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posts list

레이블이 정치사상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정치사상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4년 10월 10일 금요일

덕치, 인치, 법치 노자, 공자, 한비자의 정치 사상



  덕치, 인치, 법치 노자, 공자, 한비자의 정치 사상 
   철학의 부재시대에서 바라 본 우리몸에 맞는 정치철학찾기
  저자/역자신동준 저
  발간일2003년 8월 14일
  가격20,000 원 →회원할인가 18,000 원
  분류연구총서 | 도가/제자철학
  포인트900점


철학이 없어진 현재, 우리 몸에 맞는 정치철학은 없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답하면서 동양의 철학을 정치철학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리의 사상 속에서 발견한 우리 몸에 맞는 정치철학이 깊게 담겨 있는 책이다. 

판형:신국판 | 쪽수:488쪽 

정치철학의 부재 시대, 우리 몸에 맞는 우리의 정치철학은 없는가 ?

동양의 철학을 정치사상으로 해석한 책이 나왔다. {덕치, 인치, 법치} 노자와 공자, 한비자의 사상을 정치사상의 측면에서 접근한 이 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동양의 전통적 정치사상에 대한 단편적인 언급들은 있었지만 이 책처럼 전격적으로 정치사상에 관한 부분만을 다룬 경우는 처음이다.
일반적으로 동양의 전통사상은 현실성이 결여된 형이상학적 담론으로 이해되어 왔다. 법가의 사상이야 원래 현실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겠지만 유가와 도가, 특히 도가의 사상은 현실을 떠난 고원한 담론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책은 동양의 전통사상들이 형이상학적 담론으로 이해되는 현실을 거부한다. 이 책에서는 노자와 공자, 한비자를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정치의 실현을 위해 진력했던 정치사상가로 이해하고 그들의 철학을 현실과는 결코 유리될 수 없는 입세간의 정치사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흔히 정치학이라고 하면 근대 이후의 서양 이론을 떠올리곤 한다. 실제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전통사상 가운데 정치학 이론으로 연구된 분야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우리의 정치는 구미 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고 있고, 정치학 이론 역시 서양의 이론들 일색이다. 그러나 맞지 않은 옷을 몸에 걸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정치 현실은 엉거주춤하다. 현재 채택하고 있는 우리 정치 체제의 뿌리가 얕은 까닭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일제치하의 고통, 분단과 전쟁, 연이은 독재를 겪으며 수많은 멍울을 감추고 있다. 그 상처의 일차적인 원인은 무엇보다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확장과 침략에 있을 것이다. 아편전쟁 이후 동아시아 3국에 몰아닥친 제국주의의 광풍은 전통적인 삶의 조건들을 빠르게 변화시켰는데, 그 과정은 매우 폭력적이었다. 정치 분야에 있어서는 기존의 제왕정이 공화정으로 바뀌었지만 짧은 순간에 서양의 정치 체제가 정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뿌리가 얕은 정치 체제가 그것에 의지하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뒤흔들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서양의 정치철학은 이미 그 한계를 드러내었다. 현실 정치의 암울함을 정치 담당자들의 사람됨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폐해가 너무 오래되고 심각하다.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동양의 전통사상에 뿌리를 둔 '통치학'을 역설한다. 저자가 역설하는 통치학은 도가, 유가, 법가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는 새로운 정치사상이다. 이들 사상 가운데 저자는 특히 노자의 사상에 주목한다. 노자는 인간 사회에 발생하는 모든 폐단의 원인을 '과잉된 인위'에서 찾고 절욕과 절제를 주장하였다. 비록 2천 년 이상의 시간상의 갭이 있지만, 과잉된 인위로 인해 갈등과 분열이 만연한 지금 노자의 사상은 한계에 봉착한 서양 정치사상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상가들의 면모는 다양하다. 저자는 우선 동양 정치사상의 출발점을 관중으로 잡고, 그를 기준으로 도가와 유가, 법가의 정치사상을 분석하고 있다. 도가의 사상가는 노자에 한정되는데, 노자와 더불어 도가 사상의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장자의 경우는 출세간적 성향이 너무나 강해 정치사상 분야에서는 언급할 만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가 사상가는 공자를 중심으로 맹자와 순자를 병행해서 살펴보고 있다. 맹자와 순자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공자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정치사상적 성과들을 일구어냈기 때문이다. 이밖에 법가의 사상가는 자료상의 제약으로 인해 한비자만을 다루고 다른 사상가들은 거의 언급하지 못하였다.

공화정이냐 제왕정이냐, 민주주의냐 사회주의냐, 이런 것들만이 정치학의 전부는 아니다. 이 책은 도가, 유가, 법가의 정치사상을 치본론과 치도론, 치술론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있다. 치본론은 통치의 본질에 관한 논의라 할 수 있고, 치도론과 치술론은 각각 통치목적론과 통치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기준 속에서 저자는 전통사상에 대한 정치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저자의 시도 가운데 특징적인 면을 든다면 무엇보다도 이것이 정치학적 해석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공자의 적통을 맹자가 아닌 순자에게로 연결시키고, 노자의 사상은 장자에 이르러 결정적으로 왜곡되었다고 단정한다. 또한 관중과 한비자를 전통사상의 핵심 영역 속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러한 해석들이 가능한 것은 그것이 모두 철학적 접근이 아닌 정치학적 접근이기 때문이다.



신동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정치학)를 취득하였다.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일본 東京大學 東洋文化硏究所의 객원연구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대표 저술로는 『통치보감』,『관중과 제환공』,『치도와 망도』,『역사대장정』,『난세를 평정하는 중국 통치학』등이 있다.

춘추전국 묵가/병가/법가사상과 PR철학

춘추전국 묵가/병가/법가사상과 PR철학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논문
관리자  |  admin@the-pr.co.kr
폰트키우기폰트줄이기프린트하기메일보내기신고하기
승인 2010.11.23  21:01:54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네이버구글msn
약 2,500여년 전 중국은 춘추 시대다. 춘추시대 이후 진나라의 중국 통일 이전까지 전국시대가 이어진다. 과도기적 춘추전국이라는 역사에서 제자백가라 일컬어지는 사상들이 생겨나게 됐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상들 중 공중관계 활동인 PR과 가장 관련이 깊은 사상은 원시유교사상과 원시도교사상이다. 그 당시 인도에서 생긴 원시불교사상도 PR철학과 관련이 깊다. 아울러 춘추전국시대 묵가, 병가, 법가 사상도 PR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지난달 19일 한국PR학회가 주최한 추계 정기학술대회에서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가 발표한 ‘춘추전국시대 묵가·병가·법가 사상과 PR철학’이 그같은 내용을 담아 눈길을 끌었다. 박 교수의 논문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주>

■ PR에 의미를 주는 원시 동양사상
논어 속 공자님 말씀을 살펴 보면 원시 유교 사상은 순리적이며, 인간적이고, 현실에 충실한 사상이었다. 그러한 원시 유교 사상에 맞게 현대 PR은 유연·관계·가치의 철학을 가진다. 이제 현대 PR은 이윤 추구를 위한 마케팅 PR(MPR)을 넘어 가치 추구의 브랜딩 PR(BPR)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또한 조직과 공중의 관계를 넘어 조직과 생태와의 관계를 배려하면서 공동체 내의 조직과 공중이라는 공동체 PR의 철학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대 PR은 공자님 말씀이었던 순리적 인간적 충실한 모습을 제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그래서 순리적 유연성, 인간적 관계성, 충실한 가치에 따른 현대 PR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노자 도덕경에 실린 도의 철학 역시 주술과 거리가 먼 패러다임 전환의 커다란 철학이다. 노자 사상의 관점에서 PR이란 이기기보다 감싸는 여성성의 페미니즘 PR이며, 공중으로부터 이윤을 얻기보다 공중에게 가치를 베푸는 PR이며, 차이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PR이며, 조직과 공중 간의 관계만이 아닌 생태적 공동체를 실현하려는 PR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PR이란 조직과 공중 간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넘는 그물망 커뮤니케이션으로 하나의 생태적 공동체 안에서 조직과 공중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조직이 공중에게 가치를 주며 서로를 감싸는 관계 활동이다.
불교의 초기 경전인 아함경에서 알 수 있는 원시 불교사상을 살피면 불교는 연기(緣起)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매우 현실적인 세계관의 철학이다. 이러한 원시불교 철학의 관점에서 PR은 공중관계 PR만이 아닌 생태관계 PR로서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공중관계 PR은 조직이 중심에서 환경을 이루는 다양한 공중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이 공중관계 PR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다. 하지만 생태관계 PR에서 조직은 중심에 있지 않고 생태계 안의 인간이 그렇듯 그물망 속의 한 점에 불과하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그물망 커뮤니케이션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은 연기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원시 불교 사상과 생태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현대 PR 철학이 만나는 전환점에서 PR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면, “PR은 호의적 공중 관계를 맺기 위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다”라기보다 “PR은 지속적 생태 관계를 맺어가는 그물망 커뮤니케이션”이다.
■ 원시 묵가 사상과 PR 철학
원시유교사상, 원시도교사상과 마찬가지로 약 2,500여년 전에 생긴 원시묵가사상의 핵심을 세 가지 한자로 압축요약한다면 실(實), 겸(兼), 천(天)이다. 
● 실(實)의 사상 : 묵가사상의 기반은 실용주의, 또는 현실주의 철학이다. 그 사상의 가장 근본적인 요체는 바로 뜬 구름 잡는 이상을 배격하는 실의 사상에 있다. 묵자의 문헌에서 이러한 실의 사상을 가장 실감나게 잘 알 수 있는 부분은 절용(節用)편이다. 절용이란 비용의 절감을 뜻한다. 
● 겸(兼)의 사상 : 겸(兼)이란 더불어·함께의 뜻을 가지고 있다. 겸애(兼愛)란 더불어 사랑한다는 뜻이다. 더불어 사랑하는 것은 자기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같이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은 바로 자기만 사랑하는데서 생긴다. 남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는 무지한데서 생긴다. 그렇게 자기만 사랑하고 남에 대해서는 아무 상관없이 무심한 것은 하나의 병이다. 싸이코패스라는 정신질환은 그러한 병의 결정판이다.
● 천(天)의 사상 : 여기서 하늘이란 천주교와 같이 신앙적인 대상이 아니라 철학적인 표상이다. 즉 하늘의 뜻에 따라 일을 추진하고 일이 성사되어야 현실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묵자 전편에 흐르는 이러한 하늘 중심의 사상은 천지(天志)편에 가장 직접적으로 나와 있다. 천지란 말 그대로 하늘의 뜻이다. 하늘의 뜻을 좇아 따르는 사람을 천자라 한다. 천자는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 그러한 하늘의 뜻은 강하고 큰 나라가 약하고 작은 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머리가 좋고 높은 사람이 아랫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다.
■ 원시 병가 사상과 PR 철학
손자병법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를 말하라고 하면 대개 ‘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고 하는데, 손자병법에는 이런 말이 없다. 손자는 이렇게 욕심스럽게 말하지 않고 다만 ‘知彼知己 白戰不殆’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손자는 전쟁을 미학(art of war)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쟁미학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즉 이기기 위한 전쟁의 기술을 제시한 사람이 아니라 이기게 되는 전쟁의 철학을 제시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손자병법을 다룬 해설서(권형안 2006, 유동환b 2005, 노태준 2009)에서 가장 감명깊은 구절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일 것이다. 
“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이런 고로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은 최선 중의 최선이 아니다. 전쟁하지 않고 적병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 중의 최선이다.)
경쟁자보다 한 수 위에 있어야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 공중관계 활동인 PR도 마찬가지다. 공중과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루어 가려면 경쟁자보다 한 수 위에서 고객에게 좋은 가치를 지속적으로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시시하게 쩨쩨하게 경쟁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승리하게 된다. 승리 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승리라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경쟁을 넘는 경쟁미학이다. 또한 마케팅의 미학이며, PR의 미학이기도 하다.
■ 원시 법가 사상과 PR 철학
법가 사상이란 순자처럼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보기 때문에 인치나 덕치가 아니라 철저한 법치에 의해 강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비자의 법치주의 사상 안에는 노자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가령 노자도덕경 63장에 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이라는 유명한 말이 나온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것에서 시작되고,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한비자는 이러한 문구를 비유해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千丈之堤, 以?蟻之穴潰 百尺之室 以突隙之烟焚 즉 천길의 강둑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지고 백척의 큰집도 굴뚝연기로 불탄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매사에 세심하고 치밀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법가 사상은 PR의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의 문제와 관련시킬 수 있다. 지금까지 원시유교나 원시도교, 원시불교 사상은 개념적으로 PR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에 도움은 되나, 그렇다면 PR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을 주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한비자의 법가 사상에 대해 나라를 움직이는 방법적 시스템이라고 할 때, 이러한 해석을 PR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R이 제대로 되려면 널리 알리는 홍보 시스템이 아니라 다양한 공중관계 시스템을 순리적으로 갖추는 일이 PR의 도(道)이고, 또한 PR의 법(法)이다. 다양한 공중관계 시스템이란 공중별 PR을 위한 시스템이다. 내부 직원이라는 공중과의 관계, 협력업체라는 공중과의 관계, 소비자라는 공중과의 관계, 투자자라는 공중과의 관계, 지역사회 주민이라는 공중과의 관계, 정부 공무원이라는 공중과의 관계, 네티즌이라는 공중과의 관계, 언론사 기자라는 공중과의 관계 등… 이러한 다양한 공중들과 지속적으로 호의적 관계를 이루어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PR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된다. 
결론적으로 사변화 이전의 원시 유교사상은 유연한 인간관계, 주술화 이전의 원시 도교사상은 물처럼 흐르는 순리, 신앙화 이전의 원시 불교사상은 세상만사 얽히고 설킨 연기의 철학이었다. 묵가 사상은 안을 채우는 충실, 병가 사상은 이기게 되는 결과, 법가 사상은 실제로 구현하는 방법의 철학이었다. 이러한 여섯 가지 동양사상의 키워드를 사용해 PR에 대해 종합적으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PR은 그물망 안에서 서로 緣起 되어진 공중들과 지속적 關係를 順理에 따라 이루어 가기 위해 먼저 속을 充實히 한 후 다양한 공중들과의 관계 方法을 마련하여 경쟁에서도 이기게 되는 結果를 가져오는 활동이다.”
■ PR 철학의 패러다임 전환
원시 유교사상 등 동양사상들은 PR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과 방법을 일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PR에 대한 지침을 열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널리 홍보하기보다 가까운 관계부터 맺어 가라.PR은 홍보와 전혀 다르다. 널리 알리는 홍보는 단지 노출을 많이 하도록 해 전달을 잘 하면 되지만, 공중관계인 PR은 더 복합적이며 입체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PR이 잘 되려면 멀리 있는 공중보다 가장 가까운 내부직원, 협력업체 등의 공중부터 좋은 관계를 맺어 가야 한다. PR은 외부로 알리는 활동이라기보다 내부에서부터 먼저 공감이 가도록 지속적으로 이루어 가는 활동이다.
2. 허상적 이미지를 꾸미기보다 실체적 밸류를 가꿔라.
PR에 대한 가장 커다란 오해는 이미지를 좋게 포장하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이미지란 실제와 상관없이 만들어질 수 있는 허상이기 쉽다. PR은 이미지를 겉으로 좋게 해 멋지게 꾸미며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안으로부터 내부의 가치를 충실히 가꾸어 가는 것이다.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라 밸류 빌딩인 셈이다. 이는 실속을 중시하는 묵가 사상과 같은 맥락이다. PR의 키워드는 이미지가 아닌 밸류이다.
3. 입소문을 내려 하지 말고 입소문이 나도록 하라.헛소문과 입소문은 다르다. 헛소문(rumor)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헛되게 퍼지는 것이라면 입소문(mouth to mouth)은 실제로 써 본 사람의 입을 통해 다른 사람의 귀로 들어가 차례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러한 입소문이란 인위적으로 내려고 해서 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나게 되는 것이다. 입소문이 나는 것은 실제로 써 본 사람이 좋은 가치를 통해 좋은 체험을 하고 좋은 관계를 가지고 싶을 때이다.
4. 쌍방향 공중관계보다 그물망 생태관계를 배려하라.
정통적인 PR의 관점에서 조직과 공중 간의 쌍방향 균형은 가장 이상적인 상태이다. 하지만 쌍방향 균형은 단지 조직과 공중 간의 관계일 뿐이다. 불교의 연기사상을 수용했을 때 PR은 더욱 포괄적이며 전반적인 관점을 취하게 된다. 조직과 공중은 모두 관계망인 그물망에 걸쳐 있는 하나의 점일 뿐이다. 그물망에 속해 있는 모든 점들은 고정된 하나의 중심 없이 모두 얽히고 설켜 있는 관계에 있다.
5. 튀는 독창성보다 끌리는 진정성을 가져라.독창성은 다른 것들과 차별화 되는 것이다. 차별화 되면 남들보다 튀게 된다. 광고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바로 이러한 크리에이티브이다. 하지만 광고에서건 광고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PR에서건 독창성(creativity)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진정성(authenticity)이다. 즉 진심이 느껴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정성이 있으면 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끌리게 된다. 진정성 없는 독창성은 사기에 불과하다.
6. 이기려는 목적이 아니라 이기게 되는 결과를 얻어라. PR은 승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맺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PR은 싸움(戰)에서 이기기 위한 꾀(略)인 전략이라는 말과 근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PR이 추구하는 것은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기게 되는 것이다. 이는 손자가 전쟁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이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레드오션이 아닌 블루오션에서도 결국 싸움의 경쟁에서 벗어나면 결과적으로 이기게 된다.
7. 이윤을 얻는 MPR보다 가치를 주는 BPR을 하라.기존의 CPR(Corporate PR)이 머릿속의 호의를 얻는 것이라면, 1991년에 새롭게 생긴 MPR(Marketing PR)은 마케팅 상의 실제적 이윤 얻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MPR은 기업의 목표에 부합되므로 보편적인 용어가 되었다. 하지만 PR은 이윤을 얻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가치를 주기 위한 활동이다. 여기서 가치란 브랜드를 뜻한다. 그래서 BPR(Branding PR)은 가치를 주는 PR이다. 
8. 거창한 뉴스꺼리보다 생생한 이야기꺼리를 찾아라.널리 알리는 홍보를 위해 언론홍보가 중요하다. 그래서 보도자료를 기자에게 제공하는 PR(Press Release)를 통해 대중매체에 공표(publicity)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거창한 뉴스거리의 보도자료를 기자에게 주려고 한다. 하지만 기자의 입장에서 그런 뉴스거리는 별 뉴스가치가 없을 수 있다. 대신에 의미있고 흥미있는 생생한 이야기꺼리가 담긴 보도자료는 끌리게 되어 보다 비중있는 기사로 다루어지기 쉽다.
9. 집중적 정보전달보다 지속적 상호작용에 힘써라.커뮤니케이션이란 쌍방적 의사소통을 뜻하는데, 일방적 의사전달로 이해하기 쉽다. 집중적으로 우리의 정보나 의사를 전달하면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집중성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그것도 단지 일시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PR이 추구하는 관계는 그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10. 다양한 공중관계 시스템을 실제로 갖춰라.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루어 가는 PR 마인드와 철학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이것이 구현되려면 다양한 공중들과의 관계 시스템이 방법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법가 사상이 치밀하며 세심한 시스템으로 나라를 운영해야 하는 방법과 같은 맥락이다. PR은 복잡하며 입체적이고 전반적인 영역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넓고 깊이 생각한 후에 마인드(Philosophy) 기반의 관계 시스템(method)이 작동되어야 한다.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신동준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신동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07월 20일 출간

책소개

손자를 벼린 조조의 성공 지략으로 나만의 ‘대물’을 꿈꿔라!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대여대취』.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 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인 저자 신동준이 조조의《손자약해》를 바탕으로 대여대취 정신을 ‘지금 당장’의 현리 가치로 쉽게 풀어냈다. 저자는 삼국시대 당시 천하통일 기반을 닦은 조조는 도가와 법가 사상에 입각해《손자병법》을 새롭게 편제하고 주석을 가했던 바, 《손자병법》은 반드시 조조 시각에서 접근해야 그 취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조조의 지혜가 담긴《손자병법》으로, 임기응변으로 주도권을 쥐는 방법부터 적과 나의 실력을 알고 싸우는 법, 지략이 뛰어난 자를 활용하는 법 등 ‘크게 주고 크게 얻는’ 비결들을 알려준다.

북소믈리에 한마디!

이 책은 제왕을 위시해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손자병법》의 내용을 조조의 시각으로 새롭게 재구성하여 담아낸 책이다. 다양한 전략과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비즈니스의 아이디어를 얻고, 사람을 깊이 읽는 안목을 얻고, 치국평천하의 방략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저자소개

저자 : 신동준

신동준저자 신동준은 학오學吾 신동준申東埈은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안목을 바탕으로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의 저서는 독자들에게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의 대가인 청명 임창순 선생 밑에서 사서삼경과 『춘추좌전』, 『조선왕조실록』 등의 고전을 배웠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조선일보》와 《한겨레》 등에서 10여 년 간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1994년에 다시 모교 박사과정에 들어가 동양정치사상을 전공했고, 이후 일본의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춘추전국시대 정치사상 비교연구』로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21세기정경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그는 서울대학교·고려대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에게 동양 3국의 역사문화와 정치사상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월간조선》, 《주간동아》, 《주간경향》, 《이코노믹리뷰》 등 다양한 매체에 꾸준히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조선일보》 주말판 경제섹션 〈위클리비즈〉의 인기 칼럼 ‘동양학 산책’을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후흑학』, 『사마천의 부자경제학』, 『조조 사람혁명』, 『팍스 시니카』, 『열국지 교양강의』, 『조선국왕 vs 중국황제』, 『인물로 읽는 중국 현대사』, 『삼국지, 군웅과 치도를 논하다』, 『춘추전국의 영웅들』(전3권), 『CEO의 삼국지』,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연산군을 위한 변명』, 역서 및 편저로는 『자치통감 삼국지』(전2권), 『춘추좌전』(전3권),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초한지』 등이 있다.

목차

서문 ­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005
서설 ­ 조조의 『손자약해』 014

제1장 인리제권因利制權 임기응변으로 주도권을 쥐어라 [대계大計]
국가 존망을 생각하라 · 025 | 전쟁 이치를 파악하라 · 027 | 천지운행을 이해하라 · 029 | 냉철히 비교 분석하라 · 032 | 적의 예상을 깨라 · 036 | 이길 조건을 갖춰라 · 040

제2장 병귀신속兵貴神速 패할 때도 속전속결로 끝내라 [작전作戰]
비용을 생각하라 · 047 | 오래 끌지 말라 · 051 | 현지서 조달하라 · 059 | 민폐를 줄여라 · 062 | 내 것으로 만들라 · 065 | 속전속결을 행하라 · 069

제3장 지피지기知彼知己 적과 나의 실력을 알고 싸워라 [모공謀攻]
싸우지 말고 이겨라 · 075 | 유혈전을 피하라 · 086 | 유연하게 생각하라 · 089 | 양장을 선발하라 · 093 | 맡겼으면 믿어라 · 095 | 자신부터 돌아보라 · 101

제4장 가승재적可勝在敵 승리는 적에게 달려 있다 [군형軍形]
공격처럼 수비하라 · 109 | 패하지 않는 싸움을 하라 · 112 | 내부를 바르게 하라 · 116 | 인재를 길러라 · 119

제5장 기정상생奇正相生 기병과 정병을 뒤섞어 운용하라 [병세兵勢]
기병을 활용하라 · 125 | 절도를 갖춰라 · 133 | 미끼로 유인하라 · 139 | 전세를 장악하라 · 142

제6장 피실격허避實擊虛 실한 곳을 피하고 허한 곳을 쳐라 [허실虛實]
고정된 상식을 깨라 · 149 | 재빨리 치고 빠져라 · 152 | 힘을 집중시켜라 · 156 | 자취를 감춰라 · 161

제7장 병이사립兵以詐立 용병은 적을 속이는데서 시작한다 [군쟁軍爭]
돌아가듯 직진하라 · 173 | 능력껏 짐을 져라 · 177 | 유리할 때 움직여라 · 182 | 상대를 흔들어라 · 186 | 퇴로를 열어 주어라 · 191

제8장 필사가살必死可殺 죽기로 싸울 것을 고집하면 패한다 [구변九變]
현장에서 대처하라 · 201 | 군명을 거부하라 · 209 | 유사시를 대비하라 · 218 | 자신을 경계하라 · 223

제9장 병비익다兵非益多 병력이 많다고 꼭 좋은 게 아니다 [행군行軍]
알고 움직여라 · 235 | 발밑을 조심하라 · 238 | 조짐을 읽어라 · 244 | 문무를 겸전하라 · 252

제10장 지천지지知天知地 천시와 지리까지 읽어야 이긴다 [지형地形]
현지 전술을 구사하라 · 265 | 내부부터 단속하라 · 272 | 백성을 보호하라 · 277 | 자식처럼 아껴라 · 281

제11장 오월동주吳越同舟 필요하면 적과 함께 배에 올라라 [구지九地]
상황에 적응하라 · 289 | 불리하면 중지하라 · 299 | 사지로 내던져라 · 303 | 오월동주를 행하라 · 308 | 필승을 기하라 · 312 | 천하를 품어라 · 319 | 임무만 알려라 · 325

제12장 비리부동非利不動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마라 [화공火攻]
도구부터 준비하라 · 335 | 바람을 따르라 · 342 | 감정을 자제하라 · 350

제13장 이지위간以智爲間 지략이 뛰어난 자를 활용하라 [용간用間]
정보망을 갖춰라 · 361 | 보안에 주의하라 · 367 | 인재를 활용하라 · 374

후기 21세기 승부는 손자병법 손에 있다! 380
참고문헌 391

책 속으로

『손자병법』에 나오는 모든 전략 전술은 기본적으로 부득이용병 또는 집이시동에 입각한다. 평시에는 무기를 거두었다가 전시에 무기를 들고 대응하라고 주문한다. 그렇다면 「시계」에서 부득이용병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거론하는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은 과연 무엇을 뜻할까? 우선 「시계」에서 말하는 ‘도’는 『도덕경』에서 역설하듯이 ‘덕德’의 본원을 뜻한다. 덕을 두고 노자는 무위지치無爲之治, 장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 공자는 인仁, 묵자와 맹자는 의義, 순자는 예禮, 한비자는 법法, 손무는 무武라 했다. 이처럼 제자백가 모두 덕을 언급하지만, 모두가 최상으로 여겼던 것은 무위지치다. 무위지치는 제왕의 통치가 마치 해와 달이 만물을 고루 비추듯이 지극히 공평무사함을 뜻한다. (28쪽)

삼국시대 초기 신흥 강자 조조와 당대 최고의 무력을 자랑한 원소의 운명이 갈리게 된 결정적인 배경은 조조가 천자를 옆에 끼고 천하를 호령하는 이른바 ‘협천자挾天子, 영제후令諸侯’를 실행한 데 있다. 명분상의 우위를 점한 것이 요체다. 원소는 힘만 믿고 이를 무시했다. 대개 원소의 자만심이 지나쳤다고 해석하나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원소 스스로 천자가 되고자 욕심을 낸 것이 정답이다. 이미 민심이 한나라를 떠난 만큼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자 한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릇이다. 원소는 그릇이 작았다. 게다가 시기심과 욕심도 많았다. 난세에 천하를 거머쥐려는 자로서는 실격이다. (90쪽)

조조의 인재 등용은 공적인 대의에 입각한 구현求賢, 유비의 용인술은 사사로운 의리에 기초한 인현引賢으로 표현할 수 있다. 손권은 시의時宜를 좇은 용현用賢에 해당한다. 그의 용현은 일정한 선을 넘지 않았다. 그 비결은 손권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도 잘 나타난다. “상대의 장점을 높이고 상대의 단점을 곧 잊어버린다.” 그는 상대의 단점에 눈을 감아버리고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한번 일을 맡긴 뒤에는 전폭적인 신임을 아끼지 않았다. 적벽대전에서 주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이릉대전에서 육손을 탁용한 데 이어 제갈근에게 끝없는 믿음을 보낸 것이 그 증거다. (114­115쪽)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문’과 ‘무’를 고루 갖춰 명실상부한 ‘문무겸전’의 자세로 새 왕조를 개창한 인물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창업주인 위무제 조조다. 그는 동탁토벌을 기치로 내걸고 군벌 경쟁에 뛰어든 이래 죽을 때까지 전장에서 평생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목할 것은 당시 유비와 손권을 포함한 여러 군웅 가운데 조조처럼 전장에서조차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열심히 공부한 인물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조조의 행보 가운데 문무겸전의 병도 이치를 가장 잘 보여 준 사례로 ‘분소밀신焚燒密信’ 일화를 들 수 있다. 이 일화는 조조가 원소를 격파한 관도대전 승리 이후에 나온 것이다. (253­254쪽)

“옛날 용병을 잘하는 사람은 아군에게 유리하면 곧바로 공격하고 불리하면 곧바로 중지했다”는 대목 가운데 중요한 것은 불리할 때 중지하는 일이다. 유리할 때 공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웬만한 장수라면 능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불리할 때 중지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대 판단하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그런 판단을 내렸을지라도 이미 투자한 것이 많은 까닭에 선뜻 발을 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진면목은 바로 이때 나온다. 이를 잘한 인물로 삼국시대의 조조를 들 수 있다. (300쪽) 닫기

출판사 서평

손자병법, 세상을 크게 바라보는 안목을 담다

천하를 사로잡은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두 『손자병법』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손정의는 『손자병법』을 자신의 경영 전략과 접목시킨 ‘자승병법自乘兵法’을 만들어 일본 최고의 부자가 됐다.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도 오늘의 자신이 있는 것은 『손자병법』 덕분이라고 했다. 스티브 잡스가 ‘창조 경영’과 소프트웨어의 상징 애플제국을 건설하고, 빌 게이츠가 윈도우 개발로 천하의 부를 거머쥐고, 손정의가 일본 최대의 컴퓨터 회사를 창립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금을 관통하는 『손자병법』의 위대한 면모를 웅변하는 대목이다.
고금의 역사를 개관하면 알 수 있듯이 무력을 동원하기 전에 명예와 이익, 권력을 좋아하는 인간의 기본 심성을 적극 활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고수의 비결이다. 『손자병법』은 바로 이런 이치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손자병법』은 병가 사상의 정수를 응축한 최고의 고전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손자병법』을 세상을 크게 바라보는 안목과 지혜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고전으로 간주했다.
수천 년에 걸쳐 많은 병서가 명멸했지만 유일하게 『손자병법』만 제왕을 위시해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읽으면 글로벌 비즈니스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두목 같은 문인이 읽으면 사람을 깊이 읽는 안목을 얻을 수 있으며, 조조 같은 위정자가 읽으면 치국평천하의 방략을 찾을 수 있다.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적확한 탐구가 빛나는 최고의 지략서 『손자병법』의 핵심은 ‘대여대취’다. 크게 주고 크게 얻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익을 향해 무한 질주하는 인간의 본성 ‘호리지성好利之性’을 정밀하게 추적함으로써 얻어낸 것이다. 그 호리지성, 대여대취의 뜻을 『손자병법』의 뚜렷한 맥으로 관통시킨 인물이 바로 조조다.
이 책은 조조의 『손자약해』를 바탕으로 대여대취 정신을 ‘지금 당장’의 현실 가치로 풀어쓴 것이다. 삼국시대 당시 천하통일 기반을 닦은 조조는 도가와 법가 사상에 입각해 『손자병법』을 새롭게 편제하고 주석을 가했던바, 『손자병법』은 반드시 조조 시각에서 접근해야 그 취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시중에는 『한비자』의 「외저설 좌상」에 나오듯 겉의 화려한 장식에 현혹되어 정작 알맹이를 놓치는 매독환주買?還珠의 우를 범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조조가 역설한 집이시동 이치를 무시하거나 간과한 결과다. 여기에서 집이시동은 평소 무기를 거두어들였다가 부득이할 때 사용한다는 뜻이다. 집이시동은 『손자병법』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 이념에 해당한다.
대여대취는 곧 커다란 미끼로 상대방을 유인해 제압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본성을 최대한 활용해야 궁극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다. 『손자병법』이 「모공」에서 백전백승은 결코 최상의 계책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손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진 손무와 이를 새롭게 편제한 조조, 무위지치를 역설한 노자, 무위자연을 내세운 장자, 공평무사한 법치를 역설한 한비자 모두 대여대취의 취지에 공명했다.

손자병법, 난세의 제왕학

『손자병법』이 『한비자』와 더불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동안 ‘난세의 제왕학’으로 군림하는 것은 극히 현실적인 입장에서 난세의 종식 방략을 제시한 덕분이다. 진시황이 병가와 법가 사상에 입각해 사상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조조가 당대 최고의 병법가이자 법가 사상가로 행보하며 삼국시대를 마무리 짓는 기틀을 닦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조가 『손자병법』을 새롭게 펴낸 『손자약해』 서문에서 『도덕경』의 제도帝道 이념을 병도 이념으로 끌어들인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조조가 “영웅은 가슴에는 큰 뜻을 품고, 뱃속에는 좋은 계책이 있어야 한다”고 일갈한 것처럼 ‘뜻’과 ‘꿈’을 크게 갖고 대성하고 싶다면 반드시 이 책을 접해야 할 것이다. 백날의 작은 승리는 별것 아니며 매사가 그렇듯 큰 이익을 미끼로 내걸어야만 큰 고기를 낚을 수 있다. 조조의 지혜가 살아 꿈틀대는 『손자병법』으로 ‘크게 주고 크게 얻는’ 그 최강 비결을 배워라.

2014년 9월 24일 수요일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김시천

새롭게 깨어난 도가의 칼과 방패
이종훈 기자  |  whdgnswwkdl@snu.kr

승인 2013.11.23  22:40:34

  
 
“색깔과 얼굴이 전혀 상이한 두 고전이 함께 짝을 이뤄 하나의 사상처럼 거론된다는 것, 그것이 내겐 하나의 모순처럼 보인다”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의 저자 김시천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는 책의 서두부터 노자와 장자를 노·장사상으로 묶어서 다뤄온 종래의 관점에 반대하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노자』는 권력을 얻기 위한 칼이고, 『장자』는 세상에서 다치지 않게 살기 위한 방패라는 것이다.

저자에게 『노자』는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는 뜻을 품은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지침서이다. 노자는 ‘도’가 만물의 질서이자 세상이 흘러가는 기본원리이고, 사람은 인위적이지 않게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통치자는 도를 체득하고 다른 이들도 도에 맞게 살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노자를 “이상적 통치자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다시 이치에 맞는 상태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한편 김 교수는 『장자』를 세상의 풍파로부터 권력을 얻으려하나 얻지 못한 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해석한다. 『장자』에서는 ‘노닌다’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노니는 것은 삶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으려는 것이다. ‘노닌다’는 행위는 고단한 삶에서 종종 우리를 떠나게 해 주지만, 우리가 삶을 부정하고 이를 벗어나게 하지는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떠난다는 것에는 돌아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삶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노닐고 다시 속세로 돌아온 후의 삶은 이전과 달리 경쟁, 성공욕, 이해관계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이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노자』와 『장자』에는 천 개의 얼굴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존의 해석과는 다른 저자의 관점도 ‘옳은 해석’이 아닌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해석은 그 동안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데 있어 하나의 규범으로만 생각되던 노장사상을 현실의 삶에 적용한 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할 때는 노자의 칼이 우리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실패하고 상처받고 방황할 때는 장자의 방패가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삶의 모순과 철학의 위안

김시천 지음 | 책세상 | 2013년 11월 05일 출간

책소개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노자와 장자를 둘러싼 여러 차원의 모순을 환기한다.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 노자는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과 같은’ 책이고, 장자는 권력의 중심부로 나아가지 못한 자가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방패와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격이 다른 두 책이 마치 동질적인 것인 양 ‘노장’이라는 말로 함께 묶여 거론되니 이 또한 모순이다. 저자는 이러한 모순을, 성리학이라는 정치적 교조를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금단의 노장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었던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분열된 내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저자소개

저자 : 김시천

저자 김시천은 숭실대학교 철학과에서〈노자의 양생론적 해석과 의리론적 해석〉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대학에 진학할 때부터 공부를 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그다지 훌륭한 학자는 못 되는 것 같다는 생각에 가끔씩 공부의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우연히 노자와 장자를 전공하게 되었는데, 공부해보니《노자》가 그다지 좋은 고전이 아닌 것 같아 한동안은 유교儒敎 사상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며 고전을 이해해보려 애썼다. 그러던 중 인문의학연구소에 합류해 활동하면서 전통 한의학의 철학적 바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기氣에 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래된 동아시아 고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이 깊어갔으나, 시민과 함께하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고전의 의미는 발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요즘에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 고전에 접근하는 ‘고전 읽기’에 골몰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철학에서 이야기로》,《이기주의를 위한 변명》,《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공저),《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공저),《기학의 모험 1?2》(공저) 등이 있다. 독특한 제목의 이 책《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그간의 ‘노장老莊’ 공부를 결산하는 책이자,《장자―무하유지향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성인과 제왕》,《노자―혼돈으로부터의 탈주》로 이어질 4부작의 첫 책이다.

목차

책을 펴내며 *9

서장 _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15

제1부 《노자》, 칼의 노래

1장 노자와 《노자》
- ‘전설’을 해체하고 ‘인간’을 보다 *31
1. 누구의, 누구를 위한 《노자》인가 *31
2. 하나이면서 여럿인 《노자》, ‘노자열전’ *34
3. 성인과 제왕, 그리고 범인 - 《노자》 속의 인간들 *55
4. 호모 임페리알리스의 《노자》 *63

2장 《노자》의 두 전통
- 통치술에서 철학의 지혜를 찾다 *67
1. 하상공과 왕필, 두 밀레니엄 두 가지 해석 *67
2. 논리와 해석 방법의 차이 - 훈고와 의리 *70
3. 우주와 인간, 기와 도 *82
4. 우주론에서 심성론으로 *91

3장 조선 사회의 《노자》와 지식인
- 조선의 유학자, 이단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다 *95
1. 《순언》, 그 ‘침묵’의 역사 *95
2. 유가 전통과 이단 *101
3. 이단에 대한 모순된 태도 *107
4. 사문난적 혹은 영혼의 전쟁 *115
5. 정통 유가 지식인의 내면 풍경 *122
6. 정통과 이단, 유교적 사유의 안과 밖 *127

제2부 《장자》, 춤추는 방패

4장 《장자》, 이단과 전통
- 사이비 속에 감추어진 삶의 진실을 찾다 *137
1. 해석의 갈등, 20세기의 《장자》 *137
2. 장자의 두 얼굴, 《사기》의 장자와 《장자》의 장자 *143
3. 역사 속의 《장자》 *155
4. 유학 안에서 《장자》 읽기, 사이비와 진유 *166
5. 진유가 된 사이비 장자, 이단에서 전통으로 *175

5장 《장자》, 해석의 갈등
- 유가와 도가 사이에서 ‘삶의 길’을 묻다 *179
1. 《장자》를 말하기의 어려움 *179
2. 《장자》에서 ‘정신’의 개념 *184
3. ‘정신’의 길 - 《장자》, 《관자》, 《회남자》 *189
4. ‘마음’의 길 - 《순자》와 유가 *195
5. 《장자》의 무정한 자아 - 신비주의 순수 의식인가, 정신양생론인가 *202

6장 《장자》의 ‘유遊’
- 노니는 삶, 일상으로 내려오다 *211
1. ‘놀이’와 ‘노님遊’ *211
2. ‘놀다’, 놀이, ‘장난作亂’ *216
3. ‘유’와 정신 *222
4. 심유心遊 - 천유天遊 그리고 세유世遊 *229
5. 정신과 유희 - 삶의 복원 *236

제3부 노장, 삶의 모순과 철학의 위안

7장 유가와 도가의 행위 이론
- ‘무위자연’으로 정치를 논하다 *245
1. 20세기의 철학사 서술을 넘어 *245
2. 성인과 ‘무위’의 이상 *249
3. ‘유위’의 빛과 그늘 - 《묵자》, 《맹자》 *255
4. 선악의 피안 - 유위 - 무위의 대립을 넘어 *262
5. 고대 중국의 행위 이론 비교 - 무위, 유위, 형명 *266

8장 《노자》와 페미니즘
- 노자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 *271
1. 《노자》, 다른 목소리로? *271
2. 노장, 진실 혹은 거짓말 *275
3. 《노자》와 페미니즘, 세 개의 메아리 *279
4. 《노자》의 성인, 계곡처럼 낮게 암컷처럼 부드럽게 *285
5. 《노자》와 페미니즘은 만날 수 있는가 *290

9장 《장자》와 과학 기술
- 장자는 기술 비관론자가 아니었다 *299
1. 기술, 애증의 교차로 *299
2. 기심, ‘최소 투자 최대 효과의 심리’ *304
3. 기技를 통한 도道, 또 다른 노하우 *310
4. 기예의 도, 달인의 철학 *316
5.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 21세기 과학 기술 시대의 ‘도술’을 찾아서 *320

종장 _ 도가에서 도술로, 철학에서 삶으로 *327
1. 21세기 ‘노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327
2. 도교란 무엇인가 *329
3. 텍스트와 도술 *333
4. 학學의 공동체 - ‘사제 모델’과 경술 *337
5. 학學에서 유遊로 - 삶의 기술로서의 도술 *342
6. 도술의 두 차원 - 양생과 달생 *349

참고문헌 *354
찾아보기 *364

출판사 서평

무위자연의 신화를 넘어 치열한 삶의 이야기로
― 우리 시대 노장을 읽는 아주 특별한 방법

《노자》와《장자》는 유교 중심의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공맹과 대등한 사상적 지위를 누려보지 못한 채 늘 이단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동아시아 고전 중 대중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책이 되었다. 특히 1999년에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라는 강연은 노자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다양한 대중 강연이 노자와 장자를 다루어왔다. 한때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서구 이론의 영향을 받은 해체론적 노자 해석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대중에게《노자》와《장자》에 대한 어떤 고정된 인상이 각인되었다. 탈속, 자연, 유유자적, 현자, 탈정치, 반문명 같은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인상은 과연 올바른 이해의 결과일까?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노자와 장자를 전공한 동양철학자가 그간의 노장 공부의 결실을 모아 엮은 책으로, 텍스트의 문맥을 놓치지 않는 전공자의 시선을 통해 노장에 대한 통념이 실제의《노자》,《장자》와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즉 이 책은 두 문헌의 내부에 있는 ‘사상’을 체계적으로 해명하기보다는 기존의 연구 성과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통해, 상식으로 굳어진 노장 철학의 주제들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오늘’의 시각으로 재검토함으로써 기존의 논의와 다른 해석의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노자》는 천하의 정치적?사상적?사회적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사람들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헌으로서 정치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을 위한 기술적 지침서와 같은 책이며, 반면《장자》는 권력을 차지하지 못한 지식인들을 위해 세상과의 불화를 해소하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 문헌이 이렇게 이질적임에도《노자》와《장자》는 ‘노장’이라는 말로 한데 묶여 실제와는 동떨어진 고정관념을 낳아왔으며, 이러한 고정관념에 일조한 주제들 중 대표적인 것이 노장을 대변하는 개념이 ‘무위無爲’라는 것,《노자》가 페미니즘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것,《장자》가 기술 문명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 무위는 노장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간주될 만큼 노장의 독보적인 개념도 아니고 탈속적?반문명적인 삶과 연관되는 개념도 아니다. 또《노자》와 페미니즘,《장자》와 기술 문명 비판을 연결 짓는 것은 문맥을 간과한 채 원문을 선별적으로 인용하거나 잘못 이해한 것으로, 전통과 탈근대적인 것을 잘못 연결한 결과이다.
저자는《노자》와《장자》를 이렇게 읽어내는 것에서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노장을 어떻게 삶에 유의미한 것으로 지속시킬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그리하여 노장을 도가나 도교라는 이름의 철학이나 종교로 받아들이지 말고,《장자》의 ‘유遊’(노님) 개념에 입각해 ‘도술道術Tao-techniques’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여기서 도술이란 신비한 초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부정하거나 삶에 종속되지 않고 삶을 누리는 기술, 정치와 문명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누리는 기술을 말하며, 이러한 시각은 철학과 종교의 이분법,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결국 이 책은《노자》와《장자》에서 삶의 기술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국내 학자의 독창적인 노장 연구서가 드문데다, ‘무위자연’이라는 표현이 대변하듯 탈속적?탈정치적?반문명적 사상이라는 노장 사상에 대한 일면적 통념이 지배하는 현실에서,《노자》와《장자》에 대한 역사적 해석과 쟁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삶의 양식으로서의 ‘도술’이라는 21세기 노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는 이 책은 저자가 줄곧 견지해온 ‘전통의 현대적 해석’에 대한 학문적?실천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하는 노자의 칼, 춤추는 장자의 방패 ― 노장과 ‘모순’
이 책의 제목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노자》와《장자》를 둘러싼 여러 차원의 모순을 환기한다. 우선 글자 그대로 ‘창(칼)과 방패’로서의 ‘모순’이다.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노자》는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과 같은’ 책이고,《장자》는 권력의 중심부로 나아가지 못한 자가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방패와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격이 다른 두 책이 마치 동질적인 것인 양 ‘노장’이라는 말로 함께 묶여 거론되니 이 또한 모순이다.
한편,《노자》와《장자》는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조선 사회에서 이단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지만, 모순되게도 이이, 박세당, 홍석주, 서명응, 한원진 같은 정통 유학자들에 의해 주석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시대에 박세당의《신주도덕경》과《남화경주해산보》, 이이의《순언》, 홍석주의《정노》, 한원진의《장자변해》같은 노장 주석서가 쓰이고 읽혔다. 요컨대 조선 시대에《노자》와《장자》는 이단이면서도 ‘바깥’에 있지 않고 ‘안’에 있었던 셈이며, 저자는 이러한 모순을, 성리학이라는 정치적 교조를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금단의 노장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었던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분열된 내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저자는《노자》와《장자》에서 이런 중층의 ‘모순’을 읽어내며, 결국 삶 자체가 그렇게 모순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게다가《노자》와《장자》모두 단일 저자에 의해 쓰인 책이 아니어서 여러 목소리를 내는데다 모호한 언어로 되어 있어 해석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니, 노장 읽기는 모순으로 가득해 종종 길을 잃게 만드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저자는 노장의 모순이 삶의 모순과 유비를 이루기에 오히려 삶에 위로를 준다고 말하며, 나아가 도가나 도교 대신 ‘도술’이라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철학이나 종교 아닌 삶의 기술로 받아들여 현실적 동반자로 삼을 방법까지 모색한다.

《노자》― 패권 지망자들의 책, 권모술수의 책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노자》는 전국 시대 말기에서 한나라 초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완성된 책이다. 그리고《노자》의 저자는 노자라는 한 사람의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니라 신원을 알 수 없는 여러 사람이다. 이 복수의 저자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는지는《노자》텍스트에서 어떤 사람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지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통념과 달리《노자》에는 “정치적 세계의 비정함에 냉소를 보내고 문명을 비판하고 유가와 같은 도덕적 엄격주의에 식상한 인간, 환경과 자연의 가치를 긍정하고 페미니즘적 세계관을 지향하는 인간”은 등장하지 않는다.《노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상은 오히려 성인聖人, 후왕侯王, 사士 같은 권력자들이다. 이는《노자》의 저자나 독자가 패권 지망자들이었음을 짐작게 하고, 실제로《노자》는 내용상 권모술수를 포함한 “권력의 기술”에 대한 책이나 다름없다.
《노자》에 대해서는 수많은 주석자들에 의해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졌고 그러한 해석들에서 공통의 기반과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대표적인《노자》해석으로는 한나라 하상공과 위나라 왕필의 해석이 꼽힌다. 두 사람의 주석서는 똑같이《노자》를 다루면서도 아주 다른 해석으로 나아간다. 하상공이《노자》자구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치중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는 데 충실한 편이라면 왕필은 유가의 입장에서《노자》를 해석한다. 그리하여 하상공의 해석은 도교의 차원과 연결되고 왕필의 해석은 유학자들의 해석의 토대가 되면서 다양한 조류를 만들어나가게 되었다. 그런 만큼 어떤 주석서를 통해《노자》를 읽는가에 따라《노자》의 얼굴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조선 사회에서는《노자》가 어떻게 수용되었을까? 유학 아닌 것은 이단으로서 철저히 배척했던 조선조에서 뜻밖에도 이이의《순언》, 박세당의《신주도덕경》, 홍석주의《정노》, 서명응의《도덕지귀》등 모두 다섯 권의《노자》주석서가 쓰였으며,《선조실록》에는 과거시험 답안지에 노장의 문장이 인용된 것을 놓고 임금과 신하가 왈가왈부하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이는 모두 임금과 신하들, 그리고 과거에 응시한 선비가《노자》와《장자》를 읽어 알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이단의 문제점을 알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읽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우긴 했지만, 어쨌든 이는 조선 사회에서 정통인 유가와 이단인 도가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장자》― 출사하지 못한 비운의 지식인의 책, 세속에서 노니는 기술을 이야기하는 책
《장자》는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문헌으로 추측되지만 성립 시기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장자》는 진晉나라의 곽상이 틀을 갖춘 것으로 33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장자가 지은 것은 ‘내편’ 7편뿐이고 나머지는 후학들의 글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따라서《장자》에는 서너 갈래의 다른 목소리가 뒤섞여 있으며, 이는《장자》해석의 어려움을 낳는다.《장자》의 어느 편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중국 철학계에서《장자》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중국인의 패배주의와 노예근성의 정신적 근원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에 중국 고유 종교인 도교의 사상적 원류, 유가를 계승한 사상, 중국 예술 정신의 원류라는 등등의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한국 학계에서도 이런 식의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저자 김시천은《장자》의 이야기들에서 얻을 수 있는 장자에 대한 정보를 통해서 “뜻을 품었으되 가난해 벼슬에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한 지식인”을 장자의 일관된 모습으로 포착해내고,《장자》를 “비운의 지식인”의 책으로 본다. 치자의 영광과 명예로 나아가지 못하고 불행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삶의 기술을 이야기한 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장자》에서 가장 주목하는 개념은 ‘유遊’이다. ‘유’는 ‘노닐다’에 가까운 개념으로, 잠정적 ‘떠남’과 떠났다가 ‘돌아옴’을 전제한다. 떠남이 정치적 야망이나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는 세속의 삶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거리를 두는 것이라면, 돌아옴은 그렇게 거리를 둔 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서의 깨달음을 안고 세속의 삶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돌아왔을 때는 삶의 태도가 바뀌어 다툼과 경쟁과 갈등에서 벗어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삶의 태도가 “탈속적 태도”도 아니고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거나 변화시키려는 변혁적 실천”도 아니며, 다만 “한 개체가 겪는 갈등과 억압을 승화시킨 태도”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유’는 삶의 보전이라는 ‘양생’의 논리와 이어지며, 또한 문화와 예술에 영감과 창조적 활력을 준다고 본다.
《장자》역시 조선 시대에 유학자들 사이에서 읽혔고 박세당, 한원진에 의해 주석되었다. 다만《장자》는 대체로 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이단’이라기보다는 ‘사이비’에 가까운 존재였다.

《노자》와《장자》에 대한 통념은 올바른가
두 문헌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인위나 억압을 거부하고 자연 속에서 초탈한 태도로 살아가는 현자의 격언쯤으로《노자》와《장자》를 떠올리는 통념과 거리가 있다. 저자는 노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많다고 보고 이를 점검한다. 여기서의 논점은 ‘무위자연’이 노장을 대변하는 개념인가,《노자》가 페미니즘과 닿아 있는가,《장자》가 기술 문명에 반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유가는 ‘유위有爲’를 주창했고 노장은 ‘무위’를 주창해 유가를 비판했으며, 유위는 인위에 상응하고 무위는 자연에 상응한다는 것이 통념상의 도식이다. 하지만 저자는《논어》,《맹자》,《순자》,《묵자》등 여러 고전 문헌들의 ‘무위’ - ‘유위’ 용례를 분석해, 무위와 유위가 대립되는 개념이고 무위와 자연이 상응하는 개념이라는 상식은 틀린 것임을, 그리고 무위란 “제자백가의 공통 개념으로서 어느 특정 학파가 전유한 것이 아니며, 기본적으로 정치 행위 이론”임을 밝힌다. 따라서 무위자연을 도시와 문명을 떠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과 연관 짓고, 무위자연이 노장이 추구하는 삶의 대명사라고 이해하는 것은 수정되어야 한다.
그럼《노자》와 페미니즘의 관계는 어떠한가? 저자는《노자》가 여타 문헌에 비해 여성성을 중시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것이 여성의 자유와 해방을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의 차원은 아니라고 말한다.《노자》의 몇몇 표현들을 들어《노자》를 페미니즘과 연결시키는 것은, 유가는 뭔가 부정적인 사상 체계이고 도가는 뭔가 긍정적인 사상 체계라는 도식적 선입견 때문에《노자》에 나오는 여성성 강조의 표현 하나도 과도한 의미를 담아 해석한 결과라는 것이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노자의 시대는 가부장제 완성의 정점이었는데 그러한 시대에 노자가 여성을 찬양하고 페미니즘 철학을 전개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일이냐고 저자는 반문한다.《노자》에서 볼 수 있는 여성성의 강조는 여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성적 강함에만 의지하는 정치는 온전하지 못하니 군왕은 여성의 유약함을 가장하는 교묘한 ‘술수’ 또한 겸비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자》가 기술 문명을 비판했다는 상식 또한 잘못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식이〈천지〉편에 나오는 ‘기심機心’이란 말을 “편리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해석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원문의 맥락을 따른다면 ‘기심’을 “최소 투자 최대 효과의 심리”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그렇다면〈천지〉편의 이야기에서 기심을 비판하는 것은 “기회주의적 심리를 비판한 것이지 고도의 기술적 성취 그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양생주〉편에 나오는 포정?丁의 이야기에서는 기술에 대한 긍정을 읽을 수 있다. 소를 잡는 데 있어서 기술을 넘어 도의 경지에 오른 포정의 칼놀림을 보고 문혜군이 ‘양생의 도’를 터득했다는 이 이야기로 미루어,《장자》에서는 기술이 비판되는 것이 아니라 도에 이를 수 있는 방법으로서 긍정됨을 알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노장, 삶의 기술로서의 ‘도술’을 위하여
―21세기에《노자》와《장자》를 어떻게 향유할 것인가

오늘날 한국 학계에서 ‘노장’은 “《노자》와《장자》라는 텍스트에 담긴 내용 혹은 그와 관련된 문헌에 담긴 철학적, 사상적, 종교적 전통”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노장이 유가 전통에 포섭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노자》와《장자》가 한대漢代 이래 제자백가의 하나인 ‘도가’로 분류되고 20세기에 ‘도교’의 기초 경전으로 이해되면서 노장은 철학적, 종교학적으로 언제나 도가와 도교라는 더 큰 범주와 철저하게 관련돼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나 노장을 철학이나 종교로서 대하지 말고 우리의 삶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지속시키며 향유할 방법을 모색하자고 말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노장을 도가/도교 아닌 ‘도술’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 저자는 다시 ‘유遊’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저자는 ‘유’ 개념을 현대라는 패러다임으로 가져와 ‘유’를 정치를 부정하기보다 정치를 누리고, 문명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문명을 누리는 태도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러한 ‘유’에 이르도록 해주는 것이 양생養生nourishing-life의 기술(자의적 권력에 맞서 자신의 생명과 삶을 보전하는 기술)과 달생達生mastering-life의 기술(양생의 기술을 삶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하는 기술)이며, ‘도술’이란 이러한 삶의 기술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시대라는 틀 안에서의 고전 읽기를 고민해온 저자는 이처럼 노장 전공자로서의 진지한 노장 읽기를 통해 통념에 가려져 있었던《노자》와《장자》의 실제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동시에 이러한 고전을 삶 속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준다. 그리하여 이 책은 저자 자신의 바람처럼 학술적 연구서이면서 작은 이야기책이기도 하다.

노자 정치를 깨우다 =지도자의 지침서, 안성재


노자 정치를 깨우다 지도자의 지침서


안성재 지음 | 어문학사 | 2012년 05월 16일 출간

저자소개

저자 : 안성재

저자 안성재(安性栽)는 인천대학교 교수, 인천대학교 공자학원 원장(現), 인천대학교 중국학연구소 소장(前). 건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문학사, 중국 북경(北京)대학교 중국어언문학과 문학석사, 중국 북경(北京)대학교 중국어언문학과 문학박사. 필자는 한국수사학회 주관의 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양계초와 호적은 학설은 논리적으로 풀어야 하고, 철학의 발전은 논리적 방법의 발전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에서는 묵자만이 유일하게 그리고 가장 완전한 논리 원칙에 의거하여 학설을 서술했다.”는 내용을 접했다. 그때 문득 “제자백가사상 모두 이해와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논리학과 수사학 범주에 속하는데, 왜 묵자보다 이른 시대의 노자에 대한 언급은 없을까?”라는 의문점이 들었고, 이에 논리학과 수사학적 관점에서 노자의 『도덕경』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의『도덕경』 번역이 본의와 일정한 괴리감이 있다고 판단했고, 처음부터 다시 문자와 문장구조 분석을 통한 번역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노자의 ‘도(道)’는 무위자연이 아닌 대동의 통치이념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데, 이러한 필자의 주관적 확신을 객관적인 자료로 증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하지만 곧 『도덕경』 이외에 노자와 관련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현실의 벽에 막히게 되었다. 그때 단서가 된 것이 바로 사마천의 『사기』에 남아 있는 <노자한비열전>이었다. 여기에는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예(禮)에 대해서 물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필자는 이 점에 착안하여 어쩌면 노자와 공자의 사상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막연한 기대감으로 『십삼경』에 손을 대었고, 아울러 『사기』와 『십팔사략』까지 섭렵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전적들은 그 분량이 너무나도 방대하지만, 노자가 주나라 말기 사람이고 또 그의 가치관이 대동으로 집약되어 있다는 전제하에서, 우선 삼황오제와 하·상·주나라까지의 기록을 살폈고, 그 결과물로 『노자의 재구성』 및『노자, 정치를 깨우다』 두 저서를 집필하게 된 것이다. 만약 필자의 노자에 대한 결론이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기존의 도가사상에 대한 인식 및 도가사상과 유가사상의 관계 나아가 노자와 장자의 관계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제 필자는 다음의 작업으로 노자와 공자 사상의 공통점 및 차이점 연구를 진행하려고 한다. 아울러 차후 여력이 된다면, 양계초와 호적의 묵가사상에 대한 주장에 대해서도 고찰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장, MP3CD1장포함)

목차

들어가는 글 4

第1章 이름 지을 수 없다 11
第2章 함께 하는 것이다 15
第3章 얕은꾀를 부리지 않다 25
第4章 다함이 없다 29
第5章 객관성을 지키다 35
第6章 변치 않다 41
第7章 사리사욕을 탐하지 않다 43
第8章 물과 같이 자애롭다 49
第9章 공을 세우면 물러난다 57
第10章 순수한 덕을 깨닫다 65
第11章 없으므로, 있게 된다 75
第12章 대동사회의 지도자 79
第13章 자기를 버리다 83
第14章 형용할 수 없는 모호함 93
第15章 주저하고 망설이다 99
第16章 천성을 따르다 111
第17章 스스로 그러하게 하다 117
第18章 대동사회의 통치이념 123
第19章 순박함을 지키다 129
第20章 덕을 쌓다 133
第21章 커다란 덕 143
第22章 진심으로 보존하다 149
第23章 함부로 명령하지 않다 155
第24章 성인은 몸을 뒤로 한다 159
第25章 지나가면,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진다 165
第26章 진중함을 잃지 않다 173
第27章 덕을 밝혀서 따르다 179
第28章 순수함을 지니다 185
第29章 작위하면 실패한다 191
第30章 달이 차면 기운다 195
第31章 상례로 애도하다 201
第32章 제도로 명분화하다 209
第33章 죽지만 사라지지 않다 217
第34章 욕망을 잠재우다 223
第35章 수수할 따름이다 227
第36章 자애로움의 덕치Ⅰ 233
第37章 스스로 따르다 239
第38章 공정하고 자애로운 지도자 243
第39章 내실을 기하다 253
第40章 반대됨의 도. 자애로움의 도 261
第41章 엉성한 듯하다 263
第42章 왕위를 지키지 못하다 273
第43章 지극한 부드러움 281
第44章 오래 보존하다 285
第45章 순수함과 고요함 289
第46章 항상 믿고 따르다 293
第47章 천성에 따르는 통치이념 297
第48章 억지로 작위하지 않다 301
第49章 백성의 의지를 따르다 303
第50章 집착하면 잃는다 309
第51章 대동의 심오한 덕 313
第52章 대동을 따르다 317
第53章 지도자의 비리 323
第54章 대동의 이념을 실천하다 333
第55章 갓난아이의 순수함처럼 343
第56章 심오한 화합 349
第57章 제도로 억압하지 않다 353
第58章 기준이 없다 361
第59章 덕을 쌓다 369
第60章 작은 생선 굽듯이 375
第61章 몸을 낮추다 387
第62章 하늘이 준 선물 395
第63章 유비무환 405
第64章 초지일관 413
第65章 조화로우면 넉넉해진다 421
第66章 백성에게 숙이다 427
第67章 비슷한 것이 없다 435
第68章 다투지 않는 덕 449
第69章 자애로움이 이긴다 453
第70章 드러내지 않는다 457
第71章 무결점의 지도자 463
第72章 누르지 않으면, 따르게 된다 467
第73章 느슨하지만 새지 않는다 471
第74章 대신하면 그르친다 477
第75章 제도로 억압하다 485
第76章 자애로움의 덕치Ⅱ 489
第77章 활시위를 당기듯이 493
第78章 대립면으로 말하다 499
第79章 객관적이고 공정함 505
第80章 이상적인 사회 511
第81章 참된 지도자를 말하다 519

나오는 글 524
색인 526

출판사 서평

요즈음 한국이나 중국에서 출판되는 제자백가사상 관련 서적들의 대세는 현대인들의 가치관과 생활에 맞춰 재해석하는 것인 듯하다. 이러한 취지의 저술은 너무나 빠르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현실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여유와 지혜를 선사한다는 차원에서 상당히 바람직하다. 하지만 자칫 저자 개인의 주관적 가치관이 스며들게 되어 제자백가사상이 담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희석시킨다는 점에서는 다소 부정적이다. 이에 필자는 원론적인 번역에 충실하고자 노력함으로써 노자가 말하고자 한 본연의 의도를 부각시키고, 나아가 독자 스스로 그러한 사상을 현대사회에 접목시킬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다.

왜 다시 노자인가?
정치의 해 2012년, 정치에 대한 신선한 화두를 던지다!
『도덕경』은 바로 정치 지도자의 사상을 담은 정치 지침서이다 


대선과 총선 등으로 정치의 해로 불리는 2012년, 서점가엔 정치에 관련한 서적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이제 정치적 화두는 정치인에게만 국한된 테마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 열린 소재로 더욱 그 열기를 지펴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번에 어문학사에서 출간된 안성재 교수의 『노자, 정치를 깨우다』는 지극히 일반 독자들에게 노자의 사상이 어떻게 정치적 이념으로 연관되어 있는가를 알기 쉽게 풀어쓴 저작물이라 할 수 있다. <노자> 강의 시리즈의 전편으로 나왔던 『노자의 재구성』은 王弼本(왕필본)을 근간으로 하여 처음부터 다시 [도덕경] 全文(전문)을 번역한 책이다. 문장과 그 구조를 충실하게 번역하고, 더 나아가 ‘재해석’하는 관점에서 도덕경을 분석하였다. 기존에 한국과 중국에서 출판된 일부 번역본들의 해석이 도덕경의 본의와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이러한 차이를 메우기 위해 도덕경의 재해석 작업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전문 학술서의 성격을 대중서로 탈바꿈하여 더욱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한 것이 바로 『노자, 정치를 깨우다』이다. 일단 각 장의 요점을 먼저 제시하고 문장 각각의 의미를 쉽게 풀어쓰는 데 역점을 두었다. 또한 가독성과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난해한 문자나 문장구조 분석 등의 전문적인 내용들은 최대한 배제하고자 하였다.
요즈음 한국이나 중국에서 출판되는 제자백가사상 관련 서적들의 대세는 현대인들의 가치관과 생활에 맞춰 재해석하는 것인 듯하다. 이러한 취지의 저술은 너무나 빠르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현실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여유와 지혜를 선사한다는 차원에서 상당히 바람직하다. 하지만 자칫 저자 개인의 주관적 가치관이 스며들게 되어 제자백가사상이 담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희석시킨다는 점에서는 다소 부정적이다. 이에 필자는 원론적인 번역에 충실하고자 노력함으로써 노자가 말하고자 한 본연의 의도를 부각시키고, 나아가 독자 스스로 그러한 사상을 현대사회에 접목시킬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다. 마치 화가가 그림 한 폭을 그리는데, 감상하는 이 스스로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도록 여백의 미를 남기는 것처럼 말이다.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노자의 생각을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혀서 독자 스스로 현대사회에 응용할 수 있다면, 이 역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도덕경』은 작게는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서, 크게는 온 세상의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 지도자뿐만 아니라 국민들 역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어야 하는 책인 것이다.

대동사회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가 삼가 부단히 실천하는 모습, 그 자체가 대동이다


필자는 노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사상이 바로 ‘대동의 통치이념’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곧 노자가 1장부터 81장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대동의 통치이념은 결국 백성의 뜻을 지도자의 뜻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동이 실현된 사회를 바로 태평성대라고 일컫는다. 대동사회는 완성된 사회가 아닌, 지도자가 삼가 부단히 실천하는 모습, 그 자체가 대동이다라고 말한다.
노자의 ‘도’는 ‘형이상학적 개념의 無爲自然(무위자연)의 도’가 아니라 ‘대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통치이념으로 봐야 한다.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과학적인 개념에서의 우주 대혼돈(카오스)이 아닌, 뒤섞임 즉 하늘과 땅과 사람과 동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상태를 ‘대동’이라고 일컬었다. 다시 말해서 노자는 ‘소강’을 추구하는 세태에 반대하여, 그보다 더 상위개념에 있는 ‘대동’으로 돌아가야 함을 주장한 것이다. 또한 대동 사회는 어떠한 말이나 제도 등의 명분화된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삼가고 노력하며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기에, 노자는 항상 ‘도’를 이야기 할 때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으며 말로 형용할 수 없기에 반대로 말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노자는 가장 오래된 이상주의를 꿈꾸던 사람이었고, 그의 [도덕경]은 가장 오래된 이상주의적 정치 이념 서적이었다.
필자는 [도덕경]을 번역하고 난 후, 노자와 공자의 사상이 世間(세간)에서 말하는 ‘道不同, 不相爲謀(도불동, 불상위모: 추구하는 도가 다르면, 함께 도모하지 않는다).’의 관계처럼 전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어떠한 측면에서 긴밀하고도 유기적으로 상호 연계하여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도덕경] 각 문장의 眞義(진의)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尙書(상서)], [周禮(주례)], [禮記(예기)], [史記(사기)], [十八史略(십팔사략)]에 나타난 文句(문구)들과 상호 비교해가며 대비시켜 서술하였는데, 필자는 이러한 전적의 문구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문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가급적 直譯(직역)을 원칙으로 하였다.

들뢰즈 관점에서 본 푸코와 노자의 권력 이미지 비교 연구

들뢰즈 관점에서 본 푸코와 노자의 권력 이미지 비교 연구

www.krf.or.kr/RAapp/ApplySubjectAdditonal_19_alone.jsi?...1...

◆ 과제번호 : A00068

연구요약문(한글)
연구목표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노마돌로지(nomadology)에서 드러나는 사유를 통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권력 개념과 노자(老子)의 권력 개념을 비교해 보는 것은 어떤 의의가 있을까? 이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들뢰즈의 사유가 두 사상가들에 의해서, 역으로 두 사상가들의 사유가 들뢰즈에 의해서 더욱 공고해 지고 새롭게 조명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들뢰즈를 통해 본 동양과 서양의 권력 이미지의 비교를 통해 양쪽의 권력 이미지를 한층 더 객관적으로 고찰할 수 있다는 점이며, 마지막으로 들뢰즈-푸코와 들뢰즈-노자, 그리고 들뢰즈의 푸코-들뢰즈의 노자 간의 비교를 통해 새로운 변용을 창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연구의 목표는 푸코와 노자 사상에 나타나는 권력 이미지를 들뢰즈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이 결과물을 통해 두 사상을 상호 비교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천 개의 고원』(A Thousand Plateaus)과 『의미의 논리』(The Logic of Sense)에서 “도(道)”와 “무위(無爲)”, 그리고 “선(禪)” 등 동양적 사상과 종교에 대해 상술하고, 『푸코』(Foucault)에서 푸코의 전반적인 사상들을 권력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하지만 이 세 사상가들을 함께 횡단하는 것은 실로 방대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사유를 구체적으로 포착한 후, 그것을 비교하고 분석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연구 수행임은 물론이다. 비록 동․서양의 문화적․사회적․정치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통시적인 측면에서 들뢰즈-푸코 사상과 노자 사상에 많은 이질성이 드러난다 할지라도, 우리는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측면에서 세 사상가에게서 포획할 수 있는 여러 공통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밀접한 근친성을 갖는 것이 바로 권력 개념이다. 더불어, 푸코와 노자의 권력 개념이 들뢰즈 철학에서 나오는 다양하고 난해한 개념들과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들뢰즈가 이 두 사상가의 권력 개념을 활용하여 자신의 사유를 한층 더 강화했다는 점은 상당히 놀랄만한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푸코와 노자 사상 속에서 권력 개념이 어떻게 규정되어 들뢰즈 사상과 어떤 면에서 동질성을 갖는 가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연구에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이러한 푸코와 노자의 권력 개념과 들뢰즈 사상의 연관성을 통해 두 사상가의 권력 개념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주된 목적이라고 하겠다. 첫째, 들뢰즈 관점에서 본 푸코의 권력 이미지를 규명하고, 둘째 들뢰즈 관점에서 본 노자의 권력 이미지를 탐사하며, 마지막으로 들뢰즈를 통해 본 푸코의 권력 이미지와 노자의 권력 이미지를 비교 분석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목적이다. 즉 들뢰즈 관점에서 두 사상가의 권력 개념을 분석함으로써 적절한 혼용과 그에 따른 변형과 창안을 시도하고, 또한 재해석된 두 결과물의 비교 분석함으로써 동․서양 사상을 다시 접속하여 새롭게 혼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목표이다.
기대효과1) 연구결과의 학문적, 사회적 기여도

들뢰즈 관점에서 본 푸코와 노자의 권력 이미지 비교 연구의 목적은 들뢰즈 사유를 통해 푸코의 권력 개념과 노자의 권력 개념을 분석하는 것이고, 나아가 이 권력 개념을 상호 비교하는 것이다. 이는 들뢰즈 사유를 공고히 할 뿐 만 아니라 푸코의 권력 개념을 변용시킬 수 있는 것이고, 또한 노자의 권력 개념을 재분석함으로써 들뢰즈의 사유 속에 드러나는 동양적 사유의 이미지를 권력 이미지 중심으로 강화시킬 수 있다. 나아가 두 결과물의 상호 비교함으로써 동․서양에서 공통된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권력 이미지를 도출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결과물들은 들뢰즈와 푸코, 그리고 노자를, 즉 동․서양을 횡단하면서 상호 간의 창조성의 정치학을 상정할 수 있는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이 학문적,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시대의 문화적 차이와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의 경계선을 횡단하여 인류 보편적이고 공동적인 사항들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 또한 각 시대와 문화의 차이를 긍정하고, 각 학문의 다양한 접속을 통해 분과 학문 간의 이해와 소통을 증진시키는 도구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최근에 한국에서 추진되는 인문학의 대중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다. 
둘째, 푸코와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 사상을 접목함으로써, 탈근대적인 들뢰즈와 푸코 철학을 더욱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서양적 사유를 통해 동양적 사유를 살펴봄으로써 동양적 사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실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권력이라는 요소를 탈근대적 사유로 풀이함으로써 대립과 투쟁의 권력이 아닌 상호 보완적이고 긍정적인 권력 개념을 도출할 수 있다. 이런 결과물의 확산을 통해,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넓히고 인문학적 상상력을 촉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시대와 지리․문화적 차이를 넘어서는 상호 비교 연구의 이론적 틀을 구상함으로써 다양한 후속 연구에 이론적 토대를 부여할 수 있음과 동시에 창의적인 후속 연구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또한 이번 결과물들은 동․서양 문화를 상호 비교했던 여러 학자의 연구와 비교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본 연구를 통하여 구성된 탈근대적 권력 개념은 문화를 보는 시각과 인식의 범위를 일반인들에게까지 높일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권력이 적용되는 실생활과 접목하여 전개함으로써 일반인들이 긍정적인 사회상을 만들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 번째, 들뢰즈와 푸코, 그리고 노자의 사유에 나타나는 체계적인 통일성을 통해 그들의 철학을 좀 더 쉽게 분석 가능할 것이다. 난해한 그들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들이 전개했던 여타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2) 대학교육과의 연계 활용 방안

연구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접속 방법들을 체계화하여, 이것을 교육 콘텐츠로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동․서양의 사유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그 내용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능력을 배양시키는 방법과, 나아가 새로운 결과물을 창출하는 과정 속에서 활용하는 방법이 적절한 교육 자료로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동․서양의 사유를 접속하여 새로운 창안물의 창출은 두 가지 관점에서 대학 교육과 연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 과정에서 필요한 사회과학적이고 인문학적인 분석과 비평 능력, 그리고 새롭고 창의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필요한 인문학적 상상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의 상호 비교 연구가 단순히 이질적인 차이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비교 대상을 혼용하는 것이므로, 이 연구를 위해서는 물론 객관적인 분석과 비평 능력과 상상력, 그리고 창조성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변용을 통한 창의적인 인문학적 콘텐츠 창출을 위해 인문학적인 객관적 분석과 비평 능력과 상상력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상호 비교 연구 속에서 도출되는 분석 능력과 창의 능력을 교육에 접목시킴으로써 학생들의 분석력과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요약푸코 사상 전반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기획은 동일자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이 말은 그 경계선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려는 힘과 권력이 있다는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그 경계선을 만들어내는 것은 동일자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이다. 문제는 이러한 권력이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이 보이지 않는 권력은 그 권력이 적용되는 대상을 교묘한 방식으로 객체화하는 권력이다. 이 권력이 제대로 행사되려면, 지속적이고 철저하며 어디에나 있고, 또한 모든 것을 가시적으로 만들면서 자신은 보이지 않는, 그러한 감시수단을 갖추어야 한다. 그 감시는 사회전체를 지각 대상으로 만드는 얼굴 없는 시선과 같아야 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권력은 푸코가 일생 동안 개진했던 권력 개념과 직접적인 상관성을 갖는다. 푸코는 공식적으로 권력으로 불렸던 국가권력과 주권과 같은 권력뿐만 아니라, 여태까지 권력의 형태로 이해되지 않았던 각종 관계에 권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령 부모-자식 관계, 선생-제자 관계, 의사-환자 관계 등 일반적으로 사랑을 핵심으로 이해했던 관계들을 권력으로 보여주었다. 나아가 그는 이와 같은 수많은 관계들을 권력이라 이름 붙임으로써 이들 관계들이 거대한 그물망을 이루며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푸코는 서구 사회의 온갖 좋은 이름으로 분리된 관계들을 권력으로 착색하여 전체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회 전체를 통해 분포되어 움직이고 있는 권력 관계의 전체적인 조감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감시와 처벌』(Surveillance and Punishment)은 권력이 인간과 신체를 어떻게 처벌하고 감시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효과적인 훈육 과정을 통해 근대적 인간의 모습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기술한 책이다. 
푸코와 마찬가지로 노자의 『도덕경』에서도 권력 개념을 포착할 수 있다. 『도덕경』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권력론의 의미를 해체시킨다. 이 점은 『도덕경』 전체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이야기된다. 일반적으로 노자의 권력에 대한 해체는 도덕적 권력론, 공리적(功利的) 권력론, 그리고 법제도를 포함한 물리적 권력론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된다. 물론 노자의 이러한 권력 비판 속에는 국가 권력의 최소화를 지향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도덕경』은 기존의 권력론에 대한 비판을 “도”와 “덕”을 통해 진술하면서 새로운 대안적인 사유와 이미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서 도경은 1장에서 37장을 차지하고 덕경은 38장에서 81장을 차지한다. 노자가 명시하는 “도”와 “덕”은 국가나 통치수단이 배제된 순수한 삶의 상태를 논하는 이론과 실천을 강조한다. 노자가 설명하는 “도”와 “덕”에 대한 이론과 실천은 기존의 국가나 통치수단을 배제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노자 사상은 국가 지배를 배제하고 지배와 통치로부터 스스로 탈주하여 새로운 삶과 사랑의 생명성을 찾고자하는 노마돌로지, 즉 지배와 억압에서 벗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생성적 삶과 사유를 실천하기 위하여 노마드의 삶과 사유의 방식을 살피는 것이라 부를 수 있다. 
푸코와 노자의 권력 개념 속에서 포획할 수 있는 공통점은 기존의 담론들과 제도들을 해체하여, 새롭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생산하는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코드화된 권력에 대항하는 주체의 능동성을 강조하면서 푸코가 개진하는 “외부의 사유”와, 권력의 지배와 억압에서 벗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생성적 삶과 사유를 실천하기 위해 노자가 강조하는 “무위를 통한 권력 존재 방식”이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푸코와 노자의 권력 개념과 들뢰즈 사상의 유사점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지식-권력(knowledge-power)”과 “생체-권력(bio-power)” 속에서 푸코가 강조하는 “외부의 사유”와 권력에 대한 탈중심화되고 탈영토화된 가능성을 강조하는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philosophy of difference)”이 상당한 연관성이 있고, 또한 기존의 권력 메커니즘 속에서 주어진 사회의 원리와 코드를 해체하는 흐름인 “무위를 통한 권력 존재 방식”과 인간 존재의 새로운 해방적 양식들을 창조하기 위해 권력적이고 압제적인 기존의 담론과 제도를 탈영토화를 강조하는 “창조성의 정치학”을 상호 연관 지을 수 있다. 더불어, 푸코의 “생산적인 권력”, “생체-권력에서의 능동적 주체”는 들뢰즈의 “욕망하는 기계(desiring machine)”와 다양한 개념들(배치, 다이어그램, 변조, 리좀, 되기 등)에서 설명되는 “노마드적 주체(nomadic subject)”와 유사하고, 노자의 권력 개념을 상술하기 위해 필요한 “도”와 “무위”, 그리고 “성인(聖人)”은 각각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body of organs)”와 “탈주선(line of flight)”, 그리고 “노마드적 주체”와 흡사하다.
한글키워드(Keyword)들뢰즈, 푸코, 노자, 권력, 기관 없는 신체, 탈주선, 노마드적 주체, 욕망하는 기계, 지식-권력, 생체-권력, 외부의 사유, 도, 무위, 성인, 노마돌로지, 배치, 다이어그램, 변조, 리좀, 되기, 창조성의 정치학, 차이, 탈근대, 『도덕경』, 미시물리학, 『푸코』, 『천개의 고원』, 『의미의 논리』
영문키워드(Keyword)Deleuze, Foucault, Laotzu, power, body of organs, line of flight, nomadic subject, desiring machine, knowledge-power, bio-power, thought of outside, tao, non-action, master, nomadology, assemblage, diagram, modulation, rhizome, becoming, politics of creativity, difference, post-modern, Tao Te Ching, microphysics, Foucault, A Thousand Plateaus, The Logic of Sense

2014년 9월 13일 토요일

천하체계 - 바깥 세계가 없는 천하

중국, 중국인 (9): 바깥 세계가 없는 천하?
 글쓴이 : 아포리아
 조회 : 656  
 

중국, 중국인 (9): 바깥 세계가 없는 천하?

1.
지금의 세계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혼란 속에 빠져 있다. 시쳇말로 우리는 여전히 난세에 살고 있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세계는 결코 우리가 상상하고 갈망했던 것처럼 그렇게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비록 역대 현인——중국이든 외국이든 간에——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더욱 아름다운 신세계를 만들고자 하였고, 모든 세계인들이 보다 나은 세계에서 살기를 갈구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오팅양(赵汀阳)이 말하는 “불량세계”에 살고 있다. 

자오팅양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처한 불량세계의 연원은 현대 유럽이 세운 민족국가체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족국가체계 속에서 “국가는 이미 가장 큰 정치 단위가 되었고, 세계는 단지 지리적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도시국가이든 제국이든 혹은 민족/국가이든 간에 모두 ‘국가’의 이념을 내포할 뿐, 거기에 ‘세계’의 이념은 없다.”  이러한 체계의 정신에 따르면, 내치 이론이 중심이 되며, 국제 정치 이론은 부수적인 것이 된다. “내치 이론의 종지는 사회 통치에 관한 합작의 사상인데, 국제 정치 이론에 이르러서는 피아 문제에 관한 투쟁의 철학으로 변하였다.” 바꿔 말하면, 국가 내부의 질서와 국가 간의 무질서인 셈이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홉스적인 의미의 자연상태에 놓여있다.  주권국가들로 구성된 세계에서는 “오늘날 세계의 가장 큰 정치적 난제, 즉 총체적 무질서의 세계, 정치의 의미가 없는 세계, 오직 폭력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를 해결할 길이 없다. 

따라서 자오팅양은 “서방 정치 철학이 이끄는 세계는 필연적으로 난세일 수 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그 원인으로 서방 정치 철학이 시종일관 민족국가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며, 세계로써 세계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천하질서(天下秩序)》(2005년 초판)에서 《불량세계 연구(坏世界研究)》(2009년), 그리고 다시 《모두의 정치(每个人的政治)》(2010년)에 이르기까지 자오팅양은 줄곧 “어떻게 이 불량세계에 대처할 것인가”의 질문을 탐색한다. 이러한 탐색의 과정에서 그가 일관되게 논증하고 “힘주어 추천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바로 중국의 천하질서이다. 철학적 측면에서 중국의 천하체계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 형태이고, 현 세계의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유효한 제도라는 것, 자오팅양은 이러한 부분을 논증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성실한 중국학자라 할 수 있으며, 또한 그의 논변은 많은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
자오팅양의 천하체계에 대한 논의는 비록 주대(周代)의 제도를 상세히 밝히는 것을 중심으로 하지만, 그는 또한 그의 천하체계가 온전히 경전의 내용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며, 보다 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해석을 담아내고 있음을 긍정한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중국적 의미의 천하는 세 가지 의미가 하나로 묶인 개념이다. 첫째는 지리학적 의미에서의 천하로 하늘 아래의 온 세상을 가리키며,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전체 세계에 해당한다.” 둘째는 심리학적 의미에서의 천하, 바로 “민심”으로, “대지 위에서 생활하는 모든 인간의 마음”을 가리킨다. 셋째는 정치학적 의미에서의 천하로 “일종의 가족적 세계와 같은 이상 혹은 유토피아(四海一家)”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중국의 천하체계는 물리적인 세계, 심리적인 세계, 그리고 정치적인 세계의 통일체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천하체계는 어떻게 불량세계에 대처할 수 있을까? 혹은 현재 세계의 가장 큰 정치적 난제인 국가간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자오팅양의 논술에 따르면 우선 중국의 천하질서는 보다 거시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천하 질서는 “세계로써 세계를 헤아리는” 정신을 계승하며, “국가로 세계를 가늠하는” 서방의 원칙과는 다르다. 이러한 정신은 근본적으로 노자의 “천하로 천하를 본다”는 입장과, “천하는 천하 사람들의 천하”라는 흉회를 체현한 것이다.  다음으로 천하는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므로, 중국의 정치적 특색을 체현한 천하질서는 평화와 협력 쪽으로 기울고, “정복과 지배”에 치우친 서방의 정치와는 다르다. “만국화합”의 종지를 계승할 때, 모든 국가는 천하체계 속에서 협력의 대상이지, 전쟁이나 약탈의 대상이 아니다.  다시 말해, 서방은 충돌과 정복의 측면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중국은 협력과 공존의 측면에서 천하를 본다. 

자오팅양은 이 문제에 있어서 수 차례 슈미트의 정치 개념을 예로 들어 서방 정치학에서 타자와 반대 세력을 적으로 간주하는 근본정신을 설명한다. 그는 이에 근거하여 서방 정치에서 국가체계의 근본이 피아를 구분하는데 있다고, 보다 명확히 말해 적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심지어는 적을 만들어 내는 데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중국 정치에서 천하체계의 근본은 적이 동지로 화(化)하고, 타자가 자기로 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화(化)”의 뿌리는 감화와 끌림에 있지 정복과 지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자오팅양은 이로부터 ‘바깥없는 천하[天下無外]’라는 천하체계의 근본 원칙을 논증한다. 이러한 바깥 없음의 원칙은 대략 세 가지 중첩된 의미를 포괄한다. 첫째로는 바깥 없는 사상이다. 바깥 없는 사상은 “영원히 타인의 이익을 고려에 넣는 것”으로, 따라서 절대적인 반대세력과 적으로서의 타자가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공간적으로 볼 때, 천하는 끝없이 광활하여 그 자체에 안과 바깥의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사해가 하나의 가족인 이상 “오직 내부만 있을 뿐, 양립할 수 없는 외부란 없으며, 내재적인 구조 안에서의 원근친소 관계만이 있을 뿐이다.”  끝으로 바깥 없는 천하는 이러한 정치와 문화 상의 포용을 통해 “천하의 공적인 사건에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정하는 어떠한 차별적 혹은 배타적 원칙도 존재하지 않으며, 천하의 정치적 권리와 문화적 자주권이 세계의 여하한 민족에게 모두 열려 있는 것을 의미한다.”  

자오팅양은 일정 정도 중국 정치의 정신이 체현된 천하체계를 태평성대에 이를 수 있는 “왕(王)”도로 간주하고 있으며, 힘에 의존하는 현대 세계의 “패(覇)”업을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이 점에서 자오팅양은 깐춘송(干春松)과 마찬가지로, 중국 고대의 왕도와 패도 사이의 논쟁을 통해 중-서 정치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를 분석한다. 

3.
자오팅양은 그가 천하체계를 말하는 주된 목적이 경전의 내용을 밝히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며, 미래를 전망하는 것에 주목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여러 비평가들이 지적한 것과 같이, 중-서 경전에 대한 자오팅양의 독해는 육경으로 자신을 주해하는[六经注我]  성격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으며, 때때로 편파성과 성급함에서 초래된 잘못들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관건이 되는 천하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자오팅양의 논술은 분명 어느 정도 자신만의 독창성 또한 보여준다. 

그러나 자오팅양의 논술 가운데 천하는 일정한 의미에서 무한히 확장되는 세계이지만, 이에 대한 충분한 논증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의 학자 와타나베 신이치로(渡辺信一郎)의 연구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연구는 역사적 문헌 자료에 얽매여 있기는 하지만, 천하 개념의 변천을 착실하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천하를 이해하는 두 갈래의 길을 짚어내는데, 하나는 천하를 중국으로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하를 제국적인 의미에서 세계로 이해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무한히 확장되는 세계로서의 천하 개념을 부정하면서, “천하, 특히 진한대 통일국가 이래의 천하는 왕조가 호적, 문서, 군현제를 통해 실제로 지배했던 유한한 영역이고, 때때로 왕조의 확장기에는 오랑캐 또한 내부로 포섭하였다”는 사실을 적시한다. 의미있는 보완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지적해야할 부분은서방 정치 사상가에 대한 자오팅양의 해석이 상당히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는 비록 슈미트의 정치적 개념 가운데 “사적인 원수”가 아닌 “공적인 적”이라는 의미에서 내려지는 '적'의 정의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만, 그가 여러 차례 슈미트의 '적' 개념을 “절대적인 적”의 개념으로 포괄한 것은 분명 오류다. 슈미트의 논술에 따르면 유럽의 공법에서 고전적인 의미의 적은 확실히 공적인 적이고 사적인 원수가 아니다. 이와 구별되는 것으로 또한 파당 이론에서 말하는 '실제적인 적'과 계급 충돌의 의미에서 '절대적인 적'이 있다. 여기에서 자오팅양은 슈미트가 서술한 전통적인 적의 개념과 절대적인 적의 개념을 혼용하고 있다. 또한 천하질서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로 간주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자오팅양의 논술에는 일정 정도 모호한 측면이 있다. 그의 논술에서 천하체계는 가장 좋은 정치체계이며, 하나의 이상이자 유토피아다. 한편으로 자오팅양은 이 유토피아를 “실현 불가능하지 않은 것”이고 “미래의 이상”으로 본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또한 플라톤의 이데아적인 의미에서 유토피아를 의미하며, “이데아의 의의는 실현에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이 얼마나 엉망인지, 현실과 이상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알게 하는 것에 있다.” 는 점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자오팅양은 한편으로 현대 계몽주의로부터 마르크스가 묘사한 미래의 유토피아에 이르는 국가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플라톤의 이데아적 의미에서 완벽한 표준과 척도의 초경험적 유토피아 정신을 결합하려고 한다.

어찌되었든 간에 자오팅양이 밝힌 천하체계는 분명 현대 서방이 건립한 세계 질서에 대해 하나의 도전과 대안적 사유를 제기한 것이다. 자오팅양은 천하질서체계로써 여전히 현재 세계를 주재하고 있는 민족국가체계를 대체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중국이 세계의 무대로 다시 돌아오는 데에 가장 완벽한 이론적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을 제기한다. 물론 중국이 세계의 무대로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중국이 일찍이 세계무대를 떠났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며, 중국이 새롭게 세계의 초점으로 다시금 떠오른다는 말이다. 민족국가체계에서 중국은 여전히 발전 중인 국가이며, 다시 말해 아직 완전한 의미에서 현대 국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근현대 역사 발전 과정을 통틀어 중국은 내내 완전한 의미의 현대 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중국 고대의 사람들과 같이 천하의 관점에서 천하를 보려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다. 자오팅양의 천하질서에 대한 서술은 확실히 중국이 새로이 천하의 대세와 세계질서를 사유하는 데에 하나의 내생적인 이론의 지지대를 제공한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발원한 이론이면서, 또한 미래를 전망하는 새로운 이론이다.

<참고문헌>
赵汀阳:《天下体系:世界制度哲学导论》,北京:中国人民大学出版社,2011年。
赵汀阳:《坏世界研究:作为第一哲学的政治哲学》,北京:中国人民大学出版社,2009年。
赵汀阳:《每个人的政治》,北京:社会科学文献出版社,2010年。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중국인]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4, 2014년 5월, 천지앤홍(陈建洪), 중국 난카이 대학(南开大学) 철학과 교수; 이수현 옮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