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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30일 토요일

<리기선후>, 진래, 이종란 외 옮김, 주희의 철학, 예문서원, 2002.

리기선후 / 주희의 철학 - 진래 致知
2008/07/1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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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래, 이종란 외 옮김, <리기선후>, <<주희의 철학>>, 예문서원, 2002.
리기선후
p. 28
19세에 진사가 되어 71세로 죽을 때까지, 주희는 리기선후를 포함하여 자신의 사상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발전시켜 왔다... 주희가 리기 관계를 논할 때 종종 다른 문제, 다른 각도에서 출발하였다... 주희 학설의 이러한 객관적 정황을 고려해 볼 때, 주희의 사상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시(역사적 변화)·공(다양한 단계와 다양한 각도)의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고찰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1. <<태극해의>>에 나타난 리기 관계
p.30
진정한 의미의 본체론에서 리기 관계를 처음 밝힌 것은 <<태극해의>>이다... <<태극해의>>의 초고는 건도 경인년(1170) 주희 나이 41세 때에 씌여졌고... 계사년(1173)에 기본적인 원고가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태극해의>>는 주희가 주돈이의 <태극도>와 <태극도설>을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 
p.31
주희는 <<태극도설해>>에서 태극을 '형이상의 도'요, '동정음양의 리'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가 리로써 태극의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
p.32
주희는 태극을 리로, 음양을 기로 삼았기 때문에 리기 관계의 문제를 야기하였다... <<태극해의>>에 나타난 주요 사상은 체용이라는 각도에 따라 리기 관계를 이해한 본체론이다.
주희는 <태극도해>에서... 리는 본체이며 음양동정과 존재의 근거이고, 기의 동정은 리의 외재화 과정이요 표현임... 리는 기 속에 있으면서 기와 떨어질 수 없으나, 서로 섞일 수도 없는 본체인 것이다... '태극은 본체이고, 동정은 작용'... <<태극해의>>를 완성할 때에 이 구절을 수정하였으나, 태극이 본체라는 생각은 바꾸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주희가 당시 체용의 관점에서 태극과 음양동정의 관계를 해석하는 데 주된 관심을 보였음을 말해준다. 이는 실제로 위진 이래 중국 철학 및 불교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p.33
차지하던 유심주의 본체론의 관점이기도 하다.
철학의 기본 문제는 무엇이 제1성질인지를 해결하는 것이지,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이라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근본이고 무엇이 어떤 것의 형식을 결정하느냐로 제1성질과 제2성질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본체론'의 특징이다. ...
본체가 태극이고 음양동정은 리가 그것을 빌려서 표현하는 외재 과정이라는 말이다. 리와 기 모두 시간적으로 시작과 끝이 없고, 시종 섞이지도 분리되지도 않는다. 주희의 이 사상은 정이의 '체용일원'과 '음양무시'의 개념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상술한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주희는 리와 기 사이에는 선후가 없다고 보았다. ...
p.34
근거와 현상 세계는 체와 용, 본연지묘와 소승지기
p.35
의 관계이지, 결코 둘 사이에 선후 관계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
당시에 주희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인성론과 본체론의 결합에 관한 문제였다. ...
주희가 <<태극해의>>에서 해결하고자 한 문제는 인성의 본체론적 기원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태극해의>>에서 음양동정의 유행 과정 속에서 태극과 음양은 '서로 떨어질 수도 섞일 수도 없음'을 밝혔다. 즉 음양의 기가 구체 사물을 구성한 후에도 태극은 여전히 음양 속에서 변화를 겪으며 사람과 사물의 성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무극의 眞(理)과 음양오행의 精(氣)이 결합하여 이루어지지 않은 사물이 없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인성이라는 말에는 위로부터 품부받은 천지의 理(太極)라는 뜻뿐만 아니라, 태극의 혼연한 전체가 보편적으로 모든 사물에 존재한다는 뜻이 동시에 담겨 있다. 이는 주희가 '성즉리'를 본체론적으로 새롭게 논증한 것이다.
p.36
이상에서 본 것처럼 이 시기 주희의 사상은 이른바 '리본체론'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으며, 이 설에 입각하여 리기선후 문제를 고찰할 때에만 리와 기에는 선후가 없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주희의 학설을 이원론으로 볼 수는 없으며, 유물론이라고 하는 것은 더더구나 적합하지 않다.
P案.. 주희 40대 초반의 이기에 관한 학설은 '리본체론'으로서, 리본체론이라 함은 리를 제1성,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리는 본체이며 기의 동정은 리의 외재화 과정이며, 이것은 리를 체로 기를 리의 용으로 파악한 것이다.
리와 기가 떨어져 있을 수 없다는 정리로부터 사람에게도 리가 부여되어 있다는 '성즉리'설이 합리화된다.
2. 태극에 대한 논변
p.40
순희 15년 무신년(1188), 당시 59세였던 주희는 나라의 명을 받고 5월말쯤 대궐에 들어갔다가 6월 중순에 수도 임안을 떠나 강서 옥산으로 돌아왔는데, 이 때 육구연의 편지를 받았다. ...
p.42
음양이 형이상에 속하느냐 아니면 형이하에 속하는냐 하는 문제를 놓고 음양을 다르게 이해한 데서 육구연과 주희의 주장이 갈린다. 육구연은 모든 대립 성질의 범주와 추상을 개괄하여 형이상의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주희는 정이의 설에 입각하여 '일음일양'
p.43
을 음양의 기가 한번 가고 한번 오는 것으로 이해하고, '일음일양지위도'와 '형이상자위지도, 형이하자위지기'를 대응시킴으로써 음양을 기로 보는 리기 철학을 형성하였다.  ...
육구연과 더불어 태극을 논하는 때에 이르러서는 태극이 음양 중에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음양의 밖에도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주희가 말한 무극이 곧 태극이요 태극에는 리가 있다. 리는 사물이 없던 때에도 존재하였고 사물이 생긴 후에도 있지 않은 적이
p.44
없으며, 음양의 밖에 있으면서 음양 중에서 행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 이것은 주희 자신이 리기선후설로써 주돈이를 해석한 것이다"(<<송원학안>> 권20)라고 한 황종희의 말 그대로이다. 주희의 이러한 사상이 바로 "리가 기에 앞서 있다"(理在氣先)는 것이다. ...
리가 기에 앞선다는 사상을 형성하게 된 시기를 논하려면... <<역하계몽>>을 반드시 살피고 넘어가야 한다. 순희 13년 병오년(1186), 주희 나이 57세 때에 완성된 <<역학계몽>>은 초학자들을 대상으로 주역상수를 설명한 책이다. ...
p.45
주희는 소옹의 加一倍法적 筮法說을 보충하여 흡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석상에 있어서도 <태극도설>을 통일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즉 "상수가 형성되기 전에 리는 이미 갖추어져 있다", "양의가 나뉘기 전에 태극은 혼연히 존재해 있었고, 양의·사상·육십사괘의 이치가 이미 그 속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태극에서 양의가 나뉘어졌다" 등과 같이 상수 형식으로 표현된 말과, "사물이 생기기 전이나 생긴 후에도 있지 않음이 없었다", "음양의 밖에도 있고, 음양의 속에도 없었던 적이 없다", "도는 처음이 없는 것으로서 실제로는 만물의 근거가 된다"는 말은 사상적
p.46
으로 완전히 일치한다. 이렇게 주희의 상수 이론은 천지·음양·태극의 운행과 변화의 과정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 ...
p.47
상수 역학 사상은 철학 중에서도 우주발생론에 속한다. 소옹이 "괘를 그리기 전에 원래 역이 있었다"고 한 말은 천지 만물이 있기 이전에 이미 우주 원리가 존재해 있었고 태극으로부터 일체 사물이 생겨났다는 것을 뜻한다. "리가 기에 앞서 있다"는 주희 사상은 초년의 '본체론' 사상을 바탕으로 상수학의 우주론을 수용하여 한층 발전시킨 것으로 역학의 상수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만년에 이르러 주희는 다시 논리적으로 리가 기에 앞선다는 선재설을 언급함으로써 우주론의 여러 가지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피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주희가 죽고 난 후에 그의 문인들은 리기선후 사상에 모호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P案.. 주희 50대후반 60대초반의 이기론은, 육구연과의 태극논변과 상수역학의 영향으로 형성되었다. 육구연과의 논변을 통하여 리가 기에 앞선다는 리선기후설을 제창하였으며, 상수역학을 통해 리가 기를 낳는다는 생성론, 발생론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이 시기의 리선기후란 리로부터 일체 사물이 생겨났다는 것을 뜻한다.
3. 리선기후
p.49
주희의 사상에 입각하여 본질상에서 말하면 태극이 천지에 앞서 있으며, 현존하는 세계의 측면에서 말하면 태극은 천지 만물 가운데 있다. ...
p.52
리기에 선후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본원론인가 구성론인가에 따라 각기 다른 해답을 갖게 된다. ...
p.53
본원상에서 주희는 '리가 기에 앞서 있음'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구성상으로는 리가 기에 앞서 있다고 하지 않고 '리기에는 선후가 없다'고 강조하였다. 만약 본원에 대한 논의를 구성에 대한 논의로 보고, 또 반대로 구성에 대한 논의를 본원에 대한 논의로 보면서 주희 철학을 시종일관 '리기무선후의 이원론'이라고 단정지어 말한다면 주희 사상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틀림없이 혼란에 빠지게 되고 만다. ...
p.54
구성상으로는 리기가 한 곳에 있으므로 나뉠 수 없지만, 리가 제1성이라는 각도에서는 '리가 기에 앞서 있다', '리가 사물에 앞서 있다'고 설명된다. ...
p.55
이상의 서술은 주희의 '리선기후' 사상이 한 시기에 크게 발전하였음을 보인 것이다. 초년의 본체론에서 나중에 우주론을 흡수하는 데 이른 것은 이론 사유 면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또 모든 철학적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론상으로 '리가 기에 선재한다'는 견해를 내는 데는 인식적 기초가 요구되는데, 그것은 일정한 철학 문제 처리에 대한 결과이며 이 문제는 리기 관계 속에 포함된 일반과 개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한 종류의 사물의 '리'는 그 사물의 보편적 본질 또는 법칙이 되는데, 그 리는 한 종류 사물 가운데 어떤 하나의 개별 사물이 사사로이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며 개별 사물의 발생과 소멸로 인해 전이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미 있었던 한 종류의 사물의 리를 그런 종류 가운데 나중에 만들어진 사물에 대해 '리선물후'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법칙이 일반성을 가
p.56
지고 있다는 것을 표명한 것이다.
P案.. 발생론적 입장의 리선기후설에서도, 본원상에서 논하는 것인가 구성상에서 논하는 것인가를 구별해야 한다. 본원상에서는 발생론적 입장을 견지하므로 당연 리선기후이며, 구성상에서 논할 때는 리기가 나뉠 수 없으므로 리기무선후라고 말해야 한다.
4. 만년정론
p.57
'리의 선재를 미루어 말하는 방식'은... 주희 만년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p.58
주희의 이런 설명을 살펴보면 첫째, 리와 기는 실제상에서는 선후를 말할 수 없다. 둘째,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올라가거나 그 소종래를 추론하면 리가 기에 선재한다고 할 수 있다... 풍우란은 그의 저서 <<중국철학사>>에서 이런 사상을 개괄하여 '논리적 선재'라고 하였는데 적합한 표현이다. 여기서 말하는 논리란 흔히 말하는 형식 논리가 아니라 이론상의 관계를 넓은 의미로 가리킨 것이다. 이미 실제적으로 리와 기에 선후가 없는데 어떤 것이 논리적으로 그것들의 선후를 관계짓는가? ...
리가 기에 선재한다는 것은 오늘이나 내일 같은 시간적 선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철학상에서 어떤 것이 제1성이 됨을 가리킨다. 주희는 그의 논리를 풀어서 말하기를 "만일 산하 대지가 모두 무
p.59
너져도 결국 리는 그 속에 있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설령 일체의 물질이 모두 소멸된다 해도 리는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즉 기는 생멸할 수 있으나 리는 형이상의 것으로서 생멸이 없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리는 물질이 소멸하는 데 따라 함께 소멸하는 것이 아니며, 마땅히 물질이 아직 생산되지 않았을 때도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질이 소멸하고 산하 대지가 모두 무너진다는 데서 '만일'이란 논리적 가설일 뿐이라는 것이다. 주희는 물질이 소멸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인정하였지만 실제로 물질이 철저하게 소멸된다고 인식한 것은 아니었다. ...
초년기에는 주희가 리선기후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동정무단', '음양무시'와 모순되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리가 기에 선재한다"고 주장하면서부터 '동정무단', '음양무시'와 논리적으로 충돌하게 되었다. ...
p.60
리가 기에 앞서 있다는 설과 음양무시의 개념이 모순이라는 것을 의식하였던 것... 이는 주희가 만년에 이르러 논리적 선재설로 향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주희는 리와 기에 시간적인 선후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양자간에 오늘이나 내일과 같은 시간적 개념과는 구별되는 선후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역시 선후가 있다", "요약하면 역시 먼저 리가 있다" 등과 같은 말은 시간적인 선후 관계를 나타낸 것이 아니다. 즉 이 둘 사이에 시간적인 선후는 없지만 그 지위가 나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른바 선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양자간에 선차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의 차별을 두기 위하여 한 말이다. 이로써 볼 때 논리적 선재설은 리로써 제1성을 삼은 정치한 유심주의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p.62
"그 생기는 것을 논하면 함께 생기는 것이고 태극은 음양 속에서 그대로 존재한다. 단지 그 순서를 말하면 오직 실제의 리가 있어야 비로소 음양이 있다"고 한 데서의 '단지 그 순서를 말하자면'이라는 말은 이론상·논리상으로 말한 것이지 결코 사실상의 순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 ...
P案.. 주희의 만년정론 역시 본원상에서 논할 때와 구성상에서 논할 때를 구분하여야 한다. 본원상에서 논할 때는 '리선기후'이다. 그런데 이 리선기후는 발생론적 리선기후, 즉 리에서 만물이 파생한다는 의미는 리선기후가 아니다. 이것은 리가 선차적인 것이며, 본질적인 것이며, 제1성이라는 의미의 리선기후이다. 따라서 이 때의 선후는 시간적 선후가 아니라 지위가 동등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주희 40대의 리본체론적 입장을 다시 견지하는 데 이르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구성상에서는 뭐.. 리기무선후이다.

횡적으로 볼 때 주희의 리기에 대해서는 선후로 토론할 것이 아니라 본원과 구성의 두 문제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
p.63
종적으로 볼 때 주희의 리기선후 사상은 일대의 발전 과정을 거쳤다. 초년기에 주희는 리가 근본이라는 논의에서 출발하여 리기무선후를 주장하였다. 리가 기에 선재한다는 사상은 남강에 머문 후 진량과의 논변을 거쳐 육구연과의 태극 논변에 이르게 되면서 차츰 형성되어 갔다. 리가 기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그 때의 '리선기후' 사상의 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주희 만년의 정론은 논리적 선재설이며 논리적 선재설은 다시 높은 수준의 본체론으로 돌아오는 사상이었으므로, 이것은 곧 부정의 부정이다... 그것은 본질상 리의 기에 대한 제일성의 지위를 다른 형식으로 확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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