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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도심논쟁-권인호 致知
2008/08/1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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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호, <도덕심과 욕망 그리고 하늘의 도리는 같은가 다른가>, <<논쟁으로 보는
한국철학>>, 한국철학사상사연구회, 예문서원,
1995 |
1. 인심도심 논쟁은
왜 일어났는가
p.182
성종 이후 사림파를
형성하던 지방의 중소 지주층은 중앙에 진출하여 보수 훈구파와 정권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그들의 정치 행위에 이론적인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였다. 더구나 4대 사화 시기(무오·갑자·기묘·을사 사화로 연산군 4년(1498)에서 명종 즉위년(1545) 사이에 일어났다.)에 일시적으로
정권을 장악했던 사림파는 사화의 결과 훈구파에게 철저하게 당하고 낙향하여 서원 등을 중심으로 성리학 연구에 몰두, 이론적인 기반을
다졌다.
상대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유학의 이론과 명분에서 훈구파보다 훨씬 정당하였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리와 사단 그리고 도심을 대변하는 양
주장하였다. 선조의 즉위와 함께 사림파는 정권의 전반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훈구파의 잔당과 망령들은 당쟁에서 서인에게 달라붙어
상대적으로 좀더 진보적인 동인에 맞섰다. 동·서 당쟁의 결과로 앞시대 4대 사화로 희생된 전체 숫자보다 더 많은 희생을 낸
기축사화(1589-1590)를 치룬다. 서인은 인조르 앞세워 좀더 진보적이었던 광해군과 북인 정권을 추방하고 권좌를 차지하는데, 이러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은 리기 심성론을 더욱 사변화하고 예학을 강조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다.
2. 인심도심 논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1. <<서경>>과
<중용장구서>의 논의
p.183
<<논어>>나 <<순자>> 등에서도 인심도심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그런데
인심도심이라는 주제가 유학(성리학)사에서 본격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중요한 논쟁거리가 된 것은 주희가 <중용장구서>에서 그 의의를
서술하고부터이다.
"인심은 위태하고 ..."라고 한 것은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준 말이다. ... 대개 이것을 분석하여 말하자면 마음의 허령(마음의 本體로 일정한 목표가 있지 않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心靈을 말한다)과
지각(마음의 활동으로 허령의
주체가 받아들인대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은 한 가지이지만 인심과 도심의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나오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원래 타고날 때 받은 천성의 올바름에서 근원하기도 하여서 그것을
알아서 깨달음이 같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심은 위태하여 불안하고 도심은 미묘해서 보기가
어렵다.
p.184
인심이란 대체로
인간의 신체적 기운에서 생기고, 도심은 선천적인 본성에서 우러나온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에서 순수하게 도덕적인 것이 도심이고, 그
자체는 부도덕한 것이 아니지만 신체의 기운과 욕구에 따라서 부도덕하게 될 위험이 높은 것이 인심이라는 것이다.
P案.. 인심과 도심을 상대적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음. 허령과
지각을 마음의 체용으로 설명하고 있음.
허령은 지각작용의
영명성을 형용하는 말로 보아야 하고, 인심과 도심의 차이는 지각 대상 혹은 지각의 근원의 차이에서
비롯됨.
2. 주자학·양명학의
인심도심론과 나흠순의 비판
p.184
나흠순이 주장한
인심도심설은 그의 기 철학적 학문 세계와 연관이 있다. 나흠순은 정이와 주희의 리기 이원론을 비판하고, 리기를 혼연 일체로 보는 정호의 이론을
받아들인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리란 실체가 아니고 기의 법칙에 불과하다는 기 일원론을 주장한다. ...
나흠순은 주희 등
리기 이원론자들이 성을 천명지성과 기질지성으로 나누는 것을 비판하면서, 심성을 두 가지로 보는 것이나 한 가지로 보는 것이나 모두 잘못이라고
하였다... 또한 나흠순은 도심을 양지라고 한 왕수인의 이론은 체용을 혼동하고 기를 리라고 한 잘못이 있다고
비판하였다.
주희는 인심이건
도심이건 모두 이미 발동한 것으로 보고 있는 데 반해,
p.185
나흠순은 "도심은
성이요 인심은 정이다"(<<困知記>> 下)고 하여 도심은 未發의 상태요 정은 旣發의 상태라고 보았다. 또 나흠순은 "도심은
체이므로 지극한 精體를 볼 수 없어 은미하다 하였고, 인심은 용이므로 그 지극한 변화를 헤아릴 수 없어 위태하다고
하였다"(<<困知記>> 下)고 주장하였다.
육구연이나 왕수인 등
이른바 양명학자들의 인심도심 논의는 심이 둘이 아니라 하나일 뿐이라 하여, 人爲를 더하지 않은 것이 도심이고 인위를 더한 것이 인심이 된다고
보았다. 특히 왕수인은 "인심의 바름을 얻는 것이 도심이며 도심의 바름을 잃어버리는 것이 인심이다"(<<傳習錄>> 上)고
한다... 왕수인의 논리는, 相應的이요 이원론적이라 할 수 있는 주희의 논리와 달리, 相卽的이요 일원론적으로 일관되고 있다.
P案..
주희의 리기론이 리기이원론인지, 주희의 인심도심이 이미 발동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
보아야...
3.
조선 중기의 인심도심 논쟁
1. 이황과 노수신
등의 인심도심 논쟁
p.185
이황은 인심도심에
관련된 논의에서 대체로 주희의 '혹원혹생'에 영향을 받아 '고원고생설固原固生說'을 피력하고 있다. 즉 그는 "나누어 말하다면 인심은
진실로 형기에서 발생하고 도심은 진실로 성명에서 근원한다. 합해서 말한다면 도심은 인심 사이에서 섞여 나오는 것이니 실상은 서로
발하는(相發) 것으로서 판연히 두 가지 다른 것이
p.186
라 할 수
없다."(<<퇴계전서>> 권39, <答洪胖>2,
297쪽)고 주장하면서 주희의 인심도심론과 유사한 논지를 펴고 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인심도심을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즉 "인심은 칠정이 되고 도심은 사단이 된다.
<<중용>><서문>의 주자설과 허동양의 설로 본다면, 칠정과 사단이 두 가지가 됨은 진실로 불가할 것이
없다"(<<퇴계전서>> 권37, <答李平叔>, 259쪽)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황이 인심도심을 사단칠정과
연결시키면서 이원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주희가 리과 기를 二物로 보려는 태도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주희가 리기를 항상 이물로 보려고 한
것은 아니다. 주희는 일반적으로 리기론에서는 리와 기를 일물로 심성론에서는 이물로 논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조에서 권근,
이황을 위시하여 리를 중시하는 후기의 성리학자들까지 리기심성론의 논의는 대체로 이와 대동소이하다. ...
P案..
혹원혹생을 더욱 강조한 것이 고원고생일까. 고원고생의 주어는 분명 도심과 인심이다. 하지만 혹원혹생의 주어가
그러한지는..
또한 인용된 퇴계의 원문 모두 인심도심을 두가지로 본
것으로 해석된다. 앞의 인용문의 경우도 분명 '서로 발하는 것'이라 하여 사단 칠정의 경우와 같은 논지를 펴고 있지
않은가.
주희가 리기론에서는 리기불상리로써 논하고, 심성론에서는
리기불상잡으로써 논한다??? 신선하긴 하지만 설득력은 없는...
이황의 인심도심설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일물이냐 이물이냐 하는 논리의 일관성이나 이론적인 치밀성보다는 그가 이 논의를 통해 실천적인 면을 강조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윤리적인 측면에서 그가 인심과 인욕을 구별하면서 心을 欲보다 우위에 놓아 인심을 인욕보다 앞에 둔 점과, 인심과 도심을 구별하면서도
도심과 사단을 칠정보다 우위에 놓은 점, 그리하여 마침내는 도심을 존천리의 경지로까지 높이고자 한 점 등이 그의 인심도심론에 중요한 것들이다.
p.187
노수신은 그의
<困知記跋>에서 "수신이 만년에 <<곤지기>>를 얻어 보니 그 말이 정대하고 정미한 것이 대부분 앞사람이
발명하지 못한 것을 발명하여 정주학에 크게 공이 있다"고 하여 스스로 나흠순의 논의를 참고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노수신이 나흠순의 견해에
동조하여 인심도심 논의를 펴는 데 대해 이황, 이항, 김인후 등이 계속 비판을 가함으로써 우리 나라 성리학계에 인심도심 논쟁의 시초를 열게
된다.
2. 성혼과 이이의
인심도심 논쟁
p.188
이이는 사단을 칠정
가운데 선한 부분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에게서 도심은 천리로서의 사단이었다. 그러나 이이는 인심도심이 곧바로 情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라고 한다.
사단칠정은 모두 정이지만 인심도심은 심의 비교·측량 기능으로서의 意가 더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곧 사단칠정은 성과 정의 합으로 이루어진
구조이지만, 인심도심은 여기에 의가 더해진 구조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비해 이황 및 이 논의를 지지한 성혼은
사
p.189
단을 도심에 그리고
칠정을 인심에 분속시키면서도 도심을 바로 사단과 완전히 같다고 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단은 천리가 드러난 단서만을 가리키는 것이나, 도심은
마음의 시종과 유무를 관통해서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P案.. 이이나 성혼이나 모두 도심인심과 사단칠정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라 보지 않았고, 도심인심이 사단칠정에 비해 외연이
넓은 것으로 여겼네...
p.190
이이는 사람의 마음이란 구체적으로 리기가 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그는 심의 체, 즉 리가 사물에 아직
감동하거나 접촉되지 않은 미발의 상태로 있는 것을 성이라 하고, 심의 용, 즉 기가 발하여 이미 감동 접촉된 뒤인 이발을 정이라 하였다. 그런데
그가 성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구분한 것이라든지, 도심과 인심을 리기에 각각 대비시켜 인심은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발생한 것이고 도심은 성명의
바름에서 발생한다고 한 점은 주희나 이황의 견해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사단칠정을 리기에 나누어 대비시키는 데 이르러서는 이황과 그 견해가 달라진다. 여기에서 바로 이이의 인심도심설은
이황은 물론 성혼의 이론과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
이이는 비록 스스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노수신의 인심도심설과 나흠순의 <<곤지기>>에
바탕을 두고, 혹은 적어도 이들의 이론을 참고로 하여 논의를 펴 나간다. ...
p.191
마음은 하나지만 도심이다 인심이다 일컫는 것은 성명과 형기의 구별이 있기 때문이다. 정도 하나이지만 혹은 사단이다 혹은
칠정이다 하는 것은 오직 리를 말할 때와 기를 겸하여 말할 때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심과 도심은 능히 서로 겸할 수는 없어도 서로
시작과 끝이 될 수는 있으며, 사단은 칠정을 겸할 수 없으나 칠정은 사단을 겸할 수 있다. (<<율곡전서>>,
192쪽)
P案.. 칠정은 사단을 포함한다. 그러나 인심은 도심을 포함하지 않는다.
리만을 가리킨 것이 사단이고 리기를 함께 가리킨 것이 칠정이므로, 사단은 칠정 안에 포함된다.
도심은 성명을 주로
한 것이고 인심은 형기를 주로 한 것이므로, 인심도심은 포함관계를 이루지
않는다.
나아가 이이는 인심과 도심이 서로 상대적으로 관여하여 처음에 사의로서 형기가 용사한 것은 인심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잘
살펴 바른 이치대로 나아가면 도심의 명령을 받아 도심으로 바뀐다고 보았다. 마찬가지로 성명의 바른 마음에서 곧바로 나온 것은 도심이지만, 그것에
따라 완수하지 못하고 사의를 섞는다면 인심이 된다고 하였다.
그것은 바로 인심과 도심을 상대적으로 파악하며, 처음에 인심이었던
p.192
것이 도심으로 될 수도 있고 도심으로 시작하였더라도 인심으로 끝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P案.. 1. 사의로서의 형기가 용사함(인심) → 잘 살펴 이치대로
나아감(도심)
情 차원에서의 인심이 意 차원에서 도심이 됨.
이 때 情 차원의 인심은 칠정 중 비사단과 같음.
2. 사의로서의 형기가 용사함(인심)
→ 살피지 못하고 인욕으로
흐름(인심)
情 차원에서의 인심이 意 차원에서도 역시 인심으로 남음. 이 때 情인 인심은
칠정 중 비사단과, 意인 인심은 인욕과 같음.
3. 바른 기의 용사로 성명이 곧바로
나옴(도심) → 잘 유지하여 이치대로
나아감(도심)
情 차원에서의 도심이 意 차원에서도 역시
도심으로 남음. 이 때 情인
도심은 사단과 같음.
4. 바른 기의 용사로 성명이 곧바로
나옴(도심) → 사의가
섞임(인심)
情 차원에서의 도심이 意 차원에서 인심으로
변함. 이 때 情인 도심은 사단과 같았으나, 意인 인심은 인욕과 같음.
율곡의 인도심은 정과 의를 모두 포함하며, 종시가
다르다는 것은 意의 작용으로 정이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경우 정과 의의 상관관계에 문제가 발생한다. 심성정의
일로설에 의하면, 의는 정으로 因한 것이다. 즉 정이 의로 변화하는 것이지, 의가 정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인심도심 종시설에
의하면, 인심도심으로서의 정을 유지할 것인가 변화시킬 것인가의 주체가 의이다. 의의 위상이 불명확하다.
인심과 도심이 서로 종시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일컫는가? 지금 사람의 마음이 성명의 마음에서 바로 나왔다고 하더라도 혹시 그것을 능히 따르고 완수하지 못하여 사의로 한가하게 느긋해진다면,
이는 처음은 도심이다가 끝에 가서는 인심이 되는 것이다. 혹 형기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바른 이치에 거슬리지 않는다면 곧 진실로 도심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혹 바른 이치에거슬려도 그 잘못을 알아서 억제하고 눌러서 욕심을 좇지 아니하면 이것은 처음에 인심이다가 끝에 가서는 도심이 되는
것이다. (<<율곡전서>> 권9, <答成浩原>,
194쪽)
바로 이 점이 이이의 인심도심설과 사단칠정론이 성혼의
이론 체계와 달라지는 곳이다. 즉 이이는 인심도심이란 서로 발단하는 것은 다르나 그 과정에서 상호 관련에 따라 처음과 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심도심 자체는 본래 다른 방향으로 지향하려는 양면심兩面心인 만큼 서로 내포할 수 없는 상대적 개념이다. 이와 달리 사단과
칠정의 경우는 사단은 칠정을 포함할 수 없으되 칠정은 사단을 포함한다고 하여 상대적으로 대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이의
논지이다.
P案.. 사단과 칠정은 정감의 선/불선의 기준에 의한 분류이다. 칠정 중 사단은 선이고, 칠정 중 비사단은 불선이다.
인심과 도심은 정감의 지향처에 의한 분류이다.
인심은 형기의 만족을 지향하며 도심은 성리에의 합치를 지향한다.
칠정 중 사단에는 인심이 있을 수도, 도심이
있을 수도 있다. 형기의 만족을 지향하든, 성리에의 합치를 지향하든 그것이 중절한
것이
사단이다.
마찬가지로 칠정 중 비사단도 인심일 수도,
도심일 수도 있다. 형기의 만족을 지향하든, 성리에의 합치를 지향하든 그것이
부중
절한 것이 비사단이다.
인간의 모든 정감은 중절한 것(선)과 중절하지 않은
것(불선)으로 나뉠 수 있다.
사단은 중절한 정감만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칠정은 중절한
정감과 그렇지 않은 정감 모두를 지칭한다.
정감은 의로 발전하는데, 의도 중절과 부중절로 구분할
수 있다.
정감이나 의를 선/불선의 기준이 아닌, 지향의 기준으로
나눈다면 성리에의 합치를 지향하는 정감(의)과 형기의 만족을 지향하는 정감(의)로 구분할 수 있다.
성리를 지향하는 정감(의)이 도심이고, 형기를 지향하는
정감(의)이 인심이다.
그런데 성리를 지향하더라도 부중절할 수 있고, 형기를
지향하더라도 중절할 수 있다.
즉 인심과 도심은 정감과 의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므로, 인심과 도심 안에는 칠정(정감일반)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의를 제외하고 정감만을 논한다면, 인심과 도심에는 중절한 사단과 부중절한 비사단이 모두 포함된다.
p.192
이제 이이의
인심도심설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
p.193
"정이 발할 때 도의를 위해 발하는 것이 있으니, 부모에게 효하고자 하고, 나라에 충하고자 하며, 어린애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측은히 여기고, 의가 아닌 것을 볼 때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며, 종묘를 지날 때 공경하는 것 등이 이것이다. 이것을 도심이라고
한다. 또 정이 발할 때 입과 몸(口體)을 위하여 발하는 것이 있으니 배고플 때 먹으려 하고, 추울 때 입으려 하며, 힘들 때 쉬고자 하고,
정기가 생기면 이성을 생각하는 것 등이 이것이다. 이것을 인심이라 한다."(<<율곡전서>>, 권14,
<인심도심도설>, 282쪽)
심의 체인 성은
미발의 상태로 한결같지만, 심의 용인 정은 기가 발한 것으
p.194
로 도심과 인심이라는
두 가지 작용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이는 인심도심을 선악 문제와 연결시켜 칠정은 인심도심의 선악을 합하여 말한 것이고, 사단은 도심과 인심 가운데 선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부분이 이황과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황은 단순히 인심은 칠정이고 도심은 사단이라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
이러한 주장들에서
우리는 이이가 인심도심설에서 一心을 바탕으로 하면서 양명학적 요소 가운데 나흠순의 사상, 더 나아가서는 現成良知나 불교의 선학적 요소까지도
받아들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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