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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30일 토요일

성性-심心·신身·정情·성性, 고지마 쓰요시 지음, 신현승 옮김, , 송학의 형성과 전개, 논형, 2004.

성性-심心·신身·정情·성性 致知
2010/07/2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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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마 쓰요시 지음, 신현승 옮김, <2. 성性- 3.심心·신身·정情·성性>, <<송학의 형성과 전개>>, 논형, 2004.
p.112
주희와 육구연 학풍의 차이는 두 사람의 저작 확동에서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육구연이 언어에 의해 진리를 전수할 수 없다고
p.113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육구연은 저술에는 그다지 힘을 쏟지 않았다. 이에 반해 주희는 그 생애에 걸쳐 수많은 서적을 집필·편집·출판하였다. 그 대표작이라고 간주할 만한 것이 <<대학>>, <<중용>>, <<논어>>, <<맹자>>의 주석서, 이른바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注>>이다. 명대에는 이것이 과거시험의 정식 주석서가 되고 또한 사서는 필수의 경서로 중시되기도 하여 독서인이라면 누구나 읽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주희 자신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것이라고 지정했던 <<대학장구大學章句>>는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이라는 정연한 논리적 구조를 갖추게 되어-이렇게 주희에 의해 그 내용이 바뀌었다.-인격 수양의 지침서로서 우러러 받들어졌다. 주희는 정호·정이 형제의 주장에 의거하면서 텍스트를 경 1장과 전 10자으로 나누어 상세하게 주를 달았다. 죽음의 문턱에 서서도 또한 성의장誠意章의 주석을 수정하려고 했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하려고???)
... 팔조목은 주자학의 이해에 의하면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계제성階梯性을 나타내고 있다. ... 팔조목의 전개는 학습자의 내면의 도야가 어떻게 그 주위를 감화시키고 마침내는 태평천하를 가져오게 되는가를 이야기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 성의에서 평천하에 도달하는 계제성은 <<대학>>의 원본 텍스트가 이미 갖추고 있는 내용이고, 주자학의 독창적인 견해라고 할 수 없다. ...
p.114
그러나 송대가 되어 <<예기禮記>>의 이 한 편이 모든 경서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은 이 시기가 되어서 처음으로 <<대학>>이라는 텍스트가 갖추고 있던 어떤 이해(讀法)의 가능성이 개척되고 수용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그 이해는 <<예기>>의 한 편으로서 그것에 주석을 단 정현에게는 그만큼 중요하다고 의식되지는 않았던 것이고, 자주 논급되는 바와 같이 송대에 등장하는 과거 관료제를 배경으로 하였던 독서인讀書人층에게 호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희가 '수기치인'으로서 정리한 팔조목의 커다란 두 단계, 즉 자기 수양과 타자에 대한 교화를 연결시켜 연속성을 갖추고 파악하는 시점은 어떻게 해서 가능하게 된 것일까.
... 양자의 이음매는 수신과 제가의 관계에 있고,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일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라고 하는 원본 텍스트의 기술에 의해 수신을 종착점으로 하는 요지의 정당성이 보장되었다.
하지만... 신학적神學的 입장보다는 그 논리의 과정을 분석하는 시각으로 조망해 본 경우, 수신이 종착점이 되어 양자를 연결한다고 하는 논리는 그다지 자명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주자학의 근간에 관련되는 대전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거기에서 열쇠가 되는 것은 '신身' 자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
 


p.116
주희에 의한 장구의 전傳 제7장은 "이른바 몸身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는 것은 몸에 분치忿懥하는 바가 있으면 곧 그 올바름을 얻지 못한다"라고 시작된다. 여기의 '몸에 분치하는 바가 있다(身有忿懥)'의 '신'이라는 글자에 <이천선생개정대학>은 '마땅히 心으로 고쳐야 한다(當作心)'라고 주를 달고 있다. ...
주희의 <<대학장구>>는 "정자程子에 의하면 '신유身有'의 '신'이라는 글자는 심心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라고 하여 정이의 주장을 인용하는 형태로 이 부분의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
p.117
애당초 이곳의 원문에는 계속해서 그 외 공구恐懼·호요好樂·우환憂患이라고 하는 세 가지의 경우에도 각각 '그 올바름을 얻지 못함(不得其正)'이 된다고 서술되어 있으며, 어느 것이나 그것들의 격정이 끓어오르는 장은 모두 '신身'이라는 글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 정이·주희는 이 네 가지가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해야만 할 내재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 주희는 스스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 네 가지는 모두 마음의 작용이니,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라도 있어 또한 그것을 살피지 못하면 욕慾이 동動하고 정情이 치우쳐서, 그 작용이 행하는 바가 혹 올바름을 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이것들은 마음의 작용이지 몸의 작용은 아니다. 따라서 그것들이 일어나는 것도 몸에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 학습자는 자기 마음속에서의 욕망·감정의 움직임을 찰지察知하여 미연에 그것을 방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에 성공하는 것이 '마음을 바르게 함'이고, 다음의 조목인 수신의 전제가 된다. ...
p.118
정이의 '개정改正'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었다. 이하의 세 가지 예는 모두 위식衛湜의 <<예기집설禮記集說>> 권151에 실려있는 것으로 시간적으로는 정이와 주희 사이에 위치하는 사람들의 문장이다. .... 먼저 장구성張九成은 현존하지 않는 <대학설大學說>에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되는 것 중의 한 구절에서 다음과 같이 논하였다.
마음의 본래 상태에는 분치도 공구도 호요도 우환도 없다. 분치·공구·호요·우환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혈기血氣에 의한 것이다. 때문에 '몸에 분치하는 바가 있으면'이라는 것과 우환까지만-모두 몸에 관하여-말하는 것이며, 마음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마음의 본체에 이것들의 격정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그것들은 혈기
p.119
가 만들어낼 수 있는 소행이며, 따라서 몸 차원의 일에 속한다. 그리하여 텍스트에는 몸이라고 말하고 마음이라고는 말하지 않은 것이다. 오여우吳如愚도 혈기를 내세우면서 해석을 가하고 있다.
'그 올바름을 얻지 못한다'라고 하는 것은 몸에 그것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몸에 그것들이 생겨나는 것은 혈기가 그렇게 하는 것이며 바로 사욕私慾이다.
이것도 혈기에 의한 소행을 사욕이라고 규정하고, 그 때문에 올바른 도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원백李元白은... 이곳이 '신'이라는 글자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처음에는 마음이 몸을 제어할 수 있지만, 이미 지금은 몸이 오히려 그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있다. 그 때문에 경문에서는 '마음에 분치하는 바가 있으면'이라고는 말하지 않은 것이다. 특별히 내세워서 '몸에 분치하는 바가 있으면'이라고 몸에 갖다 붙이어 말하고 있는 것은, 이것들 네 가지의 장해障害가 몸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
p.120
그들이 네 가지의 격정을 마음이 아니라 몸에 귀속시켰던 것은 마음이 혈기를 갖추고 있지 않다고 간주하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마음은 혈기가 작용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이전의 차원, 즉 말을 바꾸어보면 미발의 단계에 속해 있는 것이다. 장구성이 정호의 주장을 받아들여 성性은 선악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파악했다는 점은 이미 앞에서 서술하였다. 그에게 성은 즉 마음이며, 이것이 이발의 정情과 서로 대립하였다. 이 마음을 그대로 현현시키는 것이야말로 정심正心의 요점이고, 마음에 올바르지 않은 격정이 끓어오른다고 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이러한 논리야말로 육구연의 '심즉리心卽理'설에 연결되는 것이었다. ...
그러나 주희에게 그것은 수양을 일면적인 것으로 처리해버리는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121
장구성과 같은 입장은 '마음이 올바르면 몸도 닦여진다'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희에게 팔조목은 그 순서에 따라 차차 장을 확대해가면서 점진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수양법으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번잡한 것이다. 이른바 '심학'파의 주자학 공격은 마음의 본래성을 발현시키는 것뿐인 일에 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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