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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7일 목요일

중국모델은 신자유주의체제의 대안이 되고 있는가? —왕후이의 충칭사건 비판을 중심으로, 이종민

http://sanzinibook.tistory.com/m/post/1004

신자유주의가 과연 옳은지 지금까지도 우리는 검증하고 있지만 새로운 세기를 맞이할 수록 왜 더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사회보장제도는 취약해지는 걸까. 신자유주의에 대한 확신과 반대로 의문과 대안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 흐름 속에어느 때보다 격변기를 겪고 있는 중국이 내놓은 개혁모델 속에서-충칭사건을 중심으로-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현재 충칭모델의 중심이었던 전 충칭시의 당서기였던 보시라이는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상태입니다. 이로 인해 실제로 높은 경제성장과 빈부격차를 해소한 충칭모델이 단순히 보시라이의 실각으로 멈추는 건지, 이제는 하나의 사건이 되버린 충칭모델이 과연 중국의 신자유주의체제의 대안으로 될 수 있을지 또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안겨줄지 이 글의 필자와 함께 생각해 봅니다.

이 글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로 한층 더 주목받고 있는 『오늘의문예비평』(2013 가을 90호)에 실린 이종민 교수의 글입니다. 이종민 교수의 중국인의 정체성과 중국개혁 개방 이후를 담은 흩어진 모래』가 곧 출간합니다. 오는 28일 경성대학교 4시 『흩어진 모래』로 저자와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추후 자세한 내용은 공지하겠습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중국모델은 신자유주의체제의 대안이 되고 있는가?
—왕후이의 충칭사건 비판을 중심으로



1. 금융위기 그 이후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세계 자본주의체제를 포함한 문명의 대전환을 요청할 만큼 인류사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충격을 반영하듯, 1989년 『역사의 종언』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한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미국 금융위기 이후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중국식 발전모델에 대한 우수성을 승인하며, ‘역사의 미래’가 과연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 자기반성의 입장을 표출하였다. 또한 미국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들 역시 1929년 대공황을 연상시키는 참극을 목도하며 자신의 과오를 실토하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금융규제 완화를 주도한 연준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2008년 10월 미 의회 청문회 증언대에서 “은행을 비롯한 다른 여러 기관들의 사익 추구가 그들의 주주와 자기자본 보호를 가능케 해줄 것이라 지레짐작해버리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청문회 의장이 “그렇다면 당신은 그간 세상을 바라보던 당신의 눈과 이데올로기가 틀렸음을 알아챈 것이군요”라고 어르자, 이 거장은 “바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또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을 선도한 시카고학파의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로버트 루카스는 은행 규제 완화에 대해 그동안 자신이 갖고 있던 믿음에 의심이 싹텄다고 이야기 했으며, 또 다른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게리 베커는 “수많은 것들이 사람들, 나 그리고 시카고가 여태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고백했다. 리처드 포스너는 『자본주의의 실패』를 통해 대재앙에 대한 책임은 규제 완화 운동을 함께했던 자신의 동료들에게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붕괴가 “경제적 자유방임주의자들의 심장부를 사정없이 내리쳤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자유시장 철학을 말 그대로 철저하게 몰락시켜버렸기 때문이다. 2010년 포스너는 1930년대식 은행 규제 법안의 부활을 요청하면서, 예전의 그였다면 상상할 수조차 없을 법한 글을 썼다. 바로 존 메이너드 케인수를 적자지출 아이디어를 제시한 천재이자 시장자유주의 집단을 떨게 만든 이라 추앙했던 것이다.1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진보세력은 대공황 이후 금융규제, 뉴딜정책, 미국식 복지시스템을 통해 소위 수정자본주의체제를 구축한 것과 같은 혁신정책이 금융위기 이후 재시도되어 신자유주의체제를 극복할 새로운 체제가 출현할 것을 기대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영미식 신자유주의체제를 극복할 대안으로서 중국굴기의 경험을 중시하고 그 가운데서 정부 주도의 성장정책과 민생정책을 결합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충칭모델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는 진보세력이 기대한 새로운 체제가 형성되지 않고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부활이라고 부를 만한 현상들이 지속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대표 이데올로그들의 자기반성2에도 불구하고 대공황 이후의 세계와 비교해볼 때, 대공황의 주범인 고도 금융통제와 투기성 위험 관리를 위한 글래스-스티걸법과 같은 금융 규제체제를 정립하지 못했고, 일자리와 유효수효 창출을 위한 루즈벨트의 뉴딜정책과 달리 천문학적인 긴급규제금융을 풀어 규제해야 할 월가의 고장난 금융체제를 되살려주었고, 사회적 약자 보호정책을 통해 미국식 사회복지시스템을 구축했던 1930년대와 달리 국민건강보험 개혁조차 후퇴하고 말았기 때문이다.3

루즈벨트와 같은 역할을 기대했던 오바마는 월가의 지배력을 되찾으려는 행크 폴슨의 운동과 절연하지 못했고, 투자은행의 힘이 미국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줄이려는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대신 그는 자신이 폴슨의 전략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게이트너를 재무장관에 임명하였고, 구제금융 정책의 핵심인물인 벤 버냉키를 연방준비이사회의 수장에 계속 앉혔다. 그리고 그의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래리 서머스를 뽑았으나 그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내며 전통적인 은행 규제법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친 사람이었다. ‘사회주의자’라고 매도하는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정권의 경제 팀은 은행의 국가 소유 지분에 대해 합당한 권리를 행사하려 하지 않았고, 부실 운영 책임을 물어 그런 기관의 장을 교체하려는 시도도 일체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치적 반대세력이 형성된 이래 오바마 팀은 월가의 입장을 존중하는 결정만 내렸다. 4
또한 티파티를 비롯한 우파들은 사회 진보를 위한 가장 강력하고 효과가 입증된 도구는 자유시장이라고 주장하였다. 엉망이 된 경제상황 속에서 해야 할 일은 순수한 진짜 자본주의 국가를 회복하는 것 그리고 헌법과 그것을 만든 이들이 진정으로 뜻한 바를 다시금 찾아내는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시장의 힘은 단 한 번도 진정으로 자유로웠던 적이 없으며, 따라서 현재 벌어지는 악몽 같은 일들로 시장을 탓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신성한 자본주의 경제를 위협하는 존재들로, 히틀러 같은 악의 무리로 매도되기까지 했다. 

민주당은 보수 우파의 소란스럽고 현란한 전술에 답답하게 대응하고, 스스로의 장점과 핵심 정책대안들도 상대방에게 빼앗겨버리고, 조용한 다수에게 믿음을 주지 못해 결국 뼈아픈 패배(2010년 선거 완패)를 겪어야 했다. 민주당은 여러모로 속수무책이었는데, 특히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였던 의료보험 문제에서의 실책이었다. 미국의 의료보험 문제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2008)에서 드러났듯이 무척 심각한 상태로, 이 문제는 미국 시민의 광범위한 동의를 이끌어낼 만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우파의 반발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고 전문가에 의존해 기술적 설명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 국민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노동계가 시장 포퓰리즘에 맞설 수 있는 최후의 제도적 세력 중 하나였음에도 노동계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해 주요한 동맹세력을 잃었다. 민주당은 이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지지기반을 스스로 좁혀왔으며, 스스로의 풀뿌리 사회운동 역량을 쳐냄으로써 우파의 공격에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민주당의 비전이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서민들의 삶의 향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금융자본주의 내부의 세력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의 개혁 실패와 수구세력의 성공적 반발로 인해 미국에서 신자유주의체제의 판도가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에서도 2012년 3월 신자유주의체제의 대안을 창출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충칭모델의 주역인 보시라이가 의문에 휩싸인 채 실각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충칭시 부정부패 척결의 영웅이었던 왕리쥔이 미국 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하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연이어 보시라이 일가의 부정 행각이 드러나는 과정이 전 세계에 중계되다시피 하다가 보시라이의 실각으로 일단락되었다. 왕후이는 이 사건을 중국과 국제세력이 연합하여 음모한 신자유주의 부활의 신호탄이라 비판하고 있는데, 이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


2. 충칭사건과 신자유주의의 부활?

보시라이 실각 직후 왕후이는 「충칭사건—밀실정치와 신자유주의의 권토중래」5라는 글에서 충칭사건을 1989년 천안문사태 이후 남순강화를 통해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한 상황과 비교하며, 이 사건은 밀실정치와 문혁의 수사를 통해 충칭모델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2005년 이후 상당 부분 중단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재추진하기 위한 정치적 전제였다고 비판한다. 주지하듯이 남순강화는 천안문사태 이후 혼란스런 국정을 안정시키고 개혁개방 정책의 지속성을 선포하기 위해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시범 지역인 남방의 도시를 방문하며 중국 내외의 자본가들에게 시장경제의 법적 안정성을 보장한 사건인데, 남순강화 이후 중국은 외국자본들이 폭발적으로 유입되고 신자유주의적 시장개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세계의 공장으로 굴기할 수 있었다.
남순강화는 정치적 통제 아래 추진되는 시장화 개혁의 모델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신자유주의적 지향성을 지닌 대규모 개혁이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추진된 국유기업의 사유화는 노동자들의 대규모 실직 사태와 제도적 부패를 초래했다. 지지부진한 농촌개혁은 광범위한 삼농위기를 불러왔고, 시장화 사유화를 지향했던 사회보장체계(의료보장체계를 포함하여) 개혁은 보장체계의 전면적인 위기를 가져왔다. 빈부, 도농, 지역 간 격차가 심화되었으며, 심각한 생태 위기 역시 초래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의 후과였다. 6

한편 중국 지식계와 시민사회는 이러한 위기에 직면하면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2000년 삼농위기에 대한 대토론을 통해 농업세 감면과 신농촌 건설운동을 이끌어냈고, 2003년 사스를 계기로 의료보장체계에 관한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사회보장제도 수립을 위한 동력을 제공했고, 2005년 국유기업에 관한 란센핑‐구추쥔 논쟁을 통해 국유기업 개혁에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의료·주거·교육의 세 가지 난제에 관한 토론을 통해 민생을 위한 여론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여론에 대한 반응으로 중국공산당의 정강 조정이 시작되었으며, ‘사회적 공평을 더욱 중시하는’ 정강의 기조가 ‘효율을 우선으로 하되 공평을 동시에 고려한다’는 90년대의 정강을 대체하게 되었고, ‘민생 중시’ 역시 최근 중국공산당의 핵심 주장으로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7

후진타오의 신정치 즉 조화사회론, 과학발전관, 포용적 성장 등은 바로 이러한 기층의 민의를 정책에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권력의 기틀이 안정된 이후 중앙정부 차원의 개혁정책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고 대신 “지방의 개혁과 각 지방의 서로 다른 모델 사이에 전개된 경쟁”이 중국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충칭, 광둥, 청두, 쑤난, 원저우 등 각 지방정부 차원에서 실험되고 있는 지방 모델들은 서로 목표와 정책이 중첩되기도 하고 경쟁하는 관계에 놓여 있게 되는데, 이 가운데 충칭은 상대적으로 도농통합이라는 과제에 치중하고 있고, 재분배나 공평, 정의를 더 강조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충칭은 원래 상당한 수준의 공업화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국유기업의 선도적 기능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의지하여 발전을 추진하고 있었다. 충칭의 염가 임대주택 실험, ‘국가와 인민의 동반 성장’ 구호, 지표 교역 실험, 적극적인 해외 진출 전략 진출 등과 같은 일련의 조치는 2000년 이후 중국 사회의 개혁에 관한 토론 과정에서 제출된 ‘더욱 공평한’ 개혁에 대한 강렬한 요구에다 실질적이고 생생한 사례들을 덧붙여 제시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충칭의 실험에 대해서는 좌파와 우파 사이의 논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좌파와 우파, 우파와 우파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관점의 대립과 날선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8

왕후이는 이러한 새로운 정치적 흐름 속에서도 기득권 세력들이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재시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인식하는데, 그 사례가 바로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중심과 세계은행이 공동 연구 발표한 ‘차이나 2030’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국유기업 민영화, 토지 사유화, 금융 자유화로, 이는 민생정치를 중시하는 현재 시점에서는 추진하기 어려운 것인데, 마침 왕리쥔 사건이 발생하면서 후진타오-원자바오 정권이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는 기회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우리는 충칭사변이 보시라이와 그 가족의 위법행위 및 기율 위반으로 인해 촉발된 상대적으로 단순한 우발적 사건이었는지, 아니면 더 심각한 배경이 깔려있는 정치적 사건인지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왕리쥔 사건이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다시 한 번 밀어붙이기 위한 일종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이 만약 처음부터 공개적인 방식으로 처리되었더라면, 그리고 사건의 당사자가 누구이고 어떤 급의 고위 관료가 연루되어 있는지에 관계없이 당의 기율과 국법이 정한 바에 따라 처리되었더라면, 결코 오늘날과 같은 상황이 연출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과 그 배경이 밀실에 처박혀 신비화됨으로써 권력가들이 사태를 컨트롤(유언비어의 창궐은 이러한 컨트롤의 결과임과 동시에 컨트롤을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하기 위한 거대한 공간이 열리고 있었다. 원자바오의 발언은 왕리쥔의 미국 영사관 진입이라는 ‘개별적 사건’을 충칭 실험에 대한 평가의 문제에 끌어다 붙였을 뿐 아니라, 나아가 ‘문화대혁명’ 비극의 재연이라는 차원으로 문제를 확장시켰고. 제11기 3중전회가 확정한 기본 노선과 역사문제에 관한 중국공산당의 결의를 다시 거론함으로써 충칭 실험이 개혁 노선의 궤도를 벗어난 중대한 정치적 오류인 듯한 인상을 대중에게 심어주었다.9

그렇다면 후진타오-원자바오 정권은 천안문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개혁을 위한 남순강화를 진행한 것처럼, 충칭사건을 통해 보시라이의 충칭 실험의 오류를 부각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재추진을 위한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 것인가?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선 먼저 충칭모델이 어떠한 배경하에서 추진된 것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충칭모델은 시장경제로 전환한 이후 성공의 위기에 직면한 후진타오 정권이 자신의 정책이념인 과학발전관을 구현하기 위한 시범모델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후진타오는 충칭시가 4대 직할시로 선정된 10년째인 2007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왕양 충칭시 당서기를 비롯한 인민대표를 접견하는 자리에서 충칭시 발전의 비전인 ‘314’ 총체 전략을 제시하였다. 즉 충칭은 중국의 서부대개발 전략의 중심으로 장강 하류지역인 상하이 등과 연결하여 연해-내륙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고 경제발전의 전국적인 확산을 선도하는 중심지역인 동시에 도농 간 격차 및 계층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도농통합 및 재분배 정책을 시범적으로 추진하는 실험지역으로서의 위상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2007년 12월 왕양에 이어 충칭시 당서기로 부임한 보시라이는 공산당 중앙지도부의 국가전략을 실행할 임무를 부여받았고, 이후 2008년 4월부터 2009년 1월까지 중앙정부와 충칭시 정부는 충칭의 구체적인 발전계획을 협의 조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원자바오 총리가 비밀리에 충칭을 시찰하고 도농통합형 개혁발전으로 삼농문제 해결, 내륙개방형 경제구축으로 구공업기지 개조와 진흥, 주요 인프라와 공공서비스 시설 건설로 도농통합 기능 강화,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 강화로 장강 상류에 생태 문명 지역 구축, 민생 개선 중심의 사회 건설로 빈민 구제 및 개발 등 충칭의 장기발전을 위한 5개 목표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2009년 1월 충칭시에 대한 종합적인 개혁과 발전방향을 제시한 중앙정부의 계획문건인 국무원 3호 문건 「국무원의 충칭시 도농 종합개혁과 발전에 관한 약간의 의견」이 발표되었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는 충칭시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관련 우대 정책인 12+10 우대 정책을 충칭시에 제공하였다.



▲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 ⓒAP=연합뉴스

보시라이의 충칭모델은 기본적으로 중앙정부의 충칭시에 대한 역할 부여와 그에 상응하는 우대정책 속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핵심 정책인 내륙개방을 통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정책, 국유기업 우량화 개혁과 토지지표 거래제 시행 등 국유자산 보존을 통한 선순환적 혼합경제 구축, 호구제 통합과 임대주택 정책 등 양극화 해소를 위한 민생 정책은 중앙정부의 시책에 호응하여 보시라이가 창조적으로 추진한 것이며, 혁명가요 부르기와 범죄와의 전쟁이나 간부의 대중친화적 동고동락 정책과 같은 사회주의 정체성 정책은 중앙정부와 갈등을 노정한 채 보시라이가 주도적으로 시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충칭모델이 거둔 높은 경제성장과 빈부격차 해소 등의 성과에 대해 다수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충칭시를 방문하여 지지를 표하였다. 하지만 보시라이의 정치적 야심이 드러나는, 군중 동원방식에 기반한 사회주의 정체성 정책 및 초법적 행정처리 방식은, 2011년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90주년기념식에서 후진타오가 보시라이의 정치활동을 겨냥하며 문혁과 좌경화를 역사적 오류로 규정한 개혁개방 초의 정책이 옳았다는 발언을 통해 이미 중앙정부의 경고의 대상이 되었다. 2012년 3월 14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을 앞둔 내외 합동 기자회견에서 원자바오가 “오랫동안 충칭시의 역대 정부와 많은 인민 군중들은 개혁건설 사업을 위해 매우 큰 노력을 기울였고 또한 뚜렷한 성과를 얻어왔다. 그러나 현 충칭시 당위원회와 시정부는 반드시 반성해야 하고 진실로 왕리쥔 사건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하며 충칭실험의 개혁적 성과와 보시라이의 정치적 오류를 구분하여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왕후이는 원자바오의 문혁 발언이 “충칭 실험이 개혁 노선의 궤도를 벗어난 중대한 정치적 오류인 듯한 인상을 대중에게 심어주기” 위한 것이며, 이는 광둥이나 원저우 모델 역시 무수한 오류와 위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칭모델에 대해서만 의도적인 정치적 탄압을 가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충칭사건의 전모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원자바오 발언이 보시라이를 포함한 충칭모델 전체를 겨냥하고 있는지 아니면 보시라이를 겨냥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문제를 판단하는데 있어 다음의 두 가지 견해를 참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영남에 따르면, 보시라이의 해임 요인으로 왕리쥔 사건에 대한 문책, 보시라이의 잘못된 작풍에 대한 문책, 중앙정책의 이탈에 대한 문책을 들고 있지만 이것이 보시라이 해임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기는 어려우며, 그보다는 보시라이의 행동이 엘리트 정치의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당의 단결과 개인의 경쟁 간에 새로운 규범을 형성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라고 인식한다.10또 이홍규는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 위에서, 보시라이 사건은 단순한 파벌투쟁이 아니라 당의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는 보시라이의 개인적 야심에 대해 모든 파벌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 중앙 지도부들에 대한 도감청 등으로 비롯된 당 지도부의 분노, 당내 최고 지도자 집단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 극좌 노선의 영향력 차단을 위한 조치로 해석한다.11 

이 두 시각을 참고하면, 보시라이의 돌출행위가 파벌을 초월하여 당 지도부의 불신을 받은 것이며, 후진타오‐원자바오는 보수적 입장에서 이를 문혁과 같은 극좌적 행위로 규정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보시라이 실각 이후 충칭시 당서기로 부임한 장더장은 충칭모델은 없다고 강조하고 관방언론에서도 충칭모델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지만, 이는 경고의 대상이 된 보시라이 정책에 대한 조정을 통해 보시라이 지우기의 측면에 착중한 것이며 충칭시의 기본적인 경제사회 개혁정책을 대전환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또 충칭모델의 이론가인 추이즈위안은 “2007년 국무원이 충칭을 ‘도시와 농촌 공동 발전 실험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충칭모델이 본격화됐다”며 “보시라이의 실각에도 충칭모델은 끝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확장되고 있다”12고 말한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룩한 혼합경제 정책, 양극화 해소를 위한 민생정책 등이 여론의 높은 지지를 받았고 이것이 시진핑 시대의 성장전략과 부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현 정부가 보시라이의 색채를 지우면서 충칭실험의 긍정성을 지속시켜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보시라이의 실각이 신자유주의 부활의 신호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왕후이가 우려하는 신자유주의 부활은, 보시라이 실각 즈음인 2012년 2월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중심과 세계은행이 공동 연구발표한 ‘차이나 2030’ 보고서(그 핵심방안은 국유기업 민영화, 토지 사유화, 금융 자유화)의 추진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제18차 당대회에서 공유제 경제의 다양한 실현 방법 추진을 동요없이 견지하며, 국유자본을 보다 많은 국가 안전과 국민경제 명맥과 관련된 중요한 업종 영역에 투입하여, 국유경제의 활력·지배력·영향력을 증강해나갈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공유제 경제에 대한 입지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2013년 4월 인민일보는 국유기업의 역할론을 옹호하며 ‘차이나 2030’ 보고서에 제동을 걸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충칭사건이 보시라이의 개인적 야심에 대한 당 차원의 조치이고, 충칭실험이 이로 인해 위축될 수밖에 없겠지만 고도성장과 민생안정을 동시적으로 이루려는 충칭실험이 시진핑 시대의 성장전략과 부합하여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충칭사건을 신자유주의 부활의 신호로 보는 것은 과잉우려의 측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3. 충칭모델을 넘어

왕후이의 이러한 우려는 당연히 충칭실험을 지속시키기 위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충칭실험의 긍정성을 보시라이의 개인적 야심과 분리시켜, 그것이 후진타오 시대의 맥락에서 창안되고 시진핑 시대의 성장 전략으로 지속될 수 있는 정당성을 재확인하고, 나아가 국제적으로 미국 금융위기 이후 민주당의 정책 실패와 수구세력의 반발로 인해 신자유주의가 부활한 사태를 지적하면서 충칭실험이 지니는 세계사적 의미를 부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전략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왕후이는 충칭모델의 정당성보다 당-국가가 비도덕적인 밀실정치(탈정치화된 정치)를 통해 세계은행과 결탁한 신자유주의의 부활을 시도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것은 「중국굴기의 경험과 도전」에서 중국굴기의 성공 요인으로 독립된 주권을 바탕으로 한 당-국가의 시장조절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과 상충되는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왕후이의 사유 속에 왜 이런 상호 모순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인가? 
「중국굴기의 경험과 도전」 전후로 당-국가의 역할에 대한 왕후이의 사유를 검토해보면 상충되어 보이는 두 가지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경제성장을 위해 전 지구적 자본주의를 수용하면서도 다국적 자본의 침탈로부터 국내 경제를 보호하여 독립적이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당-국가의 자주성을 평가하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당-국가가 인민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특정한 시장권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계급정당으로 변질되어가는 점을 비판하는 시각이다. 자주성의 시각은 중국 사회주의를 서구의 자본주의가 아닌 중국 특수성의 방식으로 현대성을 추구한 것이라고 주장한 ‘반현대성의 현대성’ 논리와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편입되면서도 자주적인 발전의 길을 추구함으로써 소위 ‘중국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다시 말하면, 자주성은 서구 중심적인 세계체제에 종속되지 않는 중국 특수의 발전방식을 설명하기 위한 논리인데, 왕후이는 이것을 신해혁명에서 사회주의 혁명에 이르는 ‘단기 20세기’의 중국혁명의 경험과 아울러 장기 시간대에서 중국 고대 문명제국의 경험과 연계하여, 중국의 정체성(특수성)이 서구 보편주의와 제국주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장기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민의 시각은 인민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하는 평등정치를 지향하는 것인데, 왕후이는 당-국가가 개혁개방 초기에 이러한 시각을 견지했으나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진행하면서 대표성의 위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비판한다. 이는 당-국가 체제와 신자유주의 시장화가 조성한 탈정치화된 정치로 인해 중국사회와 인민대중이 정치적 능력을 상실하여 공공생활에 대한 참여가 미미한 실정과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시각을 종합해보면 왕후이가 생각하는 당-국가의 바람직한 역할은 자주성을 지니면서 인민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되는데, 이 두 가지가 왕후이의 사유 속에서 상충되어 보이는 것은 현재의 당-국가가 자주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으로 인해 인민이 아닌 특정 계급의 이익을 대변해가고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인 셈이다. 「중국굴기의 경험과 도전」 발표 이후 국가주의자로 전환한 것이 아니냐는 주위의 의심에 대해, 당-국가 체제는 자신이 가장 역점으로 두어 비판하는 것이며 중성정부론 역시 중국 정부가 과거와 달리 대다수 인민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제기한 것이라는 왕후이의 반박13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렇지만 왕후이의 이러한 관점에는 몇 가지 해명해야 할 문제가 있다. 먼저, 자주성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당-국가가 자본을 사회적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능력을 지칭하는데, 중국의 발전방향이 전지구적 자본주의 내부에서 성공적인 정착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이것을 자주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당-국가가 개혁개방의 폭과 속도를 조절하여 효율적인 시장경제를 이룩한 능력은 인정되지만 개혁개방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모순이 심각하게 수반된 상태에서, 이를 자주성 실현의 과정이라고 부르기는 미심쩍다고 할 수 있다. 즉 당-국가의 자본 통제가 세계화의 적응 면에서는 우수하게 발휘되고 있으나 세계화의 함정인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통제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자주성보다는 세계화의 적응과 종속의 이중운동이 작동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국가가 자본의 효율적 관리능력은 탁월하게 발휘하지만 경제성과의 공정한 분배능력이 취약하다는 점과 연계되어 있으며, 이 두 가지 능력을 동시적으로 발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본에 대한 사회적 민주적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국가가 인민의 보편적 이익이 아닌 특권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게 된 현상도 자본에 대한 사회적 민주적 통제가 불균등한 상태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왕후이는 이를 “국가의지가 자본의 통제를 받는 가운데 인민 대중의 요구를 반영할 수 없는” “국가의 자주성 문제”로 이해하는데, 자주성 개념으로는 그 실제적 함의인 자본에 대한 관리능력과 분배능력의 불균등성을 지시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가령 왕후이가 충칭사건에서 신자유주의의 부활을 우려한 것은 국가가 세계은행(자본)의 통제를 받는다는 판단에서 기인하는 일이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개방은 자본으로부터 자주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자본의 논리에 따르는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을 수행하면서도 국내 경제가 다국적 자본에 종속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과정이었다.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중심과 세계은행이 공동 연구발표한 ‘차이나 2030’ 보고서의 핵심방안인 국유기업 민영화, 토지 사유화, 금융 자유화 역시 세계은행의 일방적 요구(자주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중심부로 도약하려는 중국이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하는 측면과 맞물려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왕후이가 우려한 신자유주의의 부활과 관련하여 볼 때 이 문제들은 시진핑 시대의 최대의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국유기업 민영화는 경제 성장전략이 산업고도화로 전환됨에 따라 부실 국유기업의 개혁과 선별적 민영화가 불가피해 보이지만, 국가기간산업의 안정적 경영, 신성장산업 분야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 국가조세수입 확대 등에서 긍정적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경우 국유기업의 급진적 개혁은 시도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토지사유화는 이미 토지사용권의 매각이 허용되고 지방정부의 주요 재정이 지대에서 충당되는 현실 속에서, 불법적인 매각이 횡행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규범화 작업과 아울러 민생안정을 위한 부동산규제와 공공임대주택에 관한 법규 제정과 연관되어 있는 문제다. 금융자유화는 외환보유고를 활용한 해외투자와 건전한 자본시장 육성을 위해 현재 금융 개방이 진행되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미국 금융위기의 경험을 통해 투기자본과 파생상품 규제하는 과정 속에서 선진적이고 안정적인 금융시스템의 정착을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시진핑 시대의 새로운 성장전략인 산업고도화의 문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개혁의 방향을 둘러싸고 이해관계자 사이의 논란이 예상되지만 자본의 효율적 관리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경험을 고려할 때 안정적인 개혁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산업고도화를 위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사회적 안전망 구축 및 그와 관련된 분배능력의 결핍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중국의 산업고도화는 정부의 유인이 아니라 시장(임금상승)의 압박 속에서 빠르게 진행하여 생산성 향상과 고도화가 기업 생존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 산업고도화 과정에서 시장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는 기업과 노동자는 도산과 실업을 겪지 않을 수 없으며, 사회안전망이 미비한 상태에서 기본 생활의 유지와 재취업의 난제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실정이다.

세계는 지금 글로벌 경제의 차원에서 기업과 산업의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산업고도화가 진행되는 시기이다. 유망한 산업과 직종이 순식간에 사양 산업과 사양 직종으로 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져 노동자들의 삶은 극도로 불안정해진다. 산업고도화는 무엇보다 창의적 노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창의적 노동력의 풍부한 공급은 국민경제와 자본 그리고 노동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 된다. 하지만 산업과 일자리의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함께 일자리와 소득의 불안정 문제를 낳는데, 이 문제는 자본주의적 시장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는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그 휴지기 동안 기본적인 생계유지에 필요한 실직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소극적 노동시장 정책), 나아가 그들이 보다 고도화된 산업 부문에서 보다 숙련된 노동자로 근무할 수 있도록 직무훈련 및 교육을 제공함으로써(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보장해야 한다. 

산업고도화가 내포하고 있는 이러한 양면성 때문에 이것이 지속성장을 위한 전략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쟁에서 이탈한 이들을 구제하고 재교육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의 구축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내수를 새로운 성장동력을 삼고 있는 시진핑 시대에 내수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반드시 정립되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이점은 충칭모델을 넘어 중국 모든 지역의 성장모델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충칭모델과 광둥모델이 신좌파와 자유주의의 이념을 제도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모델인 것처럼 비교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시장조정자로서 정부의 역할, 국유기업과 민간기업의 혼합경제, 수출과 내수, 사회복지 등에 있어 상대적인 차이가 있을 뿐 각 지역의 조건에 따른 사회주의시장경제 범주의 성장모델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해 보인다. 광둥모델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7년 충칭시 당서기였던 왕양이 광둥성 당서기로 부임하면서 후진타오의 과학발전관에 따라 기존의 발전모델을 쇄신하면서부터인데, 이 시기는 공교롭게도 보시라이가 충칭시 당서기로 부임하여 충칭실험을 개시한 시점과 겹쳐진다.

 본래 광둥모델은 개혁개방 초기 개방적 지역조건과 세계화의 이점 즉 외자유치와 수출 그리고 저임노동력을 활용하여 급성장을 이룩했지만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이 심각하고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한 문제점을 낳고 있었다. 이것은 과학발전관에 입각한 성장 패러다임의 전환에 있어서 광둥모델이 내홍을 겪게 될 것을 예고하는 지점이었다. 왕양은 기존의 저임노동에 기반한 수출경제를 임금상승에 기반한 산업고도화와 내수 전략을 통해 개혁해나가고, 아울러 정부 일방이 주도하는 관료체제에서 법치, 예산 공개, 인터넷을 통한 정책 개발 등을 통해 시민사회의 참여를 유도하는 엄정하고 유연한 정치사회체제를 형성하여, 시장경쟁과 협치를 핵심으로 하는 성장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광둥모델이 시장화가 진행된 개혁개방 선도지역에서 발전 이후의 단계를 모색하는 과정이라면, 충칭모델은 개혁개방의 후발주자로서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보존되어 있는 국유자산(국유기업, 토지)을 활용하여 경제성장과 민생안정을 균형적으로 추구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의 차이로 인해 시장화가 진행되어 국유자산이 상당 부분 민영화된(토지사용권의 매각을 포함하여) 지역에서는 충칭모델의 장점을 부분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으며, 시장경제의 축적에 기반한 새로운 성장모델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현재 광둥지역은 경제발전 단계로 볼 때 산업고도화를 선도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지역이다. 그런데 산업고도화를 추진하기 위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사회안전망이 가장 취약한 곳이기도 하다. 광둥은 GDP 규모에서 볼 때 중국 최고의 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사회안전망의 수준을 반영하는 사회보험에 있어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부조보다 개인이 시장원리에 따라 보험금을 부담하는 개인보험 위주여서 공공부조비가 전국 최저의 상태에 처해 있다. 광둥지역이 기층민중의 저항 사태가 가장 심각한 것은 이러한 불균등한 사회조건을 반영하는 것이다. 왕양은 ‘행복광둥’을 구호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러한 사회조건하에서는 산업고도화와 내수를 동시적으로 이루나가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점이 바로 시장원리에 충실한 현재의 방식을 넘어 새로운 성장모델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이다. 광동지역과 같이 시장경제와 개인 중심적 사회문화가 형성된 곳에서는 생산적 복지사회 모델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생산적 복지사회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평적 수직적 차원의 사회적 연대 원리가 공유되어야 한다. 소득이 많은 이는 누진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소득이 적은 이는 더 적게 내지만, 평균적으로는 모든 이들이 보편적 복지가 심화되는 것에 상응하여 각자의 시장소득의 일부를 자신을 포함한 모든 시민을 위해 세금 또는 사회보험금으로 내는 제도가 정착되어 한다. 그리고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모든 시민은 동등한 복지 수혜권을 가질 수 있으며, 누진적 세금과 사회보험금을 재원으로 하는 생산적 복지사회를 통해 각 개인은 자본과 시장으로부터 최대한 독립하여 생애 전체에 걸쳐 기본 필요를 충족하는 인간존엄성에 걸 맞는 삶이 가능해질 것이다. 14광둥지역이 시민의 협의 및 누진적 세금과 사회보험금을 바탕으로 한 생산적 복지사회를 건설하고 이것이 산업고도화와 내수를 진작시키는 새로운 성장모델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열어나간다면, 개혁개방 선도지역들이 새로운 개혁방향을 모색하는데 있어 중요한 참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4. 중국식 복지사회

현재 중국은, 왕후이의 지적대로 “지방의 개혁과 각 지방의 서로 다른 모델 사이에 전개된 경쟁”이 지속적 발전을 위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모델’이 신자유주의 체제의 대안으로 공유되기 위해서는 지역 발전모델 사이의 경쟁을 넘어 중국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추구해나갈 목표와 개혁방향에 관한 논의가 수반되어야 한다. 

필자는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복지사회 모델이며, 그를 위해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자본에 대한 효율적 관리와 분배 능력의 불균형 상태를 조정하여 성공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복지사회의 패러다임을 정립하고, 지역에서는 좌우의 이념대립과 발전주의를 넘어 삶의 질을 추구하는 복지사회 패러다임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발전방식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들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공유제와 민생정책을 통해 공동체사회를 추구해나가는 충칭모델, 시장경제에 기반한 생산적 복지사회를 건설해나가는 광둥모델, 그리고 각 지역에서 자신의 실정에 부합하는 사회복지 방식을 결합하여 새로운 성장모델을 정립한다면, 개혁개방 초기의 신자유주의적인 사회주의시장경제에서 사회주의복지사회로 혹은 시장사회주의에서 복지사회주의로 중국이 전환해나가는 길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정부도 현재 ‘중국식 사회주의 복지사회’ 건설을 목표로 2011년 사회보험법을 수립하는 등 단계적 발전전략을 마련해놓은 상태다. 먼저 제도의 결함을 개선하고, 도시 주민과 농촌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 체계의 수립으로부터 공평·보편적인 혜택,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적극적이고 점진적으로 추진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생활 걱정을 해결함과 동시에 삶의 질과 만족감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고, 국민의 자유·평등·존엄을 보호하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는 중국식 사회주의 복지사회를 수립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2020년까지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의 수립은 국가 발전에 있어서 이미 확정된 목표인데, 도시 주민과 농촌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 체계를 수립하고 모든 사람이 사회보장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욕구와 발전 가능성에 근거하여 사회보장 발전 전략을 다음과 같이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 불완전한 사회보장 체계에서 건전하고 완비된 제도로 발전하는 단계, 2) 선별적인 사회보장에서 공평하고 보편적인 제도로 발전하는 단계, 3) 개인의 생존보장에서 인간의 자유·평등·존엄을 보호하는 제도로 발전하는 단계. 

문제는 ‘중국식 사회주의 복지사회’를 추진할 주체와 재정을 어떻게 확립하느냐에 있다. 중국은 북유럽 복지국가를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복지와 국가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승인하면서도 복지국가를 중국이 따라야 할 모델로 삼지는 않는다. 중국은 아직 북유럽 수준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만한 경제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대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는 경제력의 차이 때문만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분배능력 결핍과 연관되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북유럽 복지국가는 수직적・수평적 연대의 원리를 바탕으로 국가가 주도적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여 누진적 조세제도를 통한 재분배를 실현하며, 경제민주화를 통해 국민 모두가 보편적 복지를 향유하는 사회공동체를 추구하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의 사회복지는 국가 주도적인 공공서비스보다는 기업과 개인이 보험금을 분담하는 사회보험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복지재원은 누진적 세금제도와 같은 재분배방식보다 임금상승에 의존하는 일차 분배 중심이며, 도농 간 계층 간 복지 서비스에 커다란 격차가 생기는 불평등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경제력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인해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재분배시스템이 구축되지 못한 사회조건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인 때문에 중국의 사회보장시스템에는 재분배 기능이 미약하다. 중국의 사회보장은 보험·재분배 측면보다는 개인주의적·자본주의적 접근을 하고 있어서 소득 재분배 기능을 해야 할 사회보장이 오히려 소득역진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시장 소득에 사회적 급여(사회보험, 교육, 보건의료 등)을 합할 경우 지니계수가 더 악화되며, 소득이 높을수록 사회적 급여를 더 많이 분배받는 실정이다. 이는 도농 간 이중 복지체제와 호구제도의 불가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개인계정 중심의 연금개혁도 소득역진적이며 상위 소득계층에게 유리한 방안이라는 비판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15

경제적 불평등과 아울러 사회복지시스템의 재분배 기능 미비로 인해 현재 중국의 사회적 불평등은 심각한 상태에 처해 있다. 후진타오는 조화사회론, 과학발전관, 포용적 성장 등을 제기하며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을 추진했지만 후진타오 시대 역시 불평등이 완화되기보다 더 심화되어 갔다. 이는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개혁되지 않은 상태에서, 왕후이의 우려대로 당-국가가 특권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계급정당으로 변질되어 간 점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즉 인민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국가가 자본의 효율적 관리를 통해 GDP 규모는 커져가지만 분배시스템의 미비로 인해 국부가 특권 계층에 집중되는 불균등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부활에 대한 우려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중국사회 구조를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복지사회 패러다임으로 바꾸어나가는 정치적 비전과 그것을 추진해나갈 정치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인민의 정치참여가 제한된 중국과 같은 당-국가 체제에서는 장기적으로 민주공화국 건설을 위한 사회운동을 추진하면서 단기적으로는 복지사회의 전망을 지닌 세력들이 국가에 개입하여 적극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정책 수립의 역할을 수행할 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복지사회는 이념대립이 아닌 생활정치 속에서 인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건설될 수 있다. 왕후이의 경우 정협위원이 되어 국가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만큼,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처럼 생활정치를 통해 사회의 불평등구조를 개혁하고 인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민주공화국 건설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이는 중국 발전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자주성이나 탈정치화된 정치의 논리로는 불가하며 자본의 민주적 통제와 복지사회 구현을 위한 중장기적인 생활정치의 비전을 통해야 가능한 일이다. 왕후이를 포함한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러한 정치운동을 수행할 때, 비로소 국가 주도의 발전전략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공동부유사회로 나아갈 수 있으며, 이것이 영미식 신자유주의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넘어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상상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정착된 불평등한 정치경제적 여건으로 볼 때 향후 중국은 ‘중국식 사회주의 복지사회’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힘겨운 과제를 짊어지게 될 것이다. 현재 복지재정이 GDP의 6~7%를 차지하는 수준에서 20%이상으로 확충해야 하는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복지사회를 추진할 주체로서 인민의 정치적 참여가 제한되고 정부가 자본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의지가 없다면 복지사회 구현에 소요되는 재정을 마련할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점은 중국식 복지사회가 국가 주도의 시혜가 아니라 인민이 주체가 되는 정치발전(20세기식 인민동원의 정치가 아닌 시민권에 기반한 사회민주의 정치)과 공동체윤리를 통해야 실현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중국 앞에 놓여 있는 거대한 도전인 셈이다. 

중국이 인민의 행복을 위한 삶의 질 향상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중국의 정치 목표가 국가와 민족 단위의 국력 경쟁을 넘어 인민의 행복한 삶을 위한 문명정치 실현으로 나아간다면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 평화를 위한 거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진정한 의미의 세계대국이 되는 길은 바로 이러한 문명전환의 역할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수행하느냐의 문제와 연계되어 있을 것이다. 중국식 복지사회가 21세기 인류의 희망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 도전이 막 시작되었다. 



이종민

경성대학교 중국대학 교수. <중국의 창> 편집인. 『글로벌 차이나』, 『근대 중국의 문학적 사유 읽기』 등의 저서가 있다. jmlee110@ks.ac.kr


일러두기
글을 이해하기 위한 참고문헌 각주는 표기하지 않았고 인용한 글에 대한 문헌은 각주를 표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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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예비평 2013.가을 - 10점
산지니 편집부 엮음/산지니


  1. 토마스 프랭크, 함규진·임도영 옮김,『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갈라파고스, 2013, 54쪽. [본문으로]
  2. 이러한 고백을 하지 않은 신자유주의 경제이론가들 역시 구제금융을 제공하도록 요청하였다. 미국의 대표적 신자유주의 찬양자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구제법안을 구하라(Rescue the rescue)」라는 제목의 칼럼을 <뉴욕 타임즈> 2008년 9월 30일자에 게재하였다. 그동안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며 정부의 개입을 경멸했던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신념까지 어기며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촉구했던 것이다. [본문으로]
  3. 물론 이 문제를 오바마와 민주당의 개혁 실패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세계정치 역학으로 볼 때 대공황시기에는 소련이라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존재하여 미국과 경쟁관계에 있었으며, 당시 소련의 ‘계획경제’는 대공황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감에 따라 자본주의 국가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사회주의적’ 정책을 수용할 수 있는 흐름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금융위기 시대에는 이십여 년 전 현실 사회주의가 실패하여 위기 극복에 사회주의적 정책을 활용할 수 있는 이념적 기반이 사라진 상태였으며, 진보세력이 중국모델을 주목한 것도 대공황 시기 소련의 ‘계획경제’와 같은 대안을 기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4. 토마스 프랭크, 앞의 책, 213쪽. [본문으로]
  5. 왕후이, 성근제 옮김, 「충칭사건―밀실정치와 신자유주의의 권토중래」, 『역사비평』, 2012년 여름호 참고. 아울러 이 글은 유럽외교관계위원회 위원장 마크 래너드가 편한 CHINA 3.0 (2012.11)에 "Political Repression and the Resurgence of Neoliberalism in China"라는 제목으로 요약 소개되어 있다. [본문으로]
  6. 왕후이, 앞의 글, 168쪽. [본문으로]
  7. 왕후이, 앞의 글, 169쪽. [본문으로]
  8. 왕후이, 앞의 글, 170쪽. [본문으로]
  9. 왕후이, 앞의 글, 172쪽. [본문으로]
  10. 조영남, 「보시라이 해임을 보는 한 시각」,『동아시아브리프』, 54~55쪽. [본문으로]
  11. 이홍규, 「보시라이의 숙청과 충칭모델의 미래」,『현대중국연구』14집, 2012, 64~69쪽. [본문으로]
  12. 「시진핑 10년, 기로에 선 한국」, 한국경제 (2013. 3. 6.) [본문으로]
  13. 이욱연, 「중국 비판적 지식인 사회의 새로운 분화: 첸리췬과 왕후이의 경우」, 『동아연구』 32권 1호, 서강대동아연구소, 2012, 90쪽. [본문으로]
  14. 조원희·정승일, 『사회민주주의 선언』, 홍진북스, 2012, 72쪽. [본문으로]
  15. 원석조, 「중국 복지체제의 성격」, 『보건사회연구』 30집, 2010, 436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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