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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0일 금요일

덕치, 인치, 법치 노자, 공자, 한비자의 정치 사상



  덕치, 인치, 법치 노자, 공자, 한비자의 정치 사상 
   철학의 부재시대에서 바라 본 우리몸에 맞는 정치철학찾기
  저자/역자신동준 저
  발간일2003년 8월 14일
  가격20,000 원 →회원할인가 18,000 원
  분류연구총서 | 도가/제자철학
  포인트900점


철학이 없어진 현재, 우리 몸에 맞는 정치철학은 없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답하면서 동양의 철학을 정치철학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리의 사상 속에서 발견한 우리 몸에 맞는 정치철학이 깊게 담겨 있는 책이다. 

판형:신국판 | 쪽수:488쪽 

정치철학의 부재 시대, 우리 몸에 맞는 우리의 정치철학은 없는가 ?

동양의 철학을 정치사상으로 해석한 책이 나왔다. {덕치, 인치, 법치} 노자와 공자, 한비자의 사상을 정치사상의 측면에서 접근한 이 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동양의 전통적 정치사상에 대한 단편적인 언급들은 있었지만 이 책처럼 전격적으로 정치사상에 관한 부분만을 다룬 경우는 처음이다.
일반적으로 동양의 전통사상은 현실성이 결여된 형이상학적 담론으로 이해되어 왔다. 법가의 사상이야 원래 현실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겠지만 유가와 도가, 특히 도가의 사상은 현실을 떠난 고원한 담론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책은 동양의 전통사상들이 형이상학적 담론으로 이해되는 현실을 거부한다. 이 책에서는 노자와 공자, 한비자를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정치의 실현을 위해 진력했던 정치사상가로 이해하고 그들의 철학을 현실과는 결코 유리될 수 없는 입세간의 정치사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흔히 정치학이라고 하면 근대 이후의 서양 이론을 떠올리곤 한다. 실제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전통사상 가운데 정치학 이론으로 연구된 분야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우리의 정치는 구미 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고 있고, 정치학 이론 역시 서양의 이론들 일색이다. 그러나 맞지 않은 옷을 몸에 걸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정치 현실은 엉거주춤하다. 현재 채택하고 있는 우리 정치 체제의 뿌리가 얕은 까닭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일제치하의 고통, 분단과 전쟁, 연이은 독재를 겪으며 수많은 멍울을 감추고 있다. 그 상처의 일차적인 원인은 무엇보다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확장과 침략에 있을 것이다. 아편전쟁 이후 동아시아 3국에 몰아닥친 제국주의의 광풍은 전통적인 삶의 조건들을 빠르게 변화시켰는데, 그 과정은 매우 폭력적이었다. 정치 분야에 있어서는 기존의 제왕정이 공화정으로 바뀌었지만 짧은 순간에 서양의 정치 체제가 정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뿌리가 얕은 정치 체제가 그것에 의지하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뒤흔들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서양의 정치철학은 이미 그 한계를 드러내었다. 현실 정치의 암울함을 정치 담당자들의 사람됨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폐해가 너무 오래되고 심각하다.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동양의 전통사상에 뿌리를 둔 '통치학'을 역설한다. 저자가 역설하는 통치학은 도가, 유가, 법가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는 새로운 정치사상이다. 이들 사상 가운데 저자는 특히 노자의 사상에 주목한다. 노자는 인간 사회에 발생하는 모든 폐단의 원인을 '과잉된 인위'에서 찾고 절욕과 절제를 주장하였다. 비록 2천 년 이상의 시간상의 갭이 있지만, 과잉된 인위로 인해 갈등과 분열이 만연한 지금 노자의 사상은 한계에 봉착한 서양 정치사상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상가들의 면모는 다양하다. 저자는 우선 동양 정치사상의 출발점을 관중으로 잡고, 그를 기준으로 도가와 유가, 법가의 정치사상을 분석하고 있다. 도가의 사상가는 노자에 한정되는데, 노자와 더불어 도가 사상의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장자의 경우는 출세간적 성향이 너무나 강해 정치사상 분야에서는 언급할 만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가 사상가는 공자를 중심으로 맹자와 순자를 병행해서 살펴보고 있다. 맹자와 순자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공자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정치사상적 성과들을 일구어냈기 때문이다. 이밖에 법가의 사상가는 자료상의 제약으로 인해 한비자만을 다루고 다른 사상가들은 거의 언급하지 못하였다.

공화정이냐 제왕정이냐, 민주주의냐 사회주의냐, 이런 것들만이 정치학의 전부는 아니다. 이 책은 도가, 유가, 법가의 정치사상을 치본론과 치도론, 치술론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있다. 치본론은 통치의 본질에 관한 논의라 할 수 있고, 치도론과 치술론은 각각 통치목적론과 통치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기준 속에서 저자는 전통사상에 대한 정치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저자의 시도 가운데 특징적인 면을 든다면 무엇보다도 이것이 정치학적 해석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공자의 적통을 맹자가 아닌 순자에게로 연결시키고, 노자의 사상은 장자에 이르러 결정적으로 왜곡되었다고 단정한다. 또한 관중과 한비자를 전통사상의 핵심 영역 속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러한 해석들이 가능한 것은 그것이 모두 철학적 접근이 아닌 정치학적 접근이기 때문이다.



신동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정치학)를 취득하였다.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일본 東京大學 東洋文化硏究所의 객원연구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대표 저술로는 『통치보감』,『관중과 제환공』,『치도와 망도』,『역사대장정』,『난세를 평정하는 중국 통치학』등이 있다.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신동준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신동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07월 20일 출간

책소개

손자를 벼린 조조의 성공 지략으로 나만의 ‘대물’을 꿈꿔라!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대여대취』.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 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인 저자 신동준이 조조의《손자약해》를 바탕으로 대여대취 정신을 ‘지금 당장’의 현리 가치로 쉽게 풀어냈다. 저자는 삼국시대 당시 천하통일 기반을 닦은 조조는 도가와 법가 사상에 입각해《손자병법》을 새롭게 편제하고 주석을 가했던 바, 《손자병법》은 반드시 조조 시각에서 접근해야 그 취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조조의 지혜가 담긴《손자병법》으로, 임기응변으로 주도권을 쥐는 방법부터 적과 나의 실력을 알고 싸우는 법, 지략이 뛰어난 자를 활용하는 법 등 ‘크게 주고 크게 얻는’ 비결들을 알려준다.

북소믈리에 한마디!

이 책은 제왕을 위시해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손자병법》의 내용을 조조의 시각으로 새롭게 재구성하여 담아낸 책이다. 다양한 전략과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비즈니스의 아이디어를 얻고, 사람을 깊이 읽는 안목을 얻고, 치국평천하의 방략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저자소개

저자 : 신동준

신동준저자 신동준은 학오學吾 신동준申東埈은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안목을 바탕으로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의 저서는 독자들에게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의 대가인 청명 임창순 선생 밑에서 사서삼경과 『춘추좌전』, 『조선왕조실록』 등의 고전을 배웠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조선일보》와 《한겨레》 등에서 10여 년 간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1994년에 다시 모교 박사과정에 들어가 동양정치사상을 전공했고, 이후 일본의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춘추전국시대 정치사상 비교연구』로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21세기정경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그는 서울대학교·고려대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에게 동양 3국의 역사문화와 정치사상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월간조선》, 《주간동아》, 《주간경향》, 《이코노믹리뷰》 등 다양한 매체에 꾸준히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조선일보》 주말판 경제섹션 〈위클리비즈〉의 인기 칼럼 ‘동양학 산책’을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후흑학』, 『사마천의 부자경제학』, 『조조 사람혁명』, 『팍스 시니카』, 『열국지 교양강의』, 『조선국왕 vs 중국황제』, 『인물로 읽는 중국 현대사』, 『삼국지, 군웅과 치도를 논하다』, 『춘추전국의 영웅들』(전3권), 『CEO의 삼국지』,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연산군을 위한 변명』, 역서 및 편저로는 『자치통감 삼국지』(전2권), 『춘추좌전』(전3권),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초한지』 등이 있다.

목차

서문 ­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005
서설 ­ 조조의 『손자약해』 014

제1장 인리제권因利制權 임기응변으로 주도권을 쥐어라 [대계大計]
국가 존망을 생각하라 · 025 | 전쟁 이치를 파악하라 · 027 | 천지운행을 이해하라 · 029 | 냉철히 비교 분석하라 · 032 | 적의 예상을 깨라 · 036 | 이길 조건을 갖춰라 · 040

제2장 병귀신속兵貴神速 패할 때도 속전속결로 끝내라 [작전作戰]
비용을 생각하라 · 047 | 오래 끌지 말라 · 051 | 현지서 조달하라 · 059 | 민폐를 줄여라 · 062 | 내 것으로 만들라 · 065 | 속전속결을 행하라 · 069

제3장 지피지기知彼知己 적과 나의 실력을 알고 싸워라 [모공謀攻]
싸우지 말고 이겨라 · 075 | 유혈전을 피하라 · 086 | 유연하게 생각하라 · 089 | 양장을 선발하라 · 093 | 맡겼으면 믿어라 · 095 | 자신부터 돌아보라 · 101

제4장 가승재적可勝在敵 승리는 적에게 달려 있다 [군형軍形]
공격처럼 수비하라 · 109 | 패하지 않는 싸움을 하라 · 112 | 내부를 바르게 하라 · 116 | 인재를 길러라 · 119

제5장 기정상생奇正相生 기병과 정병을 뒤섞어 운용하라 [병세兵勢]
기병을 활용하라 · 125 | 절도를 갖춰라 · 133 | 미끼로 유인하라 · 139 | 전세를 장악하라 · 142

제6장 피실격허避實擊虛 실한 곳을 피하고 허한 곳을 쳐라 [허실虛實]
고정된 상식을 깨라 · 149 | 재빨리 치고 빠져라 · 152 | 힘을 집중시켜라 · 156 | 자취를 감춰라 · 161

제7장 병이사립兵以詐立 용병은 적을 속이는데서 시작한다 [군쟁軍爭]
돌아가듯 직진하라 · 173 | 능력껏 짐을 져라 · 177 | 유리할 때 움직여라 · 182 | 상대를 흔들어라 · 186 | 퇴로를 열어 주어라 · 191

제8장 필사가살必死可殺 죽기로 싸울 것을 고집하면 패한다 [구변九變]
현장에서 대처하라 · 201 | 군명을 거부하라 · 209 | 유사시를 대비하라 · 218 | 자신을 경계하라 · 223

제9장 병비익다兵非益多 병력이 많다고 꼭 좋은 게 아니다 [행군行軍]
알고 움직여라 · 235 | 발밑을 조심하라 · 238 | 조짐을 읽어라 · 244 | 문무를 겸전하라 · 252

제10장 지천지지知天知地 천시와 지리까지 읽어야 이긴다 [지형地形]
현지 전술을 구사하라 · 265 | 내부부터 단속하라 · 272 | 백성을 보호하라 · 277 | 자식처럼 아껴라 · 281

제11장 오월동주吳越同舟 필요하면 적과 함께 배에 올라라 [구지九地]
상황에 적응하라 · 289 | 불리하면 중지하라 · 299 | 사지로 내던져라 · 303 | 오월동주를 행하라 · 308 | 필승을 기하라 · 312 | 천하를 품어라 · 319 | 임무만 알려라 · 325

제12장 비리부동非利不動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마라 [화공火攻]
도구부터 준비하라 · 335 | 바람을 따르라 · 342 | 감정을 자제하라 · 350

제13장 이지위간以智爲間 지략이 뛰어난 자를 활용하라 [용간用間]
정보망을 갖춰라 · 361 | 보안에 주의하라 · 367 | 인재를 활용하라 · 374

후기 21세기 승부는 손자병법 손에 있다! 380
참고문헌 391

책 속으로

『손자병법』에 나오는 모든 전략 전술은 기본적으로 부득이용병 또는 집이시동에 입각한다. 평시에는 무기를 거두었다가 전시에 무기를 들고 대응하라고 주문한다. 그렇다면 「시계」에서 부득이용병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거론하는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은 과연 무엇을 뜻할까? 우선 「시계」에서 말하는 ‘도’는 『도덕경』에서 역설하듯이 ‘덕德’의 본원을 뜻한다. 덕을 두고 노자는 무위지치無爲之治, 장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 공자는 인仁, 묵자와 맹자는 의義, 순자는 예禮, 한비자는 법法, 손무는 무武라 했다. 이처럼 제자백가 모두 덕을 언급하지만, 모두가 최상으로 여겼던 것은 무위지치다. 무위지치는 제왕의 통치가 마치 해와 달이 만물을 고루 비추듯이 지극히 공평무사함을 뜻한다. (28쪽)

삼국시대 초기 신흥 강자 조조와 당대 최고의 무력을 자랑한 원소의 운명이 갈리게 된 결정적인 배경은 조조가 천자를 옆에 끼고 천하를 호령하는 이른바 ‘협천자挾天子, 영제후令諸侯’를 실행한 데 있다. 명분상의 우위를 점한 것이 요체다. 원소는 힘만 믿고 이를 무시했다. 대개 원소의 자만심이 지나쳤다고 해석하나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원소 스스로 천자가 되고자 욕심을 낸 것이 정답이다. 이미 민심이 한나라를 떠난 만큼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자 한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릇이다. 원소는 그릇이 작았다. 게다가 시기심과 욕심도 많았다. 난세에 천하를 거머쥐려는 자로서는 실격이다. (90쪽)

조조의 인재 등용은 공적인 대의에 입각한 구현求賢, 유비의 용인술은 사사로운 의리에 기초한 인현引賢으로 표현할 수 있다. 손권은 시의時宜를 좇은 용현用賢에 해당한다. 그의 용현은 일정한 선을 넘지 않았다. 그 비결은 손권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도 잘 나타난다. “상대의 장점을 높이고 상대의 단점을 곧 잊어버린다.” 그는 상대의 단점에 눈을 감아버리고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한번 일을 맡긴 뒤에는 전폭적인 신임을 아끼지 않았다. 적벽대전에서 주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이릉대전에서 육손을 탁용한 데 이어 제갈근에게 끝없는 믿음을 보낸 것이 그 증거다. (114­115쪽)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문’과 ‘무’를 고루 갖춰 명실상부한 ‘문무겸전’의 자세로 새 왕조를 개창한 인물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창업주인 위무제 조조다. 그는 동탁토벌을 기치로 내걸고 군벌 경쟁에 뛰어든 이래 죽을 때까지 전장에서 평생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목할 것은 당시 유비와 손권을 포함한 여러 군웅 가운데 조조처럼 전장에서조차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열심히 공부한 인물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조조의 행보 가운데 문무겸전의 병도 이치를 가장 잘 보여 준 사례로 ‘분소밀신焚燒密信’ 일화를 들 수 있다. 이 일화는 조조가 원소를 격파한 관도대전 승리 이후에 나온 것이다. (253­254쪽)

“옛날 용병을 잘하는 사람은 아군에게 유리하면 곧바로 공격하고 불리하면 곧바로 중지했다”는 대목 가운데 중요한 것은 불리할 때 중지하는 일이다. 유리할 때 공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웬만한 장수라면 능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불리할 때 중지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대 판단하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그런 판단을 내렸을지라도 이미 투자한 것이 많은 까닭에 선뜻 발을 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진면목은 바로 이때 나온다. 이를 잘한 인물로 삼국시대의 조조를 들 수 있다. (300쪽) 닫기

출판사 서평

손자병법, 세상을 크게 바라보는 안목을 담다

천하를 사로잡은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두 『손자병법』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손정의는 『손자병법』을 자신의 경영 전략과 접목시킨 ‘자승병법自乘兵法’을 만들어 일본 최고의 부자가 됐다.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도 오늘의 자신이 있는 것은 『손자병법』 덕분이라고 했다. 스티브 잡스가 ‘창조 경영’과 소프트웨어의 상징 애플제국을 건설하고, 빌 게이츠가 윈도우 개발로 천하의 부를 거머쥐고, 손정의가 일본 최대의 컴퓨터 회사를 창립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금을 관통하는 『손자병법』의 위대한 면모를 웅변하는 대목이다.
고금의 역사를 개관하면 알 수 있듯이 무력을 동원하기 전에 명예와 이익, 권력을 좋아하는 인간의 기본 심성을 적극 활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고수의 비결이다. 『손자병법』은 바로 이런 이치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손자병법』은 병가 사상의 정수를 응축한 최고의 고전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손자병법』을 세상을 크게 바라보는 안목과 지혜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고전으로 간주했다.
수천 년에 걸쳐 많은 병서가 명멸했지만 유일하게 『손자병법』만 제왕을 위시해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읽으면 글로벌 비즈니스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두목 같은 문인이 읽으면 사람을 깊이 읽는 안목을 얻을 수 있으며, 조조 같은 위정자가 읽으면 치국평천하의 방략을 찾을 수 있다.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적확한 탐구가 빛나는 최고의 지략서 『손자병법』의 핵심은 ‘대여대취’다. 크게 주고 크게 얻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익을 향해 무한 질주하는 인간의 본성 ‘호리지성好利之性’을 정밀하게 추적함으로써 얻어낸 것이다. 그 호리지성, 대여대취의 뜻을 『손자병법』의 뚜렷한 맥으로 관통시킨 인물이 바로 조조다.
이 책은 조조의 『손자약해』를 바탕으로 대여대취 정신을 ‘지금 당장’의 현실 가치로 풀어쓴 것이다. 삼국시대 당시 천하통일 기반을 닦은 조조는 도가와 법가 사상에 입각해 『손자병법』을 새롭게 편제하고 주석을 가했던바, 『손자병법』은 반드시 조조 시각에서 접근해야 그 취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시중에는 『한비자』의 「외저설 좌상」에 나오듯 겉의 화려한 장식에 현혹되어 정작 알맹이를 놓치는 매독환주買?還珠의 우를 범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조조가 역설한 집이시동 이치를 무시하거나 간과한 결과다. 여기에서 집이시동은 평소 무기를 거두어들였다가 부득이할 때 사용한다는 뜻이다. 집이시동은 『손자병법』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 이념에 해당한다.
대여대취는 곧 커다란 미끼로 상대방을 유인해 제압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본성을 최대한 활용해야 궁극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다. 『손자병법』이 「모공」에서 백전백승은 결코 최상의 계책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손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진 손무와 이를 새롭게 편제한 조조, 무위지치를 역설한 노자, 무위자연을 내세운 장자, 공평무사한 법치를 역설한 한비자 모두 대여대취의 취지에 공명했다.

손자병법, 난세의 제왕학

『손자병법』이 『한비자』와 더불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동안 ‘난세의 제왕학’으로 군림하는 것은 극히 현실적인 입장에서 난세의 종식 방략을 제시한 덕분이다. 진시황이 병가와 법가 사상에 입각해 사상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조조가 당대 최고의 병법가이자 법가 사상가로 행보하며 삼국시대를 마무리 짓는 기틀을 닦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조가 『손자병법』을 새롭게 펴낸 『손자약해』 서문에서 『도덕경』의 제도帝道 이념을 병도 이념으로 끌어들인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조조가 “영웅은 가슴에는 큰 뜻을 품고, 뱃속에는 좋은 계책이 있어야 한다”고 일갈한 것처럼 ‘뜻’과 ‘꿈’을 크게 갖고 대성하고 싶다면 반드시 이 책을 접해야 할 것이다. 백날의 작은 승리는 별것 아니며 매사가 그렇듯 큰 이익을 미끼로 내걸어야만 큰 고기를 낚을 수 있다. 조조의 지혜가 살아 꿈틀대는 『손자병법』으로 ‘크게 주고 크게 얻는’ 그 최강 비결을 배워라.

2014년 9월 25일 목요일

노자-도덕경 1장


제1장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고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 名天地之始,
有, 名萬物之母.
故常無, 欲以觀其妙,
常有, 欲以觀其儌.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고
이름이 개념화될 수 있으면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무는 이 세계의 시작을 가리키고
유는 모든 만물을 통칭하여 가리킨다.
언제나 무를 가지고는
세계의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 하고,
언제나 유를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 한다.
이 둘은 같이 나와 있지만 이름을 달리하는데,
같이 있다는 그것을 현묘하다고 한다.
현묘하고도 현묘하도다.
이것이 바로 온갖 것들이 들락거리는 문이로다.
#
도덕경 제1장은 도덕경 전체의 골격을 가장 간략하고도 분명하게 보여 준다고 한다. 노자는 말한다. "나의 세계관은 도道, 무無, 유有라는 대표적인 세 개의 범주를 사용하여 뼈대만 먼저 보여 주겠다" 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 내리는 행위는 원래 '어떤 것'을 다른 것들로 부터 분리해 내는 작업이다. A가 B나 C가 아니라 A인 이유, 즉 A의 본질을 드러내어 그 본질 속에 A를 가두는 작업이다. 본질을 드러내어 다른 것들로 부터 분리하는 언어행위, 그것이 정의definition 내리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 자체는 본질을 규정하는 식의 언어 행위로 구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않다.
공자를 위시한 유가에서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순기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성인들이 언어적 개념화 작업을 하여 세운 일정한 체계, 즉 [전통]을 사회 운용이나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받아들인다.
可道(말할 수 있는 것) <----> 常道(진정한 도)
可名(개념화할 수 있는 것) <----> 常名(진정한 이름)
人道(인도) <----> 天道(천도)
傳統(전통) <----> 自然(자연)
춘추전국시대를 산 노자의 주요 관심사는 존재나 사유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 문제였고, 인간과 사회 문제를 조정하는 원칙을 "전통"이 아니라 "자연"에서 구했다.
비어있는 공간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지만, 구체적인 사물을 비로소 존재하게 하고 비로소 기능하게 하는 묘한 교차점 같은 것이다.
구체적인 것들은 모두 이 비어 있는 상태를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무無는 이 세계의 구체적인 것들이 비롯되는 시작이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경계선(실루엣)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영역을 드러내 보이려고 '유'라는 범주를 쓴다. 구체적인 모든 것들은 자신의 경계선(실루엣) 속에 갇혀 있다.
반대되는 유와 무가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존재 근거를 두면서 또는 상대방을 살려주면서 공존한다는 사실이 아주 현묘하다는 것이다.유와 무로 대표되는 대립항들이 서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분명하게 구분되어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재 근거를 나누어 가지면서 혹은 자신의 존재 근거를 상대방에게 두면서 꼬여있음을 보여준다.
두 대립면인 유와 무가 같은 차원에서 서로 꼬여 있다는 도식이 이 세계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 형식이자 운행 원칙이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 최진석 지음>에서

2014년 9월 24일 수요일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김시천

새롭게 깨어난 도가의 칼과 방패
이종훈 기자  |  whdgnswwkdl@snu.kr

승인 2013.11.23  22:40:34

  
 
“색깔과 얼굴이 전혀 상이한 두 고전이 함께 짝을 이뤄 하나의 사상처럼 거론된다는 것, 그것이 내겐 하나의 모순처럼 보인다”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의 저자 김시천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는 책의 서두부터 노자와 장자를 노·장사상으로 묶어서 다뤄온 종래의 관점에 반대하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노자』는 권력을 얻기 위한 칼이고, 『장자』는 세상에서 다치지 않게 살기 위한 방패라는 것이다.

저자에게 『노자』는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는 뜻을 품은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지침서이다. 노자는 ‘도’가 만물의 질서이자 세상이 흘러가는 기본원리이고, 사람은 인위적이지 않게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통치자는 도를 체득하고 다른 이들도 도에 맞게 살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노자를 “이상적 통치자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다시 이치에 맞는 상태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한편 김 교수는 『장자』를 세상의 풍파로부터 권력을 얻으려하나 얻지 못한 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해석한다. 『장자』에서는 ‘노닌다’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노니는 것은 삶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으려는 것이다. ‘노닌다’는 행위는 고단한 삶에서 종종 우리를 떠나게 해 주지만, 우리가 삶을 부정하고 이를 벗어나게 하지는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떠난다는 것에는 돌아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삶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노닐고 다시 속세로 돌아온 후의 삶은 이전과 달리 경쟁, 성공욕, 이해관계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이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노자』와 『장자』에는 천 개의 얼굴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존의 해석과는 다른 저자의 관점도 ‘옳은 해석’이 아닌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해석은 그 동안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데 있어 하나의 규범으로만 생각되던 노장사상을 현실의 삶에 적용한 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할 때는 노자의 칼이 우리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실패하고 상처받고 방황할 때는 장자의 방패가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삶의 모순과 철학의 위안

김시천 지음 | 책세상 | 2013년 11월 05일 출간

책소개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노자와 장자를 둘러싼 여러 차원의 모순을 환기한다.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 노자는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과 같은’ 책이고, 장자는 권력의 중심부로 나아가지 못한 자가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방패와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격이 다른 두 책이 마치 동질적인 것인 양 ‘노장’이라는 말로 함께 묶여 거론되니 이 또한 모순이다. 저자는 이러한 모순을, 성리학이라는 정치적 교조를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금단의 노장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었던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분열된 내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저자소개

저자 : 김시천

저자 김시천은 숭실대학교 철학과에서〈노자의 양생론적 해석과 의리론적 해석〉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대학에 진학할 때부터 공부를 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그다지 훌륭한 학자는 못 되는 것 같다는 생각에 가끔씩 공부의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우연히 노자와 장자를 전공하게 되었는데, 공부해보니《노자》가 그다지 좋은 고전이 아닌 것 같아 한동안은 유교儒敎 사상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며 고전을 이해해보려 애썼다. 그러던 중 인문의학연구소에 합류해 활동하면서 전통 한의학의 철학적 바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기氣에 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래된 동아시아 고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이 깊어갔으나, 시민과 함께하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고전의 의미는 발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요즘에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 고전에 접근하는 ‘고전 읽기’에 골몰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철학에서 이야기로》,《이기주의를 위한 변명》,《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공저),《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공저),《기학의 모험 1?2》(공저) 등이 있다. 독특한 제목의 이 책《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그간의 ‘노장老莊’ 공부를 결산하는 책이자,《장자―무하유지향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성인과 제왕》,《노자―혼돈으로부터의 탈주》로 이어질 4부작의 첫 책이다.

목차

책을 펴내며 *9

서장 _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15

제1부 《노자》, 칼의 노래

1장 노자와 《노자》
- ‘전설’을 해체하고 ‘인간’을 보다 *31
1. 누구의, 누구를 위한 《노자》인가 *31
2. 하나이면서 여럿인 《노자》, ‘노자열전’ *34
3. 성인과 제왕, 그리고 범인 - 《노자》 속의 인간들 *55
4. 호모 임페리알리스의 《노자》 *63

2장 《노자》의 두 전통
- 통치술에서 철학의 지혜를 찾다 *67
1. 하상공과 왕필, 두 밀레니엄 두 가지 해석 *67
2. 논리와 해석 방법의 차이 - 훈고와 의리 *70
3. 우주와 인간, 기와 도 *82
4. 우주론에서 심성론으로 *91

3장 조선 사회의 《노자》와 지식인
- 조선의 유학자, 이단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다 *95
1. 《순언》, 그 ‘침묵’의 역사 *95
2. 유가 전통과 이단 *101
3. 이단에 대한 모순된 태도 *107
4. 사문난적 혹은 영혼의 전쟁 *115
5. 정통 유가 지식인의 내면 풍경 *122
6. 정통과 이단, 유교적 사유의 안과 밖 *127

제2부 《장자》, 춤추는 방패

4장 《장자》, 이단과 전통
- 사이비 속에 감추어진 삶의 진실을 찾다 *137
1. 해석의 갈등, 20세기의 《장자》 *137
2. 장자의 두 얼굴, 《사기》의 장자와 《장자》의 장자 *143
3. 역사 속의 《장자》 *155
4. 유학 안에서 《장자》 읽기, 사이비와 진유 *166
5. 진유가 된 사이비 장자, 이단에서 전통으로 *175

5장 《장자》, 해석의 갈등
- 유가와 도가 사이에서 ‘삶의 길’을 묻다 *179
1. 《장자》를 말하기의 어려움 *179
2. 《장자》에서 ‘정신’의 개념 *184
3. ‘정신’의 길 - 《장자》, 《관자》, 《회남자》 *189
4. ‘마음’의 길 - 《순자》와 유가 *195
5. 《장자》의 무정한 자아 - 신비주의 순수 의식인가, 정신양생론인가 *202

6장 《장자》의 ‘유遊’
- 노니는 삶, 일상으로 내려오다 *211
1. ‘놀이’와 ‘노님遊’ *211
2. ‘놀다’, 놀이, ‘장난作亂’ *216
3. ‘유’와 정신 *222
4. 심유心遊 - 천유天遊 그리고 세유世遊 *229
5. 정신과 유희 - 삶의 복원 *236

제3부 노장, 삶의 모순과 철학의 위안

7장 유가와 도가의 행위 이론
- ‘무위자연’으로 정치를 논하다 *245
1. 20세기의 철학사 서술을 넘어 *245
2. 성인과 ‘무위’의 이상 *249
3. ‘유위’의 빛과 그늘 - 《묵자》, 《맹자》 *255
4. 선악의 피안 - 유위 - 무위의 대립을 넘어 *262
5. 고대 중국의 행위 이론 비교 - 무위, 유위, 형명 *266

8장 《노자》와 페미니즘
- 노자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 *271
1. 《노자》, 다른 목소리로? *271
2. 노장, 진실 혹은 거짓말 *275
3. 《노자》와 페미니즘, 세 개의 메아리 *279
4. 《노자》의 성인, 계곡처럼 낮게 암컷처럼 부드럽게 *285
5. 《노자》와 페미니즘은 만날 수 있는가 *290

9장 《장자》와 과학 기술
- 장자는 기술 비관론자가 아니었다 *299
1. 기술, 애증의 교차로 *299
2. 기심, ‘최소 투자 최대 효과의 심리’ *304
3. 기技를 통한 도道, 또 다른 노하우 *310
4. 기예의 도, 달인의 철학 *316
5.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 21세기 과학 기술 시대의 ‘도술’을 찾아서 *320

종장 _ 도가에서 도술로, 철학에서 삶으로 *327
1. 21세기 ‘노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327
2. 도교란 무엇인가 *329
3. 텍스트와 도술 *333
4. 학學의 공동체 - ‘사제 모델’과 경술 *337
5. 학學에서 유遊로 - 삶의 기술로서의 도술 *342
6. 도술의 두 차원 - 양생과 달생 *349

참고문헌 *354
찾아보기 *364

출판사 서평

무위자연의 신화를 넘어 치열한 삶의 이야기로
― 우리 시대 노장을 읽는 아주 특별한 방법

《노자》와《장자》는 유교 중심의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공맹과 대등한 사상적 지위를 누려보지 못한 채 늘 이단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동아시아 고전 중 대중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책이 되었다. 특히 1999년에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라는 강연은 노자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다양한 대중 강연이 노자와 장자를 다루어왔다. 한때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서구 이론의 영향을 받은 해체론적 노자 해석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대중에게《노자》와《장자》에 대한 어떤 고정된 인상이 각인되었다. 탈속, 자연, 유유자적, 현자, 탈정치, 반문명 같은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인상은 과연 올바른 이해의 결과일까?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노자와 장자를 전공한 동양철학자가 그간의 노장 공부의 결실을 모아 엮은 책으로, 텍스트의 문맥을 놓치지 않는 전공자의 시선을 통해 노장에 대한 통념이 실제의《노자》,《장자》와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즉 이 책은 두 문헌의 내부에 있는 ‘사상’을 체계적으로 해명하기보다는 기존의 연구 성과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통해, 상식으로 굳어진 노장 철학의 주제들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오늘’의 시각으로 재검토함으로써 기존의 논의와 다른 해석의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노자》는 천하의 정치적?사상적?사회적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사람들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헌으로서 정치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을 위한 기술적 지침서와 같은 책이며, 반면《장자》는 권력을 차지하지 못한 지식인들을 위해 세상과의 불화를 해소하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 문헌이 이렇게 이질적임에도《노자》와《장자》는 ‘노장’이라는 말로 한데 묶여 실제와는 동떨어진 고정관념을 낳아왔으며, 이러한 고정관념에 일조한 주제들 중 대표적인 것이 노장을 대변하는 개념이 ‘무위無爲’라는 것,《노자》가 페미니즘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것,《장자》가 기술 문명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 무위는 노장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간주될 만큼 노장의 독보적인 개념도 아니고 탈속적?반문명적인 삶과 연관되는 개념도 아니다. 또《노자》와 페미니즘,《장자》와 기술 문명 비판을 연결 짓는 것은 문맥을 간과한 채 원문을 선별적으로 인용하거나 잘못 이해한 것으로, 전통과 탈근대적인 것을 잘못 연결한 결과이다.
저자는《노자》와《장자》를 이렇게 읽어내는 것에서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노장을 어떻게 삶에 유의미한 것으로 지속시킬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그리하여 노장을 도가나 도교라는 이름의 철학이나 종교로 받아들이지 말고,《장자》의 ‘유遊’(노님) 개념에 입각해 ‘도술道術Tao-techniques’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여기서 도술이란 신비한 초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부정하거나 삶에 종속되지 않고 삶을 누리는 기술, 정치와 문명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누리는 기술을 말하며, 이러한 시각은 철학과 종교의 이분법,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결국 이 책은《노자》와《장자》에서 삶의 기술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국내 학자의 독창적인 노장 연구서가 드문데다, ‘무위자연’이라는 표현이 대변하듯 탈속적?탈정치적?반문명적 사상이라는 노장 사상에 대한 일면적 통념이 지배하는 현실에서,《노자》와《장자》에 대한 역사적 해석과 쟁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삶의 양식으로서의 ‘도술’이라는 21세기 노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는 이 책은 저자가 줄곧 견지해온 ‘전통의 현대적 해석’에 대한 학문적?실천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하는 노자의 칼, 춤추는 장자의 방패 ― 노장과 ‘모순’
이 책의 제목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노자》와《장자》를 둘러싼 여러 차원의 모순을 환기한다. 우선 글자 그대로 ‘창(칼)과 방패’로서의 ‘모순’이다.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노자》는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과 같은’ 책이고,《장자》는 권력의 중심부로 나아가지 못한 자가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방패와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격이 다른 두 책이 마치 동질적인 것인 양 ‘노장’이라는 말로 함께 묶여 거론되니 이 또한 모순이다.
한편,《노자》와《장자》는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조선 사회에서 이단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지만, 모순되게도 이이, 박세당, 홍석주, 서명응, 한원진 같은 정통 유학자들에 의해 주석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시대에 박세당의《신주도덕경》과《남화경주해산보》, 이이의《순언》, 홍석주의《정노》, 한원진의《장자변해》같은 노장 주석서가 쓰이고 읽혔다. 요컨대 조선 시대에《노자》와《장자》는 이단이면서도 ‘바깥’에 있지 않고 ‘안’에 있었던 셈이며, 저자는 이러한 모순을, 성리학이라는 정치적 교조를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금단의 노장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었던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분열된 내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저자는《노자》와《장자》에서 이런 중층의 ‘모순’을 읽어내며, 결국 삶 자체가 그렇게 모순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게다가《노자》와《장자》모두 단일 저자에 의해 쓰인 책이 아니어서 여러 목소리를 내는데다 모호한 언어로 되어 있어 해석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니, 노장 읽기는 모순으로 가득해 종종 길을 잃게 만드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저자는 노장의 모순이 삶의 모순과 유비를 이루기에 오히려 삶에 위로를 준다고 말하며, 나아가 도가나 도교 대신 ‘도술’이라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철학이나 종교 아닌 삶의 기술로 받아들여 현실적 동반자로 삼을 방법까지 모색한다.

《노자》― 패권 지망자들의 책, 권모술수의 책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노자》는 전국 시대 말기에서 한나라 초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완성된 책이다. 그리고《노자》의 저자는 노자라는 한 사람의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니라 신원을 알 수 없는 여러 사람이다. 이 복수의 저자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는지는《노자》텍스트에서 어떤 사람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지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통념과 달리《노자》에는 “정치적 세계의 비정함에 냉소를 보내고 문명을 비판하고 유가와 같은 도덕적 엄격주의에 식상한 인간, 환경과 자연의 가치를 긍정하고 페미니즘적 세계관을 지향하는 인간”은 등장하지 않는다.《노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상은 오히려 성인聖人, 후왕侯王, 사士 같은 권력자들이다. 이는《노자》의 저자나 독자가 패권 지망자들이었음을 짐작게 하고, 실제로《노자》는 내용상 권모술수를 포함한 “권력의 기술”에 대한 책이나 다름없다.
《노자》에 대해서는 수많은 주석자들에 의해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졌고 그러한 해석들에서 공통의 기반과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대표적인《노자》해석으로는 한나라 하상공과 위나라 왕필의 해석이 꼽힌다. 두 사람의 주석서는 똑같이《노자》를 다루면서도 아주 다른 해석으로 나아간다. 하상공이《노자》자구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치중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는 데 충실한 편이라면 왕필은 유가의 입장에서《노자》를 해석한다. 그리하여 하상공의 해석은 도교의 차원과 연결되고 왕필의 해석은 유학자들의 해석의 토대가 되면서 다양한 조류를 만들어나가게 되었다. 그런 만큼 어떤 주석서를 통해《노자》를 읽는가에 따라《노자》의 얼굴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조선 사회에서는《노자》가 어떻게 수용되었을까? 유학 아닌 것은 이단으로서 철저히 배척했던 조선조에서 뜻밖에도 이이의《순언》, 박세당의《신주도덕경》, 홍석주의《정노》, 서명응의《도덕지귀》등 모두 다섯 권의《노자》주석서가 쓰였으며,《선조실록》에는 과거시험 답안지에 노장의 문장이 인용된 것을 놓고 임금과 신하가 왈가왈부하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이는 모두 임금과 신하들, 그리고 과거에 응시한 선비가《노자》와《장자》를 읽어 알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이단의 문제점을 알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읽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우긴 했지만, 어쨌든 이는 조선 사회에서 정통인 유가와 이단인 도가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장자》― 출사하지 못한 비운의 지식인의 책, 세속에서 노니는 기술을 이야기하는 책
《장자》는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문헌으로 추측되지만 성립 시기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장자》는 진晉나라의 곽상이 틀을 갖춘 것으로 33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장자가 지은 것은 ‘내편’ 7편뿐이고 나머지는 후학들의 글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따라서《장자》에는 서너 갈래의 다른 목소리가 뒤섞여 있으며, 이는《장자》해석의 어려움을 낳는다.《장자》의 어느 편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중국 철학계에서《장자》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중국인의 패배주의와 노예근성의 정신적 근원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에 중국 고유 종교인 도교의 사상적 원류, 유가를 계승한 사상, 중국 예술 정신의 원류라는 등등의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한국 학계에서도 이런 식의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저자 김시천은《장자》의 이야기들에서 얻을 수 있는 장자에 대한 정보를 통해서 “뜻을 품었으되 가난해 벼슬에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한 지식인”을 장자의 일관된 모습으로 포착해내고,《장자》를 “비운의 지식인”의 책으로 본다. 치자의 영광과 명예로 나아가지 못하고 불행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삶의 기술을 이야기한 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장자》에서 가장 주목하는 개념은 ‘유遊’이다. ‘유’는 ‘노닐다’에 가까운 개념으로, 잠정적 ‘떠남’과 떠났다가 ‘돌아옴’을 전제한다. 떠남이 정치적 야망이나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는 세속의 삶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거리를 두는 것이라면, 돌아옴은 그렇게 거리를 둔 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서의 깨달음을 안고 세속의 삶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돌아왔을 때는 삶의 태도가 바뀌어 다툼과 경쟁과 갈등에서 벗어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삶의 태도가 “탈속적 태도”도 아니고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거나 변화시키려는 변혁적 실천”도 아니며, 다만 “한 개체가 겪는 갈등과 억압을 승화시킨 태도”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유’는 삶의 보전이라는 ‘양생’의 논리와 이어지며, 또한 문화와 예술에 영감과 창조적 활력을 준다고 본다.
《장자》역시 조선 시대에 유학자들 사이에서 읽혔고 박세당, 한원진에 의해 주석되었다. 다만《장자》는 대체로 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이단’이라기보다는 ‘사이비’에 가까운 존재였다.

《노자》와《장자》에 대한 통념은 올바른가
두 문헌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인위나 억압을 거부하고 자연 속에서 초탈한 태도로 살아가는 현자의 격언쯤으로《노자》와《장자》를 떠올리는 통념과 거리가 있다. 저자는 노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많다고 보고 이를 점검한다. 여기서의 논점은 ‘무위자연’이 노장을 대변하는 개념인가,《노자》가 페미니즘과 닿아 있는가,《장자》가 기술 문명에 반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유가는 ‘유위有爲’를 주창했고 노장은 ‘무위’를 주창해 유가를 비판했으며, 유위는 인위에 상응하고 무위는 자연에 상응한다는 것이 통념상의 도식이다. 하지만 저자는《논어》,《맹자》,《순자》,《묵자》등 여러 고전 문헌들의 ‘무위’ - ‘유위’ 용례를 분석해, 무위와 유위가 대립되는 개념이고 무위와 자연이 상응하는 개념이라는 상식은 틀린 것임을, 그리고 무위란 “제자백가의 공통 개념으로서 어느 특정 학파가 전유한 것이 아니며, 기본적으로 정치 행위 이론”임을 밝힌다. 따라서 무위자연을 도시와 문명을 떠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과 연관 짓고, 무위자연이 노장이 추구하는 삶의 대명사라고 이해하는 것은 수정되어야 한다.
그럼《노자》와 페미니즘의 관계는 어떠한가? 저자는《노자》가 여타 문헌에 비해 여성성을 중시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것이 여성의 자유와 해방을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의 차원은 아니라고 말한다.《노자》의 몇몇 표현들을 들어《노자》를 페미니즘과 연결시키는 것은, 유가는 뭔가 부정적인 사상 체계이고 도가는 뭔가 긍정적인 사상 체계라는 도식적 선입견 때문에《노자》에 나오는 여성성 강조의 표현 하나도 과도한 의미를 담아 해석한 결과라는 것이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노자의 시대는 가부장제 완성의 정점이었는데 그러한 시대에 노자가 여성을 찬양하고 페미니즘 철학을 전개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일이냐고 저자는 반문한다.《노자》에서 볼 수 있는 여성성의 강조는 여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성적 강함에만 의지하는 정치는 온전하지 못하니 군왕은 여성의 유약함을 가장하는 교묘한 ‘술수’ 또한 겸비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자》가 기술 문명을 비판했다는 상식 또한 잘못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식이〈천지〉편에 나오는 ‘기심機心’이란 말을 “편리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해석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원문의 맥락을 따른다면 ‘기심’을 “최소 투자 최대 효과의 심리”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그렇다면〈천지〉편의 이야기에서 기심을 비판하는 것은 “기회주의적 심리를 비판한 것이지 고도의 기술적 성취 그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양생주〉편에 나오는 포정?丁의 이야기에서는 기술에 대한 긍정을 읽을 수 있다. 소를 잡는 데 있어서 기술을 넘어 도의 경지에 오른 포정의 칼놀림을 보고 문혜군이 ‘양생의 도’를 터득했다는 이 이야기로 미루어,《장자》에서는 기술이 비판되는 것이 아니라 도에 이를 수 있는 방법으로서 긍정됨을 알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노장, 삶의 기술로서의 ‘도술’을 위하여
―21세기에《노자》와《장자》를 어떻게 향유할 것인가

오늘날 한국 학계에서 ‘노장’은 “《노자》와《장자》라는 텍스트에 담긴 내용 혹은 그와 관련된 문헌에 담긴 철학적, 사상적, 종교적 전통”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노장이 유가 전통에 포섭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노자》와《장자》가 한대漢代 이래 제자백가의 하나인 ‘도가’로 분류되고 20세기에 ‘도교’의 기초 경전으로 이해되면서 노장은 철학적, 종교학적으로 언제나 도가와 도교라는 더 큰 범주와 철저하게 관련돼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나 노장을 철학이나 종교로서 대하지 말고 우리의 삶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지속시키며 향유할 방법을 모색하자고 말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노장을 도가/도교 아닌 ‘도술’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 저자는 다시 ‘유遊’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저자는 ‘유’ 개념을 현대라는 패러다임으로 가져와 ‘유’를 정치를 부정하기보다 정치를 누리고, 문명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문명을 누리는 태도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러한 ‘유’에 이르도록 해주는 것이 양생養生nourishing-life의 기술(자의적 권력에 맞서 자신의 생명과 삶을 보전하는 기술)과 달생達生mastering-life의 기술(양생의 기술을 삶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하는 기술)이며, ‘도술’이란 이러한 삶의 기술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시대라는 틀 안에서의 고전 읽기를 고민해온 저자는 이처럼 노장 전공자로서의 진지한 노장 읽기를 통해 통념에 가려져 있었던《노자》와《장자》의 실제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동시에 이러한 고전을 삶 속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준다. 그리하여 이 책은 저자 자신의 바람처럼 학술적 연구서이면서 작은 이야기책이기도 하다.

2014년 9월 13일 토요일

노자의 도(道)와 공자의 도(道)는 다를까-'노자의 재구성'(안성재)

노자는 노련한 정치가인가, 인류의 스승인가

아시아투데이 (뉴스)3 16:02





아시아투데이 박정배 기자 = 노자는 중국 고대 사상가로 도가의 시조다. 초(楚)나라에서 태어나 주(周)나라의 신하가 되었다. 공자에게 예(禮)를 가르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존 여부는 미지수다. 도가 사상가들이 유가儒家)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가공의 인물이라는 설이 있다.
노자 사상은 도덕과 지혜, 지배욕을 버리고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위무욕(無爲無欲)으로 남에게 겸양하는 처세술이다.

그런데 인천대 안성재 교수는 사마천의 '사기'에 있는 '노자한비열전'에 주목했다. 여기에는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예(禮)에 대해서 물었다는 기록이 있다. 안성재 교수는 이 대목에 주목, 노자와 공자의 사상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가정을 하게 된다. 그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십삼경'에 손을 대고, '사기'와 '십팔사략'을 섭렵하게 된다. 그 결과물이 노자, 정치를 깨우다(어문학사 발행)'이다.

이책의 특징은 연구자가 아닌 일반인이 알도록 노자의 사상과 정치적 이념을 알기 쉽게 풀어쓴 점이다. 저자는 문장과 그 구조를 충실하게 번역하고, 더 나아가 '재해석'하는 관점에서 도덕경을 분석하였다. 대중서를 추구하는 이 책에서는 각 장의 요점을 먼저 제시하고 문장 각각의 의미를 쉽게 풀어쓰는 데 역점을 두었다.

정치의 해인 2012년. 대선과 총선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안성재 교수는 노자의 정치철학을 색다르게 해석했다. 노자의 철학을 '대동의 통치이념'으로 보았다. 대동의 통치이념은 결국 백성의 뜻을 지도자의 뜻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책] 노자의 도(道)와 공자의 도(道)는 다를까-'노자의 재구성'(안성재, 어문학사)

입력 : 2012.04.02 16:54
[새책] 노자의 도(道)와 공자의 도(道)는 다를까-'노자의 재구성'(안성재, 어문학사) 동양 고전을 재해석할 시기가 된 것일까. 인문학 열풍 속에 동양 고전을 재해석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소비 경제가 그리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인문학, 특히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은 의미가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옛사람들의 지혜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반작용으로 이해된다. 동양고전의 상당수는 사회가 극히 혼란한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났다. 당시 제자백가들은 시대에 맞는 행동철학을 제시했다. 유가사상과 도가사상도 그 때의 산물이다. 동양고전은 한 눈에 읽어서는 본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짧은 문장에 깊은 뜻이 담긴 미언대의(微言大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대에 따라, 처한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이는 자칫 본뜻과 멀어지는 결과가 된다. 정확한 해석을 하려면 관련서적들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상호 비교하며 분석하고, 시대적 배경에 따른 행간을 이해해야 한다. 또 정확한 문장의 구조의 분석은 당연하다. 안성재 교수(인천대)의 '노자의 재구성'은 이런 점에서 관심이 되고 있다. 저자는 문장과 그 구조를 충실하게 번역하고, 더 나아가 '재해석'하는 관점에서 노자의 도덕경을 분석하였다. 그는 왕필본(王弼本)을 근간으로 하여 도덕경 전문을 번역했다. 저자는 번역과정에서 노자와 공자의 사상이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밝힌다. 지금까지의 시각은 노자와 공자의 사상은 도불동 불상위모(道不同 不相爲謀)였다. '추구하는 도가 다르면, 함께 도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전혀 동떨어진 관계라는 것이다. 이 책은 유가의 서적인 중용, 예기 등을 인용하여 분석한다. 공자와 노자의 사상 관계성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노자의 '도'는 '형이상학적 개념의 무위자연의 도'가 아니다. '대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통치이념이다. 대동은 하늘과 땅과 사람과 동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노자 대동 / 공자 소강

공자 다시보기(5): 우리는 공자를 알고 있는가? [1]
1. 대동과 에덴그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먼저 동양과 서양의 태초에 관련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동양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복희씨와 여와씨가 인류를 만든 이래삼황오제는 네 것과 내 것을 구별하지 않고 조화롭게 사는 대동(大同)사회라는 태평성대를 구가해왔다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백성들이 네 것과 내 것을 구별하는 이기주의가 도래하자()나라 우()임금과 상()나라 탕()임금()나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성왕(成王) 그리고 주공(周公여섯 군자들은 규율을 정하여 먼저 자신들이 솔선수범하고 나아가 백성들을 통제하기 시작했으니이것이 바로 소강(小康)사회의 시작이다.
서양태초에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만들고그들로 하여금 아무런 걱정 없이 에덴의 동산에서 살게 했다이 두 남녀는 아무런 걱정 없이 살고 있었지만사악한 뱀의 꾐에 넘어간 이브가 선악과를 먹게 되고 또 그것을 아담에게도 먹도록 권유했으니이에 하나님이 노하여 아담과 이브를 에덴의 동산에서 쫓아냈다그때부터 인류는 선악을 구별하게 되어 분노와 슬픔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야했으나예수 그리스도의 율법(律法)을 따름으로써 인류는 구원의 길을 얻게 되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사유과정을 비교하노라면 참으로 소름 끼치도록 닮은 구석이 많다그렇다면 춘추시대라는 엄청난 혼란기를 살아가던 공자에게 있어서대동은 과연 어떠한 존재로 다가왔을까?
(우 임금이밖으로 나가다가 죄인을 보고수레에서 내려 묻고는 울며 말했다: “요순시절의 사람들은요순임금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았는데과인이 임금이 되고는백성들 각자 그들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으니과인이 그것을 애석히 여긴다.” [十八史略(십팔사략)] <夏王朝篇(하왕조편)>
정말로 그간의 주장대로공자는 진정 대동사회로의 복귀를 주장했을까아니면 대동을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영원한 이상향 즉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으로 남겨두고현실적으로 회복 가능한 차선의 선택 즉 규율을 만들어서 먼저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고 나아가 그것으로 백성들을 통제하는 소강사회를 주장했을까이미 앞에서 누차 설명한 바대로공자는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예악(禮樂)제도와 인()()를 따라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따라서 공자가 대동사회로의 복귀를 외쳤다는 것은 사실상 편협한아니 엄밀히 말해서 대단히 잘못된 시각인 것이다.
2. 성인(聖人)과 군자(君子)
그럼에도 불구하고공자는 왜 [논어등에서 끊임없이 요순시대의 대동을 언급하고 있는가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의 기록을 다시 한 번 개략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전문(全文)은 공자 다시보기 1편을 참고하기로 한다.
큰 도가 실행될 때와 하() () () 삼대의 훌륭한 인물들이 정치를 하던 때는내가 그 시절에 미칠 수는 없으나 기록이 남아있어 알 수 있다큰 도(大道)가 실행되던 때는세상이 공천하(公天下)였으니어질고 재능 있는 이들을 선발하고신용을 중시하며 화목함을 갖췄다. (생략이를 대동이라고 일컫는다.
오늘날에는 큰 도가 사라졌으니세상이 가천하(家天下)가 되었다각각 자신의 어버이만이 어버이가 되고자신의 자식만이 자식이 되었으며재물과 힘은 자신을 위해 썼다. (생략()나라 우()임금과 상()나라 탕()임금()나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성왕(成王) 그리고 주공(周公)은 이러한 예의로 시비를 구별하였다이 여섯 군자(君子)들은 예의에 삼가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그럼으로써 그 의로움을 분명히 하고그 신의를 깊이 헤아렸으며허물을 드러내고형벌과 어질음을 꾀하고 꾸짖어백성들에게 항상 그러함을 보여주었다만약 이를 따르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권세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물리쳐 대중들이 재앙으로 삼았다이를 일컬어 소강이라고 한다. [예기(禮記)] <예운(禮運)>
공자는 정치를 담당하는 지도자를 대동사회의 지도자인 성인(聖人)과 소강사회의 지도자인 군자(君子) 그리고 실무담당 전문가인 그릇()로 분류하고 있다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성인이나 군자와 같은 지도자는 덕()을 행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는데 주력해야 하는 반면실무담당 전문가는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 능력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성인과 군자를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성인은 태초부터 존재했으므로 어느 누구한테도 배우지 않았지만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몸에 받아들여 실천한 대동사회의 지도자인 반면군자는 비록 성인과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이해하고 실천한 인물은 아니지만옛 성인의 도를 온전하게 배우고 부단히 노력하여 실천한 소강사회의 지도자를 일컫는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한 가지 공자의 시대적 한계점을 언급하고 넘어가자면공자는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신분을 선비(이상으로 규정함으로써 종법제도(宗法制度)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물론 이 종법제도는 공자가 가장 존경한 인물이자 노나라의 시조(始祖)인 주공(周公)이 최종 완성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영향력을 벋어나지 못했던 결과이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공자의 도()는 태평성대를 이끈 옛 성현들의 통치이념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는데이제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진실함은 하늘의 도이고진실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진실한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중하고생각하지 않아도 얻게 되어차분하게 도에 들어맞는 것이니성인이다진실하게 한다는 것은선을 가리어 굳게 잡는 것이다. [禮記(예기)] <中庸(중용)>
이는 도라는 것이 바로 진실함에 있는데진실함이란 스스로 진실한 것과 또 진실하게 하는 두 가지의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즉 하늘의 도는 억지로 작위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게 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순리임에 반해서사람의 도는 노력하고 절제하여 작위(作爲)하는 것이다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공자는 도를 다시 하늘의 도인 천도(天道)와 사람의 도인 인도(人道)로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제 이와 관련하여 또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공자가 애공를 모시고 앉았다애공이 말하길: “감히 묻습니다사람의 도는 누구를 큰 것으로 여기오?” 공자가 엄정하게 낯빛을 고치고는 대답하여 이르길: “임금께서 이 말씀에 이르신 것은 백성들의 덕입니다진실로 신은 감히 사양치 않고 대답하겠습니다사람의 도는 정치를 큰 것으로 여깁니다.” ()공이 말하기를: “감히 묻겠는데 어떤 것이 정치를 한다고 일컫는 것이오?” 공자가 대답하여 이르길: “정치는바로잡는 것입니다. 임금이 바르게 하면곧 백성들이 정치에 따릅니다임금의 행하는 바는백성들의 따르는 바입니다. [禮記(예기)] <哀公問(애공문)>
다시 말해서인도(人道)란 바로잡는 것이니 바로 예악제도로 절제하고 통제하는 소강사회의 통치이념을 뜻하는 반면천도(天道)는 스스로 그러한 것이니 하늘이 부여한 천성에 따르는 대동사회의 통치이념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따라서 여기서도 공자는 당시 춘추시대라는 혼란기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데 있어서대동이 아닌 인의(仁義)와 예악제도(禮樂制度)를 강조하는 소강사회로의 복귀를 외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실제로 [논어]에서도 언급되듯이 공자는 하늘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으니그 이유를 이제 막연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와 관련하여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를 살펴보면공자는 성인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반해서군자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러므로 공자는 성인의 대동 사회를 그리워하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교육목표를 군자 양성에 둠으로써그들로 하여금 임금을 보필하게 하고 나아가 백성들과 나라를 안정시키려고 했던 것이다여기서 한 번 더 강조하자면공자는 선비(이상의 젊은이만을 제자로 받아들이는데이는 물론 종법제도 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시대적 한계이다.
이제 여기서 대동사회와 소강사회의 도에 대해서 정리해보기로 하자대동사회는 어느 누구한테도 배우지 않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몸에 받아들여 실천한 성인들이 통치한 국가형태를 일컫는다따라서 성인들의 도()인 대동의 통치이념에는 강함과 부드러움을 조화롭게 실천하는 덕()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게 판단하는 중()()한 것만 택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을 포용하여 함께 이끌고 가려는 상생과 공생의 화()지도자가 솔선수범하여 희귀한 것을 탐내지 않는 검소함(), 따듯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자애로움(그리고 감히 백성들의 앞이나 위에 서서 군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밑에 처하며 백성들의 뜻을 지도자의 뜻으로 삼으려고 하는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의 겸손함()이 그 구성요소들로 내재되어 있다따라서 이러한 자세로 통치하면 그 궁극의 이상향인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대동사회의 도와 그 구성요소들에 대해서는 사실상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대단히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니보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필자의 노자 [도덕경해설서들을 참고할 수 있다.
반면 소강사회는 비록 성인과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이해하고 실천한 인물은 아니지만 옛 성인의 도를 온전하게 배우고 부단히 노력하여 실천한 군자들이 통치한 국가형태를 일컫는다따라서 군자의 도()인 소강의 통치이념은 원칙적으로 상술한 대동사회의 통치이념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따르는데바로 여기서 대동과 소강의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으니소강의 통치이념은 기본적으로 대동의 통치이념을 그대로 흡수하여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하지만 백성들의 마음에 이미 이기주의가 깊숙이 자리 잡기 시작한 시대에이러한 원칙적인 대동의 통치이념만으로는 백성들과 나라를 안정시킬 수 없다그러므로 스스로 진실한” 대동의 통치이념에 나아가 진실하게 하는” 노력과 절제의 작위(作爲) 사람의 도를 더해야 만이 백성들과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고이러한 사람의 도를 이루는 핵심 구성요소가 다름 아닌 어질음의 인()과 의로움의 의() 그리고 예()와 악()의 제도인 것이다.
공자는 성인이 통치하는 대동사회를 꿈꿨고또 자신의 뜻이 좌절될 때마다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 그러한 대동을 그리워한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춘추시대와 같은 혼란스러운 난세에서 대동은 그저 어디까지나 이상향일 뿐다시(혹은 당장회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그러므로 공자는 춘추시대와 같은 난세의 상황에서는 소강사회로의 복귀가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아니 어쩌면 대동의 사회라는 것은 우선 소강사회를 회복하고 나서 다시 고려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다음 회부터는 공자의 궁극 즉 소강사회의 통치이념인 도()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고전 다시읽기] Aporia Reivew of Books, Vol.2, No.1, 2014년 1월, 안성재, 인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