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posts list

2014년 9월 25일 목요일

노자-도덕경 1장


제1장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고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 名天地之始,
有, 名萬物之母.
故常無, 欲以觀其妙,
常有, 欲以觀其儌.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고
이름이 개념화될 수 있으면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무는 이 세계의 시작을 가리키고
유는 모든 만물을 통칭하여 가리킨다.
언제나 무를 가지고는
세계의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 하고,
언제나 유를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 한다.
이 둘은 같이 나와 있지만 이름을 달리하는데,
같이 있다는 그것을 현묘하다고 한다.
현묘하고도 현묘하도다.
이것이 바로 온갖 것들이 들락거리는 문이로다.
#
도덕경 제1장은 도덕경 전체의 골격을 가장 간략하고도 분명하게 보여 준다고 한다. 노자는 말한다. "나의 세계관은 도道, 무無, 유有라는 대표적인 세 개의 범주를 사용하여 뼈대만 먼저 보여 주겠다" 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 내리는 행위는 원래 '어떤 것'을 다른 것들로 부터 분리해 내는 작업이다. A가 B나 C가 아니라 A인 이유, 즉 A의 본질을 드러내어 그 본질 속에 A를 가두는 작업이다. 본질을 드러내어 다른 것들로 부터 분리하는 언어행위, 그것이 정의definition 내리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 자체는 본질을 규정하는 식의 언어 행위로 구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않다.
공자를 위시한 유가에서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순기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성인들이 언어적 개념화 작업을 하여 세운 일정한 체계, 즉 [전통]을 사회 운용이나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받아들인다.
可道(말할 수 있는 것) <----> 常道(진정한 도)
可名(개념화할 수 있는 것) <----> 常名(진정한 이름)
人道(인도) <----> 天道(천도)
傳統(전통) <----> 自然(자연)
춘추전국시대를 산 노자의 주요 관심사는 존재나 사유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 문제였고, 인간과 사회 문제를 조정하는 원칙을 "전통"이 아니라 "자연"에서 구했다.
비어있는 공간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지만, 구체적인 사물을 비로소 존재하게 하고 비로소 기능하게 하는 묘한 교차점 같은 것이다.
구체적인 것들은 모두 이 비어 있는 상태를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무無는 이 세계의 구체적인 것들이 비롯되는 시작이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경계선(실루엣)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영역을 드러내 보이려고 '유'라는 범주를 쓴다. 구체적인 모든 것들은 자신의 경계선(실루엣) 속에 갇혀 있다.
반대되는 유와 무가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존재 근거를 두면서 또는 상대방을 살려주면서 공존한다는 사실이 아주 현묘하다는 것이다.유와 무로 대표되는 대립항들이 서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분명하게 구분되어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재 근거를 나누어 가지면서 혹은 자신의 존재 근거를 상대방에게 두면서 꼬여있음을 보여준다.
두 대립면인 유와 무가 같은 차원에서 서로 꼬여 있다는 도식이 이 세계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 형식이자 운행 원칙이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 최진석 지음>에서

2014년 9월 24일 수요일

노자가 과연 그랬을까?l로쟈의 방주

북마크하기노자가 과연 그랬을까?로쟈의 방주 
지난번 '장자 읽기'에 이어서 '노자 읽기' 리스트도 만들어보았다. 이 페이퍼는 그 리스트의 배경을 짚어주는 것인데, 교수신문의 서평과 담비의 리뷰를 관련자료로 옮겨온 것이다. 교수신문의 서평은 가장 최근에 출간된 번역서인 최재목 교수의 <노자>(을유문화사, 2006)에 대한 것인데, 이 책은 오늘 손에 들었지만 상당히 공을 들인 역주서로 흡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전문가의 서평을 미리 읽어두기로 한다.
그리고 담비의 리뷰는 노자의 사상이 親유가적인가, 反유가적인가, 하는 오래된 쟁점을 다시 다루고 있는데(이와 비슷한 스케일의 쟁점으론 '주역, 유가의 사상인가 도가의 사상인가'라는 게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최재목 <노자>의 서평 필자이기도 한 조민환 교수의 <유학자들이 보는 노장철학>(예문서원, 1996) 외에 두 사상의 뿌리를 다룬 방동미 교수의 <원시 유가 도가 철학>(서광사, 1999)도 참고삼아 읽어볼 수 있겠다.
 
교수신문(07. 02. 05) '죽간본' 최초 완역서 - 노자사상의 本意 꿰뚫어
우리가 노자사상을 유가사상과 관련지어 말할 때 일반적으로 한대 사마천(史馬遷)이 ‘사기’에서 “노자를 배우는 사람들은 유학을 배척하고 유학을 배우는 자도 노자를 배척한다(世之學老者, 則絀儒學, 儒學亦絀老子)”라고 말한 것을 떠올리며, 노자는 유가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연구가들이 ‘노자가 과연 그랬을까’ 하고 질문을 하고 그 해답을 구하고자 했지만, 현행본 81장으로 된 ‘노자’를 보면 유가와 대척점에 선 노자의 모습만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노자’ 연구 가운데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노자’라는 인물은 과연 어떤 사람이며, ‘노자’ 장의 구분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었는지, 또 ‘노자’가 과연 한사람의 저작인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의 ‘노자신한열전(老子申韓列傳)’에서 “노자의 성은 이씨(李氏)고 이름은 이(耳)이며, 시호는 노담(老聃)이다”라 하는데, 중국고대의 위대한 사상가 중에 존칭을 나타내는 ‘자(子)’자를 붙인 경우 성이 다른 인물은 노자 한사람 뿐이다. 노자사상을 연구할 때 이미 사마천이 ‘사기’에서부터 제기한 노자라는 인물과 ‘노자’라는 책과 관련되어 제기된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1973년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비단에 쓰여진 ‘노자’(일명 ‘帛書老子’)의 발굴과 1993년 8월 중국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초나라 무덤에서 기원전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초 경으로 추정되는 죽간(竹簡)에 쓰여진 ‘노자’(이하 ‘竹簡本老子’로 함)의 발굴은 이같은 의문점에 대한 최소한의 답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특히 ‘죽간본노자’의 발굴은 무덤 속에 진리가 숨어있다는 말을 실감케 한 발굴이었다.
‘죽간본노자’는 ‘백서노자’보다 더 시대적으로 앞선 것으로서, 현행본 ‘노자’와 장·절의 순서 및 사상 내용에서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점에서 기존에 행해진 인물로서의 노자와 책으로서 ‘노자’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번역자가 노자의 ‘노’는 성이 아니고 존칭이면서, 노자는 우리가 흔히 쓰는 ‘노선생’ 즉 ‘늙은 선생(Old master)’을 의미한다는 것, 인물로서의 노자와 책으로서 ‘노자’를 분리해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 그리고 원시유가와 원시도가는 사마천이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대척점에만 서 있지만 않았다는 말이 함축하고 있듯이, 기존의 노자사상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게 해준 것이 바로 ‘죽간본노자’인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죽간본노자’에 대한 번역 및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그다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이 번역서의 출간은 한국의 ‘노자’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역자는 유가·불가·도가 삼가사상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중국과 일본에서 행해진 ‘노자’ 관련 연구를 최대한 참조하면서 자구 하나하나에 대해 꼼꼼하게 주석하고 있다. 아울러 노자사상이 갖는 의미를 중국사상을 통관하는 입장에서 해설을 하고 있어 원형으로서의 노자사상과 그 사상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성인(聖人), 자연(自然), 사(士), 미(美), 정(精), 음(音)과 성(聲)에 대한 자구 풀이에서는 관련 자구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경향까지 반영하면서 거의 소논문 수준의 주석을 하고 있다. 저자의 성실성과 해박한 학식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아울러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지금까지 연구된 노자라는 인물, 책으로서 ‘노자’, 그리고 ‘초간본노자’가 출토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잘 정리하여 노자사상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좋은 번역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노자’는 워낙 다의적으로 해석되고 따라서 어떤 책보다도 주석서가 많다. 이런 점을 감안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노자사상의 본의에 가깝게 번역된 이 번역서에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동양철학자이면서 시인이기도 한 번역자의 절제된 언어와 맛깔스런 번역이 노자사상의 묘미를 잘 느끼게 해 준다. 다만 역주에서 또 다른 번역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지만, 현행본 ‘노자’ 19장(죽간본: ‘返也者, 道僮也’)의 ‘반(返)’자를 풀이할 때 ‘반대되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고 한 것은 역자가 해설 부분에서 “‘반(反)’은 도의 기능적 측면을 말한 것이다”라고 말하듯이 ‘반대(反)’라는 의미보다는 ‘되돌아감(返)’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점만 거론하고자 한다.(조민환/ 춘천교대 - 동양철학)
담비(07. 03. 20) 老子는 親유가적인가 反유가적인가
1993년 중국에서 '노자' 연구자들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심한 이들은 다리 힘이 쪽 빠질만한 일이 발생했다.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중기 무덤에서 죽간으로 된 '노자'의 또 다른 판본이 발굴된 것이다. 이후 노자 학계는 충격과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였다.
'노자'엔 다양한 판본이 있다. 모두 81개 장으로 이뤄진 이 텍스트는 주로 왕필이 주석을 붙인 ‘왕필본’에 근거해 해석돼왔다. 왕필(226~249)은 남북조시대에 살았던 요절한 천재로서 그의 주석은 '노자'를 형이상학적 수양론의 결정판으로 해석하게 된 기원을 이룬다.


그러나 1973년 중국 남부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의 무덤(기원전 168년)에서 비단에 쓰인 2종의 ‘노자’(帛書本)가 출토되었다. 학계가 깜짝 들썩였지만 왕필본과 비교해볼 때 道經과 德經의 순서가 바뀌고 글자 일부분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백서본과 왕필본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20년 뒤인 1993년 ‘노자’의 일부분이 들어 있는 대나무 문서(竹簡)가 발굴된 것이다. 학계는 뭐가 많이 다르겠냐 싶었지만, 이번엔 정말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노자'에서 儒家를 강하게 비판한 부분은 다 빠져있어 '노자'라는 텍스트가 후대에 많이 개정, 첨가된 것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곽점본과 왕필 및 백서본(이하 합쳐서 통행본)의 내용을 비교하는 연구들이 줄지어서 나왔다. 지난 10년간은 주로 글자를 해독하는 등 텍스트를 확정짓는 연구들이 주로 나왔다면, 근자에는해독된 내용을 바탕으로 '노자'라는 텍스트의 위상을 재규정하는 과감한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최근 두 명의 학자가 곽점본과 통행본을 비교하는 논문을 나란히 발표해 주목을 끈다. 하나는 임헌규 강남대 교수가 학진 프로젝트로 수행해 최근 '동양고전연구' 제25집에 발표한 '노자의 무위이념은 유가의 인의를 비판하는가?'라는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오상무 고려대 교수가 지난해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최근 '동양철학' 제26집에 수정보완해 실은 '노자의 유가관 재론-통행본과 곽점본을 중심으로'이다.
그러나 두 학자가 곽점본을 읽고 내린 결론은 서로 상반되는 감이 있어 이를 둘러싼 학계의 논쟁이 예상된다. 임 교수는 곽점본이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노자 판본이라고 볼 때 노자가 반유가적이라는 기존 견해는 잘못된 것이며, 오히려 노자는 친유가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비해 오 교수는 비록 노자 곽점본은 유가에 대해 덜 적대적이지만 유가의 통치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는 결론을 낸다. 또한 두 교수는 한자 해석 방법에서도 차이를 드러내고 있어 논란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임 교수의 논의를 보자. 핵심은 기존 통행본의 제38장이다. 여기에 "道를 상실한 이후에 德이 있게 되었고, 덕을 상실한 이후에 仁이 있게 되었고, 인을 상실한 이후에 義가 있게 되었고, 의를 상실한 이후에 禮가 강요되었다. 대저 예라는 것은 忠信이 엷어진 것이며 어지러움의 머리이다. 미리 아는 것은 도의 헛된 꽃이며 어리석음의 시작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임 교수는 이런 노자의 인, 의, 예에 대한 비판이 정당한가를 살핀다. 공자는 '논어'에서 "仁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을 실행할 때 편안할 수 있다"라고 했으며 공자를 이은 맹자 또한 "仁은 인간의 편안한 집"이라고까지 천명했다. 맹자는 도처에서 인을 식물, 나무, 생장하는 곡식 등 유기체에 비유하면서 인의 실천은 유기체의 성장, 실현, 성숙과 같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임을 역설했다.

이를 통해 볼 때 "仁이 실행하는 의지에 의해 실천된다고 주장한 노자의 주장은 잘못"이라는 게 임 교수의 견해다. 또한 義가 仁의 외표라는 점에서 의 또한 인간의 내적 본성에 말미암아 마땅히 가야하는 바른 길이지 강압적인 것은 아니었기에 노자의 유가비판은 전반적으로 오해나 악의적 왜곡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죽간본에는 이 38장이 빠져있다. 여기서 임 교수는 이것이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통행본에는 죽간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절들을 덧붙인 부분이 꽤 보인다. 게다가 글자를 교묘하게 바꿔서 뜻을 완전히 틀어놓는 경우도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18장에 나오는 아래와 같은 경우이다.

죽간본 : 그러므로 大道가 행해지지 않는데 어찌 仁義가 있겠는가? 육친이 불화한데 어찌 효자와 자애로운 부모가 있겠는가? 나라가 혼란한데 어찌 올바른 신하가 있겠는가?

통행본 : 大道가 행해지지 않자 인의가 생겨났고, 지혜가 나오자 큰 거짓이 생겨났고, 육친이 불화하니 효성스런 자식과 자애로운 부모가 있게 되었으며,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있게 되었다.

죽간본에는 "故大道廢 安有仁義"라고 돼 있는데 통행본에는 "大道廢 有仁義"라고 두 글자가 빠짐으로써 뜻이 위에서 보듯 확 달라졌다. 통행본에서는 道가 仁보다 더 상위의 가치라는 점이 강조된 것이다. 임 교수는 이를 이데올로기적 투쟁 때문에 개작을 통해 본문을 반유가적으로 바꾼 결과라고 해석한다.

임 교수는 이외에도 많은 부분들을 대조하여 노자의 無爲之道가 유가의 仁政과 전혀 상반되지 않고, 오히려 상호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흔히들 도가는 '도'를 자연물인 天地보다 선재하는 것으로 상정하여, 道 => 天地 => 萬物로 내려오는 형식을 취하는 반면, 유가는 천지에서 만물로 내려오는 우주발생론적 체계를 취하고 있다고 간주되어 왔다. 그리고 도가는 무위를 최상의 이념으로 하며, 따라서 정치 역시 무위정치를 이상으로 한다고 간주되어 왔다.

이에 비해 유가는 인을 최상의 덕목으로 하면서 인정을 정치이상으로 주장하였다. 하지만 단순한 문자상의 차이를 버리고 그 근본정신과 거시적인 체계에서 보면 비슷하다는 게 임 교수의 입장. 도가에서 道가 자연물인 천지를 넘어서는 生生하는 자연 그 자체이듯, 유가의 天 또한 그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오상무 교수의 의견은 좀 다르다. 임 교수가 도가와 유가의 유사점을 강조했다면 오 교수는 그 차별성을 여전히 강조하는 입장이다. 가장 확연한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故大道廢 安有仁義"에 대한 해석이다. 임 교수는 여기서 '安'을 의문대명사 "어찌"로 해석했다. 그런데 오 교수는 전후맥락상 볼 때 "어찌"보다는 연결조사 "이에"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입장이다.
오 교수는 그 근거로 이 18장이 내용상 17장을 잇고 있으며, 17장에 '安'이 명확하게 '이에'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만약 '安'을 '이에'로 본다면 "위대한 도사 폐기되면 이에 인과 의가 생겨난다. 가족이 화목하지 않으면 이에 효와 자가 생겨난다"로 죽간본과 통행본 사이에 변별점이 없다. 이런 견해에 대해 임 교수는 어떤 입장을 보여줄 지 궁금하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굳이 뜻이 다르지 않은데 왜 후대에 이 '安'자를 없애버렸는가 하는 점이다. 좀더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아무튼 오 교수는 이런 입장에서 보듯 곽점본 노자 또한 유가에 대해 유보적이라고 본다. 다만 유가의 통치론에는 비판적이지만, 도덕론에는 동조적이라는 선에서 논의를 마무리짓는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단적으로 표현한다.

"노자가 仁을 끊고 義를 버려라고 말했을 때 그 청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군주이다. 다시 말해 인과 의를 버려야 할 사람은 군주이지 백성들에게 인과 의를 행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치자가 인의의 통치방법을 버릴 때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효의 마음과 행위를 회복하게 될 것이라는 게 노자의 본의이다."

과연 이를 보면 노자는 유가의 '仁'이라는 덕목 자체는 인정했지만, 그것을 통치술에 활용하는 '仁政'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임 교수는 '곽점본' 노자로 볼 때 노자 또한 '인정'을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해석한다. 과연 노자라는 텍스트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학계의 좀더 깊이있는 토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리뷰팀)
07. 07. 16.
P.S. 비전문가로서 <노자> 텍스트 비평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갖기 어렵고 대신에 노자 사상/철학의 '해석'의 문제에 주의를 두게 되는데, 나의 견문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강신주의 <노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태학사, 2004)이다. 이 또한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이어서 최근에야 그 존재를 알게 됐는데, 책의 타이틀 자체가 상당히 '모던'하면서 파격적이다. 흔히 '형이상학'으로 이해되는 노자철학을 '정치철학'으로 재해석하는데,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도덕경>은 가령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같은 책이라는 것이다. 관련학계의 반응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만 그런 '반응'을 따로 알 길이 없어서 리뷰 기사 정도만을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4. 05. 14) 군주의 통치윤리로 ‘老子’ 뒤집어 읽기
2000년대 들어 우리 사회와 대중의 지적 호기심을 환기시켰던 흐름 중 하나로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노자에 대한 관심을 들 수있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노자 열풍’을 지피는 데 공헌한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외에도 국내외 수많은 연구자가 노자의 사상이 담겨 있다는 텍스트 ‘노자’에 주목했으며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이를 해석한 다양한 책을 끊임없이 내놓아 왔다. 이에 따라 과거에 양생술(養生術)이나 통치술, 처세술, 무(無)의 형이상학, 마음의 수양론 등으로 이해해온 데서 나아가 최근에는 유토피아적 무정부주의나 생태철학, 페미니즘의 이론적 기초로 보는 견해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노자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노자 이해의 주류를 이뤄왔던 것은 중국의 보편적인 형이상학 또는 형이상학적 수양론의 결정체로 보는 견해였다. 이는 지난 2000년 가까이 노자 이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중국 위진 남북조시대 왕필(226~249)이라는 천재가 18세에 붙인 주석의 탓이 크다. 노자의 사상을 ‘개인’의 관점에서 조망함에 따라 일반 대중에게 ‘노자’는 무욕(無欲)의 삶을 설파한 마음의 수양론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모든 개인에게 바람직한 삶의 가치를 전해주는 교훈서 또는 ‘삶의 기술’을 통찰해낸 성인(聖人)의 글로 이해돼 왔던 것이다.

이에 반해 책은 개인이 아닌 ‘국가(state)’의 관점에서 ‘노자’를 해석하면서 기존의 노자 이해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장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전쟁과 살육, 주장과 논쟁으로 뜨거웠던 중국 전국시대의 혼란과 갈등을 국가라는 관점에서 조망하고 국가의 논리를 비교할 수 없이 정교하게 숙고한데서 ‘노자’의 의미를 발견해낸 것이다. 물론 ‘노자’라는 텍스트에서 국가라는 관점을 찾아낸 것이 저자가 처음은 아니다. 한비자(韓非子) 이래 최근까지 많은 철학자가 ‘노자’에서 국가를 읽어냈지만, 이들의 작업은 그동안 통치술로 가치폄훼돼온 현실에서 보듯 뚜렷한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우선 20세기 후반 중국에서 새로 발견된 판본들을 통해 기존 노자 이해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모두 81개 장으로 이뤄진 ‘노자’란 텍스트는 그동안 주로 왕필이 주석을 붙인 ‘왕필의 판본’에 근거해 해석돼왔다. 그러나 1973년 중국 남부 창사(長沙) 마왕두이(馬王堆)의 무덤(기원전 168년으로 추정)에서 비단에 쓰인 2종의 ‘노자’ 백서본(帛書本)이 출토되고 다시 20년 뒤인 93년 허베이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중기 무덤에서 ‘노자’의 일부분이 들어 있는 대나무 문서(죽간·竹簡)가 발굴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결국 우리는 ‘노자’에 대한 상이한 판본을 3종류 가지게 됐는데,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의 순서가 바뀌고 글자 일부분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백서본과 왕필본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다. 반면 곽점본의 경우 백서본과 달리 유가사상에 적대적이지 않고 유(有)와 무(無)가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위상을 가지는 등 몇가지 사상적인 차이점이 나타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상의 두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노자’ 81장을 포괄적이고 하나의 연결된 문맥으로 독해할 것을 주장한다. 81개 장 전체를 동일한 비중으로 고려하지 않았고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도가도비항도·道可道非恒道)”와 같이 일부 몇몇 장만 핵심적인 장으로 간주해 온 것이 기존 노자 이해 의 문제점이란 것이다.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노자’라는 텍스트의 핵심을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교환의 논리를 발견한데서 찾고 있다. 군주가 통치자라는 자리에 오래 있기 위해서는 세금의 대 가로 무엇인가를 피통치자들에게 주어야 하며, 만약 이 교환의 논리를 어기게 되면 군주는 결코 통치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음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와 가라타니 고진, 라이프니츠 등의 저작과 사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저자는 노자가 유가와 법가를 비판적으로 종합해 사랑과 폭력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제국의 논리를 제공했으며, 이는 한(漢)제국을 거쳐 현재 중국에 이르기까지 중국적 제국의 논리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연히 ‘노자’에 나오는 수양론도 대상이 군주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이와 함께 장자 연구자인 저자는 노장(老莊)으로 한데 묶어 이해해온 도가(道家)라는 범주가 해체돼야 한다는, 일반 독자들에게 매우 도발적으로 들리는 주장을 제기한다. 군주와 국가의 철학자
였던 노자와 단독적인 개체와 삶의 철학자였던 장자를 함께 도가 또는 노장사상으로 부르는 것은 사마천의 분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 뿐 순자(荀子)의 저서나 ‘장자’를 정밀하게 독해하면 노자와 장자가 별개의 학풍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노자의 해석과는 판이하게 다른 저자의 주장이 일반 독자들에게 당황스럽게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노자 열풍’ 속에서 노자에 덧씌워진 각종 신비한 외관을 벗겨내고 그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자는 저자의 주장은 독자들이 음미할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최영창기자)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김시천

새롭게 깨어난 도가의 칼과 방패
이종훈 기자  |  whdgnswwkdl@snu.kr

승인 2013.11.23  22:40:34

  
 
“색깔과 얼굴이 전혀 상이한 두 고전이 함께 짝을 이뤄 하나의 사상처럼 거론된다는 것, 그것이 내겐 하나의 모순처럼 보인다”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의 저자 김시천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는 책의 서두부터 노자와 장자를 노·장사상으로 묶어서 다뤄온 종래의 관점에 반대하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노자』는 권력을 얻기 위한 칼이고, 『장자』는 세상에서 다치지 않게 살기 위한 방패라는 것이다.

저자에게 『노자』는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는 뜻을 품은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지침서이다. 노자는 ‘도’가 만물의 질서이자 세상이 흘러가는 기본원리이고, 사람은 인위적이지 않게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통치자는 도를 체득하고 다른 이들도 도에 맞게 살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노자를 “이상적 통치자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다시 이치에 맞는 상태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한편 김 교수는 『장자』를 세상의 풍파로부터 권력을 얻으려하나 얻지 못한 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해석한다. 『장자』에서는 ‘노닌다’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노니는 것은 삶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으려는 것이다. ‘노닌다’는 행위는 고단한 삶에서 종종 우리를 떠나게 해 주지만, 우리가 삶을 부정하고 이를 벗어나게 하지는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떠난다는 것에는 돌아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삶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노닐고 다시 속세로 돌아온 후의 삶은 이전과 달리 경쟁, 성공욕, 이해관계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이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노자』와 『장자』에는 천 개의 얼굴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존의 해석과는 다른 저자의 관점도 ‘옳은 해석’이 아닌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해석은 그 동안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데 있어 하나의 규범으로만 생각되던 노장사상을 현실의 삶에 적용한 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할 때는 노자의 칼이 우리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실패하고 상처받고 방황할 때는 장자의 방패가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삶의 모순과 철학의 위안

김시천 지음 | 책세상 | 2013년 11월 05일 출간

책소개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노자와 장자를 둘러싼 여러 차원의 모순을 환기한다.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 노자는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과 같은’ 책이고, 장자는 권력의 중심부로 나아가지 못한 자가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방패와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격이 다른 두 책이 마치 동질적인 것인 양 ‘노장’이라는 말로 함께 묶여 거론되니 이 또한 모순이다. 저자는 이러한 모순을, 성리학이라는 정치적 교조를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금단의 노장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었던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분열된 내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저자소개

저자 : 김시천

저자 김시천은 숭실대학교 철학과에서〈노자의 양생론적 해석과 의리론적 해석〉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대학에 진학할 때부터 공부를 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그다지 훌륭한 학자는 못 되는 것 같다는 생각에 가끔씩 공부의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우연히 노자와 장자를 전공하게 되었는데, 공부해보니《노자》가 그다지 좋은 고전이 아닌 것 같아 한동안은 유교儒敎 사상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며 고전을 이해해보려 애썼다. 그러던 중 인문의학연구소에 합류해 활동하면서 전통 한의학의 철학적 바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기氣에 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래된 동아시아 고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이 깊어갔으나, 시민과 함께하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고전의 의미는 발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요즘에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 고전에 접근하는 ‘고전 읽기’에 골몰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철학에서 이야기로》,《이기주의를 위한 변명》,《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공저),《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공저),《기학의 모험 1?2》(공저) 등이 있다. 독특한 제목의 이 책《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그간의 ‘노장老莊’ 공부를 결산하는 책이자,《장자―무하유지향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성인과 제왕》,《노자―혼돈으로부터의 탈주》로 이어질 4부작의 첫 책이다.

목차

책을 펴내며 *9

서장 _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15

제1부 《노자》, 칼의 노래

1장 노자와 《노자》
- ‘전설’을 해체하고 ‘인간’을 보다 *31
1. 누구의, 누구를 위한 《노자》인가 *31
2. 하나이면서 여럿인 《노자》, ‘노자열전’ *34
3. 성인과 제왕, 그리고 범인 - 《노자》 속의 인간들 *55
4. 호모 임페리알리스의 《노자》 *63

2장 《노자》의 두 전통
- 통치술에서 철학의 지혜를 찾다 *67
1. 하상공과 왕필, 두 밀레니엄 두 가지 해석 *67
2. 논리와 해석 방법의 차이 - 훈고와 의리 *70
3. 우주와 인간, 기와 도 *82
4. 우주론에서 심성론으로 *91

3장 조선 사회의 《노자》와 지식인
- 조선의 유학자, 이단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다 *95
1. 《순언》, 그 ‘침묵’의 역사 *95
2. 유가 전통과 이단 *101
3. 이단에 대한 모순된 태도 *107
4. 사문난적 혹은 영혼의 전쟁 *115
5. 정통 유가 지식인의 내면 풍경 *122
6. 정통과 이단, 유교적 사유의 안과 밖 *127

제2부 《장자》, 춤추는 방패

4장 《장자》, 이단과 전통
- 사이비 속에 감추어진 삶의 진실을 찾다 *137
1. 해석의 갈등, 20세기의 《장자》 *137
2. 장자의 두 얼굴, 《사기》의 장자와 《장자》의 장자 *143
3. 역사 속의 《장자》 *155
4. 유학 안에서 《장자》 읽기, 사이비와 진유 *166
5. 진유가 된 사이비 장자, 이단에서 전통으로 *175

5장 《장자》, 해석의 갈등
- 유가와 도가 사이에서 ‘삶의 길’을 묻다 *179
1. 《장자》를 말하기의 어려움 *179
2. 《장자》에서 ‘정신’의 개념 *184
3. ‘정신’의 길 - 《장자》, 《관자》, 《회남자》 *189
4. ‘마음’의 길 - 《순자》와 유가 *195
5. 《장자》의 무정한 자아 - 신비주의 순수 의식인가, 정신양생론인가 *202

6장 《장자》의 ‘유遊’
- 노니는 삶, 일상으로 내려오다 *211
1. ‘놀이’와 ‘노님遊’ *211
2. ‘놀다’, 놀이, ‘장난作亂’ *216
3. ‘유’와 정신 *222
4. 심유心遊 - 천유天遊 그리고 세유世遊 *229
5. 정신과 유희 - 삶의 복원 *236

제3부 노장, 삶의 모순과 철학의 위안

7장 유가와 도가의 행위 이론
- ‘무위자연’으로 정치를 논하다 *245
1. 20세기의 철학사 서술을 넘어 *245
2. 성인과 ‘무위’의 이상 *249
3. ‘유위’의 빛과 그늘 - 《묵자》, 《맹자》 *255
4. 선악의 피안 - 유위 - 무위의 대립을 넘어 *262
5. 고대 중국의 행위 이론 비교 - 무위, 유위, 형명 *266

8장 《노자》와 페미니즘
- 노자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 *271
1. 《노자》, 다른 목소리로? *271
2. 노장, 진실 혹은 거짓말 *275
3. 《노자》와 페미니즘, 세 개의 메아리 *279
4. 《노자》의 성인, 계곡처럼 낮게 암컷처럼 부드럽게 *285
5. 《노자》와 페미니즘은 만날 수 있는가 *290

9장 《장자》와 과학 기술
- 장자는 기술 비관론자가 아니었다 *299
1. 기술, 애증의 교차로 *299
2. 기심, ‘최소 투자 최대 효과의 심리’ *304
3. 기技를 통한 도道, 또 다른 노하우 *310
4. 기예의 도, 달인의 철학 *316
5.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 21세기 과학 기술 시대의 ‘도술’을 찾아서 *320

종장 _ 도가에서 도술로, 철학에서 삶으로 *327
1. 21세기 ‘노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327
2. 도교란 무엇인가 *329
3. 텍스트와 도술 *333
4. 학學의 공동체 - ‘사제 모델’과 경술 *337
5. 학學에서 유遊로 - 삶의 기술로서의 도술 *342
6. 도술의 두 차원 - 양생과 달생 *349

참고문헌 *354
찾아보기 *364

출판사 서평

무위자연의 신화를 넘어 치열한 삶의 이야기로
― 우리 시대 노장을 읽는 아주 특별한 방법

《노자》와《장자》는 유교 중심의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공맹과 대등한 사상적 지위를 누려보지 못한 채 늘 이단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동아시아 고전 중 대중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책이 되었다. 특히 1999년에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라는 강연은 노자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다양한 대중 강연이 노자와 장자를 다루어왔다. 한때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서구 이론의 영향을 받은 해체론적 노자 해석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대중에게《노자》와《장자》에 대한 어떤 고정된 인상이 각인되었다. 탈속, 자연, 유유자적, 현자, 탈정치, 반문명 같은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인상은 과연 올바른 이해의 결과일까?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노자와 장자를 전공한 동양철학자가 그간의 노장 공부의 결실을 모아 엮은 책으로, 텍스트의 문맥을 놓치지 않는 전공자의 시선을 통해 노장에 대한 통념이 실제의《노자》,《장자》와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즉 이 책은 두 문헌의 내부에 있는 ‘사상’을 체계적으로 해명하기보다는 기존의 연구 성과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통해, 상식으로 굳어진 노장 철학의 주제들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오늘’의 시각으로 재검토함으로써 기존의 논의와 다른 해석의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노자》는 천하의 정치적?사상적?사회적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사람들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헌으로서 정치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을 위한 기술적 지침서와 같은 책이며, 반면《장자》는 권력을 차지하지 못한 지식인들을 위해 세상과의 불화를 해소하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 문헌이 이렇게 이질적임에도《노자》와《장자》는 ‘노장’이라는 말로 한데 묶여 실제와는 동떨어진 고정관념을 낳아왔으며, 이러한 고정관념에 일조한 주제들 중 대표적인 것이 노장을 대변하는 개념이 ‘무위無爲’라는 것,《노자》가 페미니즘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것,《장자》가 기술 문명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 무위는 노장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간주될 만큼 노장의 독보적인 개념도 아니고 탈속적?반문명적인 삶과 연관되는 개념도 아니다. 또《노자》와 페미니즘,《장자》와 기술 문명 비판을 연결 짓는 것은 문맥을 간과한 채 원문을 선별적으로 인용하거나 잘못 이해한 것으로, 전통과 탈근대적인 것을 잘못 연결한 결과이다.
저자는《노자》와《장자》를 이렇게 읽어내는 것에서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노장을 어떻게 삶에 유의미한 것으로 지속시킬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그리하여 노장을 도가나 도교라는 이름의 철학이나 종교로 받아들이지 말고,《장자》의 ‘유遊’(노님) 개념에 입각해 ‘도술道術Tao-techniques’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여기서 도술이란 신비한 초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부정하거나 삶에 종속되지 않고 삶을 누리는 기술, 정치와 문명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누리는 기술을 말하며, 이러한 시각은 철학과 종교의 이분법,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결국 이 책은《노자》와《장자》에서 삶의 기술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국내 학자의 독창적인 노장 연구서가 드문데다, ‘무위자연’이라는 표현이 대변하듯 탈속적?탈정치적?반문명적 사상이라는 노장 사상에 대한 일면적 통념이 지배하는 현실에서,《노자》와《장자》에 대한 역사적 해석과 쟁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삶의 양식으로서의 ‘도술’이라는 21세기 노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는 이 책은 저자가 줄곧 견지해온 ‘전통의 현대적 해석’에 대한 학문적?실천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하는 노자의 칼, 춤추는 장자의 방패 ― 노장과 ‘모순’
이 책의 제목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노자》와《장자》를 둘러싼 여러 차원의 모순을 환기한다. 우선 글자 그대로 ‘창(칼)과 방패’로서의 ‘모순’이다.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노자》는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과 같은’ 책이고,《장자》는 권력의 중심부로 나아가지 못한 자가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방패와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격이 다른 두 책이 마치 동질적인 것인 양 ‘노장’이라는 말로 함께 묶여 거론되니 이 또한 모순이다.
한편,《노자》와《장자》는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조선 사회에서 이단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지만, 모순되게도 이이, 박세당, 홍석주, 서명응, 한원진 같은 정통 유학자들에 의해 주석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시대에 박세당의《신주도덕경》과《남화경주해산보》, 이이의《순언》, 홍석주의《정노》, 한원진의《장자변해》같은 노장 주석서가 쓰이고 읽혔다. 요컨대 조선 시대에《노자》와《장자》는 이단이면서도 ‘바깥’에 있지 않고 ‘안’에 있었던 셈이며, 저자는 이러한 모순을, 성리학이라는 정치적 교조를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금단의 노장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었던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분열된 내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저자는《노자》와《장자》에서 이런 중층의 ‘모순’을 읽어내며, 결국 삶 자체가 그렇게 모순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게다가《노자》와《장자》모두 단일 저자에 의해 쓰인 책이 아니어서 여러 목소리를 내는데다 모호한 언어로 되어 있어 해석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니, 노장 읽기는 모순으로 가득해 종종 길을 잃게 만드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저자는 노장의 모순이 삶의 모순과 유비를 이루기에 오히려 삶에 위로를 준다고 말하며, 나아가 도가나 도교 대신 ‘도술’이라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철학이나 종교 아닌 삶의 기술로 받아들여 현실적 동반자로 삼을 방법까지 모색한다.

《노자》― 패권 지망자들의 책, 권모술수의 책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노자》는 전국 시대 말기에서 한나라 초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완성된 책이다. 그리고《노자》의 저자는 노자라는 한 사람의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니라 신원을 알 수 없는 여러 사람이다. 이 복수의 저자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는지는《노자》텍스트에서 어떤 사람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지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통념과 달리《노자》에는 “정치적 세계의 비정함에 냉소를 보내고 문명을 비판하고 유가와 같은 도덕적 엄격주의에 식상한 인간, 환경과 자연의 가치를 긍정하고 페미니즘적 세계관을 지향하는 인간”은 등장하지 않는다.《노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상은 오히려 성인聖人, 후왕侯王, 사士 같은 권력자들이다. 이는《노자》의 저자나 독자가 패권 지망자들이었음을 짐작게 하고, 실제로《노자》는 내용상 권모술수를 포함한 “권력의 기술”에 대한 책이나 다름없다.
《노자》에 대해서는 수많은 주석자들에 의해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졌고 그러한 해석들에서 공통의 기반과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대표적인《노자》해석으로는 한나라 하상공과 위나라 왕필의 해석이 꼽힌다. 두 사람의 주석서는 똑같이《노자》를 다루면서도 아주 다른 해석으로 나아간다. 하상공이《노자》자구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치중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는 데 충실한 편이라면 왕필은 유가의 입장에서《노자》를 해석한다. 그리하여 하상공의 해석은 도교의 차원과 연결되고 왕필의 해석은 유학자들의 해석의 토대가 되면서 다양한 조류를 만들어나가게 되었다. 그런 만큼 어떤 주석서를 통해《노자》를 읽는가에 따라《노자》의 얼굴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조선 사회에서는《노자》가 어떻게 수용되었을까? 유학 아닌 것은 이단으로서 철저히 배척했던 조선조에서 뜻밖에도 이이의《순언》, 박세당의《신주도덕경》, 홍석주의《정노》, 서명응의《도덕지귀》등 모두 다섯 권의《노자》주석서가 쓰였으며,《선조실록》에는 과거시험 답안지에 노장의 문장이 인용된 것을 놓고 임금과 신하가 왈가왈부하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이는 모두 임금과 신하들, 그리고 과거에 응시한 선비가《노자》와《장자》를 읽어 알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이단의 문제점을 알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읽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우긴 했지만, 어쨌든 이는 조선 사회에서 정통인 유가와 이단인 도가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장자》― 출사하지 못한 비운의 지식인의 책, 세속에서 노니는 기술을 이야기하는 책
《장자》는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문헌으로 추측되지만 성립 시기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장자》는 진晉나라의 곽상이 틀을 갖춘 것으로 33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장자가 지은 것은 ‘내편’ 7편뿐이고 나머지는 후학들의 글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따라서《장자》에는 서너 갈래의 다른 목소리가 뒤섞여 있으며, 이는《장자》해석의 어려움을 낳는다.《장자》의 어느 편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중국 철학계에서《장자》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중국인의 패배주의와 노예근성의 정신적 근원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에 중국 고유 종교인 도교의 사상적 원류, 유가를 계승한 사상, 중국 예술 정신의 원류라는 등등의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한국 학계에서도 이런 식의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저자 김시천은《장자》의 이야기들에서 얻을 수 있는 장자에 대한 정보를 통해서 “뜻을 품었으되 가난해 벼슬에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한 지식인”을 장자의 일관된 모습으로 포착해내고,《장자》를 “비운의 지식인”의 책으로 본다. 치자의 영광과 명예로 나아가지 못하고 불행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삶의 기술을 이야기한 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장자》에서 가장 주목하는 개념은 ‘유遊’이다. ‘유’는 ‘노닐다’에 가까운 개념으로, 잠정적 ‘떠남’과 떠났다가 ‘돌아옴’을 전제한다. 떠남이 정치적 야망이나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는 세속의 삶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거리를 두는 것이라면, 돌아옴은 그렇게 거리를 둔 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서의 깨달음을 안고 세속의 삶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돌아왔을 때는 삶의 태도가 바뀌어 다툼과 경쟁과 갈등에서 벗어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삶의 태도가 “탈속적 태도”도 아니고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거나 변화시키려는 변혁적 실천”도 아니며, 다만 “한 개체가 겪는 갈등과 억압을 승화시킨 태도”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유’는 삶의 보전이라는 ‘양생’의 논리와 이어지며, 또한 문화와 예술에 영감과 창조적 활력을 준다고 본다.
《장자》역시 조선 시대에 유학자들 사이에서 읽혔고 박세당, 한원진에 의해 주석되었다. 다만《장자》는 대체로 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이단’이라기보다는 ‘사이비’에 가까운 존재였다.

《노자》와《장자》에 대한 통념은 올바른가
두 문헌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인위나 억압을 거부하고 자연 속에서 초탈한 태도로 살아가는 현자의 격언쯤으로《노자》와《장자》를 떠올리는 통념과 거리가 있다. 저자는 노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많다고 보고 이를 점검한다. 여기서의 논점은 ‘무위자연’이 노장을 대변하는 개념인가,《노자》가 페미니즘과 닿아 있는가,《장자》가 기술 문명에 반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유가는 ‘유위有爲’를 주창했고 노장은 ‘무위’를 주창해 유가를 비판했으며, 유위는 인위에 상응하고 무위는 자연에 상응한다는 것이 통념상의 도식이다. 하지만 저자는《논어》,《맹자》,《순자》,《묵자》등 여러 고전 문헌들의 ‘무위’ - ‘유위’ 용례를 분석해, 무위와 유위가 대립되는 개념이고 무위와 자연이 상응하는 개념이라는 상식은 틀린 것임을, 그리고 무위란 “제자백가의 공통 개념으로서 어느 특정 학파가 전유한 것이 아니며, 기본적으로 정치 행위 이론”임을 밝힌다. 따라서 무위자연을 도시와 문명을 떠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과 연관 짓고, 무위자연이 노장이 추구하는 삶의 대명사라고 이해하는 것은 수정되어야 한다.
그럼《노자》와 페미니즘의 관계는 어떠한가? 저자는《노자》가 여타 문헌에 비해 여성성을 중시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것이 여성의 자유와 해방을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의 차원은 아니라고 말한다.《노자》의 몇몇 표현들을 들어《노자》를 페미니즘과 연결시키는 것은, 유가는 뭔가 부정적인 사상 체계이고 도가는 뭔가 긍정적인 사상 체계라는 도식적 선입견 때문에《노자》에 나오는 여성성 강조의 표현 하나도 과도한 의미를 담아 해석한 결과라는 것이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노자의 시대는 가부장제 완성의 정점이었는데 그러한 시대에 노자가 여성을 찬양하고 페미니즘 철학을 전개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일이냐고 저자는 반문한다.《노자》에서 볼 수 있는 여성성의 강조는 여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성적 강함에만 의지하는 정치는 온전하지 못하니 군왕은 여성의 유약함을 가장하는 교묘한 ‘술수’ 또한 겸비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자》가 기술 문명을 비판했다는 상식 또한 잘못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식이〈천지〉편에 나오는 ‘기심機心’이란 말을 “편리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해석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원문의 맥락을 따른다면 ‘기심’을 “최소 투자 최대 효과의 심리”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그렇다면〈천지〉편의 이야기에서 기심을 비판하는 것은 “기회주의적 심리를 비판한 것이지 고도의 기술적 성취 그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양생주〉편에 나오는 포정?丁의 이야기에서는 기술에 대한 긍정을 읽을 수 있다. 소를 잡는 데 있어서 기술을 넘어 도의 경지에 오른 포정의 칼놀림을 보고 문혜군이 ‘양생의 도’를 터득했다는 이 이야기로 미루어,《장자》에서는 기술이 비판되는 것이 아니라 도에 이를 수 있는 방법으로서 긍정됨을 알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노장, 삶의 기술로서의 ‘도술’을 위하여
―21세기에《노자》와《장자》를 어떻게 향유할 것인가

오늘날 한국 학계에서 ‘노장’은 “《노자》와《장자》라는 텍스트에 담긴 내용 혹은 그와 관련된 문헌에 담긴 철학적, 사상적, 종교적 전통”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노장이 유가 전통에 포섭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노자》와《장자》가 한대漢代 이래 제자백가의 하나인 ‘도가’로 분류되고 20세기에 ‘도교’의 기초 경전으로 이해되면서 노장은 철학적, 종교학적으로 언제나 도가와 도교라는 더 큰 범주와 철저하게 관련돼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나 노장을 철학이나 종교로서 대하지 말고 우리의 삶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지속시키며 향유할 방법을 모색하자고 말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노장을 도가/도교 아닌 ‘도술’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 저자는 다시 ‘유遊’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저자는 ‘유’ 개념을 현대라는 패러다임으로 가져와 ‘유’를 정치를 부정하기보다 정치를 누리고, 문명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문명을 누리는 태도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러한 ‘유’에 이르도록 해주는 것이 양생養生nourishing-life의 기술(자의적 권력에 맞서 자신의 생명과 삶을 보전하는 기술)과 달생達生mastering-life의 기술(양생의 기술을 삶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하는 기술)이며, ‘도술’이란 이러한 삶의 기술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시대라는 틀 안에서의 고전 읽기를 고민해온 저자는 이처럼 노장 전공자로서의 진지한 노장 읽기를 통해 통념에 가려져 있었던《노자》와《장자》의 실제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동시에 이러한 고전을 삶 속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준다. 그리하여 이 책은 저자 자신의 바람처럼 학술적 연구서이면서 작은 이야기책이기도 하다.

노자 정치를 깨우다 =지도자의 지침서, 안성재


노자 정치를 깨우다 지도자의 지침서


안성재 지음 | 어문학사 | 2012년 05월 16일 출간

저자소개

저자 : 안성재

저자 안성재(安性栽)는 인천대학교 교수, 인천대학교 공자학원 원장(現), 인천대학교 중국학연구소 소장(前). 건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문학사, 중국 북경(北京)대학교 중국어언문학과 문학석사, 중국 북경(北京)대학교 중국어언문학과 문학박사. 필자는 한국수사학회 주관의 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양계초와 호적은 학설은 논리적으로 풀어야 하고, 철학의 발전은 논리적 방법의 발전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에서는 묵자만이 유일하게 그리고 가장 완전한 논리 원칙에 의거하여 학설을 서술했다.”는 내용을 접했다. 그때 문득 “제자백가사상 모두 이해와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논리학과 수사학 범주에 속하는데, 왜 묵자보다 이른 시대의 노자에 대한 언급은 없을까?”라는 의문점이 들었고, 이에 논리학과 수사학적 관점에서 노자의 『도덕경』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의『도덕경』 번역이 본의와 일정한 괴리감이 있다고 판단했고, 처음부터 다시 문자와 문장구조 분석을 통한 번역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노자의 ‘도(道)’는 무위자연이 아닌 대동의 통치이념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데, 이러한 필자의 주관적 확신을 객관적인 자료로 증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하지만 곧 『도덕경』 이외에 노자와 관련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현실의 벽에 막히게 되었다. 그때 단서가 된 것이 바로 사마천의 『사기』에 남아 있는 <노자한비열전>이었다. 여기에는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예(禮)에 대해서 물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필자는 이 점에 착안하여 어쩌면 노자와 공자의 사상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막연한 기대감으로 『십삼경』에 손을 대었고, 아울러 『사기』와 『십팔사략』까지 섭렵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전적들은 그 분량이 너무나도 방대하지만, 노자가 주나라 말기 사람이고 또 그의 가치관이 대동으로 집약되어 있다는 전제하에서, 우선 삼황오제와 하·상·주나라까지의 기록을 살폈고, 그 결과물로 『노자의 재구성』 및『노자, 정치를 깨우다』 두 저서를 집필하게 된 것이다. 만약 필자의 노자에 대한 결론이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기존의 도가사상에 대한 인식 및 도가사상과 유가사상의 관계 나아가 노자와 장자의 관계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제 필자는 다음의 작업으로 노자와 공자 사상의 공통점 및 차이점 연구를 진행하려고 한다. 아울러 차후 여력이 된다면, 양계초와 호적의 묵가사상에 대한 주장에 대해서도 고찰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장, MP3CD1장포함)

목차

들어가는 글 4

第1章 이름 지을 수 없다 11
第2章 함께 하는 것이다 15
第3章 얕은꾀를 부리지 않다 25
第4章 다함이 없다 29
第5章 객관성을 지키다 35
第6章 변치 않다 41
第7章 사리사욕을 탐하지 않다 43
第8章 물과 같이 자애롭다 49
第9章 공을 세우면 물러난다 57
第10章 순수한 덕을 깨닫다 65
第11章 없으므로, 있게 된다 75
第12章 대동사회의 지도자 79
第13章 자기를 버리다 83
第14章 형용할 수 없는 모호함 93
第15章 주저하고 망설이다 99
第16章 천성을 따르다 111
第17章 스스로 그러하게 하다 117
第18章 대동사회의 통치이념 123
第19章 순박함을 지키다 129
第20章 덕을 쌓다 133
第21章 커다란 덕 143
第22章 진심으로 보존하다 149
第23章 함부로 명령하지 않다 155
第24章 성인은 몸을 뒤로 한다 159
第25章 지나가면,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진다 165
第26章 진중함을 잃지 않다 173
第27章 덕을 밝혀서 따르다 179
第28章 순수함을 지니다 185
第29章 작위하면 실패한다 191
第30章 달이 차면 기운다 195
第31章 상례로 애도하다 201
第32章 제도로 명분화하다 209
第33章 죽지만 사라지지 않다 217
第34章 욕망을 잠재우다 223
第35章 수수할 따름이다 227
第36章 자애로움의 덕치Ⅰ 233
第37章 스스로 따르다 239
第38章 공정하고 자애로운 지도자 243
第39章 내실을 기하다 253
第40章 반대됨의 도. 자애로움의 도 261
第41章 엉성한 듯하다 263
第42章 왕위를 지키지 못하다 273
第43章 지극한 부드러움 281
第44章 오래 보존하다 285
第45章 순수함과 고요함 289
第46章 항상 믿고 따르다 293
第47章 천성에 따르는 통치이념 297
第48章 억지로 작위하지 않다 301
第49章 백성의 의지를 따르다 303
第50章 집착하면 잃는다 309
第51章 대동의 심오한 덕 313
第52章 대동을 따르다 317
第53章 지도자의 비리 323
第54章 대동의 이념을 실천하다 333
第55章 갓난아이의 순수함처럼 343
第56章 심오한 화합 349
第57章 제도로 억압하지 않다 353
第58章 기준이 없다 361
第59章 덕을 쌓다 369
第60章 작은 생선 굽듯이 375
第61章 몸을 낮추다 387
第62章 하늘이 준 선물 395
第63章 유비무환 405
第64章 초지일관 413
第65章 조화로우면 넉넉해진다 421
第66章 백성에게 숙이다 427
第67章 비슷한 것이 없다 435
第68章 다투지 않는 덕 449
第69章 자애로움이 이긴다 453
第70章 드러내지 않는다 457
第71章 무결점의 지도자 463
第72章 누르지 않으면, 따르게 된다 467
第73章 느슨하지만 새지 않는다 471
第74章 대신하면 그르친다 477
第75章 제도로 억압하다 485
第76章 자애로움의 덕치Ⅱ 489
第77章 활시위를 당기듯이 493
第78章 대립면으로 말하다 499
第79章 객관적이고 공정함 505
第80章 이상적인 사회 511
第81章 참된 지도자를 말하다 519

나오는 글 524
색인 526

출판사 서평

요즈음 한국이나 중국에서 출판되는 제자백가사상 관련 서적들의 대세는 현대인들의 가치관과 생활에 맞춰 재해석하는 것인 듯하다. 이러한 취지의 저술은 너무나 빠르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현실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여유와 지혜를 선사한다는 차원에서 상당히 바람직하다. 하지만 자칫 저자 개인의 주관적 가치관이 스며들게 되어 제자백가사상이 담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희석시킨다는 점에서는 다소 부정적이다. 이에 필자는 원론적인 번역에 충실하고자 노력함으로써 노자가 말하고자 한 본연의 의도를 부각시키고, 나아가 독자 스스로 그러한 사상을 현대사회에 접목시킬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다.

왜 다시 노자인가?
정치의 해 2012년, 정치에 대한 신선한 화두를 던지다!
『도덕경』은 바로 정치 지도자의 사상을 담은 정치 지침서이다 


대선과 총선 등으로 정치의 해로 불리는 2012년, 서점가엔 정치에 관련한 서적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이제 정치적 화두는 정치인에게만 국한된 테마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 열린 소재로 더욱 그 열기를 지펴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번에 어문학사에서 출간된 안성재 교수의 『노자, 정치를 깨우다』는 지극히 일반 독자들에게 노자의 사상이 어떻게 정치적 이념으로 연관되어 있는가를 알기 쉽게 풀어쓴 저작물이라 할 수 있다. <노자> 강의 시리즈의 전편으로 나왔던 『노자의 재구성』은 王弼本(왕필본)을 근간으로 하여 처음부터 다시 [도덕경] 全文(전문)을 번역한 책이다. 문장과 그 구조를 충실하게 번역하고, 더 나아가 ‘재해석’하는 관점에서 도덕경을 분석하였다. 기존에 한국과 중국에서 출판된 일부 번역본들의 해석이 도덕경의 본의와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이러한 차이를 메우기 위해 도덕경의 재해석 작업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전문 학술서의 성격을 대중서로 탈바꿈하여 더욱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한 것이 바로 『노자, 정치를 깨우다』이다. 일단 각 장의 요점을 먼저 제시하고 문장 각각의 의미를 쉽게 풀어쓰는 데 역점을 두었다. 또한 가독성과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난해한 문자나 문장구조 분석 등의 전문적인 내용들은 최대한 배제하고자 하였다.
요즈음 한국이나 중국에서 출판되는 제자백가사상 관련 서적들의 대세는 현대인들의 가치관과 생활에 맞춰 재해석하는 것인 듯하다. 이러한 취지의 저술은 너무나 빠르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현실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여유와 지혜를 선사한다는 차원에서 상당히 바람직하다. 하지만 자칫 저자 개인의 주관적 가치관이 스며들게 되어 제자백가사상이 담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희석시킨다는 점에서는 다소 부정적이다. 이에 필자는 원론적인 번역에 충실하고자 노력함으로써 노자가 말하고자 한 본연의 의도를 부각시키고, 나아가 독자 스스로 그러한 사상을 현대사회에 접목시킬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다. 마치 화가가 그림 한 폭을 그리는데, 감상하는 이 스스로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도록 여백의 미를 남기는 것처럼 말이다.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노자의 생각을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혀서 독자 스스로 현대사회에 응용할 수 있다면, 이 역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도덕경』은 작게는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서, 크게는 온 세상의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 지도자뿐만 아니라 국민들 역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어야 하는 책인 것이다.

대동사회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가 삼가 부단히 실천하는 모습, 그 자체가 대동이다


필자는 노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사상이 바로 ‘대동의 통치이념’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곧 노자가 1장부터 81장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대동의 통치이념은 결국 백성의 뜻을 지도자의 뜻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동이 실현된 사회를 바로 태평성대라고 일컫는다. 대동사회는 완성된 사회가 아닌, 지도자가 삼가 부단히 실천하는 모습, 그 자체가 대동이다라고 말한다.
노자의 ‘도’는 ‘형이상학적 개념의 無爲自然(무위자연)의 도’가 아니라 ‘대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통치이념으로 봐야 한다.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과학적인 개념에서의 우주 대혼돈(카오스)이 아닌, 뒤섞임 즉 하늘과 땅과 사람과 동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상태를 ‘대동’이라고 일컬었다. 다시 말해서 노자는 ‘소강’을 추구하는 세태에 반대하여, 그보다 더 상위개념에 있는 ‘대동’으로 돌아가야 함을 주장한 것이다. 또한 대동 사회는 어떠한 말이나 제도 등의 명분화된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삼가고 노력하며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기에, 노자는 항상 ‘도’를 이야기 할 때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으며 말로 형용할 수 없기에 반대로 말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노자는 가장 오래된 이상주의를 꿈꾸던 사람이었고, 그의 [도덕경]은 가장 오래된 이상주의적 정치 이념 서적이었다.
필자는 [도덕경]을 번역하고 난 후, 노자와 공자의 사상이 世間(세간)에서 말하는 ‘道不同, 不相爲謀(도불동, 불상위모: 추구하는 도가 다르면, 함께 도모하지 않는다).’의 관계처럼 전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어떠한 측면에서 긴밀하고도 유기적으로 상호 연계하여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도덕경] 각 문장의 眞義(진의)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尙書(상서)], [周禮(주례)], [禮記(예기)], [史記(사기)], [十八史略(십팔사략)]에 나타난 文句(문구)들과 상호 비교해가며 대비시켜 서술하였는데, 필자는 이러한 전적의 문구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문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가급적 直譯(직역)을 원칙으로 하였다.

노자의 재발견(안성재), 노자에 대한 관점 바꾼 책 - '도'는 '형이상학적 무위자연' 아닌 '대동'

노자에 대한 관점 바꾼 책
'도'는 '형이상학적 무위자연' 아닌 '대동'
2012년 04월 03일 (화) 16:37:33이형구 시민기자  book@bookdaily.co.kr
[북데일리] 동양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중 한 명이 노자이다. 춘추시대 말기의 사람으로 생각되는 그는 도가(道家)의 창시자이다. 노자는 주나라의 운명이 쇠하는 것을 보고, 자연에 묻힐 것을 결심하고 서방(西方)으로 떠났다.

이 때 쓴 책이 도덕경(道德經)이다. 도가철학은 재야적인 비판철학적 성격으로 이해된다. 현실참여가 강한 공자의 유가 사상과 비교된다. 이는 노자가 현실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소박한 삶을 즐긴데서 비롯된다. 자유로운 정신 세계를 추구한 노자는 나라의 지배층과 세상에 대해 신랄한 비판도 했다. 많은 노자를 연구한 학자들은 그의 정치사상을 무위정치로 보고 있다.

우주 만물의 궁극적인 이치인 도의 본질을 따질 때 이상적인 정치 형태는 무위정치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해석도 있다. <노자의 재발견>(안성재. 어문학사. 2012)도 다른 시각을 보이는 책이다. 도덕경을 비롯한 수많은 책은 사상가의 가치관을 알리려는 설득 과정의 산물이다. 예나 지금이나 책을 쓰거나 강의를 하는 것은 '이해'와 '설득'의 修辭學(수사학) 범주에 속한다.

저자인 안성재 인천대 교수는 몇년 전부터 도덕경에 대해 수사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그는 각 문장구조를 분석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기존 한국과 중국에서 출판된 번역본들의 해석이 도덕경의 본의와 일정한 괴리감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저자는 왕필본(王弼本)을 근간으로 하여 처음부터 다시 전문을 번역했다. 그 결과 노자에 대한 기존관점을 바꾸는 책을 냈다. 그는 책에서 노자의 '도'를 '형이상학적 개념의 무위자연의 도'가 아닌 '대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통치이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출판사 서평

안성재 교수의 <노자> 강의 시리즈 제1편

정치이념으로 본 도덕경
노자의 재구성

노자 사상의 궁극인 ‘대동(大同)’이 뜻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餘他(여타) 諸子學(제자학)들이 그러하듯이, 老子(노자) [道德經(도덕경)]의 집필 의도 역시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가치관을 알리려는 ‘이해’와 ‘설득’의 修辭學(수사학)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이 책의 저자인 안성재 교수는 4년 전 [도덕경]에 대해 수사학적 접근을 시도하였는데, 그 과정 특히 각 문장구조를 분석하면서 필자가 섭렵했던 기존 한국과 중국에서 출판된 번역본들의 해석이 [도덕경]의 本義(본의)와 일정한 괴리감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필자는 王弼本(왕필본)을 근간으로 하여 처음부터 다시 [도덕경] 全文(전문)을 번역하게 되었는데, 특히 사전에서 漢字(한자)를 일일이 찾아 그 글자가 지니는 다양한 의미들 중에서 각각의 문장구조와 [도덕경] 전반을 아우르는 문맥의 흐름에 가장 적합한 뜻을 선별하고자 하였다.

노자의 도(道)와 공자의 도(道)는 과연 서로 동떨어진 도(道)인가?
왕필본(王弼本)을 근간으로 한 도덕경 전문 재해석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동양철학을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노자에 대한 비범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도올 김용옥 선생의 『노자와 21세기』라는 책을 필두로 지금까지 『도덕경』, 『논어』, 『맹자』 등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의 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동양고전의 내용은 한눈에 읽어서는 본뜻을 파악할 수가 없고, 微言大義(미언대의: 짧은 말 속에 심오한 의미가 담겨져 있음)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해석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다른 관련이 있는 전적들에 대한 연구가 제반되어야 하고 이를 상호 비교하며 분석해야 마땅하다. 이에 더하여 무엇보다 정확한 문장의 구조를 분석하고 그에 담긴 함의를 도출하는 작업이 도덕경의 본의에 다가가는 기본적인 자세라 할 수 있다. 금번에 출간된 안성재 교수의 『노자의 재구성』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여 문장과 그 구조를 충실하게 번역하고, 더 나아가 ‘재해석’하는 관점에서 도덕경을 분석하였다. 기존에 한국과 중국에서 출판된 일부 번역본들의 해석이 도덕경의 본의와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이러한 차이를 메우기 위해 도덕경의 재해석 작업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王弼本(왕필본)을 근간으로 하여 처음부터 다시 [도덕경] 全文(전문)을 번역하게 되었는데, 특히 사전에서 漢字(한자)를 일일이 찾아 그 글자가 지니는 다양한 의미들 중에서 각각의 문장구조와 [도덕경] 전반을 아우르는 문맥의 흐름에 가장 적합한 뜻을 선별하고자 노력하였다.
필자는 [도덕경]을 번역하고 난 후, 노자와 공자의 사상이 世間(세간)에서 말하는 ‘道不同, 不相爲謀(도불동, 불상위모: 추구하는 도가 다르면, 함께 도모하지 않는다).’의 관계처럼 전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어떠한 측면에서 긴밀하고도 유기적으로 상호 연계하여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도덕경] 각 문장의 眞義(진의)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尙書(상서)], [周禮(주례)], [禮記(예기)], [史記(사기)], [十八史略(십팔사략)]에 나타난 文句(문구)들과 상호 비교해가며 대비시켜 서술하였는데, 필자는 이러한 전적의 문구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문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가급적 直譯(직역)을 원칙으로 하였다.
본 저서에서 필자는 유가의 서적인 『중용』, 『예기』, 『상서』 등의 경전 등을 인용하여 분석한 것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며 추후에 있을 논의에 해설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노자의 사상을 증명하기 위해 적잖이 儒家典籍(유가전적)의 기록들을 인용한 것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는 엄밀히 말해서 유가사상을 존숭하는 이들이 말하는 ‘道不同, 不相爲謀(도불동, 불상위모)’의 원칙에 위배된다. 하지만 필자는 노자의 [도덕경]을 번역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노자와 공자 이 두 인물의 근본 사상에 적잖은 공통분모가 있음을 발견하였고, 그로 인해서 부득이하게 어떠한 개념을 설명할 때 유가전적에서 그 근거가 되는 문구들을 빌려온 것이니, 추후 노자와 공자의 공통분모와 차이점에 대해서는 다시 정리하여 소개할 예정이다.”

노자의 ‘도’는 ‘형이상학적 개념의 無爲自然(무위자연)의 도’가 아니라,
‘대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통치이념이다.

노자의 ‘도’는 ‘형이상학적 개념의 無爲自然(무위자연)의 도’가 아니라 ‘대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통치이념으로 봐야 한다.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과학적인 개념에서의 우주 대혼돈(카오스)이 아닌, 뒤섞임 즉 하늘과 땅과 사람과 동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상태를 ‘대동’이라고 일컬었다. 다시 말해서 노자는 ‘소강’을 추구하는 세태에 반대하여, 그보다 더 상위개념에 있는 ‘대동’으로 돌아가야 함을 주장한 것이다. 또한 대동 사회는 어떠한 말이나 제도 등의 명분화된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삼가고 노력하며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기에, 노자는 항상 ‘도’를 이야기 할 때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으며 말로 형용할 수 없기에 반대로 말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노자는 가장 오래된 이상주의를 꿈꾸던 사람이었고, 그의 [도덕경]은 가장 오래된 이상주의적 정치 이념 서적이었다.
아울러 노자가 周(주)나라 말기 즉 春秋時代(춘추시대) 초기의 인물이었던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그의 가치관을 분석하기 위해서 춘추시대 이전인 三皇五帝(삼황오제)와 夏(하) 商(상) 周(주) 三代(삼대)의 史實(사실)만을 뽑아 분석했음을 알려둔다. 특히 노자 사상의 궁극이 ‘대동’이기 때문에, 삼황오제의 기록에 대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각 章(장)의 문단 구분은 가급적 한 문장씩 끊어서 분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그 의미가 연결되어 분리하기가 용의치 않는 경우에는 하나의 문단으로 묶어 설명하였음을 밝혀둔다.

-나오는 글 중에서-

들뢰즈 관점에서 본 푸코와 노자의 권력 이미지 비교 연구

들뢰즈 관점에서 본 푸코와 노자의 권력 이미지 비교 연구

www.krf.or.kr/RAapp/ApplySubjectAdditonal_19_alone.jsi?...1...

◆ 과제번호 : A00068

연구요약문(한글)
연구목표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노마돌로지(nomadology)에서 드러나는 사유를 통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권력 개념과 노자(老子)의 권력 개념을 비교해 보는 것은 어떤 의의가 있을까? 이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들뢰즈의 사유가 두 사상가들에 의해서, 역으로 두 사상가들의 사유가 들뢰즈에 의해서 더욱 공고해 지고 새롭게 조명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들뢰즈를 통해 본 동양과 서양의 권력 이미지의 비교를 통해 양쪽의 권력 이미지를 한층 더 객관적으로 고찰할 수 있다는 점이며, 마지막으로 들뢰즈-푸코와 들뢰즈-노자, 그리고 들뢰즈의 푸코-들뢰즈의 노자 간의 비교를 통해 새로운 변용을 창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연구의 목표는 푸코와 노자 사상에 나타나는 권력 이미지를 들뢰즈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이 결과물을 통해 두 사상을 상호 비교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천 개의 고원』(A Thousand Plateaus)과 『의미의 논리』(The Logic of Sense)에서 “도(道)”와 “무위(無爲)”, 그리고 “선(禪)” 등 동양적 사상과 종교에 대해 상술하고, 『푸코』(Foucault)에서 푸코의 전반적인 사상들을 권력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하지만 이 세 사상가들을 함께 횡단하는 것은 실로 방대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사유를 구체적으로 포착한 후, 그것을 비교하고 분석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연구 수행임은 물론이다. 비록 동․서양의 문화적․사회적․정치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통시적인 측면에서 들뢰즈-푸코 사상과 노자 사상에 많은 이질성이 드러난다 할지라도, 우리는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측면에서 세 사상가에게서 포획할 수 있는 여러 공통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밀접한 근친성을 갖는 것이 바로 권력 개념이다. 더불어, 푸코와 노자의 권력 개념이 들뢰즈 철학에서 나오는 다양하고 난해한 개념들과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들뢰즈가 이 두 사상가의 권력 개념을 활용하여 자신의 사유를 한층 더 강화했다는 점은 상당히 놀랄만한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푸코와 노자 사상 속에서 권력 개념이 어떻게 규정되어 들뢰즈 사상과 어떤 면에서 동질성을 갖는 가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연구에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이러한 푸코와 노자의 권력 개념과 들뢰즈 사상의 연관성을 통해 두 사상가의 권력 개념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주된 목적이라고 하겠다. 첫째, 들뢰즈 관점에서 본 푸코의 권력 이미지를 규명하고, 둘째 들뢰즈 관점에서 본 노자의 권력 이미지를 탐사하며, 마지막으로 들뢰즈를 통해 본 푸코의 권력 이미지와 노자의 권력 이미지를 비교 분석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목적이다. 즉 들뢰즈 관점에서 두 사상가의 권력 개념을 분석함으로써 적절한 혼용과 그에 따른 변형과 창안을 시도하고, 또한 재해석된 두 결과물의 비교 분석함으로써 동․서양 사상을 다시 접속하여 새롭게 혼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목표이다.
기대효과1) 연구결과의 학문적, 사회적 기여도

들뢰즈 관점에서 본 푸코와 노자의 권력 이미지 비교 연구의 목적은 들뢰즈 사유를 통해 푸코의 권력 개념과 노자의 권력 개념을 분석하는 것이고, 나아가 이 권력 개념을 상호 비교하는 것이다. 이는 들뢰즈 사유를 공고히 할 뿐 만 아니라 푸코의 권력 개념을 변용시킬 수 있는 것이고, 또한 노자의 권력 개념을 재분석함으로써 들뢰즈의 사유 속에 드러나는 동양적 사유의 이미지를 권력 이미지 중심으로 강화시킬 수 있다. 나아가 두 결과물의 상호 비교함으로써 동․서양에서 공통된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권력 이미지를 도출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결과물들은 들뢰즈와 푸코, 그리고 노자를, 즉 동․서양을 횡단하면서 상호 간의 창조성의 정치학을 상정할 수 있는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이 학문적,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시대의 문화적 차이와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의 경계선을 횡단하여 인류 보편적이고 공동적인 사항들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 또한 각 시대와 문화의 차이를 긍정하고, 각 학문의 다양한 접속을 통해 분과 학문 간의 이해와 소통을 증진시키는 도구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최근에 한국에서 추진되는 인문학의 대중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다. 
둘째, 푸코와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 사상을 접목함으로써, 탈근대적인 들뢰즈와 푸코 철학을 더욱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서양적 사유를 통해 동양적 사유를 살펴봄으로써 동양적 사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실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권력이라는 요소를 탈근대적 사유로 풀이함으로써 대립과 투쟁의 권력이 아닌 상호 보완적이고 긍정적인 권력 개념을 도출할 수 있다. 이런 결과물의 확산을 통해,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넓히고 인문학적 상상력을 촉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시대와 지리․문화적 차이를 넘어서는 상호 비교 연구의 이론적 틀을 구상함으로써 다양한 후속 연구에 이론적 토대를 부여할 수 있음과 동시에 창의적인 후속 연구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또한 이번 결과물들은 동․서양 문화를 상호 비교했던 여러 학자의 연구와 비교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본 연구를 통하여 구성된 탈근대적 권력 개념은 문화를 보는 시각과 인식의 범위를 일반인들에게까지 높일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권력이 적용되는 실생활과 접목하여 전개함으로써 일반인들이 긍정적인 사회상을 만들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 번째, 들뢰즈와 푸코, 그리고 노자의 사유에 나타나는 체계적인 통일성을 통해 그들의 철학을 좀 더 쉽게 분석 가능할 것이다. 난해한 그들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들이 전개했던 여타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2) 대학교육과의 연계 활용 방안

연구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접속 방법들을 체계화하여, 이것을 교육 콘텐츠로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동․서양의 사유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그 내용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능력을 배양시키는 방법과, 나아가 새로운 결과물을 창출하는 과정 속에서 활용하는 방법이 적절한 교육 자료로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동․서양의 사유를 접속하여 새로운 창안물의 창출은 두 가지 관점에서 대학 교육과 연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 과정에서 필요한 사회과학적이고 인문학적인 분석과 비평 능력, 그리고 새롭고 창의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필요한 인문학적 상상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의 상호 비교 연구가 단순히 이질적인 차이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비교 대상을 혼용하는 것이므로, 이 연구를 위해서는 물론 객관적인 분석과 비평 능력과 상상력, 그리고 창조성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변용을 통한 창의적인 인문학적 콘텐츠 창출을 위해 인문학적인 객관적 분석과 비평 능력과 상상력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상호 비교 연구 속에서 도출되는 분석 능력과 창의 능력을 교육에 접목시킴으로써 학생들의 분석력과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요약푸코 사상 전반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기획은 동일자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이 말은 그 경계선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려는 힘과 권력이 있다는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그 경계선을 만들어내는 것은 동일자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이다. 문제는 이러한 권력이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이 보이지 않는 권력은 그 권력이 적용되는 대상을 교묘한 방식으로 객체화하는 권력이다. 이 권력이 제대로 행사되려면, 지속적이고 철저하며 어디에나 있고, 또한 모든 것을 가시적으로 만들면서 자신은 보이지 않는, 그러한 감시수단을 갖추어야 한다. 그 감시는 사회전체를 지각 대상으로 만드는 얼굴 없는 시선과 같아야 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권력은 푸코가 일생 동안 개진했던 권력 개념과 직접적인 상관성을 갖는다. 푸코는 공식적으로 권력으로 불렸던 국가권력과 주권과 같은 권력뿐만 아니라, 여태까지 권력의 형태로 이해되지 않았던 각종 관계에 권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령 부모-자식 관계, 선생-제자 관계, 의사-환자 관계 등 일반적으로 사랑을 핵심으로 이해했던 관계들을 권력으로 보여주었다. 나아가 그는 이와 같은 수많은 관계들을 권력이라 이름 붙임으로써 이들 관계들이 거대한 그물망을 이루며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푸코는 서구 사회의 온갖 좋은 이름으로 분리된 관계들을 권력으로 착색하여 전체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회 전체를 통해 분포되어 움직이고 있는 권력 관계의 전체적인 조감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감시와 처벌』(Surveillance and Punishment)은 권력이 인간과 신체를 어떻게 처벌하고 감시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효과적인 훈육 과정을 통해 근대적 인간의 모습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기술한 책이다. 
푸코와 마찬가지로 노자의 『도덕경』에서도 권력 개념을 포착할 수 있다. 『도덕경』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권력론의 의미를 해체시킨다. 이 점은 『도덕경』 전체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이야기된다. 일반적으로 노자의 권력에 대한 해체는 도덕적 권력론, 공리적(功利的) 권력론, 그리고 법제도를 포함한 물리적 권력론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된다. 물론 노자의 이러한 권력 비판 속에는 국가 권력의 최소화를 지향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도덕경』은 기존의 권력론에 대한 비판을 “도”와 “덕”을 통해 진술하면서 새로운 대안적인 사유와 이미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서 도경은 1장에서 37장을 차지하고 덕경은 38장에서 81장을 차지한다. 노자가 명시하는 “도”와 “덕”은 국가나 통치수단이 배제된 순수한 삶의 상태를 논하는 이론과 실천을 강조한다. 노자가 설명하는 “도”와 “덕”에 대한 이론과 실천은 기존의 국가나 통치수단을 배제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노자 사상은 국가 지배를 배제하고 지배와 통치로부터 스스로 탈주하여 새로운 삶과 사랑의 생명성을 찾고자하는 노마돌로지, 즉 지배와 억압에서 벗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생성적 삶과 사유를 실천하기 위하여 노마드의 삶과 사유의 방식을 살피는 것이라 부를 수 있다. 
푸코와 노자의 권력 개념 속에서 포획할 수 있는 공통점은 기존의 담론들과 제도들을 해체하여, 새롭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생산하는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코드화된 권력에 대항하는 주체의 능동성을 강조하면서 푸코가 개진하는 “외부의 사유”와, 권력의 지배와 억압에서 벗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생성적 삶과 사유를 실천하기 위해 노자가 강조하는 “무위를 통한 권력 존재 방식”이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푸코와 노자의 권력 개념과 들뢰즈 사상의 유사점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지식-권력(knowledge-power)”과 “생체-권력(bio-power)” 속에서 푸코가 강조하는 “외부의 사유”와 권력에 대한 탈중심화되고 탈영토화된 가능성을 강조하는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philosophy of difference)”이 상당한 연관성이 있고, 또한 기존의 권력 메커니즘 속에서 주어진 사회의 원리와 코드를 해체하는 흐름인 “무위를 통한 권력 존재 방식”과 인간 존재의 새로운 해방적 양식들을 창조하기 위해 권력적이고 압제적인 기존의 담론과 제도를 탈영토화를 강조하는 “창조성의 정치학”을 상호 연관 지을 수 있다. 더불어, 푸코의 “생산적인 권력”, “생체-권력에서의 능동적 주체”는 들뢰즈의 “욕망하는 기계(desiring machine)”와 다양한 개념들(배치, 다이어그램, 변조, 리좀, 되기 등)에서 설명되는 “노마드적 주체(nomadic subject)”와 유사하고, 노자의 권력 개념을 상술하기 위해 필요한 “도”와 “무위”, 그리고 “성인(聖人)”은 각각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body of organs)”와 “탈주선(line of flight)”, 그리고 “노마드적 주체”와 흡사하다.
한글키워드(Keyword)들뢰즈, 푸코, 노자, 권력, 기관 없는 신체, 탈주선, 노마드적 주체, 욕망하는 기계, 지식-권력, 생체-권력, 외부의 사유, 도, 무위, 성인, 노마돌로지, 배치, 다이어그램, 변조, 리좀, 되기, 창조성의 정치학, 차이, 탈근대, 『도덕경』, 미시물리학, 『푸코』, 『천개의 고원』, 『의미의 논리』
영문키워드(Keyword)Deleuze, Foucault, Laotzu, power, body of organs, line of flight, nomadic subject, desiring machine, knowledge-power, bio-power, thought of outside, tao, non-action, master, nomadology, assemblage, diagram, modulation, rhizome, becoming, politics of creativity, difference, post-modern, Tao Te Ching, microphysics, Foucault, A Thousand Plateaus, The Logic of Sense

임기응변의 힘, 신동준


임기응변의 힘 -어지러운 세상, 동양고전 3000년의 지혜를 권하다-

신동준, 2013


▣ 출판사서평

3000년 동양고전에서 발견한 
난세를 이기는 지혜, 임기응변

조조, 칭기즈칸, 당태종, 강희제, 마오쩌둥! 
천하를 얻었던 자들은 모두 임기응변의 신神이었다

난세(亂世)의 영웅이자 치세(治世)의 간웅인 조조는 난세와 치세에 필요한 처세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투에 임할 때마다 이전에 활용했던 전략은 다시 사용하지 않기로 유명했던 조조는 흐르는 물처럼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임기응변하는 전략으로 난세를 평정해갔다. 당태종 이세민 또한 자신의 대의를 펼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준비해가면서 자기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수 있는 피의 정변(현무문의 변)을 과감히 결행했다. 이후 그는 전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인 정관지치(貞觀之治)를 일구어냈다. 마오쩌둥 역시 위기 때마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고 ‘기사회생’의 묘수를 찾아내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장제쓰를 몰아내고 ‘신중화제국’의 창업주가 될 수 있었다.
이들 동양사의 굴곡 많은 영웅들의 이야기는 어지러운 세상, 즉 난세에 자신의 뜻을 어떻게 펼쳐냈는가에 대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 처세의 핵심에 ‘임기응변(臨機應變)’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임기응변’이라 하면 대개 소인배들의 얕은 처세술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동양고전에서 말하는 임기응변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움직임을 읽고 거기에 맞게 대처하는 난세의 핵심지략을 뜻한다. 
즉 임기응변이란, 천지자연의 끝없는 순환과 변화에 맞닥뜨린 상황에서 개개인이 최고의 지혜를 동원해 내린 결단을 이르는 말로서, 임기응변에는 반드시 인간의 지략이 개입돼 있다. 그렇기에 지식과 계책 없이 엉겁결에 만들어낸 방편으로 요행을 원하는 임시변통, 혹은 임시방편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난세의 방략인 것이다. 그런데도 적잖은 사람들이 임기응변을 임시변통 내지 임시방편과 혼용하고 있다.
이처럼 임기응변은 《주역》은 물론, 《손자병법》을 비롯한 역대 병서, 《한비자》와 《상군서》를 비롯한 법가서, 《관자》와 《사기》〈화식열전〉 등의 경제사상서가 난세를 다스리는 천하경영의 성패를 결정짓는 지략의 본질로 일컫던 말이었다.
21세기정경연구소 신동준 소장(정치학 박사)은 《임기응변의 힘》(아템포 펴냄)에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오늘날의 스마트혁명시대를 난세의 전형으로 정의하면서, 난세에 피어나 난세를 이기는 지혜로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동양고전 속 ‘임기응변의 도’를 소개하고 있다. 

천지자연은 늘 변하고 움직이면서 새로운 기회를 낳는다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에 올라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다

모든 것이 어지러워 기존의 해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바로 난세다. 기존의 생각과 틀에 안주하는 순간 추락하고 마는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난세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주역》의 변역(變易, 변화의 낌새를 눈치 채고 스스로 변화하다) 논리를 전제해야 한다. 천지만물은 천기(天機)·지기(地機)·인기(人機) 등 3기의 계기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거기에 대한 대응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는 결국 천지자연의 변화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공자는 《주역》〈계사전(繫辭傳)〉에서 ‘일을 할 때 시작부터 끝까지 두려운 마음으로 임하면 역도(易道)는 그로 하여금 재난을 면하게 한다’는 말로 변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근면한 자세로 스스로를 부단히 채찍질하며 정진하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자세다. 즉 《주역》을 관통하는 변역과 자강불식이 임기응변의 근본바탕인 셈이다. 결국 세상 흐름에 맞게 대응한다는 것은, 즉 임기응변을 한다는 것은 변화에 열려 있고, 변화를 인식하며, 변화를 타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함을 뜻한다. 
3기 중 ‘천기’는 세칭 ‘천기누설’에서처럼 ‘하늘의 기밀’ 등의 뜻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장자가 파악한 ‘삶을 지속시키는 근본’인 ‘생기(生機)’의 관점으로 천기를 읽어야 임기응변에 합당하다. ‘지기’는 가장 낮은 곳에서 생명의 터전을 떠받치고 있는 땅의 후덕함으로 이해해야 땅이 주는 변화의 이로움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람의 관계 이치인 ‘인기’는 부나방처럼 이익을 좇아 움직이는 인간의 본성 ‘호리지성(好利之性)’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살고자 하는 본능인 생기의 관점에서 때를 기다리고, 땅이 만물을 생육하는 것처럼 사안(事案)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며,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실력을 조용히 갈고 닦을 때 동양고전 3000년의 지혜가 말하는 임기응변의 도를 걸어갈 수 있다. 
저자는 《주역》을 비롯한 수많은 고전을 넘나들며 난세의 영웅들이 펼쳤던 임기응변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초패왕 항우(項羽)의 마지막 절규는 난세에 천하대세의 흐름을 읽고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는 임기응변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이는 하늘이 나를 멸망시키려는 것이지 내가 결코 싸움에 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항우는 하늘의 뜻을 운운하며 스스로 자만해 대세의 흐름을 놓쳤던 자신의 과오를 애써 감추고자 했다. 이것은 난세의 지략인 임기응변의 태도가 아니다. 임기응변의 길은 하늘이 아닌 사람의 뜻으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 작가 소개

저 : 신동준 
 
申東埈
학오學吾 신동준申東埈은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안목을 바탕으로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의 저서는 독자들에게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의 대가인 청명 임창순 선생 밑에서 사서삼경과 『춘추좌전』, 『조선왕조실록』 등의 고전을 배웠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조선일보》와 《한겨레》 등에서 10여 년 간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1994년에 다시 모교 박사과정에 들어가 동양정치사상을 전공했고, 이후 일본의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춘추전국시대 정치사상 비교연구』로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21세기정경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그는 서울대학교·고려대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에게 동양 3국의 역사문화와 정치사상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월간조선》, 《주간동아》, 《주간경향》, 《이코노믹리뷰》 등 다양한 매체에 꾸준히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조선일보》 주말판 경제섹션 <위클리비즈>의 인기 칼럼 ‘동양학 산책’을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후흑학』, 『사마천의 부자경제학』, 『조조 사람혁명』, 『팍스 시니카』, 『열국지 교양강의』, 『조선국왕 vs 중국황제』, 『인물로 읽는 중국 현대사』, 『삼국지, 군웅과 치도를 논하다』, 『춘추전국의 영웅들』(전3권), 『CEO의 삼국지』,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연산군을 위한 변명』, 역서 및 편저로는 『자치통감 삼국지』(전2권), 『춘추좌전』(전3권),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초한지』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들어가는 글 난세에는 난세의 논리가 있다 

1부 변역(變易), 흥망성쇠의 계기를 읽어야 한다

1장 천기(天機), 하늘의 변역 이치를 살펴라
자강불식, 스스로 부단히 채찍질하는 힘 · 임기응변의 묘리를 터득하라 · 
살고자 하는 힘은 강하다 · 하늘과 땅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대업을 이뤄야 한다 

2장 지기(地機), 땅의 생육 이치를 통찰하라
땅처럼, 후덕을 베풀어라 · 죽음의 땅에서도 능히 살아날 수 있다 · 배수진의 힘 · 
천문지리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다 

3장 인기(人機), 사람의 관계 이치를 터득하라 
사람의 관계는 먹고 입는 데서 출발한다 ·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나은 계책은 없다

2부. 임기臨機, 누구에게나 결정적인 계기가 온다

1장 시기(時機), 철저히 대비하며 때를 기다린다
시기를 놓치지 마라 · 시기가 올 때까지 참고 또 참아야 한다 · 
인내, 달빛 아래에서 은밀히 실력을 기르는 시간 

2장 사기(事機), 사안이 무르익었을 때 신속히 움직여라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기회는 없다 · 멀리 내다보는 지혜 · 움직일 때는 신속하게 

3장 심기(心機), 마음의 자세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심기가 바로 서야 한다 · 상대의 심기를 흩뜨리는 법 · 심기일전, 승기를 잡는 내면의 힘

3부. 응변(應變),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

1장 세기(勢機), 염량세태 속에서 세를 확장하라 
안목이 힘이다 · 명리에 초연하기 ·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너그럽게 · 
부하를 자식처럼 아껴라 

2장 전기(轉機), 이기는 계기는 스스로 만들 수 있다 
대천명은 진인사의 결과일 뿐 · 식견을 키워야 안목이 생긴다 · 
과오를 적게 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 ·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계책이 필요하다 ·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3장 승기(乘機), 이기는 계기에 재빨리 올라타다
무임승차의 위험을 기억하라 · 신뢰가 쌓여야 설득할 수 있다 · 파죽지세 하라! 

4장 결기(決機), 결단 앞에서 절대 머뭇거리지 마라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해야 한다 · 체면에 얽매이지 마라 · 위기일수록 더욱 속히 결단하라

5장 투기(投機), 하나의 표적에 온 힘을 쏟아부어라
절대로 힘을 분산시키지 마라 · 단순함의 힘 · ‘파탈의 미학’을 터득하라

나가는 글 임기응변, 스마트혁명시대를 위한 동양고전 3000년의 지혜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