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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30일 토요일

리기/존재와 규범의 기본 개

리기/존재와 규범의 기본 개념 - 김형찬 致知
2008/08/04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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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理氣 - 존재와 규범의 기본 개념>, <<조선유학의 개념들>>, 한국사상사연구회, 예문서원, 2002


1. 리와 기의 의미
p.47
'리'는 대체로 '일정한 이치' 또는 '일정한 이치에 따라 바로잡다'라는 의미로 이해되었으며, 변화·운동의 '일정함'을 가리킨다는 의미에서 '법칙'이라는 용어로 해석되었다. 여기에는 자연의 물리적 '일정함'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일정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간주되는 윤리 규범도 포함된다. 또한 리는 그 변치 않는 '일정성一定性'·'항상성恒常性'으로 인해 만물이
p.48
궁극적으로 의존하는 논리적 또는 실질적 근원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점을 고려할 때 리는 '법칙'이라는 의미와 함께 '원리'라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
'리'와 상대되는 개념으로서의 기 개념은 '원리'·'법칙'으로서의 리가 현상으로 드러나기 위해 의존하거나 또는 도구로 이용하는 '질료'의 의미로 쓰인다. 또한 감각 기관에 인식되지 않으면서도 리를 현상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 '힘'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어 '에너지'라는 용어로 풀이되기도 한다.


2. 중국 유학의 리기 개념 변천
p.49
서주西周 초기인 기원전 10세기경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주역>>의 괘사와 효사에는 '리'나 '기'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도道' 개념이 쓰이긴 했지만, 이 때의 '도'는 길 또는 어떤 방법이나 이치를 지칭하는 구체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5세기경의 전국 시대부터 기원전 2세기의 한대漢代 초까지 여러 사람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역>>의 전傳 즉 '십익十翼'에는 '도'외에도 '리'·'기'란 용어가 상당히 많이 보인다. 이 때의 '도'·'리'는 자연의 원리·법칙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사회 생활에서 따라야 할 규범의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아직까지 궁극적인 실체라는 의미로 간주되지는 않았다. ...
선진 유가에서는 윤리적 가치를 '도' 개념으로 실재화하는 경향을 보였고, 선진 도가에서는 만물의 근원이자 법칙으로서의 '도'를 실체화하였다. 오랜 시간을 거쳐 도가의 자연 법칙성·필연성과 유가의 윤리적 가치 이념이 결합된 리와 그에 상응하는 기가 우주의 생성·변화를 설명하는 한 쌍의 개념으로 등장한 것은 위진·수당 시대였다. ...
p.50
그 후 송대 성리학에 이르면 리와 기는 근원적 동일성과 현상적 다양성 및 당시 사회의 가치 이념을 설명하는 세련된 개념틀로서 자리잡게 되고, 이 때부터 리기론은 전성기를 누린다. ...
뒤이어 리 개념의 지나친 강조에 대한 반성을 통해 영원 불변하고 완전한 리의 이념에 인간 주체가 지나치게 종속돼왔음을 비판하고, 리를 주·객관의 통일로서 이해하되 인간 주체를 강조하는 명대 '심학'이 등장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이원론적 리기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통하여 정주학적 리기의 함의 및 구조에 대해 비판이 가해지면서 명·청대 기학氣學도 형성되었다.
3. 조선 유학의 리기 개념
조선 유학은 '리' 중심의 송대 성리학의 리기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리기론 자체보다는 심성론의 이해와 논의를 위한 도구로서 그것을 이용하였다... 조선 유
p.51
학의 리기론은 우주 자연의 생성·변화보다는 우선적으로 인간의 정신적 심리적 작용을 설명하고 도덕적 판단 및 행위의 정당성과 필연성을 설명해내는 데 초점을 맞추어 논의가 진행되었다.
(1) 리기불상리·불상잡과 리통기국
법칙인 리와 질료인 기의 개념은 현실적으로 서로 다른 시·공간을 점유할 수 없는 '하나'라는 점에서 '리기불상리'이며, 동시에 서로 혼동될 수 없는 '둘'이라는 점에서 '리기불상잡'이라는 것이다. ...
주희에 의하면,.. 모든 존재 및 작용은 리와 기로 구성되므로 리와 기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는 경우, 즉 리와 기가 서로 분리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으며(不相離), 선후를 논할 수도 없다(理氣無先後). 그러나 리는 형이상의 도道이고, 기는 형이하의 기器이므로 원리상으로
p.52
본다면 각각 본말本末의 역할이 있으며(理本氣末), 따라서 그 본원을 논한다면 '리선기후理先氣後'이다. 또한 기가 없으면 리가 드러날 수 없으므로 사事물物의 구성(稟賦) 상에서 논한다면 '기선리후氣先理後'이다.
리와 기는... 각각의 '자립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리기불상리·불상잡'이라는 리·기의 이런 난해한 관계는 무형상·무작위의 법칙·원리와 유형상·유작위의 질료·에너지를 구분하되, 제3자를 설정하지 않고 둘 사이의 연계 관계를 내적·자족적으로 해결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이 때문에 리와 기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는가에 따라, 이황처럼 리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리발' 또는 '리자도'를 주장하기도 하고, 임성주처럼 리란 단지 기의 작용을 일컫는 것이라며 '기일원론'에 가까운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p.53
리통기국은 정주 성리학에서 '리일분수'나 '리동기이' 등으로 설명되던 리기의 관계를 이이가 새로운 설명 방식으로 제기한 것이다. 정이·주희의 '리일분수'는 우주 만물의 근원적 동일성과 현상적 다양성을 리 중심으로 설명한 것이고, '리동기이'는 원리로서의 리의 동일성과 질료로서의 기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 불상리·불상잡한 리와 기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었다. 이에 비하면 이이의 '리통기국'은 리일분수의 리 편향성을 극복하고, 리동기이의 단순한 설명 방식을 넘어선 것이다.
이이에 의하면... 기는 운동 과정(流行)에서 본래의 성질(本然)을 잃는 경우도 있고 잃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특성은 리가 만물 어디서나 '본연지묘'로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것이 바로 '기국氣局'이다. 이에 비해 리는... 그러한 기와 함께 있기는 하지만, 그 본연지묘는 언제 어디서나 그대로이다. 이를 '리통理通'이라 한다.
(2) 리기이원론과 리기일원론
p.54
'이원론'이란 현상적으로 다양하면서도 일정한 질서를 이루고 있는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두 가지의 대립·병립적 범주나 실체를 설정하여 세계를 구조화하는 철학 체계를 가리킨다. 리기론에 이러한 서양 철학의 이원론을 적용할 경우, 리기이원론이라는 용어가 성립하려면 리와 기는 각각이 별개의 범주나 존재 영역 또는 실체여야 한다. 그러나 성리학에서 말하는 리와 기는 '서로 혼동될 수 없는'(불상잡) 관계일 뿐만 아니라 '서로 떨어질 수도 없는'(불상리) 관계라는 점에서 그 '자립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편 '일원론'은 세계 또는 실재의 통일성이나 단일성을 강조하여 현상계의 다양성을 궁극적으로 하나의 실체나 범주로 환원시키는 철학 체계이다. 그러나 성리학의 리기론은 리와 기 중 어느 한쪽에 비중을 두어 설명할 수는 있어도 기본적으로 한 개념을 다른 하나의 개념으로 환원시키기는 대단히 곤란하다. 리와 기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불상리)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혼동돼서는 안 되는'(불상잡) 분명히 다른 범주이기 때문이다.
(3) 주리와 주기
p.56
이 용어의 유래는 이황에게서 비롯한다. 이황은 기대승과 사단칠정을 논한 편지에서 사단과 칠정은 모두 리와 기의 합이지만, 그 가리키는 바(所指)와 유래(所從來)를 볼 때 사단은 리를 주로 하고(主理) 칠정은 기를 주로 한다(主氣)고 볼 수 있다고 하였다. ...
p.57
이후 성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관점인 리기론의 입장을 반영하는 주리·주기는 조선 유학에서 학문적 성향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널리 사용돼왔다. 예컨대 사단칠정 논쟁에서 대립적인 견해를 제시하며 훗날 조선 시대의 가장 큰 학파를 형성한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를 지칭할 때도 각각 주리파와 주기파라고 하며, 인성물성 논쟁에서는 인물성동론을 주장하는 쪽을 주리파, 인물성이론을 주장하는 쪽을 주기파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주기파'로 분류되는 입장이라 해도 실제로 리보다 기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주리파라고 지칭되는 측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의 역할을 중시한다는 것뿐이다. ...
주리의 특성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 주리론자 이황의 경우에 잘 나타난다... 그는 리의 작용 즉 리발·리자도가 가능하다고 하여, 리기호발설을 주장하며 주리·주기 또는 리발·기발의 관점으로 사단·칠정 및 본연지성·기질지성을 구분한다. 그러나 기에 대한 리의 의존성을 약화시킨다 해도 리가 직접 작위를 한다는 것은 무형·무위라는 리의 속성에 어긋난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이황은 리가 "나의 궁구에 따라 도래한다"(隨吾所窮而無不到)고 하여, 리발·리자도에 앞서 인간의 능동성을 전제로 제시하였다.
p.58
한편 이황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기론자로 지칭되는 이이는 리가 발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사단이든 칠정이든 모두 기가 발하고 리가 이를 조종한다는 '기발리승일도설'을 제시하였다... 그는 기발리승일도설을 주장하면서도, 사단·본연지성은 가리키는 바로 볼 때 주리라고 할 수 있지만 칠정·기질지성은 주기라고 규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칠정·기질지성에서도 리가 여전히 소이·주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 사단·본연지성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
인성물성 논쟁에서 동론을 주리적, 이론을 주기적이라고 지칭하는 것 역시 상대적인 분류법이다. 이 논쟁은 이미 이이의 율곡학파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주기파 내의 논쟁이라 할 수 있다. ...
성리학에서의 '성'이란 인간 또는 사물에 내재하는 '리'를 가리킨다. 이는 바로 원리상으로 볼 때 '성은 곧 리'(性卽理)인 동시에 구성상으로는 '기 안의 리'(氣中之理)라는 이중적 의미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구성상 '기 안의 리'로서의 성과 본래의 리 사이에 차별성을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p.59
동론을 주장한 이간은 '성은 곧 리'라는 데 초점을 맞추어 성이 '기 안의 리'일지라도 기 안에 있는 그 '리'는 언제나 온전히 보존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반면 이론을 주장한 한원진의 경우 성은 '리와 기의 합'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어 기 안에 들어온 리인 성은 이미 순수한 리와는 다르다고 보았다.
(4) 리기와 선악
p.60
리기론에서 자연관과 인간관 또는 존재론과 가치론의 결합이란 내용적으로 이원론적 존재론과 이분법적 가치론의 결합을 의미한다. 성리학자에게 가치론적 이분법은 리기론의 존재론적 설명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즉 리·기의... 선·후, 주·종 관계가 존재론적으로 뒷받침됨으로써 리기론을 기반으로 한 이들의 가치론이 성립되는 것이다. ...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오히려 기는 질료 또는 에너지를 의미하므로 선악을 논할 여지가 없는 몰가치적 개념이다. ...
몰가치적 기로부터 악이 생겨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운동성이라는 기의 질료적 특성이 이용된다. 본래의 기는 순수하지만 운동 변화의 과정에서 맑거나 흐리거나 순수하거나 혼잡한 기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흐리거나 혼잡한 기가 리의 순선한 성질이 그대로
p.61
드러나는 데 장애가 되어 악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리와 기 모두 본래는 선악과 별 관련이 없는 개념이지만 세상에서 벌어지는 악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기를 그 원인으로 삼고 리는 완전하고 순선한 모범적 기준으로 존중된 것이다. ...
리기의 이원론적 존재론은 이분법적 가치관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성리학자에게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할 뿐 아니라 성립조차 불가능하다. ...
이이의 기발리승일도설에도 인간 심성에서 기에 대한 리의 가치론적 우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리기이원론적 가치론의 유지가 빠질 수 없는 핵심으로 자리하며, 이황의 리기호발설에도 자연과 인간에 두루 통하는 리와 기의 존재론적 이원론을 바탕으로 삼아야 자신의 주장이 가치론적으로도 설득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문제 의식이 전제돼 있었다. 또한 이간과 한원진도... 리과 기의 존재론과 가치론을 어떻게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논쟁의 실질적 쟁점이 되었던 것이다.
(5) 소이연과 소당연
p.62
'소이연지고'는... '그렇게 되는 까닭'을 뜻하며, 존재론적인 필연적 원인 또는 법칙의 의미로 사용된다. 또 '소당연지칙'은... '마땅히 그래야 하는 준칙'을 뜻하며, 가치론적인 당위적 규범의 의미로 사용된다... 리 개념이 존재론적인 필연적 법칙과 가치론적인 당위적 규범의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는 것이다. 이는 존재론적 법칙과 가치론적 규범을 분리한 서구의 근대적 자연관이 수용되기 이전, 성리학자를 비롯한 동아시아인의 일반적 사유 방식이었다. 당시 성리학자들은 만물이 생성 변화하는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가치관과 규범을 배우고, 그렇게 형성된 사회의 기존 가치관과 규범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할 근거를 다시 자연 법칙에서 이끌어 왔다. ...
p.63
이황은... 소이연과 소당연은 모두 법칙·원리인 리이므로 인간 사회에서도 양자가 본래 일치해야 하며, 따라서 이를 일치시키며 살아가는 것이 바른 도리라고 생각하였다. ...
그러나 당위적 규범성은 필연적 법칙성과 달리 현실 상황에서 어긋날 우려가 많고, 따라서 양자가 일치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이 역시 소이연과 소당연이 리의 속성임을 강조한다. 그는 리의 이 두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체와 용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리에 모든 이치가 갖추어져 있는 상태의 본체가 소이연이고, 이것이 실제 현실에 드러나는 작용을 소당연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체와 용은 한 실체의 본체와
p.64
작용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양면임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이이는 이 체와 용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소이연과 소당연이 리의 떨어질 수 없는 양면적 속성임을 강조한 것이다.
4. 리기 개념의 사상사적 의의
p.67
함께 있어야만 존재와 작용이 가능하지만 서로 혼동해서도 안 되는 이 리와 기는 그 미묘한 관계로 인해 불상리·불상잡, 一而二·二而一, 리동기이, 리통기국 등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하기 곤란한 용어들로 규정되었으며, 또 이로 인해 사단칠정 논쟁과 인성물성 논쟁도 일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리와 기가 궁극적으로 두 개의 범주 또는 실재를 기반으로 하는 이원론적 성격을 지니면서도, 제3자를 매개로 설정하지 않고 둘 사이의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일원론적 성격도 지닌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선 유학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리기론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든 그 목표는 인간이 타고난 우주 자연의 이치를 선한 본성으로 삼고 이 본성의 발현을 통해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며 살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었고, 리기론은 이를 설명하고 합리화시키는 주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
p.68
이처럼 조선 유학의 리기 개념은 형이상학적이고 순수 이론적인 철학이 현실과 어떻게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며 상호 작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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