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 자유사회주의와 중국의 미래 ㅣ 현대중국의 중국의 사상과 이론 2
추이즈위안 지음, 김진공 옮김 / 돌베개 / 2014년 2월
평점 :
출처 :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제8호 2014년4월호
중국 신좌파의 불안한 모험?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추이즈위안 / 돌베개 / 2014년2월 / 12,000원
얼마 전 영국의 좌파저널 <뉴레프트리뷰>에 실린 인터뷰를 모은 책 『좌파로 살다』(사계절)가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끈 것은 60여년 동안 발행되는 이 저명한 잡지의 수많은 인터뷰 중 <뉴레프트리뷰> 편집부가 누구의 인터뷰를 선별해 실었고, 어떻게 배치했는지였다. 16개의 인터뷰 중 제4부에서는 21세기 비서구 좌파의 사유를 다루었는데 주앙 페드루 스테딜레(브라질 MST)와 아사다 아키라(일본), 그리고 중국의 대표적인 신좌파인 왕후이(汪暉)의 인터뷰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인터뷰는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를 유작으로 남기고 2009년 세상을 떠난 조반니 아리기였다. 이러한 선별과 배치는 20세기와 21세기 초입을 거치면서 전지구적으로 분포된 좌파의 확장을 보여줌과 동시에 ‘중국’에 대한 서구 신좌파들의 관심을 보여준다.
추이즈위안(崔之元, 1963년생)은 왕후이(1959년생)와 동년배로서 이 둘은 중국 신좌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왕후이가 루쉰 연구가로서 인문학적 신좌파를 대표한다면, 추이즈위안은 정치(경제학)학자로서 제도적 신좌파를 대표한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그는 신좌파 중에서도 가장 실천적으로 ‘충칭모델’의 성립에 가담했다. (지난 『미래에서 온 편지』 2호에 소개했던 책 『중국을 인터뷰하다』(창비)에는 추이즈위안의 인터뷰와 중국 신좌파들의 최근 경향에 이론적 영감을 준 자유주의자 야오양, 그리고 이들을 비판하는 첸리췬의 인터뷰를 볼 수 있다.) 이번에 나온 추이즈위안의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은 바로 그 충칭모델의 이론적 자원에 대한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실험은 계속된다
2012년 충칭 당서기 보시라이는 대륙 권력의 핵심인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되기 직전 역풍을 맞고 추락했다. 이로서 중국 신좌파의 ‘충칭실험’이 끝난 게 아닌가, 광둥모델의 대항마는 사라진 게 아닌가라는 세간의 평이 존재했다. 그러나 추이즈위안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보시라이와 더불어 충칭모델의 또다른 핵심 주체였던 충칭시 시장이었던 황치판이 중국공산당 18기 3중전회에서 개혁방안의 초안을 작성할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는 과연 무엇일까? 추이즈위안에 따르면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경제적 목표는 ‘개혁’과 기존 금융시장 체제의 전환을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하는 것이며, 정치적 목표는 ‘경제적 민주주의’와 ‘정치적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다.
추이즈위안을 비롯한 중국의 신좌파들은 (금융) 자본 위주의 경제질서에 매우 부정적이며 이러한 질서를 확립한 서구 보편주의에 부정적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를 경우 제3세계의 다양성과 역량을 사상시킨다.그렇다고 대척점에 서 있는 문화상대주의자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신좌파들은 양자를 초월하기 위한 관건은 ‘제도의 창조적 혁신’이라고 보고 있다. 추이즈위안이 보기에는 이러한 혁신의 총합이 ‘사회주의 시장경제’ 또는 ‘자유사회주의’이다.
그는 국가소유도 아니고 개인소유도 아닌 중국 농촌의 토지 집단소유가 푸루동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이는 ‘자본주의 대농장이 소농을 모두 잡아먹기를 기다리던’ 카우츠키와 독일 사회민주당과는 다른‘중국적 실천’이었다는 것이다. 추이즈위안에게 강력한 영감을 준 이론가 중 하나는 제임스 미드이다. 미드의 ‘노자합자기업’과 ‘사회적 배당’(기본소득과 연결되는 개념)을 근거로 추이즈위안은 중국의 주식합자제도가 사회적 배당으로 나아가는 실험을 기대한다.
이러한 추이즈위안의 제도적 설계의 이면에는 ‘사상적 전제’가 있다. 바로 ‘자본주의’가 ‘시장경제’와 같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반시장적’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를 대표하는 이론가는 프랑스 아날학파의 창시자인 페르낭 브로델이다. 이 지점에서 브로델-월러스틴-아리기의 사상적 계보가 중국의 신좌파들로 연결되고 있다.
신좌파, 공산당의 이데올로그인가?
최근 한국 지식계에서도 오랜만에 중요한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의 중심에는 연세대 조경란 HK 연구교수가 낸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글항아리)가 있다. 조경란 교수는 이 책을 통해 2000년대 후반, 정확히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중국 경제의 성공(이른바 중국 ‘굴기(崛起)’) 이후 왕후이를 비롯한 중국 신좌파들은 더 이상 ‘비판적 지식인’도 아니고 ‘국제주의자’도 아니라고 비판한다. 중국 신좌파들은 ‘자본’에는 비판적일지언정 ‘국가’에는 침묵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그가 되었다는 것이다. 왕후이는2000년, “세계 체계의 힘에 주목하고 그 힘에 대항하는 세계적 규모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지만 최근에 와서는 시진핑이 얘기하는 중국몽(中國夢)을 두둔하면서 세계질서 속에서의 중국의 위상 재고,미국을 넘어서기 위한 전략, 중국모델론, 소프트파워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경란 교수의 이러한 신좌파 비판에 대해 ‘신좌파에 대해서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일당체제가 체제의 출발점인 사회에 대해 서구적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 아닌가’ 등의 반비판이 존재한다.
하지만, 왕후이와 더불어 중국의 대표적인 루쉰 연구가이자, 신좌파에 대해 관대했던 첸리췬의 중국 신좌파에 대한 비판적인 물음을 들어보면 중국 신좌파의 위상과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공산당이 정말로 자기조정의 기제를 가지고 있는가? 중국의 농민은 진정 ‘사회적 주체성’을 지니는가?중국의 당과 정부는 진정 중성적(中性的)이어서 이익집단과 분리되어 있는가?”
예컨대 신좌파들은 야오양의 ‘중성정부(中性政府)’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중국 정부(혹은 중국 공산당)가‘특정한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계급이익’을 대변한다고 보는데, 이거야말로 국가에 포섭된 지식인의 대표적인 모습 아닌가?
중국 신좌파들이 국가주의화 되면서 이들의 관심은 ‘중국모델론’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중국모델론’은 서구 신좌파들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다. 바로 ‘미국’을 넘어서기 위한 ‘현실 가능한 경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 말이다. 중국모델론은 미국 중심 체제, 신자유주의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지만, 또다른 한편으로는 ‘모델’로의 정합성과 현실성을 기준으로 지적 자원이 배치되면서 상상력을 제한하고 협소해질 수 있다. 또한 중국 공산당 체제를 옹호해주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주목해서 봐야 한다. 설사 그러한 ‘대안적 중국모델’이 성립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서구 중심주의와 마찬가지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오히려‘자유주의 좌파’로 분류되는 첸리췬의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재구성이 신좌파보다 더욱 좌파스럽게, 더욱 급진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물론 복잡한 대륙의 사상적 지형을 온전히 따라잡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곳으로, 보다 넓은 시야로 옮겨가야 하지만 말이다.
<더 읽을만한 책>
「중국에서 좌파로 산다는 것」 / 『좌파로 살다』/ 뉴레프트리뷰 엮음 / 사계절 / 2014년2월 / 35,000원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 조경란 / 글항아리 / 2013년10월 / 18,000원
『중국을 인터뷰하다』/ 이창휘·박민희 엮음 / 창비 / 2013년8월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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