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posts list

2014년 8월 30일 토요일

현대 사회와 주자학 - 이상익

현대 사회와 주자학 - 이상익 致知
2008/12/12 20:57
전용뷰어 보기
이상익, <현대 사회와 주자학>, <<주자학의 길>>, 심산, 2007.
1. 규범적 측면: 자유주의와 繼天立極論
p.332
자유주의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삶의 양식 가운데 하나이다. 자유는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무엇보다도 소중한 조건으로 인식되었고, 그 결과 우리들은 자신의 삶을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자유는 자아실현을 위해 선용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가 그 본래의 취지와 달리 '추잡한 삶(obscene life)'이나 '멋대로 자유(exousia)'로 타락함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비판한 바 있다. ...
현대 미국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근대의 저서 <<불안한 현대사회>>에서... 자유란 본질적으로 '자기 결정의 자유'로서, 그것은 '자기진실성'이라는 관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자기 결정의 자유'라는 관념은 "나에 관한 것이 외부의 영향들에 의하여 형성되기 보다는 내가 스스로 그것을 결정할 때 비로소 나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고"이다. 한편, '자기진실성'이란 우리들 각자는 천부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관념을 지니고 있는바, 우리들 각자는 거기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생각을 말한다. ...
p.333
테일러에 의하면, 근대 이전에는 신이나 이데아 등 인간 외부의 '초월적 권위체'를 도덕의 기초로 설정했으나, 근대로 접어들면서 도덕의 기초를 인간의 내면에 설정했다. 초월적 권위체를 존중한 전근대인들과 달리, 근대인들은 '도덕의 기초는 각자의 내면에 있으므로, 우리는 각자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기진실성의 관념은 근대 이후의 특유한 관념인 것이다. ...
p.334
그런데 테일러는 이 자유나 자기진실성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긍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양면성을 주목하는 것이다... 테일러는 '자기진실성'이 타락한 형태를 '나르시시즘'으로 규정하고, '자기 결정의 자유'가 타락한 형태를 '인간독존주의'로 규정 ...
p.335
테일러에 의하면, 사회나 자연의 요구들에 정면으로 대립하고 역사나 연대적 고리를 차단하면서 오직 자기실현에만 골몰함으로써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것이요, 전통·자연·하느님 등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을 부정함으로써 인간독존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
p.336
나의 선택이 의미있는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볼 때' 더 귀중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만약 '덜 귀중한 것'과 '더 귀중한 것'을 각자가 주관적으로 결정하기로 한다면, 어떤 사항도 이미있는 것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태일러는 자유와 선택이 진정 의미있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가치의 척도'를 전제해야 한다고 보았다. ...
p.337
테일러는 바로 '자기진실성'과 '객관적 가치의 척도'를 결합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양자가 결합될 때 인간의 도덕성이 고양되고, 현대 사회는 위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이 테일러의 지론이었다. ...
테일러의 노선은 '順天理 合人心'을 바람직한 삶의 방향으로 정립하고 '거경궁리'를 통해 '心과 理의 合一'을 추구했던 주자의 노선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
'자기진실성'은 도덕의 필요조건일 뿐, 결코 충분조건은 못된다. '주관적인 자기진실성'과 '객관적인 가치의 척도'가 결합될 때 도덕의 필요충분조건이 완비되는 것이다. 테일러가 말하는 '내면의 목소리'는 '양심의 명령'을 뜻할 것이다. 주자 역시 양심만으로는 '주관주의의 함정'을 피할 수 없다고 보아, 양심과 객관적 理法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노선을 제시했던 것
p.338
이다. '양심의 자유'라는 말이 있듯이 각자의 양심은 서로 내용이 다를 수 있으며, 따라서 양심은 규범적 척도가 되기에 미흡한 것이다.




2. 실천적 측면 : 법치주의와 선후본말론
p.338
모든 사회에는 언제나 각종 '문제상황'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문제상황을 예방하거나 해결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그것은 대개 두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제도적 해결책'으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거나 기존의 제도를 개혁함으로써 문제상황에 대처하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도덕적 해결책'으로, 구성원들의 '인격의 고양'을 통해 문제상황을 예방하려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법치와 덕치'의 문제에 해당된다. ...
덕치와 법치에 있어서, 전통 유교는 법치보다는 덕치를 근본적 해결책으로 옹호했다. 법치는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뿐이요, 장구하고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구성원들의 인격을 고양시키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현대 사상가들은 과거의 덕치를 '통치자의 자의적인 통치'로 폄하하고, 사회나 국가는 통치자의 변덕과 무관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모든 문제에 대해 제도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p.339
그러나 '오늘날의 법치주의가 문제상황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는가'에 대해서는 점차 강한 회의가 싹트고 있다. 예컨대 오늘날의 정치학자 강정인은 ...
p.340
정부의 '법만능주의'와 일반시민의 '일상적 무법상태'를 동시에 힐난했다. ...
준법정신이 전제되지 않는 한, 법제의 정교화는 범죄의 정교화를 부추길 뿐, 문제상황의 해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341
강정인은 법치와 덕치는 서로 대립되는 원칙이지만, 또한 서로 보완되어야 하는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강정인의 주장은 바커의 "준법정신은 법보다 더 중요하다. 법의 핵심은 시민이 법을 지키려는 의지이다"라는 말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것이다. 요컨대, 법치가 성공하려면 준법정신이 필요한데, 준법정신을 함양하는 것은 덕치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
(그러나) 준법은 법치의 성공요건 중 하나일 뿐이요, 결코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준법정신'과 아울러 각종 제도들을 '본래의 목적대로 선용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
p.342
우리의 '문제상황'들 중에는 제도적 접근으로는 끝내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 많다. ...
p.343
이명현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기본적인 사회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않다. 개별적 행위자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 행위자 자신의 변화는 행위자의 자신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전제해야 한다.
'기본적인 사회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은 '제도적인 접근'에 해당되고, '개별적 행위자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도덕적인 접근'에 해당된다. 이명현은 '자신의 변화'는 '자신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전제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곧 이제까지의 자신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修己나 修養'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인격이나 덕성의 함양'을 뜻하는 것이다. ...
우리는 여기에서 또한 주자의 선후본말론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주자가 법가를 비판한 이유는 그들이 말단인 '법제'에만 매달리고, 근본인 '인격의 수양'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주자는 문제상황의 해결에 있어서 제도적인 접근을 '末'로 규정했고, 도덕적인 접근을 '本'으로 규정했다... 주자는 양자를 '본·말'의 관계로 설명함으로써, 그 선·후와 경·중을 아울러 논한 것이다. ...
p.344
유교의 덕치론은 '제도와 인격' 사이의 선후본말 관계를 제시한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솔선수범'을 강조한 것이다. 다시말해, '통치자와 피치자' 사이에서 '통치자의 솔선수범'이 긴요하다는 것이요, 보다 일반적으로 '나와 남' 사이에 있어서는 '나의 솔선수범'이 중요하다는 것ㅇ이다. 요컨대 '세상을 변화시키는 출발점'은 '우리들 각자가 먼저 자신의 인격을 닦는 것'이라는 말이다.
3. 사회관의 측면 : 개인주의와 리일분수론
p.345
주지하듯이,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와 표리를 이룬다. 개인주의란 개인을 '고립적 실체(원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개인주의의 관점에서는 사회를 '개인들 간의 계약에 의해 성립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서양의 근대는 개인주의를 통해 기존의 개인에 대한 억압을 청산하고, 개인의 권리를 획기적으로 신장시킨 시대이다. 그러나 오늘날 개인주의는 그동안의 공로 못지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
이명현은 "서양의 근대는 개체를 고립의 범주로 보는 시각을 바탕으로 삼고 출발한다"고 전제하고, 고립적 개인주의가 초래하는 제반 양상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 바 있다.
개인을 자기충족적인 고립적 존재로 봄으로써 빠지게 되는 인식론적 귀결은 (...) 유아론적 곤경이다. 그리고 그 가치론적 귀결은 지배와 종속이 빚어내는 적대적 관계이며, 그 존재론적 귀결은 타자의 부정에 의한 자기 부정이다.
'유아론적 곤경'이란 '자기중심적 곤경' 또는 '유아론적 늪'이라고도 한다. 이는 데카르트 이래 '나의 의식'을 모든 문제의 출발점으로 삼은 서양 근대 인식론에 있어서는 '나의 세계로부터 빠져나올 출구가 없다는 것, 나와 타인 및 세계를 연결해주는 고리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지배와 종속이 빚어내는 적대적 관계'란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지배와 정복의 관계로 규정됨을 지칭한다. 인간의 삶을 타인 또는 자연과 '상호의존적인
p.346
열린 체계'로 전제한다면 결코 지배와 정복의 관계가 등장할 수 없는데, 각자의 삶을 '자기충족적인 닫힌 체계'로 전제하기 때문에 지배와 정복의 관념이 싹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실로 '상호의존적인 열린 체계'이기 때문에, 타인의 불행은 나의 불행으로 연결되고, 자연의 정복과 파괴는 환경오염과 자연고갈을 초래하여 인간의 문명을 위협한다느 ㄴ것이다. 이것이 '타자의 부정에 의한 자기 부정'이다.
이명현은 개인은 '전체에 종속된 존재'도 아니요, 그렇다고 '고립적인 존재'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서로 맞물림의 틀'로 설명한다. ...
이 맞물려 있음의 존재의 양식은 상호의존성이며, 그 인식론적 양식은 상호주관성이며, 그 가치론적 양식은 공정성이다. 상호주관성이란 보는 자들 사이에 맞물려 있음이며, 상호의존성은 하나가 다른 하나와 서로 얽혀 있음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있게 하는 방식이며, 공정성은 서로가 서로에게 주고받음에 이그리짐이 없이 맞물려 있음을 말한다. 상호의존성은 '더불어 있음'의 존재론적 표현이며, 상호주관성은 '같이 앎'의 인식론적인 표현이며, 공정성은 '함께 잘 삶'의 가치론적 표현이다. ...
p.348
'상호의존성(더불어 있음)'은 주자의 음양대대론과 상응하고, '상호주관성(같이 앎)'은 주자의 공론론과 상응하며, '공정성(함께 삶)'은 주자의 인심도심론 및 인설과 상응한다.
p.349
정치학자 박세일은 ...
p.350
근래의 '공동체주의'는 본래 근단적인 개인주의(개인주의적 자유주의)와 극단적인 집단주의(전체주의적인 권위주의) 양자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전제하고,.. '공동체 자유주의'를 제창한다. 이것을 주자의 리일분수론으로 풀이하자면, '극단적 개인주의'는 분수에만 집착하는 것이며 '극단적 집단주의'는 리일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 자유주의'는 리일과 분수를 균형있게 매개시키는 지점에서 성립한다고 할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