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의 유래에 대하여
서경의 오행과 곽점초간의 오행
‘오행’ 이란 말은 <서경書經>‘감서甘誓’에 처음 나온다. ‘홍범구주’에도 “一五行 一曰水 二曰火 三曰木 四曰金 五曰 土‘ 라고 나온다. 오행은 <서경>에 첫 출전하므로 오행은 <서경>에서 유래한 것일까?
<서경>은 상주商周의 사관史官이 기록한 것을 공자가 편찬했다고 한다. 지금 전해지는 판본은 한문제漢文帝 때의 <금문상서>와 동진東晉 때의 <위고문상서>가 보급되어 있다. <서경>의 판본보다 앞서는 BCE3세기경의 노자에 관한 출토 죽간으로 유명한 곽점초간郭店楚簡에도 ‘오행’에 관한 내용이 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곽점초간에는 오행이 “인의예지성仁義禮智聖”으로 되어 있다. <서경>의 ‘목화토금수’의 오행, 곽점초간의 ‘인의예지성’ 오행, 이 차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미발굴의 문제
음양오행설은 본래 <하도>와 <낙서>에서 유래한 것이다. 하도는 오행의 상생相生, 낙서는 오행의 상극相克 작용을 그 원리로 하고 있다. 하도와 낙서는 배달국에서 유래한 고대의 자연철학이다. (<하도>는 배달국의 태호복희의 창작 임이 많이 알려져 있는데 <낙서>는 <주역전의> 등에 의거하여 우임금의 창작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송서><하도옥판> 등에는 낙서의 창작자가 요임금, 황제헌원, 창힐 등으로 돼있다. <낙서>는 창수사자가 우임금에 전해준 배달족의 창작물로 간주된다.)
본래 배달국에 <하도>의 오행이 있었다. 이 오행문화가 황하에 건너가니 그것이 ‘홍범구주’에 기록되었다. 상주商周 의 사관들도 오행의 근원에 관한 깊은 이해 없이 오행이라는 문자는 사용하였다. 이렇게 해서 중원 전반에 번져간 오행문화, 이것이 곽점초간의 ‘오행’의 단어로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곽점초간에는 왜 ‘木火土金水’가 아닌 ‘仁義禮智聖’으로 나타나고 있는가?곽점초간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라서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木火土金水 가 발굴이 안된 문제일 것이다. 우리도 때론 오행에 관하여 목화토금수에 상응한 인도의 덕성인 ‘인의예지신’ 만으로 담론하기도 하지 않는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