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국민국가 시대의 새 ‘리버럴 아트’는 어떤 모습일까” | |||||||||
일본 석학이 말하는 ‘대학이란 무엇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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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석권한 이 시대에 대학에서 ‘교양주의’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교양’을 부활시키는 일이 아니라 ‘대학’을 다시 정의하는 일이다.” 대학 설치기준 간소화, 교양교육의 붕괴, 대학원 중점화, 국립대학의 법인화, 저출산에 따른 대입 정원의 과잉과 대학생의 학력저하, 신진 연구자의 불안정한 지위, 세계화와 그로 인한 유학생의 증가. 한국 대학의 이야기가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일본 대학가의 풍경이다. 한국 대학의 모습과 많이도 닮았다. 이런 급격한 대학환경의 변화는 대학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요시미 부총장은 사회학과 도시론, 미디어론, 문화연구 분야에 천착해 온 세계적인 석학이다. 현재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환 교수로 있으며, 신문사 이사장, 대학종합교육연구센터장, 교육기획실장, 대학사료실장 등을 겸하고 있다. ‘정보학환(情報學環)’이라는 소속이 낯설다. 이곳은 도쿄대가 법인화되면서 기존에 존재하던 조직을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정보와 관련된 문과와 이과의 대학원을 통합하며 만들어진 조직이라고 한다. 그가 일본에서 제기하고 있는 대학론을 들어 본다. 요시미 교수는 “최근 수십 년에 걸쳐 일본 사회에서 ‘대학’이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빠뜨린 채 논의가 진행됐다”라고 일본의 사정을 전했다. 요시미 교수는 지금, 진정 필요한 것은 ‘대학’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석권한 이 시대에 대학에서 ‘교양주의’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교양’을 부활시키는 일이 아니라 ‘대학’을 다시 정의하는 일이다.” 과거와 같은 ‘교양’의 부흥으로 회귀되지 않는 포스트 국민국가 시대의 지적 공간으로서 미래의 대학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요시미 교수는 이 책에서 대학을 ‘미디어’로 본다. “도서관이나 박물관, 극장, 광장 그리고 도시가 미디어인 것처럼 대학 역시 하나의 미디어다. 미디어로서의 대학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지식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매개한다. 그 매개의 기본 원리는 ‘자유’다. 바로 이 때문에 근대 이후 같은 ‘자유’를 지향하는 미디어로서 출판과 대학은 싫든 좋든 복잡한 길항적 제휴 속에서 관계를 맺어 왔다. 중세에는 도시가 미디어로서의 대학의 기반이었고, 근대에 와서는 출판이 대학 바깥에서 발달했으며, 국민국가 시대에 양자는 통합됐다. 그리고 지금 출판의 세계로부터 인터넷의 세계로 급격한 이행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미디어로서의 대학의 위상도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요시미 교수는 대학을 주어진 교육제도로서 파악하기 전에 지식을 매개하는 집합적 실천이 구조화된 장인 ‘미디어’로 이해한다. 요시미 교수는 “대학을 이렇게 재정의함으로써 대학을 둘러싼 오늘날의 문제점을 타개할 실마리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이런 시도를 통해 ‘대학’에 대한 질문의 사정거리는 크게 확장되리라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인터넷이 전면화된 미래 사회에서 캠퍼스와 교실, 학년제와 다수의 전공 교원을 갖춘 대학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요시미 교수는 모든 지식을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검색할 수 있으므로 더 이상 대학은 필요 없다는 비관론에 오히려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요시미 교수의 진단을 더 들어 보자. “대학교수의 강의나 토론의 중요성은 남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대학교수에게 이를테면 마이클 샌델과 같은 ‘백열’ 강의가 가능한 것은 아니며, 애플사는 이미 세계 유수 대학의 양질의 강의를 ‘아이튠스 유’라는 형식으로 연결해 아이패드와 같은 차세대형 휴대단말기로 제공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과 같은 새로운 인터넷 지식 시스템을 마주해 대학이라는 상대적으로 낡은 지식 형성의 장이 무엇을 자신의 고유성으로 삼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때가 오고 있다.” 그는 오늘날 대학이 처한 어려운 상황의 배후에 있는 가장 큰 역사적 변화는 국민국가의 퇴조를 꼽는다. 대학은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에서 글로벌한 관료제적 경영체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대학은 ‘자유로운 이성’을 위해 국가와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수월성의 셈법이 지배하는 대학에서 세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질문이 효력을 상실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 대학이란 ‘자유’를 향한 의지다. 그러나 그 자유의 조건은 시대와 더불어 변화한다. 오늘날 대학은 이미 자본주의 바깥에 있는 비평가가 아니라 자본의 순환시스템을 담당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제는 발견이나 개발만이 아니라 관리에도 주력하는 다양한 새로운 전문지식과 새로운 리버럴 아트 사이의 긴장감 있는 관계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요시미 교수의 생각이다. 포스트 국민국가 시대의 새로운 ‘자유=리버럴’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요시미 교수가 말하는 ‘미래 대학’의 구상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이 책을 번역한 서재길 국민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옮긴이의 말’에서 조금은 더 구체적인 미래 대학의 상을 보여 주었다. 요시미 교수가 현재 진행 중인 과제는 첫째, 20세기 일본과 아메리카니즘, 둘째 MALUI 제휴와 디지털 지식 기반, 셋째, 20세기 동아시아문화사 쓰기라고 한다. Museum, Archives, Library, University, Industry의 이니셜을 딴 MALUI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지금까지 공공적 아카이브를 구축해온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문서관, 자료관, 필름센터, 방송 프로그램 아카이브 등의 기관과 대학, 산업체가 제휴해 새로운 형태의 아카이브를 정비하는 작업을 통해 디지털 사회의 지식 기반을 구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정보학환’이라는 학제적 연구기관과 MALUI라는 영역 횡단적 네트워크가 요시미 교수가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대학의 모습을 구현하려는 노력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대학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려는 어떠한 시도와도 결별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느낀 점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사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고등교육의 모습과 대학상이 어떠한 것인지, 대학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사회적인 합의를 찾기 위한 진지한 논의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과거의 대학으로 회수되지도 시장과 자본에 종속되지도 않으면서 사회 구성원의 공공재로서의 대학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이 책의 주장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문제제기가 아닌가 한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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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9일 화요일
요시미 순야 -대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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