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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인용문은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의 블로그 글 <<실재론, 인식론, 과학, 그리고 과학주의(Realism, Epistemology, Science, and Scientism)>>에서 일부를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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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론", "반실재론", "인식론", 그리고 "존재론"이라는 술어들을 사용하여 가능한 네 가지 입장을 구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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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재론적 인식론(Realist Epistemology): 실재론적 인식론은 우리가 세계의 객체들에 직접 접근할 수 있다는 입장인데,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표상들이 그것들 자체와 정확히 같을 것이다. 여기서 정신은, 세계의 객체들로부터 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그저받은 다음에 충실하게 보고하는, 수동적인 세계 수용자로 취급된다.
2. 반실재론적 인식론(Anti-realist Epistemology): 반실재론적 입장은 훨씬 더 복잡하다. 여기서는 인식자가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입력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는데, 개념, 실천, 언어, 사회적 범주 등을 통해 입력을 조직하여 인식자의 경험의 층위에서 이런 입력에 특정한 형식이나 구조를 부여한다. 여기서 나는, 블랙박스 모형이 반실재론적 인식론과 실재론적 인식론 사이의 차이에 관해 생각하는 가장 쉬운 방식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재론적 인식론은 수용된 자극을 기록만 할 뿐인 수동적인 수용자로 다루는 반면에, 반실재론적 인식론자들은 세계로부터의 자극을 이후에 블랙박스의 구조(언어, 사회적 범주, 정신의 선험적 개념 등)에 의해 처리되는 입력으로 여기는데, 블랙박스는 자체를 거치는 자극을 처리하여 그것과 다른 출력을 산출한다. 내가 보기에, 블랙박스 모형은 모든 반실재론적 입장에 공통적이다. 그것들이 다른 지점, 그것들이 논쟁를 벌이는 논점은 그 블랙박스가 어떤 처리 메커니즘을 포함하고 있는지에 관한 문제이다. 물론 반실재론적 인식론은 당연히 인간중심적일 것인데, 지식에 관한 문제는 우리인간들이 세계를 어떻게 알게 되는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3. 반실재론적 존재론(Anti-Realist ontology): 존재론은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라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의미에서 무엇이 존재하며 어떤 동역학이 이런 존재자들을 지배하는가"라는 문제를 다룬다. 그러므로 반실재론적 존재론은 존재자들의 존재―존재자들은 무엇인가―를 우리의 작은 블랙박스의 출력과 등치시키는 존재론이다. 그 논제에 따르면, 존재는 블랙박스의 출력―(데리다가 <<그래마톨로지>>에서 서술한 대로) 표명, 또는, 칸트가 서술한 대로, 현상―이라는 것이다. 반실재론적 존재론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존재는 두 가지 의미로 진술된다는 점을 유의하자. 한편으로, 존재는 블랙박스의 출력과 등치된다. 그렇지만 출력은 입력 없이는 블랙박스에 의해 산출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입력은 어딘가에서 와야 하기 때문에, 우리의 블랙박스(여기서 블랙박스는 정신과 직관의 선험적 범주들, 디페랑스의 작용, 현존재에게 존재를 부여하는 것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에 대해 입력을 제공하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한 유형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 요약하면, 반실재론적 존재론들은 헤겔적 또는 버컬리적 경로를 택하지 않는다면 존재를 일의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4. 실재론적 존재론(Realist ontology): 반실재론적 존재론자들이 "존재란 (우리에 대한) 현상이다"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실재론적 존재자들은 우리에 대해서만 존재하는 존재자들이(예를 들면, 화폐) 있지만, 이것이 존재의 전부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창을 통해 나무를 바라볼 때] 나무가 창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의미에서 인간들로부터 독립적인 존재들도 있으며, 우리는 존재가 의미하는 바의 특질들에 관해 매우 일반적이지만 유의미한 것을 말할 수 있다.
인식론에 대한 이런 두 가지 가능성과 존재론에 대한 이런 두 가지 가능성을 개략적으로 언급되었으니 이제 이런 입장들의 조합들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알아챌 것이다. 그런 입장들이 세 가지 있다.
1. 실재론적 인식론과 함께 실재론적 존재론을 옹호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상 실재론적 인식론을 옹호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실재론적 존재론을 옹호한다.
2. 반실재론적 인식론과 반실재론적 존재론을 옹호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이것이 오늘날 대륙철학의 지배적인 입장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3. 반실재론적 인식론과 함께 실재론적 존재론을 옹호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객체지향 존재론자들이 옹호하는 것은 세 번째 입장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 반실재론적 인식론자들은 올바르게도 실재론적 인식론을 소박하며 독단적인 입장이라고 거부한다. 우리가 사물들을 즉각적으로 지각하는 방식이나 학문들 내부의 학문분과적 경계들이 존재하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한 지도를 그린다고 가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게다가 자신들의 인식론적 탐구에서 반실재론적 인식론자들은 올바르게도 현상을 조직하고, 지식을 생산하며, 기타 등등에 있어서 블랙박스에 의해 수행되는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우리는 우리의 블랙박스가 출력의 산출에 기여하는 바에 관한 이런 논쟁들을 가져야 하고, 반실재론적 인식론의 전통이 발견한 중요한 결과들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반실재론적 인식론자들과 실재론적 존재론자들이 갈라지는 지점은 존재들에 대한 우리의 접근에 관한 의문들이 존재들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데 충분하다라는 논제에 대해서이다. 객체지향 존재론자들의 경우에는, 우리가 저쪽에 있는 객체들을 어떻게아는지에 관한 의문들을 넘어서 존재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에 관한 중요하고 결정적인 의문이 여전히 있다. 이 의문은, 로이 바스카를 따르면, 실재론적 존재론자들의 경우에, 우리가 어떻게 아는지에 의해 철저히 규명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객체지향 존재론자는 우리 지식의 한계, 무엇이든 어떤 특수한 유형의 객체를 알기 위해서는 탐구에 나서야 한다는 사실, 기타 등등을 쉽게 인정하지만, 탐구에서 그리고 탐구를 통해서 발견되는 차이들이 출력의 영역에만 속하는다는 논제는 거부한다. 오히려 실재론적 존재론자는 이런 차이들이 출력에만 한정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이런 차이들을 산출하는, 정신으로부터 독립적인 입력, 즉 세계와 관련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
번역: 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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