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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일 화요일

포스트-포스트 담론 - 虛像에 깃든 한국 인문학 위기의 징후들

‘세계적 석학’이란 虛像에 깃든 한국 인문학 위기의 징후들
진태원 고려대 HK연구교수가 짚어낸 포스트-포스트 담론 국내 수용사
2014년 03월 26일 (수) 10:07:20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포스트 담론을 대표하는 사상가들, 그 이후에 각광 받고 있는 후배 사상가들은 이전의 철학이나 인문학 담론에서 보기 어려운 새로운 주제를 다루며 급진적인 정치적 주장을 제시한다. 특히 지젝과 바디우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과 북미를 오가며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주제로 일련의 학술회의를 조직해 공산주의 사상을 복원하고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네그리와 하트는『제국』, 『다중』, 『공통체』등 일련의 저작에서 다중의 공산주의를 제창한다. 이들과는 다소 비껴서 있는 조르조 아감벤 역시 매우 급진적인 메시아주의정치를 표방하고 있다. ‘몫 없는 이들의 몫’이라는 개념 아래 민주주의를 다시 사유하려는 자크 랑시에르 역시 이들 못지않은 급진적인 사상가다.
기묘한 불일치와 괴리
진태원 교수는 이처럼 급진적인 사상가들에 대해 이른바 ‘운동권’좌파나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급진적인 인문사회과학자들이 거의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점에서 의문을 제기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물론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가 제안하는 급진 민주주의까지도 개량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비판하는 지젝, 바디우, 아감벤에게 왜 좌파지식인들은 반응하지 않는가? 이처럼 反자본주의적이고 反자유주의적인 정치를 제창하는 이들이 어떻게 오히려 자유주의적인 지식인들과 대중에게 호응을 받는 것인가?”
이러한 기묘한 불일치와 괴리를 국내 정치현장에서 목도할 수 있다고 진 교수는 말한다. 그는 좌파 사회인문과학자들은 이 사상가들을 무시하고, 이들의 급진적 사상에 열광하는 이들은 선거 때면 늘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러 가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라고 설명한다. 진 교수는 알랭 바디우가 2012년 대선 직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명한 것이 바로 이런 괴리 현상을 역설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라고 제시한다. 의회주의 거부를 평생의 모토로 삼았던 바디우가, 자유민주주의 정치 질서의 대표제도인 대통령 선거에서 급진적이지 않은 보수 야당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좀 더 면밀히 따져보기 위해 진 교수는 포스트 담론이라 불리는 이론의 성격과 국내 수용에 나타난 문제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1980년대부터 시작한다.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해 독자적인 민족사를 구성하는 것이 국문학계, 국사학계를 비롯한 인문사회과학의 학문적 과제로 제시된 시기다.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 독재에 대한 저항의 수단이자 한국사회를 과학적으로 이해·변혁하기 위한 지적 원천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복권이 이뤄진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마르크스주의는 이론적 권위를 급격히 상실했다.
1990년대는 약화된 마르크스주의를 대신하는 포스트 담론이 급속히 확산된 시기다. 진 교수는 포스트 담론의 이런 수용에 대해 “가히 인식론적 단절 내지 절단이라고 부를 만한 변화였다. 이것이 충격적인 이유는 국내의 그 누구도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전혀 알지 못했던 사상, 담론, 용어들이 갑자기 시대의 주류 사상과 담론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새로운 불평등, 예속화가 가속화됐던 2000년대 들어서도 포스트 담론은 여전히 국내 인문사회과학 및 저널리즘의 지배적 담론으로 작용한다. 진 교수는 “비판적이고 급진적인 잠재력은 거세된 채, 포스트 담론은 어느 정도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학계의 신참자로서 등재지 논문을 위한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문화적 교양을 과시하기 위한 지적 클리셰로 저널리즘과 대중 담론에서 애호되고 있다”고 말한다.
진 교수는 2000년대 후반 포스트 담론이 새로운 종류의 인문학 담론인 포스트-포스트 담론 형태로 변화했다고 분석한다. 포스트 담론이 문화적·미학적 담론으로 소개되고 소비됐던 것에 비해 포스트-포스트 담론은 급진적 해방의 정치적 담론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과 다중에 관한 저작들, 지젝의 라캉주의 정치학, 아감벤의 호모사케르 연작, 바디우의 포스트 마오주의적 공산주의,랑시에르의 무정부주의적 민주주의론 등을 그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
네그리와 하트, 지젝, 바디우, 아감벤 랑시에르가 제도 정치 바깥에서 새로운 정치 모델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진 교수는 공통의 지적·정치적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바깥에 존재하는 진정한 정치의 장소’를 발견하고 그것에 근거해 이 체제를 넘어서려는 시도에서 이들은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적 관점과 대동소이하지만 이들의 실제 이론적 기반은 푸코와 알튀세르”라고 말한다.
바깥의 정치 사상가 중 지젝, 바디우, 아감벤에게서 진 교수는 또 하나의 공통항을 읽어내는데, 이들이 일종의 메시아주의적 관점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및 자유민주주의와의 전면적 단절을 주장하고, 이를 바울의 정치 신학 전통에 대한 재독해에 기반해 혁명적 사건성의 관점에서 해명하려고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진 교수는 이들의 메시아주의 정치가 매우 ‘사변적인 정치학’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이들 중 그 누구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나 국가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제시하지 않으며 대안적 운동과 조직에 대한 구체적 성찰도 없다”라며 세 명의 사상가들은 철학, 신학, 이론 안에서의 작업이라고 평한다. 경험적 현실 구조를 다루는 사회과학과의 연계 속에 이뤄지는 논의가 아닌 역사철학, 정치철학, 문화이론적 차원의 사변적 논의이기에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진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오늘날 국내 서양 인문학 연구자들이 이 사상가들의 저작을 외면하기는 어려운 현실을 한국 인문학의 또 다른 현상으로 분석한 것이다. 그는 포스트 담론 수입과 동시에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가 이뤄졌다고 논의를 확장시킨다. “오늘날 한국에서 비판적 사유의 전거로 작용하는 여러 사상가들은 그가 프랑스 사상가든, 이탈리아 사상가든, 독일 사상가든 간에, 미국이라는 생산과 유통의 회로를 거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게 됐다.”(관련기사 <교수신문> 640호, 『루이비통이 된 푸코?』저자 프랑수와 퀴세 교수 인터뷰)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가 초래하는 두 가지 맹점을 진 교수는 지적한다. 첫째, 미국 학계의 일부분이 생산해낸 담론을 전세계적인 담론이나 서구 담론 전체로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 둘째 인문학이 사회과학과의 연계를 상실하고, 비판적 인문학의 경우 역시 사회적 실천과의 연계를 상실해 인문학의 고립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그는 어떻게 이 사상가들을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기표에서 떼어낼 수 있을지, 어떻게 그들을 좀 더 위험하고 급진적인 사유의 모험 속에서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상민 학술문화부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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