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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9일 금요일

“기삼백(朞三百)' :: 정조실록 - 이가환을 불러 여러 경서의 내용을 질의하다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va_10202014_002&tabid=k

정조 5권, 2년(1778 무술 / 청 건륭(乾隆) 43년) 2월 14일(을사) 2번째기사
승문원 정자 이가환을 불러 여러 경서의 내용을 질의하다


임금이 말하기를,
기삼백(朞三百)1110) 의 주(註)는 이것이 곧 옛적의 역법(曆法)으로서 잘못되었을 리가 없을 것 같은데, 삼대(三代) 이후로 지금까지 역법이 일정하지 않았고 분각(分刻)과 절후(節候)도 각자가 같지 않음은 무슨 까닭이겠는가?”
하매, 이가환이 말하기를,
“기삼백의 주는 곧 옛적의 역법이라서 지금의 역법과 자연히 같지 않게 된 것인데, 신이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명나라 때의 이마두(利瑪竇)가 수정한 역법이 지극히 정묘(精妙)했었다. 이마두는 외국 사람인데 어떻게 혼자서 정묘한 곳을 풀게 되었고, 또한 과연 능히 충분하게 되어 다시는 잘못되어진 염려가 없게 된 것이겠는가?”
하매, 이가환이 말하기를,
이마두 이후에 또 탕약망(湯若望) 등의 수정한 것이 있었으니, 역시 이마두 자신이 창작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서양(西洋) 사람들은 옛적부터 전문가[專門]가 많아 서로들 전수(傳授)해 가며 책력을 만듦에 있어 의기(儀器)로 측정(測定) 하였는데, 그 의기의 도(度)·분(分)·초(秒)가 천체(天體)에 있어서와는 차이 나는 바가 매우 크기에, 서양 사람 자신이 이미 오래 가면 반드시 차이가 나게 된다고 말을 한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시각(時刻)의 추천(推遷)이 있게도 되고 계절(季節)의 조만(早晩)이 있게도 되어 역법이 일정하지 않으니, 혹시 천체가 별의 운행이 예와 지금의 차이가 있어서 그러는 것인가?”
하니, 이가환이 말하기를,
“맞지 않는 수가 있음은 역법이 정밀하지 못해서이고, 천체에 있어서는 만고(萬古)에 한결같은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혼천의(渾天儀)로 말한다면 톱니바퀴[輪牙]가 돌게 되어,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의 서로 맞게 됨이 마치 부계(符契)와 다름이 없으니, 천체의 회전도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인가?”
하매, 이가환이 말하기를,
“혼천의가 기계 바퀴로 운전(運轉)하게 되어 있음은 곧 사람의 솜씨로 그렇게 해 놓은 것이고, 천체의 본연(本然)은 아닌 것입니다. 춘분과 추분이 자연히 천체의 운행과 맞게 되어 있음은 곧 톱니바퀴가 성기기도 하고 배기도 하여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삼대(三代) 이후에는 도학(道學)이 밝아지지 않다가 후세에야 비로소 ‘학(學)’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면서 경학(經學)도 있게 되고 사학(史學)도 있게 되었으며, 백가(百家)들의 갖가지 기예(技藝)를 배우지 않는 것이 없게 되었다. 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의 학문은 말할 것도 없고, 차례차례 고금(古今)의 것을 섭렵(涉獵)하여 천지(天地)를 범위(範圍)함과, 역대의 치란(治亂)·흥망(興亡) 및 전대 사람들의 출처(出處)·사업(事業)에 이르기까지 해관(該貫)하지 않는 것이 없게 한다면, 이도 또한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무릇 학문에 뜻을 두는 사람들이 모두 주력하는 데가 있는 것이지만, 엄관(淹貫)하려고 한다면 과연 어떤 방법을 써야 하고, 너는 공부를 할 적에 무엇을 주력하였는가?”
하니, 이가환이 말하기를,
“신은 본시 노망(鹵莽)하여 진실로 전공(專攻)하는 학문이 없습니다마는, 대저 자신의 의지(意志)를 꺾으면서 독서(讀書)하여, 집에 있을 적에는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출신(出身)해서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사람의 당연한 임무입니다. 기(記)에 이르기를, ‘기문(記聞)만 하는 학문은 사람들의 스승이 될 수 없다.’고 하였으니, 박람(博覽)하는 것은 유익할 것이 없을 듯하고, 만일에 천자(天資)가 총명하여 자연히 엄관하게 되는 자는 또한 좋겠으나, 마침내 수신(修身)을 하여 절요(切要)하게 되는 것만 못합니다. 옛사람이 방심(放心)을 도로 찾아 기송(記誦)에 자연히 배가 되는 수가 있었으니, 만일에 모든 잡념(雜念)을 물리쳐 끊어버리고 전심(專心)하여 다스려 간다면 또한 강기(强記)하게 되는 수가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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