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posts list

레이블이 도서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도서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4년 10월 10일 금요일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신동준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신동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07월 20일 출간

책소개

손자를 벼린 조조의 성공 지략으로 나만의 ‘대물’을 꿈꿔라!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대여대취』.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 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인 저자 신동준이 조조의《손자약해》를 바탕으로 대여대취 정신을 ‘지금 당장’의 현리 가치로 쉽게 풀어냈다. 저자는 삼국시대 당시 천하통일 기반을 닦은 조조는 도가와 법가 사상에 입각해《손자병법》을 새롭게 편제하고 주석을 가했던 바, 《손자병법》은 반드시 조조 시각에서 접근해야 그 취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조조의 지혜가 담긴《손자병법》으로, 임기응변으로 주도권을 쥐는 방법부터 적과 나의 실력을 알고 싸우는 법, 지략이 뛰어난 자를 활용하는 법 등 ‘크게 주고 크게 얻는’ 비결들을 알려준다.

북소믈리에 한마디!

이 책은 제왕을 위시해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손자병법》의 내용을 조조의 시각으로 새롭게 재구성하여 담아낸 책이다. 다양한 전략과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비즈니스의 아이디어를 얻고, 사람을 깊이 읽는 안목을 얻고, 치국평천하의 방략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저자소개

저자 : 신동준

신동준저자 신동준은 학오學吾 신동준申東埈은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안목을 바탕으로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의 저서는 독자들에게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의 대가인 청명 임창순 선생 밑에서 사서삼경과 『춘추좌전』, 『조선왕조실록』 등의 고전을 배웠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조선일보》와 《한겨레》 등에서 10여 년 간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1994년에 다시 모교 박사과정에 들어가 동양정치사상을 전공했고, 이후 일본의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춘추전국시대 정치사상 비교연구』로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21세기정경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그는 서울대학교·고려대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에게 동양 3국의 역사문화와 정치사상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월간조선》, 《주간동아》, 《주간경향》, 《이코노믹리뷰》 등 다양한 매체에 꾸준히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조선일보》 주말판 경제섹션 〈위클리비즈〉의 인기 칼럼 ‘동양학 산책’을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후흑학』, 『사마천의 부자경제학』, 『조조 사람혁명』, 『팍스 시니카』, 『열국지 교양강의』, 『조선국왕 vs 중국황제』, 『인물로 읽는 중국 현대사』, 『삼국지, 군웅과 치도를 논하다』, 『춘추전국의 영웅들』(전3권), 『CEO의 삼국지』,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연산군을 위한 변명』, 역서 및 편저로는 『자치통감 삼국지』(전2권), 『춘추좌전』(전3권),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초한지』 등이 있다.

목차

서문 ­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005
서설 ­ 조조의 『손자약해』 014

제1장 인리제권因利制權 임기응변으로 주도권을 쥐어라 [대계大計]
국가 존망을 생각하라 · 025 | 전쟁 이치를 파악하라 · 027 | 천지운행을 이해하라 · 029 | 냉철히 비교 분석하라 · 032 | 적의 예상을 깨라 · 036 | 이길 조건을 갖춰라 · 040

제2장 병귀신속兵貴神速 패할 때도 속전속결로 끝내라 [작전作戰]
비용을 생각하라 · 047 | 오래 끌지 말라 · 051 | 현지서 조달하라 · 059 | 민폐를 줄여라 · 062 | 내 것으로 만들라 · 065 | 속전속결을 행하라 · 069

제3장 지피지기知彼知己 적과 나의 실력을 알고 싸워라 [모공謀攻]
싸우지 말고 이겨라 · 075 | 유혈전을 피하라 · 086 | 유연하게 생각하라 · 089 | 양장을 선발하라 · 093 | 맡겼으면 믿어라 · 095 | 자신부터 돌아보라 · 101

제4장 가승재적可勝在敵 승리는 적에게 달려 있다 [군형軍形]
공격처럼 수비하라 · 109 | 패하지 않는 싸움을 하라 · 112 | 내부를 바르게 하라 · 116 | 인재를 길러라 · 119

제5장 기정상생奇正相生 기병과 정병을 뒤섞어 운용하라 [병세兵勢]
기병을 활용하라 · 125 | 절도를 갖춰라 · 133 | 미끼로 유인하라 · 139 | 전세를 장악하라 · 142

제6장 피실격허避實擊虛 실한 곳을 피하고 허한 곳을 쳐라 [허실虛實]
고정된 상식을 깨라 · 149 | 재빨리 치고 빠져라 · 152 | 힘을 집중시켜라 · 156 | 자취를 감춰라 · 161

제7장 병이사립兵以詐立 용병은 적을 속이는데서 시작한다 [군쟁軍爭]
돌아가듯 직진하라 · 173 | 능력껏 짐을 져라 · 177 | 유리할 때 움직여라 · 182 | 상대를 흔들어라 · 186 | 퇴로를 열어 주어라 · 191

제8장 필사가살必死可殺 죽기로 싸울 것을 고집하면 패한다 [구변九變]
현장에서 대처하라 · 201 | 군명을 거부하라 · 209 | 유사시를 대비하라 · 218 | 자신을 경계하라 · 223

제9장 병비익다兵非益多 병력이 많다고 꼭 좋은 게 아니다 [행군行軍]
알고 움직여라 · 235 | 발밑을 조심하라 · 238 | 조짐을 읽어라 · 244 | 문무를 겸전하라 · 252

제10장 지천지지知天知地 천시와 지리까지 읽어야 이긴다 [지형地形]
현지 전술을 구사하라 · 265 | 내부부터 단속하라 · 272 | 백성을 보호하라 · 277 | 자식처럼 아껴라 · 281

제11장 오월동주吳越同舟 필요하면 적과 함께 배에 올라라 [구지九地]
상황에 적응하라 · 289 | 불리하면 중지하라 · 299 | 사지로 내던져라 · 303 | 오월동주를 행하라 · 308 | 필승을 기하라 · 312 | 천하를 품어라 · 319 | 임무만 알려라 · 325

제12장 비리부동非利不動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마라 [화공火攻]
도구부터 준비하라 · 335 | 바람을 따르라 · 342 | 감정을 자제하라 · 350

제13장 이지위간以智爲間 지략이 뛰어난 자를 활용하라 [용간用間]
정보망을 갖춰라 · 361 | 보안에 주의하라 · 367 | 인재를 활용하라 · 374

후기 21세기 승부는 손자병법 손에 있다! 380
참고문헌 391

책 속으로

『손자병법』에 나오는 모든 전략 전술은 기본적으로 부득이용병 또는 집이시동에 입각한다. 평시에는 무기를 거두었다가 전시에 무기를 들고 대응하라고 주문한다. 그렇다면 「시계」에서 부득이용병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거론하는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은 과연 무엇을 뜻할까? 우선 「시계」에서 말하는 ‘도’는 『도덕경』에서 역설하듯이 ‘덕德’의 본원을 뜻한다. 덕을 두고 노자는 무위지치無爲之治, 장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 공자는 인仁, 묵자와 맹자는 의義, 순자는 예禮, 한비자는 법法, 손무는 무武라 했다. 이처럼 제자백가 모두 덕을 언급하지만, 모두가 최상으로 여겼던 것은 무위지치다. 무위지치는 제왕의 통치가 마치 해와 달이 만물을 고루 비추듯이 지극히 공평무사함을 뜻한다. (28쪽)

삼국시대 초기 신흥 강자 조조와 당대 최고의 무력을 자랑한 원소의 운명이 갈리게 된 결정적인 배경은 조조가 천자를 옆에 끼고 천하를 호령하는 이른바 ‘협천자挾天子, 영제후令諸侯’를 실행한 데 있다. 명분상의 우위를 점한 것이 요체다. 원소는 힘만 믿고 이를 무시했다. 대개 원소의 자만심이 지나쳤다고 해석하나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원소 스스로 천자가 되고자 욕심을 낸 것이 정답이다. 이미 민심이 한나라를 떠난 만큼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자 한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릇이다. 원소는 그릇이 작았다. 게다가 시기심과 욕심도 많았다. 난세에 천하를 거머쥐려는 자로서는 실격이다. (90쪽)

조조의 인재 등용은 공적인 대의에 입각한 구현求賢, 유비의 용인술은 사사로운 의리에 기초한 인현引賢으로 표현할 수 있다. 손권은 시의時宜를 좇은 용현用賢에 해당한다. 그의 용현은 일정한 선을 넘지 않았다. 그 비결은 손권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도 잘 나타난다. “상대의 장점을 높이고 상대의 단점을 곧 잊어버린다.” 그는 상대의 단점에 눈을 감아버리고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한번 일을 맡긴 뒤에는 전폭적인 신임을 아끼지 않았다. 적벽대전에서 주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이릉대전에서 육손을 탁용한 데 이어 제갈근에게 끝없는 믿음을 보낸 것이 그 증거다. (114­115쪽)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문’과 ‘무’를 고루 갖춰 명실상부한 ‘문무겸전’의 자세로 새 왕조를 개창한 인물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창업주인 위무제 조조다. 그는 동탁토벌을 기치로 내걸고 군벌 경쟁에 뛰어든 이래 죽을 때까지 전장에서 평생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목할 것은 당시 유비와 손권을 포함한 여러 군웅 가운데 조조처럼 전장에서조차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열심히 공부한 인물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조조의 행보 가운데 문무겸전의 병도 이치를 가장 잘 보여 준 사례로 ‘분소밀신焚燒密信’ 일화를 들 수 있다. 이 일화는 조조가 원소를 격파한 관도대전 승리 이후에 나온 것이다. (253­254쪽)

“옛날 용병을 잘하는 사람은 아군에게 유리하면 곧바로 공격하고 불리하면 곧바로 중지했다”는 대목 가운데 중요한 것은 불리할 때 중지하는 일이다. 유리할 때 공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웬만한 장수라면 능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불리할 때 중지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대 판단하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그런 판단을 내렸을지라도 이미 투자한 것이 많은 까닭에 선뜻 발을 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진면목은 바로 이때 나온다. 이를 잘한 인물로 삼국시대의 조조를 들 수 있다. (300쪽) 닫기

출판사 서평

손자병법, 세상을 크게 바라보는 안목을 담다

천하를 사로잡은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두 『손자병법』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손정의는 『손자병법』을 자신의 경영 전략과 접목시킨 ‘자승병법自乘兵法’을 만들어 일본 최고의 부자가 됐다.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도 오늘의 자신이 있는 것은 『손자병법』 덕분이라고 했다. 스티브 잡스가 ‘창조 경영’과 소프트웨어의 상징 애플제국을 건설하고, 빌 게이츠가 윈도우 개발로 천하의 부를 거머쥐고, 손정의가 일본 최대의 컴퓨터 회사를 창립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금을 관통하는 『손자병법』의 위대한 면모를 웅변하는 대목이다.
고금의 역사를 개관하면 알 수 있듯이 무력을 동원하기 전에 명예와 이익, 권력을 좋아하는 인간의 기본 심성을 적극 활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고수의 비결이다. 『손자병법』은 바로 이런 이치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손자병법』은 병가 사상의 정수를 응축한 최고의 고전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손자병법』을 세상을 크게 바라보는 안목과 지혜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고전으로 간주했다.
수천 년에 걸쳐 많은 병서가 명멸했지만 유일하게 『손자병법』만 제왕을 위시해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읽으면 글로벌 비즈니스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두목 같은 문인이 읽으면 사람을 깊이 읽는 안목을 얻을 수 있으며, 조조 같은 위정자가 읽으면 치국평천하의 방략을 찾을 수 있다.

대여대취,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적확한 탐구가 빛나는 최고의 지략서 『손자병법』의 핵심은 ‘대여대취’다. 크게 주고 크게 얻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익을 향해 무한 질주하는 인간의 본성 ‘호리지성好利之性’을 정밀하게 추적함으로써 얻어낸 것이다. 그 호리지성, 대여대취의 뜻을 『손자병법』의 뚜렷한 맥으로 관통시킨 인물이 바로 조조다.
이 책은 조조의 『손자약해』를 바탕으로 대여대취 정신을 ‘지금 당장’의 현실 가치로 풀어쓴 것이다. 삼국시대 당시 천하통일 기반을 닦은 조조는 도가와 법가 사상에 입각해 『손자병법』을 새롭게 편제하고 주석을 가했던바, 『손자병법』은 반드시 조조 시각에서 접근해야 그 취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시중에는 『한비자』의 「외저설 좌상」에 나오듯 겉의 화려한 장식에 현혹되어 정작 알맹이를 놓치는 매독환주買?還珠의 우를 범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조조가 역설한 집이시동 이치를 무시하거나 간과한 결과다. 여기에서 집이시동은 평소 무기를 거두어들였다가 부득이할 때 사용한다는 뜻이다. 집이시동은 『손자병법』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 이념에 해당한다.
대여대취는 곧 커다란 미끼로 상대방을 유인해 제압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본성을 최대한 활용해야 궁극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다. 『손자병법』이 「모공」에서 백전백승은 결코 최상의 계책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손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진 손무와 이를 새롭게 편제한 조조, 무위지치를 역설한 노자, 무위자연을 내세운 장자, 공평무사한 법치를 역설한 한비자 모두 대여대취의 취지에 공명했다.

손자병법, 난세의 제왕학

『손자병법』이 『한비자』와 더불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동안 ‘난세의 제왕학’으로 군림하는 것은 극히 현실적인 입장에서 난세의 종식 방략을 제시한 덕분이다. 진시황이 병가와 법가 사상에 입각해 사상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조조가 당대 최고의 병법가이자 법가 사상가로 행보하며 삼국시대를 마무리 짓는 기틀을 닦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조가 『손자병법』을 새롭게 펴낸 『손자약해』 서문에서 『도덕경』의 제도帝道 이념을 병도 이념으로 끌어들인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조조가 “영웅은 가슴에는 큰 뜻을 품고, 뱃속에는 좋은 계책이 있어야 한다”고 일갈한 것처럼 ‘뜻’과 ‘꿈’을 크게 갖고 대성하고 싶다면 반드시 이 책을 접해야 할 것이다. 백날의 작은 승리는 별것 아니며 매사가 그렇듯 큰 이익을 미끼로 내걸어야만 큰 고기를 낚을 수 있다. 조조의 지혜가 살아 꿈틀대는 『손자병법』으로 ‘크게 주고 크게 얻는’ 그 최강 비결을 배워라.

2014년 9월 24일 수요일

노자가 과연 그랬을까?l로쟈의 방주

북마크하기노자가 과연 그랬을까?로쟈의 방주 
지난번 '장자 읽기'에 이어서 '노자 읽기' 리스트도 만들어보았다. 이 페이퍼는 그 리스트의 배경을 짚어주는 것인데, 교수신문의 서평과 담비의 리뷰를 관련자료로 옮겨온 것이다. 교수신문의 서평은 가장 최근에 출간된 번역서인 최재목 교수의 <노자>(을유문화사, 2006)에 대한 것인데, 이 책은 오늘 손에 들었지만 상당히 공을 들인 역주서로 흡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전문가의 서평을 미리 읽어두기로 한다.
그리고 담비의 리뷰는 노자의 사상이 親유가적인가, 反유가적인가, 하는 오래된 쟁점을 다시 다루고 있는데(이와 비슷한 스케일의 쟁점으론 '주역, 유가의 사상인가 도가의 사상인가'라는 게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최재목 <노자>의 서평 필자이기도 한 조민환 교수의 <유학자들이 보는 노장철학>(예문서원, 1996) 외에 두 사상의 뿌리를 다룬 방동미 교수의 <원시 유가 도가 철학>(서광사, 1999)도 참고삼아 읽어볼 수 있겠다.
 
교수신문(07. 02. 05) '죽간본' 최초 완역서 - 노자사상의 本意 꿰뚫어
우리가 노자사상을 유가사상과 관련지어 말할 때 일반적으로 한대 사마천(史馬遷)이 ‘사기’에서 “노자를 배우는 사람들은 유학을 배척하고 유학을 배우는 자도 노자를 배척한다(世之學老者, 則絀儒學, 儒學亦絀老子)”라고 말한 것을 떠올리며, 노자는 유가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연구가들이 ‘노자가 과연 그랬을까’ 하고 질문을 하고 그 해답을 구하고자 했지만, 현행본 81장으로 된 ‘노자’를 보면 유가와 대척점에 선 노자의 모습만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노자’ 연구 가운데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노자’라는 인물은 과연 어떤 사람이며, ‘노자’ 장의 구분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었는지, 또 ‘노자’가 과연 한사람의 저작인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의 ‘노자신한열전(老子申韓列傳)’에서 “노자의 성은 이씨(李氏)고 이름은 이(耳)이며, 시호는 노담(老聃)이다”라 하는데, 중국고대의 위대한 사상가 중에 존칭을 나타내는 ‘자(子)’자를 붙인 경우 성이 다른 인물은 노자 한사람 뿐이다. 노자사상을 연구할 때 이미 사마천이 ‘사기’에서부터 제기한 노자라는 인물과 ‘노자’라는 책과 관련되어 제기된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1973년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비단에 쓰여진 ‘노자’(일명 ‘帛書老子’)의 발굴과 1993년 8월 중국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초나라 무덤에서 기원전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초 경으로 추정되는 죽간(竹簡)에 쓰여진 ‘노자’(이하 ‘竹簡本老子’로 함)의 발굴은 이같은 의문점에 대한 최소한의 답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특히 ‘죽간본노자’의 발굴은 무덤 속에 진리가 숨어있다는 말을 실감케 한 발굴이었다.
‘죽간본노자’는 ‘백서노자’보다 더 시대적으로 앞선 것으로서, 현행본 ‘노자’와 장·절의 순서 및 사상 내용에서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점에서 기존에 행해진 인물로서의 노자와 책으로서 ‘노자’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번역자가 노자의 ‘노’는 성이 아니고 존칭이면서, 노자는 우리가 흔히 쓰는 ‘노선생’ 즉 ‘늙은 선생(Old master)’을 의미한다는 것, 인물로서의 노자와 책으로서 ‘노자’를 분리해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 그리고 원시유가와 원시도가는 사마천이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대척점에만 서 있지만 않았다는 말이 함축하고 있듯이, 기존의 노자사상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게 해준 것이 바로 ‘죽간본노자’인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죽간본노자’에 대한 번역 및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그다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이 번역서의 출간은 한국의 ‘노자’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역자는 유가·불가·도가 삼가사상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중국과 일본에서 행해진 ‘노자’ 관련 연구를 최대한 참조하면서 자구 하나하나에 대해 꼼꼼하게 주석하고 있다. 아울러 노자사상이 갖는 의미를 중국사상을 통관하는 입장에서 해설을 하고 있어 원형으로서의 노자사상과 그 사상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성인(聖人), 자연(自然), 사(士), 미(美), 정(精), 음(音)과 성(聲)에 대한 자구 풀이에서는 관련 자구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경향까지 반영하면서 거의 소논문 수준의 주석을 하고 있다. 저자의 성실성과 해박한 학식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아울러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지금까지 연구된 노자라는 인물, 책으로서 ‘노자’, 그리고 ‘초간본노자’가 출토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잘 정리하여 노자사상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좋은 번역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노자’는 워낙 다의적으로 해석되고 따라서 어떤 책보다도 주석서가 많다. 이런 점을 감안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노자사상의 본의에 가깝게 번역된 이 번역서에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동양철학자이면서 시인이기도 한 번역자의 절제된 언어와 맛깔스런 번역이 노자사상의 묘미를 잘 느끼게 해 준다. 다만 역주에서 또 다른 번역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지만, 현행본 ‘노자’ 19장(죽간본: ‘返也者, 道僮也’)의 ‘반(返)’자를 풀이할 때 ‘반대되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고 한 것은 역자가 해설 부분에서 “‘반(反)’은 도의 기능적 측면을 말한 것이다”라고 말하듯이 ‘반대(反)’라는 의미보다는 ‘되돌아감(返)’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점만 거론하고자 한다.(조민환/ 춘천교대 - 동양철학)
담비(07. 03. 20) 老子는 親유가적인가 反유가적인가
1993년 중국에서 '노자' 연구자들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심한 이들은 다리 힘이 쪽 빠질만한 일이 발생했다.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중기 무덤에서 죽간으로 된 '노자'의 또 다른 판본이 발굴된 것이다. 이후 노자 학계는 충격과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였다.
'노자'엔 다양한 판본이 있다. 모두 81개 장으로 이뤄진 이 텍스트는 주로 왕필이 주석을 붙인 ‘왕필본’에 근거해 해석돼왔다. 왕필(226~249)은 남북조시대에 살았던 요절한 천재로서 그의 주석은 '노자'를 형이상학적 수양론의 결정판으로 해석하게 된 기원을 이룬다.


그러나 1973년 중국 남부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의 무덤(기원전 168년)에서 비단에 쓰인 2종의 ‘노자’(帛書本)가 출토되었다. 학계가 깜짝 들썩였지만 왕필본과 비교해볼 때 道經과 德經의 순서가 바뀌고 글자 일부분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백서본과 왕필본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20년 뒤인 1993년 ‘노자’의 일부분이 들어 있는 대나무 문서(竹簡)가 발굴된 것이다. 학계는 뭐가 많이 다르겠냐 싶었지만, 이번엔 정말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노자'에서 儒家를 강하게 비판한 부분은 다 빠져있어 '노자'라는 텍스트가 후대에 많이 개정, 첨가된 것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곽점본과 왕필 및 백서본(이하 합쳐서 통행본)의 내용을 비교하는 연구들이 줄지어서 나왔다. 지난 10년간은 주로 글자를 해독하는 등 텍스트를 확정짓는 연구들이 주로 나왔다면, 근자에는해독된 내용을 바탕으로 '노자'라는 텍스트의 위상을 재규정하는 과감한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최근 두 명의 학자가 곽점본과 통행본을 비교하는 논문을 나란히 발표해 주목을 끈다. 하나는 임헌규 강남대 교수가 학진 프로젝트로 수행해 최근 '동양고전연구' 제25집에 발표한 '노자의 무위이념은 유가의 인의를 비판하는가?'라는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오상무 고려대 교수가 지난해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최근 '동양철학' 제26집에 수정보완해 실은 '노자의 유가관 재론-통행본과 곽점본을 중심으로'이다.
그러나 두 학자가 곽점본을 읽고 내린 결론은 서로 상반되는 감이 있어 이를 둘러싼 학계의 논쟁이 예상된다. 임 교수는 곽점본이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노자 판본이라고 볼 때 노자가 반유가적이라는 기존 견해는 잘못된 것이며, 오히려 노자는 친유가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비해 오 교수는 비록 노자 곽점본은 유가에 대해 덜 적대적이지만 유가의 통치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는 결론을 낸다. 또한 두 교수는 한자 해석 방법에서도 차이를 드러내고 있어 논란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임 교수의 논의를 보자. 핵심은 기존 통행본의 제38장이다. 여기에 "道를 상실한 이후에 德이 있게 되었고, 덕을 상실한 이후에 仁이 있게 되었고, 인을 상실한 이후에 義가 있게 되었고, 의를 상실한 이후에 禮가 강요되었다. 대저 예라는 것은 忠信이 엷어진 것이며 어지러움의 머리이다. 미리 아는 것은 도의 헛된 꽃이며 어리석음의 시작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임 교수는 이런 노자의 인, 의, 예에 대한 비판이 정당한가를 살핀다. 공자는 '논어'에서 "仁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을 실행할 때 편안할 수 있다"라고 했으며 공자를 이은 맹자 또한 "仁은 인간의 편안한 집"이라고까지 천명했다. 맹자는 도처에서 인을 식물, 나무, 생장하는 곡식 등 유기체에 비유하면서 인의 실천은 유기체의 성장, 실현, 성숙과 같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임을 역설했다.

이를 통해 볼 때 "仁이 실행하는 의지에 의해 실천된다고 주장한 노자의 주장은 잘못"이라는 게 임 교수의 견해다. 또한 義가 仁의 외표라는 점에서 의 또한 인간의 내적 본성에 말미암아 마땅히 가야하는 바른 길이지 강압적인 것은 아니었기에 노자의 유가비판은 전반적으로 오해나 악의적 왜곡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죽간본에는 이 38장이 빠져있다. 여기서 임 교수는 이것이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통행본에는 죽간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절들을 덧붙인 부분이 꽤 보인다. 게다가 글자를 교묘하게 바꿔서 뜻을 완전히 틀어놓는 경우도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18장에 나오는 아래와 같은 경우이다.

죽간본 : 그러므로 大道가 행해지지 않는데 어찌 仁義가 있겠는가? 육친이 불화한데 어찌 효자와 자애로운 부모가 있겠는가? 나라가 혼란한데 어찌 올바른 신하가 있겠는가?

통행본 : 大道가 행해지지 않자 인의가 생겨났고, 지혜가 나오자 큰 거짓이 생겨났고, 육친이 불화하니 효성스런 자식과 자애로운 부모가 있게 되었으며,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있게 되었다.

죽간본에는 "故大道廢 安有仁義"라고 돼 있는데 통행본에는 "大道廢 有仁義"라고 두 글자가 빠짐으로써 뜻이 위에서 보듯 확 달라졌다. 통행본에서는 道가 仁보다 더 상위의 가치라는 점이 강조된 것이다. 임 교수는 이를 이데올로기적 투쟁 때문에 개작을 통해 본문을 반유가적으로 바꾼 결과라고 해석한다.

임 교수는 이외에도 많은 부분들을 대조하여 노자의 無爲之道가 유가의 仁政과 전혀 상반되지 않고, 오히려 상호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흔히들 도가는 '도'를 자연물인 天地보다 선재하는 것으로 상정하여, 道 => 天地 => 萬物로 내려오는 형식을 취하는 반면, 유가는 천지에서 만물로 내려오는 우주발생론적 체계를 취하고 있다고 간주되어 왔다. 그리고 도가는 무위를 최상의 이념으로 하며, 따라서 정치 역시 무위정치를 이상으로 한다고 간주되어 왔다.

이에 비해 유가는 인을 최상의 덕목으로 하면서 인정을 정치이상으로 주장하였다. 하지만 단순한 문자상의 차이를 버리고 그 근본정신과 거시적인 체계에서 보면 비슷하다는 게 임 교수의 입장. 도가에서 道가 자연물인 천지를 넘어서는 生生하는 자연 그 자체이듯, 유가의 天 또한 그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오상무 교수의 의견은 좀 다르다. 임 교수가 도가와 유가의 유사점을 강조했다면 오 교수는 그 차별성을 여전히 강조하는 입장이다. 가장 확연한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故大道廢 安有仁義"에 대한 해석이다. 임 교수는 여기서 '安'을 의문대명사 "어찌"로 해석했다. 그런데 오 교수는 전후맥락상 볼 때 "어찌"보다는 연결조사 "이에"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입장이다.
오 교수는 그 근거로 이 18장이 내용상 17장을 잇고 있으며, 17장에 '安'이 명확하게 '이에'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만약 '安'을 '이에'로 본다면 "위대한 도사 폐기되면 이에 인과 의가 생겨난다. 가족이 화목하지 않으면 이에 효와 자가 생겨난다"로 죽간본과 통행본 사이에 변별점이 없다. 이런 견해에 대해 임 교수는 어떤 입장을 보여줄 지 궁금하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굳이 뜻이 다르지 않은데 왜 후대에 이 '安'자를 없애버렸는가 하는 점이다. 좀더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아무튼 오 교수는 이런 입장에서 보듯 곽점본 노자 또한 유가에 대해 유보적이라고 본다. 다만 유가의 통치론에는 비판적이지만, 도덕론에는 동조적이라는 선에서 논의를 마무리짓는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단적으로 표현한다.

"노자가 仁을 끊고 義를 버려라고 말했을 때 그 청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군주이다. 다시 말해 인과 의를 버려야 할 사람은 군주이지 백성들에게 인과 의를 행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치자가 인의의 통치방법을 버릴 때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효의 마음과 행위를 회복하게 될 것이라는 게 노자의 본의이다."

과연 이를 보면 노자는 유가의 '仁'이라는 덕목 자체는 인정했지만, 그것을 통치술에 활용하는 '仁政'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임 교수는 '곽점본' 노자로 볼 때 노자 또한 '인정'을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해석한다. 과연 노자라는 텍스트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학계의 좀더 깊이있는 토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리뷰팀)
07. 07. 16.
P.S. 비전문가로서 <노자> 텍스트 비평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갖기 어렵고 대신에 노자 사상/철학의 '해석'의 문제에 주의를 두게 되는데, 나의 견문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강신주의 <노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태학사, 2004)이다. 이 또한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이어서 최근에야 그 존재를 알게 됐는데, 책의 타이틀 자체가 상당히 '모던'하면서 파격적이다. 흔히 '형이상학'으로 이해되는 노자철학을 '정치철학'으로 재해석하는데,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도덕경>은 가령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같은 책이라는 것이다. 관련학계의 반응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만 그런 '반응'을 따로 알 길이 없어서 리뷰 기사 정도만을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4. 05. 14) 군주의 통치윤리로 ‘老子’ 뒤집어 읽기
2000년대 들어 우리 사회와 대중의 지적 호기심을 환기시켰던 흐름 중 하나로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노자에 대한 관심을 들 수있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노자 열풍’을 지피는 데 공헌한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외에도 국내외 수많은 연구자가 노자의 사상이 담겨 있다는 텍스트 ‘노자’에 주목했으며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이를 해석한 다양한 책을 끊임없이 내놓아 왔다. 이에 따라 과거에 양생술(養生術)이나 통치술, 처세술, 무(無)의 형이상학, 마음의 수양론 등으로 이해해온 데서 나아가 최근에는 유토피아적 무정부주의나 생태철학, 페미니즘의 이론적 기초로 보는 견해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노자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노자 이해의 주류를 이뤄왔던 것은 중국의 보편적인 형이상학 또는 형이상학적 수양론의 결정체로 보는 견해였다. 이는 지난 2000년 가까이 노자 이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중국 위진 남북조시대 왕필(226~249)이라는 천재가 18세에 붙인 주석의 탓이 크다. 노자의 사상을 ‘개인’의 관점에서 조망함에 따라 일반 대중에게 ‘노자’는 무욕(無欲)의 삶을 설파한 마음의 수양론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모든 개인에게 바람직한 삶의 가치를 전해주는 교훈서 또는 ‘삶의 기술’을 통찰해낸 성인(聖人)의 글로 이해돼 왔던 것이다.

이에 반해 책은 개인이 아닌 ‘국가(state)’의 관점에서 ‘노자’를 해석하면서 기존의 노자 이해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장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전쟁과 살육, 주장과 논쟁으로 뜨거웠던 중국 전국시대의 혼란과 갈등을 국가라는 관점에서 조망하고 국가의 논리를 비교할 수 없이 정교하게 숙고한데서 ‘노자’의 의미를 발견해낸 것이다. 물론 ‘노자’라는 텍스트에서 국가라는 관점을 찾아낸 것이 저자가 처음은 아니다. 한비자(韓非子) 이래 최근까지 많은 철학자가 ‘노자’에서 국가를 읽어냈지만, 이들의 작업은 그동안 통치술로 가치폄훼돼온 현실에서 보듯 뚜렷한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우선 20세기 후반 중국에서 새로 발견된 판본들을 통해 기존 노자 이해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모두 81개 장으로 이뤄진 ‘노자’란 텍스트는 그동안 주로 왕필이 주석을 붙인 ‘왕필의 판본’에 근거해 해석돼왔다. 그러나 1973년 중국 남부 창사(長沙) 마왕두이(馬王堆)의 무덤(기원전 168년으로 추정)에서 비단에 쓰인 2종의 ‘노자’ 백서본(帛書本)이 출토되고 다시 20년 뒤인 93년 허베이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중기 무덤에서 ‘노자’의 일부분이 들어 있는 대나무 문서(죽간·竹簡)가 발굴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결국 우리는 ‘노자’에 대한 상이한 판본을 3종류 가지게 됐는데,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의 순서가 바뀌고 글자 일부분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백서본과 왕필본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다. 반면 곽점본의 경우 백서본과 달리 유가사상에 적대적이지 않고 유(有)와 무(無)가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위상을 가지는 등 몇가지 사상적인 차이점이 나타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상의 두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노자’ 81장을 포괄적이고 하나의 연결된 문맥으로 독해할 것을 주장한다. 81개 장 전체를 동일한 비중으로 고려하지 않았고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도가도비항도·道可道非恒道)”와 같이 일부 몇몇 장만 핵심적인 장으로 간주해 온 것이 기존 노자 이해 의 문제점이란 것이다.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노자’라는 텍스트의 핵심을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교환의 논리를 발견한데서 찾고 있다. 군주가 통치자라는 자리에 오래 있기 위해서는 세금의 대 가로 무엇인가를 피통치자들에게 주어야 하며, 만약 이 교환의 논리를 어기게 되면 군주는 결코 통치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음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와 가라타니 고진, 라이프니츠 등의 저작과 사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저자는 노자가 유가와 법가를 비판적으로 종합해 사랑과 폭력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제국의 논리를 제공했으며, 이는 한(漢)제국을 거쳐 현재 중국에 이르기까지 중국적 제국의 논리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연히 ‘노자’에 나오는 수양론도 대상이 군주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이와 함께 장자 연구자인 저자는 노장(老莊)으로 한데 묶어 이해해온 도가(道家)라는 범주가 해체돼야 한다는, 일반 독자들에게 매우 도발적으로 들리는 주장을 제기한다. 군주와 국가의 철학자
였던 노자와 단독적인 개체와 삶의 철학자였던 장자를 함께 도가 또는 노장사상으로 부르는 것은 사마천의 분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 뿐 순자(荀子)의 저서나 ‘장자’를 정밀하게 독해하면 노자와 장자가 별개의 학풍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노자의 해석과는 판이하게 다른 저자의 주장이 일반 독자들에게 당황스럽게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노자 열풍’ 속에서 노자에 덧씌워진 각종 신비한 외관을 벗겨내고 그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자는 저자의 주장은 독자들이 음미할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최영창기자)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김시천

새롭게 깨어난 도가의 칼과 방패
이종훈 기자  |  whdgnswwkdl@snu.kr

승인 2013.11.23  22:40:34

  
 
“색깔과 얼굴이 전혀 상이한 두 고전이 함께 짝을 이뤄 하나의 사상처럼 거론된다는 것, 그것이 내겐 하나의 모순처럼 보인다”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의 저자 김시천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는 책의 서두부터 노자와 장자를 노·장사상으로 묶어서 다뤄온 종래의 관점에 반대하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노자』는 권력을 얻기 위한 칼이고, 『장자』는 세상에서 다치지 않게 살기 위한 방패라는 것이다.

저자에게 『노자』는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는 뜻을 품은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지침서이다. 노자는 ‘도’가 만물의 질서이자 세상이 흘러가는 기본원리이고, 사람은 인위적이지 않게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통치자는 도를 체득하고 다른 이들도 도에 맞게 살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노자를 “이상적 통치자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다시 이치에 맞는 상태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한편 김 교수는 『장자』를 세상의 풍파로부터 권력을 얻으려하나 얻지 못한 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해석한다. 『장자』에서는 ‘노닌다’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노니는 것은 삶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으려는 것이다. ‘노닌다’는 행위는 고단한 삶에서 종종 우리를 떠나게 해 주지만, 우리가 삶을 부정하고 이를 벗어나게 하지는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떠난다는 것에는 돌아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삶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노닐고 다시 속세로 돌아온 후의 삶은 이전과 달리 경쟁, 성공욕, 이해관계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이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노자』와 『장자』에는 천 개의 얼굴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존의 해석과는 다른 저자의 관점도 ‘옳은 해석’이 아닌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해석은 그 동안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데 있어 하나의 규범으로만 생각되던 노장사상을 현실의 삶에 적용한 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할 때는 노자의 칼이 우리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실패하고 상처받고 방황할 때는 장자의 방패가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삶의 모순과 철학의 위안

김시천 지음 | 책세상 | 2013년 11월 05일 출간

책소개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노자와 장자를 둘러싼 여러 차원의 모순을 환기한다.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 노자는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과 같은’ 책이고, 장자는 권력의 중심부로 나아가지 못한 자가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방패와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격이 다른 두 책이 마치 동질적인 것인 양 ‘노장’이라는 말로 함께 묶여 거론되니 이 또한 모순이다. 저자는 이러한 모순을, 성리학이라는 정치적 교조를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금단의 노장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었던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분열된 내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저자소개

저자 : 김시천

저자 김시천은 숭실대학교 철학과에서〈노자의 양생론적 해석과 의리론적 해석〉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대학에 진학할 때부터 공부를 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그다지 훌륭한 학자는 못 되는 것 같다는 생각에 가끔씩 공부의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우연히 노자와 장자를 전공하게 되었는데, 공부해보니《노자》가 그다지 좋은 고전이 아닌 것 같아 한동안은 유교儒敎 사상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며 고전을 이해해보려 애썼다. 그러던 중 인문의학연구소에 합류해 활동하면서 전통 한의학의 철학적 바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기氣에 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래된 동아시아 고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이 깊어갔으나, 시민과 함께하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고전의 의미는 발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요즘에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 고전에 접근하는 ‘고전 읽기’에 골몰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철학에서 이야기로》,《이기주의를 위한 변명》,《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공저),《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공저),《기학의 모험 1?2》(공저) 등이 있다. 독특한 제목의 이 책《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그간의 ‘노장老莊’ 공부를 결산하는 책이자,《장자―무하유지향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성인과 제왕》,《노자―혼돈으로부터의 탈주》로 이어질 4부작의 첫 책이다.

목차

책을 펴내며 *9

서장 _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15

제1부 《노자》, 칼의 노래

1장 노자와 《노자》
- ‘전설’을 해체하고 ‘인간’을 보다 *31
1. 누구의, 누구를 위한 《노자》인가 *31
2. 하나이면서 여럿인 《노자》, ‘노자열전’ *34
3. 성인과 제왕, 그리고 범인 - 《노자》 속의 인간들 *55
4. 호모 임페리알리스의 《노자》 *63

2장 《노자》의 두 전통
- 통치술에서 철학의 지혜를 찾다 *67
1. 하상공과 왕필, 두 밀레니엄 두 가지 해석 *67
2. 논리와 해석 방법의 차이 - 훈고와 의리 *70
3. 우주와 인간, 기와 도 *82
4. 우주론에서 심성론으로 *91

3장 조선 사회의 《노자》와 지식인
- 조선의 유학자, 이단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다 *95
1. 《순언》, 그 ‘침묵’의 역사 *95
2. 유가 전통과 이단 *101
3. 이단에 대한 모순된 태도 *107
4. 사문난적 혹은 영혼의 전쟁 *115
5. 정통 유가 지식인의 내면 풍경 *122
6. 정통과 이단, 유교적 사유의 안과 밖 *127

제2부 《장자》, 춤추는 방패

4장 《장자》, 이단과 전통
- 사이비 속에 감추어진 삶의 진실을 찾다 *137
1. 해석의 갈등, 20세기의 《장자》 *137
2. 장자의 두 얼굴, 《사기》의 장자와 《장자》의 장자 *143
3. 역사 속의 《장자》 *155
4. 유학 안에서 《장자》 읽기, 사이비와 진유 *166
5. 진유가 된 사이비 장자, 이단에서 전통으로 *175

5장 《장자》, 해석의 갈등
- 유가와 도가 사이에서 ‘삶의 길’을 묻다 *179
1. 《장자》를 말하기의 어려움 *179
2. 《장자》에서 ‘정신’의 개념 *184
3. ‘정신’의 길 - 《장자》, 《관자》, 《회남자》 *189
4. ‘마음’의 길 - 《순자》와 유가 *195
5. 《장자》의 무정한 자아 - 신비주의 순수 의식인가, 정신양생론인가 *202

6장 《장자》의 ‘유遊’
- 노니는 삶, 일상으로 내려오다 *211
1. ‘놀이’와 ‘노님遊’ *211
2. ‘놀다’, 놀이, ‘장난作亂’ *216
3. ‘유’와 정신 *222
4. 심유心遊 - 천유天遊 그리고 세유世遊 *229
5. 정신과 유희 - 삶의 복원 *236

제3부 노장, 삶의 모순과 철학의 위안

7장 유가와 도가의 행위 이론
- ‘무위자연’으로 정치를 논하다 *245
1. 20세기의 철학사 서술을 넘어 *245
2. 성인과 ‘무위’의 이상 *249
3. ‘유위’의 빛과 그늘 - 《묵자》, 《맹자》 *255
4. 선악의 피안 - 유위 - 무위의 대립을 넘어 *262
5. 고대 중국의 행위 이론 비교 - 무위, 유위, 형명 *266

8장 《노자》와 페미니즘
- 노자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 *271
1. 《노자》, 다른 목소리로? *271
2. 노장, 진실 혹은 거짓말 *275
3. 《노자》와 페미니즘, 세 개의 메아리 *279
4. 《노자》의 성인, 계곡처럼 낮게 암컷처럼 부드럽게 *285
5. 《노자》와 페미니즘은 만날 수 있는가 *290

9장 《장자》와 과학 기술
- 장자는 기술 비관론자가 아니었다 *299
1. 기술, 애증의 교차로 *299
2. 기심, ‘최소 투자 최대 효과의 심리’ *304
3. 기技를 통한 도道, 또 다른 노하우 *310
4. 기예의 도, 달인의 철학 *316
5.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 21세기 과학 기술 시대의 ‘도술’을 찾아서 *320

종장 _ 도가에서 도술로, 철학에서 삶으로 *327
1. 21세기 ‘노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327
2. 도교란 무엇인가 *329
3. 텍스트와 도술 *333
4. 학學의 공동체 - ‘사제 모델’과 경술 *337
5. 학學에서 유遊로 - 삶의 기술로서의 도술 *342
6. 도술의 두 차원 - 양생과 달생 *349

참고문헌 *354
찾아보기 *364

출판사 서평

무위자연의 신화를 넘어 치열한 삶의 이야기로
― 우리 시대 노장을 읽는 아주 특별한 방법

《노자》와《장자》는 유교 중심의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공맹과 대등한 사상적 지위를 누려보지 못한 채 늘 이단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동아시아 고전 중 대중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책이 되었다. 특히 1999년에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라는 강연은 노자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다양한 대중 강연이 노자와 장자를 다루어왔다. 한때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서구 이론의 영향을 받은 해체론적 노자 해석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대중에게《노자》와《장자》에 대한 어떤 고정된 인상이 각인되었다. 탈속, 자연, 유유자적, 현자, 탈정치, 반문명 같은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인상은 과연 올바른 이해의 결과일까?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노자와 장자를 전공한 동양철학자가 그간의 노장 공부의 결실을 모아 엮은 책으로, 텍스트의 문맥을 놓치지 않는 전공자의 시선을 통해 노장에 대한 통념이 실제의《노자》,《장자》와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즉 이 책은 두 문헌의 내부에 있는 ‘사상’을 체계적으로 해명하기보다는 기존의 연구 성과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통해, 상식으로 굳어진 노장 철학의 주제들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오늘’의 시각으로 재검토함으로써 기존의 논의와 다른 해석의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노자》는 천하의 정치적?사상적?사회적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사람들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헌으로서 정치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을 위한 기술적 지침서와 같은 책이며, 반면《장자》는 권력을 차지하지 못한 지식인들을 위해 세상과의 불화를 해소하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 문헌이 이렇게 이질적임에도《노자》와《장자》는 ‘노장’이라는 말로 한데 묶여 실제와는 동떨어진 고정관념을 낳아왔으며, 이러한 고정관념에 일조한 주제들 중 대표적인 것이 노장을 대변하는 개념이 ‘무위無爲’라는 것,《노자》가 페미니즘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것,《장자》가 기술 문명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 무위는 노장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간주될 만큼 노장의 독보적인 개념도 아니고 탈속적?반문명적인 삶과 연관되는 개념도 아니다. 또《노자》와 페미니즘,《장자》와 기술 문명 비판을 연결 짓는 것은 문맥을 간과한 채 원문을 선별적으로 인용하거나 잘못 이해한 것으로, 전통과 탈근대적인 것을 잘못 연결한 결과이다.
저자는《노자》와《장자》를 이렇게 읽어내는 것에서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노장을 어떻게 삶에 유의미한 것으로 지속시킬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그리하여 노장을 도가나 도교라는 이름의 철학이나 종교로 받아들이지 말고,《장자》의 ‘유遊’(노님) 개념에 입각해 ‘도술道術Tao-techniques’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여기서 도술이란 신비한 초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부정하거나 삶에 종속되지 않고 삶을 누리는 기술, 정치와 문명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누리는 기술을 말하며, 이러한 시각은 철학과 종교의 이분법,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결국 이 책은《노자》와《장자》에서 삶의 기술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국내 학자의 독창적인 노장 연구서가 드문데다, ‘무위자연’이라는 표현이 대변하듯 탈속적?탈정치적?반문명적 사상이라는 노장 사상에 대한 일면적 통념이 지배하는 현실에서,《노자》와《장자》에 대한 역사적 해석과 쟁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삶의 양식으로서의 ‘도술’이라는 21세기 노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는 이 책은 저자가 줄곧 견지해온 ‘전통의 현대적 해석’에 대한 학문적?실천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하는 노자의 칼, 춤추는 장자의 방패 ― 노장과 ‘모순’
이 책의 제목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노자》와《장자》를 둘러싼 여러 차원의 모순을 환기한다. 우선 글자 그대로 ‘창(칼)과 방패’로서의 ‘모순’이다.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노자》는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과 같은’ 책이고,《장자》는 권력의 중심부로 나아가지 못한 자가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방패와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격이 다른 두 책이 마치 동질적인 것인 양 ‘노장’이라는 말로 함께 묶여 거론되니 이 또한 모순이다.
한편,《노자》와《장자》는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조선 사회에서 이단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지만, 모순되게도 이이, 박세당, 홍석주, 서명응, 한원진 같은 정통 유학자들에 의해 주석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시대에 박세당의《신주도덕경》과《남화경주해산보》, 이이의《순언》, 홍석주의《정노》, 한원진의《장자변해》같은 노장 주석서가 쓰이고 읽혔다. 요컨대 조선 시대에《노자》와《장자》는 이단이면서도 ‘바깥’에 있지 않고 ‘안’에 있었던 셈이며, 저자는 이러한 모순을, 성리학이라는 정치적 교조를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금단의 노장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었던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분열된 내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저자는《노자》와《장자》에서 이런 중층의 ‘모순’을 읽어내며, 결국 삶 자체가 그렇게 모순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게다가《노자》와《장자》모두 단일 저자에 의해 쓰인 책이 아니어서 여러 목소리를 내는데다 모호한 언어로 되어 있어 해석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니, 노장 읽기는 모순으로 가득해 종종 길을 잃게 만드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저자는 노장의 모순이 삶의 모순과 유비를 이루기에 오히려 삶에 위로를 준다고 말하며, 나아가 도가나 도교 대신 ‘도술’이라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철학이나 종교 아닌 삶의 기술로 받아들여 현실적 동반자로 삼을 방법까지 모색한다.

《노자》― 패권 지망자들의 책, 권모술수의 책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노자》는 전국 시대 말기에서 한나라 초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완성된 책이다. 그리고《노자》의 저자는 노자라는 한 사람의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니라 신원을 알 수 없는 여러 사람이다. 이 복수의 저자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는지는《노자》텍스트에서 어떤 사람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지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통념과 달리《노자》에는 “정치적 세계의 비정함에 냉소를 보내고 문명을 비판하고 유가와 같은 도덕적 엄격주의에 식상한 인간, 환경과 자연의 가치를 긍정하고 페미니즘적 세계관을 지향하는 인간”은 등장하지 않는다.《노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상은 오히려 성인聖人, 후왕侯王, 사士 같은 권력자들이다. 이는《노자》의 저자나 독자가 패권 지망자들이었음을 짐작게 하고, 실제로《노자》는 내용상 권모술수를 포함한 “권력의 기술”에 대한 책이나 다름없다.
《노자》에 대해서는 수많은 주석자들에 의해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졌고 그러한 해석들에서 공통의 기반과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대표적인《노자》해석으로는 한나라 하상공과 위나라 왕필의 해석이 꼽힌다. 두 사람의 주석서는 똑같이《노자》를 다루면서도 아주 다른 해석으로 나아간다. 하상공이《노자》자구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치중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는 데 충실한 편이라면 왕필은 유가의 입장에서《노자》를 해석한다. 그리하여 하상공의 해석은 도교의 차원과 연결되고 왕필의 해석은 유학자들의 해석의 토대가 되면서 다양한 조류를 만들어나가게 되었다. 그런 만큼 어떤 주석서를 통해《노자》를 읽는가에 따라《노자》의 얼굴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조선 사회에서는《노자》가 어떻게 수용되었을까? 유학 아닌 것은 이단으로서 철저히 배척했던 조선조에서 뜻밖에도 이이의《순언》, 박세당의《신주도덕경》, 홍석주의《정노》, 서명응의《도덕지귀》등 모두 다섯 권의《노자》주석서가 쓰였으며,《선조실록》에는 과거시험 답안지에 노장의 문장이 인용된 것을 놓고 임금과 신하가 왈가왈부하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이는 모두 임금과 신하들, 그리고 과거에 응시한 선비가《노자》와《장자》를 읽어 알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이단의 문제점을 알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읽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우긴 했지만, 어쨌든 이는 조선 사회에서 정통인 유가와 이단인 도가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장자》― 출사하지 못한 비운의 지식인의 책, 세속에서 노니는 기술을 이야기하는 책
《장자》는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문헌으로 추측되지만 성립 시기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장자》는 진晉나라의 곽상이 틀을 갖춘 것으로 33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장자가 지은 것은 ‘내편’ 7편뿐이고 나머지는 후학들의 글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따라서《장자》에는 서너 갈래의 다른 목소리가 뒤섞여 있으며, 이는《장자》해석의 어려움을 낳는다.《장자》의 어느 편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중국 철학계에서《장자》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중국인의 패배주의와 노예근성의 정신적 근원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에 중국 고유 종교인 도교의 사상적 원류, 유가를 계승한 사상, 중국 예술 정신의 원류라는 등등의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한국 학계에서도 이런 식의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저자 김시천은《장자》의 이야기들에서 얻을 수 있는 장자에 대한 정보를 통해서 “뜻을 품었으되 가난해 벼슬에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한 지식인”을 장자의 일관된 모습으로 포착해내고,《장자》를 “비운의 지식인”의 책으로 본다. 치자의 영광과 명예로 나아가지 못하고 불행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삶의 기술을 이야기한 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장자》에서 가장 주목하는 개념은 ‘유遊’이다. ‘유’는 ‘노닐다’에 가까운 개념으로, 잠정적 ‘떠남’과 떠났다가 ‘돌아옴’을 전제한다. 떠남이 정치적 야망이나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는 세속의 삶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거리를 두는 것이라면, 돌아옴은 그렇게 거리를 둔 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서의 깨달음을 안고 세속의 삶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돌아왔을 때는 삶의 태도가 바뀌어 다툼과 경쟁과 갈등에서 벗어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삶의 태도가 “탈속적 태도”도 아니고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거나 변화시키려는 변혁적 실천”도 아니며, 다만 “한 개체가 겪는 갈등과 억압을 승화시킨 태도”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유’는 삶의 보전이라는 ‘양생’의 논리와 이어지며, 또한 문화와 예술에 영감과 창조적 활력을 준다고 본다.
《장자》역시 조선 시대에 유학자들 사이에서 읽혔고 박세당, 한원진에 의해 주석되었다. 다만《장자》는 대체로 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이단’이라기보다는 ‘사이비’에 가까운 존재였다.

《노자》와《장자》에 대한 통념은 올바른가
두 문헌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인위나 억압을 거부하고 자연 속에서 초탈한 태도로 살아가는 현자의 격언쯤으로《노자》와《장자》를 떠올리는 통념과 거리가 있다. 저자는 노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많다고 보고 이를 점검한다. 여기서의 논점은 ‘무위자연’이 노장을 대변하는 개념인가,《노자》가 페미니즘과 닿아 있는가,《장자》가 기술 문명에 반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유가는 ‘유위有爲’를 주창했고 노장은 ‘무위’를 주창해 유가를 비판했으며, 유위는 인위에 상응하고 무위는 자연에 상응한다는 것이 통념상의 도식이다. 하지만 저자는《논어》,《맹자》,《순자》,《묵자》등 여러 고전 문헌들의 ‘무위’ - ‘유위’ 용례를 분석해, 무위와 유위가 대립되는 개념이고 무위와 자연이 상응하는 개념이라는 상식은 틀린 것임을, 그리고 무위란 “제자백가의 공통 개념으로서 어느 특정 학파가 전유한 것이 아니며, 기본적으로 정치 행위 이론”임을 밝힌다. 따라서 무위자연을 도시와 문명을 떠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과 연관 짓고, 무위자연이 노장이 추구하는 삶의 대명사라고 이해하는 것은 수정되어야 한다.
그럼《노자》와 페미니즘의 관계는 어떠한가? 저자는《노자》가 여타 문헌에 비해 여성성을 중시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것이 여성의 자유와 해방을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의 차원은 아니라고 말한다.《노자》의 몇몇 표현들을 들어《노자》를 페미니즘과 연결시키는 것은, 유가는 뭔가 부정적인 사상 체계이고 도가는 뭔가 긍정적인 사상 체계라는 도식적 선입견 때문에《노자》에 나오는 여성성 강조의 표현 하나도 과도한 의미를 담아 해석한 결과라는 것이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노자의 시대는 가부장제 완성의 정점이었는데 그러한 시대에 노자가 여성을 찬양하고 페미니즘 철학을 전개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일이냐고 저자는 반문한다.《노자》에서 볼 수 있는 여성성의 강조는 여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성적 강함에만 의지하는 정치는 온전하지 못하니 군왕은 여성의 유약함을 가장하는 교묘한 ‘술수’ 또한 겸비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자》가 기술 문명을 비판했다는 상식 또한 잘못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식이〈천지〉편에 나오는 ‘기심機心’이란 말을 “편리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해석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원문의 맥락을 따른다면 ‘기심’을 “최소 투자 최대 효과의 심리”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그렇다면〈천지〉편의 이야기에서 기심을 비판하는 것은 “기회주의적 심리를 비판한 것이지 고도의 기술적 성취 그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양생주〉편에 나오는 포정?丁의 이야기에서는 기술에 대한 긍정을 읽을 수 있다. 소를 잡는 데 있어서 기술을 넘어 도의 경지에 오른 포정의 칼놀림을 보고 문혜군이 ‘양생의 도’를 터득했다는 이 이야기로 미루어,《장자》에서는 기술이 비판되는 것이 아니라 도에 이를 수 있는 방법으로서 긍정됨을 알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노장, 삶의 기술로서의 ‘도술’을 위하여
―21세기에《노자》와《장자》를 어떻게 향유할 것인가

오늘날 한국 학계에서 ‘노장’은 “《노자》와《장자》라는 텍스트에 담긴 내용 혹은 그와 관련된 문헌에 담긴 철학적, 사상적, 종교적 전통”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노장이 유가 전통에 포섭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노자》와《장자》가 한대漢代 이래 제자백가의 하나인 ‘도가’로 분류되고 20세기에 ‘도교’의 기초 경전으로 이해되면서 노장은 철학적, 종교학적으로 언제나 도가와 도교라는 더 큰 범주와 철저하게 관련돼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나 노장을 철학이나 종교로서 대하지 말고 우리의 삶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지속시키며 향유할 방법을 모색하자고 말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노장을 도가/도교 아닌 ‘도술’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 저자는 다시 ‘유遊’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저자는 ‘유’ 개념을 현대라는 패러다임으로 가져와 ‘유’를 정치를 부정하기보다 정치를 누리고, 문명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문명을 누리는 태도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러한 ‘유’에 이르도록 해주는 것이 양생養生nourishing-life의 기술(자의적 권력에 맞서 자신의 생명과 삶을 보전하는 기술)과 달생達生mastering-life의 기술(양생의 기술을 삶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하는 기술)이며, ‘도술’이란 이러한 삶의 기술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시대라는 틀 안에서의 고전 읽기를 고민해온 저자는 이처럼 노장 전공자로서의 진지한 노장 읽기를 통해 통념에 가려져 있었던《노자》와《장자》의 실제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동시에 이러한 고전을 삶 속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준다. 그리하여 이 책은 저자 자신의 바람처럼 학술적 연구서이면서 작은 이야기책이기도 하다.

노자 정치를 깨우다 =지도자의 지침서, 안성재


노자 정치를 깨우다 지도자의 지침서


안성재 지음 | 어문학사 | 2012년 05월 16일 출간

저자소개

저자 : 안성재

저자 안성재(安性栽)는 인천대학교 교수, 인천대학교 공자학원 원장(現), 인천대학교 중국학연구소 소장(前). 건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문학사, 중국 북경(北京)대학교 중국어언문학과 문학석사, 중국 북경(北京)대학교 중국어언문학과 문학박사. 필자는 한국수사학회 주관의 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양계초와 호적은 학설은 논리적으로 풀어야 하고, 철학의 발전은 논리적 방법의 발전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에서는 묵자만이 유일하게 그리고 가장 완전한 논리 원칙에 의거하여 학설을 서술했다.”는 내용을 접했다. 그때 문득 “제자백가사상 모두 이해와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논리학과 수사학 범주에 속하는데, 왜 묵자보다 이른 시대의 노자에 대한 언급은 없을까?”라는 의문점이 들었고, 이에 논리학과 수사학적 관점에서 노자의 『도덕경』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의『도덕경』 번역이 본의와 일정한 괴리감이 있다고 판단했고, 처음부터 다시 문자와 문장구조 분석을 통한 번역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노자의 ‘도(道)’는 무위자연이 아닌 대동의 통치이념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데, 이러한 필자의 주관적 확신을 객관적인 자료로 증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하지만 곧 『도덕경』 이외에 노자와 관련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현실의 벽에 막히게 되었다. 그때 단서가 된 것이 바로 사마천의 『사기』에 남아 있는 <노자한비열전>이었다. 여기에는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예(禮)에 대해서 물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필자는 이 점에 착안하여 어쩌면 노자와 공자의 사상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막연한 기대감으로 『십삼경』에 손을 대었고, 아울러 『사기』와 『십팔사략』까지 섭렵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전적들은 그 분량이 너무나도 방대하지만, 노자가 주나라 말기 사람이고 또 그의 가치관이 대동으로 집약되어 있다는 전제하에서, 우선 삼황오제와 하·상·주나라까지의 기록을 살폈고, 그 결과물로 『노자의 재구성』 및『노자, 정치를 깨우다』 두 저서를 집필하게 된 것이다. 만약 필자의 노자에 대한 결론이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기존의 도가사상에 대한 인식 및 도가사상과 유가사상의 관계 나아가 노자와 장자의 관계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제 필자는 다음의 작업으로 노자와 공자 사상의 공통점 및 차이점 연구를 진행하려고 한다. 아울러 차후 여력이 된다면, 양계초와 호적의 묵가사상에 대한 주장에 대해서도 고찰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장, MP3CD1장포함)

목차

들어가는 글 4

第1章 이름 지을 수 없다 11
第2章 함께 하는 것이다 15
第3章 얕은꾀를 부리지 않다 25
第4章 다함이 없다 29
第5章 객관성을 지키다 35
第6章 변치 않다 41
第7章 사리사욕을 탐하지 않다 43
第8章 물과 같이 자애롭다 49
第9章 공을 세우면 물러난다 57
第10章 순수한 덕을 깨닫다 65
第11章 없으므로, 있게 된다 75
第12章 대동사회의 지도자 79
第13章 자기를 버리다 83
第14章 형용할 수 없는 모호함 93
第15章 주저하고 망설이다 99
第16章 천성을 따르다 111
第17章 스스로 그러하게 하다 117
第18章 대동사회의 통치이념 123
第19章 순박함을 지키다 129
第20章 덕을 쌓다 133
第21章 커다란 덕 143
第22章 진심으로 보존하다 149
第23章 함부로 명령하지 않다 155
第24章 성인은 몸을 뒤로 한다 159
第25章 지나가면,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진다 165
第26章 진중함을 잃지 않다 173
第27章 덕을 밝혀서 따르다 179
第28章 순수함을 지니다 185
第29章 작위하면 실패한다 191
第30章 달이 차면 기운다 195
第31章 상례로 애도하다 201
第32章 제도로 명분화하다 209
第33章 죽지만 사라지지 않다 217
第34章 욕망을 잠재우다 223
第35章 수수할 따름이다 227
第36章 자애로움의 덕치Ⅰ 233
第37章 스스로 따르다 239
第38章 공정하고 자애로운 지도자 243
第39章 내실을 기하다 253
第40章 반대됨의 도. 자애로움의 도 261
第41章 엉성한 듯하다 263
第42章 왕위를 지키지 못하다 273
第43章 지극한 부드러움 281
第44章 오래 보존하다 285
第45章 순수함과 고요함 289
第46章 항상 믿고 따르다 293
第47章 천성에 따르는 통치이념 297
第48章 억지로 작위하지 않다 301
第49章 백성의 의지를 따르다 303
第50章 집착하면 잃는다 309
第51章 대동의 심오한 덕 313
第52章 대동을 따르다 317
第53章 지도자의 비리 323
第54章 대동의 이념을 실천하다 333
第55章 갓난아이의 순수함처럼 343
第56章 심오한 화합 349
第57章 제도로 억압하지 않다 353
第58章 기준이 없다 361
第59章 덕을 쌓다 369
第60章 작은 생선 굽듯이 375
第61章 몸을 낮추다 387
第62章 하늘이 준 선물 395
第63章 유비무환 405
第64章 초지일관 413
第65章 조화로우면 넉넉해진다 421
第66章 백성에게 숙이다 427
第67章 비슷한 것이 없다 435
第68章 다투지 않는 덕 449
第69章 자애로움이 이긴다 453
第70章 드러내지 않는다 457
第71章 무결점의 지도자 463
第72章 누르지 않으면, 따르게 된다 467
第73章 느슨하지만 새지 않는다 471
第74章 대신하면 그르친다 477
第75章 제도로 억압하다 485
第76章 자애로움의 덕치Ⅱ 489
第77章 활시위를 당기듯이 493
第78章 대립면으로 말하다 499
第79章 객관적이고 공정함 505
第80章 이상적인 사회 511
第81章 참된 지도자를 말하다 519

나오는 글 524
색인 526

출판사 서평

요즈음 한국이나 중국에서 출판되는 제자백가사상 관련 서적들의 대세는 현대인들의 가치관과 생활에 맞춰 재해석하는 것인 듯하다. 이러한 취지의 저술은 너무나 빠르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현실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여유와 지혜를 선사한다는 차원에서 상당히 바람직하다. 하지만 자칫 저자 개인의 주관적 가치관이 스며들게 되어 제자백가사상이 담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희석시킨다는 점에서는 다소 부정적이다. 이에 필자는 원론적인 번역에 충실하고자 노력함으로써 노자가 말하고자 한 본연의 의도를 부각시키고, 나아가 독자 스스로 그러한 사상을 현대사회에 접목시킬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다.

왜 다시 노자인가?
정치의 해 2012년, 정치에 대한 신선한 화두를 던지다!
『도덕경』은 바로 정치 지도자의 사상을 담은 정치 지침서이다 


대선과 총선 등으로 정치의 해로 불리는 2012년, 서점가엔 정치에 관련한 서적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이제 정치적 화두는 정치인에게만 국한된 테마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 열린 소재로 더욱 그 열기를 지펴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번에 어문학사에서 출간된 안성재 교수의 『노자, 정치를 깨우다』는 지극히 일반 독자들에게 노자의 사상이 어떻게 정치적 이념으로 연관되어 있는가를 알기 쉽게 풀어쓴 저작물이라 할 수 있다. <노자> 강의 시리즈의 전편으로 나왔던 『노자의 재구성』은 王弼本(왕필본)을 근간으로 하여 처음부터 다시 [도덕경] 全文(전문)을 번역한 책이다. 문장과 그 구조를 충실하게 번역하고, 더 나아가 ‘재해석’하는 관점에서 도덕경을 분석하였다. 기존에 한국과 중국에서 출판된 일부 번역본들의 해석이 도덕경의 본의와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이러한 차이를 메우기 위해 도덕경의 재해석 작업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전문 학술서의 성격을 대중서로 탈바꿈하여 더욱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한 것이 바로 『노자, 정치를 깨우다』이다. 일단 각 장의 요점을 먼저 제시하고 문장 각각의 의미를 쉽게 풀어쓰는 데 역점을 두었다. 또한 가독성과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난해한 문자나 문장구조 분석 등의 전문적인 내용들은 최대한 배제하고자 하였다.
요즈음 한국이나 중국에서 출판되는 제자백가사상 관련 서적들의 대세는 현대인들의 가치관과 생활에 맞춰 재해석하는 것인 듯하다. 이러한 취지의 저술은 너무나 빠르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현실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여유와 지혜를 선사한다는 차원에서 상당히 바람직하다. 하지만 자칫 저자 개인의 주관적 가치관이 스며들게 되어 제자백가사상이 담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희석시킨다는 점에서는 다소 부정적이다. 이에 필자는 원론적인 번역에 충실하고자 노력함으로써 노자가 말하고자 한 본연의 의도를 부각시키고, 나아가 독자 스스로 그러한 사상을 현대사회에 접목시킬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다. 마치 화가가 그림 한 폭을 그리는데, 감상하는 이 스스로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도록 여백의 미를 남기는 것처럼 말이다.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노자의 생각을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혀서 독자 스스로 현대사회에 응용할 수 있다면, 이 역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도덕경』은 작게는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서, 크게는 온 세상의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 지도자뿐만 아니라 국민들 역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어야 하는 책인 것이다.

대동사회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가 삼가 부단히 실천하는 모습, 그 자체가 대동이다


필자는 노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사상이 바로 ‘대동의 통치이념’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곧 노자가 1장부터 81장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대동의 통치이념은 결국 백성의 뜻을 지도자의 뜻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동이 실현된 사회를 바로 태평성대라고 일컫는다. 대동사회는 완성된 사회가 아닌, 지도자가 삼가 부단히 실천하는 모습, 그 자체가 대동이다라고 말한다.
노자의 ‘도’는 ‘형이상학적 개념의 無爲自然(무위자연)의 도’가 아니라 ‘대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통치이념으로 봐야 한다.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과학적인 개념에서의 우주 대혼돈(카오스)이 아닌, 뒤섞임 즉 하늘과 땅과 사람과 동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상태를 ‘대동’이라고 일컬었다. 다시 말해서 노자는 ‘소강’을 추구하는 세태에 반대하여, 그보다 더 상위개념에 있는 ‘대동’으로 돌아가야 함을 주장한 것이다. 또한 대동 사회는 어떠한 말이나 제도 등의 명분화된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삼가고 노력하며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기에, 노자는 항상 ‘도’를 이야기 할 때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으며 말로 형용할 수 없기에 반대로 말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노자는 가장 오래된 이상주의를 꿈꾸던 사람이었고, 그의 [도덕경]은 가장 오래된 이상주의적 정치 이념 서적이었다.
필자는 [도덕경]을 번역하고 난 후, 노자와 공자의 사상이 世間(세간)에서 말하는 ‘道不同, 不相爲謀(도불동, 불상위모: 추구하는 도가 다르면, 함께 도모하지 않는다).’의 관계처럼 전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어떠한 측면에서 긴밀하고도 유기적으로 상호 연계하여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도덕경] 각 문장의 眞義(진의)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尙書(상서)], [周禮(주례)], [禮記(예기)], [史記(사기)], [十八史略(십팔사략)]에 나타난 文句(문구)들과 상호 비교해가며 대비시켜 서술하였는데, 필자는 이러한 전적의 문구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문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가급적 直譯(직역)을 원칙으로 하였다.

임기응변의 힘, 신동준


임기응변의 힘 -어지러운 세상, 동양고전 3000년의 지혜를 권하다-

신동준, 2013


▣ 출판사서평

3000년 동양고전에서 발견한 
난세를 이기는 지혜, 임기응변

조조, 칭기즈칸, 당태종, 강희제, 마오쩌둥! 
천하를 얻었던 자들은 모두 임기응변의 신神이었다

난세(亂世)의 영웅이자 치세(治世)의 간웅인 조조는 난세와 치세에 필요한 처세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투에 임할 때마다 이전에 활용했던 전략은 다시 사용하지 않기로 유명했던 조조는 흐르는 물처럼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임기응변하는 전략으로 난세를 평정해갔다. 당태종 이세민 또한 자신의 대의를 펼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준비해가면서 자기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수 있는 피의 정변(현무문의 변)을 과감히 결행했다. 이후 그는 전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인 정관지치(貞觀之治)를 일구어냈다. 마오쩌둥 역시 위기 때마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고 ‘기사회생’의 묘수를 찾아내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장제쓰를 몰아내고 ‘신중화제국’의 창업주가 될 수 있었다.
이들 동양사의 굴곡 많은 영웅들의 이야기는 어지러운 세상, 즉 난세에 자신의 뜻을 어떻게 펼쳐냈는가에 대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 처세의 핵심에 ‘임기응변(臨機應變)’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임기응변’이라 하면 대개 소인배들의 얕은 처세술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동양고전에서 말하는 임기응변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움직임을 읽고 거기에 맞게 대처하는 난세의 핵심지략을 뜻한다. 
즉 임기응변이란, 천지자연의 끝없는 순환과 변화에 맞닥뜨린 상황에서 개개인이 최고의 지혜를 동원해 내린 결단을 이르는 말로서, 임기응변에는 반드시 인간의 지략이 개입돼 있다. 그렇기에 지식과 계책 없이 엉겁결에 만들어낸 방편으로 요행을 원하는 임시변통, 혹은 임시방편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난세의 방략인 것이다. 그런데도 적잖은 사람들이 임기응변을 임시변통 내지 임시방편과 혼용하고 있다.
이처럼 임기응변은 《주역》은 물론, 《손자병법》을 비롯한 역대 병서, 《한비자》와 《상군서》를 비롯한 법가서, 《관자》와 《사기》〈화식열전〉 등의 경제사상서가 난세를 다스리는 천하경영의 성패를 결정짓는 지략의 본질로 일컫던 말이었다.
21세기정경연구소 신동준 소장(정치학 박사)은 《임기응변의 힘》(아템포 펴냄)에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오늘날의 스마트혁명시대를 난세의 전형으로 정의하면서, 난세에 피어나 난세를 이기는 지혜로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동양고전 속 ‘임기응변의 도’를 소개하고 있다. 

천지자연은 늘 변하고 움직이면서 새로운 기회를 낳는다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에 올라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다

모든 것이 어지러워 기존의 해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바로 난세다. 기존의 생각과 틀에 안주하는 순간 추락하고 마는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난세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주역》의 변역(變易, 변화의 낌새를 눈치 채고 스스로 변화하다) 논리를 전제해야 한다. 천지만물은 천기(天機)·지기(地機)·인기(人機) 등 3기의 계기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거기에 대한 대응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는 결국 천지자연의 변화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공자는 《주역》〈계사전(繫辭傳)〉에서 ‘일을 할 때 시작부터 끝까지 두려운 마음으로 임하면 역도(易道)는 그로 하여금 재난을 면하게 한다’는 말로 변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근면한 자세로 스스로를 부단히 채찍질하며 정진하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자세다. 즉 《주역》을 관통하는 변역과 자강불식이 임기응변의 근본바탕인 셈이다. 결국 세상 흐름에 맞게 대응한다는 것은, 즉 임기응변을 한다는 것은 변화에 열려 있고, 변화를 인식하며, 변화를 타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함을 뜻한다. 
3기 중 ‘천기’는 세칭 ‘천기누설’에서처럼 ‘하늘의 기밀’ 등의 뜻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장자가 파악한 ‘삶을 지속시키는 근본’인 ‘생기(生機)’의 관점으로 천기를 읽어야 임기응변에 합당하다. ‘지기’는 가장 낮은 곳에서 생명의 터전을 떠받치고 있는 땅의 후덕함으로 이해해야 땅이 주는 변화의 이로움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람의 관계 이치인 ‘인기’는 부나방처럼 이익을 좇아 움직이는 인간의 본성 ‘호리지성(好利之性)’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살고자 하는 본능인 생기의 관점에서 때를 기다리고, 땅이 만물을 생육하는 것처럼 사안(事案)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며,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실력을 조용히 갈고 닦을 때 동양고전 3000년의 지혜가 말하는 임기응변의 도를 걸어갈 수 있다. 
저자는 《주역》을 비롯한 수많은 고전을 넘나들며 난세의 영웅들이 펼쳤던 임기응변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초패왕 항우(項羽)의 마지막 절규는 난세에 천하대세의 흐름을 읽고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는 임기응변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이는 하늘이 나를 멸망시키려는 것이지 내가 결코 싸움에 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항우는 하늘의 뜻을 운운하며 스스로 자만해 대세의 흐름을 놓쳤던 자신의 과오를 애써 감추고자 했다. 이것은 난세의 지략인 임기응변의 태도가 아니다. 임기응변의 길은 하늘이 아닌 사람의 뜻으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 작가 소개

저 : 신동준 
 
申東埈
학오學吾 신동준申東埈은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안목을 바탕으로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의 저서는 독자들에게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의 대가인 청명 임창순 선생 밑에서 사서삼경과 『춘추좌전』, 『조선왕조실록』 등의 고전을 배웠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조선일보》와 《한겨레》 등에서 10여 년 간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1994년에 다시 모교 박사과정에 들어가 동양정치사상을 전공했고, 이후 일본의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춘추전국시대 정치사상 비교연구』로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21세기정경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그는 서울대학교·고려대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에게 동양 3국의 역사문화와 정치사상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월간조선》, 《주간동아》, 《주간경향》, 《이코노믹리뷰》 등 다양한 매체에 꾸준히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조선일보》 주말판 경제섹션 <위클리비즈>의 인기 칼럼 ‘동양학 산책’을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후흑학』, 『사마천의 부자경제학』, 『조조 사람혁명』, 『팍스 시니카』, 『열국지 교양강의』, 『조선국왕 vs 중국황제』, 『인물로 읽는 중국 현대사』, 『삼국지, 군웅과 치도를 논하다』, 『춘추전국의 영웅들』(전3권), 『CEO의 삼국지』,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연산군을 위한 변명』, 역서 및 편저로는 『자치통감 삼국지』(전2권), 『춘추좌전』(전3권),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초한지』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들어가는 글 난세에는 난세의 논리가 있다 

1부 변역(變易), 흥망성쇠의 계기를 읽어야 한다

1장 천기(天機), 하늘의 변역 이치를 살펴라
자강불식, 스스로 부단히 채찍질하는 힘 · 임기응변의 묘리를 터득하라 · 
살고자 하는 힘은 강하다 · 하늘과 땅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대업을 이뤄야 한다 

2장 지기(地機), 땅의 생육 이치를 통찰하라
땅처럼, 후덕을 베풀어라 · 죽음의 땅에서도 능히 살아날 수 있다 · 배수진의 힘 · 
천문지리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다 

3장 인기(人機), 사람의 관계 이치를 터득하라 
사람의 관계는 먹고 입는 데서 출발한다 ·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나은 계책은 없다

2부. 임기臨機, 누구에게나 결정적인 계기가 온다

1장 시기(時機), 철저히 대비하며 때를 기다린다
시기를 놓치지 마라 · 시기가 올 때까지 참고 또 참아야 한다 · 
인내, 달빛 아래에서 은밀히 실력을 기르는 시간 

2장 사기(事機), 사안이 무르익었을 때 신속히 움직여라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기회는 없다 · 멀리 내다보는 지혜 · 움직일 때는 신속하게 

3장 심기(心機), 마음의 자세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심기가 바로 서야 한다 · 상대의 심기를 흩뜨리는 법 · 심기일전, 승기를 잡는 내면의 힘

3부. 응변(應變),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

1장 세기(勢機), 염량세태 속에서 세를 확장하라 
안목이 힘이다 · 명리에 초연하기 ·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너그럽게 · 
부하를 자식처럼 아껴라 

2장 전기(轉機), 이기는 계기는 스스로 만들 수 있다 
대천명은 진인사의 결과일 뿐 · 식견을 키워야 안목이 생긴다 · 
과오를 적게 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 ·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계책이 필요하다 ·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3장 승기(乘機), 이기는 계기에 재빨리 올라타다
무임승차의 위험을 기억하라 · 신뢰가 쌓여야 설득할 수 있다 · 파죽지세 하라! 

4장 결기(決機), 결단 앞에서 절대 머뭇거리지 마라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해야 한다 · 체면에 얽매이지 마라 · 위기일수록 더욱 속히 결단하라

5장 투기(投機), 하나의 표적에 온 힘을 쏟아부어라
절대로 힘을 분산시키지 마라 · 단순함의 힘 · ‘파탈의 미학’을 터득하라

나가는 글 임기응변, 스마트혁명시대를 위한 동양고전 3000년의 지혜
참고문헌 

2014년 9월 20일 토요일

상처는 삶의 선물, 한영란

상처는 삶의 선물 한 심리상담가의 마음 이야기 

나남산문선 81

한영란 지음 | 나남 | 2014년 09월 20일 출간

책소개



    우리는 내 마음속에 상처받은 아이를 알아채고 공감하며, 격려하여 성장시켜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누구이며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분별하며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할 수 있다. 삶의 여정에서 편안하고 넉넉한 행복감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한영란

    저자 한영란은
    서울여자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대구대학 대학원 사회복지학 석ㆍ박사.
    부산 한병원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사 1급, 정신보건 전문요원 1급,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수련감독,
    한국 가족상담사 수련감독, 한 정신병원 이사장, 수원과학대학 전임교수, 인천시 여성복지관 위촉 상담사,
    인천시 아동복지관 위촉 상담사,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외 다수 대학원 강사,
    미국 My Service Mind of Northwest 청소년 심리상담사, 미국 Pacific신학대학 대학원 외래교수.
    현재 한 정신건강연구소(심리상담) 소장, 한국가족상담협회 가족상담 전문가 수련감독.

    저서 및 논문
    《집에서 상처받는 아이들》,《예비부부교육 워크북》,《성공적 부모역할훈련 워크북》, “정신장애인의 삶의 질”, “정신장애인의 재활과 삶의 질” 등.

    목차

    chapter 1 내 마음속 빛과 그림자
    내 안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 살고 있다 17
    고함 소리가 지옥 같은 여자 25
    아버지를 등에 업고 사는 남자 35
    상처 없는 삶은 없다 45

    chapter 2 상처받은 내면아이 어떻게 만나야 하나
    장점 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 있다 51
    절박함 속의 변화 57
    좋은 세상의 이력서 67
    내 삶의 나이테 77

    chapter 3 상처는 삶의 선물
    패배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은 남자 87
    성공에 집착한 남자 93
    성공의 훈장을 달아준 엄마 103
    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남자 111

    chapter 4 진정한 나를 찾는 길
    첫 만남의 노트 121
    남편의 외도 137
    왜 자살을 시도하게 되는 걸까 145
    버림받았던 상처 151

    chapter 5 대물림되는 상처들
    부모의 상처에 갇혀 버린 아이 159
    딸의 자율성을 삼킨 엄마 169
    내 마음속에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175

    chapter 6 사랑이 뭐길래?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컴퓨터에 빠져든 아이 185
    복수를 꿈꾼 아이 197
    기억을 잊고 싶은 엄마 213
    남편 잃은 절망에 아들을 삼켜 버린 엄마 219
    두 얼굴을 가진 아들 231
    관계에 공감적 공간 만들기 237

    출판사 서평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가족(부모)과의 관계에서 심리적 상처를 겪기 마련이다. 그 상처는 아이의 심리적 성장을 멈추게 한다. 하지만 대다수가 내 마음속 상처가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고 누군가가 그 상처를 건드리면 불에 덴 것처럼 놀라고 화를 낸다. 그 때문에 일상에서, 관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모른 채 다른 사람을 탓하며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병드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우리는 내 마음속에 상처받은 아이를 알아채고 공감하며, 격려하여 성장시켜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누구이며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분별하며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할 수 있다. 삶의 여정에서 편안하고 넉넉한 행복감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2014년 9월 16일 화요일

    다산의 재발견 - 다산 평전

    다산 평전

     
    2014-06-09 13:24
    http://booklog.kyobobook.co.kr/courante24/1360316    신고
    다산 정약용 평전
    [국내도서] 다산 정약용 평전
    저자 박석무
    출판사 민음사 | 2014.04.18
    정가 30,000 원 판매가 27,000 원 ( 10% +10% P)
    평점 내용  디자인 
    장바구니 담기
    내가 다산(茶山)에 대해 체계적인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이정우 교수의 ‘인간의 얼굴’(1999년 출간)에 실린 ‘도덕적 주체의 탄생’이란 글을 통해서이다. 이 책이 내게 전해준 문제의식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산을 근대성 형성의 중요한 특이점으로 해석했다. 그는 다산의 경학(經學)을 현대인의 형성을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학문으로 분류하며 다산을 전통 사회의 완전 폐지나 서구적 형태의 근대성을 주창하기보다 고대의 사유에 기반해 전통 사회의 개혁을 꾀한 인물로 설정했다.


    한형조 교수의 ‘주희에서 정약용으로’(1996년 출간)의 논의도 빼놓을 수 없다. 완고한 성리학적 관념성에서 실천적 학문으로라는 뜻을 담은 이 책 이후 저자는 자신이 다산을 주자학과의 순전한 단절로 읽은 것은 사태의 일면 혹은 표면일 뿐 전모나 심층이라 하기에는 주저되는 바가 있으며 이제부터는 ‘정약용에서 주희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말을 했다. 박석무 교수는 남인에 속해 있으면서 퇴계가 아닌 율곡의 학설을 옳다고 여긴 다산의 면모를 전한다.(‘다산 평전’ 130 페이지) 관건은 다산 사상에 내재한 창조적 역동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조선의 22대 임금인 정조(正祖: 1752 - 1800, 재위: 1776 - 1800)와 운명을 함께 한 다산은 우리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는 어려서부터 천재적 재능을 보였고 그 재능을 돋보이게 하는 고매한 인품과 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실천적 안목을 함께 갖춘 최고의 지식인이다. 다산은 어려서는 영특했고 글을 잘 알았으며 커서는 학문하기를 좋아했다고 자평했다. 그런데 다산은 자연의 풍광을 읊고 관조하는 것으로 문인으로서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 그에게 사회 비리와 구조악 척결에 관심을 두게 한 계기로 작용한 것이 있었다. 암행어사로서 경기 북부의 여섯 개 고을을 시찰한 경험이었다.


    다산이 보낸 시대(1762 - 1836)는 백성들이 관의 착취와 토색(討索: 돈이나 물건을 강제로 빼앗거나 억지로 달라고 함)에 시달리던 참담한 시대였다. 그런데 우리가 19 세기 중엽의 지식인에게 큰 관심을 갖는 데에는 남다른 뜻이 있다. 다산 연구소 이사장인 박석무 교수는 옛날로 회귀하는 것은 과거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진보와 통한다고 말한다. 그가 쓴 ‘다산 정약용 평전’은 1표 2서(‘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 등으로 대표되는 다산의 학문적 성과와 삶을 총체적으로 정리해낸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책이 찬양 위주의 평전이 되었다고 말하며 그것이 역량 부족 탓이기에 부끄러움을 면할 길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중요한 것은 다산 평전을 찬양 위주로 썼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다산의 사상을 얼마나 창조적 역동성의 관점에서 읽었느냐이다. 그는 다산의 일생을 네 시기로 나눈다. 수학기(修學期), 사환기(仕宦期), 유배기(流配期, 저술기: 著述期), 정리기(整理期) 등이 그것으로 28세까지의 수학기, 10년간의 사환기, 당쟁의 희생양이 되어 강진에 묶여있던 18년의 유배기(流配期, 저술기: 著述期), 그리고 18년의 정리기 등을 계산하면 그가 보낸 파란의 개인사의 연수가 나온다.


    다산의 삶은 정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다산은 정조와의 만남으로 경학(經學) 공부의 수준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에 이르렀고 요직에 올라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정조 사후 유배에 오르는 쓰라림을 겪었다. 다산이 정조를 처음 만난 것은 진사과에 합격한 1783년으로 그의 나이 22세의 일이었다. 다산 평생의 핵심적 신념이자 이념은 공(公)과 염(廉)이었다. 공은 공정, 공평 등을 뜻하고 염은 청렴(淸廉: 성품과 행실이 맑고 깨끗하며 재물 따위를 탐하는 마음이 없음)을 뜻한다. 하지만 정조 이전에 다산에게 큰 의미를 갖는 인물과의 간접적인 만남이 있었음을 빼놓을 수 없다. 자형 이승훈의 외숙인 이가환을 통해 성호 이익(李瀷: 1681 - 1763)의 ‘성호사설’을 접함으로써 새로운 계기를 맞은 것이다.


    다산은 “나의 미래에 대한 꿈의 대부분은 성호 선생을 따라 사숙했던 데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썼다. 저자는 이를 성호라는 큰 호수를 다산이라는 거대한 산이 둘러싸게 된 것이라 설명한다.(96 페이지) 다산은 암행어사 시절 임금의 최측근이 저지른 비행에 대해사도 강력 처벌을 주장할 정도로 강직했고 타협을 몰랐다. 남인 시파(時派: 사도세자의 죽음이 당쟁으로 인해 빚어진 억울한 일이라 주장하는 세력) 중 신서파(信西派: 조선 말기, 서학을 신봉하거나 두둔하던 세력)에 속했던 다산은 천주학으로 인해 서양 과학 사상을 섭렵하게 되었지만 쓰라린 유배 생활을 감내해야 했고 고난의 유배기에 500여권의 저술을 남겼다.


    저자는 다산의 그런 삶을 인생의 비태(否泰: 막힌 운수와 터진 운수)라 표현한다.(84 페이지) 다산은 이가환, 이승훈, 이벽 등 당대의 진보적 인사들과 교유하며 “당파나 따지고 주자학에 얽매이고 가문이나 신분을 말하는 세속의 사람과는 어울릴 수 없다.”는 마음을 표명했다. 저자는 다산의 평생에 걸친 경학 연구는 주자학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었다고 말한다.(119 페이지) 의미심장한 것은 다산이 주자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학 체계로 학문의 방향을 잡고 실질적인 학문인 실학으로 학풍을 일으켜 정립하면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라 예견했다는 대목이다.(119 페이지)


    나는 이 대목에서 스님이 되어 걷는 자신의 길을 “절대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이라 표현하며 그럼에도 “계속 걸어가는 자의 전율”이 자신을 “두렵게 한다.”고 했던 한 스님의 글(‘월정사의 전나무 숲길’ 55 페이지)을 떠올렸다. 다산은 색다른 것에 대한 강렬한 욕구로 천주학을 접함으로써 결정적으로 죽음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다산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은 각각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단(端)이라는 맹자의 학설에 대해 주자와 달리 측은한 마음이 행위로 나타나야 인이 되고, 수오의 마음이 행위로 나타나야 의가 되며, 사양의 마음이 행위로 나타나야 예가 되고, 시비의 마음이 행위로 나타나야 지가 된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171 페이지)


    다산은 정적(靜的)인 퇴계로부터 위선적이라는 비난을 무서워하고 세상을 속이고 이름을 도적질한다는 비판을 두렵게만 여긴다면 공부하고 학문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게 아니냐는 파격적인 가르침을 얻고 감동한다. 다산은 ‘변방사동부승지소’라는 상소문에서 천주교 책에 윤상(倫常)을 헤치고 천리(天理)를 거스르는 말이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하늘을 거역하고 귀신을 경멸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천주교를 통해 천문, 역상, 농정, 수리 등의 실용적 기술을 얻고자 했지만 제사를 금지한 교회법을 대하고서는 역적이나 원수로 여기고 완전히 손을 떼고 마음을 끊었음을 주장한다.


    하지만 반대파들은 집요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다산을 물고 늘어졌고 왕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세력 판도에 눌린 다산은 사직하지만 정조와 남인 영수인 채제공 재상의 연이은 타계로 고립무원의 처지에 내몰린다. 다산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직접 관여했던 정순대비 김씨(영조의 계비이자 순조의 증오 할머니)의 수렴청정으로 벽파(辟派)가 득세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정순대비가 천주교도들을 역적죄로 죽이라는 법령을 반포했고 다산에게는 “믿지 않겠다고 맹세하고도 몰래 숨어 예전보다 더 깊이 믿었다.”는 혐의가 씌어진다.


    다산이 겨우 목숨을 건진 것은 백성들의 신망과 학자로서 지닌 높은 위신 덕이었다. 다산 당시 중국을 통해 들어온 천주교의 핵심은 시대와 역사에 대한 변혁 희구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교리에 매료되었던 사람들과 서양 과학 사상에 매료되었던 사람들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천주교 탄압 사건으로 다산의 큰 형인 정약현의 사위인 황사영은 스물 일곱의 나이에 능지처참을 당했고 다산의 셋째 형인 정약종 역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둘째 형은 흑산도로,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모진 고문 후유증과 공포와 불안 등을 견디며 강진에 당도한 다산은 18년에 걸친 유배기(저술기)를 보낸다. 저자가 말했듯 공자 같은 성인이나 주자학의 집대성자인 주희도 이상과 현실 양면에 역량을 두루 안배했다. 다산의 편견 없는 지혜와 소신 역시 같은 차원의 것으로 관념 유희에 매몰되었던 당시의 학자들에게 다산의 삶과 학문 세계는 그 자체로 경종(警鐘)이었음에 틀림 없다. 처음 장기로 유배된 뒤 7년 20여일만에 서울로 압송된 다산은 감옥에서 그리던 둘째 형을 만난다. 흑산도(黑山島)로 귀양을 간 정약전은 그곳 생활 16년만에 병사한다.


    형의 부음을 듣고도 시신을 수습하러 갈 수 없었던 유배객 다산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억울하고 한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정약전의 심정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검을 흑 자 쓰기를 두려워했다/ 그에게 黑은 곧 불길함, 죽음의 글자였다/ 흑산을 자산(玆山)이라 했다/ 그는 왜 흑을 두려워 했는가/ 글자가 내뿜는 불안의 냄새를 맡아내는 예민함은 / 그가 밟고 있는 땅 적소(謫所)에서 길러졌을 것이다.”.. 조용미 시인의 黑이란 시를 읽는다. 저자는 “흑산이라는 이름이 듣기만 해도 끔찍하여 내가 차마 그렇게 부르지 못하고 편지를 쓸 때마다 현산이라 고쳐 썼는데 현(玆)이란 글자는 검다는 뜻”이란 다산의 글을 소개한다.(444 페이지)


    정약용은 정약전을 현산이라 불렀고 정약전은 정약용을 다산이라 불렀다. ‘자산어보’가 아닌 ‘현산어보’가 바른 이름이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편지를 쓴다. “..독서를 하려면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컫는가. 오직 효제(孝悌: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그것이다...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왜 스스로 포기하려고 하느냐?.. 너희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聖人)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문장가가 되는 일이나 통식달리(通識達理)의 선비가 되는 길은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너희들이 참으로 책을 원하지 않는다면 내 저서는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내 저서가 쓸모 없다면 나는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저자는 자신의 책이 찬양 위주여서 부끄럽다고 말했지만 다산이 한글을 사용한 문학 작품을 남기지 않았고 송강이나 고산의 후손으로서 그들의 문학적 업적을 계승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436 페이지) 현산을 두고 나눈 교감을 잇는 형제의 정은 다산의 ‘주역’에 대한 정약전의 평을 통해 다시 확인된다.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또한 만족스럽다. 나는 참으로 유감이 없다. 아! 다산도 또한 유감이 없을 것이다.“ 다산은 성선설의 손을 들어줌과 동시에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는 자주지권(자율의지)이 있다는 ”매우 탁월한“ 인간론을 주장했다.(491 페이지)


    다산은 ‘경세유표‘ 서문을 통해 머리털 하나인들 썩지 않은 분야가 없다고 전제한 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는 엄중한 경고를 했다. 다산은 경학(經學: 유학의 경서인 사서오경을 연구하는 학문)은 본론이고 경세학(經世學: 실천적 사회과학)은 각론이라는 입장을 지녔다.(500 페이지) 다산은 유배지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저서들을 해배(解配) 후에 완성했고 유배지에서보다 더 열심히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다산은 자신의 생애를 "슬픔은 짧고 기쁨은 길었노라.”고 평했다. 저자가 말했듯 창의적 학자로서의 삶에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나온 평가이리라. 다산에 대해 학풍(學風)은 살기(殺機)였으며 주우(主遇)는 화태(禍胎)라는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한 위당 정인보 선생은 "선생의 학문은 경학이면서 정법“이라고 설명했다.(557 페이지) 그렇기에 경학이 곧 경세학이고 경세학이 곧 경학이라는 말이 가능했을 것이다. 위당은 조선의 역사를 알려면 다산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615 페이지)


    다산의 의도와 심정은 ’경세유표‘와 ’목민심서‘라는 제목을 통해 헤아릴 수 있다. 유표(遺表)는 유언으로 남기는 정책 건의서이니 먼 뒷날에라도 그렇게 실현되기를 희망하고 기대한다는 뜻이며 심서(心書)는 당장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마음 속으로라도 실행하고 싶다는 뜻이 담긴 이름이다. 유배중이던 다산의 처지가 반영된 말이지만 후세에 큰 귀감(龜鑑)과 동시에 과제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부패와 부정이 만연한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 다산의 생생한 경고를 되새기자.(다산의 사상적 한계는 공부가 더 진척된 뒤 행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