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우의 과학・소설 읽기] 집행인의 귀향: 매체-인공지능-주체, 디지털 존재론_1부
Voice 2013/10/01 19:47 http://aliceon.tistory.com/2214로봇은 입력된 프로그램을 따라 특정한 작업을 수행하는 기계야. 행맨이 로봇과 다른 건 자기가 알아서 판단한다는 점이지…단지 정해진 프로그램을 따르는 기계가 아니었던 거지.
1. 생체정보를 포함해 모든 게 전산화된 미래. 주인공은 이름 없는 존재다. 자신의 의지로 네트의 세계에서 적극적인 망명자가 된 탓이다. “당시 나는 어떤 결단을 내렸고, 전자적 데이터로 이루어진 이 2차적인 세계의 시민권을 자동으로 받는 일이 없도록 미리 조치했다.” 그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인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신원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 대규모 전산화 계획이 실현되기 전에 알던 사람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망명자 신세 덕분에 기묘하게 현실과 통하게 된다. “특수하고 민감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어떤 인간으로든 변신할 수 있는 나라는 존재는 매우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카드로 치면 조커 같은 패라고 할까. 미묘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노릇을 하면 살아간다. 전자적 망명자라는 위치는 안성맞춤이었다. 망명자라도 살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고, 돈 역시 문제가 생기면 비합법의 존재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2. 여느 때와 똑같이 지내던 어느 날, 그는 술집에서 우연히 돈을 만났다. 그는 대형 사립탐정 사무소의 대표였고, 때때로 그를 고용했던 사람이었다. 돈은 사건을 직접 꺼내지 않고, 그의 과거와 지식을 넌지시 언급하며 외계행성 탐사계획을 그에게 탐문한다. 그는 금성 탐사계획을 설명하면서, 흥미로운 기계를 언급한다. 이른바 텔레팩터telefactor. 그것은 로봇일까. 아니다. 로봇은 사전에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나, 텔레팩터는 그 같은 프로그램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운용되는 것일까. 멀리서 원격으로 사람이 조종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원격으로 조종가능한 전자적 ‘기계갑옷’에 가까우며, 인간의 정신을 담는 그릇으로 기능한다. 일종의 ‘매체’로 볼만한 것이다. 여기서 통제자는 흥미로운 경험을 한다고 그는 덧붙인다. 멀리 떨어진 채로 텔레팩터와 ‘교감’하는 과정에서 마치 자기가 경험하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이러한 텔레팩터는 약점이 명확했다. 서로가 피드백하는 과정에서 시간적 ‘간격’이 발생한다는 것. 탐사과정에서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테지만 사소한 변화라도 발생하면 제대로 대처하기 무척 힘들 수밖에 없다. 물론, 행성의 여러 가지 환경자료를 축적하면서 예측모형을 정교하게 만드는 식으로 보완하기는 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존재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생각했다. 멀리서 교신하느니, 아예 정신을 집어넣으면 어떨까. 여기서 인공지능의 문제가 등장한다. (그리고 덤으로 인간의 정체성까지.)
3. ‘인공지능’은 현대과학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분야다. 알다시피 인공지능은 20세기 초 두 명의 과학자의 공이 컸다. 튜링이 인공지능 모형을 추상적으로 고안했다면, 폰 노이만은 인공지능을 실제로 구현하는 현대적 컴퓨터모형을 설계했다. 적어도 계산만큼은 기술적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게 되었고, 이른바 도구적 이성이 기계에게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튜링의 생각은 간단했다. 두 개의 방이 있는데 한쪽에는 사람이 한쪽에는 인공지능 기계가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튜링의 답변도 간단했다. 사람들이 질문하고 대화를 하면서, 사람과 기계를 분별하지 못하면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흥미로운 것은 실제로 구현도 됐다는 점이다.(1966년 요제프 바이첸바움Joseph Weizenbaum은 인공지능 상담사 엘리자를 만들어 병원에 설치해 놓았고, 환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끌었다고 한다) 튜링이 구상을 담당했다면, 실현은 폰 노이만의 몫이었다. 중앙처리장치, 메모리, 저장장치, 입출력장치 등, 기술적 수준에서 한계가 있었을 뿐, 현대의 컴퓨터와 하등 다를 게 없었다. 이 고전적 컴퓨터는 2차 세계대전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던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고, 맨해튼계획에도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이때부터였다. 오랫동안 정신의 영역을 독점했던 철학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것은.
4. 사실 징후는 일찌감치 나타났다. 근대철학의 기틀을 완성한 칸트는 철학의 편제를 주체를 중심으로 재편했다.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로서, 이 때문에 실재reality는 인식의 효과 정도로 전락했다. 물론 칸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식과 실재는 동일한 논리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둘은 서로 대응한다고 생각했다. 이성의 하계 때문에 직접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식으로 인식의 실마리를 마련한 셈이었다. 철학사의 측면에서 칸트의 해결책은 관념론의 발판으로 작용했고, 이후 유구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정신을 설명할 때 언제나 유물론의 대척점에 섰다. 인간은 단순한 화합물 이상의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심드렁하게 반응한다. “컴퓨터 분야에서는 이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을 필요이상으로 논쟁적으로 받아들이는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다. 부분적으로는 의미론semantics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지능intelligence’이라는 단어에는 온갖 종류의 비물질적인 연상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단순한 용어의 문제라는 것. 인간을 설명할 때 ‘정신’이나 ‘지능’ 같이 오해를 사기 딱 좋은 개념을 사용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제 5원소 에테르처럼 말이다. 화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패러다임을 극복하기까지 장장 2천년이 필요했지만, 어쨌든 없애버리는 데 성공했다. 그랬기 때문에 주인공은 행맨의 문제를 오작동으로 생각한다. “너무 복잡했다고나 할까. 아마 그래서 고장났다고 생각하네.” 고장난 기계나 프로그램에 불과한 것이다.
1. 생체정보를 포함해 모든 게 전산화된 미래. 주인공은 이름 없는 존재다. 자신의 의지로 네트의 세계에서 적극적인 망명자가 된 탓이다. “당시 나는 어떤 결단을 내렸고, 전자적 데이터로 이루어진 이 2차적인 세계의 시민권을 자동으로 받는 일이 없도록 미리 조치했다.” 그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인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신원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 대규모 전산화 계획이 실현되기 전에 알던 사람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망명자 신세 덕분에 기묘하게 현실과 통하게 된다. “특수하고 민감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어떤 인간으로든 변신할 수 있는 나라는 존재는 매우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카드로 치면 조커 같은 패라고 할까. 미묘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노릇을 하면 살아간다. 전자적 망명자라는 위치는 안성맞춤이었다. 망명자라도 살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고, 돈 역시 문제가 생기면 비합법의 존재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2. 여느 때와 똑같이 지내던 어느 날, 그는 술집에서 우연히 돈을 만났다. 그는 대형 사립탐정 사무소의 대표였고, 때때로 그를 고용했던 사람이었다. 돈은 사건을 직접 꺼내지 않고, 그의 과거와 지식을 넌지시 언급하며 외계행성 탐사계획을 그에게 탐문한다. 그는 금성 탐사계획을 설명하면서, 흥미로운 기계를 언급한다. 이른바 텔레팩터telefactor. 그것은 로봇일까. 아니다. 로봇은 사전에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나, 텔레팩터는 그 같은 프로그램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운용되는 것일까. 멀리서 원격으로 사람이 조종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원격으로 조종가능한 전자적 ‘기계갑옷’에 가까우며, 인간의 정신을 담는 그릇으로 기능한다. 일종의 ‘매체’로 볼만한 것이다. 여기서 통제자는 흥미로운 경험을 한다고 그는 덧붙인다. 멀리 떨어진 채로 텔레팩터와 ‘교감’하는 과정에서 마치 자기가 경험하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이러한 텔레팩터는 약점이 명확했다. 서로가 피드백하는 과정에서 시간적 ‘간격’이 발생한다는 것. 탐사과정에서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테지만 사소한 변화라도 발생하면 제대로 대처하기 무척 힘들 수밖에 없다. 물론, 행성의 여러 가지 환경자료를 축적하면서 예측모형을 정교하게 만드는 식으로 보완하기는 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존재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생각했다. 멀리서 교신하느니, 아예 정신을 집어넣으면 어떨까. 여기서 인공지능의 문제가 등장한다. (그리고 덤으로 인간의 정체성까지.)
3. ‘인공지능’은 현대과학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분야다. 알다시피 인공지능은 20세기 초 두 명의 과학자의 공이 컸다. 튜링이 인공지능 모형을 추상적으로 고안했다면, 폰 노이만은 인공지능을 실제로 구현하는 현대적 컴퓨터모형을 설계했다. 적어도 계산만큼은 기술적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게 되었고, 이른바 도구적 이성이 기계에게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튜링의 생각은 간단했다. 두 개의 방이 있는데 한쪽에는 사람이 한쪽에는 인공지능 기계가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튜링의 답변도 간단했다. 사람들이 질문하고 대화를 하면서, 사람과 기계를 분별하지 못하면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흥미로운 것은 실제로 구현도 됐다는 점이다.(1966년 요제프 바이첸바움Joseph Weizenbaum은 인공지능 상담사 엘리자를 만들어 병원에 설치해 놓았고, 환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끌었다고 한다) 튜링이 구상을 담당했다면, 실현은 폰 노이만의 몫이었다. 중앙처리장치, 메모리, 저장장치, 입출력장치 등, 기술적 수준에서 한계가 있었을 뿐, 현대의 컴퓨터와 하등 다를 게 없었다. 이 고전적 컴퓨터는 2차 세계대전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던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고, 맨해튼계획에도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이때부터였다. 오랫동안 정신의 영역을 독점했던 철학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것은.
4. 사실 징후는 일찌감치 나타났다. 근대철학의 기틀을 완성한 칸트는 철학의 편제를 주체를 중심으로 재편했다.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로서, 이 때문에 실재reality는 인식의 효과 정도로 전락했다. 물론 칸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식과 실재는 동일한 논리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둘은 서로 대응한다고 생각했다. 이성의 하계 때문에 직접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식으로 인식의 실마리를 마련한 셈이었다. 철학사의 측면에서 칸트의 해결책은 관념론의 발판으로 작용했고, 이후 유구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정신을 설명할 때 언제나 유물론의 대척점에 섰다. 인간은 단순한 화합물 이상의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심드렁하게 반응한다. “컴퓨터 분야에서는 이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을 필요이상으로 논쟁적으로 받아들이는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다. 부분적으로는 의미론semantics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지능intelligence’이라는 단어에는 온갖 종류의 비물질적인 연상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단순한 용어의 문제라는 것. 인간을 설명할 때 ‘정신’이나 ‘지능’ 같이 오해를 사기 딱 좋은 개념을 사용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제 5원소 에테르처럼 말이다. 화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패러다임을 극복하기까지 장장 2천년이 필요했지만, 어쨌든 없애버리는 데 성공했다. 그랬기 때문에 주인공은 행맨의 문제를 오작동으로 생각한다. “너무 복잡했다고나 할까. 아마 그래서 고장났다고 생각하네.” 고장난 기계나 프로그램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은 진정한 창조주가 될 수 없거든. 단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재배열할 뿐이야. 오로지 신만이 창조할 수 있지.”
5. 주인공은 ‘고장 난 기계’를 수선하기 위해서 행동에 나선다. 돈에게 의뢰한 사람은 정치가로 변신한 브록덴, 그가 의뢰한 내용은단순했다. 행맨이 프로젝트 관련자들을 찾아내 복수하고 있는 것 같으니, 진상을 파헤쳐 달라는 것이었다. 외계에서 돌아온 흔적도발견됐고, 사업가로 변신한 번즈도 살해됐기 때문에 혐의는 더욱 짙었다.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려면, 행맨프로젝트 관련자들을 탐문하는 게 순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첫 번째 대상으로 정신과 전문의 레일라를 찾아간다. 레일라는 브록덴과 의견이 달랐다. 브록덴의 생각은 망상이며, 행맨의 복수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무엇보다 그녀는 행맨의 정체성을 의심한다. 원래 행맨프로젝트는 텔레팩터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계획된 것이다. 원격으로 조종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시차는 예측모형을 아무리 정교하게 구성해도 오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인격에 준하는 무엇인가를 텔레팩터에 설정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않을까. 인공지능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당연했고, 네 명의 내노라 하는 전문가들이 달려들었다. 레일라는 행맨이 성장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인격’ 비슷한 것이 형성된 것은 사실이라고 본다. 그러나, 인간과 접촉하며 학습했다고 해도, 본시 인공지능인 까닭에 정확히 인격이라고 보기도 어려우며, 실제 그렇다고 하더라도 네 명의 인격이 하나로 융합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나는 행맨이 인간의 간질발작에 해당하는 것을 일으켰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 식의 통제불가능한 전류가 전자기적 물질내부를 흘렀다면사실상 마음을 지워버리는 효과를 가져왔을 거예요. 본인 입장에서는 죽거나 백치가 되는 것과 다름없는 현상이 일어났던 거죠.”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랬기 때문에 행맨이 망가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다가, 결국은 교신이 끊어진 것도일종의 정신분열증에 빠진 결과라는 얘기다.
6. 주인공은 여기서 이상한 낌새를 맡는다. 브록덴도 그렇고 레일라도 그렇고, 무엇인가 숨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단순히 고장난것에 불과하다면, 브록덴은 행맨이 무슨 이유 때문에 복수를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행맨은 심적으로 엄청난 갈등을 경험한 뒤에, 드디어 그것들을 통제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완전한 자율성을 획득했다는 뜻입니다. 행맨은 그때까지 자기마음을 갈가리 찢고 있던 악마 4인조를 제압했고, 그 과정에서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들에 대한 전폭적인 증오를 획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브록덴이 의뢰한 시기를 생각하면 (말은 안 했지만) 자연스러운 추측이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무엇인가를읽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레일라는 인문학의 깜찍한 소설이라며, 그녀는 깐깐하게 반응한다. 그녀의 반론도 단순했다. “정신분열증에 걸렸다면 자멸했을 거고, 갈등을 성공적으로 해결했다면 복수는 불가능해진다는뜻이에요.” 실패한 자아는 복수를 꿈꿀 여지조차 없으며, 완성된 자아는 복수를 꿈조차 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디 한 군데 빈 틈을 찾기 힘든 반론이었다. 하지만, 걸리는 게 없지는 않았다. 레일라는 자신의 생각이 틀림없다고 주장하면서, 또 다른 관련자 펜트리스를 찾아가 봤자 소용없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종교적 망상에 빠져서 원래의 명민함까지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에 불과한 우리가 창조한 존재가 광기에 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식으로. 따라서 그런 우리에게 천벌을 내리려고 돌아온 것은 정당한 심판이라고 느끼는 것 같더군요.”
7. 신의 영역을 침범한 광기에 사로 잡힌 과학자mad scientist는 과학소설에서 매우 익숙한 소재요 인물이나, 그 때문에 도덕적 번민에 휩싸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심판’은 과학자와 가장 거리가 먼 개념이 아닌가. 이러한 난제 외에도 주인공은 거북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지우기 전에 함께 작업을 했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얼마간 호감을 느끼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펜트리스는 기묘한 과학자였다. 과학자면서도 유사신학자의 면모를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아니었는데, 행맨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펜트리스는 전보다 진후가 심해진 상태였다. 게다가 그는 몸소 사건을 해결하겠다고말하기까지 하였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주인공은 펜트리스와 유사신학적 논쟁을 벌이며, 혼자서 해결하려는 펜트리스를 압박한다. 핸맨이 복수의 천사라면 그에 맞서는 행위 역시 불경한 짓이며, 펜트리스의 생각이 틀렸다면 중요한 정보를 은폐함으로써 다른 관련자까지 위험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펜트리는 자기가 실패하면 신의 뜻이라고 눙치고 넘어가지만, 노련한 주인공은 빈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전 전지전능한 신조차도 사람이 죽은 뒤에야 심판을 내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말이죠. 당신 말대로라면 당신이 언급한 교만함에 또 하나의 제목이 추가되는 게 아닐까요?” 펜트리스가 교만한 인간을 비난하던내용을 근거로 그의 부덕을 공격한 셈이었다. 이렇게 하여, 어느덧 ‘행맨’은 인공지능이라는 형이상학적 문제에서 정신분열증이라는 심리학의 문제를 거쳐 심판이라는 신학의 문제로 탈바꿈된다. 그리고 심판은 실제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주인공이 떠난 지얼마 후 펜트리를 시작으로 곧바로 레일라까지 살해됐던 것이다. 이제 남은 사람은 상원의원 브록덴뿐이었고, 상황은 급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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