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쟁의 발단과 배경 p.205 성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주 만물의 발생과 변화는 리와 기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 조선 초부터 인간의 성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심성의 올바른 발현을 통해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조선 성리학자들은 인간의 성정이 우주만물 사이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관해 이미 깊은 탐구를 해 왔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성과를 사단칠정 논쟁이라 부른다.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다른 동물들과 달리 사회 규범을 가지고 이를 실천해 나갈 수 있다고 할 때, 이제 시야를 인간의 성정에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 쪽으로 확장시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자연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 p.206 인간이 왜 동물과 같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일반적 관심이라면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비롯한 성리학자 대부분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인성과 물성의 차이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관심은 사계 김장생, 우담 정시한, 외암 이식, 농암 김창협 등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아무래도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은 수암 권상하의 문하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권상하는 이이-김장생-송시열의 뒤를 이어 기호 학파의 맥을 계승하는 사람이다. 그 문하에는 인물성동이 논쟁의 주인공이 되는 외암 이간과 남당 한원진이 있었다. 한원진은 1705년 지은 '시동지설示同志說'에서 인물성론에 관해 이미 상당히 정리된 입장을 밝히고 있고, 이간은 1709년 최성중에게 보내는 편지('與崔成仲')에서 오상과 미발의 관한 논의를 한 바 있다. 즉 1712년에 본격적인 논쟁을 벌이기 이전에 이미 이들은 자기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토론은 1712년 이간이 스승 권상하에게 미발 상태의 순선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 권상하는 이간의 설에 수긍하였으나, 한원진이 자기의 의견을 설명하자 이번에는 한원진의 설을 인정하였다. 그러자 이간은 스승 권상하에게 편지를 보내 스승과 한원진의 설에 이의를 제기하였고, 한원진은 스승을 대변해서 다시 이간을 반박함으로써 이들 둘 사이의 논쟁은 본격화되었다. 이간은 '리통기국변'(1713), '미발유선악변'(1713), '미발변'(1714), '오상변'(1714)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발변후설'(1719)을 썼다. 그리고 한원진은 '부미발오 p.207 상변'(1715), '부기질지성변증'(1715) 등을 쓰고, 1724년에는 이간이 권상하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종합적인 변론을 담아 '이공거상사문서변'을 지어 자신의 입장을 마무리하였다. 이들의 논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집단적 논쟁의 성격을 띠면서 조선조 말기까지 계속되었다. 이간이나 한원진은 모두 권상하의 문인들로서 기호지방(충청도)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후 이간의 설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주로 농암 김창협과 삼연 김창흡 계열을 잇는 기원 어유봉, 도암 이재, 여호 박필주 등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서울에 사는 노론 낙론 계열이었으므로 이들의 이론을 낙론洛論(洛下, 즉 서울 부근)이라고도 한다. 한편 권상하와 한원진의 이론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병계 윤봉구, 매봉 최징후, 봉암 채지홍 등 주로 충청도 근방에 살았기 때문에 호론湖論(湖西, 즉 충청도)이라고도 한다. 이 때문에 이들 사이의 논쟁은 '인물성동이론'이라는 명칭 이외에 '호락논쟁'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2. 논쟁의 전개
1. 성 개념의 다의성 성리학에서의 성이란 인간 또는 사물 안에 내재된 리를 가리킨다. 성은 구성상으로는 '기 안의 리'(氣中之理)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p.208 보는 관점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의 함의를 지닌다. 동론同論을 주장하는 측과 이론異論을 주장하는 측이 이용하는 논거를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간은 "중용"의 '천명지위성'에 대한 주희의 주석을 동론의 근거로 든다. 주희의 주석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명命은 령令과 같고, 성性은 곧 리理이다. 하늘이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써 만물을 화생化生하게 함에, 기氣로써 형태를 이룰 때에 리理 역시 부여되니 마치 명령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에는 각기 부여된 리를 얻어 건순오상健順五常의 덕德으로 삼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성性이다. ("中庸章句", '天命之謂性'의 朱子註: 命, 猶令也. 性, 卽理也. 天以陰陽五行, 化生萬物, 氣以成形而理亦賦焉, 猶命令也. 於是, 人物之生, 因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德, 所謂性也.)
만물이 모두 리를 부여받아 기로써 형태를 이루고, 이 때 각기 부여된 리가 곧 성이 되므로, 인간을 포함하는 만물의
성이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원진은 "맹자집주"와 "대학혹문"에서 나오는 주희의 글을 논거로 사용한다. "맹자집주"에서 주희가 주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p.209
기에는 차이가 없지만
품부받는 리가 다르기 때문에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다고 하니 인물성 이론의 논거가 될 만하다. 주희는 "대학혹문"에서 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여기서도 사람과 사물의 차이를 말하고 있기는 하나, 이번에는
리는 동일하지만 기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사람과 사물의 다름이 생긴다고 한다. "중용"의 주석에 따르면 사람과 사물이 모두 천으로부터 리를
부여받아 성으로 삼기 때문에 사람과 사물의 성이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맹자집주"에 따르면 부여받은 리의 차이에 의하여,
"대학혹문"에 따르면 기의 차이에 의하여 사람과 사물이 달라진다. 성이란 리가 기와 결합된 경우를 말하므로 리의 차이에 의한 것이든, 기의
차이에 의한 것이든 기와 결합된 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리와 성의 개념을 다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주희의
혼용이 문
p.210
제된다. 만물 생성과 변화의 원리라는 의미에서 리는 우주
전체에 관통하고 있고, 그러한 의미에서는 개체 내의 리인 성도 동일하다. 그러나 각종의 사물이 유적類的 특성을 이루게 하고, 또한 각각의
개체이도록 하는 원리를 성이라 할 때 이 성은 사람과 사물에서, 나아가 각각의 개체에서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차이의 원인을 기라고 하든
리라고 하든 그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된 성 개념을 사용하는 한 인물성동이 논쟁의 전개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성을 보는 관점에 따라 본원적인 리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각 부류의 유 개념 또는 개별적 특성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는 것은, 이 논쟁에 참여하는 성리학자들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문제는
그 중 어느 관점을 택하며, 굳이 그 관점을 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있다. 한원진은 성삼층설性三層說로 이를 해명하려 한다.
기질을 초월하여 말할 때는 만물의 리가 동일하고, 기질과
같이 있는 것
p. 211
으로서의 리인 성을 말하자면 사람과 사물의 성이 다르며,
기질과 섞여 있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모든 개체의 성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한편 이간은 '일원一原'과 '이체異體'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근원으로 말하자면 만물에 다름이 있을 수 없고, 기질에
구애됨으로 말하자면 사람과 사물이 다를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 사람 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음을 인정하므로 결국 논쟁의 쟁점은 어느 관점을 위주로 보아야 하는가에 있다. 이간은 '일원一原'의
관점을 택한다.
p.212
성은 곧 리이므로 일원의 관점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원진은 성을 기와 결합된 리라고 보면서
'인기질因氣質'의 관점을 택하여 인성과
물성이 서로 다름을 주장한다.
리는 기와 상대되는 것이고 성은 기와 결합된
리(氣中之理)이므로 우주의 보편 원리로서의 리와 개별성 또는 유개념으로서의 성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리통기국理通氣局의
이중성
서로의 관점을 인정하면서도 의견의 대립을 이루는 양측이
공통으로 이용하는 또 하나의 논거가 있다. 그것은 이이의 리통기국설이다. ...
이이는 자신의 리통기국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p.213
이이의 리통기국설은 리의
무형무위無形無爲한 특성과 기의 유형유위有形有爲한 특성에 기초하여 리기의 불상잡 불상리한 구성 관계를 리일분수의 체계로 설명하고자 한 것이었다.
리통에 의하면 사람과 사물의 리가 동일하고, 기국에 의하면 사람과 사물의 성이 다를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사이의 성도 다르다.
따라서 리통에 따르면 인물성동론을 지지하게 되고, 기국에 따르면 인물성이론을 지지하게 된다. ... 그런데 논쟁의 양측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서로 다르다.
p.214
이간은 일원과 이체의 구분 가운데
일원의 입장에서 리통을 이해한다. 성은 기중지리이지만 리의 온전한 성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기와 섞지 않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원진은 통과 국을 각각 리와
성에 대비시킨다.
성을 리가 기와 결합되어 변화된
것으로 보는 한원진은 초형기로서의 리와 인기질로서의 성을 각각 리통과 기국에 대비시키는 것이다.
3. 본연지성과
기질지성
이러한 견해 차이는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에 대한 이해에서도 또한 나타나다.
p.215
한원진은 현상계의 인간과 사물에서 리만 가리킨 것이
본연지성, 리기를 함께 가리킨 것이 기질지성이라 하고, 인기질의 관점에서 기질지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대해 이간은 '리기동실理氣同實',
'심성일치心性一致'의 입장, 즉 리기를 분리해서 지적할 수 없고, 심心을 두고 성性만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한원진처럼 기질지성과 본연지성을
구분하여 기와 별개로서의 리를 따로 끄집어내어 이를 본연지성이라 단지單指한다는 것은 이간이 보기에는 성이라고 하기가 곤란하다. 이간은 기와
분리된 리를 성이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와 결합된 리로서의 성이 본래의 리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리와 기가
공존하는 리기동실 심성일치의 상태를 고수하고자 한다. 본연지심에 나아가서 단지하면 본연지성이고, 기질지심에 나아가서 겸지하면 기질지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원진의 격렬한 비판을
유발한다.
p.216
... 한원진은 하나의 물物, 하나의
심心에서 단지와 겸지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구분하고 기질지성의 관점을 택한 것이다. 이간은 자신의 일관된 리기 불상리 불상잡 및 리기동실
심성일치의 원칙은 고수할 수 있었지만, 하나의 사람 또는 사물 안에 두 개의 심과 두 개의 성이 존재하게 된다는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4.
오상론
... 이들은 인성과 물성의 동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증거를 오상五常에서
찾는다.
한원진에 따르면 리는 기와
결합함으로써 성이 되고 기의 청탁수박에 따라 오상을 가짐이 다르다. 사람만이 빼어난 기를 얻은 까닭에 오상도 온전히 갖추지만, 나머지 다른
사물들은 거칠고 흐린 기를 얻었으므로 다섯 가지 오상 중 일부만 갖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사물의 성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간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p.218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되고
그 근원을 세부적으로 지칭할 때 오상이라고 하므로 사람과 사물이 오상을 온전히 받지 못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오상을 온전히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태극을 온전히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오상을 온전히 갖추고는 있지만, 다만 겉으로 드러남(發用)에서 차이가 날
뿐이라는 것이다.
이간에 의하면 우주만물의 이치인 리가 기 속에서도 그대로 보존되므로 사람과 사물의 차이는 그 발용에서
드러날 뿐이다. 그러나 한원진의 경우 리가 기 안에 들어갔을 때는 그 원인이 기이든 리이든, 이 때의 리는 이미 기와 결합하면서 성으로
변화된다. 따라서 모든 사물의 성이 온전한 오상을 갖추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5. 미발의 심체
문제
사람과 사물의 성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단지 존재론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결국은 가치론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에 윤리적 가치 실현 능력인 오상이 어떻게 갖추어져 있는가를 문제시하는 한편, 더욱 구체적으로 선악의 가치
실현 가능성을 미발의 심체 문
p.219
제에서 다룬다. 성을 기중지리로 보는
한원진은 심체도 성과 대비되는 기의 측면에서 바라본다.
리만을 가리켜 말한다면 본연지성이라
하고 리기를 겸하여 말하다면 기질지성이라 하지만, 한원진이 사람과 사물의 성을 이야기할 때 택하는 관점은 기질지성이다. 그러므로 심체에서 기가
발하지 않았을 때에도 기의 선악이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지 본체에 기의 청탁이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p.220
이와 같이 한원진은 미발을 외물에
접촉하지 않은 고요한 상태에서 기가 발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간은 일반적인 기와 심의 기를 구분한다.
한원진과 달리 심체의 기와 일반적인 기질을 구분한 이간은,
다시 진정한 미발을 혈기와 뒤섞여 있는 미발과
구별한다.
이간에 의하면, 한원진은 단지 발하지는 않았지만 혈기가
마음에서 용사하는 것을 미발이라고 한다. 그 반면에 자신이 말하는 미발은 단지 외물에 접촉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명(天君)을
따
p.221
르는, 즉 리의 실현 가능태를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각각 '부중의 미발(不中底未發)'과 '중의 미발(中底未發)'이라고 하여 구분한다.
...
p.223
4. 논쟁의
의의
인성과 물성의 동이 문제는 18세기 초에 시작된 후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거의 모든 지식인이 관심을 기울였던 문제였다. ... 논쟁의 의의를 정리해보면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성性 개념의 다의성, 특히 주희가 사용하는 성 개념의
혼란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사단칠정 논쟁을 거치면서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깊이는 이미 중국을 능가하였다. 우주와의 관련 속에서 인간의 심성정을
정밀히 탐구해왔던 이들은 성 개념의 다의성에 주의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인간 심성의 긍정적 능력을 고양하여 성리학적 이상 국가를
실현하고자 했던 조선 성리학자들에게는 필연적인 과제였다.
...
둘째, 중국 이외에 새로이 등장하는 세력에 대한 대처 문제와
관련된 논의라는 것이다. 병자호란(1636~1637)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맛본
후,
p.224
'가장 사람다운 사람의 문화'로서 중화 문화를 추구하며
소중화를 자부했던 조선이, 짐승에 가깝다고 여기며 천시했던 오랑캐의 강대한 세력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것은 그 당시 커다란
문제였다. 따라서 이 논쟁을 화이론적인 문화적 우월성에 입각하여 거론되었던 북벌론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도 있다. 또한 같은 논의의
차원에서 정반대의 입장으로 북학파의 인물성론에 주목하는 시도도 있다. 북학파, 특히 홍대용과 박지원은 사람을 포함한 만물이 모두 똑같이 기로
구성되고 공통된 생명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만물은 균등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사람의 입장에서만 세계를 볼 것이 아니라 사물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객관적 상대적 관점을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의 상대화 객관화는 중세 사회의 계층적 질서를 부정하고 근대적인 사회 질서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사고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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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30일 토요일
인물성동이논쟁-인간과 만물의 차별성에 대한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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