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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0일 금요일

덕치, 인치, 법치 노자, 공자, 한비자의 정치 사상



  덕치, 인치, 법치 노자, 공자, 한비자의 정치 사상 
  ▶ 철학의 부재시대에서 바라 본 우리몸에 맞는 정치철학찾기
  저자/역자신동준 저
  발간일2003년 8월 14일
  가격20,000 원 →회원할인가 18,000 원
  분류연구총서 | 도가/제자철학
  포인트900점


철학이 없어진 현재, 우리 몸에 맞는 정치철학은 없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답하면서 동양의 철학을 정치철학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리의 사상 속에서 발견한 우리 몸에 맞는 정치철학이 깊게 담겨 있는 책이다. 

판형:신국판 | 쪽수:488쪽 

정치철학의 부재 시대, 우리 몸에 맞는 우리의 정치철학은 없는가 ?

동양의 철학을 정치사상으로 해석한 책이 나왔다. {덕치, 인치, 법치} 노자와 공자, 한비자의 사상을 정치사상의 측면에서 접근한 이 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동양의 전통적 정치사상에 대한 단편적인 언급들은 있었지만 이 책처럼 전격적으로 정치사상에 관한 부분만을 다룬 경우는 처음이다.
일반적으로 동양의 전통사상은 현실성이 결여된 형이상학적 담론으로 이해되어 왔다. 법가의 사상이야 원래 현실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겠지만 유가와 도가, 특히 도가의 사상은 현실을 떠난 고원한 담론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책은 동양의 전통사상들이 형이상학적 담론으로 이해되는 현실을 거부한다. 이 책에서는 노자와 공자, 한비자를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정치의 실현을 위해 진력했던 정치사상가로 이해하고 그들의 철학을 현실과는 결코 유리될 수 없는 입세간의 정치사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흔히 정치학이라고 하면 근대 이후의 서양 이론을 떠올리곤 한다. 실제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전통사상 가운데 정치학 이론으로 연구된 분야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우리의 정치는 구미 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고 있고, 정치학 이론 역시 서양의 이론들 일색이다. 그러나 맞지 않은 옷을 몸에 걸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정치 현실은 엉거주춤하다. 현재 채택하고 있는 우리 정치 체제의 뿌리가 얕은 까닭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일제치하의 고통, 분단과 전쟁, 연이은 독재를 겪으며 수많은 멍울을 감추고 있다. 그 상처의 일차적인 원인은 무엇보다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확장과 침략에 있을 것이다. 아편전쟁 이후 동아시아 3국에 몰아닥친 제국주의의 광풍은 전통적인 삶의 조건들을 빠르게 변화시켰는데, 그 과정은 매우 폭력적이었다. 정치 분야에 있어서는 기존의 제왕정이 공화정으로 바뀌었지만 짧은 순간에 서양의 정치 체제가 정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뿌리가 얕은 정치 체제가 그것에 의지하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뒤흔들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서양의 정치철학은 이미 그 한계를 드러내었다. 현실 정치의 암울함을 정치 담당자들의 사람됨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폐해가 너무 오래되고 심각하다.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동양의 전통사상에 뿌리를 둔 '통치학'을 역설한다. 저자가 역설하는 통치학은 도가, 유가, 법가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는 새로운 정치사상이다. 이들 사상 가운데 저자는 특히 노자의 사상에 주목한다. 노자는 인간 사회에 발생하는 모든 폐단의 원인을 '과잉된 인위'에서 찾고 절욕과 절제를 주장하였다. 비록 2천 년 이상의 시간상의 갭이 있지만, 과잉된 인위로 인해 갈등과 분열이 만연한 지금 노자의 사상은 한계에 봉착한 서양 정치사상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상가들의 면모는 다양하다. 저자는 우선 동양 정치사상의 출발점을 관중으로 잡고, 그를 기준으로 도가와 유가, 법가의 정치사상을 분석하고 있다. 도가의 사상가는 노자에 한정되는데, 노자와 더불어 도가 사상의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장자의 경우는 출세간적 성향이 너무나 강해 정치사상 분야에서는 언급할 만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가 사상가는 공자를 중심으로 맹자와 순자를 병행해서 살펴보고 있다. 맹자와 순자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공자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정치사상적 성과들을 일구어냈기 때문이다. 이밖에 법가의 사상가는 자료상의 제약으로 인해 한비자만을 다루고 다른 사상가들은 거의 언급하지 못하였다.

공화정이냐 제왕정이냐, 민주주의냐 사회주의냐, 이런 것들만이 정치학의 전부는 아니다. 이 책은 도가, 유가, 법가의 정치사상을 치본론과 치도론, 치술론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있다. 치본론은 통치의 본질에 관한 논의라 할 수 있고, 치도론과 치술론은 각각 통치목적론과 통치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기준 속에서 저자는 전통사상에 대한 정치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저자의 시도 가운데 특징적인 면을 든다면 무엇보다도 이것이 정치학적 해석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공자의 적통을 맹자가 아닌 순자에게로 연결시키고, 노자의 사상은 장자에 이르러 결정적으로 왜곡되었다고 단정한다. 또한 관중과 한비자를 전통사상의 핵심 영역 속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러한 해석들이 가능한 것은 그것이 모두 철학적 접근이 아닌 정치학적 접근이기 때문이다.



신동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정치학)를 취득하였다.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일본 東京大學 東洋文化硏究所의 객원연구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대표 저술로는 『통치보감』,『관중과 제환공』,『치도와 망도』,『역사대장정』,『난세를 평정하는 중국 통치학』등이 있다.

춘추전국 묵가/병가/법가사상과 PR철학

춘추전국 묵가/병가/법가사상과 PR철학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논문
관리자  |  admin@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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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11.23  21: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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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500여년 전 중국은 춘추 시대다. 춘추시대 이후 진나라의 중국 통일 이전까지 전국시대가 이어진다. 과도기적 춘추전국이라는 역사에서 제자백가라 일컬어지는 사상들이 생겨나게 됐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상들 중 공중관계 활동인 PR과 가장 관련이 깊은 사상은 원시유교사상과 원시도교사상이다. 그 당시 인도에서 생긴 원시불교사상도 PR철학과 관련이 깊다. 아울러 춘추전국시대 묵가, 병가, 법가 사상도 PR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지난달 19일 한국PR학회가 주최한 추계 정기학술대회에서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가 발표한 ‘춘추전국시대 묵가·병가·법가 사상과 PR철학’이 그같은 내용을 담아 눈길을 끌었다. 박 교수의 논문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주>

■ PR에 의미를 주는 원시 동양사상
논어 속 공자님 말씀을 살펴 보면 원시 유교 사상은 순리적이며, 인간적이고, 현실에 충실한 사상이었다. 그러한 원시 유교 사상에 맞게 현대 PR은 유연·관계·가치의 철학을 가진다. 이제 현대 PR은 이윤 추구를 위한 마케팅 PR(MPR)을 넘어 가치 추구의 브랜딩 PR(BPR)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또한 조직과 공중의 관계를 넘어 조직과 생태와의 관계를 배려하면서 공동체 내의 조직과 공중이라는 공동체 PR의 철학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대 PR은 공자님 말씀이었던 순리적 인간적 충실한 모습을 제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그래서 순리적 유연성, 인간적 관계성, 충실한 가치에 따른 현대 PR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노자 도덕경에 실린 도의 철학 역시 주술과 거리가 먼 패러다임 전환의 커다란 철학이다. 노자 사상의 관점에서 PR이란 이기기보다 감싸는 여성성의 페미니즘 PR이며, 공중으로부터 이윤을 얻기보다 공중에게 가치를 베푸는 PR이며, 차이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PR이며, 조직과 공중 간의 관계만이 아닌 생태적 공동체를 실현하려는 PR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PR이란 조직과 공중 간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넘는 그물망 커뮤니케이션으로 하나의 생태적 공동체 안에서 조직과 공중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조직이 공중에게 가치를 주며 서로를 감싸는 관계 활동이다.
불교의 초기 경전인 아함경에서 알 수 있는 원시 불교사상을 살피면 불교는 연기(緣起)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매우 현실적인 세계관의 철학이다. 이러한 원시불교 철학의 관점에서 PR은 공중관계 PR만이 아닌 생태관계 PR로서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공중관계 PR은 조직이 중심에서 환경을 이루는 다양한 공중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이 공중관계 PR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다. 하지만 생태관계 PR에서 조직은 중심에 있지 않고 생태계 안의 인간이 그렇듯 그물망 속의 한 점에 불과하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그물망 커뮤니케이션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은 연기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원시 불교 사상과 생태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현대 PR 철학이 만나는 전환점에서 PR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면, “PR은 호의적 공중 관계를 맺기 위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다”라기보다 “PR은 지속적 생태 관계를 맺어가는 그물망 커뮤니케이션”이다.
■ 원시 묵가 사상과 PR 철학
원시유교사상, 원시도교사상과 마찬가지로 약 2,500여년 전에 생긴 원시묵가사상의 핵심을 세 가지 한자로 압축요약한다면 실(實), 겸(兼), 천(天)이다. 
● 실(實)의 사상 : 묵가사상의 기반은 실용주의, 또는 현실주의 철학이다. 그 사상의 가장 근본적인 요체는 바로 뜬 구름 잡는 이상을 배격하는 실의 사상에 있다. 묵자의 문헌에서 이러한 실의 사상을 가장 실감나게 잘 알 수 있는 부분은 절용(節用)편이다. 절용이란 비용의 절감을 뜻한다. 
● 겸(兼)의 사상 : 겸(兼)이란 더불어·함께의 뜻을 가지고 있다. 겸애(兼愛)란 더불어 사랑한다는 뜻이다. 더불어 사랑하는 것은 자기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같이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은 바로 자기만 사랑하는데서 생긴다. 남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는 무지한데서 생긴다. 그렇게 자기만 사랑하고 남에 대해서는 아무 상관없이 무심한 것은 하나의 병이다. 싸이코패스라는 정신질환은 그러한 병의 결정판이다.
● 천(天)의 사상 : 여기서 하늘이란 천주교와 같이 신앙적인 대상이 아니라 철학적인 표상이다. 즉 하늘의 뜻에 따라 일을 추진하고 일이 성사되어야 현실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묵자 전편에 흐르는 이러한 하늘 중심의 사상은 천지(天志)편에 가장 직접적으로 나와 있다. 천지란 말 그대로 하늘의 뜻이다. 하늘의 뜻을 좇아 따르는 사람을 천자라 한다. 천자는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 그러한 하늘의 뜻은 강하고 큰 나라가 약하고 작은 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머리가 좋고 높은 사람이 아랫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다.
■ 원시 병가 사상과 PR 철학
손자병법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를 말하라고 하면 대개 ‘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고 하는데, 손자병법에는 이런 말이 없다. 손자는 이렇게 욕심스럽게 말하지 않고 다만 ‘知彼知己 白戰不殆’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손자는 전쟁을 미학(art of war)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쟁미학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즉 이기기 위한 전쟁의 기술을 제시한 사람이 아니라 이기게 되는 전쟁의 철학을 제시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손자병법을 다룬 해설서(권형안 2006, 유동환b 2005, 노태준 2009)에서 가장 감명깊은 구절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일 것이다. 
“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이런 고로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은 최선 중의 최선이 아니다. 전쟁하지 않고 적병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 중의 최선이다.)
경쟁자보다 한 수 위에 있어야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 공중관계 활동인 PR도 마찬가지다. 공중과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루어 가려면 경쟁자보다 한 수 위에서 고객에게 좋은 가치를 지속적으로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시시하게 쩨쩨하게 경쟁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승리하게 된다. 승리 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승리라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경쟁을 넘는 경쟁미학이다. 또한 마케팅의 미학이며, PR의 미학이기도 하다.
■ 원시 법가 사상과 PR 철학
법가 사상이란 순자처럼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보기 때문에 인치나 덕치가 아니라 철저한 법치에 의해 강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비자의 법치주의 사상 안에는 노자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가령 노자도덕경 63장에 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이라는 유명한 말이 나온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것에서 시작되고,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한비자는 이러한 문구를 비유해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千丈之堤, 以?蟻之穴潰 百尺之室 以突隙之烟焚 즉 천길의 강둑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지고 백척의 큰집도 굴뚝연기로 불탄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매사에 세심하고 치밀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법가 사상은 PR의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의 문제와 관련시킬 수 있다. 지금까지 원시유교나 원시도교, 원시불교 사상은 개념적으로 PR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에 도움은 되나, 그렇다면 PR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을 주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한비자의 법가 사상에 대해 나라를 움직이는 방법적 시스템이라고 할 때, 이러한 해석을 PR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R이 제대로 되려면 널리 알리는 홍보 시스템이 아니라 다양한 공중관계 시스템을 순리적으로 갖추는 일이 PR의 도(道)이고, 또한 PR의 법(法)이다. 다양한 공중관계 시스템이란 공중별 PR을 위한 시스템이다. 내부 직원이라는 공중과의 관계, 협력업체라는 공중과의 관계, 소비자라는 공중과의 관계, 투자자라는 공중과의 관계, 지역사회 주민이라는 공중과의 관계, 정부 공무원이라는 공중과의 관계, 네티즌이라는 공중과의 관계, 언론사 기자라는 공중과의 관계 등… 이러한 다양한 공중들과 지속적으로 호의적 관계를 이루어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PR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된다. 
결론적으로 사변화 이전의 원시 유교사상은 유연한 인간관계, 주술화 이전의 원시 도교사상은 물처럼 흐르는 순리, 신앙화 이전의 원시 불교사상은 세상만사 얽히고 설킨 연기의 철학이었다. 묵가 사상은 안을 채우는 충실, 병가 사상은 이기게 되는 결과, 법가 사상은 실제로 구현하는 방법의 철학이었다. 이러한 여섯 가지 동양사상의 키워드를 사용해 PR에 대해 종합적으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PR은 그물망 안에서 서로 緣起 되어진 공중들과 지속적 關係를 順理에 따라 이루어 가기 위해 먼저 속을 充實히 한 후 다양한 공중들과의 관계 方法을 마련하여 경쟁에서도 이기게 되는 結果를 가져오는 활동이다.”
■ PR 철학의 패러다임 전환
원시 유교사상 등 동양사상들은 PR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과 방법을 일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PR에 대한 지침을 열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널리 홍보하기보다 가까운 관계부터 맺어 가라.PR은 홍보와 전혀 다르다. 널리 알리는 홍보는 단지 노출을 많이 하도록 해 전달을 잘 하면 되지만, 공중관계인 PR은 더 복합적이며 입체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PR이 잘 되려면 멀리 있는 공중보다 가장 가까운 내부직원, 협력업체 등의 공중부터 좋은 관계를 맺어 가야 한다. PR은 외부로 알리는 활동이라기보다 내부에서부터 먼저 공감이 가도록 지속적으로 이루어 가는 활동이다.
2. 허상적 이미지를 꾸미기보다 실체적 밸류를 가꿔라.
PR에 대한 가장 커다란 오해는 이미지를 좋게 포장하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이미지란 실제와 상관없이 만들어질 수 있는 허상이기 쉽다. PR은 이미지를 겉으로 좋게 해 멋지게 꾸미며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안으로부터 내부의 가치를 충실히 가꾸어 가는 것이다.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라 밸류 빌딩인 셈이다. 이는 실속을 중시하는 묵가 사상과 같은 맥락이다. PR의 키워드는 이미지가 아닌 밸류이다.
3. 입소문을 내려 하지 말고 입소문이 나도록 하라.헛소문과 입소문은 다르다. 헛소문(rumor)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헛되게 퍼지는 것이라면 입소문(mouth to mouth)은 실제로 써 본 사람의 입을 통해 다른 사람의 귀로 들어가 차례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러한 입소문이란 인위적으로 내려고 해서 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나게 되는 것이다. 입소문이 나는 것은 실제로 써 본 사람이 좋은 가치를 통해 좋은 체험을 하고 좋은 관계를 가지고 싶을 때이다.
4. 쌍방향 공중관계보다 그물망 생태관계를 배려하라.
정통적인 PR의 관점에서 조직과 공중 간의 쌍방향 균형은 가장 이상적인 상태이다. 하지만 쌍방향 균형은 단지 조직과 공중 간의 관계일 뿐이다. 불교의 연기사상을 수용했을 때 PR은 더욱 포괄적이며 전반적인 관점을 취하게 된다. 조직과 공중은 모두 관계망인 그물망에 걸쳐 있는 하나의 점일 뿐이다. 그물망에 속해 있는 모든 점들은 고정된 하나의 중심 없이 모두 얽히고 설켜 있는 관계에 있다.
5. 튀는 독창성보다 끌리는 진정성을 가져라.독창성은 다른 것들과 차별화 되는 것이다. 차별화 되면 남들보다 튀게 된다. 광고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바로 이러한 크리에이티브이다. 하지만 광고에서건 광고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PR에서건 독창성(creativity)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진정성(authenticity)이다. 즉 진심이 느껴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정성이 있으면 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끌리게 된다. 진정성 없는 독창성은 사기에 불과하다.
6. 이기려는 목적이 아니라 이기게 되는 결과를 얻어라. PR은 승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맺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PR은 싸움(戰)에서 이기기 위한 꾀(略)인 전략이라는 말과 근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PR이 추구하는 것은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기게 되는 것이다. 이는 손자가 전쟁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이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레드오션이 아닌 블루오션에서도 결국 싸움의 경쟁에서 벗어나면 결과적으로 이기게 된다.
7. 이윤을 얻는 MPR보다 가치를 주는 BPR을 하라.기존의 CPR(Corporate PR)이 머릿속의 호의를 얻는 것이라면, 1991년에 새롭게 생긴 MPR(Marketing PR)은 마케팅 상의 실제적 이윤 얻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MPR은 기업의 목표에 부합되므로 보편적인 용어가 되었다. 하지만 PR은 이윤을 얻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가치를 주기 위한 활동이다. 여기서 가치란 브랜드를 뜻한다. 그래서 BPR(Branding PR)은 가치를 주는 PR이다. 
8. 거창한 뉴스꺼리보다 생생한 이야기꺼리를 찾아라.널리 알리는 홍보를 위해 언론홍보가 중요하다. 그래서 보도자료를 기자에게 제공하는 PR(Press Release)를 통해 대중매체에 공표(publicity)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거창한 뉴스거리의 보도자료를 기자에게 주려고 한다. 하지만 기자의 입장에서 그런 뉴스거리는 별 뉴스가치가 없을 수 있다. 대신에 의미있고 흥미있는 생생한 이야기꺼리가 담긴 보도자료는 끌리게 되어 보다 비중있는 기사로 다루어지기 쉽다.
9. 집중적 정보전달보다 지속적 상호작용에 힘써라.커뮤니케이션이란 쌍방적 의사소통을 뜻하는데, 일방적 의사전달로 이해하기 쉽다. 집중적으로 우리의 정보나 의사를 전달하면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집중성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그것도 단지 일시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PR이 추구하는 관계는 그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10. 다양한 공중관계 시스템을 실제로 갖춰라.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루어 가는 PR 마인드와 철학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이것이 구현되려면 다양한 공중들과의 관계 시스템이 방법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법가 사상이 치밀하며 세심한 시스템으로 나라를 운영해야 하는 방법과 같은 맥락이다. PR은 복잡하며 입체적이고 전반적인 영역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넓고 깊이 생각한 후에 마인드(Philosophy) 기반의 관계 시스템(method)이 작동되어야 한다.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신동준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신동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07월 20일 출간

책소개

손자를 벼린 조조의 성공 지략으로 나만의 ‘대물’을 꿈꿔라!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대여대취』.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 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인 저자 신동준이 조조의《손자약해》를 바탕으로 대여대취 정신을 ‘지금 당장’의 현리 가치로 쉽게 풀어냈다. 저자는 삼국시대 당시 천하통일 기반을 닦은 조조는 도가와 법가 사상에 입각해《손자병법》을 새롭게 편제하고 주석을 가했던 바, 《손자병법》은 반드시 조조 시각에서 접근해야 그 취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조조의 지혜가 담긴《손자병법》으로, 임기응변으로 주도권을 쥐는 방법부터 적과 나의 실력을 알고 싸우는 법, 지략이 뛰어난 자를 활용하는 법 등 ‘크게 주고 크게 얻는’ 비결들을 알려준다.

북소믈리에 한마디!

이 책은 제왕을 위시해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손자병법》의 내용을 조조의 시각으로 새롭게 재구성하여 담아낸 책이다. 다양한 전략과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비즈니스의 아이디어를 얻고, 사람을 깊이 읽는 안목을 얻고, 치국평천하의 방략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저자소개

저자 : 신동준

신동준저자 신동준은 학오學吾 신동준申東埈은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안목을 바탕으로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의 저서는 독자들에게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의 대가인 청명 임창순 선생 밑에서 사서삼경과 『춘추좌전』, 『조선왕조실록』 등의 고전을 배웠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조선일보》와 《한겨레》 등에서 10여 년 간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1994년에 다시 모교 박사과정에 들어가 동양정치사상을 전공했고, 이후 일본의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춘추전국시대 정치사상 비교연구』로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21세기정경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그는 서울대학교·고려대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에게 동양 3국의 역사문화와 정치사상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월간조선》, 《주간동아》, 《주간경향》, 《이코노믹리뷰》 등 다양한 매체에 꾸준히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조선일보》 주말판 경제섹션 〈위클리비즈〉의 인기 칼럼 ‘동양학 산책’을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후흑학』, 『사마천의 부자경제학』, 『조조 사람혁명』, 『팍스 시니카』, 『열국지 교양강의』, 『조선국왕 vs 중국황제』, 『인물로 읽는 중국 현대사』, 『삼국지, 군웅과 치도를 논하다』, 『춘추전국의 영웅들』(전3권), 『CEO의 삼국지』,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연산군을 위한 변명』, 역서 및 편저로는 『자치통감 삼국지』(전2권), 『춘추좌전』(전3권),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초한지』 등이 있다.

목차

서문 ­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005
서설 ­ 조조의 『손자약해』 014

제1장 인리제권因利制權 임기응변으로 주도권을 쥐어라 [대계大計]
국가 존망을 생각하라 · 025 | 전쟁 이치를 파악하라 · 027 | 천지운행을 이해하라 · 029 | 냉철히 비교 분석하라 · 032 | 적의 예상을 깨라 · 036 | 이길 조건을 갖춰라 · 040

제2장 병귀신속兵貴神速 패할 때도 속전속결로 끝내라 [작전作戰]
비용을 생각하라 · 047 | 오래 끌지 말라 · 051 | 현지서 조달하라 · 059 | 민폐를 줄여라 · 062 | 내 것으로 만들라 · 065 | 속전속결을 행하라 · 069

제3장 지피지기知彼知己 적과 나의 실력을 알고 싸워라 [모공謀攻]
싸우지 말고 이겨라 · 075 | 유혈전을 피하라 · 086 | 유연하게 생각하라 · 089 | 양장을 선발하라 · 093 | 맡겼으면 믿어라 · 095 | 자신부터 돌아보라 · 101

제4장 가승재적可勝在敵 승리는 적에게 달려 있다 [군형軍形]
공격처럼 수비하라 · 109 | 패하지 않는 싸움을 하라 · 112 | 내부를 바르게 하라 · 116 | 인재를 길러라 · 119

제5장 기정상생奇正相生 기병과 정병을 뒤섞어 운용하라 [병세兵勢]
기병을 활용하라 · 125 | 절도를 갖춰라 · 133 | 미끼로 유인하라 · 139 | 전세를 장악하라 · 142

제6장 피실격허避實擊虛 실한 곳을 피하고 허한 곳을 쳐라 [허실虛實]
고정된 상식을 깨라 · 149 | 재빨리 치고 빠져라 · 152 | 힘을 집중시켜라 · 156 | 자취를 감춰라 · 161

제7장 병이사립兵以詐立 용병은 적을 속이는데서 시작한다 [군쟁軍爭]
돌아가듯 직진하라 · 173 | 능력껏 짐을 져라 · 177 | 유리할 때 움직여라 · 182 | 상대를 흔들어라 · 186 | 퇴로를 열어 주어라 · 191

제8장 필사가살必死可殺 죽기로 싸울 것을 고집하면 패한다 [구변九變]
현장에서 대처하라 · 201 | 군명을 거부하라 · 209 | 유사시를 대비하라 · 218 | 자신을 경계하라 · 223

제9장 병비익다兵非益多 병력이 많다고 꼭 좋은 게 아니다 [행군行軍]
알고 움직여라 · 235 | 발밑을 조심하라 · 238 | 조짐을 읽어라 · 244 | 문무를 겸전하라 · 252

제10장 지천지지知天知地 천시와 지리까지 읽어야 이긴다 [지형地形]
현지 전술을 구사하라 · 265 | 내부부터 단속하라 · 272 | 백성을 보호하라 · 277 | 자식처럼 아껴라 · 281

제11장 오월동주吳越同舟 필요하면 적과 함께 배에 올라라 [구지九地]
상황에 적응하라 · 289 | 불리하면 중지하라 · 299 | 사지로 내던져라 · 303 | 오월동주를 행하라 · 308 | 필승을 기하라 · 312 | 천하를 품어라 · 319 | 임무만 알려라 · 325

제12장 비리부동非利不動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마라 [화공火攻]
도구부터 준비하라 · 335 | 바람을 따르라 · 342 | 감정을 자제하라 · 350

제13장 이지위간以智爲間 지략이 뛰어난 자를 활용하라 [용간用間]
정보망을 갖춰라 · 361 | 보안에 주의하라 · 367 | 인재를 활용하라 · 374

후기 21세기 승부는 손자병법 손에 있다! 380
참고문헌 391

책 속으로

『손자병법』에 나오는 모든 전략 전술은 기본적으로 부득이용병 또는 집이시동에 입각한다. 평시에는 무기를 거두었다가 전시에 무기를 들고 대응하라고 주문한다. 그렇다면 「시계」에서 부득이용병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거론하는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은 과연 무엇을 뜻할까? 우선 「시계」에서 말하는 ‘도’는 『도덕경』에서 역설하듯이 ‘덕德’의 본원을 뜻한다. 덕을 두고 노자는 무위지치無爲之治, 장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 공자는 인仁, 묵자와 맹자는 의義, 순자는 예禮, 한비자는 법法, 손무는 무武라 했다. 이처럼 제자백가 모두 덕을 언급하지만, 모두가 최상으로 여겼던 것은 무위지치다. 무위지치는 제왕의 통치가 마치 해와 달이 만물을 고루 비추듯이 지극히 공평무사함을 뜻한다. (28쪽)

삼국시대 초기 신흥 강자 조조와 당대 최고의 무력을 자랑한 원소의 운명이 갈리게 된 결정적인 배경은 조조가 천자를 옆에 끼고 천하를 호령하는 이른바 ‘협천자挾天子, 영제후令諸侯’를 실행한 데 있다. 명분상의 우위를 점한 것이 요체다. 원소는 힘만 믿고 이를 무시했다. 대개 원소의 자만심이 지나쳤다고 해석하나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원소 스스로 천자가 되고자 욕심을 낸 것이 정답이다. 이미 민심이 한나라를 떠난 만큼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자 한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릇이다. 원소는 그릇이 작았다. 게다가 시기심과 욕심도 많았다. 난세에 천하를 거머쥐려는 자로서는 실격이다. (90쪽)

조조의 인재 등용은 공적인 대의에 입각한 구현求賢, 유비의 용인술은 사사로운 의리에 기초한 인현引賢으로 표현할 수 있다. 손권은 시의時宜를 좇은 용현用賢에 해당한다. 그의 용현은 일정한 선을 넘지 않았다. 그 비결은 손권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도 잘 나타난다. “상대의 장점을 높이고 상대의 단점을 곧 잊어버린다.” 그는 상대의 단점에 눈을 감아버리고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한번 일을 맡긴 뒤에는 전폭적인 신임을 아끼지 않았다. 적벽대전에서 주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이릉대전에서 육손을 탁용한 데 이어 제갈근에게 끝없는 믿음을 보낸 것이 그 증거다. (114­115쪽)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문’과 ‘무’를 고루 갖춰 명실상부한 ‘문무겸전’의 자세로 새 왕조를 개창한 인물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창업주인 위무제 조조다. 그는 동탁토벌을 기치로 내걸고 군벌 경쟁에 뛰어든 이래 죽을 때까지 전장에서 평생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목할 것은 당시 유비와 손권을 포함한 여러 군웅 가운데 조조처럼 전장에서조차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열심히 공부한 인물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조조의 행보 가운데 문무겸전의 병도 이치를 가장 잘 보여 준 사례로 ‘분소밀신焚燒密信’ 일화를 들 수 있다. 이 일화는 조조가 원소를 격파한 관도대전 승리 이후에 나온 것이다. (253­254쪽)

“옛날 용병을 잘하는 사람은 아군에게 유리하면 곧바로 공격하고 불리하면 곧바로 중지했다”는 대목 가운데 중요한 것은 불리할 때 중지하는 일이다. 유리할 때 공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웬만한 장수라면 능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불리할 때 중지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대 판단하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그런 판단을 내렸을지라도 이미 투자한 것이 많은 까닭에 선뜻 발을 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진면목은 바로 이때 나온다. 이를 잘한 인물로 삼국시대의 조조를 들 수 있다. (300쪽) 닫기

출판사 서평

손자병법, 세상을 크게 바라보는 안목을 담다

천하를 사로잡은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두 『손자병법』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손정의는 『손자병법』을 자신의 경영 전략과 접목시킨 ‘자승병법自乘兵法’을 만들어 일본 최고의 부자가 됐다.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도 오늘의 자신이 있는 것은 『손자병법』 덕분이라고 했다. 스티브 잡스가 ‘창조 경영’과 소프트웨어의 상징 애플제국을 건설하고, 빌 게이츠가 윈도우 개발로 천하의 부를 거머쥐고, 손정의가 일본 최대의 컴퓨터 회사를 창립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금을 관통하는 『손자병법』의 위대한 면모를 웅변하는 대목이다.
고금의 역사를 개관하면 알 수 있듯이 무력을 동원하기 전에 명예와 이익, 권력을 좋아하는 인간의 기본 심성을 적극 활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고수의 비결이다. 『손자병법』은 바로 이런 이치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손자병법』은 병가 사상의 정수를 응축한 최고의 고전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손자병법』을 세상을 크게 바라보는 안목과 지혜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고전으로 간주했다.
수천 년에 걸쳐 많은 병서가 명멸했지만 유일하게 『손자병법』만 제왕을 위시해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읽으면 글로벌 비즈니스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두목 같은 문인이 읽으면 사람을 깊이 읽는 안목을 얻을 수 있으며, 조조 같은 위정자가 읽으면 치국평천하의 방략을 찾을 수 있다.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적확한 탐구가 빛나는 최고의 지략서 『손자병법』의 핵심은 ‘대여대취’다. 크게 주고 크게 얻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익을 향해 무한 질주하는 인간의 본성 ‘호리지성好利之性’을 정밀하게 추적함으로써 얻어낸 것이다. 그 호리지성, 대여대취의 뜻을 『손자병법』의 뚜렷한 맥으로 관통시킨 인물이 바로 조조다.
이 책은 조조의 『손자약해』를 바탕으로 대여대취 정신을 ‘지금 당장’의 현실 가치로 풀어쓴 것이다. 삼국시대 당시 천하통일 기반을 닦은 조조는 도가와 법가 사상에 입각해 『손자병법』을 새롭게 편제하고 주석을 가했던바, 『손자병법』은 반드시 조조 시각에서 접근해야 그 취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시중에는 『한비자』의 「외저설 좌상」에 나오듯 겉의 화려한 장식에 현혹되어 정작 알맹이를 놓치는 매독환주買?還珠의 우를 범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조조가 역설한 집이시동 이치를 무시하거나 간과한 결과다. 여기에서 집이시동은 평소 무기를 거두어들였다가 부득이할 때 사용한다는 뜻이다. 집이시동은 『손자병법』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 이념에 해당한다.
대여대취는 곧 커다란 미끼로 상대방을 유인해 제압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본성을 최대한 활용해야 궁극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다. 『손자병법』이 「모공」에서 백전백승은 결코 최상의 계책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손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진 손무와 이를 새롭게 편제한 조조, 무위지치를 역설한 노자, 무위자연을 내세운 장자, 공평무사한 법치를 역설한 한비자 모두 대여대취의 취지에 공명했다.

손자병법, 난세의 제왕학

『손자병법』이 『한비자』와 더불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동안 ‘난세의 제왕학’으로 군림하는 것은 극히 현실적인 입장에서 난세의 종식 방략을 제시한 덕분이다. 진시황이 병가와 법가 사상에 입각해 사상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조조가 당대 최고의 병법가이자 법가 사상가로 행보하며 삼국시대를 마무리 짓는 기틀을 닦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조가 『손자병법』을 새롭게 펴낸 『손자약해』 서문에서 『도덕경』의 제도帝道 이념을 병도 이념으로 끌어들인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조조가 “영웅은 가슴에는 큰 뜻을 품고, 뱃속에는 좋은 계책이 있어야 한다”고 일갈한 것처럼 ‘뜻’과 ‘꿈’을 크게 갖고 대성하고 싶다면 반드시 이 책을 접해야 할 것이다. 백날의 작은 승리는 별것 아니며 매사가 그렇듯 큰 이익을 미끼로 내걸어야만 큰 고기를 낚을 수 있다. 조조의 지혜가 살아 꿈틀대는 『손자병법』으로 ‘크게 주고 크게 얻는’ 그 최강 비결을 배워라.

2014년 9월 25일 목요일

노자-도덕경 1장


제1장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고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 名天地之始,
有, 名萬物之母.
故常無, 欲以觀其妙,
常有, 欲以觀其儌.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고
이름이 개념화될 수 있으면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무는 이 세계의 시작을 가리키고
유는 모든 만물을 통칭하여 가리킨다.
언제나 무를 가지고는
세계의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 하고,
언제나 유를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 한다.
이 둘은 같이 나와 있지만 이름을 달리하는데,
같이 있다는 그것을 현묘하다고 한다.
현묘하고도 현묘하도다.
이것이 바로 온갖 것들이 들락거리는 문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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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제1장은 도덕경 전체의 골격을 가장 간략하고도 분명하게 보여 준다고 한다. 노자는 말한다. "나의 세계관은 도道, 무無, 유有라는 대표적인 세 개의 범주를 사용하여 뼈대만 먼저 보여 주겠다" 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 내리는 행위는 원래 '어떤 것'을 다른 것들로 부터 분리해 내는 작업이다. A가 B나 C가 아니라 A인 이유, 즉 A의 본질을 드러내어 그 본질 속에 A를 가두는 작업이다. 본질을 드러내어 다른 것들로 부터 분리하는 언어행위, 그것이 정의definition 내리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 자체는 본질을 규정하는 식의 언어 행위로 구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않다.
공자를 위시한 유가에서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순기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성인들이 언어적 개념화 작업을 하여 세운 일정한 체계, 즉 [전통]을 사회 운용이나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받아들인다.
可道(말할 수 있는 것) <----> 常道(진정한 도)
可名(개념화할 수 있는 것) <----> 常名(진정한 이름)
人道(인도) <----> 天道(천도)
傳統(전통) <----> 自然(자연)
춘추전국시대를 산 노자의 주요 관심사는 존재나 사유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 문제였고, 인간과 사회 문제를 조정하는 원칙을 "전통"이 아니라 "자연"에서 구했다.
비어있는 공간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지만, 구체적인 사물을 비로소 존재하게 하고 비로소 기능하게 하는 묘한 교차점 같은 것이다.
구체적인 것들은 모두 이 비어 있는 상태를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무無는 이 세계의 구체적인 것들이 비롯되는 시작이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경계선(실루엣)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영역을 드러내 보이려고 '유'라는 범주를 쓴다. 구체적인 모든 것들은 자신의 경계선(실루엣) 속에 갇혀 있다.
반대되는 유와 무가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존재 근거를 두면서 또는 상대방을 살려주면서 공존한다는 사실이 아주 현묘하다는 것이다.유와 무로 대표되는 대립항들이 서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분명하게 구분되어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재 근거를 나누어 가지면서 혹은 자신의 존재 근거를 상대방에게 두면서 꼬여있음을 보여준다.
두 대립면인 유와 무가 같은 차원에서 서로 꼬여 있다는 도식이 이 세계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 형식이자 운행 원칙이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 최진석 지음>에서

2014년 9월 24일 수요일

노자가 과연 그랬을까?l로쟈의 방주

북마크하기노자가 과연 그랬을까?l로쟈의 방주 
지난번 '장자 읽기'에 이어서 '노자 읽기' 리스트도 만들어보았다. 이 페이퍼는 그 리스트의 배경을 짚어주는 것인데, 교수신문의 서평과 담비의 리뷰를 관련자료로 옮겨온 것이다. 교수신문의 서평은 가장 최근에 출간된 번역서인 최재목 교수의 <노자>(을유문화사, 2006)에 대한 것인데, 이 책은 오늘 손에 들었지만 상당히 공을 들인 역주서로 흡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전문가의 서평을 미리 읽어두기로 한다.
그리고 담비의 리뷰는 노자의 사상이 親유가적인가, 反유가적인가, 하는 오래된 쟁점을 다시 다루고 있는데(이와 비슷한 스케일의 쟁점으론 '주역, 유가의 사상인가 도가의 사상인가'라는 게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최재목 <노자>의 서평 필자이기도 한 조민환 교수의 <유학자들이 보는 노장철학>(예문서원, 1996) 외에 두 사상의 뿌리를 다룬 방동미 교수의 <원시 유가 도가 철학>(서광사, 1999)도 참고삼아 읽어볼 수 있겠다.
 
교수신문(07. 02. 05) '죽간본' 최초 완역서 - 노자사상의 本意 꿰뚫어
우리가 노자사상을 유가사상과 관련지어 말할 때 일반적으로 한대 사마천(史馬遷)이 ‘사기’에서 “노자를 배우는 사람들은 유학을 배척하고 유학을 배우는 자도 노자를 배척한다(世之學老者, 則絀儒學, 儒學亦絀老子)”라고 말한 것을 떠올리며, 노자는 유가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연구가들이 ‘노자가 과연 그랬을까’ 하고 질문을 하고 그 해답을 구하고자 했지만, 현행본 81장으로 된 ‘노자’를 보면 유가와 대척점에 선 노자의 모습만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노자’ 연구 가운데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노자’라는 인물은 과연 어떤 사람이며, ‘노자’ 장의 구분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었는지, 또 ‘노자’가 과연 한사람의 저작인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의 ‘노자신한열전(老子申韓列傳)’에서 “노자의 성은 이씨(李氏)고 이름은 이(耳)이며, 시호는 노담(老聃)이다”라 하는데, 중국고대의 위대한 사상가 중에 존칭을 나타내는 ‘자(子)’자를 붙인 경우 성이 다른 인물은 노자 한사람 뿐이다. 노자사상을 연구할 때 이미 사마천이 ‘사기’에서부터 제기한 노자라는 인물과 ‘노자’라는 책과 관련되어 제기된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1973년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비단에 쓰여진 ‘노자’(일명 ‘帛書老子’)의 발굴과 1993년 8월 중국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초나라 무덤에서 기원전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초 경으로 추정되는 죽간(竹簡)에 쓰여진 ‘노자’(이하 ‘竹簡本老子’로 함)의 발굴은 이같은 의문점에 대한 최소한의 답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특히 ‘죽간본노자’의 발굴은 무덤 속에 진리가 숨어있다는 말을 실감케 한 발굴이었다.
‘죽간본노자’는 ‘백서노자’보다 더 시대적으로 앞선 것으로서, 현행본 ‘노자’와 장·절의 순서 및 사상 내용에서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점에서 기존에 행해진 인물로서의 노자와 책으로서 ‘노자’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번역자가 노자의 ‘노’는 성이 아니고 존칭이면서, 노자는 우리가 흔히 쓰는 ‘노선생’ 즉 ‘늙은 선생(Old master)’을 의미한다는 것, 인물로서의 노자와 책으로서 ‘노자’를 분리해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 그리고 원시유가와 원시도가는 사마천이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대척점에만 서 있지만 않았다는 말이 함축하고 있듯이, 기존의 노자사상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게 해준 것이 바로 ‘죽간본노자’인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죽간본노자’에 대한 번역 및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그다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이 번역서의 출간은 한국의 ‘노자’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역자는 유가·불가·도가 삼가사상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중국과 일본에서 행해진 ‘노자’ 관련 연구를 최대한 참조하면서 자구 하나하나에 대해 꼼꼼하게 주석하고 있다. 아울러 노자사상이 갖는 의미를 중국사상을 통관하는 입장에서 해설을 하고 있어 원형으로서의 노자사상과 그 사상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성인(聖人), 자연(自然), 사(士), 미(美), 정(精), 음(音)과 성(聲)에 대한 자구 풀이에서는 관련 자구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경향까지 반영하면서 거의 소논문 수준의 주석을 하고 있다. 저자의 성실성과 해박한 학식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아울러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지금까지 연구된 노자라는 인물, 책으로서 ‘노자’, 그리고 ‘초간본노자’가 출토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잘 정리하여 노자사상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좋은 번역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노자’는 워낙 다의적으로 해석되고 따라서 어떤 책보다도 주석서가 많다. 이런 점을 감안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노자사상의 본의에 가깝게 번역된 이 번역서에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동양철학자이면서 시인이기도 한 번역자의 절제된 언어와 맛깔스런 번역이 노자사상의 묘미를 잘 느끼게 해 준다. 다만 역주에서 또 다른 번역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지만, 현행본 ‘노자’ 19장(죽간본: ‘返也者, 道僮也’)의 ‘반(返)’자를 풀이할 때 ‘반대되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고 한 것은 역자가 해설 부분에서 “‘반(反)’은 도의 기능적 측면을 말한 것이다”라고 말하듯이 ‘반대(反)’라는 의미보다는 ‘되돌아감(返)’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점만 거론하고자 한다.(조민환/ 춘천교대 - 동양철학)
담비(07. 03. 20) 老子는 親유가적인가 反유가적인가
1993년 중국에서 '노자' 연구자들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심한 이들은 다리 힘이 쪽 빠질만한 일이 발생했다.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중기 무덤에서 죽간으로 된 '노자'의 또 다른 판본이 발굴된 것이다. 이후 노자 학계는 충격과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였다.
'노자'엔 다양한 판본이 있다. 모두 81개 장으로 이뤄진 이 텍스트는 주로 왕필이 주석을 붙인 ‘왕필본’에 근거해 해석돼왔다. 왕필(226~249)은 남북조시대에 살았던 요절한 천재로서 그의 주석은 '노자'를 형이상학적 수양론의 결정판으로 해석하게 된 기원을 이룬다.


그러나 1973년 중국 남부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의 무덤(기원전 168년)에서 비단에 쓰인 2종의 ‘노자’(帛書本)가 출토되었다. 학계가 깜짝 들썩였지만 왕필본과 비교해볼 때 道經과 德經의 순서가 바뀌고 글자 일부분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백서본과 왕필본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20년 뒤인 1993년 ‘노자’의 일부분이 들어 있는 대나무 문서(竹簡)가 발굴된 것이다. 학계는 뭐가 많이 다르겠냐 싶었지만, 이번엔 정말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노자'에서 儒家를 강하게 비판한 부분은 다 빠져있어 '노자'라는 텍스트가 후대에 많이 개정, 첨가된 것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곽점본과 왕필 및 백서본(이하 합쳐서 통행본)의 내용을 비교하는 연구들이 줄지어서 나왔다. 지난 10년간은 주로 글자를 해독하는 등 텍스트를 확정짓는 연구들이 주로 나왔다면, 근자에는해독된 내용을 바탕으로 '노자'라는 텍스트의 위상을 재규정하는 과감한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최근 두 명의 학자가 곽점본과 통행본을 비교하는 논문을 나란히 발표해 주목을 끈다. 하나는 임헌규 강남대 교수가 학진 프로젝트로 수행해 최근 '동양고전연구' 제25집에 발표한 '노자의 무위이념은 유가의 인의를 비판하는가?'라는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오상무 고려대 교수가 지난해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최근 '동양철학' 제26집에 수정보완해 실은 '노자의 유가관 재론-통행본과 곽점본을 중심으로'이다.
그러나 두 학자가 곽점본을 읽고 내린 결론은 서로 상반되는 감이 있어 이를 둘러싼 학계의 논쟁이 예상된다. 임 교수는 곽점본이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노자 판본이라고 볼 때 노자가 반유가적이라는 기존 견해는 잘못된 것이며, 오히려 노자는 친유가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비해 오 교수는 비록 노자 곽점본은 유가에 대해 덜 적대적이지만 유가의 통치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는 결론을 낸다. 또한 두 교수는 한자 해석 방법에서도 차이를 드러내고 있어 논란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임 교수의 논의를 보자. 핵심은 기존 통행본의 제38장이다. 여기에 "道를 상실한 이후에 德이 있게 되었고, 덕을 상실한 이후에 仁이 있게 되었고, 인을 상실한 이후에 義가 있게 되었고, 의를 상실한 이후에 禮가 강요되었다. 대저 예라는 것은 忠信이 엷어진 것이며 어지러움의 머리이다. 미리 아는 것은 도의 헛된 꽃이며 어리석음의 시작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임 교수는 이런 노자의 인, 의, 예에 대한 비판이 정당한가를 살핀다. 공자는 '논어'에서 "仁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을 실행할 때 편안할 수 있다"라고 했으며 공자를 이은 맹자 또한 "仁은 인간의 편안한 집"이라고까지 천명했다. 맹자는 도처에서 인을 식물, 나무, 생장하는 곡식 등 유기체에 비유하면서 인의 실천은 유기체의 성장, 실현, 성숙과 같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임을 역설했다.

이를 통해 볼 때 "仁이 실행하는 의지에 의해 실천된다고 주장한 노자의 주장은 잘못"이라는 게 임 교수의 견해다. 또한 義가 仁의 외표라는 점에서 의 또한 인간의 내적 본성에 말미암아 마땅히 가야하는 바른 길이지 강압적인 것은 아니었기에 노자의 유가비판은 전반적으로 오해나 악의적 왜곡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죽간본에는 이 38장이 빠져있다. 여기서 임 교수는 이것이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통행본에는 죽간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절들을 덧붙인 부분이 꽤 보인다. 게다가 글자를 교묘하게 바꿔서 뜻을 완전히 틀어놓는 경우도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18장에 나오는 아래와 같은 경우이다.

죽간본 : 그러므로 大道가 행해지지 않는데 어찌 仁義가 있겠는가? 육친이 불화한데 어찌 효자와 자애로운 부모가 있겠는가? 나라가 혼란한데 어찌 올바른 신하가 있겠는가?

통행본 : 大道가 행해지지 않자 인의가 생겨났고, 지혜가 나오자 큰 거짓이 생겨났고, 육친이 불화하니 효성스런 자식과 자애로운 부모가 있게 되었으며,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있게 되었다.

죽간본에는 "故大道廢 安有仁義"라고 돼 있는데 통행본에는 "大道廢 有仁義"라고 두 글자가 빠짐으로써 뜻이 위에서 보듯 확 달라졌다. 통행본에서는 道가 仁보다 더 상위의 가치라는 점이 강조된 것이다. 임 교수는 이를 이데올로기적 투쟁 때문에 개작을 통해 본문을 반유가적으로 바꾼 결과라고 해석한다.

임 교수는 이외에도 많은 부분들을 대조하여 노자의 無爲之道가 유가의 仁政과 전혀 상반되지 않고, 오히려 상호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흔히들 도가는 '도'를 자연물인 天地보다 선재하는 것으로 상정하여, 道 => 天地 => 萬物로 내려오는 형식을 취하는 반면, 유가는 천지에서 만물로 내려오는 우주발생론적 체계를 취하고 있다고 간주되어 왔다. 그리고 도가는 무위를 최상의 이념으로 하며, 따라서 정치 역시 무위정치를 이상으로 한다고 간주되어 왔다.

이에 비해 유가는 인을 최상의 덕목으로 하면서 인정을 정치이상으로 주장하였다. 하지만 단순한 문자상의 차이를 버리고 그 근본정신과 거시적인 체계에서 보면 비슷하다는 게 임 교수의 입장. 도가에서 道가 자연물인 천지를 넘어서는 生生하는 자연 그 자체이듯, 유가의 天 또한 그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오상무 교수의 의견은 좀 다르다. 임 교수가 도가와 유가의 유사점을 강조했다면 오 교수는 그 차별성을 여전히 강조하는 입장이다. 가장 확연한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故大道廢 安有仁義"에 대한 해석이다. 임 교수는 여기서 '安'을 의문대명사 "어찌"로 해석했다. 그런데 오 교수는 전후맥락상 볼 때 "어찌"보다는 연결조사 "이에"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입장이다.
오 교수는 그 근거로 이 18장이 내용상 17장을 잇고 있으며, 17장에 '安'이 명확하게 '이에'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만약 '安'을 '이에'로 본다면 "위대한 도사 폐기되면 이에 인과 의가 생겨난다. 가족이 화목하지 않으면 이에 효와 자가 생겨난다"로 죽간본과 통행본 사이에 변별점이 없다. 이런 견해에 대해 임 교수는 어떤 입장을 보여줄 지 궁금하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굳이 뜻이 다르지 않은데 왜 후대에 이 '安'자를 없애버렸는가 하는 점이다. 좀더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아무튼 오 교수는 이런 입장에서 보듯 곽점본 노자 또한 유가에 대해 유보적이라고 본다. 다만 유가의 통치론에는 비판적이지만, 도덕론에는 동조적이라는 선에서 논의를 마무리짓는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단적으로 표현한다.

"노자가 仁을 끊고 義를 버려라고 말했을 때 그 청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군주이다. 다시 말해 인과 의를 버려야 할 사람은 군주이지 백성들에게 인과 의를 행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치자가 인의의 통치방법을 버릴 때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효의 마음과 행위를 회복하게 될 것이라는 게 노자의 본의이다."

과연 이를 보면 노자는 유가의 '仁'이라는 덕목 자체는 인정했지만, 그것을 통치술에 활용하는 '仁政'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임 교수는 '곽점본' 노자로 볼 때 노자 또한 '인정'을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해석한다. 과연 노자라는 텍스트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학계의 좀더 깊이있는 토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리뷰팀)
07. 07. 16.
P.S. 비전문가로서 <노자> 텍스트 비평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갖기 어렵고 대신에 노자 사상/철학의 '해석'의 문제에 주의를 두게 되는데, 나의 견문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강신주의 <노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태학사, 2004)이다. 이 또한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이어서 최근에야 그 존재를 알게 됐는데, 책의 타이틀 자체가 상당히 '모던'하면서 파격적이다. 흔히 '형이상학'으로 이해되는 노자철학을 '정치철학'으로 재해석하는데,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도덕경>은 가령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같은 책이라는 것이다. 관련학계의 반응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만 그런 '반응'을 따로 알 길이 없어서 리뷰 기사 정도만을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4. 05. 14) 군주의 통치윤리로 ‘老子’ 뒤집어 읽기
2000년대 들어 우리 사회와 대중의 지적 호기심을 환기시켰던 흐름 중 하나로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노자에 대한 관심을 들 수있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노자 열풍’을 지피는 데 공헌한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외에도 국내외 수많은 연구자가 노자의 사상이 담겨 있다는 텍스트 ‘노자’에 주목했으며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이를 해석한 다양한 책을 끊임없이 내놓아 왔다. 이에 따라 과거에 양생술(養生術)이나 통치술, 처세술, 무(無)의 형이상학, 마음의 수양론 등으로 이해해온 데서 나아가 최근에는 유토피아적 무정부주의나 생태철학, 페미니즘의 이론적 기초로 보는 견해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노자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노자 이해의 주류를 이뤄왔던 것은 중국의 보편적인 형이상학 또는 형이상학적 수양론의 결정체로 보는 견해였다. 이는 지난 2000년 가까이 노자 이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중국 위진 남북조시대 왕필(226~249)이라는 천재가 18세에 붙인 주석의 탓이 크다. 노자의 사상을 ‘개인’의 관점에서 조망함에 따라 일반 대중에게 ‘노자’는 무욕(無欲)의 삶을 설파한 마음의 수양론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모든 개인에게 바람직한 삶의 가치를 전해주는 교훈서 또는 ‘삶의 기술’을 통찰해낸 성인(聖人)의 글로 이해돼 왔던 것이다.

이에 반해 책은 개인이 아닌 ‘국가(state)’의 관점에서 ‘노자’를 해석하면서 기존의 노자 이해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장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전쟁과 살육, 주장과 논쟁으로 뜨거웠던 중국 전국시대의 혼란과 갈등을 국가라는 관점에서 조망하고 국가의 논리를 비교할 수 없이 정교하게 숙고한데서 ‘노자’의 의미를 발견해낸 것이다. 물론 ‘노자’라는 텍스트에서 국가라는 관점을 찾아낸 것이 저자가 처음은 아니다. 한비자(韓非子) 이래 최근까지 많은 철학자가 ‘노자’에서 국가를 읽어냈지만, 이들의 작업은 그동안 통치술로 가치폄훼돼온 현실에서 보듯 뚜렷한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우선 20세기 후반 중국에서 새로 발견된 판본들을 통해 기존 노자 이해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모두 81개 장으로 이뤄진 ‘노자’란 텍스트는 그동안 주로 왕필이 주석을 붙인 ‘왕필의 판본’에 근거해 해석돼왔다. 그러나 1973년 중국 남부 창사(長沙) 마왕두이(馬王堆)의 무덤(기원전 168년으로 추정)에서 비단에 쓰인 2종의 ‘노자’ 백서본(帛書本)이 출토되고 다시 20년 뒤인 93년 허베이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중기 무덤에서 ‘노자’의 일부분이 들어 있는 대나무 문서(죽간·竹簡)가 발굴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결국 우리는 ‘노자’에 대한 상이한 판본을 3종류 가지게 됐는데,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의 순서가 바뀌고 글자 일부분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백서본과 왕필본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다. 반면 곽점본의 경우 백서본과 달리 유가사상에 적대적이지 않고 유(有)와 무(無)가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위상을 가지는 등 몇가지 사상적인 차이점이 나타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상의 두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노자’ 81장을 포괄적이고 하나의 연결된 문맥으로 독해할 것을 주장한다. 81개 장 전체를 동일한 비중으로 고려하지 않았고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도가도비항도·道可道非恒道)”와 같이 일부 몇몇 장만 핵심적인 장으로 간주해 온 것이 기존 노자 이해 의 문제점이란 것이다.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노자’라는 텍스트의 핵심을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교환의 논리를 발견한데서 찾고 있다. 군주가 통치자라는 자리에 오래 있기 위해서는 세금의 대 가로 무엇인가를 피통치자들에게 주어야 하며, 만약 이 교환의 논리를 어기게 되면 군주는 결코 통치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음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와 가라타니 고진, 라이프니츠 등의 저작과 사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저자는 노자가 유가와 법가를 비판적으로 종합해 사랑과 폭력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제국의 논리를 제공했으며, 이는 한(漢)제국을 거쳐 현재 중국에 이르기까지 중국적 제국의 논리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연히 ‘노자’에 나오는 수양론도 대상이 군주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이와 함께 장자 연구자인 저자는 노장(老莊)으로 한데 묶어 이해해온 도가(道家)라는 범주가 해체돼야 한다는, 일반 독자들에게 매우 도발적으로 들리는 주장을 제기한다. 군주와 국가의 철학자
였던 노자와 단독적인 개체와 삶의 철학자였던 장자를 함께 도가 또는 노장사상으로 부르는 것은 사마천의 분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 뿐 순자(荀子)의 저서나 ‘장자’를 정밀하게 독해하면 노자와 장자가 별개의 학풍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노자의 해석과는 판이하게 다른 저자의 주장이 일반 독자들에게 당황스럽게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노자 열풍’ 속에서 노자에 덧씌워진 각종 신비한 외관을 벗겨내고 그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자는 저자의 주장은 독자들이 음미할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최영창기자)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김시천

새롭게 깨어난 도가의 칼과 방패
이종훈 기자  |  whdgnswwkdl@snu.kr

승인 2013.11.23  22:40:34

  
 
“색깔과 얼굴이 전혀 상이한 두 고전이 함께 짝을 이뤄 하나의 사상처럼 거론된다는 것, 그것이 내겐 하나의 모순처럼 보인다”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의 저자 김시천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는 책의 서두부터 노자와 장자를 노·장사상으로 묶어서 다뤄온 종래의 관점에 반대하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노자』는 권력을 얻기 위한 칼이고, 『장자』는 세상에서 다치지 않게 살기 위한 방패라는 것이다.

저자에게 『노자』는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는 뜻을 품은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지침서이다. 노자는 ‘도’가 만물의 질서이자 세상이 흘러가는 기본원리이고, 사람은 인위적이지 않게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통치자는 도를 체득하고 다른 이들도 도에 맞게 살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노자를 “이상적 통치자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다시 이치에 맞는 상태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한편 김 교수는 『장자』를 세상의 풍파로부터 권력을 얻으려하나 얻지 못한 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해석한다. 『장자』에서는 ‘노닌다’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노니는 것은 삶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으려는 것이다. ‘노닌다’는 행위는 고단한 삶에서 종종 우리를 떠나게 해 주지만, 우리가 삶을 부정하고 이를 벗어나게 하지는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떠난다는 것에는 돌아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삶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노닐고 다시 속세로 돌아온 후의 삶은 이전과 달리 경쟁, 성공욕, 이해관계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이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노자』와 『장자』에는 천 개의 얼굴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존의 해석과는 다른 저자의 관점도 ‘옳은 해석’이 아닌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해석은 그 동안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데 있어 하나의 규범으로만 생각되던 노장사상을 현실의 삶에 적용한 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할 때는 노자의 칼이 우리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실패하고 상처받고 방황할 때는 장자의 방패가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삶의 모순과 철학의 위안

김시천 지음 | 책세상 | 2013년 11월 05일 출간

책소개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노자와 장자를 둘러싼 여러 차원의 모순을 환기한다.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 노자는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과 같은’ 책이고, 장자는 권력의 중심부로 나아가지 못한 자가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방패와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격이 다른 두 책이 마치 동질적인 것인 양 ‘노장’이라는 말로 함께 묶여 거론되니 이 또한 모순이다. 저자는 이러한 모순을, 성리학이라는 정치적 교조를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금단의 노장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었던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분열된 내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저자소개

저자 : 김시천

저자 김시천은 숭실대학교 철학과에서〈노자의 양생론적 해석과 의리론적 해석〉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대학에 진학할 때부터 공부를 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그다지 훌륭한 학자는 못 되는 것 같다는 생각에 가끔씩 공부의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우연히 노자와 장자를 전공하게 되었는데, 공부해보니《노자》가 그다지 좋은 고전이 아닌 것 같아 한동안은 유교儒敎 사상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며 고전을 이해해보려 애썼다. 그러던 중 인문의학연구소에 합류해 활동하면서 전통 한의학의 철학적 바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기氣에 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래된 동아시아 고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이 깊어갔으나, 시민과 함께하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고전의 의미는 발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요즘에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 고전에 접근하는 ‘고전 읽기’에 골몰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철학에서 이야기로》,《이기주의를 위한 변명》,《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공저),《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공저),《기학의 모험 1?2》(공저) 등이 있다. 독특한 제목의 이 책《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그간의 ‘노장老莊’ 공부를 결산하는 책이자,《장자―무하유지향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성인과 제왕》,《노자―혼돈으로부터의 탈주》로 이어질 4부작의 첫 책이다.

목차

책을 펴내며 *9

서장 _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15

제1부 《노자》, 칼의 노래

1장 노자와 《노자》
- ‘전설’을 해체하고 ‘인간’을 보다 *31
1. 누구의, 누구를 위한 《노자》인가 *31
2. 하나이면서 여럿인 《노자》, ‘노자열전’ *34
3. 성인과 제왕, 그리고 범인 - 《노자》 속의 인간들 *55
4. 호모 임페리알리스의 《노자》 *63

2장 《노자》의 두 전통
- 통치술에서 철학의 지혜를 찾다 *67
1. 하상공과 왕필, 두 밀레니엄 두 가지 해석 *67
2. 논리와 해석 방법의 차이 - 훈고와 의리 *70
3. 우주와 인간, 기와 도 *82
4. 우주론에서 심성론으로 *91

3장 조선 사회의 《노자》와 지식인
- 조선의 유학자, 이단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다 *95
1. 《순언》, 그 ‘침묵’의 역사 *95
2. 유가 전통과 이단 *101
3. 이단에 대한 모순된 태도 *107
4. 사문난적 혹은 영혼의 전쟁 *115
5. 정통 유가 지식인의 내면 풍경 *122
6. 정통과 이단, 유교적 사유의 안과 밖 *127

제2부 《장자》, 춤추는 방패

4장 《장자》, 이단과 전통
- 사이비 속에 감추어진 삶의 진실을 찾다 *137
1. 해석의 갈등, 20세기의 《장자》 *137
2. 장자의 두 얼굴, 《사기》의 장자와 《장자》의 장자 *143
3. 역사 속의 《장자》 *155
4. 유학 안에서 《장자》 읽기, 사이비와 진유 *166
5. 진유가 된 사이비 장자, 이단에서 전통으로 *175

5장 《장자》, 해석의 갈등
- 유가와 도가 사이에서 ‘삶의 길’을 묻다 *179
1. 《장자》를 말하기의 어려움 *179
2. 《장자》에서 ‘정신’의 개념 *184
3. ‘정신’의 길 - 《장자》, 《관자》, 《회남자》 *189
4. ‘마음’의 길 - 《순자》와 유가 *195
5. 《장자》의 무정한 자아 - 신비주의 순수 의식인가, 정신양생론인가 *202

6장 《장자》의 ‘유遊’
- 노니는 삶, 일상으로 내려오다 *211
1. ‘놀이’와 ‘노님遊’ *211
2. ‘놀다’, 놀이, ‘장난作亂’ *216
3. ‘유’와 정신 *222
4. 심유心遊 - 천유天遊 그리고 세유世遊 *229
5. 정신과 유희 - 삶의 복원 *236

제3부 노장, 삶의 모순과 철학의 위안

7장 유가와 도가의 행위 이론
- ‘무위자연’으로 정치를 논하다 *245
1. 20세기의 철학사 서술을 넘어 *245
2. 성인과 ‘무위’의 이상 *249
3. ‘유위’의 빛과 그늘 - 《묵자》, 《맹자》 *255
4. 선악의 피안 - 유위 - 무위의 대립을 넘어 *262
5. 고대 중국의 행위 이론 비교 - 무위, 유위, 형명 *266

8장 《노자》와 페미니즘
- 노자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 *271
1. 《노자》, 다른 목소리로? *271
2. 노장, 진실 혹은 거짓말 *275
3. 《노자》와 페미니즘, 세 개의 메아리 *279
4. 《노자》의 성인, 계곡처럼 낮게 암컷처럼 부드럽게 *285
5. 《노자》와 페미니즘은 만날 수 있는가 *290

9장 《장자》와 과학 기술
- 장자는 기술 비관론자가 아니었다 *299
1. 기술, 애증의 교차로 *299
2. 기심, ‘최소 투자 최대 효과의 심리’ *304
3. 기技를 통한 도道, 또 다른 노하우 *310
4. 기예의 도, 달인의 철학 *316
5.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 21세기 과학 기술 시대의 ‘도술’을 찾아서 *320

종장 _ 도가에서 도술로, 철학에서 삶으로 *327
1. 21세기 ‘노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327
2. 도교란 무엇인가 *329
3. 텍스트와 도술 *333
4. 학學의 공동체 - ‘사제 모델’과 경술 *337
5. 학學에서 유遊로 - 삶의 기술로서의 도술 *342
6. 도술의 두 차원 - 양생과 달생 *349

참고문헌 *354
찾아보기 *364

출판사 서평

무위자연의 신화를 넘어 치열한 삶의 이야기로
― 우리 시대 노장을 읽는 아주 특별한 방법

《노자》와《장자》는 유교 중심의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공맹과 대등한 사상적 지위를 누려보지 못한 채 늘 이단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동아시아 고전 중 대중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책이 되었다. 특히 1999년에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라는 강연은 노자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다양한 대중 강연이 노자와 장자를 다루어왔다. 한때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서구 이론의 영향을 받은 해체론적 노자 해석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대중에게《노자》와《장자》에 대한 어떤 고정된 인상이 각인되었다. 탈속, 자연, 유유자적, 현자, 탈정치, 반문명 같은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인상은 과연 올바른 이해의 결과일까?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노자와 장자를 전공한 동양철학자가 그간의 노장 공부의 결실을 모아 엮은 책으로, 텍스트의 문맥을 놓치지 않는 전공자의 시선을 통해 노장에 대한 통념이 실제의《노자》,《장자》와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즉 이 책은 두 문헌의 내부에 있는 ‘사상’을 체계적으로 해명하기보다는 기존의 연구 성과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통해, 상식으로 굳어진 노장 철학의 주제들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오늘’의 시각으로 재검토함으로써 기존의 논의와 다른 해석의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노자》는 천하의 정치적?사상적?사회적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사람들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헌으로서 정치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을 위한 기술적 지침서와 같은 책이며, 반면《장자》는 권력을 차지하지 못한 지식인들을 위해 세상과의 불화를 해소하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 문헌이 이렇게 이질적임에도《노자》와《장자》는 ‘노장’이라는 말로 한데 묶여 실제와는 동떨어진 고정관념을 낳아왔으며, 이러한 고정관념에 일조한 주제들 중 대표적인 것이 노장을 대변하는 개념이 ‘무위無爲’라는 것,《노자》가 페미니즘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것,《장자》가 기술 문명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 무위는 노장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간주될 만큼 노장의 독보적인 개념도 아니고 탈속적?반문명적인 삶과 연관되는 개념도 아니다. 또《노자》와 페미니즘,《장자》와 기술 문명 비판을 연결 짓는 것은 문맥을 간과한 채 원문을 선별적으로 인용하거나 잘못 이해한 것으로, 전통과 탈근대적인 것을 잘못 연결한 결과이다.
저자는《노자》와《장자》를 이렇게 읽어내는 것에서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노장을 어떻게 삶에 유의미한 것으로 지속시킬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그리하여 노장을 도가나 도교라는 이름의 철학이나 종교로 받아들이지 말고,《장자》의 ‘유遊’(노님) 개념에 입각해 ‘도술道術Tao-techniques’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여기서 도술이란 신비한 초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부정하거나 삶에 종속되지 않고 삶을 누리는 기술, 정치와 문명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누리는 기술을 말하며, 이러한 시각은 철학과 종교의 이분법,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결국 이 책은《노자》와《장자》에서 삶의 기술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국내 학자의 독창적인 노장 연구서가 드문데다, ‘무위자연’이라는 표현이 대변하듯 탈속적?탈정치적?반문명적 사상이라는 노장 사상에 대한 일면적 통념이 지배하는 현실에서,《노자》와《장자》에 대한 역사적 해석과 쟁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삶의 양식으로서의 ‘도술’이라는 21세기 노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는 이 책은 저자가 줄곧 견지해온 ‘전통의 현대적 해석’에 대한 학문적?실천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하는 노자의 칼, 춤추는 장자의 방패 ― 노장과 ‘모순’
이 책의 제목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노자》와《장자》를 둘러싼 여러 차원의 모순을 환기한다. 우선 글자 그대로 ‘창(칼)과 방패’로서의 ‘모순’이다.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노자》는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과 같은’ 책이고,《장자》는 권력의 중심부로 나아가지 못한 자가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방패와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격이 다른 두 책이 마치 동질적인 것인 양 ‘노장’이라는 말로 함께 묶여 거론되니 이 또한 모순이다.
한편,《노자》와《장자》는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조선 사회에서 이단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지만, 모순되게도 이이, 박세당, 홍석주, 서명응, 한원진 같은 정통 유학자들에 의해 주석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시대에 박세당의《신주도덕경》과《남화경주해산보》, 이이의《순언》, 홍석주의《정노》, 한원진의《장자변해》같은 노장 주석서가 쓰이고 읽혔다. 요컨대 조선 시대에《노자》와《장자》는 이단이면서도 ‘바깥’에 있지 않고 ‘안’에 있었던 셈이며, 저자는 이러한 모순을, 성리학이라는 정치적 교조를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금단의 노장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었던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분열된 내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저자는《노자》와《장자》에서 이런 중층의 ‘모순’을 읽어내며, 결국 삶 자체가 그렇게 모순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게다가《노자》와《장자》모두 단일 저자에 의해 쓰인 책이 아니어서 여러 목소리를 내는데다 모호한 언어로 되어 있어 해석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니, 노장 읽기는 모순으로 가득해 종종 길을 잃게 만드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저자는 노장의 모순이 삶의 모순과 유비를 이루기에 오히려 삶에 위로를 준다고 말하며, 나아가 도가나 도교 대신 ‘도술’이라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철학이나 종교 아닌 삶의 기술로 받아들여 현실적 동반자로 삼을 방법까지 모색한다.

《노자》― 패권 지망자들의 책, 권모술수의 책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노자》는 전국 시대 말기에서 한나라 초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완성된 책이다. 그리고《노자》의 저자는 노자라는 한 사람의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니라 신원을 알 수 없는 여러 사람이다. 이 복수의 저자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는지는《노자》텍스트에서 어떤 사람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지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통념과 달리《노자》에는 “정치적 세계의 비정함에 냉소를 보내고 문명을 비판하고 유가와 같은 도덕적 엄격주의에 식상한 인간, 환경과 자연의 가치를 긍정하고 페미니즘적 세계관을 지향하는 인간”은 등장하지 않는다.《노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상은 오히려 성인聖人, 후왕侯王, 사士 같은 권력자들이다. 이는《노자》의 저자나 독자가 패권 지망자들이었음을 짐작게 하고, 실제로《노자》는 내용상 권모술수를 포함한 “권력의 기술”에 대한 책이나 다름없다.
《노자》에 대해서는 수많은 주석자들에 의해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졌고 그러한 해석들에서 공통의 기반과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대표적인《노자》해석으로는 한나라 하상공과 위나라 왕필의 해석이 꼽힌다. 두 사람의 주석서는 똑같이《노자》를 다루면서도 아주 다른 해석으로 나아간다. 하상공이《노자》자구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치중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는 데 충실한 편이라면 왕필은 유가의 입장에서《노자》를 해석한다. 그리하여 하상공의 해석은 도교의 차원과 연결되고 왕필의 해석은 유학자들의 해석의 토대가 되면서 다양한 조류를 만들어나가게 되었다. 그런 만큼 어떤 주석서를 통해《노자》를 읽는가에 따라《노자》의 얼굴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조선 사회에서는《노자》가 어떻게 수용되었을까? 유학 아닌 것은 이단으로서 철저히 배척했던 조선조에서 뜻밖에도 이이의《순언》, 박세당의《신주도덕경》, 홍석주의《정노》, 서명응의《도덕지귀》등 모두 다섯 권의《노자》주석서가 쓰였으며,《선조실록》에는 과거시험 답안지에 노장의 문장이 인용된 것을 놓고 임금과 신하가 왈가왈부하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이는 모두 임금과 신하들, 그리고 과거에 응시한 선비가《노자》와《장자》를 읽어 알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이단의 문제점을 알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읽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우긴 했지만, 어쨌든 이는 조선 사회에서 정통인 유가와 이단인 도가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장자》― 출사하지 못한 비운의 지식인의 책, 세속에서 노니는 기술을 이야기하는 책
《장자》는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문헌으로 추측되지만 성립 시기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장자》는 진晉나라의 곽상이 틀을 갖춘 것으로 33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장자가 지은 것은 ‘내편’ 7편뿐이고 나머지는 후학들의 글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따라서《장자》에는 서너 갈래의 다른 목소리가 뒤섞여 있으며, 이는《장자》해석의 어려움을 낳는다.《장자》의 어느 편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중국 철학계에서《장자》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중국인의 패배주의와 노예근성의 정신적 근원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에 중국 고유 종교인 도교의 사상적 원류, 유가를 계승한 사상, 중국 예술 정신의 원류라는 등등의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한국 학계에서도 이런 식의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저자 김시천은《장자》의 이야기들에서 얻을 수 있는 장자에 대한 정보를 통해서 “뜻을 품었으되 가난해 벼슬에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한 지식인”을 장자의 일관된 모습으로 포착해내고,《장자》를 “비운의 지식인”의 책으로 본다. 치자의 영광과 명예로 나아가지 못하고 불행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삶의 기술을 이야기한 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장자》에서 가장 주목하는 개념은 ‘유遊’이다. ‘유’는 ‘노닐다’에 가까운 개념으로, 잠정적 ‘떠남’과 떠났다가 ‘돌아옴’을 전제한다. 떠남이 정치적 야망이나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는 세속의 삶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거리를 두는 것이라면, 돌아옴은 그렇게 거리를 둔 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서의 깨달음을 안고 세속의 삶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돌아왔을 때는 삶의 태도가 바뀌어 다툼과 경쟁과 갈등에서 벗어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삶의 태도가 “탈속적 태도”도 아니고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거나 변화시키려는 변혁적 실천”도 아니며, 다만 “한 개체가 겪는 갈등과 억압을 승화시킨 태도”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유’는 삶의 보전이라는 ‘양생’의 논리와 이어지며, 또한 문화와 예술에 영감과 창조적 활력을 준다고 본다.
《장자》역시 조선 시대에 유학자들 사이에서 읽혔고 박세당, 한원진에 의해 주석되었다. 다만《장자》는 대체로 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이단’이라기보다는 ‘사이비’에 가까운 존재였다.

《노자》와《장자》에 대한 통념은 올바른가
두 문헌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인위나 억압을 거부하고 자연 속에서 초탈한 태도로 살아가는 현자의 격언쯤으로《노자》와《장자》를 떠올리는 통념과 거리가 있다. 저자는 노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많다고 보고 이를 점검한다. 여기서의 논점은 ‘무위자연’이 노장을 대변하는 개념인가,《노자》가 페미니즘과 닿아 있는가,《장자》가 기술 문명에 반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유가는 ‘유위有爲’를 주창했고 노장은 ‘무위’를 주창해 유가를 비판했으며, 유위는 인위에 상응하고 무위는 자연에 상응한다는 것이 통념상의 도식이다. 하지만 저자는《논어》,《맹자》,《순자》,《묵자》등 여러 고전 문헌들의 ‘무위’ - ‘유위’ 용례를 분석해, 무위와 유위가 대립되는 개념이고 무위와 자연이 상응하는 개념이라는 상식은 틀린 것임을, 그리고 무위란 “제자백가의 공통 개념으로서 어느 특정 학파가 전유한 것이 아니며, 기본적으로 정치 행위 이론”임을 밝힌다. 따라서 무위자연을 도시와 문명을 떠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과 연관 짓고, 무위자연이 노장이 추구하는 삶의 대명사라고 이해하는 것은 수정되어야 한다.
그럼《노자》와 페미니즘의 관계는 어떠한가? 저자는《노자》가 여타 문헌에 비해 여성성을 중시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것이 여성의 자유와 해방을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의 차원은 아니라고 말한다.《노자》의 몇몇 표현들을 들어《노자》를 페미니즘과 연결시키는 것은, 유가는 뭔가 부정적인 사상 체계이고 도가는 뭔가 긍정적인 사상 체계라는 도식적 선입견 때문에《노자》에 나오는 여성성 강조의 표현 하나도 과도한 의미를 담아 해석한 결과라는 것이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노자의 시대는 가부장제 완성의 정점이었는데 그러한 시대에 노자가 여성을 찬양하고 페미니즘 철학을 전개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일이냐고 저자는 반문한다.《노자》에서 볼 수 있는 여성성의 강조는 여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성적 강함에만 의지하는 정치는 온전하지 못하니 군왕은 여성의 유약함을 가장하는 교묘한 ‘술수’ 또한 겸비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자》가 기술 문명을 비판했다는 상식 또한 잘못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식이〈천지〉편에 나오는 ‘기심機心’이란 말을 “편리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해석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원문의 맥락을 따른다면 ‘기심’을 “최소 투자 최대 효과의 심리”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그렇다면〈천지〉편의 이야기에서 기심을 비판하는 것은 “기회주의적 심리를 비판한 것이지 고도의 기술적 성취 그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양생주〉편에 나오는 포정?丁의 이야기에서는 기술에 대한 긍정을 읽을 수 있다. 소를 잡는 데 있어서 기술을 넘어 도의 경지에 오른 포정의 칼놀림을 보고 문혜군이 ‘양생의 도’를 터득했다는 이 이야기로 미루어,《장자》에서는 기술이 비판되는 것이 아니라 도에 이를 수 있는 방법으로서 긍정됨을 알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노장, 삶의 기술로서의 ‘도술’을 위하여
―21세기에《노자》와《장자》를 어떻게 향유할 것인가

오늘날 한국 학계에서 ‘노장’은 “《노자》와《장자》라는 텍스트에 담긴 내용 혹은 그와 관련된 문헌에 담긴 철학적, 사상적, 종교적 전통”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노장이 유가 전통에 포섭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노자》와《장자》가 한대漢代 이래 제자백가의 하나인 ‘도가’로 분류되고 20세기에 ‘도교’의 기초 경전으로 이해되면서 노장은 철학적, 종교학적으로 언제나 도가와 도교라는 더 큰 범주와 철저하게 관련돼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나 노장을 철학이나 종교로서 대하지 말고 우리의 삶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지속시키며 향유할 방법을 모색하자고 말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노장을 도가/도교 아닌 ‘도술’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 저자는 다시 ‘유遊’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저자는 ‘유’ 개념을 현대라는 패러다임으로 가져와 ‘유’를 정치를 부정하기보다 정치를 누리고, 문명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문명을 누리는 태도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러한 ‘유’에 이르도록 해주는 것이 양생養生nourishing-life의 기술(자의적 권력에 맞서 자신의 생명과 삶을 보전하는 기술)과 달생達生mastering-life의 기술(양생의 기술을 삶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하는 기술)이며, ‘도술’이란 이러한 삶의 기술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시대라는 틀 안에서의 고전 읽기를 고민해온 저자는 이처럼 노장 전공자로서의 진지한 노장 읽기를 통해 통념에 가려져 있었던《노자》와《장자》의 실제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동시에 이러한 고전을 삶 속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준다. 그리하여 이 책은 저자 자신의 바람처럼 학술적 연구서이면서 작은 이야기책이기도 하다.

임기응변의 힘, 신동준


임기응변의 힘 -어지러운 세상, 동양고전 3000년의 지혜를 권하다-

신동준, 2013


▣ 출판사서평

3000년 동양고전에서 발견한 
난세를 이기는 지혜, 임기응변

조조, 칭기즈칸, 당태종, 강희제, 마오쩌둥! 
천하를 얻었던 자들은 모두 임기응변의 신神이었다

난세(亂世)의 영웅이자 치세(治世)의 간웅인 조조는 난세와 치세에 필요한 처세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투에 임할 때마다 이전에 활용했던 전략은 다시 사용하지 않기로 유명했던 조조는 흐르는 물처럼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임기응변하는 전략으로 난세를 평정해갔다. 당태종 이세민 또한 자신의 대의를 펼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준비해가면서 자기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수 있는 피의 정변(현무문의 변)을 과감히 결행했다. 이후 그는 전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인 정관지치(貞觀之治)를 일구어냈다. 마오쩌둥 역시 위기 때마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고 ‘기사회생’의 묘수를 찾아내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장제쓰를 몰아내고 ‘신중화제국’의 창업주가 될 수 있었다.
이들 동양사의 굴곡 많은 영웅들의 이야기는 어지러운 세상, 즉 난세에 자신의 뜻을 어떻게 펼쳐냈는가에 대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 처세의 핵심에 ‘임기응변(臨機應變)’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임기응변’이라 하면 대개 소인배들의 얕은 처세술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동양고전에서 말하는 임기응변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움직임을 읽고 거기에 맞게 대처하는 난세의 핵심지략을 뜻한다. 
즉 임기응변이란, 천지자연의 끝없는 순환과 변화에 맞닥뜨린 상황에서 개개인이 최고의 지혜를 동원해 내린 결단을 이르는 말로서, 임기응변에는 반드시 인간의 지략이 개입돼 있다. 그렇기에 지식과 계책 없이 엉겁결에 만들어낸 방편으로 요행을 원하는 임시변통, 혹은 임시방편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난세의 방략인 것이다. 그런데도 적잖은 사람들이 임기응변을 임시변통 내지 임시방편과 혼용하고 있다.
이처럼 임기응변은 《주역》은 물론, 《손자병법》을 비롯한 역대 병서, 《한비자》와 《상군서》를 비롯한 법가서, 《관자》와 《사기》〈화식열전〉 등의 경제사상서가 난세를 다스리는 천하경영의 성패를 결정짓는 지략의 본질로 일컫던 말이었다.
21세기정경연구소 신동준 소장(정치학 박사)은 《임기응변의 힘》(아템포 펴냄)에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오늘날의 스마트혁명시대를 난세의 전형으로 정의하면서, 난세에 피어나 난세를 이기는 지혜로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동양고전 속 ‘임기응변의 도’를 소개하고 있다. 

천지자연은 늘 변하고 움직이면서 새로운 기회를 낳는다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에 올라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다

모든 것이 어지러워 기존의 해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바로 난세다. 기존의 생각과 틀에 안주하는 순간 추락하고 마는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난세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주역》의 변역(變易, 변화의 낌새를 눈치 채고 스스로 변화하다) 논리를 전제해야 한다. 천지만물은 천기(天機)·지기(地機)·인기(人機) 등 3기의 계기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거기에 대한 대응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는 결국 천지자연의 변화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공자는 《주역》〈계사전(繫辭傳)〉에서 ‘일을 할 때 시작부터 끝까지 두려운 마음으로 임하면 역도(易道)는 그로 하여금 재난을 면하게 한다’는 말로 변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근면한 자세로 스스로를 부단히 채찍질하며 정진하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자세다. 즉 《주역》을 관통하는 변역과 자강불식이 임기응변의 근본바탕인 셈이다. 결국 세상 흐름에 맞게 대응한다는 것은, 즉 임기응변을 한다는 것은 변화에 열려 있고, 변화를 인식하며, 변화를 타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함을 뜻한다. 
3기 중 ‘천기’는 세칭 ‘천기누설’에서처럼 ‘하늘의 기밀’ 등의 뜻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장자가 파악한 ‘삶을 지속시키는 근본’인 ‘생기(生機)’의 관점으로 천기를 읽어야 임기응변에 합당하다. ‘지기’는 가장 낮은 곳에서 생명의 터전을 떠받치고 있는 땅의 후덕함으로 이해해야 땅이 주는 변화의 이로움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람의 관계 이치인 ‘인기’는 부나방처럼 이익을 좇아 움직이는 인간의 본성 ‘호리지성(好利之性)’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살고자 하는 본능인 생기의 관점에서 때를 기다리고, 땅이 만물을 생육하는 것처럼 사안(事案)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며,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실력을 조용히 갈고 닦을 때 동양고전 3000년의 지혜가 말하는 임기응변의 도를 걸어갈 수 있다. 
저자는 《주역》을 비롯한 수많은 고전을 넘나들며 난세의 영웅들이 펼쳤던 임기응변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초패왕 항우(項羽)의 마지막 절규는 난세에 천하대세의 흐름을 읽고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는 임기응변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이는 하늘이 나를 멸망시키려는 것이지 내가 결코 싸움에 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항우는 하늘의 뜻을 운운하며 스스로 자만해 대세의 흐름을 놓쳤던 자신의 과오를 애써 감추고자 했다. 이것은 난세의 지략인 임기응변의 태도가 아니다. 임기응변의 길은 하늘이 아닌 사람의 뜻으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 작가 소개

저 : 신동준 
 
申東埈
학오學吾 신동준申東埈은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안목을 바탕으로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의 저서는 독자들에게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의 대가인 청명 임창순 선생 밑에서 사서삼경과 『춘추좌전』, 『조선왕조실록』 등의 고전을 배웠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조선일보》와 《한겨레》 등에서 10여 년 간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1994년에 다시 모교 박사과정에 들어가 동양정치사상을 전공했고, 이후 일본의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춘추전국시대 정치사상 비교연구』로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21세기정경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그는 서울대학교·고려대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에게 동양 3국의 역사문화와 정치사상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월간조선》, 《주간동아》, 《주간경향》, 《이코노믹리뷰》 등 다양한 매체에 꾸준히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조선일보》 주말판 경제섹션 <위클리비즈>의 인기 칼럼 ‘동양학 산책’을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후흑학』, 『사마천의 부자경제학』, 『조조 사람혁명』, 『팍스 시니카』, 『열국지 교양강의』, 『조선국왕 vs 중국황제』, 『인물로 읽는 중국 현대사』, 『삼국지, 군웅과 치도를 논하다』, 『춘추전국의 영웅들』(전3권), 『CEO의 삼국지』,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연산군을 위한 변명』, 역서 및 편저로는 『자치통감 삼국지』(전2권), 『춘추좌전』(전3권),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초한지』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들어가는 글 난세에는 난세의 논리가 있다 

1부 변역(變易), 흥망성쇠의 계기를 읽어야 한다

1장 천기(天機), 하늘의 변역 이치를 살펴라
자강불식, 스스로 부단히 채찍질하는 힘 · 임기응변의 묘리를 터득하라 · 
살고자 하는 힘은 강하다 · 하늘과 땅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대업을 이뤄야 한다 

2장 지기(地機), 땅의 생육 이치를 통찰하라
땅처럼, 후덕을 베풀어라 · 죽음의 땅에서도 능히 살아날 수 있다 · 배수진의 힘 · 
천문지리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다 

3장 인기(人機), 사람의 관계 이치를 터득하라 
사람의 관계는 먹고 입는 데서 출발한다 ·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나은 계책은 없다

2부. 임기臨機, 누구에게나 결정적인 계기가 온다

1장 시기(時機), 철저히 대비하며 때를 기다린다
시기를 놓치지 마라 · 시기가 올 때까지 참고 또 참아야 한다 · 
인내, 달빛 아래에서 은밀히 실력을 기르는 시간 

2장 사기(事機), 사안이 무르익었을 때 신속히 움직여라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기회는 없다 · 멀리 내다보는 지혜 · 움직일 때는 신속하게 

3장 심기(心機), 마음의 자세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심기가 바로 서야 한다 · 상대의 심기를 흩뜨리는 법 · 심기일전, 승기를 잡는 내면의 힘

3부. 응변(應變),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

1장 세기(勢機), 염량세태 속에서 세를 확장하라 
안목이 힘이다 · 명리에 초연하기 ·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너그럽게 · 
부하를 자식처럼 아껴라 

2장 전기(轉機), 이기는 계기는 스스로 만들 수 있다 
대천명은 진인사의 결과일 뿐 · 식견을 키워야 안목이 생긴다 · 
과오를 적게 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 ·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계책이 필요하다 ·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3장 승기(乘機), 이기는 계기에 재빨리 올라타다
무임승차의 위험을 기억하라 · 신뢰가 쌓여야 설득할 수 있다 · 파죽지세 하라! 

4장 결기(決機), 결단 앞에서 절대 머뭇거리지 마라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해야 한다 · 체면에 얽매이지 마라 · 위기일수록 더욱 속히 결단하라

5장 투기(投機), 하나의 표적에 온 힘을 쏟아부어라
절대로 힘을 분산시키지 마라 · 단순함의 힘 · ‘파탈의 미학’을 터득하라

나가는 글 임기응변, 스마트혁명시대를 위한 동양고전 3000년의 지혜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