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96 육구연은 생애의 대부분을 고향인 무주撫州에서 보냈다. 무주에서는 육구연보다 백 년 정도 이전에 북송을 대표하는 사상가를 배출하였는데, 그가 왕안석이다. 남송에 이르러 도학파를 중심으로 왕안석 비판의 풍조가 높아지고는 있었지만, 왕안석은 의연하게 문묘에 종사되었다. 그 존재가 얼마나 컸음을 느끼게 했던가는 왕안석 비판자인 주희가 <<주자어류朱子語類>> 속에서 빈번하게 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사실로부터도 역설적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또한 육구연에게 <형국왕문공사당기荊國王文公祠堂記>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象山先生全集>> 권19) 이 문장이 쓰여진 것은 주희와 논쟁을 전개하고 있는 순희淳熙 15년(1188)의 일이었고, 그 문말文末의 표기는 <방인육모기邦人陸某記>로 되어있다. 육구연의 왕안석에 대한 평가는 호안국이나 주희에 비교해보면 상당히 부드러운 편이다. 그는 왕안석에 대해서 인격에 관련된 공격은 전혀 하지 않았다. 왕안석의 개혁의 잘못은 정치의 요체를 법으로 추구했다는 점에 있었다. 정치를 하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을 등용하는 것은 몸(身)에 의한다. 그 몸을 수양하는 것은 도道에 의하고, 도를 수양하는 것은 인仁에 의한
마음을 핵심의 자리에 고정시킨 평소의 지론이 설명되고 있다. 순희 2년(1175)의 <경재기敬齋記>는 "옛날의
사람이 그 몸을 가家·국國·천하天下로 정확히 미치게 하였던 것은 그 본래의 마음(本心)을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시작된다. 천자千字에
조금 못미치는 짧은 문장 속에 '심心'이라는 글자가 열세 번 등장하고 확실히 '심학'의 선언문의 취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연보 13세 때의
조문에는 '우주야말로 내 마음, 내 마음이야말로 우주'라고 말한 것이 보이고, 육구연에게 있어서의 마음의 문제가 유소년기 때에 이미 깨달음의
단계에 도달한 것 같이 묘사를 하고 있다. 육구연은 마음의 학문(心學)이라고 하는 평가는 이미 일찍부터 정해져 있었다. 왕수인이 '성인의 학문은
심학이다'라고 해서 육구연을 재평가하고 스스로 그 계보를 이어 받은 자로서 자임했던 것도 뚜렷한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심학'의 대극에 위치한 '성리학性理學'자 주희도 심이라는 용어에 유달리 주의를 기울인 사상가였다. 단지 주희의
경우에는 장재張載의 '심心은 성性과 정情을 통합한 것'이라는 규정에 전면적으로 의거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문제는 항상 성이나 정의 구별을
둘러싼 의론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바로 그것이 일반적으로 심성론心性論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이다. 그리고 맹자의 성선설에도 전면적으로 의거하기
때문에 선善으로서의 성性이 어째서 그대로 발현되지 않고 이 세상에 악惡을 초래하는가라는 악의 기원을 논하는 것이 심성론에 요구되었다. 하지만
맹자의 성선설은 송대 이전에 결코 정론이었던 것은
p.98
아니다.
북송에서 맹자를 세상에 널리
알린 제일인자는 왕안석이었다. 그에게는 <원성原性>이라는 제목의 문장이 있는데(<<臨川先生文集>> 권68),
어떤 사람이 맹자孟子·순자荀子·양웅楊雄·한유韓愈의 성설이 서로 다른 이유를 질문하다고 하는 상정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 제명 및 그 첫머리부터가
한유의 동명同名의 문장(<<韓昌黎문집>> 권1)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유는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악설,
양웅의 선악이 뒤섞인 성설을 열거하고 자신의 견해로서 성삼품설性三品說을 제창하였다. 한유의 이 문장이나 <원도原道> 말미의 기슬에
의해 ... 북송에서는 공자의 뒤를 계승하는 대학자로서 이 네 사람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이 통례였다. 왕안석의 <원성>에서도 질문자는
이 네 사람은 모두 '옛날에 도道를 갖추고 있던 어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주장이 다른 것은 어떠한 이유였을까라는 형태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 왕안석은 자신이
의거하는 것은 공자의 주장뿐이라고 대답한 뒤, 네 사람의 주장에 각각 비판을 덧붙여 간다. 먼저 한유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을 성 그
자체로 간주하고 있는 점에서 잘못되어 있다. 성이란 이러한 오상의 '태극太極', 즉 근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오상과는 구별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으로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한 쌍의 것으로서 받아들이고 어느 쪽이나 모두 선인가 악인가라는 성격규정을 성에 대해서 행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한다. 선악이 문제가 되는 것은 정의 위상 문제에 달려있는 것이고, 성 그 자체에는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情 또는 습習의 위상을 성으로서 논하고 있다. 양웅의 주장도 성이 아니라 습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p.99
다. 그리고 공자가
"본성(性)은 서로 가까운 것이지만, 습관(習)이 서로를 멀어지게 한다"(<<論語>> 陽貨)라고 서술한 것이야말로 자신의
견해라고 한다. 즉 성에는 선험적인 시비是非나 선천적인 차이는 보이지 않고 그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성이 원인이 되어 구체적인 형태로서 발현한
상태·단계라고 하는 것이다.
<성설性說>(<<臨川先生文集>>
권68)은 <원성>의 속편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을 갖추고, 공자의 위의 말과 상지上智·중인中人·하우下愚라고 하는 인간
유형과의 관계를 논하고 있다. 한유가 제시했던 바와 같은 성삼품설이란 결국 습관에 의해 나누어진 것이고, 하우라고 하더라도 선인善人이 될 소질은
갖추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성은 누구라고 선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양맹楊孟>(<<臨川先生文集>> 권64)에서는 맹자와 양웅의 서로 다른 점을 개념의 내용규정이 서로 빗나가 있는
점에서 찾고 있다
<성정性情>(<<臨川先生文集>>
권67)에서도 세간에서 통설로 되어 있는 '성은 선하고 정은 악하다'고 하는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그것이 맹
p.100
자의 문장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서 유래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맹자의 성선설이란 성이 무조건 언제나 선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에는 악으로 향하는 요소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그렇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양웅도 사람의 성에는 선과 악이 뒤섞여 있다고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왕안석은 맹자의 주장을
기본적으로는 시인하고 그 자신의 해석에 맞추어서 양웅을 증거로 인용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결국 그의 견해에 의하면 맹자나 양웅도 말하려고
했던 것은 동일한 것이고, 그것은 공자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한다-결국은 왕안석 자신의 견해와도 일치한다. 다만 그 설명방법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 정이라고 해야 할 것을 성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해에 혼란을 초래하였다고 파악하는 방법이다.
북송에는 사마광에 의해
대표되는 맹자 비판세력이 존재하였다. 사마광에 의하면 공자의 교설은 명名을 바로잡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고 맹자는 그 가르침으로부터 이탈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저서 <의맹疑孟>(<<增廣司馬溫公全集>> 권101) 속에서 사마광은 맹자의 고자告子에 대한
반론을 다시금 논박하고 있다. 고자가 물의 흐름에 비유하여 성에 본래는 선악이 없다는 것을 논한 것에 관해 그 비유는 중인中人에 관해서만
들어맞는 것뿐이고, 한편으로는 확실히 타고난 선인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도敎導할 방법이 없는 악인도 있으며, 맹자가 말하는 바와
같이 누구에게도 성선性善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마광은 기본적으로는 성삼품설을 주장하였다. 또한 소식은
<맹자변孟子辯>에서 성 그 자체에 선악은 없다고 서술하고 맹자의 주장을 비판하였다. 덧붙여 왕안석과 마찬가지로
<<주례>>에 근거하여 정치의 실현을 구상한 이구李覯는 <상어常語>에서 맹자가 춘추오패春秋五覇*의
업적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 있는데,
(* 춘추오패: 중국
춘추시대에 가장 강대하여 한때의 패업을 이룬 다섯 사람의 제후. 곧 제 환공·진 문공·진 목공·송 양공·초 장왕, 또는 진 목공·송 양공 대신에
오 부차·월 구천을 넣기도 한다.)
p.101
그것은 공자의 의도에 반한다고
비난하고 있다(여윤문余允文의 <<존맹변尊孟辯>>에 의거함).
그 중에서 왕안석은 맹자의
옹호파이고, 그는 맹자의 성선설을 완벽하다고는 말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수긍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에서의 맹자 성선설의 현창顯彰은
정호·정이에서 시작되는 도학계 학자들의 것과 공통의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었다.
왕안석은 개혁의 일환으로서
과거의 시험과목을 변경하여 당대唐代 이래로 중시되어 오던 시부詩賦를 시험과목에서 제외하고, 그 대신에 책策(시사문제에 관한 대책)과 논論(역사
비평)을 중시하였다. 경학에 관해서는 경문·주석의 암기가 아니라 내용의 이해를 묻고 그 자신이 '단란조보斷爛朝報'**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했다고 하는 <<춘추>>를 빼버리고, 그 대신에 <<주례>>를 넣은 오경五經을 '본경本經'이라고
부르고 이 중에서 선택하게 한 것 이외에, '겸경兼經'이라는 명칭 하에 <<논어>>와 <<맹자>>를
모두 과거의 필수과목으로 삼았다. 결국 <<맹자>>는 이러한 계기를 시작으로 하여 경서로서의 취급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과거시험의 개혁에 관해서는 도학계의 인사들도 <<주례>>를 <<춘추>>로 돌려버렸다는 것
이외에는 왕안석의 개혁을 기본적으로는 답습하였다. 이러한 신학 및 도학의 맹자 현창에 의해, 예를 들면 남송 말 진진손陳振孫의
<<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에서 <<맹자>>는 자子가 아니라 경經으로 분류되고
<경록經錄>에 <어맹류語孟類>로서 <<논어>>와 병칭되기에 이른다.
(**단란조보: 여러 조각이
난 조정의 기록이란 뜻. 왕안석이 <<춘추>>를 헐뜯으며 한 말. 왕안석은 처음에 스스로 춘추를 주해하여 천하에 펴려고
했으나, 이미 손신로孫莘老의 <<춘추경해春秋經解>>가 나왔고, 그와 견줄 수가 없음을 깨닫고 마침내 춘추를 헐뜯어 이를
폐하고, '이것은 단란조보'라고 한 고사.)
이보다 먼저 경덕景德
2년(1005)에 칙명에 의한 사업으로서 당의 <<오경정의五經正義>>를 증보하는 형태로 소疏가 간행되었는데, 그것은 전부
열두 개의 경서로 이루어져 있었다-경학상 엄밀하게 말하면 춘추삼전은 철저하게 전이고 경은 아니지만, 여기에서는 다른 것과
똑같이
p.102
경서라고 부르기로 한다. 즉
<<오경정의>>의 다섯 가지 서적-<<주역>>, <<상서>>,
<<시경>>, <<예기>>, <<춘추좌씨전>>-과
<<주례>>, <<의례>>, <<춘추공양전>>,
<<춘추곡량전>>, <<효경>>, <<논어>>,
<<이아爾雅>>이다. 여기에 <<맹자>>가 덧붙여지면 오늘날 우리들이 통상적으로 불러서 익숙해져 있는
<<십상경주소十三經注疏>>가 갖추어지는 것이지만, 이 시점에서 <<맹자>>는 아직 경서라고 간주되고
있지는 않았다. <<심상경주소>>에 들어 있는 <<맹자>>의 소疏는 경덕의 사업에 참가한 학자의 한
사람인 손석孫奭의 이름을 위에 붙이고 있지만, 이미 주희가 지적한 바와 같이 남송 초기의 사람에 의한 위작이다.
서적 목록에서도 조공무晁公武의
<<군재독서지郡齋讀書志>>나 <<송사宋史>> 예문지藝文志에서는 여전히 경부經部가 아니라 자부子部에
들어가 있다. ...
신학이든 도학이든 맹자를
현창하는 최대의 이유는 인의를 사람의 본성이라고 하는 소위 성선설에 달려 있었다. 당시 왕성하게 논의되었던 성론性論 속에서 그들은 맹자의 주장을
근거로 삼았던 것이다. 그때 필연적으로 본성과 마음의 관계를 논의의 과정 속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맹자>>에 자주
나오는 마음에 관한 발언, 그리고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본성을 안다. 그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로 시작되는 진심편盡心篇 첫 장의
논리 등이 초점이 된다.
<<하남정씨유서河南程氏遺書>> 권1에
수록되어 있는 정호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주희에 의해 <<근사록近思錄>> 권1에 재차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정호의 주장이 뒤에서 서술할 정이·주희의 그것과는 그 취지를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기품 이전의 본성 그 자체에 관해서는 이것을 선인가
악인가로 논할 수 없다는 견해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왕안석과 일치하기는커녕 여윤문余允文에 의해 맹자 비판파로 분류되고 있는 소식의
주장과도 아주 닮아 있다. 본성이란 사람의 태어난 그대로의 것이라는 표현은 실제로는 맹자의 논적인 고자告子의 논법이었다. 본성을 선악을 뛰어넘는
차원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이러한 사고 방식은 지금부터 살펴보는 바와 같이 도학계열에서는 호굉의 <<지언知言>>이나
장구성張九成의 <<맹자전孟子傳>>으로 계승되고, 이윽고 양명학陽明學의 무선무악론無善無惡論에서 그 면모를 일신하여 부활하게
된다.
그것은 주희의 용어를 가지고
설명하면 그들이 본성(性)이라는 개념을 <<중용>>에서 말하는 바대로 미발未發 단계에서의 마음 상태로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발의 성에 대하여 이발已發 단계의 상태는 정이라고 불린다. 정호는 그것을 기氣에 의한 것으로서 설명하였다. 왕안석이든지 정호이든지
간에 윤리적인 의미에서의 선악은 이 단계에서 밖에 사용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하였다. 뒤에서 서술하겠지만 주희 자신은 이러한 방식으로 성과
정을 구별하고 있다. 그리고 주희 이후에도 왕안석이 부정했던 바의 성선정악설性善情惡說에 대한 약간의 수
p.104
정이 한때 널리 퍼지기도
하였다. 이것은 그렇게 파악하는 방법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쉬웠고, 바꾸어 말하면 그들의 생활감각에 익숙해지기도 쉬운 도식이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마음에 관하여 호굉 등이 이발이 단계에, 장구성 등이 미발의 단계에 귀착시키는 것에 대하여 주희는 장재의 주장에
근거하여 새로운 심성론을 이른바 주자정론朱子定論으로서 주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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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30일 토요일
성性-북송의 성설性說
인물성동이논쟁-인간과 만물의 차별성에 대한 검토
1. 논쟁의 발단과 배경 p.205 성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주 만물의 발생과 변화는 리와 기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 조선 초부터 인간의 성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심성의 올바른 발현을 통해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조선 성리학자들은 인간의 성정이 우주만물 사이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관해 이미 깊은 탐구를 해 왔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성과를 사단칠정 논쟁이라 부른다.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다른 동물들과 달리 사회 규범을 가지고 이를 실천해 나갈 수 있다고 할 때, 이제 시야를 인간의 성정에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 쪽으로 확장시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자연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 p.206 인간이 왜 동물과 같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일반적 관심이라면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비롯한 성리학자 대부분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인성과 물성의 차이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관심은 사계 김장생, 우담 정시한, 외암 이식, 농암 김창협 등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아무래도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은 수암 권상하의 문하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권상하는 이이-김장생-송시열의 뒤를 이어 기호 학파의 맥을 계승하는 사람이다. 그 문하에는 인물성동이 논쟁의 주인공이 되는 외암 이간과 남당 한원진이 있었다. 한원진은 1705년 지은 '시동지설示同志說'에서 인물성론에 관해 이미 상당히 정리된 입장을 밝히고 있고, 이간은 1709년 최성중에게 보내는 편지('與崔成仲')에서 오상과 미발의 관한 논의를 한 바 있다. 즉 1712년에 본격적인 논쟁을 벌이기 이전에 이미 이들은 자기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토론은 1712년 이간이 스승 권상하에게 미발 상태의 순선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 권상하는 이간의 설에 수긍하였으나, 한원진이 자기의 의견을 설명하자 이번에는 한원진의 설을 인정하였다. 그러자 이간은 스승 권상하에게 편지를 보내 스승과 한원진의 설에 이의를 제기하였고, 한원진은 스승을 대변해서 다시 이간을 반박함으로써 이들 둘 사이의 논쟁은 본격화되었다. 이간은 '리통기국변'(1713), '미발유선악변'(1713), '미발변'(1714), '오상변'(1714)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발변후설'(1719)을 썼다. 그리고 한원진은 '부미발오 p.207 상변'(1715), '부기질지성변증'(1715) 등을 쓰고, 1724년에는 이간이 권상하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종합적인 변론을 담아 '이공거상사문서변'을 지어 자신의 입장을 마무리하였다. 이들의 논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집단적 논쟁의 성격을 띠면서 조선조 말기까지 계속되었다. 이간이나 한원진은 모두 권상하의 문인들로서 기호지방(충청도)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후 이간의 설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주로 농암 김창협과 삼연 김창흡 계열을 잇는 기원 어유봉, 도암 이재, 여호 박필주 등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서울에 사는 노론 낙론 계열이었으므로 이들의 이론을 낙론洛論(洛下, 즉 서울 부근)이라고도 한다. 한편 권상하와 한원진의 이론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병계 윤봉구, 매봉 최징후, 봉암 채지홍 등 주로 충청도 근방에 살았기 때문에 호론湖論(湖西, 즉 충청도)이라고도 한다. 이 때문에 이들 사이의 논쟁은 '인물성동이론'이라는 명칭 이외에 '호락논쟁'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2. 논쟁의 전개
1. 성 개념의 다의성 성리학에서의 성이란 인간 또는 사물 안에 내재된 리를 가리킨다. 성은 구성상으로는 '기 안의 리'(氣中之理)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p.208 보는 관점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의 함의를 지닌다. 동론同論을 주장하는 측과 이론異論을 주장하는 측이 이용하는 논거를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간은 "중용"의 '천명지위성'에 대한 주희의 주석을 동론의 근거로 든다. 주희의 주석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명命은 령令과 같고, 성性은 곧 리理이다. 하늘이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써 만물을 화생化生하게 함에, 기氣로써 형태를 이룰 때에 리理 역시 부여되니 마치 명령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에는 각기 부여된 리를 얻어 건순오상健順五常의 덕德으로 삼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성性이다. ("中庸章句", '天命之謂性'의 朱子註: 命, 猶令也. 性, 卽理也. 天以陰陽五行, 化生萬物, 氣以成形而理亦賦焉, 猶命令也. 於是, 人物之生, 因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德, 所謂性也.)
만물이 모두 리를 부여받아 기로써 형태를 이루고, 이 때 각기 부여된 리가 곧 성이 되므로, 인간을 포함하는 만물의
성이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원진은 "맹자집주"와 "대학혹문"에서 나오는 주희의 글을 논거로 사용한다. "맹자집주"에서 주희가 주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p.209
기에는 차이가 없지만
품부받는 리가 다르기 때문에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다고 하니 인물성 이론의 논거가 될 만하다. 주희는 "대학혹문"에서 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여기서도 사람과 사물의 차이를 말하고 있기는 하나, 이번에는
리는 동일하지만 기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사람과 사물의 다름이 생긴다고 한다. "중용"의 주석에 따르면 사람과 사물이 모두 천으로부터 리를
부여받아 성으로 삼기 때문에 사람과 사물의 성이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맹자집주"에 따르면 부여받은 리의 차이에 의하여,
"대학혹문"에 따르면 기의 차이에 의하여 사람과 사물이 달라진다. 성이란 리가 기와 결합된 경우를 말하므로 리의 차이에 의한 것이든, 기의
차이에 의한 것이든 기와 결합된 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리와 성의 개념을 다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주희의
혼용이 문
p.210
제된다. 만물 생성과 변화의 원리라는 의미에서 리는 우주
전체에 관통하고 있고, 그러한 의미에서는 개체 내의 리인 성도 동일하다. 그러나 각종의 사물이 유적類的 특성을 이루게 하고, 또한 각각의
개체이도록 하는 원리를 성이라 할 때 이 성은 사람과 사물에서, 나아가 각각의 개체에서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차이의 원인을 기라고 하든
리라고 하든 그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된 성 개념을 사용하는 한 인물성동이 논쟁의 전개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성을 보는 관점에 따라 본원적인 리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각 부류의 유 개념 또는 개별적 특성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는 것은, 이 논쟁에 참여하는 성리학자들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문제는
그 중 어느 관점을 택하며, 굳이 그 관점을 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있다. 한원진은 성삼층설性三層說로 이를 해명하려 한다.
기질을 초월하여 말할 때는 만물의 리가 동일하고, 기질과
같이 있는 것
p. 211
으로서의 리인 성을 말하자면 사람과 사물의 성이 다르며,
기질과 섞여 있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모든 개체의 성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한편 이간은 '일원一原'과 '이체異體'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근원으로 말하자면 만물에 다름이 있을 수 없고, 기질에
구애됨으로 말하자면 사람과 사물이 다를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 사람 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음을 인정하므로 결국 논쟁의 쟁점은 어느 관점을 위주로 보아야 하는가에 있다. 이간은 '일원一原'의
관점을 택한다.
p.212
성은 곧 리이므로 일원의 관점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원진은 성을 기와 결합된 리라고 보면서
'인기질因氣質'의 관점을 택하여 인성과
물성이 서로 다름을 주장한다.
리는 기와 상대되는 것이고 성은 기와 결합된
리(氣中之理)이므로 우주의 보편 원리로서의 리와 개별성 또는 유개념으로서의 성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리통기국理通氣局의
이중성
서로의 관점을 인정하면서도 의견의 대립을 이루는 양측이
공통으로 이용하는 또 하나의 논거가 있다. 그것은 이이의 리통기국설이다. ...
이이는 자신의 리통기국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p.213
이이의 리통기국설은 리의
무형무위無形無爲한 특성과 기의 유형유위有形有爲한 특성에 기초하여 리기의 불상잡 불상리한 구성 관계를 리일분수의 체계로 설명하고자 한 것이었다.
리통에 의하면 사람과 사물의 리가 동일하고, 기국에 의하면 사람과 사물의 성이 다를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사이의 성도 다르다.
따라서 리통에 따르면 인물성동론을 지지하게 되고, 기국에 따르면 인물성이론을 지지하게 된다. ... 그런데 논쟁의 양측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서로 다르다.
p.214
이간은 일원과 이체의 구분 가운데
일원의 입장에서 리통을 이해한다. 성은 기중지리이지만 리의 온전한 성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기와 섞지 않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원진은 통과 국을 각각 리와
성에 대비시킨다.
성을 리가 기와 결합되어 변화된
것으로 보는 한원진은 초형기로서의 리와 인기질로서의 성을 각각 리통과 기국에 대비시키는 것이다.
3. 본연지성과
기질지성
이러한 견해 차이는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에 대한 이해에서도 또한 나타나다.
p.215
한원진은 현상계의 인간과 사물에서 리만 가리킨 것이
본연지성, 리기를 함께 가리킨 것이 기질지성이라 하고, 인기질의 관점에서 기질지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대해 이간은 '리기동실理氣同實',
'심성일치心性一致'의 입장, 즉 리기를 분리해서 지적할 수 없고, 심心을 두고 성性만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한원진처럼 기질지성과 본연지성을
구분하여 기와 별개로서의 리를 따로 끄집어내어 이를 본연지성이라 단지單指한다는 것은 이간이 보기에는 성이라고 하기가 곤란하다. 이간은 기와
분리된 리를 성이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와 결합된 리로서의 성이 본래의 리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리와 기가
공존하는 리기동실 심성일치의 상태를 고수하고자 한다. 본연지심에 나아가서 단지하면 본연지성이고, 기질지심에 나아가서 겸지하면 기질지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원진의 격렬한 비판을
유발한다.
p.216
... 한원진은 하나의 물物, 하나의
심心에서 단지와 겸지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구분하고 기질지성의 관점을 택한 것이다. 이간은 자신의 일관된 리기 불상리 불상잡 및 리기동실
심성일치의 원칙은 고수할 수 있었지만, 하나의 사람 또는 사물 안에 두 개의 심과 두 개의 성이 존재하게 된다는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4.
오상론
... 이들은 인성과 물성의 동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증거를 오상五常에서
찾는다.
한원진에 따르면 리는 기와
결합함으로써 성이 되고 기의 청탁수박에 따라 오상을 가짐이 다르다. 사람만이 빼어난 기를 얻은 까닭에 오상도 온전히 갖추지만, 나머지 다른
사물들은 거칠고 흐린 기를 얻었으므로 다섯 가지 오상 중 일부만 갖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사물의 성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간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p.218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되고
그 근원을 세부적으로 지칭할 때 오상이라고 하므로 사람과 사물이 오상을 온전히 받지 못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오상을 온전히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태극을 온전히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오상을 온전히 갖추고는 있지만, 다만 겉으로 드러남(發用)에서 차이가 날
뿐이라는 것이다.
이간에 의하면 우주만물의 이치인 리가 기 속에서도 그대로 보존되므로 사람과 사물의 차이는 그 발용에서
드러날 뿐이다. 그러나 한원진의 경우 리가 기 안에 들어갔을 때는 그 원인이 기이든 리이든, 이 때의 리는 이미 기와 결합하면서 성으로
변화된다. 따라서 모든 사물의 성이 온전한 오상을 갖추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5. 미발의 심체
문제
사람과 사물의 성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단지 존재론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결국은 가치론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에 윤리적 가치 실현 능력인 오상이 어떻게 갖추어져 있는가를 문제시하는 한편, 더욱 구체적으로 선악의 가치
실현 가능성을 미발의 심체 문
p.219
제에서 다룬다. 성을 기중지리로 보는
한원진은 심체도 성과 대비되는 기의 측면에서 바라본다.
리만을 가리켜 말한다면 본연지성이라
하고 리기를 겸하여 말하다면 기질지성이라 하지만, 한원진이 사람과 사물의 성을 이야기할 때 택하는 관점은 기질지성이다. 그러므로 심체에서 기가
발하지 않았을 때에도 기의 선악이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지 본체에 기의 청탁이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p.220
이와 같이 한원진은 미발을 외물에
접촉하지 않은 고요한 상태에서 기가 발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간은 일반적인 기와 심의 기를 구분한다.
한원진과 달리 심체의 기와 일반적인 기질을 구분한 이간은,
다시 진정한 미발을 혈기와 뒤섞여 있는 미발과
구별한다.
이간에 의하면, 한원진은 단지 발하지는 않았지만 혈기가
마음에서 용사하는 것을 미발이라고 한다. 그 반면에 자신이 말하는 미발은 단지 외물에 접촉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명(天君)을
따
p.221
르는, 즉 리의 실현 가능태를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각각 '부중의 미발(不中底未發)'과 '중의 미발(中底未發)'이라고 하여 구분한다.
...
p.223
4. 논쟁의
의의
인성과 물성의 동이 문제는 18세기 초에 시작된 후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거의 모든 지식인이 관심을 기울였던 문제였다. ... 논쟁의 의의를 정리해보면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성性 개념의 다의성, 특히 주희가 사용하는 성 개념의
혼란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사단칠정 논쟁을 거치면서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깊이는 이미 중국을 능가하였다. 우주와의 관련 속에서 인간의 심성정을
정밀히 탐구해왔던 이들은 성 개념의 다의성에 주의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인간 심성의 긍정적 능력을 고양하여 성리학적 이상 국가를
실현하고자 했던 조선 성리학자들에게는 필연적인 과제였다.
...
둘째, 중국 이외에 새로이 등장하는 세력에 대한 대처 문제와
관련된 논의라는 것이다. 병자호란(1636~1637)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맛본
후,
p.224
'가장 사람다운 사람의 문화'로서 중화 문화를 추구하며
소중화를 자부했던 조선이, 짐승에 가깝다고 여기며 천시했던 오랑캐의 강대한 세력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것은 그 당시 커다란
문제였다. 따라서 이 논쟁을 화이론적인 문화적 우월성에 입각하여 거론되었던 북벌론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도 있다. 또한 같은 논의의
차원에서 정반대의 입장으로 북학파의 인물성론에 주목하는 시도도 있다. 북학파, 특히 홍대용과 박지원은 사람을 포함한 만물이 모두 똑같이 기로
구성되고 공통된 생명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만물은 균등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사람의 입장에서만 세계를 볼 것이 아니라 사물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객관적 상대적 관점을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의 상대화 객관화는 중세 사회의 계층적 질서를 부정하고 근대적인 사회 질서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사고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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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도심론의 실천적 의미 - 이상익
1.
인심 도심에 대한 개괄적 논의
2.
합리성으로서의 인심과 합당성으로서의 도심
3. '공정한
원칙'에 따른 '사익의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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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과 도심 - 몽배원
인심과 도심 -
몽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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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4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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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배원, <<성리학의 개념들>>, 예문서원, 2008.
'미발'과 '이발'이
사람의 주체의식, 특히 정감의식과 잠재된 본체의식에 대해서 분석하고 해석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도심'과 '인심'은 현상적으로 이미 발한 것,
즉 이미 밖으로 표현된 주체의식에 대해서 분석하고 해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심·인심과 미발·이발 사이에는 논리적 연관성이 있다.
논리적으로 말하면 전자는 후자를 구성하고 있는 한 부분이고, 내용적으로 말한다면 전자는 후자가 한 단계 더 전개된 것이다.
1. 송대
이전
도심과 인심은 <<고문상서>> <대우모>편에 제일 먼저 나타나는데, 거기에서는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은미하니, 마음을 정미하고 한결같이 하여 中을 잡으라"라고 말한다. 이 말은 도의의 심은 은미p.581하여 잘 드러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의 심은 위태하여 안정되기 어려우므로, 오직 심을 정미하고 한결같이 하면서 다른 것을 섞지 않아야 중을 보존하고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뒷날 순자는 <해폐>편에서 <<도경>>을 인용하여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은미한데, 오직 지혜로운 군자라야 위태로움과 은미함이 나누어지는 기미를 알아차릴 수 있다"라고 말한다. 지금으로서는 <<도경>>이 어떠한 책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순자 이전에 이미 도심과 인심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순자의 사상에 따르면 인심은 일반적인 사물을 아는 마음을 가리키고, 도심은 도를 아는 마음을 가리킨다. 도는 하늘의 도와 사람의 도를 포함하는 것으로, 객관사물들의 보편법칙을 가리킨다. 심은 허일이정하기 때문에 리를 살피고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있는데,.. 이렇게 도를 아는 마음이라야 만물을 마름하고 관장할 수 있다. 순자의 중심 사상은 이지적인 마음의 인식능력에 잘 표현되어 있다. 만약 이러한 사유의 방법에 따라서 발전했다면 훌륭한 인식이론의 발전이 있었겠지만, 실제로 이러한 발전은 없었다.(--;)
2. 북송시대
p.582도심과 인심이 성리학 심성론의 중요한 개념이 된 것은 정이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도심을 도에 합치하는 심 혹은 도를 깨닫는 심으로 해석했지, 지식에 관계된 인식심으로 해석하지는 않았다. 도를 깨닫는 심이란 바로 자아 체험의 도덕본심으로, 다시 말해 이것은 깨닫는 것을 마음으로 여기는 그러한 심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도덕의식과 도덕관념이다... 정이는 사람마다 모두 선험적인 도덕본심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바로 내재된 이성의 원칙이며 또한 도덕본체의 자기현현으로, 사실상 내재화된 사회윤리의식이다.인심은 감성과 같은 자연적인 본능이나 물질욕망 등의 개인의식으로 설명된다. 여기에서는 개인의식과 집단의식이 관계가 문제로 제기되는데,p.583이 부분은 성리학 심성론이 한 단계 더 발전한 모습이다. 하지만 정이는 인심, 즉 개인의식을 완전히 부정하는 입장을 취한다. ...정이는 도심과 인심을 대립시켜, 도심은 바른 것이고 인심은 사악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정미하고 한결같은 공부를 함으로써 도심을 잘 보존하여 인심에 의해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이가 보기에 도심과 인심 곧 집단의식과 개인의식은 대립적이기 때문에 조화될 수 없고, 따라서 이 둘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반드p.584시 인심을 없애버려야 도심을 보존할 수 있다... 그는 도심과 천리를 같은 것으로 보고, 인심과 인욕을 같은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그 자체로 개인의 이익과 개인의 의식을 희생시켜 집단의 이익과 집단의 의식에 복종시키려는 의미를 가진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3.
남송시대
주희는 정이의 관점이 가진 극단성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정이의 견해를 고쳐 인심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제기했다. 또한 인심에 대해 좋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더욱이 그것을 소멸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p.585주희가 "사람은 하나의 심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을 때의 심은 지각하는 심이지 본체의 심은 아니다. 지각하는 심은 비록 본체의 심과 떨어질 수는 없지만, 형이상의 초월적인 심과 같은 수는 없다. 형이하의 지각작용이라는 측면에서 말하면, 리를 지각해야 할 뿐 아니라 기도 지각해야 한다. 여기에서 도심과 인심의 구별이 생겨난다.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다. 그 지각되는 것에는 이성에 의해서 지각되는 것도 있고 감성에 의해서 지각되는 것도 있는데, 이 역시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다. 도덕이성에 대한 자기인식이 바로 도심으로, 의리지심이라고도 부른다. 이에 비해 생리적 필요에 따라 발생하는 감성을 인식하는 것이 인심으로, 물욕의 심이라고도 부른다... 인식주체로서의 사람은 이성적 측면과 감성적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또한 집단의식과 개인의식도 함께 가지고 있다. ...p.586주희는 또한 도심은 도덕적 의리에서 생하거나 발하고, 인심은 육체적 욕망에서 생하거나 발한다고 생각했다. ...지각은 주체의식의 인식작용이라는 측면에서 말한 것이고, '~에서 생겨난다'거나 '~에서 발생한다'라는 말은 근원의 측면에서 말한 것으로, 이러한 두 가지 설명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주희가 보기에 도심과 인심은 모두 성에 근거하지만, 도심은 본연지성에 근거하고 인심은 기질지성에 근거한다. 도심은 선험적 도덕의식이고, 인심은 생리적 욕구이다. 하지만 주희는 도심과 인심을 근원의 측면에서보다 인식주체의 인식작용이라는 측면에서 말한 지각을 더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의리에서 지각하는 것은 도덕의식의 자각 또는 도덕의식의 직각이고, 욕망에서 지각하는 것은 배고프고 추우며 아프고 가려운 것 등과 같은 감성적 지각이다. 이것이p.587바로 인심과 도심에 대한 주희의 기본적인 해석이다. ...입이 좋은 맛을 원하는 것, 눈이 좋은 색을 보기 원하는 것, 귀가 좋은 소리를 듣기 원하는 것, 코가 좋은 냄새를 맡기 원하는 것, 육체가 편안하기를 원하는 것 등은 모두 성이지만, 이러한 것에 따라서 지각하게 되면 바로 인심이 된다. 이것이 비록 성의 본원은 아니지만, "성 가운데 이 리가 있어서, ... 저절로 이와 같이 드러나는 것이다."(惟性中有此理, ... 自然發出如此.) ...그는 도심과 인심 모두 이발한 심 상태를 가리켜서 말하고 있으며,.. 측은지심 등과 같은 것을 도심이라 하고 희노애락과 같은 것을 인심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이것은 도덕정감과 자연정감을 말한 것이다. 도심은 바로 현실적 감성p.588의 형식을 통해 초월적 도덕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인심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것에 빠져 도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어버리면 그것 역시 해가 된다. 따라서 인심은 반드시 도심의 주재와 조절을 받아서 바름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인심 이외에 달리 도심이 있어서 그것이 인심을 통제하고 지배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인심과 도심은 본질적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 층차의 구분만 있을 뿐이다.p.589자아의식의 측면에서 보면 개인의식은 공공의 윤리의식에 복종하고, 윤리의식은 개인의식을 통해 표현된다. 주희는 윤리의식이 개체의식과 따로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이것은 주희의 사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동시에 그는 개인의식과 윤리의식 사이에는 대립되는 일면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는데, 이것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인심과 도심 - 최진덕
인심과 도심 -
최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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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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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덕, <<주자학을 위한 변명>>, 청계, 2000.
1. 주자의 인심도심설
p.233인심도심은 둘 다 신묘불측한 심의 지각 작용이다. 다만 인심은 형기지사에서 유래하고 도심은 성명지정에 근거하기 때문에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묘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심이란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는 등의 생리적 욕구를 가리킨다. 이 욕구는 인간의 신체에서 유래한다. 신체는 만인이 공유하는 공적인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사적인 것이다. 그래서 형기지사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형기지사에서 나오는 인심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으며, 그 자체가 인욕지사의 악은 아니다. 그러나 인심은 인욕지사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危'라고 했다.p.234이 위태로운 인심은 의리를 지향하는 또하나의 지각 작용인 도심에 의해 통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도심은 맹자의 사단과 같은 마음이다. 도심은 성명지정에 근거한 것이며, 천리지공을 따라가는 심의 작용이다. 도심은 인간의 생리적 욕구인 인심처럼 현저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도심은 '微'라고 말한다. ...인심도심은 모두 심의 지각 작용이며, 하나의 심 속에 섞여 있다. 그러나 하나는 통제받아야 하고 다른 하나는 통제한다. ...주자의 인심도심에 대한 풀이는 분명히 도덕 의식에 의해 지배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인심도심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단순한p.235도덕적 설교에 불과한 것은 결코 아니다. 주자는 여기서 리기론이라는 광대한 우주론적 사유를 배경으로 인간의 생리적 욕구와 우주적 이법 사이의 미묘한 이중적 관계를 말하고 있다. 주자는 인간의 신체에서 유래하는 생리적 욕구인 인심과 보편적인 우주적 이법을 지향하는 도심이 심의 작용 안에 자연적인 것으로서 동시에 자리잡고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주자는 동일한 심의 지각 작용인 인심과 도심을 둘로 나누기 위해 애쓴다. 그의 주된 관심은 역시 양자를 확연히 나누는 도덕적 측면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인심과 도심은 이미 그 유래로부터 구분된다. "인심은 형기지사에서 발생하고 도심은 성명지정에서 근원하여 지각이 되는 소이가 다르다"고 주자는 말한다. 자연적으로 주어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다 인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것을 송두리째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 송명리학의 근원적인 딜레마이다. 도덕적인 것은 근본적으로 자연적인 것이고, 자연적인 것을 떠나서는 도덕적인 것이 도저히 성립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자연적인 모든 것이 도덕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자의 인심도심설은 이 딜레마 앞에서 인심과 도심이 모두 하나의 심에 주어진 자연적인 것이라고 일단 인정하면서도, 양자를 그 유래에서부터 애써 구분하는 양면적인 전략을 구사한다. 주자의 이같은 전략은 과연 성공적인 것일까.기와 리, 형기와 성명이 이물일 수 없고, 모든 것이 리기의 합이라는 주자 리기론의 전제에서 본다면, 하나의 심에 귀속되는 인심과 도심을 그렇게 형기와 성명으로 판연히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일단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형기지사에서 발생하는 인심 역시 성명지정에 근원하지 않을 수 없고, 성명지정에 근원하p.236는 도심 역시 형기지사가 없으면 발생할 수 없다. 형기와 성명은 애당초 구분되지 않는다. 양자는 불가분하게 상호 침투해있다. 형기와 성명, 인심과 도심을 이물로 구분하면, 성명이나 거기에 뿌리박은 도심은 공허해져서 석노의 학문으로 흘러갈 것이다...주자의 인심도심설은 한쪽에 심이라는 근원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천리와 인욕의 엄격한 변별이 있지만, 그것이 역점을 두고 있는 방향은 천리와 인욕의 변별 쪽이다.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따르게 하여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하자는 것이 주자의 근본 취지이다. 자연주의에 바탕한 도덕주의가 다시 자연주의를 압도하고 있는 셈이다. 자연과 도덕의 미묘한 일치와 괴리라는 송명리학의 근원적인 딜레마가 주자의p.237인심도심설에서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인심과 도심을 이분하고 인심에 대한 도심의 주재적 기능을 강조하는 도덕주의적인 의도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인심과 도심을 다 같은 심으로 보기 보다는 차라리 양자를 정과 성 혹은 심과 성으로 그 근원에서부터 나누어 보는 것이 더 일관된 해석일 것이다. 주자가 자신의 도덕주의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인심과 도심을 둘 다 이발의 지각이라고 보는 것은 <<서경>>의 인심과 도심이 모두 심자를 가지고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문헌적 사실에 구애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2. 체용론적
해석
인심이나 도심 모두 심이다. 심은 하나인데 성인이 둘로 나누어p.238말한 것은 단지 그 '지각이 되는 소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도심은 심의 일정불변한 체이고 인심은 심의 변화무쌍한 용으로서 양자가 애당초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정암은 풀이한다. 그래서 정암은 인심도심을 성체정용이라는 심성론적 틀에 끼워 맞춘다. ...p.239정암은 <계사전>의 말을 동원하여 도심을 적연부동의 至精之體(性)로 보고, 인심을 감이수통의 至變之用(情)으로 본다. 바로 그 때문에 위와 미에 대한 해석도 주자와 달라진다. 주자는 위를p.240'위태하고 불안하다'로, 미를 '미묘하고 살피기 어렵다'로 풀이한다. 주자의 이런 풀이는 두 가지 다른 지각 작용을 형용한 것이다. 반면에 정암은 인심과 도심을 주자와 달리 정용과 성체로 나누어보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으므로 위하고', '살필 수 없으므로 미하다'고 풀이한다. 그렇다면 정암에게 위는 '음양불측의 神'과 같은 뜻이고, 미는 '형이상' 혹은 '무성무취'와 같은 뜻이다. ...p.241주자나 정암에게 인간의 심리 현상은 우주의 자연 현상과 근본적으로 동질적이다. 그러나 인심도심의 해석에서 주자는 인심도심을 심리 현상의 테두리에 국한시켜 보는 경향이 강한 반면, 정암은 인심도심을 주저없이 우주의 자연 현상과 연결시킨다. ...도심은 일음일양의 실체인 도가 사람에게 내재된 것이고, 인심은 음양불측의 묘용인 신이 사람에게 내재된 것이다.
3. 인심도심과
천리인욕
p.242인심도심을 이처럼 성체정용의 심성론으로 풀이했기 때문에 인심도심과 천리인욕의 관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주자는 인심을 인욕으로, 도심을 천리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정암은 '인심은 인욕이고 도심은 천리'라는 정자의 말을 전폭적으로 시인한다. ...정암에게 인욕은 곧 性之欲이다. 정암은 욕과 인욕을 전혀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미리 주p.243의할 필요가 있다. 정암에게 인욕은 '人이 가진 欲'이란 뜻 외에 다른 뜻이 없다. 정암에 의하면 '성지욕'의 욕은 칠정의 하나인 동시에 칠정을 대표하는 것이다. ...정암에게 욕은 感物而動한 전부이며, 곧 정이다. 즉 욕은 심의 동 혹은 이발을 가리킨다. 결국 정암에게 욕 혹은 인욕은 그의 인심 개념과 다르지 않다.또한 정암은 욕 혹은 인욕이 '天之性'과 마찬가지로 人이 아니라 天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한다. 심의 동정은 곧 천의 동정이다. ...p.244욕·인욕에 대한 정암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암이 "인심은 인욕이다", "인이 욕을 갖는 것은 천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말하고, 심지어 주자의 '거인욕' 혹은 '알인욕'까지도 부정하는 것을 본다면, 주자학에서 벗어난 근대적인 욕망 긍정론 혹은 욕망 해방론의 징조로 잘못 읽기 쉽다. ...p.245정암의 인욕은 심의 지각 작용 전부를 가리킨다. 정암의 인욕은 주자가 말하는 형기지사에서 발생하는 인심과 성명지정에 근원하는 도심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즉 인간의 생리적 욕망과 감각 작용과 인식 작용이 모두 인욕 속에 포함된다.
4. 절욕의 윤리학과
대본
정암은 인욕 즉 인심이 천에서 나온 것이며 결코 제거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인간 조건이라고 보면서도, 인욕의 모든 현상을 다 긍정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그와 주자의 차이가 개념 정의의 차이에 불과하며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정암 역시 절욕의 윤리학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욕을 악이라 할 수 없다. 욕이 선이 되고 악이 되는 것은 節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을 뿐이다."..p.248절욕의 윤리학은 자연과 인간, 욕구와 도덕의 교차점에 서 있다. 절욕의 윤리학은 상호 배척하는 두 원리 사이의 불안한 균형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쉽게 이론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유가 철학의 절욕의 윤리학은 늘 무욕과 종욕 사이에서 고심한다. 이론적으로 생생의 세계에 뿌리박고 있는 송명리학의 경우는 그런 고심이 더욱 심각하다. 욕은 생의 가장 현저한 발로이기 때문이다. ...인심과 도심, 인욕과 천리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암과 주자는 절욕의 윤리학이라는 유가 철학의 철칙을 공유하고 있따. 절욕의 윤리학은 인간의 자연적 욕구와 그 욕구를 규제하는 원리의 구별,..을 필연적으로 전제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구별 속에서 욕구보다는p.249그 욕구를 규제하는 원리 즉 대본에 더 비중을 둔다. 규제하는 것은 규제당하는 것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주자 역시 절욕의 윤리학에 따라 인심과 도심의 유래인 형기지사와 성명지정을 구별하고, 또 인욕과 천리를 확연히 구별하며 인욕에 대한 천리의 규제를 강조했다. 그렇지만 인심도심에 대해서는 그와 같이 구별하지 않았다. 주자는 인심과 도심을 심의 이발인 지각으로 해석하고, 인심을 도심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정암은 인심과 도심을 아예 성체와 정용으로 구별했다. 이것은 규제하는 것과 규제당하는 것을 구별하는 절욕의 윤리학의 근본적인 요청에 주자보다 더 충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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