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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30일 토요일

인물성동이논쟁-인간과 만물의 차별성에 대한 검토

인물성동이논쟁-인간과 만물의 차별성에 대한 검토 致知
2010/03/1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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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인물성동이논쟁-인간과 만물의 차별성에 대한 검토', "논쟁으로 보는 한국철학", 예문서원, 1995.


1. 논쟁의 발단과 배경

p.205
성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주 만물의 발생과 변화는 리와 기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 조선 초부터 인간의 성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심성의 올바른 발현을 통해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조선 성리학자들은 인간의 성정이 우주만물 사이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관해 이미 깊은 탐구를 해 왔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성과를 사단칠정 논쟁이라 부른다.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다른 동물들과 달리 사회 규범을 가지고 이를 실천해 나갈 수 있다고 할 때, 이제 시야를 인간의 성정에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 쪽으로 확장시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자연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
p.206
인간이 왜 동물과 같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일반적 관심이라면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비롯한 성리학자 대부분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인성과 물성의 차이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관심은 사계 김장생, 우담 정시한, 외암 이식, 농암 김창협 등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아무래도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은 수암 권상하의 문하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권상하는 이이-김장생-송시열의 뒤를 이어 기호 학파의 맥을 계승하는 사람이다. 그 문하에는 인물성동이 논쟁의 주인공이 되는 외암 이간과 남당 한원진이 있었다. 한원진은 1705년 지은 '시동지설示同志說'에서 인물성론에 관해 이미 상당히 정리된 입장을 밝히고 있고, 이간은 1709년 최성중에게 보내는 편지('與崔成仲')에서 오상과 미발의 관한 논의를 한 바 있다. 즉 1712년에 본격적인 논쟁을 벌이기 이전에 이미 이들은 자기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토론은 1712년 이간이 스승 권상하에게 미발 상태의 순선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 권상하는 이간의 설에 수긍하였으나, 한원진이 자기의 의견을 설명하자 이번에는 한원진의 설을 인정하였다. 그러자 이간은 스승 권상하에게 편지를 보내 스승과 한원진의 설에 이의를 제기하였고, 한원진은 스승을 대변해서 다시 이간을 반박함으로써 이들 둘 사이의 논쟁은 본격화되었다. 이간은 '리통기국변'(1713), '미발유선악변'(1713), '미발변'(1714), '오상변'(1714)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발변후설'(1719)을 썼다. 그리고 한원진은 '부미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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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변'(1715), '부기질지성변증'(1715) 등을 쓰고, 1724년에는 이간이 권상하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종합적인 변론을 담아 '이공거상사문서변'을 지어 자신의 입장을 마무리하였다.
이들의 논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집단적 논쟁의 성격을 띠면서 조선조 말기까지 계속되었다. 이간이나 한원진은 모두 권상하의 문인들로서 기호지방(충청도)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후 이간의 설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주로 농암 김창협과 삼연 김창흡 계열을 잇는 기원 어유봉, 도암 이재, 여호 박필주 등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서울에 사는 노론 낙론 계열이었으므로 이들의 이론을 낙론洛論(洛下, 즉 서울 부근)이라고도 한다. 한편 권상하와 한원진의 이론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병계 윤봉구, 매봉 최징후, 봉암 채지홍 등 주로 충청도 근방에 살았기 때문에 호론湖論(湖西, 즉 충청도)이라고도 한다. 이 때문에 이들 사이의 논쟁은 '인물성동이론'이라는 명칭 이외에 '호락논쟁'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2. 논쟁의 전개

1. 성 개념의 다의성

성리학에서의 성이란 인간 또는 사물 안에 내재된 리를 가리킨다. 성은 구성상으로는 '기 안의 리'(氣中之理)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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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관점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의 함의를 지닌다. 동론同論을 주장하는 측과 이론異論을 주장하는 측이 이용하는 논거를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간은 "중용"의 '천명지위성'에 대한 주희의 주석을 동론의 근거로 든다. 주희의 주석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명命은 령令과 같고, 성性은 곧 리理이다. 하늘이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써 만물을 화생化生하게 함에, 기氣로써 형태를 이룰 때에 리理 역시 부여되니 마치 명령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에는 각기 부여된 리를 얻어 건순오상健順五常의 덕德으로 삼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성性이다. ("中庸章句", '天命之謂性'의 朱子註: 命, 猶令也. 性, 卽理也. 天以陰陽五行, 化生萬物, 氣以成形而理亦賦焉, 猶命令也. 於是, 人物之生, 因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德, 所謂性也.)
만물이 모두 리를 부여받아 기로써 형태를 이루고, 이 때 각기 부여된 리가 곧 성이 되므로, 인간을 포함하는 만물의 성이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원진은 "맹자집주"와 "대학혹문"에서 나오는 주희의 글을 논거로 사용한다. "맹자집주"에서 주희가 주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사람과 사물이 생겨남에 성性이 없을 수도 없고 기氣가 없을 수도 없다. 그러나 기氣로써 말하면 지각 운동에서는 인간과 사물에 다름이 없는 듯 할지라도, 리理로써 말하면 사물이 어찌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온전하게 받았겠는가? 이것이 인간의 성性이 선하며 만물의 영장이 된 까닭이다. ("孟子集註", '告子上', 3장의 朱子註: 人物之生, 莫不有是性, 亦莫不有是氣. 然以氣言之, 則知覺運動, 人與物, 若不異也. 以理言之, 則仁義禮智之稟, 豈物之所得而全哉. 此人之性, 所以無不善而爲萬物之靈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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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는 차이가 없지만 품부받는 리가 다르기 때문에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다고 하니 인물성 이론의 논거가 될 만하다. 주희는 "대학혹문"에서 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사람과 사물이 생겨남에 반드시 리理를 얻은 다음에 건순인의예지健順仁義禮智의 성性을 이루게 되고, 반드시 기氣를 얻은 다음에 혼백 오장 백해의 신체를 이루게 된다. ... 그런데 그 리理로써 말하면 만물의 근원은 하나이므로 참으로 사람과 사물은 귀천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 기氣로써 말하면 기氣의 바르고 통한 것을 얻으면 사람이 되고 그 치우치고 막힌 것을 얻으면 사물이 된다. 그러므로 귀천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大學或問", '經一章': 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 然以其理而言之, 則萬物一原, 固無人物貴賤之殊; 以其氣而言之, 則得其正且通者爲人, 得其偏且塞者爲物, 是以或貴或賤而不能齊也.)
여기서도 사람과 사물의 차이를 말하고 있기는 하나, 이번에는 리는 동일하지만 기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사람과 사물의 다름이 생긴다고 한다. "중용"의 주석에 따르면 사람과 사물이 모두 천으로부터 리를 부여받아 성으로 삼기 때문에 사람과 사물의 성이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맹자집주"에 따르면 부여받은 리의 차이에 의하여, "대학혹문"에 따르면 기의 차이에 의하여 사람과 사물이 달라진다. 성이란 리가 기와 결합된 경우를 말하므로 리의 차이에 의한 것이든, 기의 차이에 의한 것이든 기와 결합된 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리와 성의 개념을 다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주희의 혼용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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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된다. 만물 생성과 변화의 원리라는 의미에서 리는 우주 전체에 관통하고 있고, 그러한 의미에서는 개체 내의 리인 성도 동일하다. 그러나 각종의 사물이 유적類的 특성을 이루게 하고, 또한 각각의 개체이도록 하는 원리를 성이라 할 때 이 성은 사람과 사물에서, 나아가 각각의 개체에서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차이의 원인을 기라고 하든 리라고 하든 그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된 성 개념을 사용하는 한 인물성동이 논쟁의 전개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성을 보는 관점에 따라 본원적인 리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각 부류의 유 개념 또는 개별적 특성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는 것은, 이 논쟁에 참여하는 성리학자들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문제는 그 중 어느 관점을 택하며, 굳이 그 관점을 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있다. 한원진은 성삼층설性三層說로 이를 해명하려 한다.
 리는 본래 하나이다. 그런데 형기를 초월하여(超形氣) 말한 것이 있고, 기질에 인하여(因氣質) 말한 것이 있고, 기질을 섞어서(雜氣質) 말한 것이 있다. 형기를 초월하여 말하면 태극이라는 이름이 이것으로, 만물의 리가 동일하다. 기질로 인하여 이름하면 건순 오상의 이름이 이것으로, 사람과 사물의 성이 같지 않다. 기질을 섞어서 말하면 선악의 성이 이것으로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의 성이 또한 같지 않다. ("
南塘集" 권11, '擬答李公擧': 理本一也。而有以超形氣而言者。有以因氣質而名者。有以雜氣質而言者。超形氣而言。則太極之稱是也。而萬物之理同矣。因氣質而名。則健順五常之名是也。而人物之性不同矣。雜氣質而言。則善惡之性是也。而人人物物又不同矣。)
기질을 초월하여 말할 때는 만물의 리가 동일하고, 기질과 같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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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서의 리인 성을 말하자면 사람과 사물의 성이 다르며, 기질과 섞여 있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모든 개체의 성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한편 이간은 '일원一原'과 '이체異體'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일원으로 말하면, 천명 오상이 모두 형기를 초월할 수 있으므로 사람과 사물에 치우침과 온전함의 다름이 없다. 이것이 이른바 본연지성이다. 이체로 말하면, 천명 오상이 모두 기질로 인하여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사람과 사물 사이에 치우침과 온전함의 다름이 있을 뿐 아니라, 성인과 범인 사이에도 천차만별이 있다. 따라서 치우친 곳에서는 성명性命도 함께 치우치고 온전한 곳에서는 성명도 함께 온전하다. 이것이 이른바 기질지성이다. ("巍巖遺稿" 권7, '答韓德昭別紙': 以一原言。則天命五常。俱可超形器。而人與物無偏全之殊。是所謂本然之性也。以異體言。則天命五常。俱可因氣質。而不獨人與物有偏全。聖與凡之間。又是千階萬級。而偏處性命俱偏。全處性命俱全。是所謂 氣質之性也。)
근원으로 말하자면 만물에 다름이 있을 수 없고, 기질에 구애됨으로 말하자면 사람과 사물이 다를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 사람 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음을 인정하므로 결국 논쟁의 쟁점은 어느 관점을 위주로 보아야 하는가에 있다. 이간은 '일원一原'의 관점을 택한다. 
본연이든 기질이든 성은 단지 리일 뿐이다. ... 성을 말하는 자리에서 그것을 리로 바꿀 수 없고, 리를 말하는 자리에서 그것을 성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한다면, 나의 미천한 견해가 미칠 바가 아니다. ("巍巖遺稿" 권7, '答韓德昭別紙': 本然氣質之間。性只是此理也。... 言性處。不可以理易之。言理處。不可以性釋之。則非鄙見之所及矣。)
p.212
성은 곧 리이므로 일원의 관점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원진은 성을 기와 결합된 리라고 보면서 '인기질因氣質'의 관점을 택하여 인성과 물성이 서로 다름을 주장한다.
성을 말하는 자리에서는 진실로 그것을 리로 바꿀 수 있고, 리를 말하는 자리에서도 또한 그것을 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성과 리 두 글자를 함께 대비한다면 리가 같고 성이 다름은 분명하다. ("南塘集" 권11, '擬答李公擧': 言性處固可以理易之。言理處亦可以性釋之。然以性理二字。幷擧對言。則理同而性異。不可不辨也。)
리는 기와 상대되는 것이고 성은 기와 결합된 리(氣中之理)이므로 우주의 보편 원리로서의 리와 개별성 또는 유개념으로서의 성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리통기국理通氣局의 이중성

서로의 관점을 인정하면서도 의견의 대립을 이루는 양측이 공통으로 이용하는 또 하나의 논거가 있다. 그것은 이이의 리통기국설이다. ...
이이는 자신의 리통기국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리통기국은 본체 위에서 말해야 하며, 또한 본체를 떠나서는 따로 유행을 구할 수도 없다. 사람의 성이 사물의 성이 아님은 기氣의 국한됨이요, 사람의 리가 곧 사물의 리임은 리의 통함이다. 모나고 둥근 그릇은 다르나 그릇 안의 물은 동일하고, 크고 작은 병은 다르나 병 안의 공기는 동일하다. 기의 하나의 근본이란 리의 통함 때문이고, 리의 만가지로 다름은 기의 국한됨 때문이다. 본체 가운데 유행이 갖추어져 있고, 유행 가운데 본체가 있다. 이로써 생각해보면 리통기국의 설이 과연 한부분에 떨어지겠는가? ("栗谷全書", 권10, '與成浩原': 理通氣局。要自本體上說出。亦不可離了本體。別求流行也。人之性非物之性者。氣之局也。人之理卽物之理者。理之通也。方圓之器不同。而器中之水一也。大小之瓶不同。而瓶中之空一也。氣之一本者。理之通故也。理之萬殊者。氣之局故也。本體之中。流行具焉。流行之中。本體存焉。由是推之。理通氣局之說。果落一邊乎。)
p.213
이이의 리통기국설은 리의 무형무위無形無爲한 특성과 기의 유형유위有形有爲한 특성에 기초하여 리기의 불상잡 불상리한 구성 관계를 리일분수의 체계로 설명하고자 한 것이었다. 리통에 의하면 사람과 사물의 리가 동일하고, 기국에 의하면 사람과 사물의 성이 다를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사이의 성도 다르다. 따라서 리통에 따르면 인물성동론을 지지하게 되고, 기국에 따르면 인물성이론을 지지하게 된다. ... 그런데 논쟁의 양측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서로 다르다.
율곡에 따르면 천지만물은 기의 국한됨이고, 천지만물의 리는 리의 통함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리의 통함이라는 것은 기의 국한됨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만 오히려 기의 국한됨에 나아가서 그 본체를 가리키면서도 기와 섞지 않고 말하는 것이다. ("巍巖遺稿" 권12, '理通氣局辨': 盖栗谷之意。天地萬物。氣局也。天地萬物之理。理通也。而所謂理通者。非有以離乎氣局也。卽氣局而指其本體。不襍乎氣局而爲言耳。)
p.214
이간은 일원과 이체의 구분 가운데 일원의 입장에서 리통을 이해한다. 성은 기중지리이지만 리의 온전한 성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기와 섞지 않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원진은 통과 국을 각각 리와 성에 대비시킨다.
대개 단지 성자만 말하면 통함과 국한됨은 모두 성이고, 단지 리자만 말하면 통함과 국한됨은 모두 리이다. 성과 리를 상대하여 말하면 통함은 리이고 국한됨은 성이다. 성과 리가 비록 단 하나의 리일 뿐이지만 성이라고도 하고 리라고도 하는 것은 쓰이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미 리자가 있는데 또 성자가 있는 까닭이다. ("南塘集" 권28, '李公擧上師門書辨': 盖單言性字則通局皆性也。單言理字則通局皆理也。以性與理對言。則通爲理而局爲性。性也理也。雖只一理。曰性曰理。用處不同。此所以旣有理字而又有性字也。)
성을 리가 기와 결합되어 변화된 것으로 보는 한원진은 초형기로서의 리와 인기질로서의 성을 각각 리통과 기국에 대비시키는 것이다.

3. 본연지성과 기질지성

이러한 견해 차이는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에 대한 이해에서도 또한 나타나다.
아직 발하기 전에 리가 기 가운데 있을 때 리만을 가리키면 본연지성이고, 기를 함께 가리키면 기질지성이다. 아마도 바꿀 수 없는 이론일 것이다. ("南塘集" 권11, '附未發氣質辨圖說': 未發之前。理具氣中。單指理爲本然之性。兼指氣爲氣質之性者。恐是不易之論也。)
p.215
한원진은 현상계의 인간과 사물에서 리만 가리킨 것이 본연지성, 리기를 함께 가리킨 것이 기질지성이라 하고, 인기질의 관점에서 기질지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대해 이간은 '리기동실理氣同實', '심성일치心性一致'의 입장, 즉 리기를 분리해서 지적할 수 없고, 심心을 두고 성性만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심은 바르지 않을지라도 성은 스스로 중을 지킬 수 있고, 기는 순조롭지 않을지라도 리는 스스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니, 천하에 이런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선만을 가리킨 것은 기器와 분리하는 것이니, 사람의 경우에는 반드시 리기동실理氣同實 심성일치心性一致인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야 한다. ... 심은 둘이 아니다. 그러나 구속됨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두 가지로 지적한다면 이른바 대본지성이란 그 본연지심에 나아가 그것만 가리킨 것이고, 기질지성이란 그 기질지심에 나아가 함께 가리킨 것이다. ("巍巖遺稿" 권12, '未發辨': 心之不正而性能自中。氣之不順而理能自和。天下有是乎。故單指之善。自不干涉於其器。而在人則必待夫理氣同實。心性一致處言之者。... 心非有二也。以其有拘與不拘而有是二指。則所謂大本之性者。當就其本然之心而單指。所謂氣質之性者。當就其氣質之心而兼指矣。)
한원진처럼 기질지성과 본연지성을 구분하여 기와 별개로서의 리를 따로 끄집어내어 이를 본연지성이라 단지單指한다는 것은 이간이 보기에는 성이라고 하기가 곤란하다. 이간은 기와 분리된 리를 성이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와 결합된 리로서의 성이 본래의 리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리와 기가 공존하는 리기동실 심성일치의 상태를 고수하고자 한다. 본연지심에 나아가서 단지하면 본연지성이고, 기질지심에 나아가서 겸지하면 기질지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원진의 격렬한 비판을 유발한다.
p.216
심은 기이고 성은 리이다. 기는 맑거나 탁함 아름답거나 추함에 가지런하지 않음이 있지만 리는 곧 순선하다. 그러므로 리만을 가리키면 본연지성이고 리와 기를 함께 가리키면 기질지성이나 성에 두 몸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기질을 겸함과 겸하지 않음에 따라 두 가지 이름이 있을 뿐이다. ("南塘集" 권11, '附未發氣質辨圖說': 心卽氣也。性卽理也。氣有淸濁美惡之不齊。而理則純善。故單指理爲本然之性。兼指理氣爲氣質之性。性非有二體也。只是氣質之兼不兼而有二名耳。)
... 한원진은 하나의 물物, 하나의 심心에서 단지와 겸지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구분하고 기질지성의 관점을 택한 것이다. 이간은 자신의 일관된 리기 불상리 불상잡 및 리기동실 심성일치의 원칙은 고수할 수 있었지만, 하나의 사람 또는 사물 안에 두 개의 심과 두 개의 성이 존재하게 된다는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4. 오상론

... 이들은 인성과 물성의 동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증거를 오상五常에서 찾는다.

생각건대 만물이 모두 이 성을 가지고 있는데 오직 사람의 성이 가장 귀하고 지극히 선하게 되는 까닭은 인의예지의 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맹자가 성선을 논할 때 다른 말은 없이 다만 인의예지로써 말한 것이다. 만약 만물 중 지각 운동을 가지고 있는 것이 모두 인의예지의 온적한 덕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면, 사람의 성이 가장 귀한다는 것은 과연 무슨 까닭이겠는가? ("南塘集" 권29, '論性同異辨': 盖萬物同有是性。而獨人之性爲最貴而至善者。以其有仁義禮智之德也。故孟子論性善。無他語。只以仁義禮智言之。若使萬物之有知覺運動者。皆具仁義禮智之全德。則人性之爲最貴者。果何事也?)

사물의 지각은 그 기가 오행의 거칠고 흐린 것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기는 단지 거칠고 흐린 리를 얻을 뿐이다. 비록 일찌기 그 리가 없지는 않지만 또한 인의예지라고 할 수는 없다. <호랑이와 이리의 인仁, 벌과 개미의 의義와 같은 종류는 오행 가운데서도 그 증 하나의 빼어난 기를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기는 인이 되고 의가 되지만, 끝내 온전할 수는 없다.> 사람의 지각은 그 기가 오행의 정밀하고 빼어난 것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리는 인의예지가 되고, 지각의 발현도 인의예지의 작용이 아님이 없다. ("南塘集" 권29, '論性同異辨': 物之知覺。其氣得五行之粗濁者。故其理只得爲粗濁之理。雖未嘗無其理。亦不可謂仁義禮智也。<虎狼之仁。蜂蟻之義之類。是於五行中亦得其一段秀氣。故其理爲仁爲義而終不能全也。> 人之知覺。其氣得五行之精英者。故其理爲仁義禮智。而知覺之發見者。莫非仁義禮智之用也。)
한원진에 따르면 리는 기와 결합함으로써 성이 되고 기의 청탁수박에 따라 오상을 가짐이 다르다. 사람만이 빼어난 기를 얻은 까닭에 오상도 온전히 갖추지만, 나머지 다른 사물들은 거칠고 흐린 기를 얻었으므로 다섯 가지 오상 중 일부만 갖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사물의 성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간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우주에는 리와 기가 있을 뿐이다. 그 순수지선의 참됨, 무성무취의 오묘함은 천지만물의 똑같은 하나의 근원이다. 그것을 높여서 태극이라 하니 그 명칭은 포괄적이고, 그 전부를 세어 오상이라고 하니 그 조리가 분명하다. 이것은 곧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실체로서, 사람고 ㅏ사물이 받은 온전한 덕이다. ("巍巖遺稿" 권12, '五常辨': 夫宇宙之間。理氣而已。其純粹至善之實。無聲無臭之妙。則天地萬物。同此一原也。尊以目之。謂之太極。而其稱渾然。備以數 之。謂之五常。而其條粲然。此卽於穆不已之實體。人物所受之全德也。
p.218
바른 것도 오상이고 치우친 것도 오상이다. 통하는 것도 오상이고 막힌 것도 오상이다. 모두 오상이지만 바르고 통하므로 발용할 수 있고, 치우치고 막혔으므로 발용할 수 없다. 이제 발용의 여부를 보고서 하나는 있다고 하고 하나는 없다고 한다면, 그 뜻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巍巖遺稿" 권4, '上遂菴先生-別紙': 正亦五常也。偏亦五常也。通亦五常也。塞亦五常也。同是五常。而正且通。故能發用。偏且塞。故不能發用。今見其發用與否。而謂之一有。而一無。無迺爲未盡耶?)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되고 그 근원을 세부적으로 지칭할 때 오상이라고 하므로 사람과 사물이 오상을 온전히 받지 못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오상을 온전히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태극을 온전히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오상을 온전히 갖추고는 있지만, 다만 겉으로 드러남(發用)에서 차이가 날 뿐이라는 것이다.
이간에 의하면 우주만물의 이치인 리가 기 속에서도 그대로 보존되므로 사람과 사물의 차이는 그 발용에서 드러날 뿐이다. 그러나 한원진의 경우 리가 기 안에 들어갔을 때는 그 원인이 기이든 리이든, 이 때의 리는 이미 기와 결합하면서 성으로 변화된다. 따라서 모든 사물의 성이 온전한 오상을 갖추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5. 미발의 심체 문제

사람과 사물의 성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단지 존재론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결국은 가치론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에 윤리적 가치 실현 능력인 오상이 어떻게 갖추어져 있는가를 문제시하는 한편, 더욱 구체적으로 선악의 가치 실현 가능성을 미발의 심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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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에서 다룬다. 성을 기중지리로 보는 한원진은 심체도 성과 대비되는 기의 측면에서 바라본다.
심이란 기의 모임이니 그 체는 본래 허虛이다. 허이므로 어둡지 않고 기이므로 가지런하지 않다. 그 체가 본래 허하여 어둡지 않다는 데서 말하자면 이를 선善이라 하고, 그 기의 모임이 가지런하지 않다는 데서 말하면 선악善惡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미 선이라 하고 또 선악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 말이 각기 가리키는 바가 있어 서로 방해되는 일이 없다. 기 가운데 있는 성은, 그 미발허명함을 가리켜 대본지성이라 하고, 기품이 가지런 하지 않음을 겸하여 말하면 이를 일러 기질지성이라 한다. ("南塘集" 권11, '擬答李公擧-附未發五常辨': 心者氣之聚而體本虛也。虛故不昧。氣故不齊。自其體本虛而不昧者言則謂之善。自其氣之聚而不齊者言。則謂之有善惡。然則旣謂善而又謂有善惡者。言各有所指而未甞相妨也。性在氣中者。卽其未發虛明而中。則謂之大本之性。兼其氣禀不齊而言。則謂之氣質之性。)

심은 기이고 성은 리이다. 기는 청탁미악의 가지런하지 않음이 있지만 리는 곧 순선하다. ... 기는 비록 청탁미악의 다양함이 있을지라도 미발시에는 기가 움직이지 않으므로(不用事) 선악이 드러나지 않고 고요히 텅 빈 듯 맑을 뿐이다. 비록 고요히 텅 빈 듯 맑을 지라도 그 기품 본래의 청탁미악은 또한 없을 수가 없다. ("南塘集" 권11, '擬答李公擧-附未發氣質辨圖說': 心卽氣也。性卽理也。氣有淸濁美惡之不齊。而理則純善。故單指理爲本然之性。兼指理氣爲氣質之性。性非有二體也。只是氣質之兼不兼而有二名耳。氣雖有淸濁美惡之不齊。而未發之際。氣不用事。故善惡未形。湛然虛明而已矣。雖則湛然虛明。其氣禀本色之淸濁美惡則亦未甞無也。)
리만을 가리켜 말한다면 본연지성이라 하고 리기를 겸하여 말하다면 기질지성이라 하지만, 한원진이 사람과 사물의 성을 이야기할 때 택하는 관점은 기질지성이다. 그러므로 심체에서 기가 발하지 않았을 때에도 기의 선악이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지 본체에 기의 청탁이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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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한원진은 미발을 외물에 접촉하지 않은 고요한 상태에서 기가 발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간은 일반적인 기와 심의 기를 구분한다.
기는 하나이지만 그 거친 것을 말하면 혈기이고 그 섬세한 것을 말하면 신명이다. 거칠고 섬세한 것을 통틀어 기라고 한다. 그러나 심은 혈기가 아니고 신명이다. 심체는 지극히 섬세하지만 기질은 지극히 거칠며, 심체는 지극히 크지만 기질은 지극히 작다. ("巍巖遺稿" 권13, '未發辨後說': 夫氣一也。而語其粗則血氣也。語其精則神明也。統精粗而謂之氣。而所謂心則非血氣也。乃神明也。心體也至精。而氣質也至粗。心體 也至大。而氣質也至小。)
한원진과 달리 심체의 기와 일반적인 기질을 구분한 이간은, 다시 진정한 미발을 혈기와 뒤섞여 있는 미발과 구별한다.
명덕본체는 성인과 범인이 동일하게 가지고 있고 혈기청탁은 성인과 범인이 다르게 가지고 있다. 명덕은 천군이고 혈기는 기질이다. 천군이 주재하면 혈기가 백체에 물러나서 마음이 텅 비어 환하게 되니, 이것이 대본의 소재이며 자사가 말한 '미발'이다. 그러나 천군이 주재하지 못하면 혈기가 마음에서 용사하여 청탁이 가지런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선과 악이 뒤섞인 것이다. 덕소(한원진)는 이것을 미발이라고 말하고 있다. ("巍巖遺稿" 권12, '未發辨': 故愚謂明德本體。則聖凡同得。而血氣淸濁。則聖凡異稟。明德卽天君也。血氣卽氣質也。天君主宰。則血氣退聽於百體而方寸虛明。此大本所在。而子思所謂未發也。天君不宰。則血氣用事於方寸。而淸濁不齊。此善惡所混。而德昭所謂未發也。)
이간에 의하면, 한원진은 단지 발하지는 않았지만 혈기가 마음에서 용사하는 것을 미발이라고 한다. 그 반면에 자신이 말하는 미발은 단지 외물에 접촉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명(天君)을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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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는, 즉 리의 실현 가능태를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각각 '부중의 미발(不中底未發)'과 '중의 미발(中底未發)'이라고 하여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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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논쟁의 의의

인성과 물성의 동이 문제는 18세기 초에 시작된 후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거의 모든 지식인이 관심을 기울였던 문제였다. ... 논쟁의 의의를 정리해보면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성性 개념의 다의성, 특히 주희가 사용하는 성 개념의 혼란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사단칠정 논쟁을 거치면서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깊이는 이미 중국을 능가하였다. 우주와의 관련 속에서 인간의 심성정을 정밀히 탐구해왔던 이들은 성 개념의 다의성에 주의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인간 심성의 긍정적 능력을 고양하여 성리학적 이상 국가를 실현하고자 했던 조선 성리학자들에게는 필연적인 과제였다. ...
둘째, 중국 이외에 새로이 등장하는 세력에 대한 대처 문제와 관련된 논의라는 것이다. 병자호란(1636~1637)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맛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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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람다운 사람의 문화'로서 중화 문화를 추구하며 소중화를 자부했던 조선이, 짐승에 가깝다고 여기며 천시했던 오랑캐의 강대한 세력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것은 그 당시 커다란 문제였다. 따라서 이 논쟁을 화이론적인 문화적 우월성에 입각하여 거론되었던 북벌론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도 있다. 또한 같은 논의의 차원에서 정반대의 입장으로 북학파의 인물성론에 주목하는 시도도 있다. 북학파, 특히 홍대용과 박지원은 사람을 포함한 만물이 모두 똑같이 기로 구성되고 공통된 생명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만물은 균등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사람의 입장에서만 세계를 볼 것이 아니라 사물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객관적 상대적 관점을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의 상대화 객관화는 중세 사회의 계층적 질서를 부정하고 근대적인 사회 질서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사고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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