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 논쟁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2/03/2008120301130.html
선함과 악함은 어디서 비롯되나
사실 우주와 사물, 즉 자연학적 해석에 따른 이기(理氣)론에 대해 이의를 다는 유학자는 거의 없었다. 서양 중세시대 성직자가 신을 부정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이기론이 인간의 본성, 즉 사단칠정 개념과 결합한 인간학적 관점에서는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치열하게 논쟁했다. 일찍이 이황과 기대승이 벌인 사단칠정 논쟁과 그 후속 격인 '인심도심(人心道心) 논쟁'이 그랬다.
조선에서는 남명 조식이 주리론자 이언적의 해석에 트집을 잡으면서 인심도심 논쟁이 시작됐다. 주기론자 조식은 "이언적이 귀, 눈, 입, 코에서 생기는 욕망을 사욕이라고 말한 것은 잘못이다. 그런 욕망이 생기는 것은 보통 사람이나 성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한편, 이황은 "인심은 칠정이 되고, 도심은 사단이 된다"며 주희의 학설을 답습했다. 다만 인심을 인욕(人慾)과 구별하면서 악보다는 선의 측면을 강조했다. 그러자 소재 노수신(1515~1590)이 나흠순의 견해를 계승해 인심도심논쟁에 뛰어들었다. 거기에 다시 이황과 이항, 김인후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인심도심논쟁이 활발하게 펼쳐지게 된다.
그런데 조선에서 인심도심에 대해 가장 체계적인 논쟁을 오랫동안 벌인 사람은 바로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成渾, 1535-1598)이었다. 이이와 성혼은 서로 아홉 차례나 편지를 주고받으며 논쟁을 이어갔다. 그 또한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을 닮았다. 하지만 이황과 기대승이 논쟁과정에서 점점 합의에 다가간 반면, 이이와 성혼은 끝까지 평행선을 유지했다.
먼저 성혼은 이황의 논지를 빌어 도심을 사단에 인심을 칠정에 대입했다. 그런데 사단은 하늘의 이치가 드러난 단서일 뿐이지만, 도심은 마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므로 사단과 도심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라고 봤다. 또 "이와 기의 발동이 처음에는 선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기가 절도에 맞지 않게 된 뒤에야 마침내 악으로 흐르는 것일 따름"이라고 이황의 학설을 해석하며, "인심도심설이 그처럼 구분돼 있고 이와 기가 각각 발동하는 것을 예부터 성현이 모두 근본으로 삼았으니 이황의 논의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고 했다. 역시 이기이원론이다.
이에 대해 이이는 "성현의 말씀도 횡설수설할 때가 있다"며 이황의 견해를 뭉개버린 뒤에, 인심과 도심이 서로 작용을 하는 관계여서 인심도 잘 다스리면 도심이 되고, 도심도 풀어지면 인심이 될 수 있다는 변증법적 논리를 펼쳤다. 결국은 선과 악이 각각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될 수도 있다는 일원론이었다. 또 이이는 "칠정은 인심도심의 선악을 합해 말한 것이고, 사단은 도심과 인심 가운데 선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며, 사단은 칠정을 포함할 수 없으나, 칠정은 사단을 포함할 수 있어서 서로 대치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사단칠정론이든, 인심도심론이든 모두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 악이 불변의 형태로 따로 존재하지 않아 인간의 심성을 교화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므로 누구나 다 요순(堯舜)같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임금들을 향해 왕도정치를 촉구한 것이었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이이 또한 성인이 되는 것이 평생의 목적이라고 했다. 성악설을 주장했다는 순자마저도 인간의 선한 심성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순자는 인간 본성의 다면성에 주목했다. 또 다른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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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이란 매우 오묘한 것이어서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마음에 대한 관심은 오랜 것으로 보이며 인심도심설의 문제도 그 중의 하나이다. 중국 철학사에서 인심도심설에 대한 문제가 나타난 것은 중국의 고전인 《서경》의 기록에 따르면 요순시대라고 본다. 그뒤 《논어》나 《순자》와 같은 책에서 인심도심에 관련된 구절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 해석은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고, 11세기 송나라의 주자(朱子)에 이르러서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사서(四書) 중의 하나인 《중용》의 머릿글에서 인심도심의 문제에 의의를 부여하고 그 철학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주자에 의하면, 인심이란 대체로 인간의 신체적 기운에서 나타나는 것이요, 도심이란 선천적인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볼 때 순수하게 도덕적인 것은 도심이요, 그 자체로서는 부도덕한 것은 아니나 신체적인 기운에 따라 부도덕으로 흐를 위험성이 높은 것은 인심이다. 사람의 마음이 원래는 한마음이지만 그것이 작용할 때 의리를 따라서 나타나면 도심이요, 신체상의 어떤 욕구를 따라서 나타나면 인심인 것이다.
따라서 도심에 대해서는 선하다고 말할 수 있고, 인심에 대해서는 선한 경우와 악한 경우가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도심이란 곧 도덕적인 마음이다. 이것이 순수하게 착한 마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타고날 때부터 착하다고 보는 것(性善說)에 근거를 둔다. 그러므로 인간이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그리고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마음이 있는 이상, 도심은 이러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도심은 성질상 매우 미묘한 것이어서, 마음의 깊은 곳을 잘 살피지 않으면 도심을 깨달을 수가 없고, 그러한 점에서 욕심에 흐르기 쉬운 것이다.
이러한 도심에 비하여 인심이란 그 자체를 가리켜 부도덕한 마음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항상 부도덕으로 흘러갈 위험성이 있는 마음이다. 즉, 인심의 성질은 위태로운 것인데, 그 이유는 인간에게 감각적인 욕구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며, 그런 만큼 맹목적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경》에서는 ‘도심은 희미하다(道心惟微)’라 하고 ‘인심은 위태하다(人心惟危)’라 하였다.
한국철학에서 인심도심설의 대표적인 인물은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이다. 이황은 ‘인심은 칠정(七情)이 되고 도심은 사단(四端)이 된다’라고 말함으로써 인심도심설의 문제를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의 문제와 관련시키고 있다. 그리고 인심을 인욕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서 인심을 나쁜 측면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이이는 47세 되던 1582년 <인심도심도설>이라는 글과 그림을 그려 임금에게 올리면서 인심도심설의 문제를 논리적이고 명석하게 정리하였다. 이이는 사람의 기질이란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여, 인간의 도덕성을 함양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황과는 달리 이이는 사단이 도심인 것은 가능하지만 칠정은 인심과 도심을 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이는 인심과 도심은 서로 시작과 끝의 관계가 있다는 이른바 ‘인심도심종시설(人心道心終始說)’을 주장하고 있다.
즉 인심과 도심은 서로 쌍립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인심이던 것이 나중에 도심이 되고 처음에 도심이던 것이 나중에 인심이 된다는 것으로, 인심과 도심의 상호작용을 밝혀주는 의미가 된다.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인심은 감성적인 것이고 도심은 이성적인 것이다.
그는 사서(四書) 중의 하나인 《중용》의 머릿글에서 인심도심의 문제에 의의를 부여하고 그 철학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주자에 의하면, 인심이란 대체로 인간의 신체적 기운에서 나타나는 것이요, 도심이란 선천적인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볼 때 순수하게 도덕적인 것은 도심이요, 그 자체로서는 부도덕한 것은 아니나 신체적인 기운에 따라 부도덕으로 흐를 위험성이 높은 것은 인심이다. 사람의 마음이 원래는 한마음이지만 그것이 작용할 때 의리를 따라서 나타나면 도심이요, 신체상의 어떤 욕구를 따라서 나타나면 인심인 것이다.
따라서 도심에 대해서는 선하다고 말할 수 있고, 인심에 대해서는 선한 경우와 악한 경우가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도심이란 곧 도덕적인 마음이다. 이것이 순수하게 착한 마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타고날 때부터 착하다고 보는 것(性善說)에 근거를 둔다. 그러므로 인간이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그리고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마음이 있는 이상, 도심은 이러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도심은 성질상 매우 미묘한 것이어서, 마음의 깊은 곳을 잘 살피지 않으면 도심을 깨달을 수가 없고, 그러한 점에서 욕심에 흐르기 쉬운 것이다.
이러한 도심에 비하여 인심이란 그 자체를 가리켜 부도덕한 마음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항상 부도덕으로 흘러갈 위험성이 있는 마음이다. 즉, 인심의 성질은 위태로운 것인데, 그 이유는 인간에게 감각적인 욕구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며, 그런 만큼 맹목적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경》에서는 ‘도심은 희미하다(道心惟微)’라 하고 ‘인심은 위태하다(人心惟危)’라 하였다.
한국철학에서 인심도심설의 대표적인 인물은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이다. 이황은 ‘인심은 칠정(七情)이 되고 도심은 사단(四端)이 된다’라고 말함으로써 인심도심설의 문제를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의 문제와 관련시키고 있다. 그리고 인심을 인욕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서 인심을 나쁜 측면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이이는 47세 되던 1582년 <인심도심도설>이라는 글과 그림을 그려 임금에게 올리면서 인심도심설의 문제를 논리적이고 명석하게 정리하였다. 이이는 사람의 기질이란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여, 인간의 도덕성을 함양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황과는 달리 이이는 사단이 도심인 것은 가능하지만 칠정은 인심과 도심을 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이는 인심과 도심은 서로 시작과 끝의 관계가 있다는 이른바 ‘인심도심종시설(人心道心終始說)’을 주장하고 있다.
즉 인심과 도심은 서로 쌍립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인심이던 것이 나중에 도심이 되고 처음에 도심이던 것이 나중에 인심이 된다는 것으로, 인심과 도심의 상호작용을 밝혀주는 의미가 된다.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인심은 감성적인 것이고 도심은 이성적인 것이다.
인심도심설 [ 人心道心說 ]
성리학(性理學)에 있어서 인성론(人性論)의 주요한 문제의 하나. 『서경』 '대우모'(大禹謨)편에 “인심(人心)은 위태하고 도심(道心)은 미묘하나니 정밀히 하고 한결같이 하고서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으리라”하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주희(朱熹)가 이것의 해설을 시도함으로써 인성론의 중요한 주제로 끌어들였다. 그는 마음(心)의 허령지각(虛靈知覺)은 하나뿐인데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 다른 이유는 형기(形氣)의 사(私)에서 생겨나고, 혹은 성명(性命)의 정(正)에 근본함으로써 그 지각(知覺)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이 형기(形氣)가 없을 수 없어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도 인심(人心)이 있고, 또 성명(性命)이 없는 사람이 없는 까닭에 가장 우매한 사람도 도심(道心)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형기(形氣)는 감각이나 감성이요, 성명(性命)은 지성이나 이성이다. 또한 인심(人心)은 사욕(私欲), 인욕(人欲)으로서 개인적인 감각적 감성으로 선악(善惡)이 모두 있을 수 있다. 도심(道心)은 천리(天理)로서 보편적 공공적(公共的) 이성으로 승화된 것으로 순선(純善)으로 간주되었다.
이 인심도심(人心道心)의 문제는 후에 명나라 나흠순(羅欽順)에 이르러 형이상학적 해명을 거치고, 또한 조선 성리학의 주요 과제로 등장하였다. 특히 이황(李滉)은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사단칠정(四端七情)과 이기설(理氣說)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인심(人心)은 칠정(七情)이요, 도심(道心)은 사단(四端)으로 보았고, 인심(人心)은 기(氣)에서 발(發)하는 것이요, 도심(道心)은 이(理)에서 발(發)한다고 했다. 이것은 그가 도심(道心)을 중히 여기고 인심(人心)을 폄천(貶賤)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이이(李珥)는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 비록 이름은 다르나 그 근원은 한마음(一心)이라고 설명했다. 도심(道心) 곧 의리의 마음은 성명(性命)의 정(正), 즉 이성에 근원하고, 인심(人心) 곧 식색(食色)을 위한 마음은 형기(形氣)의 사(私), 즉 감성에서 생기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이황과 이이의 기본적인 입장의 차이는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의 논변만이 아니라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과 이발(理發), 기발(氣發) 문제와 어울려 조선성리학의 양대 분파인 주리파(主理派)와 주기파(主氣派)의 커다란 논쟁점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이 형기(形氣)가 없을 수 없어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도 인심(人心)이 있고, 또 성명(性命)이 없는 사람이 없는 까닭에 가장 우매한 사람도 도심(道心)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형기(形氣)는 감각이나 감성이요, 성명(性命)은 지성이나 이성이다. 또한 인심(人心)은 사욕(私欲), 인욕(人欲)으로서 개인적인 감각적 감성으로 선악(善惡)이 모두 있을 수 있다. 도심(道心)은 천리(天理)로서 보편적 공공적(公共的) 이성으로 승화된 것으로 순선(純善)으로 간주되었다.
이 인심도심(人心道心)의 문제는 후에 명나라 나흠순(羅欽順)에 이르러 형이상학적 해명을 거치고, 또한 조선 성리학
한편 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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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의 사단칠정론과 율곡 이이의 인심도심론에 담긴 정치철학적 의미
퇴계(退溪)가 끝까지 리발(理發)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순선무악(純善無惡)한 사단(四端)을 惡할 수도 있는 칠정(七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리발(理發)을 인정함으로써 리(理)와 기(氣)가 섞이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퇴계(退溪)는 비록 리발(理發)을 인정했지만 인간의 규범적 지향처(志向處)를 제시해 주고 있다는 데 의미(意味)가 있다. 율곡(栗谷)은 인심도심론(人心道心論)은 인심(人心)도 인간의 노력여하에 따라 도심(道心)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인간의 노력여부인 “의(意)”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즉, 인욕(人欲)도 퇴계(退溪)와 같이 제거해야할 대상이 아니라고 함으로써 인욕(人欲)을 긍정하는 학자들에게 영향을 준다. 리(理)와 기(氣)기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점을 주목해 기발리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한다. 퇴계(退溪)의 정치철학(政治哲學)은 주관(主觀)的 내면성(內面性)에 기울어져 있다. 그의 순선무악(純善無惡)을 추구함은 사단(四端)을 칠정(七情)과 구분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선(善)할 수도 있고 악(惡)할 수도 있는 칠정(七情)으로부터 사단(四端)을 떨어뜨려 놓음으로써 칠정(七情)의 악(惡)함이 사단(四端)의 순선무악(純善無惡)함을 침범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였다. 율곡(栗谷)의 정치철학(政治哲學)은 객관적(客觀的) 외면성(外面性)에 기울어져 있다. 그가 인심(人心)도 도심(道心)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인간의 사회적 노력을 중요시한 것이다. 즉, 퇴계(退溪)와 같이 인심(人心)을 인욕(人欲)으로 여겨 배제해야할 대상으로 삼지 않고 인욕(人欲)의 선(善)한 측면을 존중하고 있다. 인욕(人欲)의 선(善)한 측면을 강조하다 보면 도심(道心)으로 되는 것이다. 이것이 율곡(栗谷)의 교기질론(矯氣質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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