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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3일 수요일

자본주의만 고발하기도 벅찼던 공동체에 대한 이상화

▲  SBS <최후의 제국>의 한 장면
ⓒ SBS

마이클 무어는 2008년 <식코>를 통해 미국 의료보험 체계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고발했다. 그리고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최대 무기는 바로 이 의료개혁이었다.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확장시켜 서민들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이면을 까발린다. 

골드만삭스와 리먼브러더스 등 월가의 나태와 부정 탓에 촉발된 미국발 금융․경제위기를 들여다보며, 신자유주의가 신봉하는 자본주의의 축복과 대다수 미국 국민의 '공익'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확실히 한 것이다. 이를 가로지르는 문제의식은 하루도 빠짐없이 'God'을 외쳐대는 미국인들의 자본주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나눔'의 가치를 철저하게 배격한다는 회의와 절망이다. 그리고 마이클 무어는 민주당 오바마 정부의 출범에 주목했다. 

9일 막을 내린 SBS 4부작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은 마이클 무어가 선취한 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좀 더 확장시켰다. 이 다큐는 미국을 비롯해 1%를 위한 자본주의의 폭주에 신음하는 세계의 '보통' 사람들과 '자본주의의 눈'으로 봤을 때 세계의 끝자락에서 미개한 삶을 사는 부족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본주의가 회복해야 할 가치를 묻고 또 묻는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그 물음의 선의만큼은 꽤나 유의미했다. 

▲  SBS <최후의 제국>의 포스터
ⓒ SBS

미국과 중국, 히말라야와 태평양 오지를 가로지르는 SBS의 대기획 

제작진은 프롤로그에서 중국 상하이와 <오래된 미래>의 히말라야 오지 라다크 마을, 미국의 오하이오주와 솔로몬제도 아누타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횡단을 감행한다. 그곳에서 벼락부자가 돈을 주고 자식을 먹일 모유를 사는 신흥 강국 중국의 이면을 확인한다. 그리고 꽃을 사랑하는 브록파 부족 사람들의 아름다운 축제도 조망한다. 그다음엔 5명 중 1명의 아이가 굶고 출석하면 돈을 주는 미국의 빈곤층과 아누타 섬 사람들의 나눔과 협동의 정신인 '아로파'가 기다리고 있다. 

먼저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카메라를 들이댄 <최후의 제국>은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고 선언한다. 공화당의 롬니를 지지하는 억만장자의 삶과 홈리스 센터에 넘쳐나는 빈민층의 눈물겨운 일상. 그리고 지상최대의 낙원이라는 라스베가스 지하 배수구에 살고 있는 300명의 사람들. 금융위기와 함께 집을 잃고 차에서 생활해야 하는 가장의 처참한 생활고와 절망까지. 

제작진은 또 17년 전 파푸아뉴기니 상각부족의 '빅맨'에서 미국인 아내와의 결혼과 함께 미국의 중산층이 된 넨의 혼란을 보여준다. "돈이 없으면 인생도 없는" 나라 미국과 넨의 고향인 파푸아뉴기니의 공동체적인 삶을 비교하는 건 당연한 순서다. 여기서 되짚는 것은 몰락한 중산층을 두 번 죽이는 미국의 현 복지체계와 이를 당연시하는 공화당, 그리고 속수무책인 현 미정부의 리더십이다. 

이러한 패턴은 결혼 시장에 '몸'을 파는 중국 여성들과 라다크 부족의 '해피 바이러스'를 비교하는 3부에서도 지속한다. 그리하여 4부에 이르러서는 유럽 스페인 등지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협동조합을 통해 공동체주의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반자본주의의 싹을 엿보기도 한다. 그 끝엔 물론 아누타 섬 사람들이 간직한 나눔과 협동의 순수함이 자리한다. 자본주의가 갉아먹어 버린 '휴머니티'의 어떤 정신이 아직 살아 있는 그 곳 말이다. 

▲  <최후의 제국>의 나레이션을 맡은 배우 이병헌. 이병헌은 차분한 목소리와 호소력 있는 나레이션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 sbs

<최후의 제국>이 부족했던, 마이클 무어에게 배워야 할 그 무엇

이렇게 자본주의의 민낯을 고발하는 <최후의 제국>은 그러나 뼈아플지언정 신랄하지 않다. 냉소적이기보단 오히려 담담해 보일 지경이다. 미국, 중국에서 히말라야 산자락, 태평양 오지 끝까지 무려  65,000Km의 대장정을 카메라에 담아서일까. 마치 제작진은 스스로 마주한 자본주의의 나락과는 달리 오지에서 발견한 '가치'를 통해 망가진 자본주의를 회복해야 하지 않겠느냐 역설한다. 

그러니까 "무엇이 세상의 끝자락에서 이 공동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란 물음에 이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아로파는 정녕 불가능한 것이냐"는 문제 제기는 유의미할지언정 공허하다. 제작진도, 시청자도 이 망가지고 고장 난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미국에 끝끝내 저항하는 북한 역시 극빈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하나 마나 한 질문은 현답을 이끌어낼 수 없는 법이다. '나눔'과 '공동체'의 일정적인 대안으로 제시된 '협동조합'(한국에서도 이미 도입된)의 의미가 축소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상적인 가치만 내세울 뿐 현실적인 대안도, 또 다른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는 이 다큐멘터리가 지속해서 오지의 공동체를 이상화시킬 때, 그 망가진 자본주의 우산에서 함께 신음해야 하는 이 땅의 시청자들 역시 허탈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지사다. 

그래서 (제작진의 고생과 강조에도 아랑곳없이) 이 <최후의 제국>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여전히 미국 빈곤층들의 지금 삶이다. 출석을 한 학생들에게 돈을 주는 학교, 모텔촌에서 살며 강도를 걱정해야 하는 아이들,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나 나올 법한 지하 생활자들. 이들의 삶을 조명하며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환상을 깨부수는 동시에 우리에게 닥칠지 모를 복지체계 붕괴의 심각성을 부각했던 장면들 말이다.   

앞서 EBS에서 방영된 <킹메이커>는 과거 미국과 러시아의 선거 조작과 견고한 중도파 프레임, 그리고 오바마의 선거 전략을 통해 우리의 대선 정국을 돌아보게 하는 수작 다큐멘터리였다. 뒤이어 대선에 앞서 한 달간 방영된 <최후의 제국> 역시 리더십과 복지체계,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하나 이 공을 들인 다큐멘터리가 경각심과 문제 제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채로 '미래'에 대한 공명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점은 자못 아쉬움으로 남을 법하다. 블록버스터 다큐에 버금가는 이국적 볼거리와 '공동체적 가치'에 선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현재를 접목한 야심 찬 기획을 인정한다 해도 말이다. 

'악동'이자 '선동가' 마이클 무어가 세계의 다큐 감독들에게 미친 영향은 폐해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가 자신이 펼치려는 주제에 맞는 형식과 그에 걸맞은 논리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최후의 제국>은 그런 점에서 너무 방대하거나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다.  

다만 같은 시기, 그리스의 경제몰락을 복지 포퓰리즘이란 단선적인 관점에서 밀어붙인 '망작'을 내놓은 <MBC스페셜>과 비교했을 때, SBS <최후의 전쟁>은 <킹메이커>와 함께 '올해의 다큐' 중 한 편으로 꼽힐 만한 시도를 보여준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또 하나, 차분하면서도 안정적인 목소리와 호소력을 선보인 나레이터 이병헌만큼은 분명 '올해의 발견' 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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