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봉, <한국에서의 주자학 연구성과에 대한 회고와 전망>, <<중국학보>>, 한국중국학회, 1998.
一. 주자학
연구성과에 대한 회고
1. 주자학 연구방법
p.269
한국 동양철학계는 그동안 동양 및 한국철학 연구방법에 대하여 나름대로 논의를 진행해왔다. 주자학 연구에 있어서도 다양한 연구방법이 제시되었다. 그 가운데 유인희와 손영식은 비교적 분명하게 연구방법을 논하고 있다.
유인희는 하학법과 상달법(관통법)을 제시한다. 하학법으로는 이성으로 도달할 수 있는 사변적 이해의 방법이요, 상달법은 불교의 直悟法과 유사한 것으로 이치를 知的直覺에 의해 일관되게 주체적으로 체득하는 방법이라고 규정한다. 하학법은 해석학적 방법(객관적 차원의 사변적 논의를 넘어서 한 철학자의 直覺의 세계를 이미 달라진 상황에서도 주체의 생명력 안에 체증하여 새로운 창조를 도모하는 방법)·분석적 방법·역사적 방법(전후의 철학적 문제와의 연관성에 대한 검토)·문자고증적 방법(주자학 내에서의 일정한 철학용어의 의미 및 의의에 대한 규명)·비판적 방법(주자학을 비판하는 후대학자들의 이론에 의한 점검) 등을 포함하고 이것은 상달을 위한 예비적 자료로 쓰인다. 상달법은 그 철학의 지속적인 생명력을 개인 주체 안에서 역각체증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범학사, 1980, 23-27쪽)
이상의
연구방법 중 '역사적 방법'은 철학사적 맥락에 있어서의 의미고찰 방법이다. 이 점에 있어서 '비판적 방법'도 '역사적 방법'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해석학적 방법'의 경우 위에서는 좁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만약 그 함의의 폭을 넓혀 사용한다면 '해석학적 방법'은 연구자가 텍스트를 놓고 어원학적 내지는 문헌학적 고찰과
전체적인 의미연관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추체험(追體驗: re-living)"의 단계에 이르는 것을 지칭하므로 '문자고증적 방법' '분석적
방법'까지도 그 안에 포괄할 수가 있다. 따라서 소위 하학법은 역사적 방법과 넓은 의미의 해석학적 방법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한편 손영식은 대만·중국·일본학자들-牟宗三 馮友蘭 侯外廬 宇野哲人 楠本正繼 守本順一郞-의
연구방법을 소개하면서 하나하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는 풍우란 식의 관
p.270념사적 연구 방법이 사회경제적 배경을 무시하는 한계가 있으나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구조를 밝히는 데는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 守本順一郞의 경우는 '역사 발전 5단계설, 아시아적 생산 양식론, 동양적 전제 군주론'을 도입하고, 당의 이념인 불교와 송의 이념인 신유학에 대해서도 시대의 발전에 따른 변증법적 극복의 관계로 보았다고 한다. 이 연구 방법은 마르크스주의를 동양 사회에 적용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며 동시에 중국의 학자들의 교조적 도식주의를 치료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牟宗三에 대해서는 그의 일원적 생명체론은 역사적 사실이나 학문의 맥락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侯外廬의 경우는 유물론-유심론의 대립을 '理-氣'의 대립으로 대치하고, 전통적인 성리학의 개념틀의 논리 안에서 리기의 관계만 추구하는 데 힘썼으며 기개념 또한 단순히 물질로서 파악하여 신유학 사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宇野哲人이나 友枝龍
太郞에 대해서는 실증적인 접근을 하였지만 각기 형이상학의 이론체계를 재구성하는 데 미흡하다거나 논리적 구조의 해명을 소홀히 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끝으로 楠本正繼이 택한 체용의 도식은 주자학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 파악에 난점이 있다고 보았다.(<<송대 신유학에서 철학적 쟁점의 연구>>,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1993, 8-27쪽) 손영식의 관념사적 입장에서 주자학을 재구성하는 방법도 앞서 언급한 넓은 의미의 '해석학적 방법'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또 역사 속의 정치·경제·사회적 현실을 염두에 둔 고찰 방법도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역사적 방법'이라고 하겠다.
P案:주자학의 연구방법을 크게 '역사적 방법'과 '해석학적 방법'의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 두가지 방법은 하나의 논문 속에 공히 사용될 수밖에 없다. 주자학이 형성되고 전개된 역사적 배경을 살피는 것과
주자학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재구성하여 천명하는 것은 학위논문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다.
2.
주자학을 보는 관점
p.27
들이 도가나 불교의 영향 하에서 나름의 자각의식을 갖고 유학을 새롭게 정립하였고 그것을 주자가 집대성하였다는 점은 연구자들이 대체로 수긍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주자학을 일원론적 관점에서 볼 것이냐 이원론적 관점에서 볼 것이냐에 대하여 연구자들 간에 차이가 있다.
P案:도불의 관점을 일부 수용하여, 기존의 유학을 재창조하였다는 것이 주자학의 역사적 형성배경에 대한 학자들의 일반적 평가이다.
이원론적 관점에서 보는 연구자는 배종호 김일환 김충렬 이동희 등을 들 수 있다. 배종호는 주자의 우주론과 본체론이 이기이원론임을 지적하였다.(<<한국유학사>>, 20쪽, 29쪽) 김일환도 정이가 이기를 형상·형하로 구분하면서 리에다 초월성·내재성을 부여하였으며 주자에 이르러 이원적 이기론으로 집대성되었다고 보았다.(<동양 본체론에 있어서 주자철학의 위치>, <<首善論集>>12집, 14쪽) 김충렬은 정주학파가 주장한 이기이원론의 이분법이 성정이원의 문제로 이어져 "멸인욕, 존천리"의 수양공부를 강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송명이학과 청초실학의 이론적 차이>, <<중국철학산고>>, 온누리, 1990, 281쪽)
일원론으로 보는 연구자는 유인희 홍원식 백도근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이원론으로 보는 연구자들처럼 단정적 자세를 취하지는 않는다. 유인희는 생생기와 생생리의 본체론에 입각한 "생리철학"으로 파악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244-245쪽) 이에 비해 홍원식은 "정주성리학은 '리일원론'의 철학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객관적 관념론 철학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주자의 철학 체계에는 약간의 '리기이원론적' 잔재가 남아 있으며, 또 '心'과 '理'를 완전히 분리시키지 않은 까닭에 특히 인식론 상에서 '불충분한 객관적 관념론'의 모습을 자주 나타내기도 한다"고 하여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정주학의 거경궁리설 연구>>, 89쪽) 백도근의 경우는 이기론에 대해 일원론 혹은 이원론으로 나눌 필요는 없지만 심신의 관계에 있어서는 심신일원론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선진유학과 주자철학>>, 이문출판사, 1994, 62쪽, 167쪽)
이상의 두 관점과는 달리 이남영은 일원적이냐 이원적인 것이냐는 불상리·불상잡의 관계 가운데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추어 보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밝히고 있다.(<리기사칠논변과 인물성동이론>, <<한국의 사상>>, 열음사, 1985, 52쪽)
P案: 이기론이 일원론인가, 이원론인가의 문제. 데카르트적 실체 개념에 의하면, 존재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 실체이며, 데카르트는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된 실체(유한 실체)로서 정신과 육체를 구분하므로, 그의 이론을 심신이원론이라고 부른다. 주자의 이기론이 일원론인지 이원론인지를 묻는 것이 위와 같은 물음인가? 이와 기가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된 실체인지를 묻는 것인가? 그렇지 않음은 분명하잖아..그렇다면 어쨌든 데카르트식의 이원론은 아닌 거다. 그럼 왜 이런 걸 묻는 거지 도대체? 이와 기를 구분하면 이원론이 되는가? 형이상하를 구분하면 이원론인가?
한편 국내 주자학 연구자들 간에는 현대신유학자로 꼽히는 臺灣 牟宗三의 학설에 대하여 유달리 찬반양론의 입장이 분명하다. 모종삼은 <<심체여성체>>(제3책)에서 주자의 심성론을 가리켜 (1)性體의 도덕성을 감쇄시켰고, (2)性體의 道德創生의 創生의 뜻을 상실했고, (3)逆覺體證의 방법을 취하지 않았고, (4)존재론적 해석을 하고 말았다고 서술하
p.272
였다. 양승무는 이러한 모종삼의 관점을 십분 수용하고 있다.(<주자의 '인설'에 대한 재조명>)
그러나 유인희는 逆覺體證 智的直覺 등의 용어를 원용하면서도 비판적 입장에 서있다. 즉 모종삼의 관점이 핵심에서 벗어났다고 보고 주자가 主宰的 實然心을 통하여 격물치지를 말한 것은 단순한 인지주의가 아니라, "認識實踐論"이기 때문에 오히려 모종삼이 생각하는 體得法 일변주의가 광의의 인지주의에 속한다고 비판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217쪽, 156쪽) 최영찬은 이기론에 있어서 주자는 실제 현상계를 理氣合看으로 설명함으로 원시유학에서 일관해온 於穆不已의 道體를 설명하는데 모종삼이 離看의 관점에서 존재론적 분석을 한 것은 일면적인 이해이며, 이기론에 의거한 심성론도 주자는 성정을 통섭하고 있는 實際心을 말하여 원시유학에서 도덕창생성을 갖는 주체성으로서의 心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주자철학에 있어서 공맹천인관의 승수와 전개>>, 충남대 박사학위논문, 1990, 10-111쪽) 박로홍도 주자의 격물설을 범인지주의로 규정한 모종삼의 주장에 대하여 격물궁리의 목표가 양적 지식의 추구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은 일면만을 본 것이라고 평하고 있다.(<<주회암의 수양론에 관한 연구>>, 동국대 박사학위논문, 1993, 47쪽, 139쪽, 141쪽)...
P案:모종삼의 수용 여부. 주자학의 용어나 개념들이 공맹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 않다고 해서, 공맹의 이념을 사상시켰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난...사실 그 도덕창생성이 뭔질 모르겠어..ㅋ 유학의 의의는 관계와 사회를 중심으로 세계와 인간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찾아지지.
3. 주제별로 본 연구성과
1) 도가 및 불교의 영향
도가 및 불교의 영향 전반에 관하여 한형조는 신유학이 도가에게서 세계관의 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면 불교의 영향은 주로 그 형이상학적 사유와 수양론적 측면에 있다고 말한다.(<<주희에서 정약용에로의 철학적 사유의 전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5쪽)
p.273
도가의 영향 문제에 대하여 유인희는 주자가 노자의 谷神不死와 장자의 道體形容을 높이 평가한 것은 一氣聚散의 氣論을 받아들인 것이며, 도가가 無欲을 말한 것도 인생론의 관점에서 수정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46쪽, 192쪽) 김낙필에 의하면, 주자가 도교에 대해서 이단시하기는 했지만 <<주자어류>>에서 보이는 그 역사적 전개과정(노장사상과 양주사상, 신선사상, 교단도교적 요소 및 민간신앙적 요소)에 대한 인식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으며, <<陰符經考異>>(1175)나 <<參同契考異>>(1197)를 지은 것도 장점을 취하려는 태도가 은연중에 나타난 것이라고 하였다. 특히 주자가 <<參同契>>를 易의 이치를 밝히는 소재로 삼을 수 있다고 본 것이나 道에 깊이 진입한 사람이 아니면 저술하지 못했을 것으로 평가한 <<陰符經>>에 대하여 음양원리를 잘 밝혔다고 생각되는 부분에서 주자가 특별한 공감을 표한 것은 어디까지나 이기론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주희의 도교인식>, <<태동고전연구>> 10집, 851-864쪽)
불교의 영향 문제에 대하여 유인희는 一理와 分殊理(條理)에 관한 주자의 설명 방식은 분수리(조리)가 일리의 분수리(조리)이므로 불교의 涅槃佛性論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191-192쪽) 이광률은 주자철학과 선불교를 구체적으로 비교 검토하면서 첫째 이일분수로 설명하는 본체와 만물과의 관계는 石頭의 參同契·曺洞宗의 正卽偏의 이론과 일치하고, 이기 개념은 달마의 理入 行入說이나 화엄의 理事 개념과 연관이 깊고 이기의 不卽不離論은 理事無礙와 그 의미가 동일하며, 둘째 性은 純善하고 기질의 품수에 의해서 선악이 생긴다는 것과 眞如의 至善함과 一念思量에 의해 선악의 차별이 생긴다는 설명이 같고, 셋째 存心 방법으로써 敬을 들고 그것을 '主一無適'으로 풀은 것은 心을 하나의 대상에 안주시켜 산란되지 않게 하는 것으로 이는 진정한 이치를 자각하는 純一無雜의 내성적 관조공부인 禪과 유사함을 지적한다. 또한 주자가 20세 전후 불교에 심취했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大慧의 看話禪과 宏智의 默照禪이 주류를 이루었던 송대 불교를 개괄하면서 그 중 大慧禪이 송대 지식인 계급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쳤고 주자도 李侗을 만나기 전까지 大慧禪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주자의 선불교 영향에 관한 논문>, <<경산대학교 논문집>>10, 경산대, 1992, 85-90쪽)
이동희와 이광호의 경우는 주자가 초년에는 劉子翬를 쫓아 묵조선에 마음을 두었다고 보았다.(이동희, <<주자학의 철학적 특성과 그 전개양상에 관한 연구>>, 27-18쪽. 이광호, <중화논변을 통하여 본 주자후기사상의 단초>, <<철학논구>>12, 서울대철학과, 27-28쪽) 그러나 지금 학계에서는 주자가 간화선의 大慧宗杲와 開山寺 道謙의 사상
p.274
에 심취했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한편 윤용남은 주자의 도체의용, 인체의용, 의체인용, 충체서용, 성체정용, 심체심용, 도체도용의 체용론적 사유구조가 불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중용>>과 <<계사전>>의 천명설과 태극설 중심의 선진 유가로부터 유래하였다고 밝히고 있다.(<<주자의 체용리론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 박사학위논문, 7쪽, 169쪽)
2) 理氣論
이남영은... 理와 氣가 과연 무엇이냐를 정의하기에 적절한 오늘날의 표현이 없다고 보고 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 개념도 형상이 정신이나 신의 요소를 지니고 질료가 물질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고려할 때 걸맞은 개념은 아닌 것이다. 리와 기를 이성과 감정으로 이해하는 것도 역시 理氣가 인식론적 의미 이외에도 우주론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적절치 못하다고 한다...(<이기사칠논변과 인물성동이론>, <<한국의 사상>>, 51쪽)
理의 함의와 성격에 관하여 유명종은 일원적 초월적 실체, 세계의 존재근거, 자연적 운동법칙, 사회의 행위규범, 존재의 본질 등을 든다. 또한 理와 봉건질서와의 관계에 주목하여 理는 자연과 사회를 일관하는 영원한 절대적 존재이므로 현실적 사회질서는 불변한다는 보수적 경향이 도출되고, 객관적인 봉건질서 속에서 리를 인식한 후 절대적 인식은 내부 모순을 시정하고 나아가 리를 顯現化하려는 정치적 개량주의로 이어진다고 논하였다...
① 理氣의 관계
이남영은 사물의 세계에서는 이기불상리의 원칙에 입각하여 볼 때 무선후이고 우주의 근원에 관한 측면에서는 불상잡의 원칙에 입각하여 볼 때 이선기후라고 하였다.(<쟁점으로 본 한국성리학의 심층>, <<한국사상의 심층연구>>, 우석, 209쪽) 최영찬은... 본체론
p.275
에서는 <不相雜>, <理先氣後>, <理同氣異>, <理生氣>를 설정하여 분석하고 현상론에 있어서는 <不相離>, <理氣無先後>, <氣相近理不同>, <氣强理弱>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주자철학에 있어서 공맹천인관의 승수와 전개>>, 124쪽) 이광률도 같은 입장이다.(<주희의 이기론에 관한 연구>, <<대구한의과대학 논문집>>7집, 308쪽)
박로홍의 경우는... 44세 <태극도설해의>의 완성시는 이기의 무선후를 말했으나, 상산과의 논변을 거친 뒤에는 이선기후로 전회하였다고 주장한다.(<<주회암의 수양론에 관한 연구>>, 15-16쪽)
그런데 생성론적 관점에서 과연 이선기후를 말할 수 있느냐 즉 '理生氣'의 여부에 대해서는 불가하다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대표적으로 김충렬은 기가 사실상 리의 소산이 아니라고 단정한다.(<송대 태극론의 제문제>, <<동양철학의 본체론과 인성론>>, 연세대출판부, 1982, 93쪽) 최영찬도 理生氣가 결코 리로부터 직접 기가 나온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만 기가 리에 合到하여 生化가 있다는 의미라고 하였다.(<<주자철학에 있어서 공맹천인관의 승수와 전개>>, 134쪽) 유인희는 리가 원인이요, 기가 결과라고 보아서는 안된다고 본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189쪽) 생성론적 관점에서 기가 리에서 파생되어 나왔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P案:이기선후와 무선후의 문제. 이생기의 해석. 위에서 김충렬은 '정주학파가 주장한 이기이원론의 이분법이 성정이원의 문제로 이어져 "멸인욕, 존천리"의 수양공부를 강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며 그를 이기이원론자로 분류하였다. 이기이원이므로, 기는 리의 소산일 수 없다.
유인희의 경우, '생생기와 생생리의 본체론에 입각한 "생리철학"으로 파악한다'면서 일원론자로 분류하였다. 리와 기가 독립된 실체도 아니고, 기가 리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도 아니라면, 리와 기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기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했는지에 대한 분석이 빠져있다.(엮인글: 이선기후의 본체론)
② 理一分殊
p.276
홍원식은 이일분수의 철학적 연원은 정이가 장재의 '기일분수론적' 이론을 비판하면서 이일분수설을 내놓은 것으로, 理一의 理와 分殊의 理의 관계는 보편과 특수, 일반과 개별의 관계가 있다고 하였다... 이는 곧 주자가 합목적적·유기체적 우주관을 상정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정주학의 거경궁리설 연구>>, 91-96쪽) 이광률은 理一과 分殊를 전체와 부분의 관계라고 보고 理一分殊에서 리는 절대적인 본체계를, 一은 절대유일을, 分은 상대세계의 개별물의 物理를, 殊는 多와 異를 의미한다고 한다. 한형조도 모든 사물과 현상 속에는 각각 하나의 중심이 있으며, 이 중심은 거대한 중심의 통합적 질서 속의 일부분이라고 본다.(<<주희에서 정약용에로의 철학적 사유의 전환>>, 54쪽)
손영식은 理一分殊를 윤리학적 차원에 국한시켜 풀이한다. 즉 사람의 마음에 있는 하나의 근원적인 사랑은 동시에 하나의 근원적인 理이며, 하나의 사랑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듯 하나의 근원적인 理는 상황에 따라 상대와 자신에 맞는 리(分殊理)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주자의 理一分殊論은 공자의 정명론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한 것이라고 규정한다.(<<송대신유학에서 철학적 쟁점의 연구>>, 172-175쪽)
3) 心性論
① 中和舊說과 新說, 그리고 <仁說>
가. 중화구설
p.277
나. 중화신설
유인희는 40세에 채원정과의 토론 과정 중 미발 이발을 성과 심으로 분속시킬 수 없음을 자각하고 本體體證(미발이발일원인 성심의 본체에 대한 체증)을 내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중화신설이라고 말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138-139쪽)
이광률은 미발의 중을 성으로만 보느냐 아니면 심의 미발로 보느냐에 중화구설과 신설의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중화신설은 정이의 설을 중심으로 이통의 설과 장식의 설을 지양 통일한 것으로 공부방법에 있어서도 정적인 미발에 대한 공부에서 동적인 이발시의 공부로의 전환을 거친 후 마침내 정적인 공부와 동적인 공부를 종합하여 미발과 이발 양쪽에 대하여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고 한다.(<<주자의 심성론에 관한 연구>>, 108쪽, 111쪽) 이광호는 주자가 중화신설을
p.278
통하여 마음을 미발과 이발, 성과 정, 체와 용으로 나누어 미발일 때 성·체의 이상적 상태를 중이라 하고, 이발일 때의 정과 용의 이상적 상태를 화라고 함을 밝히고, 중화를 이루기 위한 공부의 방법도 미발시의 함양에 보다 비중을 두지만 이발에도 일관되어야 하는 경공부가 있어야 하고 이발시에는 치지가 필요함을 논하였다고 말한다.(<중화논변을 통하여 본 주자후기사상의 단초>, 41-42쪽)
손영식은 중화신설에서 마음의 기능으로 강조한 것은 다름아닌 결정권(宰) 혹은 주체성(主)이라고 논한다. 즉 마음은 의식과 육체를 포함한 운동의 주인이며 미발과 이발·움직이거나 쉼·말하거나 침묵함의 양쪽을 통괄하고 있으므로 마음이 주재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발의 리에 근거하여 이발의 의식과 행위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바로 마음이기 때문이다. 본성의 리가 '나'의 확고한 바탕이 되어 일상의 일에 접하면 그 일을 그 일의 리에 맞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비로소 주인(사유하고 행위하는 주체로서의 '나')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미발의 본성(理)을 '나'의 바탕과 근거로 삼아서 미발의 마음이 체험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나'(도덕적 자아)로서 보존하고 길러야 하는 것(존양)이 중화신설이 제시한 수양공부의 요체다. 비록 미발의 마음을 보존하고 함양함으로써 도덕적 의지와 주체('나')가 확고히 정립되다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이발의 성찰(인륜관계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존양이 미발의 본성을 함양하여 도덕적 주체를 확립하는 것이라면 성찰은 이발의 마음에서 이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여 미발의 본성에 부여된 이치의 총체를 깨닫는 것이다.(<<송대 신유학에서 철학적 쟁점의 연구>>, 151-159쪽)
다. <仁說>
호남학파와 주자 간의 仁에 대한 이견에 관하여 박로홍은 이것이 정이·정호의 인에 대한 이해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첫째, 心性情의 혼일관(호남학파는 심성을 불분하고 상일층차에 집착하여 心爲理一만을 강조함)과 분해관(주자는 이기 심성을 형이상하로 나누고 체용의 관
p.279
계로 봄)의 차이; 둘째, 인의 포괄성(호남학파는 천명유행인 繼之者善에 치중 公에 의한 포괄성을 강조하여 同體에 강한 신념을 가짐)과 정체성(주자는 구체적 成物인 成之者性에 치중하여 生과 愛에 의한 全偏을 들어 同體의 이유를 밝힘); 셋째, 體仁의 방도에 있어서 호남학파는 二心說에 의거 주체로부터 직접 反身 逆覺體證에 의한 自得 自治를 구하고 주자는 一心說에 의거 漸窮法에 의한 至仁踐仁을 말하였다고 주장한다.(<<주회암의 수양론에 관한 연구>>, 127쪽)
손영식에 따르면, 주자는 사량좌의 지각설이 인이 사랑이라는 것을 잊었다고 한다면 양시는 인이 사랑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모든 것이 나와 한 몸이라고 하는 조장함의 잘못을 범하였음을 비판했다고 한다. 동시에 주자는 인을 사랑의 이치이며 마음의 능력(心之德)이라고 한 정의에 입각하여 소위 '사랑의 이치'는 전체 덕목 중의 하나의 덕목으로서 인을 말한 것으로 '부분으로서 말한 인(편언지인)'이며, '마음이 덕'이란 모든 덕목을 포괄한 덕목으로서 인을 규정한 것으로 '포괄하여 말한 인(전언지인)'임을 밝혔다고 적고 있다. 사람이 모여사는 사회 속에서 개체간의 연결고리가 바로 사랑이라고 해석하면서 모든 개인이 인을 발휘하여 사랑하고 그 마음의 덕을 발휘하면 조화로운 하나(사회)가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송대 신유학에서 철학적 쟁점의 연구>>, 168-171쪽) 이 점은 인의 윤리학적 함의에 특히 주목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우주본체론적 차원의 의미를 살린 유인희는 <인설>을 근거로하여 주자학을 "生理哲學"으로 이름하고 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존재자 가운데 생생기와 생생리를 체인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며 인간은 그것을 마음에서 체득해낼 수 있다. 그 본체가 가장 잘 나타난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주자는 生理와 生心이 곧 仁임을 체인해 냄으로써 명도설의 미진한 것을 일소하여 주었다."(<정주의 인성론>, <<동양철학의 본체론과 인성론>>, 연세대학교출판부, 1982, 261-262쪽)
한형조의 경우는 주자가 <인설>을 통하여 만물의 자연적 "조직의 패턴으로서의 리"를 보편적 사랑으로 형이상학화함으로써, 사회성과 윤리성을 인간 뿐만 아니라 동식물과 무기물을 포괄하는 전우주의 보편적 특성이자 본질로 파악함으로써 명백히 경험적 자연학으로부터 일탈해버리고 말았다고 평한다. 주자는 리를 자연의 조직(패턴)이면서 자연의 이념으로 승격시킴으로써, 즉 윤리적 이념으로서의 리와 과학적 조직(패턴)으로서의 리가
p.280
동반함으로써 사상사의 분분한 갈등과 파탄의 고리를 마련했다고 결론짓는다.(<<주희에서 정약용에로의 철학적 사유의 전환>>, 53-58쪽)
양승무는 모종삼의 관점을 수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주자는 정이의 분석적설법을 계승하여 인체를 단지 성이요 리라고 여겨 초월적인 의미에서 소이연의 근거일 뿐 인간의 진정한 행위주체로서 도덕행위의 실천주체가 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즉 인은 구체적인고 활발한 생생지인이 아니고 다만 정태적인 實有이어서 인간의 도덕행위에 대한 주체로서 인간의 생명활동에 대해서도 마침내 무력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결국 주자의 인에 대한 이해는 공자나 맹자의 인과 부합하지도 않고 정호를 이은 사량좌나 양시의 설에 대해서도 계합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주자의 인설에 대한 재조명>, 172-173쪽)
② 心의 分屬과 주체성
양승무는 주자에게 있어서 기지령인 심은 형기에 따라 시종이 있는 실연적 심이고 경험적 심이므로 심리학적인 의미의 심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도덕적 초월적인 심은 아니라고 본다.(<주자의 인설에 대한 재조명>, 172-173쪽) 이는 주자학에 있어서는 심이 도덕적 주체성을 갖지 못함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유인희는 주자에게 있어서 심은 기요 성은 리이지만 이미 심이라고 할 때는 리와 기가 언제나 분리될 수 없듯이 이미 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심은 허명통철한 직각능력에 의해서 동정성정에 자존하여 성을 갖추고 보존할 수도 있으며 외물에 응접하여 움직이되 중절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고 하였다.(<정주의 인성론>, 258쪽, 219쪽 <<주자철학과 중국철학>> 219쪽) 최영찬도 인간은 리와 기로 구성된 실제존재이므로 심도 순수리인 본연지성이 기세계에 속하는 심 내에 타재되어 있으므로 논리적으로는 리와 기의 합성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성정을 통섭하고 있는 실제심은 원시유학에서 말하고 있는 도덕창생성을 갖는 주체성으로서의 심과 하등 차이가 없다고 본다.(<<주자철학에 있어서 공맹천인관의 승수와 전개>>, 167쪽, 111쪽)
김교빈은 이상의 관점들과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즉 이기론에서도 주체의 능동성은 기로 설명될 수밖에 없듯이 심 또한 기의 가장 맑은 상태로서 영각능력을 갖추었으므로 기의 입장에서 본다면 능동자이고 주체적으로 대상에 대해 움직여갈 수 있는 능력자라는 것이다.(<본체론과 심성론을 통해 본 주자의 격물치지 이해>, <<동양철학연구>>6집, 1985, 193-195쪽; 참고 홍원식 <<정주학의 거경궁리설 연구>>, 79-81쪽, 知의 주체로서의 心을 강조)
p.281
4) 수양론
유인희는 거경궁리를 합하여 "자각적 실천법"이라 이름하면서, "자각적이란 소이연지고를 궁구하는 격물법을 나타낸 것이며, 실천법이란 생생불이하는 본체를 함양하는 거경법을 나타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두가지는 상호 보완적이고 병진관계에 놓여있다고 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186쪽, 182-183쪽)
홍원식은... 치지에 앞서는 거경은 知의 주체에 대한 거경이고 치지에 뒤서는 거경은 行의 주체에 대한 거경의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정주학의 거경궁리설 연구>>, 141-142쪽)
김수청의 경우는 넓은 의미로 경을 해석하여 "경이란 본성의 이치를 체인 함양하여 감정의 발동이 절도에 딱맞도록 찰식 성찰하는 일"로서 거경함양(존심양성)과 격물궁리(격물치지)는 상호보완적이고 이 둘은 경공부의 양 축이라고 하였다.(<<주희의 경사상연구>>, 동아대박사학위논문, 1994, 서론1쪽, 169쪽)
① 居敬
유명종은... 주자의 경공부가 주돈이 혹은 양시 이통 일파의 主靜一邊과 호굉 장식 등의 主動派를 종합통일한 것이라고 한다. 이 경은 동정과 미발이발을 관통하는 수양원리이며, 함양 혹은 성찰에서 마음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원리라고 하였다.(<<송명철학>>, 187쪽) 손영식은 미발의 본성을 길러서 확고하게 정립하며, 이 확고한 바탕 위에서 일상의 일에 대처하는 것이 거경함양이라고 보고 결국 도덕적인 의지, 즉 선의지를 함양하는 것으로 본다. 즉 자신의 선의지를 강화시켜 도덕적 주체를 확립하는 것이다.(<<송대 신유가에서 철학적 쟁점의 연구>>, 156쪽, 210쪽) 한형조는 방만한 기질 활동 속에서 균형(이념)을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어지럼
p.282
증을 가라앉히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정신을 흩트리지 않고 깨어있음(常惺惺)'의 거경이므로 경은 심리학적 注視와 관련된다고 논한다.(<<주희에서 정약용에로의 철학적 사유의 전환>>, 74쪽)
홍원식은 주자 거경설의 한계점을 지적하였는데, 주자가 정이의 '일이 없을 때(무사시)'의 거경공부와 '일이 있을 때(유사시)'의 集義 공부를 심화 발전시킨 것 같지만 사실은 집의 공부가 부차적으로 처리됨으로써 거경공부는 오히려 주정적 편향을 띠게 되었다고 평한다. 경이 미발 무사시와 이발 유사시에 두루 미치는 것이므로 노장이나 불교 및 선유의 主靜的 공부설의 특성을 극복하였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動을 중시한 동의 철학으로는 볼 수 없다고 보고 있다.(<<정주학의 거경궁리설 연구>>, 132쪽-135쪽)
② 窮理
김교빈은 격물이 단적으로 존재를 규명하는 문제가 아니라 시비를 가리는 가치판단의 문제이며, 여기서의 시비는 지식적 범주가 아니라 실천으로 연결되므로 사물의 존재론적 이해보다는 궁극적으로 도덕적 규범적 이해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본체론과 심성론을 통해 본 주자의 격물치지 이해>, 176-177쪽) 손영식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자신의 앎을 넓히는 것(격물치지)"은 유교적인 세계관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단정한다.(<<송대 신유학에서 철학적 쟁점의 연구>>, 210-211쪽) 윤천근의 경우는 주자의 격물이 일차적으로 사물에 대한 대상적 파악을 의미하므로 여기서 확보되는 객관성은 과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초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주자 격물의 궁극적 목적은 그러한 객관성을 통과해서 관념적 도덕적 지식에 정착해야 하기 때문에 주자의 지식론은 과학이 되게 할 수는 없는 한계를 노출시켰다고 평한다.(<'지식'에 대한 유학적 논의>, <<논쟁으로 보는 중국철학>>, 예문서원, 1994, 293쪽) ...
배종호는 "... 리의 소재를 主와 賓의 양쪽에 다 있는 것으로 보고, 吾心의 理와 外物의 理의 대응으로 말미암아 인식(知)이 이루어지는 것(致)을 주장하였다"고 적고 있다.(<동양 본체론 서설>, <<동양철학의 본체론과 인성론>>, 10쪽) 박로홍도 천리는 물에도 있고 심에도 있으므로 物之天理는 곧 心之天理인 것으로 반드시 격물궁리의 공부에 의하여 찬연히 드러나게 됨으로써 物之天理를 주관에 내재화시킬 수
p.283
있다고 보았다. 격물은 결국 이 마음을 밝히는 것이라고 한다.(<<주회암의 수양론에 관한 연구>>, 67쪽)
김교빈에 따르면, 리에는 특수의 리와 보편의 리 양 측면이 있고 그 보편은 특수 안에 존재하는데, 특수한 개물의 리는 경험상의 분별지인 識別知를 통해 드러나고 보편적 리는 논리적 추론에 의한 無分別知에 의해 파악된다. 이렇게 격물치지는 분별지와 무분별지를 겸하는 것이다.(<본체론과 심성론을 통해 본 주자의 격물치지 이해>, 176-177쪽) 이동희는 주객을 구분하는 사람의 識別反省知에 의해 일사일물의 도리 리법 조리를 구명하는 주지주의적 성격을 띠지만 그 궁극에 이르면 오각지의 세계에서는 심지와 물리, 즉 주객의 대립은 완전히 융석되어 합일의 경지가 되어 절대자유의 세계가 나타난다고 설명한다.(<주자의 대학장구에 대한 연구>, <<동양철학연구>>2집, 122-123쪽)
유인희는 격물법은 관찰법이요 분석적인 방법이고, 현상의 수많은 조리를 관통하는 一理(본체)에 대한 체오인 활연관통은 직각법이요 종합적이라고 하였다. 致知는 다름아닌 一理를 體證한 心知가 知明의 상태로 化한 것이라고 한다.(<<주자철학과 중국철학>> 160-173쪽) 홍원식은 인식의 질적 전환-순수한 객관지에서 주관지와 실천지에로의 전환-을 주목하였는데, 즉 즉물을 통하여 사물의 기에 대한 인식에 이르고 나아가 사물의 리에 대한 인식을 거쳐 리일의 리를 깨닫는 활연관통을 하게 된다고 보았다.(<<정주학의 거경궁리설 연구>>, 94-102쪽) 한형조의 경우는 격물이 균형(이념)의 구체적 방법과 양식을 아는 것이고, 이를 통해 기질을 어떻게 올바르게 순화시켜야 할까를 알며 그 바탕 위에서 올바른 정신과 신체의 표현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주희에서 정약용에로의 철학적 사유의 전환>>, 74쪽) 김교빈은 지행의 차원에서 활연관통을 논한다. 즉 활연관통의 의미로는 첫째, 기질지성을 지닌 사람이 개체의 특수성을 극복하고 보편을 인식하는 것; 둘째, 의식에서 내면으로의 회귀이니 이발의 상태에서 미발의 본래성으로 돌아간 것, 즉 인식대상과 인식주체라는 주객의 대립에서 주체로 회귀하여 그 대립을 해소시키는 것 등이 있다고 말한다.(<본체론과 심성론을 통해 본 주자의 격물치지 이해>, 176-177쪽)
P案..연구사를 연구하는 이유는 1. 일단은 정리하기 위해서고, 2. 다음은 평가하기 위해서이다. 정리하고 평가하는 것은 1. 새로운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이고, 2. 기존이 연구 방향이 옳다고 판단되었을 경우에는 미진한 부분을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기 위해서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