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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1일 목요일

이윤 사상의 현대적 이해

[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숨은 인재 발탁     2012-03-26 

이덕일
역사평론가
『세조실록』 재위 7년(1461) 6월조에는 ‘부암의 늙은이, 위빈의 노인(渭濱之老)’이라는 말이 나온다. ‘부암의 늙은이’는 부열(傅說)을 뜻한다. 은(殷)나라 고종(高宗)은 백방으로 인재를 구하러 다니다가 부암이란 곳에서 죄수들과 함께 성을 쌓는 노인 부열을 발견하고 재상으로 삼았다. ‘위빈의 늙은이’는 려상(呂尙)을 뜻한다. 원래 강(姜)씨인데 그 선조가 려(呂) 땅에 봉해졌으므로 려상이라고 불렸다. 위수(渭水)가에서 낚시질하다 주(周) 문왕(文王)에게 발탁되어 스승(師)이 된 강태공(姜太公)이 려상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남의 참외밭에서는 신발끈을 매지 말고, 오얏(자두)밭에서는 관을 고쳐 쓰지 말라(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는 강태공의 말이 실려 있다. 정조는 재위 1년(1777) 1월 ‘조정의 벼슬아치가 모두 어진 것도 아니고, 초야(草野)의 인물이 모두 어리석은 것도 아니다’라면서 “판축과 조황의 어짐(版築釣璜之賢)은 쉽게 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괄지지(括地志)』에 부열을 얻은 곳을 ‘성 쌓은 곳(版築之處)’이라고 기록한 것처럼 성 쌓는 인부 중에도 인재가 있다는 뜻이며, 황계(璜溪·위수)에서 낚시질(釣)하던 노인 중에도 인재가 있다는 뜻이다. 나중에 은(殷)나라 재상이 된 이윤(伊尹)은 원래 요리사였던 인물이다. 『한서(漢書)』 ‘가의(賈誼)열전’은 한(漢)나라 가의가 불과 스무 살 때 문제(文帝)에게 태중대부(太中大夫)로 발탁되어 대대적인 개혁을 주창했고 전한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이 임란 발생 불과 1년 전인 선조 24년(1591) 서애 류성룡(柳成龍)에게 발탁되어 전라좌수사가 되지 않았다면 이후 임란이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할 정도로 인재 발탁은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여야 각 정당의 공직 후보자 선정 결과를 보면 유체(幽滯)란 말이 생각난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버려진 인재를 뜻한다. 부열과 강태공처럼 연륜 있는 전문가도, 이윤처럼 빈천한 신분의 인재도, 가의처럼 신진 기예도 찾기 힘들다. 반면에 은문(恩門)은 흘러 넘쳐 보인다. 은문이란 과거 급제자가 자기를 급제시켜준 시관(試官)을 일컫던 말로서 평생 문생(門生)의 예를 다했다.

후한(後漢)의 공융(孔融)은 묻혀 있던 예형(?衡)을 천거하면서 “백 마리 지조가 한 마리 악조만 못하다”고 쓴 ‘예형을 천거하는 표’를 올렸다. 그래서 남을 천거하는 글을 악표라고도 하는데, 우리에겐 악조는 언감생심이고 최소한 은문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지조만 건져도 다행이다 싶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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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민심 획득

[중앙일보] 입력 2012.03.19 00:00 / 수정 2012.03.19 00:00
이덕일
역사평론가
민심(民心)은 곧 천심(天心)이란 말이 있다. 백성들에게 참정권 자체가 없던 왕조시대에 생긴 말이다. 민심을 얻는 사람이 천명(天命)을 받아 임금이 된다는 역성혁명의 논리가 담겨 있다.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1633)의 『경연일기(經筵日記)』에는 정경세가 인조에게 “인심의 향배가 곧 천심(天心)의 향배입니다”라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민심이 떠나면 하늘이 새 인물에게 천명을 내려 왕위가 바뀌고 왕조가 교체된다는 뜻이다. 인조반정으로 즉위한 인조이기에 더욱 민감한 말일 수밖에 없었다.

 민심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는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하게 됩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곧은 사람을 들어서 쓰고 여러 굽은 사람을 버려 두면 백성이 복종하지만 굽은 사람을 들어서 쓰고 여러 곧은 사람을 버려 두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고 전한다. 백성들이 신망하는 곧은 사람(直)을 들어 쓰면 백성들이 복종하지만, 그 반대면 민심이 돌아선다는 뜻이다. 간단한 말 같지만 실천하는 권력자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권력자 자신이 쓰고 싶은 사람만 골라 썼다가 버림받는 정권을 숱하게 목격하면서도 말이다.

 현재 여야(與野) 공천 과정에서 굽은 사람들을 썼다가 민심이 급속도로 나빠지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맹자(孟子)가 제시하는 민심 획득 전략은 백성들과 함께 즐기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나오는데 제선왕(齊宣王)이 이궁(離宮)인 설궁(雪宮)에서 맹자를 만나 “현자(賢者)에게도 이런 즐거움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당신이 아무리 현자라지만 임금인 나처럼 설궁(雪宮)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즐거움이 있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맹자는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임금의 진정한 즐거움이라며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백성들과 함께 근심한 사람 중에서 임금이 되지 못한 이가 없다고 답했다. 임금 혼자, 지배층들끼리만 즐기는 것은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며, 민심에서 멀어지면 비참한 지경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함유일덕(咸有一德)에는 “필부필부가 스스로 극진히 섬기지 않으면 임금이 누구와 더불어 공을 이룰 수 있겠는가(匹夫匹婦不獲自盡 民主罔與成厥功)”라는 말이 나온다. 현대어로 번역하면 필부필부들의 한 표, 한 표를 모으지 않으면 어떻게 당선될 것이냐는 뜻이다. 또한 설혹 당선되었다 한들 민심을 얻지 않으면 어떻게 업적을 이룰 것이냐는 말이다. 후보로 나선 이들이 당선 후에 더 새겨둘 말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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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필교수의 고전산책-<14>이윤(伊尹),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내딛다
기사입력 2013-05-27 16:57:35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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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 이윤(伊尹)이 재상 자리를 내놓고 은퇴를 결심하면서, 왕 태갑(太甲)에게 올리는 글을 쓴다. 태갑이 처음 왕위에 올랐을 때에도 경계의 말을 담아 글을 올렸고, 물려나면서도 그렇게 한 것이다. 앞의 글은 <이훈(伊訓)>, 뒤의 글은 <함유일덕(咸有一德)>이라는 제목으로 전한다. 하늘의 뜻을 잊지 말고 탕(湯) 임금을 본받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윤은 태갑이 못 미더웠던 것이다.

이윤이 누군가. 맛있는 음식으로 탕 임금의 마음을 얻고는, ‘쿠데타’로 폭군 걸(傑)을 내쫓은 역성혁명의 일등공신이다. 태갑의 아버지 태정(太丁)이 요절하자 동생인 외병(外丙)을 옹립했고, 외병이 3년 만에 죽자 다시 동생 중임(中壬)을 왕으로 추대한 장본인이다. 또 중임이 재위 4년 만에 세상을 뜨니 이번엔 탕의 손자요 태정의 아들인 태갑을 왕으로 만든 권력자이기도 하다.

<함유일덕(咸有一德)>의 “이제 선왕을 이은 사왕(嗣王)이 새로이 천명을 받으시려면”(今嗣王, 新服厥命)라는 구절을 적는 순간, 이윤에게는 즉위 초기 태왕의 실정이 떠올랐을 것이다. 태갑은 탕 임금 시절의 제도와 관행을 준수하지 않았다. 태갑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시대를 열고 싶은 마음에서였겠지만, 이윤의 눈에 그 귀결처는 분명해 보였다. 쫓겨난 임금 걸(傑)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이윤의 경고는 계속 되었다. ‘사리에 어두움, 포학함, 탕의 제도를 따르지 않음, 덕을 어지럽힘’이 문제라고 거듭 호소하였다.

이윤은 결국 왕 태갑을 탕 임금의 무덤이 있는 동궁(桐宮)으로 내보냈다. 신하가 임금을 유배 보낸 초유의 일이다. 왕이 없으니 제후들의 조회는 이윤이 대신했다. 참람하다면 참람함의 극치였다. 3년이 지나고 태갑은 백기를 들었다. 할아버지의 유훈(遺訓)을 준수하는 왕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이윤은 태갑에게 권력을 되돌려주었고, 물러나면서 <함유일덕>을 지어 바쳤다.

이윤의 글들에는 ‘사왕(嗣王)’에 대비되어 ‘선왕께서는’이라는 말이 거듭 되풀이 된다. 뒷일을 맡긴다며 먼저 간 선왕 탕 임금의 간절한 부탁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태갑이 가장 듣기 싫어한 말 역시 ‘선왕께서는’이었을 것이다. 떨어지는 않는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는 이윤의 모습에서, 먼 훗날 유비(劉備)의 아들 유선(劉禪)에게 <출사표>를 바치던 제갈공명이 미리 보이는 것은 나만의 환각일까. <출사표>에서 제갈공명이 ‘선제(先帝)’라는 말을 무수히 되뇌이던 목소리는 바로 이윤의 목소리가 아닐까.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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