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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3일 토요일

천하체계 - 바깥 세계가 없는 천하

중국, 중국인 (9): 바깥 세계가 없는 천하?
 글쓴이 :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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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인 (9): 바깥 세계가 없는 천하?

1.
지금의 세계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혼란 속에 빠져 있다. 시쳇말로 우리는 여전히 난세에 살고 있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세계는 결코 우리가 상상하고 갈망했던 것처럼 그렇게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비록 역대 현인——중국이든 외국이든 간에——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더욱 아름다운 신세계를 만들고자 하였고, 모든 세계인들이 보다 나은 세계에서 살기를 갈구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오팅양(赵汀阳)이 말하는 “불량세계”에 살고 있다. 

자오팅양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처한 불량세계의 연원은 현대 유럽이 세운 민족국가체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족국가체계 속에서 “국가는 이미 가장 큰 정치 단위가 되었고, 세계는 단지 지리적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도시국가이든 제국이든 혹은 민족/국가이든 간에 모두 ‘국가’의 이념을 내포할 뿐, 거기에 ‘세계’의 이념은 없다.”  이러한 체계의 정신에 따르면, 내치 이론이 중심이 되며, 국제 정치 이론은 부수적인 것이 된다. “내치 이론의 종지는 사회 통치에 관한 합작의 사상인데, 국제 정치 이론에 이르러서는 피아 문제에 관한 투쟁의 철학으로 변하였다.” 바꿔 말하면, 국가 내부의 질서와 국가 간의 무질서인 셈이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홉스적인 의미의 자연상태에 놓여있다.  주권국가들로 구성된 세계에서는 “오늘날 세계의 가장 큰 정치적 난제, 즉 총체적 무질서의 세계, 정치의 의미가 없는 세계, 오직 폭력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를 해결할 길이 없다. 

따라서 자오팅양은 “서방 정치 철학이 이끄는 세계는 필연적으로 난세일 수 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그 원인으로 서방 정치 철학이 시종일관 민족국가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며, 세계로써 세계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천하질서(天下秩序)》(2005년 초판)에서 《불량세계 연구(坏世界研究)》(2009년), 그리고 다시 《모두의 정치(每个人的政治)》(2010년)에 이르기까지 자오팅양은 줄곧 “어떻게 이 불량세계에 대처할 것인가”의 질문을 탐색한다. 이러한 탐색의 과정에서 그가 일관되게 논증하고 “힘주어 추천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바로 중국의 천하질서이다. 철학적 측면에서 중국의 천하체계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 형태이고, 현 세계의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유효한 제도라는 것, 자오팅양은 이러한 부분을 논증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성실한 중국학자라 할 수 있으며, 또한 그의 논변은 많은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
자오팅양의 천하체계에 대한 논의는 비록 주대(周代)의 제도를 상세히 밝히는 것을 중심으로 하지만, 그는 또한 그의 천하체계가 온전히 경전의 내용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며, 보다 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해석을 담아내고 있음을 긍정한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중국적 의미의 천하는 세 가지 의미가 하나로 묶인 개념이다. 첫째는 지리학적 의미에서의 천하로 하늘 아래의 온 세상을 가리키며,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전체 세계에 해당한다.” 둘째는 심리학적 의미에서의 천하, 바로 “민심”으로, “대지 위에서 생활하는 모든 인간의 마음”을 가리킨다. 셋째는 정치학적 의미에서의 천하로 “일종의 가족적 세계와 같은 이상 혹은 유토피아(四海一家)”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중국의 천하체계는 물리적인 세계, 심리적인 세계, 그리고 정치적인 세계의 통일체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천하체계는 어떻게 불량세계에 대처할 수 있을까? 혹은 현재 세계의 가장 큰 정치적 난제인 국가간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자오팅양의 논술에 따르면 우선 중국의 천하질서는 보다 거시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천하 질서는 “세계로써 세계를 헤아리는” 정신을 계승하며, “국가로 세계를 가늠하는” 서방의 원칙과는 다르다. 이러한 정신은 근본적으로 노자의 “천하로 천하를 본다”는 입장과, “천하는 천하 사람들의 천하”라는 흉회를 체현한 것이다.  다음으로 천하는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므로, 중국의 정치적 특색을 체현한 천하질서는 평화와 협력 쪽으로 기울고, “정복과 지배”에 치우친 서방의 정치와는 다르다. “만국화합”의 종지를 계승할 때, 모든 국가는 천하체계 속에서 협력의 대상이지, 전쟁이나 약탈의 대상이 아니다.  다시 말해, 서방은 충돌과 정복의 측면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중국은 협력과 공존의 측면에서 천하를 본다. 

자오팅양은 이 문제에 있어서 수 차례 슈미트의 정치 개념을 예로 들어 서방 정치학에서 타자와 반대 세력을 적으로 간주하는 근본정신을 설명한다. 그는 이에 근거하여 서방 정치에서 국가체계의 근본이 피아를 구분하는데 있다고, 보다 명확히 말해 적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심지어는 적을 만들어 내는 데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중국 정치에서 천하체계의 근본은 적이 동지로 화(化)하고, 타자가 자기로 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화(化)”의 뿌리는 감화와 끌림에 있지 정복과 지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자오팅양은 이로부터 ‘바깥없는 천하[天下無外]’라는 천하체계의 근본 원칙을 논증한다. 이러한 바깥 없음의 원칙은 대략 세 가지 중첩된 의미를 포괄한다. 첫째로는 바깥 없는 사상이다. 바깥 없는 사상은 “영원히 타인의 이익을 고려에 넣는 것”으로, 따라서 절대적인 반대세력과 적으로서의 타자가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공간적으로 볼 때, 천하는 끝없이 광활하여 그 자체에 안과 바깥의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사해가 하나의 가족인 이상 “오직 내부만 있을 뿐, 양립할 수 없는 외부란 없으며, 내재적인 구조 안에서의 원근친소 관계만이 있을 뿐이다.”  끝으로 바깥 없는 천하는 이러한 정치와 문화 상의 포용을 통해 “천하의 공적인 사건에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정하는 어떠한 차별적 혹은 배타적 원칙도 존재하지 않으며, 천하의 정치적 권리와 문화적 자주권이 세계의 여하한 민족에게 모두 열려 있는 것을 의미한다.”  

자오팅양은 일정 정도 중국 정치의 정신이 체현된 천하체계를 태평성대에 이를 수 있는 “왕(王)”도로 간주하고 있으며, 힘에 의존하는 현대 세계의 “패(覇)”업을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이 점에서 자오팅양은 깐춘송(干春松)과 마찬가지로, 중국 고대의 왕도와 패도 사이의 논쟁을 통해 중-서 정치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를 분석한다. 

3.
자오팅양은 그가 천하체계를 말하는 주된 목적이 경전의 내용을 밝히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며, 미래를 전망하는 것에 주목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여러 비평가들이 지적한 것과 같이, 중-서 경전에 대한 자오팅양의 독해는 육경으로 자신을 주해하는[六经注我]  성격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으며, 때때로 편파성과 성급함에서 초래된 잘못들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관건이 되는 천하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자오팅양의 논술은 분명 어느 정도 자신만의 독창성 또한 보여준다. 

그러나 자오팅양의 논술 가운데 천하는 일정한 의미에서 무한히 확장되는 세계이지만, 이에 대한 충분한 논증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의 학자 와타나베 신이치로(渡辺信一郎)의 연구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연구는 역사적 문헌 자료에 얽매여 있기는 하지만, 천하 개념의 변천을 착실하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천하를 이해하는 두 갈래의 길을 짚어내는데, 하나는 천하를 중국으로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하를 제국적인 의미에서 세계로 이해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무한히 확장되는 세계로서의 천하 개념을 부정하면서, “천하, 특히 진한대 통일국가 이래의 천하는 왕조가 호적, 문서, 군현제를 통해 실제로 지배했던 유한한 영역이고, 때때로 왕조의 확장기에는 오랑캐 또한 내부로 포섭하였다”는 사실을 적시한다. 의미있는 보완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지적해야할 부분은서방 정치 사상가에 대한 자오팅양의 해석이 상당히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는 비록 슈미트의 정치적 개념 가운데 “사적인 원수”가 아닌 “공적인 적”이라는 의미에서 내려지는 '적'의 정의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만, 그가 여러 차례 슈미트의 '적' 개념을 “절대적인 적”의 개념으로 포괄한 것은 분명 오류다. 슈미트의 논술에 따르면 유럽의 공법에서 고전적인 의미의 적은 확실히 공적인 적이고 사적인 원수가 아니다. 이와 구별되는 것으로 또한 파당 이론에서 말하는 '실제적인 적'과 계급 충돌의 의미에서 '절대적인 적'이 있다. 여기에서 자오팅양은 슈미트가 서술한 전통적인 적의 개념과 절대적인 적의 개념을 혼용하고 있다. 또한 천하질서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로 간주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자오팅양의 논술에는 일정 정도 모호한 측면이 있다. 그의 논술에서 천하체계는 가장 좋은 정치체계이며, 하나의 이상이자 유토피아다. 한편으로 자오팅양은 이 유토피아를 “실현 불가능하지 않은 것”이고 “미래의 이상”으로 본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또한 플라톤의 이데아적인 의미에서 유토피아를 의미하며, “이데아의 의의는 실현에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이 얼마나 엉망인지, 현실과 이상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알게 하는 것에 있다.” 는 점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자오팅양은 한편으로 현대 계몽주의로부터 마르크스가 묘사한 미래의 유토피아에 이르는 국가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플라톤의 이데아적 의미에서 완벽한 표준과 척도의 초경험적 유토피아 정신을 결합하려고 한다.

어찌되었든 간에 자오팅양이 밝힌 천하체계는 분명 현대 서방이 건립한 세계 질서에 대해 하나의 도전과 대안적 사유를 제기한 것이다. 자오팅양은 천하질서체계로써 여전히 현재 세계를 주재하고 있는 민족국가체계를 대체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중국이 세계의 무대로 다시 돌아오는 데에 가장 완벽한 이론적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을 제기한다. 물론 중국이 세계의 무대로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중국이 일찍이 세계무대를 떠났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며, 중국이 새롭게 세계의 초점으로 다시금 떠오른다는 말이다. 민족국가체계에서 중국은 여전히 발전 중인 국가이며, 다시 말해 아직 완전한 의미에서 현대 국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근현대 역사 발전 과정을 통틀어 중국은 내내 완전한 의미의 현대 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중국 고대의 사람들과 같이 천하의 관점에서 천하를 보려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다. 자오팅양의 천하질서에 대한 서술은 확실히 중국이 새로이 천하의 대세와 세계질서를 사유하는 데에 하나의 내생적인 이론의 지지대를 제공한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발원한 이론이면서, 또한 미래를 전망하는 새로운 이론이다.

<참고문헌>
赵汀阳:《天下体系:世界制度哲学导论》,北京:中国人民大学出版社,2011年。
赵汀阳:《坏世界研究:作为第一哲学的政治哲学》,北京:中国人民大学出版社,2009年。
赵汀阳:《每个人的政治》,北京:社会科学文献出版社,2010年。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중국인]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4, 2014년 5월, 천지앤홍(陈建洪), 중국 난카이 대학(南开大学) 철학과 교수; 이수현 옮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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