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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폴라니와 세계체계론 수용을 통해 본 왕후이의 정치경제학적 사유의 특징
작년 6월에 중국현대문학학회에서 발표했던 글...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좀 손보고 수정해서 어디 내볼까 하다가 이런 글을 어디서 받아줄까 하여 일단 임시적이나마 블로그에 공개해본다. 한 두 단락은 다른 글(황해문화 2014년 봄호에 실은 서평)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글 서론의 일부는 2012년에 경향신문에 기고했었던 왕후이 소개글을 간단하게 축약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글에 각주가 덕지덕지 많아서 블로그에 옮겨놓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각주들은 전부 생략했다. (일부 각주는 파란 색으로 표시)
목차는 다음과 같다
[서론]
형식적 경제와 실체적 경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시장화와 사회의 자기보호운동
지구화와 자본주의 세계체계
쟁점 : 국가주의로의 입장 전환?
결론 : 중국에서 비판적 지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형식적 경제와 실체적 경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시장화와 사회의 자기보호운동
지구화와 자본주의 세계체계
쟁점 : 국가주의로의 입장 전환?
결론 : 중국에서 비판적 지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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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폴라니와 세계체계론 수용을 통해 본 왕후이의 정치경제학적 사유의 특징
21세기 들어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국가는 바로 중국이다. 페리 앤더슨(Perry Anderson)은 오늘날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기업, 미디어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중국을 열광적인 태도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마치 예전 로코코 시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중국풍(chinoiserie)’의 재림이라고 보고 ‘중국열풍(Sinomania)’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평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부상하는 중국이 과연 어떻게 변해나갈 것이며, 또 중국이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켜 나갈까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중국이 현재 처한 현실을 진단하고 앞으로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토론하는 중국 지식인들의 논의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중국 지식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왕후이(汪暉)다.
왕후이는 원래 문학연구자로 루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중국 근현대사상사를 주로 연구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스스로를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엽까지 중국사상사와 사회사의 영역을 연구하는 역사연구자”로 규정하였다. 하지만 그의 학술활동은 본래 전공인 문학과 사상사를 뛰어넘어 정치경제학, 역사학, 사회학을 넘나들며 고전적인 의미에서 ‘비판적 지식인’의 풍모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왕후이가 중국 내외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게 된 것은 1990년대 개혁개방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중국의 현실에 대하여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였다. 그래서 그는 중국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 혹은 중국 신좌파의 대표인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중국 지식인들 간의 논쟁의 지형도를 살펴보면, ‘자유주의적 근대화론’을 받아들인 중국의 개혁파는 국가계획 중심의 사회주의 경험을 폐기해야 할 유산으로 간주했으며, 중국은 앞으로 서구식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길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왕후이는 경제사상가 칼 폴라니(Karl Polanyi)와 세계체계론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를 뿌리부터 해체한다. 그는 중국의 시장경제가 국가 주도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는 한편, 자본주의 도입 자체도 전 지구적 자본주의 확장,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관련이 있다고 파악한다. 자유주의 개혁파들은 국유기업 구조조정과 농촌의 위기로 발생한 수많은 실업자와 농민공의 문제, 의료와 교육을 비롯한 사회보호의 해체, 생태위기 등 주요한 사회문제의 원인이 ‘여전히 강력한 국가개입과 시장경제의 부족’ 때문이라며 일국적 차원으로 분석한다. 반면 왕후이는 전 지구적 차원의 신자유주의 비판 속에서 사고해야 한다고 본다. 국가(계획)와 시장의 대립으로 세상을 보는 개혁파와 달리, 왕후이는 그 이분법이 은폐하고 있는 현실의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들춰내어 중국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많은 사장적 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 발표문에서는 그간 왕후이가 발표한 글과 대담 중에서 정치경제학적인 사유를 담고 있었던 글들을 분석하여 칼 폴라니와 세계체계론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그 특징들을 몇 가지로 정리하고, 그에 입각한 왕후이의 중국 현실에 대한 분석을 살펴보고 최근 쟁점이 되었던 왕후이의 ‘국가주의’로의 입장전환이라는 비판을 그가 수용했던 이론적 차원에서 내재적으로 검토해보려고 한다.
[각주 : 왕후이는 세계체계론의 창시자인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제자였던 홍콩 출신의 포킁후이(許寶強)과 함께 2000년에 『反시장적 자본주의』라는 편역서를 낸 적이 있다. 그들은 이 책을 통해 칼 폴라니, 페르낭 브로델, 이매뉴얼 월러스틴, 조반니 아리기, 프레드 블록 등의 글들을 중국에 소개했다. 게다가 왕후이는 이 책에서 「경제사인가? 정치경제학인가?」라는 장문의 서문을 통해 이 연구경향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정리하여 소개했다. 한편 이러한 이론적 정리작업은 그가 이후 이 입장을 바탕으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시장화와 자본주의 도입을 비판해나가는 기반이 되었다. 이 발표문에서는 그의 여러 글 중에서도 주로 이 글을 대상으로 분석을 해나갈 것이다. 汪暉, 「是經濟史,還是政治經濟學?」 『反市場的資本主義』 (中央編譯出版社, 2001) ]
[각주 : 물론 왕후이의 그동안의 주된 학술적 작업이었던 중국의 현대성(Modernity) 연구 및 사상사 연구가 중국의 현실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비판과 따로 떨어져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짧은 발표문에서 왕후이의 비판적 사유의 총체적인 틀을 정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발표자의 능력도 부족하므로 이 글은 그의 사유의 일부만을 조명해보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주셨으면 한다.]
형식적 경제와 실체적 경제
칼 폴라니는 경제의 의미를 ‘실체적(substantive) 경제’와 ‘형식적(formal) 경제’로 구분한다. 폴라니에게서 실체적 경제는 사람이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자들을 조달하는 실질적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 시작점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공동체의 존속에 필요한 물자조달을 위해 맺어나가는 관계이다. 그래서 실체적 경제는 실제 역사 속에서 이러한 사회관계들이 맺어나가는 제도화의 과정 그 자체이다. 반면에 폴라니는 형식적 경제에서는 개인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행위를 경제 행위로 간주한다고 본다. 즉 형식적 경제에서는 최소비용으로 최대 생산과 이득을 얻어내는 효율성의 극대화라는 추상적, 논리적 개념에서 경제 행위를 파악한다. 이러한 형식적 경제는 실제 인류 사회에서 생겨난 역사적 제도들을 효율성이라는 형식논리에 집어넣어 ‘수단과 목적의 관계’로 대상화시킨다. 폴라니는 형식적 경제의 논리를 비판하면서, 경제란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구성물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구체적 제도를 통해 조직되는 실제 과정이므로 실체적 경제관을 가질 것을 주장한다.
다시 폴라니의 경제관을 정리하면, 실체적 경제는 쓸모(use)를 위한 생산이 이루어지는 경제고, 이는 형식적 경제에서의 이윤 추구를 위한 생산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보편적이고 동질적인 시장교환과 달리,인간의 경제는 사회와 문화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욕구와 고유한 사회적 물자조달의 체계에서 움직인다. 실체적 의미에서 경제는 전체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움직이고 제도화된 과정 속에서 다양하게 물자를 조달하는 방식이며 시장제도 역시 그 일부에 포함된다.
왕후이는 이러한 폴라니가 구분한 형식적 경제와 실체적 경제의 개념을 바탕으로 정치경제학의 역사를 정리한다. 왕후이가 볼 때, 정치경제학은 정치적 제도 및 사회적 제도와 경제 과정의 관계를 주목해왔으며, 경제를 ‘역사’적 시야에서 이해하여 경제 시스템의 작동을 실체적으로 묘사하려고 노력을 기울여온 학문으로 단순히 사회과학의 한 분야가 아니라 사회과학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왕후이는 정치경제학에는 이러한 역사적(실체적) 분석의 전통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자연과학의 영향으로 인해 경제과정에서 어떤 법칙을 추출하여 그 논리로 경제를 설명하려는 형식적(논리적) 분석의 전통이 모순적으로 존재함을 지적한다.
(정치)경제학의 비조라고 할 수 있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은 태초부터 인간은 개인이었으며, 이기심을 최대한 만족시키고자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경제인(Homo Economicus)’이라는 인간관을 전제하고 있으며, 이후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 인간관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영리 추구’의 자연적 동기를 논증하여 개인을 사회로부터 분리해냈다. 그렇기 때문에 애덤 스미스의 이론에서 ‘시장’이라는 공간에서 교환이 이루어지고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것은 ‘사회적 관계’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현상을 자연현상을 탐구하듯이 관찰하여 자연법칙을 추출해내고 또 이 법칙에 맞게 사회의 현상을 해석하는 경향이 점차 강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현대경제학에서 형이상학적 보편법칙을 추구하는 과학 및 수학 모형으로 정형화되며, 왕후이는 이런 경향이 정치경제학의 역사적 분석 시각이 파괴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으로 파악한다.
왕후이가 볼 때 이러한 19세기 정치경제학 전통에서 형식적 경제와 실체적 경제가 모순을 이루고 있는 상황은 마르크스라고 예외는 아니다. 물론 왕후이가 볼 때 마르크스는 속류 정치경제학자들이 형식적 경제라는 틀 속에 역사적 분석을 구겨넣은 것과는 달리 역사유물론적 시각에서 역사적 분석을 매우 중시했으며, 기존 정치경제학의 反역사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라는 경제양식이 자연적 진화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산물임을 밝혀냈고, 이러한 그의 분석방법은 이후 ‘역사적 자본주의’의 시각에서 경제학 비판을 해나가는 연구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한다. 『자본론』을 보면 확인할 수 있듯이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경제범주와 사회관계에 대한 형이상학적(관념론적) 분석, 즉 역사를 벗어나 초월적인 경제법칙을 발견하려는 분석에 대해서 철저하게 비판하고 현실의 모순들을 폭로하고 있지만, 한편에서 추상 수준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작동법칙을 확립하려고 하는 시도도 확인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물신주의적 성격을 폭로했지만, 역시 순수한 상품생산과 교환과정이라는 가설 속에서 법칙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즉 마르크스에게 있어서는 경제에 대한 역사적 시각에 입각한 서술방식과 논리적인 분석방식이라는 두 가지 방식(즉 실체적 경제와 형식적 경제)이 치열하게 긴장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이는 마르크스도 기존 정치경제학의 한계를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에는 역사적(실체적) 분석을 형식주의적 분석에 종속시켜야 하는 난점이 드러난다는 평가다. [각주 : 왕후이는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모두 사회/국가, 시장/국가의 이원론을 근원적 패러다임으로 삼는 자본주의 사회구조와 진화 모델의 자기 인식으로 파악했다고 본다. 사실상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단지 19세기 유럽의 자율적 시장 사회에서만 주도적 위치에 있었던 원칙을 인류 역사 전체에 통용되는 원칙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저질렀다는 평가다. 왕후이, 김택규 옮김, 「'과학주의'와 사회이론의 몇 가지 문제」 『죽은 불 다시 살아나』 (삼인, 2005) 201쪽]
왕후이는 마르크스의 이러한 난점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시도로 칼 폴라니와 페르낭 브로델의 작업을 예로 들고 있다. 이들의 작업은 형식주의의 함정, 즉 자유시장이라는 신화에 빠지지 않으면서 구체적인 제도 분석을 통해 역사와 현실 속에서의 착취, 종속, 강제, 독점 등을 폭로하고 자본주의의 복잡한 양상들을 서술했다는 것이다.[각주 : 여기서 왕후이는 폴라니나 브로델의 방식이 구체적인 역사적 실증을 통해 이론을 대체하는 것으로 오독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폴라니와 브로델은 이론을 방기한 역사학자가가 아니라 역사라는 방식으로 이론의 문제를 탐구한 정치경제학자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경제에 대한 ‘형식적’ 이해와 ‘이론’을 오해하지 말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汪暉, 「是經濟史,還是政治經濟學?」 『反市場的資本主義』 (中央編譯出版社, 2001) 36-39쪽]왕후이가 이들의 작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파악하고 있으며, 이런 관점을 통해 중국의 현실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 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본래 시장은 다양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상품을 거래하는 장소로서 모든 인류 문명에서 존재해온 제도다. 폴라니에 따르면, 시장은 인간들이 물자를 생산하고 나눠 갖는 여러 경제 제도 중의 하나로 사회에 "묻어들어(embedded)"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시장은 욕구 충족을 위한 거래가 아니라 이윤 추구를 위한 거래로 특징지어진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며, 시장의 원리가 거의 모든 삶의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이렇게 시장이 사회로부터 "뽑혀 나오게 된(disembedded)" 것은 자연적인 과정이 아니었다.
폴라니는 유럽의 근대역사를 분석하면서 19세기에 등장한 자기조절적 시장경제란 시장과는 무관한 허구적인 유토피아라고 본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가장 일차적이고 주요한 개인들의 상호작용은 경제적 이익을 위한 시장에서의 교환이며, 노동분업과 국가, 사회제도 등은 그 결과로서 혹은 그것을 보조하는 장치로서 파생된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폴라니는 역사적․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역사적으로 항상 억제되거나 부속품에 머물렀던 시장이 근대 유럽에서 주된 경제제도가 된 것은 그 자신이 지닌 합리성 때문이 아니라 근대국가의 광범위한 개입과 정치적 기획 때문이었다고 한다. 역사 속에서 자유시장의 모형, 즉 영국이 상업화된 중상주의 사회에서 시장사회로 변화해나간 것은 폴라니가 볼 때 자연 진화의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었으며, 전국적 시장은 국가의 계획적인 중상주의 정책으로 나타난 것이고 이것 역시 국가 수립 전략의 부산물이었다. 즉 자유방임(Laissez-faire)은 국가계획에 의한 것이었다는 역설을 이야기한다. 이어서 그는 이것이 하나의 허구나 가설에서 멈추지 않고 인간 사회를 근본적인 변화를 강요함으로서 인간 본성과 사회의 파괴를 초래했다고 본다.
한편, 브로델은 주류 경제학과는 달리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분리하여 파악한다. 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경제적 현실을 ‘삼층도식’을 통해 설명한다. 맨 아래 층은 자급자족하는 수준의 경제로 불투명한 일상영역인 ‘물질문명’이고, 그 위에 있는 두 번째 층은 투명한 경제로 유통과 교환의 영역으로서의 ‘시장경제’이다. 이 ‘시장경제’의 영역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투명한 교환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모든 사회에 존재해온 ‘시장’을 의미한다. 세 번째 층에는 ‘자본주의’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동일시하는) 우리의 기존 상식과 달리 독점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에 자리잡고 그 위에서 번성하지만, 이 시장경제의 교환과정을 왜곡시키고 그 질서를 교란시킨다.
왕후이는 폴라니와 브로델을 수용하여 ‘시장’과 ‘자본주의’를 이해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볼 때 초경제적 사회 세력, 특히 정치적 권력의 간섭이 없었다면 시장경제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며, 시장경제가 자연적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만들어진 고안물”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자유시장도, 시장규칙도 아니며 反시장적 힘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정치와 경제는 명확하게 분리할 수 없는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권력의 시장화와 시장의 권력화’를 일종의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현상으로 파악한다.
이런 인식을 통해 왕후이는 중국의 현실을 진단하면서 중국의 불평등 문제는 경제문제인 동시에 정치적 문제라고 파악하고 있다. 고전 경제학은 경제 과정을 자율적인 영역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폴라니적 문제의식에서 볼 때, 경제 영역을 사회에서 뽑아낼 수도 없으며, 완전히 자족적이며 자유로운 시장은 역사에서 출현한 적이 없는데 이를 가정하고 국가가 개입할 것인가의 여부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고전경제학적인 문제의식에서 ‘국가 대 시장’이라는 이원론으로 정치와 경제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국가 자체가 바로 시장 사회의 내적 요소임을 은폐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왕후이가 볼 때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에서도 시장을 사회에 도입한 것은 중국 인민들의 시장적 본성에 의한 것이나 자연적인 과정이 아니라 국가가 의도적으로 주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왕후이는 ‘중국의 불평등 문제를 시장을 통해서 기회를 제공하고 국가의 개입없이 부정부패 문제 등을 해결한다’는 것은 오류일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여 중국의 시장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현재 중국에 중요한 것은 국가의 해체가 아니라 국가의 민주화이며 경제 영역, 즉 재화와 생산 과정에 대한 사회의 민주적 통제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서는 임노동자들의 종속적 지위를 변화시키고 이들이 사회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한 생활조건을 균형있게 만들고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화와 사회의 자기보호운동
폴라니에 따르면, 한편에서 사회 전체를 시장의 자기 조정에 맞춰 재구성하려는 운동이 일어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흐름으로부터 사회를 자기 보호하려는 운동이 일어난다. 폴라니는 이를 시장 사회의 '이중 운동(double movement)'이라고 불렀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사회 안에 묻어들어 있던 ‘시장’을 뽑아내어 자기조절적인 시장이라는 원리로 사회를 재조직하는 과정에서 본래 상품이 아니었던 노동, 토지, 화폐가 상품화되어 시장을 통해 거래가 되면서 사람들의 삶의 안정성이 깨져나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은 철저하게 시장 관계에서의 ‘개인’들로 전환되고, 다양한 동기를 가진 인간들이 모여사는 총체적 존재로서의 사회는 파편화되어 이윤추구만을 동기로 하는 ‘경제인’들의 조직으로 변해나가면서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파괴와 해체에 직면한 사회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자기 보호를 위한 ‘대항 운동(countermovement)’에 나서게 된다. 이 이중 운동은 일보 전진, 일보 후퇴와 같은 줄다리기나 시계추 운동이 아니라 한 악장으로부터 다음의 악장으로 이어지는 교향곡에 가까우며, 이 운동의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 운동이 생겨나고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진다.
왕후이는 이러한 폴라니의 사회의 ‘자기보호운동’ 혹은 ‘대항운동’의 개념을 받아들여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 벌어졌던 많은 대중들의 저항을 이 개념을 통해 분석한다. 개혁개방의 과정에서 많은 인민들의 삶의 안정성이 파괴되는 쪽으로 중국 사회의 시장화가 진행되었고, 이에 중국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왕후이의 분석 속에서 가장 독특한 것이 1989년의 천안문 사건을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의 일종으로 본다는 것이다.
보통 많은 연구자들이 ‘근대화론’의 시각에서 1989년 천안문 사건을 독재국가에 대립하는 시민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민주화 운동으로 파악해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서구의 근대화론의 시각에서는 개발도상국들이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발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경제가 발전하면,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중산층이 생겨나고 이 중산층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게 되며, 따라서 체제가 민주화된다고 하는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배링턴 무어가 정식화한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는 명제로 집약된다. 한편 이 시각은 국가와 시장을 구분하고 그 둘이 대립한다고 보는 이분법 속에 서있다. 시장경제의 도입은 경제발전을 가져오고 이를 통해 자율적 시민사회가 형성되며, 그 결과 사회는 더 이상 국가의 명령에 의해 효과적으로 통제될 수 없고, 국가와 시민사회의 경계를 보호해줄 수 있는 정치개혁과 자유민주주의를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 연장선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중국에서도 개혁개방 이후 시장이 도입되어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자연스레 자유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이 진행되었으며, 이에 당연히 국가를 상대로 한 커다란 시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적 과정으로 89 천안문사건을 바라본다.
왕후이는 폴라니를 수용하여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으로 89 천안문의 민중운동을 재해석하는 한편, 국가가 이러한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을 철저하게 진압했기 때문에 이후 1990년대 중국에서 더 노골적으로 자기조절적 시장을 앞세운 ‘신자유주의’ 지향의 개혁이 가능했다고 본다. 하지만 폴라니의 이중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지는 않으며, 당연히 사회의 저항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왕후이는 1990년대 중반부터 확산된 노동자들의 각종 시위와 저항운동을 중국의 국유기업 구조조정과 연관지어 노동의 상품화에 대항하는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으로 해석하며, 2000년대 들어 확산된 농민들의 집단 시위 역시 토지를 상품화하는 시장화에 대한 대항운동으로 분석한다.
이러한 왕후이의 분석은 중국의 정치적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도 많은 함의를 준다. 대부분의 서구 언론들이 중국 정치개혁을 바라보는 시각은 위에 서술했던 ‘근대화론’적 관점에 기반하고 있으며, 중국 내의 현 체제를 옹호하는 학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주류 정치학자들이 중국의 정치체제 전환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 전환의 속도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이와 다르지 않다. 정치학자들뿐만 아니라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에서 국가가 시장을 억압하여 기업가 정신이 실종되고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주류 경제학의 관점에서도 현재의 일당독재 체제가 폐지되어야 중국 경제가 훨씬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학자들은 중국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득분배를 강조하는 정책이나 부정부패에 대한 관리감독에 머무르기보다는 좀 더 시장지향적인 정책전환과 더불어 공산당의 권력을 축소하고 기업과 시민들에게 권력을 돌려주기 위한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서구의 언론과 학계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제 2의 천안문 사건이나 중국에서의 쟈스민 혁명 발생 가능성에 비해 현재 중국의 중산층들의 사회개혁의 목소리는 조용한 편이다. 도리어 중국에서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의 서발턴(subaltern)들의 저항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이 중국의 시장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가장 고통받는 존재들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이들의 저항운동이 중국 정치의 현재와 미래에 미칠 영향을 전망하는 데 있어서도 왕후이의 이중운동적 관점은 상당히 유용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구화와 자본주의 세계체계
세계체계론자들은 자본주의는 일국 단위를 중심에 놓고 분석할 수 없고 오직 세계적 규모에서만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자본주의를 종속지역, 즉 주변부로부터 중심부로 잉여가치를 이전시키는 데 작용하는 일종의 독점적 교환체제로 정의한다. 즉 세계체계론은 자본주의를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라는 공간적 분할 속에서 이해하려 하고 자본주의를 장기적 역사 속에서, 즉 ‘역사적 자본주의’의 시각에서 이해하고 분석하려 시도한다.
그리고 세계체계론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세계시장에서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시장의 틀 안에 통합되어 있으며,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상부구조라고 할 수 있는 국가간체계의 일원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것을 요구한다. 생산수단을 집단화한 국가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세계시장의 참가자로 남아있는 한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힘들고 여전히 중상주의(발전주의적) 입장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 세계체계론의 입장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회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세계체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두 국면의 발전궤적을 갖는데, 첫 번째는 세계시장에서의 궤도이탈(脫軌: de-linking) 국면이고, 두 번째는 세계시장과 국가간체계로의 재편입(接軌: re-linking)의 국면이다. 궤도이탈 국면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은 국내의 산업발전을 도모하지만, 노동대중의 동원과 자본 마련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세계체계로의 재편입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 궤도 진입의 국면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추구하는 목표는 反체계운동으로서의 혁명 전략에서 세계 시장 내에서 중심국가들을 따라잡으려는(catch-up) ‘중상주의적 발전’으로 바뀌게 된다.
왕후이는 세계체계론자 중 한 명인 사미르 아민(Samir Amin)을 인용해 중국의 경제발전의 역사를 마오쩌뚱 시기에는 자본주의적 세계경제로부터의 궤도이탈을 거친 후, 개혁개방 이후에 다시 그 궤도로 진입하는 재편입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보면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경제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적극적인 편입의 과정이므로 이 시기에 발생한 사회문제들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분리해서 사고할 수 없게 된다. 이 논지에 따르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모두를 포함하는 세계의 모든 국가는 국제적인 상업적․금융적 구조 속에 그 정도는 다르지만 통합되어 있으며, 오직 하나의 세계 시장, 즉 자본주의적 세계 시장 만이 지배적이다. 지구화 과정은 중상주의 시대와 고전적 자유주의 시대를 거쳐 서구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를 농업과 광업 생산을 통해 지구적인 노동분업에 편입시켰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지구화 과정에 따라 주변부 국가들이 건설하려 노력했던 국민 공업 체계는 점차 와해되었고 최종적으로는 일체화된 세계의 생산․무역 시스템의 구성요소로 재편되었다.
왕후이는 이렇게 현대 세계의 발전을 고찰하면서, “생산과 무역과정의 지구화는 민족 국가를 넘어선 적합한 새로운 정치․사회조직의 새로운 형식을 자동적으로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등 주변부의 발전에 적합한 정치․경제적 관계를 발전시킨 것도 아니었으며, 더욱이 소위 남북간의 격차나 불평등도 해결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마찬가지로 민족국가의 지위는 약화되었지만,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의 독점은 변하지 않았으므로, 민족주의가 만들어 낸 부정적인 효과를 제거하려면, 지구적 관계 속에서 더욱 공정하고 평화적인 정치․경제적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중국의 상황에서도 생산과 무역의 전지구화 과정에 갈수록 깊이 참여하는 과정에서 국제 자본과 국가 내부에서의 자본의 지배자 사이의 상호 충돌에 의해 국내의 경제 관계가 점차 복잡해지고 불가피하게 체제적 부패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부패는 사회 각 방면에 침투되어 심각한 사회 불공정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새로운 제도를 모색하여 이러한 과정을 억제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이 체제적 차원의 부패는 경제 발전에 중대한 장애가 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왕후이가 볼 때, 중국의 시장주의자들은 성공한 발전 모델(미국, 유럽, 일본 등)을 보편적인 발전 모델로 취급하고, 그 모델들을 중국이 따라야할 것으로 가정하는데 이는 발전주의에 함몰되어 있는 것으로 세계체계 속의 불평등관계를 은폐하고 위계를 정당화하는 사고라고 비판한다. 어떤 국가나 지역의 발전은 따로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나 지역의 발전과 관련시켜 봐야 하며 이런 맥락에서 세계체계론을 적극 수용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쟁점 : 국가주의로의 입장 전환?
하지만 왕후이의 정치경제학적 분석과 관련하여 최근에 논쟁이 발생했다. 논쟁이 대상이 되었던 것은 그가 2009년 중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하여 ‘21세기경제보도’와 가졌던 장문의 대담을 바탕으로 2010년에 문화종횡에 발표했던 「자주와 개방의 변증법 – 중국 부상의 경험과 직면한 도전 (自主與開放的辯證法—中國崛起的經驗及其面臨的挑戰)」이라는 논문이었다. 왕후이는 이 글에서 중국이 비교대상이 될 수 있는 동유럽 국가나 동아시아 국가에 비해 경제적으로 종속관계가 아니었으며 정치적으로 고도의 자주성이 유지되어왔고,사회의 비판적 역량이 끊임없이 작동하여 이 문제들이 중국 공산당 내부(혹은 당내의 노선투쟁)로 수용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의 국가는 특정 이익집단의 대변자가 아니라 사회의 여러 계층의 보편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파악했다. 한편 이런 맥락에서 2000년대 이후 중국 정부의 정책변화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이러한 중국의 경험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이라고 덧붙였다.
왕후이의 이러한 주장은 중국의 사회 현실을 비판해온 그의 글과는 결이 상당히 달라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왜냐하면 위에서 살펴봤듯이 왕후이는 폴라니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중국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시장화가 사회 내부의 불평등을 가져왔음을 신랄하게 비판해왔고, 세계체계론의 수용 속에서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적극적으로 편입해왔기 때문에 중국 국내의 불평등 문제를 세계체계와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중국 내부에서도 그동안 왕후이와 동지적 관계를 유지해온 첸리췬(錢理群)이 그의 이러한 주장을 ‘모종의 국가주의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으며, 이 연장선에서 한국에서도 백승욱이 왕후이의 이러한 주장을 국가주의로의 입장전환으로 보고 ‘저자를 가리고 보면 사실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관변적 색채의 주장’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한편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론들도 상당히 제기되어 왔다.
발표자는 이러한 왕후이의 주장이 어떤 “국가로의 투항”이나 “입장의 전환”이라기보다는 그가 수용했던 폴라니의 이론(특히 국가론)과 세계체계론의 동아시아 분석(좀 더 구체적으로는 세계체계론 내부에서 동아시아에 대한 분석을 놓고 벌어진 이론적 분기) 속에 내재되어 있던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첫 번째로 폴라니의 ‘국가’에 대한 시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폴라니의 저작에서 ‘국가’에 대한 분석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의 저작들이 대부분 ‘시장’과 ‘사회’의 대립 속에서 서술되기 때문이다. 특히 폴라니의 주저인 『거대한 전환』 속에서 국가는 시장을 사회에서 뽑아내어 자기조정적 시장원리로 사회를 재조직해나가는 일종의 억압적 주체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폴라니의 ‘국가’는 한편으로 사회의 대항운동(자기보호운동)을 받아들여 시장화로 파괴되어가는 사회에 대한 보호조치를 제도화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프레드 블록은 이러한 폴라니의 국가관을 시장원리 구현과 자기보호원리 구현이라는 역할을 둘 다 수행하는 모순적 이중성을 띤 “이중적 국가”로 정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론적 틀 속에서 보면 왕후이가 중국의 국가를 시장화를 수행해왔던 국가로 보고 비판해 온 것과 농민과 노동자들의 자기보호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그들을 보호하는 제도를 만들어 온 것을 긍정하는 것이, 그 주장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적어도 이론적인 흐름에서 볼 때 모순된 주장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이중적 국가의 역설은 이미 폴라니의 국가관에 내장되어 있던 것으로 볼 수도 있으며, 실제로 왕후이도 이에 대해서 언급한 바가 있다.
오늘날 중국을 예로 들자면, 저 자신도 곤란, 패러독스를 느끼고 있습니다. 국가문제는 우리에 대해 패러독스입니다. 전지구화가 진행될수록 이 패러독스는 커집니다. 간단한 원인은 신자유주의의 질서는 국내건 초국적이건 부단히 격차를 만들어냅니다. 중국에 대해 말하자면, 현재의 빈부격차는 아주 심해졌습니다. 과거 사회주의의 사회보장 체계는 무너졌습니다. 이런 조건 하에서 사회의 보호에 대한 요구는 어느 때보다 큽니다. 달리 말하면, 현재 사회는 이런 상황에서 아주 곤란하고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일 이 문제를 이론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위험이란 우리가 어느 정도 사회상 공평을 요구한다면, 사실상 우리는 국가의 필요성을 떠날 수 없습니다. 국가없이 복지제도가 가능하겠습니까? 아니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 국가의 약화가 아니라 강화 역시 문제입니다. 우리는 역사과정에서 이렇게 국가를 강화하는 것이 본래 위험을 키우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위험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신자유주의적 길을 따라 국가를 배제할 것인가요? 아니면 구사회주의처럼 국가를 강화할 것인가요? 그러나 이것은 국가가 사회에 침투하는 역량이 너무 크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전제로 귀결될 수 있겠지요.
[왕후이 백승욱 대담, 「근대성의 역설 - 중국, 근대성, 전지구화」, 『진보평론』 6호 (2000년)에서 인용, 강조는 발표자.]
한편 세계체계론 역시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동아시아에 대한 해석을 놓고, 특히 2000년대 들어 중국의 부상을 놓고 그 입장들이 분기해왔다. 월러스틴 등은 이러한 중국(및 동아시아)의 부상이 세계체계 내의 경쟁을 강화시키고 위기를 심화시켜 결국에는 최종적 위기로 전화할 수 있다는 뉘앙스가 강한 반면, 아리기 등은 중국으로 세계체계의 헤게모니가 이동할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이 지역의 전통 속에 내장되어 있는 “비자본주의적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 예단을 가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폭발은 이런 전망 사이의 논쟁을 더 확산시켰다.
좀 더 구체적으로 중국의 국가성격 혹은 사회성격에 관한 서구 진보학계의 이론적 분기를 살펴보자면, 이 논쟁은 적어도 중국 당국의 공식적인 국가성격 규정(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에서 중국은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이용하여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다고 얘기되지만, 많은 좌파 연구자들은 도리어 중국은 “사회주의”를 이용하여 “자본주의”를 건설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아리기 등의 세계체계론자들과 서로 이론적 영향을 강하게 미쳐온 데이비드 하비의 경우 “중국 특색의 신자유주의”라고까지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왕후이가 세계체계론자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는 사미르 아민의 견해를 살펴보면, 아민은 최근에 발표한 논문에서 중국 혁명에서의 농업 문제에 대한 종별성, 즉 중국은 토지에 대한 상품화가 없었고, 소생산(petty production)적 특성이 지속된다는 점에서 쉽게 “자본주의”라고 단정짓기는 힘들지 않겠냐는 답을 내리고 있다. 물론 노동과 산업 분야에서 나타나는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적 특성을 파악하고는 있지만, 이것 역시 1)자주적 현대 산업 시스템 구축 2)농촌 소생산과의 연계성 3)자본주의 세계체계의 편입 과정에서 제국주의적 독점에 대한 통제라는 세 가지 목적 속에서 구축된 것임을 강조하면서 적어도 중국은 사회주의라는 장도(長途)에 있는 과정이 아닌가라고 보고 있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중국 내부의 신좌파 학자들의 주장과도 크게 공명하는 것이고 그 맥락에서 왕후이 등이 이러한 내용을 적극 수용하여 중국의 경험이 현재의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역시 그 내용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세계체계론의 이론적 흐름에서 모순을 이루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결론 : 중국에서 비판적 지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왕후이를 비롯한 중국 신좌파 학자들이 논자에 따라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당-국가, 혹은 당내 일부 노선에 기대어 중국의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발전모델을 모색하려는 시도는 어떻게 보면, 중국적 현실에서 당 외부에서 새로운 대안적 조직과 흐름을 만드는 것이 아주 힘든 상황 속에서, 그리고 그러한 것을 상상하기 힘든(혹은 상상하려 하지 않는) 이론적 경향과 그 선을 넘어서려 하지 않는 사회운동이라는 현실에 직면한 산물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의 국가와 당의 사회문제 해결에 대하여 긍정하고 있는 것이 현재 중국 국가가 거대자본 계층과 맺고 있는 관계들을 은폐한다는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고 당연히 옳은 비판이지만, 이들이 여전히 빈약한 중국의 사회운동의 현실 속에서 더 나은 사회개혁과 노동자 농민 대중의 생활 개선을 위해서 고민하는 가운데에 나온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왕후이는 최근 계속해서 발표하는 글들 속에서 정치적 민주주의가 사회적 평등이라는 실질적 내용을 포괄해야 하며, 대중이 배제되지 않고 공공의 사회적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 미디어, 법률 체계와 경제제도를 새로이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여전히 그의 입장에 대해 ‘국가주의로의 함몰’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좀 이르다고 판단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여러 이론가들이 민족국가와 거대 자본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지 캐물어야 한다. 만약 역사적으로 '속류 마르크스주의자'가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면, 그들은 곧 '속류 자유주의자'이다. 그들은 역사적 관계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거부하며, 현재 세계의 변화 속에서 자신들의 사회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한 사회적 양상, 그 자체의 함의 역시 역사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화되게 마련이다. 어제, 비판의 투사였던 사람이 오늘, 신질서의 변호인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렇게 되길 진심으로 원하느냐고.
[왕후이, 김택규 옮김, 「승인의 정치, 만민법, 자유주의의 위기」 , 『죽은 불 다시 살아나』 (삼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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