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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5일 화요일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론 - 기독교 사회 형성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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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카이퍼의 기독교 사회 형성론 
  
2005/10/05(하나님나라와 기독교사회/김동춘 교수) 
최경환(20021138, M. Div., 3) 
  
There is not a single inch of the whole terrain of our human existence 
over which Christ ... does not proclaim, "Mine!"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네덜란드의 위대한 개혁주의 신학자이며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말하기를 인간의 모든 영역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것이 없다”고 말할 만한 영역이 단 한 부분도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세계의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는 다 하나님의 것이고, 그리스도의 것이며, 우리들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카이퍼는 이 세계를 ‘거룩’과 ‘세속’으로 이원화시키고 이 세상에서 도피하는 종교적 은둔주의 내지 도피주의는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카이퍼의 거룩한 열망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는 것, 우리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증언하는 정의를 실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은 카이퍼가 말하는 기독교 세계관이 무엇인지 밝히며, 그의 다양한 신학적 사고 가운데 “영역주권”(Sphere Sovereignty)에 관한 주제에 집중함으로 그가 교회론의 지평을 어떻게 사회윤리적 차원으로 확장시켜갔는가를 추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카이퍼가 추구하려고 했던 기독교 사회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를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카이퍼의 핵심적인 사고를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 1898년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강연한 『칼빈주의 강연』(Lectures on Calvinism)은 특별히 큰 도움이 됩니다. 200페이지 밖에 안되는 작은 책이지만 이 책이 영미권에 미친 영향력은 어마어마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카이퍼의 교회론에 대한 부분은  정광덕 교수의 글을 참고 했으며 정치가로서의 카이퍼의 모습에 대한 부분은 랑흘레이의 책을 주로 인용하였습니다. 
카이퍼의 세계관과 행동하는 지성이 오늘 한국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와 여러분이 함께 고민하고 토의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기독교 세계관’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동안 어떠한 논의들이 있어 왔는지 또한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적 상황에서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기독교와 정치에 대한 다양한 입장에 대해서도 함께 토론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아브라함 카이퍼의 생애 
  
아브라함 카이퍼는 1837년 네덜란드 마슬루이스(Maasluis)에서 태어나 1855년 레이던 대학교(Leiden University) 신학부에 진학, 1862년 그의 나이 25세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이듬해 그는 목사 안수를 받고 베이스트, 우트레히트, 암스테르담에서 목회활동을 하다가, 1974년 정계에 투신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에 요청하시는 정의와 자유를 위해 투쟁했습니다. 
1872년 카이퍼는 반혁명당 공식 일간 기관지였던 「데 슈탄다르트」(De Standaard)의 편집 부장이 되었고, 매주 발행되는 기독교 주간 신문「데 헤라우트」(De Heraut)의 편집장직을 맡았습니다. 1874년 카이퍼는 하원 의원에 당선되어 1877년까지 봉사했습니다. 1880년에는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교를 세우면서 카이퍼는 대학활동과 그 밖의 활동에서 20년간 불굴의 노력을 쏟았습니다. 이 시기에 그의 위대한 저작 가운데 몇 권이 기록되었으며 이 시기가 네덜란드 교회사와 정치사에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끼친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98년 카이퍼는 미국을 방문하여,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스톤 강연’을 하고, 그 기간 프린스턴 대학은 카이퍼에게 명예 법학 박사학위를 수여합니다. 그 이후 네덜란드로 돌아가 1901년까지 내각을 구성하고 1905년 수상으로 재임합니다. 1907년 그의 생일이 국가 기념일로 정해지고 1920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카이퍼는 당시 계몽주의 철학과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추종했던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들과 자유방임적 경제체제, 그리고 산업화 정책에 의해서 억압받았던 끌라이너 루이던(Kleine Luiden)이라 불리우던 사람들을 지지기반으로 반혁명당(The Anti-Revolutionary Party)이라는 정당을 조직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에 요청하시는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웠습니다. 지금도 네덜란드에서 그의 삶과 투쟁은 19세기와 20세기의 하나의 전설적인 영웅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2. 삶의 체계로서 칼빈주의 
  
카이퍼는 삶의 체계(life-system) 혹은 세계관(worldview)으로서의 칼빈주의를 주장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카이퍼의 세계관에 대한 개념은 이후에 신칼빈주의의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는 프랑스 혁명과 범신론, 그리고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현대주의와 기독교 유산 사이의 두 삶의 체계가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유산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칼빈주의 전통이 가지고 있는 독특성은 현대의 다원주의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탁월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칼빈주의 활동가에게 삶 자체는 언제나 첫 번째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카이퍼는 “모든 일반적인 사람의 체계를 지배하는 것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해석이며, 우리에게 이 개념은 칼빈주의 안에 있고,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의 직접적 교제라는 칼빈주의의 근본 해석 덕택”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 의하여 강해진 인간 마음은 사람의 모든 부분을 거룩히 바치라는 높고 거룩한 소명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쓸 모든 힘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전체 생활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는 확신이 칼빈주의의 근본사상이 됩니다. 이 강력한 사실이 인간의 전체 생활을 전체 영역의 모든 부분에서 통제하게 되었고, 이 사상에서 칼빈주의의 전포괄적인 삶의 체계가 생긴 것입니다. 
칼빈주의는 모든 인간 실존의 세 가지 근본 관계 즉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에 대하여 나름대로 뚜렷이 규정된 출발점을 갖고 있다고 카이퍼는 말합니다. 특별히 마지막 세계와의 관계에서 카이퍼의 일반은총과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깊은 통찰력이 드러납니다. 그는 칼빈주의가 모든 이원론적 사회 상태에 대한 일대 변화를 일으켰다고 말합니다. “칼빈주의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존중했을 뿐만 아니라 세상도 하나님의 피조물로 존중하며, 동시에 구원을 이루는 특별은혜와 하나님이 세상 생활을 유지하시면서 세상에 임한 저주를 완화하고 부패 과정을 붙들고 그리하여 창조주로서 자신을 영화롭게 할 목적으로 우리 생활의 자유로운 개발을 허용하려고 베푸시는 일반은혜가 있다는 위대한 원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래서 세상 생활은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라 교회로부터 해방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피하는 수도원의 도피 대신에 세상 안에서 삶의 모든 지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의무가 강조되는 것입니다. 

3. 카이퍼의 교회론과 사회윤리 
  
정광덕 교수는 사회변혁을 위한 교회의 사회 윤리 혹은 사회적 임무들에 대한 카이퍼의 견해를 다음의 두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는 제도로서 교회가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간섭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유기체적 교회는 일반 은총의 영역인 인간 사회에서 기독교적 문화를 형성해야 하는 사회 윤리적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카이퍼는 제도적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 은총으로부터 유래한다고 단호히 말합니다. 교회의 존재는 이 세상에 통용되는 모든 가치들의 전적인 탈 가치화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교회는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독특한 메시지와 기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교회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제도로서의 교회는 사회 정치적인 일에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도적 교회는 사회에 간접적인 영향력을 미칩니다. 카이퍼는 제도적 교회가 하나님과 사회 즉 개인, 가족, 그리고 국가를 포함하는 전 영역 사이에 중재자의 기능을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일반 은총의 영역 위에 제도적 교회의 어떠한 지배적 형태의 삶을 반대합니다. 
카이퍼는 일반 은총의 기관이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항할 때 그것을 탈 은총(dis-grace)의 기관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기독교인 정치가 필연적으로 요구됩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정치의 영역에 입문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카이퍼의 개혁을 위한 방법은 하나님이 원창조와 구분되는 다른 세상, 즉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재세례파의 입장과 다릅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에 의한 모든 혁명적인 행동을 거부합니다. 그가 말하는 사회 재건설 방법은, 새로운 사회를 겨냥한 기존 사회 체제를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절차를 따른 점차적인 변화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창조적 구조를 인정해야 하며 그 토대 위에서 사회를 세워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한 국가 안에서의 사회적 삶과 관련하여 기독교인들은 혁명적이거나, 보수적이거나, 혹은 사회로부터 격리된 시민들이 아닌 정상적이며 최고의 시민들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문화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 뜻은 구속받은 공동체가 일반 은총의 영역에 미치는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유기체로서 교회의 임무는 기독교 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창조의 중재자이시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적인 원리에 부합한 사회 조직을 만들어 사회 문화적인 영역들 위에 왕이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 가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되는 목적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4. 영역주권(sphere sovereignty) 
  
1880년 10월 카이퍼는 “영역주권”(sphere sovereignty)에 대한 중요한 연설과 함께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Vrije Unversiteit te Amsterdam)를 개교하였습니다. 이 연설의 핵심적인 주제는 피조물의 모든 국면들 위에 머물러 계시는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창조 세계의 모든 다양한 영역들 속에 각기 나름대로의 고유한 주권을 위임하셨다는 것입니다. 랑흘레이는 카이퍼의 영역주권사상을 아주 핵심적으로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합니다: 카이퍼에 의하면 국가, 교회, 학교, 가정 등과 같은 우리 삶의 모든 사회적 영역들은 서로 침해할 수 없는 그것 자체의 고유한 신분과 주권을 가집니다. 이를 영역주권이라고 합니다. 카이퍼는 선언하기를 절대적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사회 내의 각각의 영역 속에 제각기의 주권을 부여했으며 각각의 영역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제각기의 주권적 법질서에 의하여 유지되도록 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국가만 주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가정, 학교, 교회, 과학, 문화, 예술 등도 자체의 영역에 대하여 고유의 영역주권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합접적인 직무는 모든 영역들이 고유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형평성 있는 조절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카이퍼는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이들 여러 영역 속에 있는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 영역들이 고유의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유대학교 개교 연설에서 카이퍼는 교육의 영역이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러한 카이퍼의 영역주권사상은 칼빈주의 강연의 세 번째 강연 “칼빈주의와 정치”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카이퍼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개인간의 다양한 관계를 설명하면서 개인적 주권과 나란히 영역의 주권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칼빈주의적 의미에서 우리는 가족과 사업과 과학과 예술 등이 국가와 별개로 존재하며 국가의 우월성으로부터 자신의 생활 법칙을 도출하지 않고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높은 권위에 복종하는 모두 사회적 영역이라고 이해한다 ... 우리는 의도적으로 이 권위를 개별적 사회 영역에서의 주권이라고 부른다.” 대학은 학문적 지배권을 발휘하고, 예술은 예술의 힘을 소유하며, 길드는 기술적 지배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이 각각의 영역이나 자치 단체는 자신의 고유한 활동 영역 안에서 배타적인 독립적 판단과 권위적 행동에 대한 권세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가 허용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부가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역주권사상은 오늘날까지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가장 중요한 정치사상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영역주권은 개신교회의 영역 안에서 등장한 정치철학 가운데 가장 포괄적이고 체계적이며 개혁주의 세계관의 전통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기독교정치철학입니다. 영역주권론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사람은 헤르만 도예베르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각각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고 만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였다는 사실이 영역주권론의 근거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회의 영역들은 어느 정도 배타적이고 예외적인 성격을 인지합니다. 배타성이 영역의 주권을 보장합니다. 그는 영역주권론은 사회의 영역들의 다양성으로부터 영역들 간의 예리한 경계선 설정의 근거를 발견하며 또한 그 힘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모든 영역들은 그 영역에 고유한 소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영역을 다른 영역 위에 정위시켜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영역주권 개념에 기초한 창조물의 다양성은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의 복합성과 생명의 상호의존성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식시킵니다. 다양성에 대한 깨달음을 통하여 그들은 개인의 권리, 집단의 권리, 국가의 권리가 각기 독자적으로 보장되어지지 않으면 안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조주는 인간 삶의 모든 다양한 사회적 영역 속에서 그의 권위의 다양한 양상들을 위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역량을 사용하여 위임 통치를 수행해야 한다고 카이퍼는 주장했습니다. 

5.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 
  
1887년 8월 카이퍼는 반혁명당 총재로 선출되면서 유트레흐트에서 개최된 전당 대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세 가지 단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음의 회심과 더불어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미숙한 시기로서 하나님의 자녀는 여전히 세상의 속됨에 쉽게 말려듭니다. 두 번째 단계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은 그의 주님에게 보다 더 전적으로 의존하기 위해서 세상적인 문제들을 외면해 버립니다. 이러한 단계로 향하고 있는 많은 크리스챤들은 잘못된 신비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카이퍼는 강조합니다. 보다 더 성숙한 세 번째 단계에서 믿는자들은 심지어 옷입는 것, 일하는 것을 위시해서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았고 그러므로 모든 삶의 영역 속에서 그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셔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 각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재능을 책임감있게 사용하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는 많은 크리스챤들은 정치라는 것은 타락한 것이고 불경건한 것이므로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카이퍼는 지적합니다. 그와 같은 크리스챤들은 그들의 합법적인 책무를 사탄의 지배와 회개치 않는 사람들에게 넘겨줍니다. 그러나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간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은 개인의 영혼 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도 또한 주님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은 심지어 정치의 영역에서조차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헌신하게 됩니다. 카이퍼의 위대한 공헌은 개인의 문제나 정치적 문제에 대한 종교적인 방향성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카이퍼는 그리스도인들의 생각과 삶에 있어서 종교적 통일성을 회복시키기를 원했습니다.  
정부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 사회 내부에 서로 사상적 기반을 달리하는 집단들을 인정하는 사상적 다원주의의 필요성 그리고 공의에 대한 탐구, 이 모든 것들이 정부의 역할이며 이 정부는 죄의 사회적 영향력을 억제하고 공의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인 것입니다. 일반 은총의 대행자로서 정부는 어떠한 교회의 신조도 공개적으로 지지해서는 안되며 이단에 대한 공적인 처벌을 강요해서도 안됩니다. 오직 국가의 직무는 개인과 단체를 위하여 공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공식적인 제도적인 장치 안에서 종교적인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다른 사회 단체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그들의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고 국민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단체를 조직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실천은 교회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하여 조직되어진 여러 가지 형태의 기독교 시민 단체들에 의하여 수행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6. 카이퍼의 영향력과 평가 
  
카이퍼가 제도적인 교회 밖에서 지속적인 실천에 대한 이론적 근거로서 일반은총과 하나님 나라의 중요성을 분명히 한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은총은 죄의 파괴적인 활동을 억제하며 사회가 제기능을 발휘하며 진보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교회가 구원을 베푸는 특별 은총의 영역인 것처럼 정부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도구입니다. 일반은총의 실재를 강조함으로써 카이퍼는 문화와 교육의 문제에 자신을 연루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일반은총의 역할과 신앙과 불신앙 사이의 날카로운 대립을 확언할 수 있었습니다. 카이퍼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은총이 작용하는 신비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죄악이 관영하는 어둠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퍼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창조의 능력과 복음 안에서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가를 새롭게 보여 주었습니다. 랑흘레이는 카이퍼가 근대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세력들에 대항하여 투쟁했으나 이원론적이거나 아니면 세속주의적 세계관들로 인하여 크나큰 패배를 맛볼 수 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이원론적이거나 세속주의적인 세계관들에 대하여 포괄적인 개혁주의적 대안의 윤곽을 제시해 주었습니다고 말합니다. 
네덜란드의 신칼빈주의의 기수인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은 아직도 화란을 비롯한 영미 게통의 신학계에 건재한 상태로 존재하면서 새로운 신학자와 사회철학자들의 연구의 주제로 등장하고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특히 70년대 이후 신칼빈주의 신학정통에 속에 있는 젊은 복음주의 학자들이 정치의 영역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들은 리폼드 저널(The Reformed Journal)의 편집인들과 칼빈 대학 인문 사회과학 교수들과 미국개혁교단 관련된 학자들인 David Moberg, Richard J. Mouw, Nicholas Wolterstorff, Lewis Smedes, Stephen Monsma, Paul Henry, 그리고 사회 정의 연합회(Association of Public Justice)의 James Skillen, Paul Marshall, Stephen Mott와 같은 학자들이 그들입니다. 신원하는 이들이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정치적으로 전향적이면서 진보적인 입장을 지지하는 소위 문화주의적 개혁주의자들과 또 그들과 유사한 성향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카이퍼의 기독교 사회 형성론과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오늘날 다양합니다. 리차드 마우(Richard J. Mouw)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 카이퍼의 영역주권 사상이 이 시대에 새롭운 빛을 제공해 준다고 말합니다. 그는 “영역주권에 대한 몇가지 반성”이라는 논문에서 그동안 카이퍼의 사상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고 카이퍼의 사상을 이 시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합니다. 오늘날 사회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다양한 이론들을 카이퍼의 영역주권의 틀 속에서 새롭게 조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피터 헤슬램(Peter S. Heslam) 같은 경우는 카이퍼의 “삶의 체계로서의 칼빈주의”를 분석하면서 카이퍼가 현대주의와 대립하는 기독교 세계관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부분에 있어는 명확한 차이를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카이퍼 자신이 현대주의의 틀과 매우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통일된 원리로부터 명제를 끌어 낸다는든가(하나님의 주권), 인간의 실존에 대한 동일한 근본주의적 물음들에 대해 대답하려는 모습, 또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한 내적인 구성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적은 최근에 한국에서 얼마전 뜨거운 논쟁 가운데 진행된 기독교 세계관 비판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7. 한국적 상황에서의 기독교 세계관과 기독교 정치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할 차례입니다. 기학연을 중심으로 기독교 세계관이 한국에 소개된지 언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경배와 찬양 운동이 80년대 초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을 무렵, 대학가를 중심으로 기독청년들이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면서 이 땅에 그렇게 기독교 세계관은 씨가 뿌려졌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해진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다시 한번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자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된 기독교 세계관은 카이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개혁주의 세계관입니다. 지금까지는 기독교 세계관과 개혁주의 세계관은 거의 동일시 되다싶이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정말 카이퍼가 강조했던 종교적 다원주의가 한국에서 구현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세계관과 개혁주의 세계관을 분리해서 설명하려 합니다. 세계관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물론 카이퍼이지만 이제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용어는 개혁주의 전통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동안 한국에 소개된 기독교 세계관은 너무나 원론적인 소개 수준에 머물러 있어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나 그 내용은 채워지지 않아 사실 까 놓고 보면 아무것도 없는 속빈 강정이 되어버렸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삶의 체계로서의 세계관을 강조했던 카이퍼의 의도와 목적이 한국에서는 이상하게도 기형적으로 학문적인 기독교 세계관으로 정착해 버린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개혁주의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폐쇄성에도 비판이 가해졌습니다. 개혁주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근대적 합리주의의 산물로 그 체계 자체가 명제적-인지적 구조(propositional-cognitive structure)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로는 인간의 삶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모두 담지할 수 없고, 전통적인 신학적 진술에 매여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한국인의 삶의 스타일에 맞는 기독교 세계관은 과연 어떤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미 기독교가 사회 전반에 걸쳐 문화화된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개혁주의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함축적 의미와 한국에서처럼 기독교라는 이질적인 문화가 아직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뿌리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의 개혁주의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한국에서 기독교인들의 정치관은 어떠한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와 근현대 정치사를 논하는데 있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테마는 아마도 3?1운동과 제5공화국 당시 한국 교회의 태도일 것입니다. 카이퍼의 교회론과 연관지어 볼 때, 카이퍼는 제도적인 교회가 국가의 정치에 직접 참여해서는 안된고 다만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국가를 후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가 나라의 위기 앞에서 3?1운동 당시 정치적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한 사건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 걸까요? 제도적 교회는 항상 국가에 순복하는 태도를 보여야만 하나요? 카이퍼는 국가가 사회의 악을 억제하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도구라는 측면을 강조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국가가 하나님의 일반 은총을 억제하고 죄를 관장한 경우를 우리를 역사를 통해 수없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느 정도까지 정치적이어야 할까요? 사악한 정부에 대해서도 우리는 항상 후원해야 할까요? 개혁주의 전통의 고귀한 유산인 ‘시민불복종’을 카이퍼에게서 찾아 볼 수 있을까요? 제5공화국 시절 한국교회의 모습은 이와 같은 문제에 있어서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최근에 보수적인 교단에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흐름에 대한 분석도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기독교 정당을 세우는가 하면, 기독교 정치 리더들을 양성하기 위한 기관도 생기고, 적극적인 NGO운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보수주의 교단의 정치 참여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평가를 해야 하는지 저도 상당히 궁금합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네덜란드의 기독교 정치인인 하웃즈바르트는 기독교 정당을 시작하려 할 때 고려해야 할 상황적 요인 네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1)그리스도인이 소수인 경우 이미 활동하고 있는 비기독교적 큰 정당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이탈해 버리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정당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상실하고 고립될 수 있다는 점, (2)현존하는 비기독교 정당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신념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를 주는 나라에서는 기독교 정당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란 사실, (3)기독교 정당의 지도자들이 정치적 전문성과 살아있는 신앙을 동시에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기독교 정당 설립과 유지가 오히려 무책임하다는 사실, 그리고 (4)자신의 정치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독교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사실만으로 무조건 기독교적 정치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 하였습니다. 

  
  
  
  
-참고문헌- 
  
Peter S. Heslam, Creating  a Christian Worldview: Abraham Kuyper's Lectures on Calvinism(Grand Rapids: Eerdmans Pub. Com., 1998), 
Richard J. Mouw, "Some Reflections on Sphere Sovereignty," ed., Luis E. Lugo, Religion, Pluralism, and Public Life: Abraham Kuyper's Legacy for the Twenty-First Century(Grand Rapids: Eerdmans, 2000).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 강연』, 김기찬 역(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2). 
M. R. 랑흘레이, 『복음이냐 혁명이냐』, 이동영 엮(한국로고스연구원, 1994). 
하웃즈바르트,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선택』, 박준제 역(서울: SFC, 1995). 
신원하, “현대 미국 복음주의 교회와 정치 윤리.” 이상원 편저, 『한국교회와 정치윤리』(SFC, 2002), 
이상원, “네덜란드 개혁교회와 정치 사상,” 이상원 편저, 『한국교회와 정치윤리』(SFC, 2002), 
최태연, “벼랑 긑에 선 ‘기독교 세계관’,” 『백석저널』. 
정광덕, “아브라함 카이퍼의 교회론과 사회 윤리,” 『21세기와 개혁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한국개혁신학회 논문집 제8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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