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다시보기(5): 우리는 공자를 알고 있는가? [1]
1. 대동과 에덴, 그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먼저 동양과 서양의 태초에 관련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동양: 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복희씨와 여와씨가 인류를 만든 이래, 삼황오제는 네 것과 내 것을 구별하지 않고 조화롭게 사는 대동(大同)사회라는 태평성대를 구가해왔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백성들이 네 것과 내 것을 구별하는 이기주의가 도래하자, 하(夏)나라 우(禹)임금과 상(商)나라 탕(湯)임금, 주(周)나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성왕(成王) 그리고 주공(周公) 여섯 군자들은 규율을 정하여 먼저 자신들이 솔선수범하고 나아가 백성들을 통제하기 시작했으니, 이것이 바로 소강(小康)사회의 시작이다.
서양: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아무런 걱정 없이 에덴의 동산에서 살게 했다. 이 두 남녀는 아무런 걱정 없이 살고 있었지만, 사악한 뱀의 꾐에 넘어간 이브가 선악과를 먹게 되고 또 그것을 아담에게도 먹도록 권유했으니, 이에 하나님이 노하여 아담과 이브를 에덴의 동산에서 쫓아냈다. 그때부터 인류는 선악을 구별하게 되어 분노와 슬픔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야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律法)을 따름으로써 인류는 구원의 길을 얻게 되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사유과정을 비교하노라면 참으로 소름 끼치도록 닮은 구석이 많다. 그렇다면 춘추시대라는 엄청난 혼란기를 살아가던 공자에게 있어서, 대동은 과연 어떠한 존재로 다가왔을까?
(우 임금이) 밖으로 나가다가 죄인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묻고는 울며 말했다: “요순시절의 사람들은, 요순임금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았는데, 과인이 임금이 되고는, 백성들 각자 그들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으니, 과인이 그것을 애석히 여긴다.” [十八史略(십팔사략)] <夏王朝篇(하왕조편)>
정말로 그간의 주장대로, 공자는 진정 대동사회로의 복귀를 주장했을까? 아니면 대동을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영원한 이상향 즉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으로 남겨두고, 현실적으로 회복 가능한 차선의 선택 즉 규율을 만들어서 먼저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고 나아가 그것으로 백성들을 통제하는 소강사회를 주장했을까? 이미 앞에서 누차 설명한 바대로, 공자는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예악(禮樂)제도와 인(仁), 의(義)를 따라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따라서 공자가 대동사회로의 복귀를 외쳤다는 것은 사실상 편협한, 아니 엄밀히 말해서 대단히 잘못된 시각인 것이다.
2. 성인(聖人)과 군자(君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왜 [논어] 등에서 끊임없이 요순시대의 대동을 언급하고 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의 기록을 다시 한 번 개략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전문(全文)은 공자 다시보기 1편을 참고하기로 한다.
큰 도가 실행될 때와 하(夏) 상(商) 주(周) 삼대의 훌륭한 인물들이 정치를 하던 때는, 내가 그 시절에 미칠 수는 없으나 기록이 남아있어 알 수 있다. 큰 도(大道)가 실행되던 때는, 세상이 공천하(公天下)였으니, 어질고 재능 있는 이들을 선발하고, 신용을 중시하며 화목함을 갖췄다. (생략) 이를 대동이라고 일컫는다.
오늘날에는 큰 도가 사라졌으니, 세상이 가천하(家天下)가 되었다. 각각 자신의 어버이만이 어버이가 되고, 자신의 자식만이 자식이 되었으며, 재물과 힘은 자신을 위해 썼다. (생략) 하(夏)나라 우(禹)임금과 상(商)나라 탕(湯)임금, 주(周)나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성왕(成王) 그리고 주공(周公)은 이러한 예의로 시비를 구별하였다. 이 여섯 군자(君子)들은 예의에 삼가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그럼으로써 그 의로움을 분명히 하고, 그 신의를 깊이 헤아렸으며, 허물을 드러내고, 형벌과 어질음을 꾀하고 꾸짖어, 백성들에게 항상 그러함을 보여주었다. 만약 이를 따르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권세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물리쳐 대중들이 재앙으로 삼았다. 이를 일컬어 소강이라고 한다. [예기(禮記)] <예운(禮運)>
공자는 정치를 담당하는 지도자를 대동사회의 지도자인 성인(聖人)과 소강사회의 지도자인 군자(君子) 그리고 실무담당 전문가인 그릇(기: 器)로 분류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성인이나 군자와 같은 지도자는 덕(德)을 행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는데 주력해야 하는 반면, 실무담당 전문가는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 능력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성인과 군자를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성인은 태초부터 존재했으므로 어느 누구한테도 배우지 않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도(道)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몸에 받아들여 실천한 대동사회의 지도자인 반면, 군자는 비록 성인과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이해하고 실천한 인물은 아니지만, 옛 성인의 도를 온전하게 배우고 부단히 노력하여 실천한 소강사회의 지도자를 일컫는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한 가지 공자의 시대적 한계점을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공자는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신분을 선비(사: 士) 이상으로 규정함으로써 종법제도(宗法制度)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종법제도는 공자가 가장 존경한 인물이자 노나라의 시조(始祖)인 주공(周公)이 최종 완성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영향력을 벋어나지 못했던 결과이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공자의 도(道)는 태평성대를 이끈 옛 성현들의 통치이념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는데, 이제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진실함은 하늘의 도이고, 진실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진실한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중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얻게 되어, 차분하게 도에 들어맞는 것이니, 성인이다.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선을 가리어 굳게 잡는 것이다. [禮記(예기)] <中庸(중용)>
이는 도라는 것이 바로 진실함에 있는데, 진실함이란 스스로 진실한 것과 또 진실하게 하는 두 가지의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 즉 하늘의 도는 억지로 작위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게 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순리임에 반해서, 사람의 도는 노력하고 절제하여 작위(作爲)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공자는 도를 다시 하늘의 도인 천도(天道)와 사람의 도인 인도(人道)로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이와 관련하여 또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공자가 애공를 모시고 앉았다. 애공이 말하길: “감히 묻습니다. 사람의 도는 누구를 큰 것으로 여기오?” 공자가 엄정하게 낯빛을 고치고는 대답하여 이르길: “임금께서 이 말씀에 이르신 것은 백성들의 덕입니다. 진실로 신은 감히 사양치 않고 대답하겠습니다. 사람의 도는 정치를 큰 것으로 여깁니다.” (애)공이 말하기를: “감히 묻겠는데 어떤 것이 정치를 한다고 일컫는 것이오?” 공자가 대답하여 이르길: “정치는, 바로잡는 것입니다. 임금이 바르게 하면, 곧 백성들이 정치에 따릅니다. 임금의 행하는 바는, 백성들의 따르는 바입니다. [禮記(예기)] <哀公問(애공문)>
다시 말해서, 인도(人道)란 “바로잡는 것”이니 바로 예악제도로 절제하고 통제하는 소강사회의 통치이념을 뜻하는 반면, 천도(天道)는 “스스로 그러한 것”이니 하늘이 부여한 천성에 따르는 대동사회의 통치이념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도 공자는 당시 춘추시대라는 혼란기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데 있어서, 대동이 아닌 인의(仁義)와 예악제도(禮樂制度)를 강조하는 소강사회로의 복귀를 외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논어]에서도 언급되듯이 공자는 “하늘”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그 이유를 이제 막연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와 관련하여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를 살펴보면, 공자는 성인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반해서, 군자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자는 성인의 대동 사회를 그리워하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교육목표를 “군자 양성”에 둠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임금을 보필하게 하고 나아가 백성들과 나라를 안정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 한 번 더 강조하자면, 공자는 선비(사: 士) 이상의 젊은이만을 제자로 받아들이는데, 이는 물론 종법제도 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시대적 한계이다.
이제 여기서 대동사회와 소강사회의 도에 대해서 정리해보기로 하자. 대동사회는 어느 누구한테도 배우지 않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도(道)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몸에 받아들여 실천한 성인들이 통치한 국가형태를 일컫는다. 따라서 성인들의 도(道)인 대동의 통치이념에는 강함과 부드러움을 조화롭게 실천하는 덕(德),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게 판단하는 중(中), 선(善)한 것만 택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을 포용하여 함께 이끌고 가려는 상생과 공생의 화(和), 지도자가 솔선수범하여 희귀한 것을 탐내지 않는 검소함(검: 儉), 따듯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자애로움(자: 慈) 그리고 감히 백성들의 앞이나 위에 서서 군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밑에 처하며 백성들의 뜻을 지도자의 뜻으로 삼으려고 하는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의 겸손함(겸: 謙)이 그 구성요소들로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자세로 통치하면 그 궁극의 이상향인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동사회의 도와 그 구성요소들에 대해서는 사실상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대단히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보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필자의 노자 [도덕경] 해설서들을 참고할 수 있다.
반면 소강사회는 비록 성인과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이해하고 실천한 인물은 아니지만 옛 성인의 도를 온전하게 배우고 부단히 노력하여 실천한 군자들이 통치한 국가형태를 일컫는다. 따라서 군자의 도(道)인 소강의 통치이념은 원칙적으로 상술한 대동사회의 통치이념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따르는데, 바로 여기서 대동과 소강의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으니, 소강의 통치이념은 기본적으로 대동의 통치이념을 그대로 흡수하여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백성들의 마음에 이미 이기주의가 깊숙이 자리 잡기 시작한 시대에, 이러한 원칙적인 대동의 통치이념만으로는 백성들과 나라를 안정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 진실한” 대동의 통치이념에 나아가 “진실하게 하는” 노력과 절제의 작위(作爲)인 사람의 도를 더해야 만이 백성들과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의 도를 이루는 핵심 구성요소가 다름 아닌 어질음의 인(仁)과 의로움의 의(義) 그리고 예(禮)와 악(樂)의 제도인 것이다.
공자는 성인이 통치하는 대동사회를 꿈꿨고, 또 자신의 뜻이 좌절될 때마다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 그러한 대동을 그리워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춘추시대와 같은 혼란스러운 난세에서 대동은 그저 어디까지나 이상향일 뿐, 다시(혹은 당장) 회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공자는 춘추시대와 같은 난세의 상황에서는 소강사회로의 복귀가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대동의 사회라는 것은 우선 소강사회를 회복하고 나서 다시 고려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다음 회부터는 공자의 궁극 즉 소강사회의 통치이념인 도(道)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고전 다시읽기] Aporia Reivew of Books, Vol.2, No.1, 2014년 1월, 안성재, 인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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