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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9일 화요일

공공 의례와 의식 - 사회 구성원들 간에 ‘일반지식(common knowledge)’

이론은 실생활에 어떻게 도움을 줄까
마이클 S. 최 UCLA 교수, ‘일반지식의 생성’을 말하다
2014년 06월 04일 (수) 15:17:14교수신문  editor@kyosu.net

  
 ▲ 사진제공 (주)카라커뮤니케이션즈 
 


지난달 24일 서울 안국빌딩 신관 4층, 마이클 S. 최 UCLA 교수(정치학과)의 특강은 무엇보다 의례를 통한 ‘일반지식의 생성’에 초점을 맞춘, 이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 흥미로운 자리였다. ‘문화의 안과 밖’ 18회차 강연이기도 했던 이 날, 마이클 최 교수는 “공공 의례와 의식의 핵심 기능 중 하나는 사회 구성원들 간에 ‘일반지식(common knowledge)’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일반지식은 ‘조정 문제(coordination problem)’라는 상황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사회 구성원간의 선의에 대한 일반지식이 없을 때 갈등이 유발되거나 지속되기 쉬우며, 따라서 사회적 공동체의 정기적인 의례는 구성원 간의 갈등이 지속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일반지식의 생성’이란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그의 강연 일부를 발췌했다. 
일반지식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행동에 있어서 지속되는 것(persistence)과 허약한 것(fragility)을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여기서 핵심은 대중이 어떤 사안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도 모두 같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사실에 대한 일반지식, 혹은 ‘메타 지식’이 형성되기까지는 단순히 모든 사람들이 그 사실에 대해 ‘일차’ 지식을 갖는 것에 비해 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2007년에 시작된 전 세계 금융 위기가 일반지식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모기지 증권의 붕괴가 어떻게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인가. 개리 고턴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환매 조건부 채권 매매(Repo, repurchase agreement) 시장에서 거래자들은 모기지론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과 기타 금융 기관들이 모기지론을 조건부(담보)로 성사한 금융 거래의 총액은 연간 수조 달러에 달했다. 고턴에 따르면 이 시장의 많은 거래자들이 모기지 증권 가치의 하락세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를 단기 거래에서 담보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에 그랬듯이 이 시장에서 다른 거래자들이 이를 계속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즉 거래자들은 이 불안정한 모기지 증권을 또 다른 어떤 매매자가 매입할 때까지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모기지 증권 가치의 하락세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었던 것이다.

고턴의 주장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이 2006년 ABX 인덱스가 도입되면서부터 바뀌었다. ABX 인덱스란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주택 담보 대출 관련 파생 상품의 가격 지수다. 이전까지만 해도 모기지 증권은 거래소에서 거래되지 않았고, 따라서 거래자들은 개인적으로 모기지 증권의 가치에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여전히 이 증권을 사들일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ABX 인덱스는 모기지 증권의 하락세를 일반지식으로 만들었다. ABX 인덱스가 도입되면서 모기지 증권의 가치가 공개됐고, 거래자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즉 내가 만약 모기지 증권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하면, 이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되팔 수 없게 돼 떠안고 가야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모기지 증권을 더 이상 담보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연간 그 규모가 수조 원에 달하는 환매 조건부 채권 매매 시장은 거의 완전히 붕괴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ABX 인덱스가 처음부터 존재했더라면, 그리하여 모기지 증권의 하락 가치가 처음부터 일반지식이 됐더라면, 부실한 모기지 증권을 담보로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뒤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일반지식의 부재는 부실한 모기지 증권이 더 이상 거래돼서는 안 되는 시점 이후에도 계속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하여 시장을 매우 허약하게 만들고, 갑작스러운 ‘조정’에 매우 취약하게 만든 것이다.

이와 유사한 차원에서 사회적 공동체의 정기적인 의례는 구성원 간의 갈등이 지속되는 것을 방지하기도 한다. 어떤 공동체에서든 특별한 원인 제공이 없는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갈등이 생길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예로 들어 볼 수 있겠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나, 나는 당신이 나를 썩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신에게 쌀쌀하게 대하고, 그런 나에게 당신도 쌀쌀하게 대할 수 있다. 즉 선의에 대한 일반지식이 없을 때 갈등은 지속될 수 있다.

세실리아 리지웨이의 주장에 따르면 성 불평등의 지속도 유사한 경우이다. 개인적으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성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역할이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고 믿지만 이러한 성 역할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성 역할은 여전히 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가 맞다면, 성 역할은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될’ 시점을 넘어 지속될 것이긴 하나, 동시에 허약한 상태로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고 개인의 생각을 일반지식으로 만들어 낼 때 갑작스러운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지식에 대한 개념은 원래 실제 세계의 현상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철학적’ 논의에서 시작됐다. 인간의 행동을 수학적 방식으로 모델화해서 꽤 추상적일 수도 있는 게임 이론에서조차 일반지식에 대한 개념은 ‘높은 수준’의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나의 희망은 이러한 일반지식론을 ‘대중화’하는 것이다. 게임 이론에 대한 내 개인적인 연구는 일반지식이 조정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가정에서 시작해 이에 대한 사례를 실제 세계에서 찾는 것으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합리적 의례』(2001)라는 책을 쓰게 된 주된 동기는 이론적 탐구였다. 매우 추상적인 사고는 과연 현실과 상관이 있을까? 우리는 쉽게 의심할 수 있다. 하지만 가끔씩 이론이라는 것도 그 본분을 다 할 때가 있다. 즉, 현실의 다양한 현상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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