는 지식적 범주가 아니라 실천으로 연결되므로 사물의 존재론적 이해보다는 궁극적으로 도덕적 규범적 이해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본체론과 심성론을 통해 본 주자의 격물치지 이해>, 176-177쪽) 손영식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자신의 앎을 넓히는 것(격물치지)"은 유교적인 세계관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단정한다.(<<송대 신유학에서 철학적 쟁점의 연구>>, 210-211쪽) 윤천근의 경우는 주자의 격물이 일차적으로 사물에 대한 대상적 파악을 의미하므로 여기서 확보되는 객관성은 과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초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주자 격물의 궁극적 목적은 그러한 객관성을 통과해서 관념적 도덕적 지식에 정착해야 하기 때문에 주자의 지식론은 과학이 되게 할 수는 없는 한계를 노출시켰다고 평한다.(<'지식'에 대한 유학적 논의>, <<논쟁으로 보는 중국철학>>, 예문서원, 1994, 293쪽) ...
       배종호는 "... 리의 소재를 主와 賓의 양쪽에 다 있는 것으로 보고, 吾心의 理와 外物의 理의 대응으로 말미암아 인식(知)이 이루어지는 것(致)을 주장하였다"고 적고 있다.(<동양 본체론 서설>, <<동양철학의 본체론과 인성론>>, 10쪽) 박로홍도 천리는 물에도 있고 심에도 있으므로 物之天理는 곧 心之天理인 것으로 반드시 격물궁리의 공부에 의하여 찬연히 드러나게 됨으로써 物之天理를 주관에 내재화시킬 수
p.283
있다고 보았다. 격물은 결국 이 마음을 밝히는 것이라고 한다.(<<주회암의 수양론에 관한 연구>>, 67쪽)
       김교빈에 따르면, 리에는 특수의 리와 보편의 리 양 측면이 있고 그 보편은 특수 안에 존재하는데, 특수한 개물의 리는 경험상의 분별지인 識別知를 통해 드러나고 보편적 리는 논리적 추론에 의한 無分別知에 의해 파악된다. 이렇게 격물치지는 분별지와 무분별지를 겸하는 것이다.(<본체론과 심성론을 통해 본 주자의 격물치지 이해>, 176-177쪽) 이동희는 주객을 구분하는 사람의 識別反省知에 의해 일사일물의 도리 리법 조리를 구명하는 주지주의적 성격을 띠지만 그 궁극에 이르면 오각지의 세계에서는 심지와 물리, 즉 주객의 대립은 완전히 융석되어 합일의 경지가 되어 절대자유의 세계가 나타난다고 설명한다.(<주자의 대학장구에 대한 연구>, <<동양철학연구>>2집, 122-123쪽)
       유인희는 격물법은 관찰법이요 분석적인 방법이고, 현상의 수많은 조리를 관통하는 一理(본체)에 대한 체오인 활연관통은 직각법이요 종합적이라고 하였다. 致知는 다름아닌 一理를 體證한 心知가 知明의 상태로 化한 것이라고 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160-173쪽) 홍원식은 인식의 질적 전환-순수한 객관지에서 주관지와 실천지에로의 전환-을 주목하였는데, 즉 즉물을 통하여 사물의 기에 대한 인식에 이르고 나아가 사물의 리에 대한 인식을 거쳐 리일의 리를 깨닫는 활연관통을 하게 된다고 보았다.(<<정주학의 거경궁리설 연구>>, 94-102쪽) 한형조의 경우는 격물이 균형(이념)의 구체적 방법과 양식을 아는 것이고, 이를 통해 기질을 어떻게 올바르게 순화시켜야 할까를 알며 그 바탕 위에서 올바른 정신과 신체의 표현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주희에서 정약용에로의 철학적 사유의 전환>>, 74쪽) 김교빈은 지행의 차원에서 활연관통을 논한다. 즉 활연관통의 의미로는 첫째, 기질지성을 지닌 사람이 개체의 특수성을 극복하고 보편을 인식하는 것; 둘째, 의식에서 내면으로의 회귀이니 이발의 상태에서 미발의 본래성으로 돌아간 것, 즉 인식대상과 인식주체라는 주객의 대립에서 주체로 회귀하여 그 대립을 해소시키는 것 등이 있다고 말한다.(<본체론과 심성론을 통해 본 주자의 격물치지 이해>, 176-177쪽)
P案..연구사를 연구하는 이유는 1. 일단은 정리하기 위해서고, 2. 다음은 평가하기 위해서이다. 정리하고 평가하는 것은 1. 새로운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이고, 2. 기존이 연구 방향이 옳다고 판단되었을 경우에는 미진한 부분을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기 위해서이다. 

신유학 이(理)철학의 세계철학사적 의미-류인희

신유학 이(理)철학의 세계철학사적 의미-류인희 致知
2008/05/1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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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희, <신유학 이(理)철학의 세계철학사적 의미 - 퇴계 성리학과 호락논쟁의 문제 발전을 중심으로-> , <<퇴계, 그는 누구인가>>, 글익는들 에서 발췌...

(P. 227)
퇴계는 <<대학>>의 물격(物格)과 이(理)의 용(用)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P. 228)
"그 (주자의) '이(理)가 만물에 있으나 그 용(用)은 실로 한 사람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이(理)가 스스로 작용하지 못하고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기다림이 있어야 하고 (이가) 스스로 이른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또 (주자가) '이에는 반드시 용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또 심(心)의 용을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은, 그(이) 용이 비록 사람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그 용이 되는 신묘한 바는 진실로 이 이가 발현(發現)한 것이 사람의 마음에 이르는 바에 따라 이르지 않는 바가 없고 다하지 않은 바가 없다는 것이니, 다만 아마도 나의 격물(格物)이 지극하지 못할 뿐이지, 이가 스스로 이르지 못할 것을 걱정할 것이 없다." (<<퇴계전서>> 권18, <답기명언 별지>, 31ab>

"그렇다면 바야흐로 그 격물을 말할 때는 진실로 내가 궁구하여 물리(物理)의 지극한 곳에 이르는 것을 말한 것이지만, 그 물격(物格)을 말함에 있어서는 어찌 물리의 지극한 곳이 나의 궁구한 바를 따라서 이르지 않음이 없다고 말할 수 없겠는가. 여기에서 정의(情意)도 없고 조작도 없는 것은 이 이(理)의 본연(本然)의 체(體)이고, 머문 곳에 따라서 발현하여 이르지 않음이 없는 것은 이 이(理)의 지극히 신묘한 용(用)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전에는 단지 본체(本體)의 무위(無爲)에 대해서만 보되 신묘한 용이 능히 드러나 행해지는 것을 알지 못하고서 자못 이(理)를 쓸모없는 것[死物]으로 인식한 것 같으니 그 도와의 거리가 어찌 멀지 않겠는가." (<<퇴계전서>> 권18, <답기명언 별지>, 31b)

이상에서 퇴계가 이에 대해서 그 체와 용의 양면을 분명히 인정하였으니 신유학의 이 관념에 관한 한 이것은 정확한 이해이다. 그리고 퇴계의 이러한 인식은 주자보다도 더 확신에 찬 것으로서 새로운 발견이라고 평가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금의 많은 연구가들은 이점의 인식에서 혼란
(p. 229)
을 가져왔었다. 이제 퇴계의 이 인식을 바르게 소개하는 것은 곧 성리학의 주요 개념과 쟁점 그리고 나아가서 성리학의 기본 정신을 이해하는 데 지름길이라는 것을 거듭 확인해둔다.
위의 인용문을 정리하면 퇴계는,

ㄱ) 이(理)는 느끼거나 움직이는 기능을 갖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의 작용을 빌어서 발현된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이에는 분명히 용(用)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용이 있다고 할 때의 그 뜻은 이가 사물(死物) 즉 쓸모없거나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기능한다는 것이었다.
ㄴ) 다만 우리가 격물을 철저히 하지 못한 것이 이의 용을 그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까닭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물론 이가 중요하지만 선결문제로서 더 중요한 것은 이 이를 아는 문제이다. 퇴계는 그래서 '일찍이 깊이 생각해보건대,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사람들의 학문과 도술(道術)의 달라진 까닭은 오로지 이 자를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른바 이 자를 알기가 어렵다는 것은 대략적으로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알고 신묘하게 이해하기를 100%에 이르도록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라고 하여 이 문제를 전면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방법이 중요하다고 해서 격물에 이가 달린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근본 문제는 이란 무엇인지 하는 것이니 이를 퇴계는 '만일 뭇 이치를 궁구하고 100%에 이르러 통견(洞見)하여 이것[物事]을 얻으며, (이것은) 지극히 허(虛)하면서도 지극히 실(實)하고 지극히 무(無)하면서도 지극히 유(有)하며 동(動)하면서도 동함이 없고 정(靜)하면서도 정함이 없는 정결(淨潔)하고도 정결한 것이어서 터럭만큼도 더할 수 없고 터럭만큼도 덜어낼 수 없어 음양오행과 만물 만사의 근본이 되지만 그렇다고 음양오행과 만물 만사에
(p. 230)
머무르지도 않으니, 어찌 기(氣)를 섞어 한 몸체[一體]로 인식하여 같은 것[一物]으로 볼 수 있겠는가'라고 표현해주었다. 그 핵심 주장은 이가 음양오행의 만물의 기와 섞여서 한 몸으로 있을지라도 이는 결코 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案 하나>

"ㄱ) 이(理)는 느끼거나 움직이는 기능을 갖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의 작용을 빌어서 발현된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이에는 분명히 용(用)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용이 있다고 할 때의 그 뜻은 이가 사물(死物) 즉 쓸모없거나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기능한다는 것이었다."

의문1. 理에 운동성(느끼거나 움직이는 기능)이 없다면, 곧 쓸모없거나 죽은 것이 되는가?
       스스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자는 죽은 자인가?

의문2. 理가 살아서 기능한다는 것은 (사람의 경우에 있어서) 사람의 마음 작용을 빌지 않고도 理 스스로 발현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마음을 닦을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격물은 무엇하러 하는가?

의문2에 대해. 
퇴계가 "(주자가) '이에는 반드시 용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또 심(心)의 용을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은, 그(이) 용이 비록 사람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그 용이 되는 신묘한 바는 진실로 이 이가 발현(發現)한 것이 사람의 마음에 이르는 바에 따라 이르지 않는 바가 없고 다하지 않은 바가 없다는 것이니, 다만 아마도 나의 격물(格物)이 지극하지 못할 뿐이지, 이가 스스로 이르지 못할 것을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한 것을 보자.
이 말은 다음의 세 가지를 함축한다.
① 理는 스스로 발현함.
② 스스로 발현한 理가 마음이 이르는 곳에 이르름.
③ 理가 이르지 못한 경우(사태 상에서 理가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理에 작용성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격물이 지극하지 못하였기 때문 즉 마음이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임.

그렇다면, 理의 발현發見과 理의 이르름[到]은 구별되어야 한다. 퇴계는 理의 발현을 理의 用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理의 이르름에 마음의 의의와 역할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볼 경우, 공부의 자리가 있다. 理가 살아서 기능하기는 하지만, 마음의 작용을 빌어서야 비로소 현실의 구체 사태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문1에 대해.
퇴계가 理에 用이 있다고 주장하는 데 근거로 삼은 주자의 발언을 보자. '이에는 반드시 용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또 심(心)의 용을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이다. 이것의 원문을 통째로 보자.

<<주자어류>> 권18, 97조목. 
물었다: 혹문에서 ‘심이 비록 일신을 주관하지만 그 體의 허령함은 족히 천하의 理를 주관할 수 있으며; 리가 비록 만물에 흩어져 있지만 그 用의 미묘함은 실로 한 사람의 心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用이 심의 用입니까?(問: “或問云: ‘心雖主乎一身, 而其體之虛靈, 足以管乎天下之理; 理雖散在萬物, 而其用之微妙, 實不外乎一人之心.’ 不知用是心之用否?”)

曰: “理必有用, 何必又說是心之用! 夫心之體具乎是理, 而理則無所不該, 而無一物不在, 然其用實不外乎人心. 蓋理雖在物, 而用實在心也.”)
又云: “理遍在天地萬物之間, 而心則管之; 心旣管之, 則其用實不外乎此心矣. 然則理之體在物, 而其用在心也.”)
次早, 先生云: “此是以身爲主, 以物爲客, 故如此說. 要之, 理在物與在吾身, 只一般.”)

역시나 P의 번역이 신통치 않으므로.. 쉽게 풀어보자.

제자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선생께 질문한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대학혹문>>에서 '사람의 마음은 그의 몸을 주관하는 것이지만 그 體의 허령함은 세상의 모든 理를 주관할 수 있고, 理는 세상만물에 흩어져 있지만 그 用은 한 사람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그렇게 말해버리면 '用'이 마치 理의 用인 것처럼 읽힐까 걱정이 되서요.. 마음의 用이겠죠?"
선생이 친절하게('답답해하며' 혹은 '짜증을 내며'^^일 수도 있다.) 답해주신다.
"理에 반드시 用이 있는데, 꼭 다시 마음의 用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나? 體用의 설법은 다양해. 마음의 體는 理를 갖추고 있어. 그런데 이 理는 마음 뿐 아니라 어디에나 있거든. 하지만 그 理의 用은 마음을 벗어날 수 없어. 理가 세상의 물사에 있더라도 그 用은 마음에 달려있다는 말이야."
선생이 미진함을 느껴 다시 말한다.
"그러니까... 理는 세상만물에 있지만, 그것을 주관하는 것은 마음이라는 얘기야. 마음이 理를 주관하여 그것을 쓰이게 하므로, 理의 用이 마음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한 거야. 마음이 주관하는 理가 내 마음의 理에 한정된 것이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理의 體는 세상의 모든 물사에 있지만 理의 用은 마음에 달려있다고 한거야."
선생이 자신의 말을 제자가 오해할까 밤새 걱정하다, 다음날 아침 일찌감치 다시 말한다.
"어제 한 말은 사람을 중심으로 말한 것일 뿐이야. 사람의 理가 세상만물의 理를 부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어. 사람의 理나 세상만물의 理나 하나로 일관되어 있거든. 그래서 마음으로 理를 쓸 수 있다는 것이야."

주자가 이 조목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은 理가 쓰이는 것은 心에 의해서라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태극으로서의 一理가 현상 세계의 만물에 萬理로 부여되어 있지만, 그 理가 스스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理는 心에 의해서 발현되고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자는 분명 "理의 體는 物에 있지만 그 用은 心에 있다(理之體在物, 而其用在心也)"고 말했다.
놓쳐서는 안될 부분은, 理의 體用을 말하되 物과 心의 관계 하에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物과 心을 떠나서 理의 體用을 설명한 게 아니다. 즉 心을 떠나서는 用을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에는 반드시 용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또 심(心)의 용을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간단하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 조목에서는 '理의 쓰임은 心에 의한다'라고 말하고자 하고 있다. 따라서 理의 用은 스스로 발현함, 스스로 작용함의 用이 아니다. 현상세계에서 理의 드러남을 말하는 것이다. 理는 스스로 작용하지 못하므로, 현상세계에서 理의 드러남은 心에 의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理의 드러남을 理의 用이라고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理는 현상세계에서 드러나고 쓰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理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의문1로 돌아가 보자. 理에 운동성(느끼거나 움직이는 기능)이 없다면, 곧 쓸모없거나 죽은 것이 되는가? 아니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쓸모없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심에 의해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理의 내용은 주지하다시피 生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답은 주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퇴계는 이것에 대해 다르게 생각했나보다. 理가 만물에 내재해 있고, 心에 의해 발현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理에 더 많은 힘을 주고 싶었다. 더욱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理가 스스로 발현하고 스스로 이른다고 말한다. 그것은 한 철학자의 절절한 고민의 산물일 것이다.
하지만 주자의 원의와는 다르다. 원문의 전문을 읽어 본 우리는 분명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이상에서 퇴계가 이에 대해서 그 체와 용의 양면을 분명히 인정하였으니 신유학의 이 관념에 관한 한 이것은 정확한 이해이다."는 무슨 뜻일까....


<案 둘>

"ㄴ) 다만 우리가 격물을 철저히 하지 못한 것이 이의 용을 그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까닭이라는 것이다."

의문3. 理의 用을 발휘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의문3에 대해.
理의 用을 다시 발휘해야 한다면, 결국 理의 用을 발휘하는 그 역할은 心에 주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理가 스스로 발현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理의 用이란 말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理가 쓰여질 수 있음' '理가 발현될 수 있음'이 理의 用인가? 그러한 의미의 用이라면 이미 體 안에 갖추어져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體와 대대하여 用이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